아파트 에어컨이 고장이라서 땡볕 더위에 찜통속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3층 아파트의 3층이라...뜨거웠다... (그러길래 내가 처음부터 1층에 살겠다고 그랬는데... -.-) 아아아.
낮에 아파트 기사가 와서 뭔가 고쳐주고 갔지만, (냉각 가스를 충전한 것 같았다) 기사가 가고 난후에 냉기대신 더운 바람만 흘러나왔다. (모든 전자 전기제품은, 수리맨이 오면 멀쩡하다가, 그가 사라지면 말을 안듣는다). 오후 늦게 낮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오후 일곱시. 아뿔사, 지홍이가 여섯시까지 픽업 해달라고 했는데...
지홍이에게 '엄마가 낮잠자다 늦었는데 왜 전화로 깨우지 않았냐'고 시비를 건 후에 지홍이를 데릴러 문을 잠그고 나섰는데. 모든것을 가방에 다 챙겼는데, 딱 한가지 '열쇠뭉치'를 집에 놓고 나왔다.
집열쇠도
차 열쇠도
모두 잠긴 집 안에 ...
"지홍아 지홍아 엄마가 열쇠 꾸러미를 놓고 문을 잠그고 나와버렸다. 라이드 구해가지고 빨리 집으로 와라. 네 열쇠가 필요하다!"
내가 징징대자 지홍이가 군소리 없이 그러마고 한다.
근처 스타벅스 매장에 가니 '천국'처럼 시원하였는데, 냉커피를 마시며 앉아있다보니 지홍이가 나타났다.
(이럴땐 녀석이 근사해보인다. 나를 구출해주기 위해 나타난 기사 같다.)
아이들과 H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쌀 두포대와 수박 두통. 기타 먹고 살 것들을 장만하는데 220달러가 들었다. 기본 생활 양식을 장만했으니, 이것으로 절약해가면서 알뜰하게 살아내야 한다. 남편과 생활 할때는 겁없이 장을 봤지만, 이제 다시 긴축 재정으로 들어가야 한다. 극장을 가도 조조 할인으로 보고, 음식 남아 버리는 일 없이 계획성있게 사고. 당분간 옷이나 이런거, 쓸데없는것 안사고. 애들 학비와 생계비만 지출하며 살아야지.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듯 그렇게 긴축해서 살면, 내가 절약하는 만큼 남편이 고생을 덜 할것이다.) 아파트 렌트 나가는것이 너무 아까운데, 게다가 기본생활도구인 에어컨이 말썽이라니...
3년간 워싱턴에서 장볼때는 늘 남편과 함께였는데, 이제는 다시 혼자이다. 그대신, 아이들이 훌쩍 커서 이제는 아이들이 나를 돌보듯 집안일들을 챙기는 편이다. 나는 걸을때마다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지만 어금니를 물고 꾹 참는다. 인생은...원래 이런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모두의 인생이 이러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서 이렇게 특별한 인생을 사는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특별해. 나는 특별히 중요한 미션을 갖고 이세상에 태어난 존재야. 이렇게 내게 되풀이해서 말해준다. (이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존재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들을 이름모를 들풀 하나도 모두 특별히 디자인된 것들이다. )
나는 매일, 물건들을 조금씩 정리해서 폐기처분 하기로 정했다.
매일 매일 물건들을 정리하여 내 곁에서 떠나보내다 보면
결국 아주 중요한 것들만 내 곁에 남게 될 것이고
그만큼 내 삶은 가볍고 명쾌해질 것이다...
*** ***
지홍이는 일본에서 어학연수 나온 일본 여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다가 서로 사귀고 있는데, 그 여학생이 아프다고 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냉장고에 있던 차가운 수박과 과일을 썰어 담아 주고, 장봐온 것중에서 그 학생이 두고 먹을만한 것들을 챙겨서 가방에 담아 보내주었다. 그 아이가 나중에 내 며느리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냥 그렇게 사귀다가 각자 자신의 길로 가겠지...) 그래도 아들의 여자친구는 어딘가 '강아지'처럼 귀엽고 애틋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 녀석에게 뭐든 보내주고 싶어진다. 내가 없는동안 찬홍이까지 초대해다가 음식을 해먹이고 그랬던 모양이다. 7월중에 그녀석까지 자동차에 태우고 바닷가에 놀러갔다 올까 생각도 해본다.
*** ***
이제 매일 매일 집안 살림을 단촐하게 치워가면서 (하도 물건이 널려있어서 조금씩 조금씩 해야 한다),
내가 매일 할일
* 매일 아이들에게 집에서 한 밥을 먹이고 -- 야채와 칼슘을 많이.
* 찬홍이를 데리고 연구실에 나가서 녀석의 공부를 돕고 (찬홍이와 함께 출퇴근을 하며 녀석과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것이다.)
* 찬홍이와 일주일에 서너차례 숲길을 걸을것이며 (터키런을 다녀오는게 좋겠다. 저녁무렵에)
* 가을학기 수업 준비를 착실히 해 놓고
* 밀린 연구 과제들을 조금씩 해나가야겠다. (프로포절 두개 보낸 것중에 하나 떨어지고 하나 통과되었다. -.-)
* 미국미술 작업 계속하고.
* 매일 한국집에 전화 걸고.
그리고 '자기조절'을 잘 해야겠다. 성내지 않고,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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