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나를 가슴뛰게 하는 그림

 

 

목요일 새벽에 (아마도 네시쯤) 출발하여 대략 10시간 혹은 12시간 가면 미시간 주립대에 도착 할 것이다.  그러면 오후 학회 오프닝 행사시각에 맞을 것이다.  대략 600마일 거리이므로, 내가 중간에 쉬면서 가노라면 12시간은 잡아야 할 것이다.

 

내일 모레 출발해야 하는데, 아직 발표 자료도 만들어 놓지 않았다.  내일 학교에 가서 간단히 프레젠테이션 자료 만들고 (뚝딱뚝딱) 청중에게 나눠줄 자료 카피하고, 여관 예약해 놓은 것 프린트 하고, 스케줄 자료 프린트하고... 대충 이러한 것들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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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6일 월요일

The Empire of Light II (빛의 제국 2) 르네 마그리뜨

 

Rene Magritte (Belgian, 1898-1967)

1950 (Oil on Canvas)

 

 

2009년 9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찍어옴.

http://americanart.textcube.com/80

 

 

 

2009년 10월 25일 일요일

[NGA] The Robert and Jane Meyerhoff Collection

National  Gallery of Art 동관에서 현재 진행중인 미국 현대미술 전시회 소식. 10월 1일부터 내년 5월까지.  11월중에 한번 가 보고싶다. 10월은, 감기 몸살 플루 뭐 종합적인 몸살로 뭘 제대로 못했다.  11월에는 더 많이 웃고, 더 많은 좋은 생각을 하면서, 더 생산적으로 살고싶다.

 

 

http://www.nga.gov/exhibitions/meyerhoffinfo.shtm

 

 

Image: Hans Hofmann, Autumn Gold, 1957 oil on canvas, Collection of Robert and Jane Meyerhoff Ten themes—Scrape, Concentricity, Line, Gesture, Art on Art, Drip, Stripe to Zip, Figure or Ground, Monochrome, and Picture the Frame—illuminate specific works across the Robert and Jane Meyerhoff Collection. The resulting juxtapositions, often surprising and provocative, provide a new way to tell the story of postwar American art, and of a great collection. Through remarkable acuity, exhaustive study, and close relationships with the artists, the Meyerhoffs amassed one of the most outstanding collections of modern art, with an emphasis on six American masters: Jasper Johns, Ellsworth Kelly, Roy Lichtenstein, Brice Marden, Robert Rauschenberg, and Frank Stella, in addition to important works by leading abstract expressionists and younger artists. A number of the ten themes concern the material process of creation, others address issues of form and composition, and still others extend past material and formal issues to broach the self-reflexive aspects of modernist painting. Some 126 paintings, sculptures, drawings, and prints include several acquisitions made after the collection was last highlighted in a major exhibition at the Gallery in 1996. All of the works in the exhibition have been donated or promised to the National Gallery of Art and continue to shape and greatly enhance the Gallery's modern and contemporary

 

 

11월 셋째주에 작품 설명회도 가보고 싶다.

 

 

Special Exhibitions
The Robert and Jane Meyerhoff Collection: Selected Works
Sally Shelburne, David Gariff, or Diane Arkin

November 10 at 2:00PM
November 16, 18, 20–22, 25 at 1:00PM
November 17, 19 at 11:00AM

December 7, 11 at 12:00PM
December 9, 17, 22 at 2:00PM
(60 minutes)

 

[Movie] Amelia

 

http://www.imdb.com/title/tt1129445/

 

 

 

힐러리 스웽크와 리차드 기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아멜리아 이어하트 일대기 영화가 미국 전역에서 10월 23일 개봉되었다.. 아멜리아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이번 여름에 출시된 Night at the Museum: Battle of the Smithsonian (박물관은 살아있다, 스미소니안 편 http://www.imdb.com/title/tt1078912/ )을 학생들과 함께 본 적이 있다.  이 영화에 여자 비행사 아멜리아가 나왔는데 바로 그이가 꽤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여자라서, 근사한 여자라서 내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위의 사진은 '박물관은 살아있다 2009년판'에서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했던 아멜리아 에어하트. (사진에 남겨진 아멜리아와 닮은 구석이 별로 없다. 아멜리아는 이쁘장하지도 않고 아담하지도 않다. 소년처럼 마르고 길쭉하고, 얼굴도 역시 길쭉하고.  에이미 아담스라니... 제길슨... 어쨌거나, 어차피 그 영화에서 정말 인물과 배역이 닮았던 경우가 없었으므로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호흡을 맞춰 '백만불 베이비'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얻었던 힐러리 스웽크가 연기한 아멜리아.  이번에는 리처드 기어, 이완 맥그리거가 파트너였다. 이완 맥그리거가 나와서 흐뭇. (이완 맥그리거가 트래인스포팅에 나올때만해도 풋내가 났었는데, 이제 중년처럼 보인다. 오오 세월이여.)  영화시장에서 크게 흥행할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나는 원래 이런 '인물의 일대기' '영웅들의 전기' 영화나 이야기를 좋아하므로 이런 영화 나오면 '무조건' 가서 보는 편이고, 내 평가는 대개 '만족'스러운 편이다. 힐러리 스웽크, 이 영화에서 그녀의 '매력'이 제대로 사는것 같다. 다시 말해서, 이만큼 이 배우가 멋있게 보인적이 없었다.  (그가 분한 역할이 사실 많은 사람들의, 혹은 많은 여성들의, 혹은 나의 꿈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Amelia Earhart 는 1897년생, 1937년 태평양 상공에서 실종되었다. 딱 40년 살았다. (죽기에 좋은 나이. 한 근사한 여성이 삶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뒤 돌아보지 않고 떠나기에 좋은 나이 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 비행을 '인생 최후의 비행'이라고 말한바 있고, 비행사가 마지막 비행후에 어떤 삶을 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뭐 그대로 사라진 마침표가 썩 나빠보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아멜리아 에어하트가 남긴 말, 말, 말...

 

Never interrupt someone doing what you said couldn't be done.

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을 다른 사람이 해보려고 시도할때 그를 방해하지 말라.

 

The most effective way to do it, is to do it.

일을 하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일단 일을 하는것이다.

 

Women, like men, should try to do the impossible. And when they fail, their failure should be a challenge to others.

 

여성들은,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뭔가 불가능해보이는 일을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이 실패로 돌아갔을때, 여성들의 실패는 다른 사람들에게 또다른 모험이 될것이다.

 

There are two kinds of stones, as everyone knows, one of which rolls.

우리 모두 알고 있듯, 이 세상에는 두종류의 돌이 있다. 그 둘중의 한가지는 '구르는 돌'이다.

 

Never do things others can do and will do if there are things others cannot do or will not do.

다른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는 일, 다른 사람들도 다 하게 될 일을 하지 말라, 만약에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거나 하지 않을 일이 있다면 그쪽을 선택하라.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남편, 조지 푸트남 (George Putnam).  영화에서 리처드 기어가 성실한 후견인으로서의 남편 역할을 잘 보여줬는데,  아멜리아보다 대략 열살쯤 연상이었던 그는 부인과 이혼하고 아멜리아와 재혼했으며, (하하, 이 대목에서는 조지아 오키프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관계와 꽤나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1937년 7월에 아멜리아가 태평양 상공에서 실종했는데, 일년 반 후에 1939년 1월에 실종된 아멜리아를 '사망신고' 처리하고, 그해 5월에 다른 여인과 삼혼 (재혼 이후에 또 결혼 했으니까 3혼)을 했다. 뭐, 그렇다는 것이지... 하하. 사랑은 덧없다. 더구나 그 사랑이 죽고 없어진 후에야 기다릴것도 없을테니까 말이다. 

 

영화 보고 깨달은 것 총평:

 1. 부잣집에서 태어나 뭐 공주놀이하면서 제멋대로 잘 커서 남이 감히 해보기도 힘든 '비행기조종'도 해보고 잘 나갔던 여자.

 2. 프로모터가 없었다면 별볼일이 없었을지도 모르는, 전형적인 '미국'의 산물.

 3. 그저 옷을 잘입어야 출세를...  (뭐냐 이거, 왜 이런 결론이 나오는거냐 근데...)

 4. 이런 모든것을 영화에 담아내줬으니 영화 자체가 '영화'와 '현실'의 괴리를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점수 듬뿍 줘도 될 만하다.   근사한 여성 비행사 일대기 영화 보러 갔다가,  아메리카 상업주의의 산물의 일생, 스타는 어떻게 탄생하나 뭐 이런 재미없는 현실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다.

 5. 그래서, 역시, 스타가 되려면 좋은 옷 입어야하고,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해 하고 깨닫고 나오면서 문득, 내가 침대에서 기어나온 부스스한 차림으로 꺼먼 패딩잠바를 이불처럼 두르고, 세수도 안한채로 영화관을 걸어나오고 있다는 '현실'을 발견,  아아아 이런 꼴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내 이미지는 어떻게 될까, 공포에 부들부들. 

 6. 또한가지 별도로 깨달은것, 일요일 오전에 남들 줄줄이 예배당에 갈 시간에 극장에 와 앉아있는 이 '이교도' 혹은 배은망덕하고 무지몽매한 '무신론자'들에게 극장은 성소이자 에덴동산~  

 

 

 

2009년 10월 24일 토요일

Shanandoah National Park, Skyline Drive 단풍구경

 

Shanandoah National Park, Skyline Drive 홈페이지

http://www.nps.gov/shen/planyourvisit/driving-skyline-drive.htm

 

한반도의 척추가 태백산맥이라면, 북미 미국의 척추는 애팔라치아 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애팔라치아 산맥의 정점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있다. Skyline Drive 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50마일 정도 달리면 Front Royal 이라는 소읍이 나오고 이곳에 스카이라인 드라이브의 입구 (셰난도 국립공원 입구)가 있다.  이 산맥의 등줄기에 올라 서쪽을 보면 굽이 굽이 이어진 산들이 보이는데 그렇게 한없이 가면 서부가 나온다. 이 산맥의 등줄기에서 동쪽을 보면 푸른 산자락 너머 너머에 대서양이 펼쳐진 형상이다. 수도 워싱턴에서 한시간 거리이므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골치가 아프면 이 산맥의 등줄기에 올라 넓게 펼쳐진 국토를 내려다보며 상념에 잠기곤 한다고 한다.

 

버지니아로 온지도 2년이 넘었지만, 나는 가을 단풍 구경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었다.  오늘 하필 절정이라는 가을단풍 구경을 나섰는데,  날이 변화무쌍하여 흐리고, 비가 쏟아지다가, 개다가 다시 비가왔다.  난 비오거나 흐린 날도 분위기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므로...특히 요즘은 심적으로 우울한 관계로 맑은 날은 더 괴롭더라. 맑은날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는것 같고, 나만 혼자 왕따된 기분이 들기도 하므로...  왜 나갔냐하면, 집에 있으면 우울해서 잠이나 잘까봐.  :-]  (난 나름대로 우울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오늘, 비오고 안개끼고 온갖 날씨의 쇼를 하는 가운데 단풍구경을 했는데,  하하하, 안개가 자욱하니까 단풍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보일때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유쾌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왜 사람들이 '단풍구경'을 가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난 여태 살면서 단풍구경을 해 본적이 없었다...)  단지 자연이 선사한 알록달록한 풍광속에 내가 흐르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색깔치료' 와 같은 위안을 받았다.  미국 미술사에서 21세기에 '추상표현'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Rothko 를 위시한 작가들이 '어마어마한' 캔바스에 색칠을 해 놓는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워싱턴의 미술관에 가면 21세기 추상표현주의 관련 작품들이 전시된 곳은 홀이 넓고 그리고 벽을 '압도'하는 대형 작품들이 걸려있다.  나는 이 전시장들을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그 어마어마한 작품 앞의, 어마어마한 색상 앞에서 앉아 쉬거나 서있을때, 색이 내게 스며드는 듯한 유쾌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색이 되고 색이 내가 되는듯한 느낌. 나는 그 느낌이 참 좋다.  그런데, 단풍 구경을 갔을때, 알록달록하게 물든 자연이, 혹은 뿌연 안개가,  흐려서 수묵화처럼 보이는 무채색의 풍경이 내 몸에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몸이 자연과 동화가 된다는 느낌이 들면서,  '괜챦아, 괜챦아' 라는 기분이 들었다. 뭐가 괜챦은가하면...그냥... 견디기 힘든 시간이지만  그래도 괜챦다는.  이 시간을 용서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괜챦다는.  막막하지만 그래도 괜챦다는.  사람들은 색깔을 몸에 담기위해 단풍구경을 가나봐...했다.

 

 

 

 

이곳이 바로 애팔래치아 산맥 등줄기에서 내려다본 셰난도 골짜기. Grandma Moses 모세 할머니가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살던 곳. 모세 할머니가 즐겨그리는 풍경화의 구도와도 흡사하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Grandma%20Moses

 

 

 

 

 

 

 

 

 

 

 

 

 

 

 

 

 

 

 

 

 

 

 

 

 

 

 

어느 모르는 인도계 가족 일동이 하필 내 차 밖에 모여서서 사진을 찍길래 나도 차 안에서 이들을 찍어봤다.  비와 빨간우산과 가무잡잡한 피부와 그리고 선량한 가족이 그려낸 예쁜 그림.  이들이 행복해보여서 나도 좋았다.  모두 행복하시길.

 

 

 

 

 

돌아오는길 Apple House 라는 식당에서.  이들이 만들어 판다는 잼과 소스병을 찍어보았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동안.  이 식당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63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Front Royal 에서는 명소인것으로 보인다.  하이웨이와 지방도로가 만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서 나같은 소풍객들이나 이지역 주민들 모두가 편안하게 드나들수 있는 곳.  다양한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었는데, 음식이 소박하면서도 정감이 갔다.  난 3달러짜리 계란 샌드위치 (버터로 구운 식빵 사이에 얇은 계란부침 끼운것)를 먹었는데,  내가 내 식성에 맞춰서 집에서 만든것보다 더 바삭하고 기름기없는 맛이었다.  어쩌면 다음번에는 이 식당에서 계란샌드위치를 먹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이곳으로 달려갈지도 모르겠다.

 

 

 

 

 

 

Applie House 의 위치는 워싱턴에서 갈경우 하이웨이 66 서쪽방향으로 50마일쯤 달리다가 Exit 13 에서 나간다. 나가면서 셰난도 국립공원 안내판을 따라서 달리다보면 국도 55번상에서 주유소가 나타나고 주유소 옆에 빨간 건물이 나타날것이다.  이곳이다. Exit 13으로 정확히 나가면 쉽게 찾을수 있다.

 

 

[Movie] 교황님의 변소 The Pope's Toilet (El Bano del Papa)

 

 

http://www.imdb.com/title/tt0482901/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우루과이 출신의 감독이 만든 영화. 

 

브라질과 우루과이 국경지대의 우루과이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브라질의 도시에 가서 장을 봐 올수 있다. (미국의 텍사스주 엘파소에 가도 비슷한 광경을 볼수 있다. 엘파소의 미국, 멕시코 국경선에서 멕시코 사람들이 매일 합법적으로 다리를 건너 미국에서 장을 봐가지고 돌아간다.)   그런데 자신들의 생필품만 사면 문제가 안되는데, 마을의 소매점의 심부름으로 물건을 기준치 이상으로 대량으로 사다 넘겨주는 일을 하고 품값을 받기도 한다.  이경우 '밀수'에 해당되므로 물건을 빼앗기거나 처벌을 받게 된다.

 

어느날 이 작고 보잘것 없는 마을에 '교황님'이 방문한다는 뉴스가 나온다. 마을 사람들은 '교황님이 오시면 수많은 신도들이 교황님을 보려고 몰려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들에게 빵을 팔면 어떨까?' 뭐 매우 '사업감각'이 뛰어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가지고 이 지역 사람들이 비상금을 털거나, 혹은 있은 땅을 팔아서  '사업'계획을 세운다. 어떤이는 수만명을 먹일만한 소세지를 만들 궁리를 하기도 하고, 빵을 수만명 먹일만큼 만들어 팔 궁리를 하기도 한다. 주인공 남자의 계획, '사람들이 갑자기 수만명이 몰리고 빵이나 음료수를 먹게 되면 변소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변소를 지어서 변소 입장료를 받아야지.' 그래서 무일푼인,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남자가 심지어 딸의 학교 월사금까지 다 털어다가 변소를 짓기에 필요한 물건들을 브라질에 가서 사들이고, 온갖 고생을 다 한다.

 

예상대로 교황님이 온다. 그런데 수만명, 수십만명이 올거라고 떠들어대던 방송 보도와는 달리, 그 자리에 모인 사람은 천명 수준이었고, 행사도 일찍 끝나버리는 바람에 사람들은 간단히 교황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들간다. 수만, 수십만명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던 사람들은 완전 망한거다. 소세지는 돼지밥이 되고, 빵은 길거리를 굴러다닌다.  남자가 지은 변소는 가족변소가 되고만다.

 

어찌보면 한심하고 비참한 얘기 같은데, 영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삶은 곤궁하고 절망적으로 흐르는데, 등장인물들의 표정에는 그런 비참성이 보이지 않는다.  다들 술 한잔 먹고 웃고, 그리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이란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이런 종류의 영화를 많이 만들었었다.  인생은 씁쓸하고,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고.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주인공 남자의 끝없는 실수, 실패, 좌절을 생각하면 인생 왜 이러고 사나 싶은데, 술한잔 마시고 행패부리고나서 또 뭔가 살아갈 궁리를 하는 그 남자를 보게되면,  우리도 용기가 생긴다.  까짓것, 가진자나 못가진자나 결국 다 죽는거니까, 내가 조금 못가졌다고해서 기죽을것 없지, 뭐 이런 심보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좋은 영화다. (풍광이 아름답다).

 

 

[Movie] Paris 36 (원제: Faubourg 36) 2008

 

 

http://www.imdb.com/title/tt0948535/

 

 

온가족이 즐길수 있는 아름다운 뮤지컬 드라마. 등장인물들과 장면들이 동화처럼 아름답다. 음악도 아름답고. 내게 특히 인상적인 인물은,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20년을 집밖에 나가지 않고 라디오만 들었던 작곡자 (Radio Man).  그는 세상을 등진채 '라디오'에서 전해주는 세상소식만을 듣는다. 

[Movie] Lars and the Real Girl (2007)

 

http://www.imdb.com/title/tt0805564/

 

 

사람이 평생 갖게 되는 '보이는/보이지 않는 상처. 

그 상처를 치유하는데 필요한 요소들로, 저자/감독은 친구, 가족, 마을사람들(공동체), 전문가 (정신과의사) 등이 어떻게 서로 협조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코미디.

 

Lars의 엄마는 난산으로 Lars 를 낳고 죽는다. 그 결과 Lars 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키우며 우울하게 살다가 사망한다. 큰아들은 우울한 아버지를 못견뎌하다가 집을 나가버렸고, 아버지가 죽은 후에야 이제 막 결혼한 아내와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아들 Lars는 아버지가 죽고 형의 부부가 집으로 돌아온 후 별채 주차장 구석에 붙어있는 방에서 따로 생활한다.  큰아들 부부는 Lars 에게 집에서 함께 살자고 하지만 Lars 는 별채에서 따로 사는 것이 훨씬 편하다. Lars는 착하고 성실한 직장인이고, 꼬박꼬박 교회에도 출석하는 착한 젊은이이지만 그 이외의 시간에는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고 혼자 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다. 마을 사람들은 Lars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Lars가 착하고 상냥한 젊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 Lars는 아무하고도 말을 하거나 만나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 없다.

 

어느날 Lars는 '섹스돌'이라고 할만한 인체와 똑같은 '인형'을 주문하여 집으로 배달시킨다.  그리고 '비앙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그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Lars를 위하여 모두 '섹스돌 비앙카'를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우한다. Lars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자세가 천국의 사람들처럼 선량하다. 코메디에서만 가능한 상황일것이다. 그래서 코메디가 좋다.)

 

정신과의사와의 대화에서 Lars 의 문제가 조금씩 발견된다. Lars는 자신을 낳다가 죽은 엄마, 죽을때까지 '우울'했던 아버지 때문에 어떤 죄의식을 안고 평생 살아왔을지 모른다. Lars는 사람들과의 '접촉'이 무척 아프다고 고백한다. 악수를 하거나 누군가와 스쳐도 불에 데인듯 접촉 부위가 아프다.  그러니 가족이 따뜻하게 안아줘도 Lars에게는 그것이 따뜻한 포옹이 아니고 온몸이 불에 데인듯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의 접촉 통증은 죄의식과 상실감, 우울감이 복합된 심리적 통증일것이다. 게다가 착하고 상냥하기까지 하므로 어디에도 그의 우울감을 표출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의 협조속에 내면의 고통을 조금씩 풀어놓으면서 Lars와 비앙카의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  Lars는 비앙카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고도 하고, 비앙카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마을사람들은 진심으로 비앙카의 건강을 염려해주고 Lars를 위로해준다. 그리고 마침내 비앙카가 죽고 장례식을 치른다. (이는 Lars의 마음속에서 비앙카와 결별하는 과정일것이다.)

 

인형 비앙카는 Lars에게 무엇인가?  얼굴도 기억할수 없는 엄마 혹은 잃어버린 엄마 (여성)의 총체?

 

그런데 이것이 Lars만 겪는 일일까? 영화에 나오는 마을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에게도 아주 작은 비앙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인형, 혹은 어떤 기념품이 비앙카일지도 모른다.  나 혼자 낙엽을 보며 중얼거릴때, 내 곁에 비앙카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잊혀진 애인이 준 작은 선물을 버리지 못하고 매일 들여다본다면 그것이 비앙카일지도 모른다.  영화 Where the wild things are ( http://americanart.textcube.com/131 )에서 도깨비들은 꽥꽥대는 올빼미의 말을 알아듣고 대화를 나눈다.  어떻게 올빼미가 꽥꽥대는 소리를 '언어'라고 알아듣고 대꾸를 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Lars는 '말없는' 인형과 대화한다.  한마디로 저 알아듣고 싶은대로 알아듣고, 저 대답하고 싶은대로 대답하는 것인데, 왜 이런짓을 할까?  ....그러고 싶으니까....  그러지 않으면 미치겠으니까.... 그러지 않으면 미칠지경이니까....   마을사람들이 혹은 영화를 보는 우리가 Lars와 공감하는 이유는, 역시 우리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내 말을 온전히 알아듣고, 서로 온전히 소통할수 있는 비앙카를 간직하고 살아갈테니까.

 

 

2009년 10월 23일 금요일

미국사실주의화가들: The Eight, Corcoran 전시 (2009)

http://americanart.textcube.com/133  이전페이지,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에 대한 글에 이어, 해당 페이지에서 잠깐 소개한 The Eight (8인회)의 작품 성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페이지를 하나 만들어봅니다. 2009년 10월 4일 (한국, 추석날)에 워싱턴 Corcoran Gallery of Art http://americanart.textcube.com/97  에 갔을때 마침 The Eight 화가들 작품이 한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어서 작품 사진들을 카메라에 담아 올수 있었지요.  분명 The Eight 을 타이틀로 한 전시이긴 했으나 8인회 멤버중에서 여섯명의 작품이 있었고, 그리고 역시 이들의 후배격인 다른 두명의 화가가 추가 되었습니다. 모두 8인의 그림이 소개가 되긴 했으나 그 중 두명은 8인회 소속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들이 20세기 초반에 Social Realist 사회 사실주의로서 활동할 당시의 그림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추가된 두명의 그림이 오히려 더욱 효과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코코란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나열하면서 간단히 스케치 하겠습니다.

 

일단, 기획전 안내판입니다. The Eight (8인회)와 The 14th Street School (14번가파)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8인회 회원중 코코란이 소장하여 전시한 작품은 Luks 와 Shinn 을 제외한 여섯명의 그림들입니다.

 

 1. William Glackens (1870-1938)  윌리암 글래큰스

 2. Robert Henri (1865-1929) 로버트 헨라이 http://americanart.textcube.com/197

 3. Goerge Luks (1867-1933) 조지 럭스 (x) http://americanart.textcube.com/278

 4. Everett Shinn (1876-1953) 이브릿 쉰 (x) http://americanart.textcube.com/272

 5. John French Sloan (1871-1951) 존 프렌치 슬로언 http://americanart.textcube.com/201

 6. Arthur B. Davies (1862-1928) 아서 데이비스 http://americanart.textcube.com/279

 7. Ernest Lawson (1873-1939) 어니스트 로슨 http://americanart.textcube.com/281

 8. Maurice Prendergast (1859-1924) 모리스 프렌더개스트  http://americanart.textcube.com/205

 

14번가파의 작가들중

 1. Reginald Marsh (1898-1954)  레기날드 마시

 2. Raphael Soyer (1899-1987) 라파엘 소여

의 작품이 전시가 되었습니다.

 

(사진은 클릭하시면 커집니다)

 

전시장 풍경입니다.

 

 

 

안내판입니다.

 

 

 

위에 명시된 순서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1. William Glackens (1870-1938)  윌리암 글래큰스

 

 

 

 

2. Robert Henri (1865-1929) 로버트 헨라이  http://americanart.textcube.com/197

 

 

3. Goerge Luks (1867-1933) 조지 럭스  (x)  http://americanart.textcube.com/278

4. Everett Shinn (1876-1953) 이브릿 쉰  (x) http://americanart.textcube.com/272

 

 

5. John French Sloan (1871-1951) 존 프렌치 슬로언 http://americanart.textcube.com/201

 

 

6. Arthur B. Davies (1862-1928) 아서 데이비스 http://americanart.textcube.com/279

 

 

 

7. Ernest Lawson (1873-1939) 어니스트 로슨

 

 

 

 

8. Maurice Prendergast (1859-1924) 모리스 프렌더개스트 http://americanart.textcube.com/205

 

 

 

14번가화파

 

1. Reginald Marsh (1898-1954)  레기날드 마시

 

 

 

 

2. Raphael Soyer (1899-1987) 라파엘 소여

 

 

 

 

제가 일찌감치 퇴근을 해야 하는 이유로 '제목'과 같은 세부 사항은 추후에 추가하여 페이지를 완성시키겠습니다만,  얼핏 보기에 '무엇이 사회적 사실주의'라는거냐?  이 그림에서 도시, 빈민, 혹은 사회주의적 비판적 시선을 가진 그림이 몇점이나 되느냐?  이런것을 소위 사회적 사실주의 그림이라고 하는거냐?  이런 의문이 들수도 있을겁니다.  보따리 싸가지고 오피스를 나가기 전에,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기획전 자체가 '사회적 사실주의'에 촛점을 맞춘것이기보다는 코코란이 소장하고 있는 The Eight 의 화가들, 14번가화가들의 '작품'을 내 건 것입니다. 그 작가들이 그린 그림중에 코코란은 이런 그림들을 갖고 있다는 뜻이지요.   레기날드 마시가 특히 뉴욕 뒷골목 빈민가 풍경을 암울한 색조로 잘 표현해 냈지요.  헨라이가 그린 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의 초상도 '초상화'로서 크게 주목할 것은 없지만, 그가 '사라져가는 힘없는 사람'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도 들여다 볼 만한 대목입니다.  소여가 그린 터미널의 모습은, 지구 어디에서도 발견될 만한 대중들의 삶의 모습이지요.  이 그림 앞에 서면, "왜 터미널은 어딜가나 다 비슷한 풍경일까?"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딱딱한 의자, 어딘가 불편하고 낯선 대합실...외딴 시외버스 터미널이건, 기차역이건, 유명한 국제선 공항이건...

 

앞 페이지에서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사회 사실주의 작가군에 이름이 올랐다고 해도, 그 작가들의 그림이 모두 사회 사실주의적 그림은 아닙니다. 그들의 삶의 일정시간에 사회성 강한 그림을 그린 시절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사회사실주의 화가군에 포함되는 '화가들'의 실제 그림을 잠깐 소개한 것으로 정리하고,  다음 페이지부터 주요 작가별로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페이지의 세부 정보도 나중에 채우기로 하겠습니다...즐거운 주말....)

 

 

 

 

 

 

 

[Book] The Giving Tree

 

The Giving Tree

 

 

Where the Wild Animals Are 에 관한 글을 몇 편 쓰다보니 Shel Silverstein 의 The Giving Tree (아낌없이 주는 나무) 페이지를 만들고 싶어진다.  쉘 실버스타인 (1930-1999) 역시 Maurice Sendak 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활동하던 작가이며 삽화가이기도 하다.  대개 이 책은 '선물'로 누군가에게 사주기에 알맞은, 누군가로부터 선물받기에 적합한 책이 아닐까?  내가 이 책을 소유해본적은 없지만 내가 성장할때 이 책이 집에 있긴 했었다. 언니나 오빠가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았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갔을때, '제법' 폼을 잡느라고 '영문판'을 찾아서 서점에 서서 보기도 했고.

 

얼마전 ESL 영어수업을 하던중에 무심코 The Giving Tree 책 이야기를 했는데, 중국인 학생 한명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그 책을 모른다는 것이다. 다 알거라고 생각하고 얘기 했는데, 모르는 학생도 있구나.  그래서 도서관에서 이 책과, 디비디를 빌려다 놓았다. 다음 수업중에 함께 책을 읽으며 동영상을 살펴보려고.  유튜브를 검색해보니 쉘 실버스타인이 직접 낭독하고 제작한 동영상이 올라 있었다. (디비디 빌릴 필요도 없었군...)  녹음상태가 썩 좋은 편이 아니지만 저자가 직접 총괄 기획한 동영상이라 그림의 맛이 다르긴 하다. (그래도 ESL 수업에서 듣기 자료로 쓰기에는 적합치 않다.)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목소리 좋은 성우가 아주 잘 읽어낸 자료도 있었다.  그것으로 듣기 수업을 하고, 텍스트를 읽게하고, 직접 학생들이 이야기를 낭독하거나 줄거리 정리를 발표할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Falling Up

 

 

실버스타인의 저서중에 내가 갖고 있는 책은 이 Falling Up 이라는 동시집이다. 가끔 아주 쉬운 동시를 골라서 ESL 수업할때 Chanting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학생들이 금세 시를 외워서 의기양양하게 발표하곤 한다.  언어의 가락과 맛을 잘 살린 시들이 많이 들어있다. (이 역시 선물 받은 책이었다).

 

 

유튜브 자료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 (수업중에 듣기 재료로 쓸만한 것은)

 

 

 

실버스타인이 직접 낭독하고 제작한 작품

 

 

 

몇가지 더 살펴보면, 엽기 버전도 있고...

 

글쓰기와 삽화그리기 모두를 잘 한 작가들을 묶어서 따로 페이지를 만들어볼까 싶기도 하다. :-)  (심심할때...)

 

 

 

Where the wild things are: 작가, Maurice Sendak

http://americanart.textcube.com/131

http://americanart.textcube.com/134

에 이어...

 

작가소개: Maurice Sendak

 

 

 

 

그림동화 Where the Wild Things Are (괴물들이 사는곳)의 이야기와 그림를 만들어낸 사람은 동화작가이면서 삽화가이기도 한 Maurice Bernard Sendak (모리서 버나드 센닥) 입니다. 1928년생이고 2009년 현재 생존하는 작가이므로 올해 81세가 되겠군요.  센닥 자신은 뉴욕의 부르클린 (Brooklyn)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는 폴란드계 유태인입니다. 열두살때 디즈니의 '판타지아'를 보고나서 삽화가 (illustrator)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하지요.  그는 Where the wild things are 라는 출세작을 1963년에 선보였는데, 그 이전까지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주로 다른 사람들이 지은 책의 삽화를 그리면서 습작 기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의 또다른 작품 'In the Night Kitchen (밤에 부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은 1970년에 출판되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년 미키가 하필 나체로 꿈속에서 노니는 장면이 이어지기 때문에 미국의 여러주에서 '금서'지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리노이주, 뉴저지주, 미네소타주, 텍사스주에서 여전히 금서라고 합니다. 도대체 뭘 얼마나 벗었길래 아동 그림책이 선정성이 문제가 되어 금서가 되는걸까요? 

 

 

 

자, 이렇게 '다 벗은' 사내아이가 등장 합니다. 뭐 생식기및 고환이 다 드러납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결국). 이 아이가 이리저리 뛰놀때, 뒷모습이 보일때는 뒤에서 잡히는 고환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어린 남자애 다 벗고 노는것이 왜 문제가 되어서 일부 주에서 금서로 지정을 한 것일까? 이 문제를 잠시 생각해 보았는데, 금서로 지정한 사람들을 비난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너라면 너도 금서로 지정하는데 찬성할래?' 하고 묻는다면, 금서지정에 찬성을 하지는 않을것입니다. 그렇지만 금서지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아이들 백일사진, 돌사진 찍을때, 옛날에 제가 어린 시절에는 남자아이들 다 벗겨놓고 고추 드러내고 찍은 사진 많았습니다. 동네 사진관 앞에 지나가면 꼭 이런 사진 하나가 진열장에 있었습니다. 사내아이들 고추 다 드러내고 노는 것은 예사였고, 여자 목욕탕에 꼬마 아이들이 고추 내밀고 돌아다니기가 예사였습니다.  애 엄마는 자식 데리고 들어와 씻기는 일이지만, 아무튼 남자 고추는 일정 연령까지는 공공장소에서 내 놓기가 예사였습니다.  여자 아이는 안그랬습니다. 백일사진 돌사진에 여자아이 벗겨놓고 찍은거 본적 없죠. 여자아이는 아랫도리 벗고 공공장소에서 노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남자고추는 아무데서나 드러내고 '자랑하듯' 과시하는 지경이고, 여자의 아랫도리는 은폐의 대상이었습니다.  결국 남자는 아무데서나 드러내고, 권력행사하고, 과시하고 이런데 익숙해지고, 여자는 은폐하고 가리고 숨는데 익숙해지지요.  이런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남자아이가 고추 내밀고 노니는 어린이 그림책이 -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충분히 남근중심적인 사회문화를 형성하는데 일조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 고추 드러낸 그림이 문제가 아니라, 하필 남자아이 혼자서만 고추 내밀고 노는것이 '자연스러운' 그런 문화가 문제가 된다고 보는 편입니다.  남자 여자 둘다 벗겨놓고 천국의 아이들처럼 뛰놀게 하던가, 그것이 힘들면 적당히 입혀주던가. (공평하게). 이것이 내가 '금서'로 지정하는데 일부 긍정하는 시각이고, 딱히 금서일 필요까지 없다고 보는 이유는 그림책 자체의 본래 의도가 남근중심에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하하하. 센닥은 최근에 2008년 뉴욕 타임스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이며 동성애 파트너와 50년 이상을 함께 살아왔다는 고백 - 일명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스콜라스틱 DVD에 그의 문제작들의 동영상이 실려 있어서 세밀하게 관찰할수 있었습니다.

 

그의 Where the wild things are 는 1979년에 드라마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오페라나 발레 무대의 배경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도 여러차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Where the wild things are 에 나오는 도깨비들은, 폴란드계 이민자들이었던 그의 친척 아저씨 아줌마들이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이민자들이라 영어가 서툴러서 이상스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그의 이야기책에 응용한 것이라고. (하하하) 제가 이민자 영어 문제에는 유난히 각을 세우고 들여다 보는 편입니다.  전공이 전공이다보니까.  근래에 소개된 영화 Where the Wild Things Are 에 올빼미 두마리가 나옵니다. 올빼미는 그냥 뭐라뭐라 지저귀는 수준이라, 그가 뭐라고 떠드는지 알아들을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올빼미의 친구들은 그 올빼미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알아듣는것 같습니다. '캐롤' 도깨비가, "난 올빼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수가 없어" 하고 투덜대자, 맥스도 고백합니다, "사실은 나도 마찬가지야."  다른 도깨비들을 서로 알아듣는것 같은데...  이 장면에서 나는 소통의 은유를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우리가 '말'을 알아들을때,  그 '말'은 단지 입에서 나오는 '언어적 구조'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고, 그 너머에 뭔가 있다는 것이지요.   (나중에 이 영화 DVD가 나오면, 문제의 이 장면을 학생들에게 틀어주고 이 현상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해보라고 하면 어떨까, 이런 궁리까지 하게 됩니다.)

 

 

 

In the Night Kitchen 에서 작은 요리사들이 미키를 오븐에 구우려고 한 장면은 유태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 (나찌의 유태인 학살)를 풍자한 장면이었다고도 합니다.  최근에 소개된 영화 Where the Wild Things Are (2009) 는 1973년에도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습니다.


 

센닥은 필라델피아의 Rosenbach Museum and Library (http://www.rosenbach.org/home/home.html) 에 그의 작품 대량을 기증한바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가게 되면 이곳도 들러보고 싶어집니다.  세상은 넓고 가보고 싶은 곳은 많군요.

 

(눈치채신 분들도 있을겁니다. 필라델피아는, 삽화가 illustrator 들에게는 메카 같은 곳인것 같습니다.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이 대개 필라델피아에서 성장하여 뉴욕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보여주기도 했고, '삽화가'들은 대개 그들의 그림을 필라델피아로 보냅니다.  필라델피아가 '출판'의 메카였던 시절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Where the Wild Things Are 괴물들이 사는 곳

Where the Wild Things Are

 

 

http://americanart.textcube.com/131  페이지에서 모리스 센닥의 동명 그림이야기책을 영화화한 Where the Wild Things Are 최근판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영화가 기대이상으로 아름다웠는데, 동네 가게에 나가보니 이 영화의 등장에 힘입어 관련 인형들과, 옛날에 이미 만들어진 Scholastic 출판사의 동화 DVD도 판매가 되고 있었다. (스콜라스틱 출판물은 한국에도 꽤 알려져 있다. 특히 자녀의 영어교육을 신경쓰는 부모들이라면 책을 몇권 사모으거나, 이미 집에 몇권 굴러다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인형 하나 10달러, DVD 5달러.  사 놓고 흐뭇. (내가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서 선생질을 한 이후부터, 담뱃값이나마 월급이라도 받게 된 이후부터 가장 살맛나는 것은 십달러나 오달러정도의 책이나 인형 혹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 정도는 큰 고민 안하고 살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복 된 일이로다.)

 

 

맥스 (Max) 인형.  모자 벗을수도 있다. ㅎㅎㅎ

 

 

 

이 DVD에는 이 외에도 센닥 동화 두편이 더 들어있다.

 

 

 

 

 

 

 

동화작가이면서 동시에 동화 삽화가이기도 한 모리스 센닥의 '미술세계'를 간단히 정리해보고 지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시장' 자체가 커서 그런지 몰라도 '일러스트레이션 illustration' 이 하나의 분야로 자리를 잡았고, 특히나 책/잡지/동화책 등의 삽화가들이 자신들의 전문적인 분야를 확보한 경우가 많아보인다. 

 

 

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미국사실주의 화가들

 

 

 

 

 

http://americanart.textcube.com/118 미국 사실주의 계보정리 페이지에서 대략  미국 회화에서의 사실주의를  (1) '사회적 사실주의'와 (2) '지역주의적 사실주의'의 두가지 부류로 나눠서 도표를 그려본 바 있습니다.  미국 회화에서 사회적사실주의 (social realism)를 논할때, 반드시 거론되는 사람이나 단체들로는 Henri (헨라이)를 중심으로 한 "Ash Can (쓰레기통)" 화가들, "The Eight (8인회)"등이 반드시 떠오르게 되는데,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Ash Can 이나 The Eight 멤버들이 조금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미국 사실주의 화풍을 논할때 이 두 그룹은 하나의 동일한 그룹으로 간단히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동일한 그룹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비슷한 구성원들이 비슷한 사회적 안목을 가지고 사회성 있는 작품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Ash Can 학파와 The Eight 구성원을 중심으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화풍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습니다. Ashcan 혹은 Ash Can 이라고 알려진 이 미술그룹을 우리는 Ashcan School 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Robert Henri (로버트 헨라이)를 중심으로 그와 함께 그림 작업을 하거나, 혹은 그에게서 미술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이 헨라이의 영향으로 '사회성'있는 그림을 그리면서 정체성을 만들어 갔기 때문입니다. Henri 의 동료나 제자중에서 애시캔 학파로 알려진 인물들로는 Henri, Glackens, Hopper, Shinn, Sloan, Luks, Bellows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당시 유럽 인상파화법의 영향을 받은 미국인상파 그림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뉴욕 뒷골목의 가난한 사람들, 소외받은 사람들의 풍경을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그러니까 ash can - 쓰레기통 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이겠지요).

 

The Eight (8인회)는 사실 딱 한번, 1908년 뉴욕의 맥베쓰 갤러리 (Macbeth Gallery)에서 여덟명이 합동 전시회를 한것에서 비롯된 명칭입니다. 이 8인회 전시회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1. William Glackens (1870-1938)  윌리암 글래큰스 : http://americanart.textcube.com/202

 2. Robert Henri (1865-1929) 로버트 헨라이 : http://americanart.textcube.com/197

 3. Goerge Luks (1867-1933) 조지 럭스 : http://americanart.textcube.com/278

 4. Everett Shinn (1876-1953) 이브릿 쉰 : http://americanart.textcube.com/272

 5. John French Sloan (1871-1951) 존 프렌치 슬로언 : http://americanart.textcube.com/201

 6. Arthur B. Davies (1862-1928) 아서 데이비스 http://americanart.textcube.com/279

 7. Ernest Lawson (1873-1939) 어니스트 로슨  http://americanart.textcube.com/281

 8. Maurice Prendergast (1859-1924) 모리스 프렌더개스트 : http://americanart.textcube.com/205

 

The Eight Member가 아닌 Ahscan School 멤버였던

  *. George Bellows (1882-1925) 조지 벨로우즈  http://americanart.textcube.com/198

 

이상입니다. 이들중 다수가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삽화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습니다.  특히 The Masses 라는 사회주의 사상이 강한 잡지의 편집이나 삽화에 관여한 화가들이 여럿 있습니다.  위에 올린 이미지는 John French Sloan 이 1914년 6월호 The Masses 표지화로 그린 작품입니다.  1914년 4월 20일에 미국 콜로라도주의 광산에서 광부들의 파업이 있었습니다. '자선가'로 널리 알려진 록펠러 (Rockefeller) 집안이 운영하던 광산이었습니다. 콜로라도 국방수비대가 이들을 공격하여 어린이 11명이 포함된 20여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이 잡지는 이 사건을 표지로 실은 것입니다.  표지 그림이 생경하고 과격해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처참하고 과격했겠지요.  (미국 구경을 하고 돌아간 내 조카아이들의 상상속의 미국사 속에  이런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록펠러는 하늘이 보낸 천사는 아니었겠지요).

 

물론 미국의 사회-사실주의 작가들이 모두 이런 그림을 그렸다고 상상하시면 안됩니다.  이 표지화 작업을 한 존 슬로언 역시 '예술지상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사회성이 담긴 그림을 그리되, 사회적인 이념이 '예술'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니지요. 그래서 과격한 '사회주의'라는 이념으로부터는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한 편입니다. 미국의 대부분의 사회-사실주의 화가들이 이런 식으로 '이데올로기'와는 일정 거리를 유지한 가운데 회화 작업에 몰두했다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들 여덟명의 미술가들중에서 슬로언에 관심이 많지만, 일단 이들의 '대장'격인 Robert Henri 부터 간단히 소개하고 그 뒤를 이을 생각입니다.  헨라이는 작품보다는 그가 이끌었던 애시캔, 8인회 때문에 미국 미술사에 자신의 이름 '석자 (?)'를 박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Henri 는 '헨라이'라고 발음합니다.  Hopper 관련 책에서 읽었는데 그가 자기의 이름을 반드시 '헨라이'로 발음해줄것을 극구 강조했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그러니 그의 희망에 따라서 '헨라이'로 소개합니다.  (제 글의 독자들이 막 - 무척 똑똑해지고 교양이 업그레이드 되는 소리가 들립니다 헤헤헤.  미술 관련 글중에 헨라이 이름을 제대로 표기한 한글 페이지 찾아보기가 힘드실걸요. 헤헤헤)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2층,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걸어놓은 곳이다.

왼쪽 가까이에서부터: Henri, Kent, Luks 의 그림들이 차례대로 보이고

오른쪽 가까이에서부터: Everett Shinn, William Glackens 가 보인다

저 너머에 Benton 의 그림이 있다...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Movie] A Serious Man (2009)

 

http://www.imdb.com/title/tt1019452/

 

 

코언 형제들이 만들었다길래, 대충 어느 정도 수준은 유지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시간 죽이기 차원에서) 본 영화. 좀...지겨웠다.  심각한 것이 귀챦은 요즘 나의 정서상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고 해도 일단 심각하면 지겨워지고만다.  유머도 있고, 위트도 있고,  미국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의 모습도 관찰 할 수 있고 두루두루 흥미로운 것들도 있지만, 대략 지겨운 영화.

 

1967년 배경이라고 하는데, 내가 기분이 나빠진 이유는, 하필 등장하는 물리학과 대학원생 한국인 학생이 낙제를 면하기 위해서 교수 책상에 돈봉투를 올려 놓은것.  돈봉투가 제대로 통하지 않게되자 이번에는 그 한국인 학생 아버지가 교수 집에 찾아와 통사정 반, 공갈 반.  돈 좀 먹어라 제발. 돈먹고 점수좀 올려달라. 돈 안먹으면 내가 널 돈이나 밝히는 교수로 고소해버리겠다.  아니 왜 하필 한국인인거냐구?  그것도 "A student from Korea, from South Korea"라고 아주 강조해서 명시를 하는데,  문득 짜증이 나면서 나 혼자 속으로, '저 코언브라더스 인간들  싸우스코리아 대놓고 무시하는거 같은데...' 이런 욱하는 기분까지. 

 

아무리 한국사람들이 '뇌물'이나 '선물'로 문제해결하려는 성향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도 다 상황이라는 것이 있는것이지...대학원생이 교수 상대로 뇌물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건만. (아니 미국에서 한국인이 교수한테 뇌물주려고 한적이 있었던건가? 나만 모르고 있는건가?)  아무튼,  한편 불괘하고, 한편 '얼마나  널리 알려져있으면 영화에서까지...' 이런 자조적인 기분도 들고.

 

대략 한마디로, 코언 브라더스 니네 혹시 인종주의자들 아니니?

 

영화는 전체적으로, 인생 지지고 볶는것의 연장이니 걍 대충대충 받아들이고 순응하고 살아라...대략. 꽤나 보편적인 주제이긴 하다. 단지 좀 지겨웠을뿐.

 

 

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Movie] Where the Wild Things Are

http://www.imdb.com/title/tt0386117/

 

 

시내 서점에서는 벌써 지난달부터 이 영화의 원작 동화 그림책과 인형들이 전시되고 판매되고 있었고, 사실은 나도 '인형'을 사려고 만지작거리고 서있곤 했었다.  왜 인형을 만지작거리다가 안샀는가하면, 내가 좀 '미친짓'을 하는 것 같아서. (-.-)  하지만, 다음에 시내 나가서 이 영화의 주인공들 인형이 보이면 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가 맘에 들어서.

 

왕이 되어 통치를 잘 하는 것은 쉬운 일이아니고... 왕이 아니라 어떠한 자리라도 리더십을 발휘하고 사람들을 잘 이끄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은 제각각 자기 상념에 잠겨서 사물을 관조하게 되는데, 나 역시 나의 상황을 돌아보며 영화속에서 이러나는 일들을 살폈다.

 

인상적인 장면은,  친구들이 모두 포개어져서 (pile up) 행복한 잠을 자는 것.  서로서로 포개어져서.  옛날에 우리들이 대개 가난하여 한방안에 여섯식구가 모두 포개어 잘때처럼, 그렇게.  지금은, 우리식구들은 각자의 방에서 각자 꿈을 꾸며 잔다.  우리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자던 시절도 있었지. 아이들이 아직 아기였을때. 

 

또한가지 인상적인 장면,  맥스가 과학시간에 '태양이 점차 커져서 결국 태양계의 모든 행성을 다 태워버리고...' 뭐 이런 설명을 듣고 고민에 빠지는데, 나중에 도깨비에게 그 얘기를 해주자 도깨비 캐롤이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날 봐. 내가 이렇게 크지? 저 태양을 봐.  아주 작지. 저렇게 작은 것이 어떻게 우리를 집어삼킬수 있다는 말이니. 걱정하지마."  난 그때 그 도깨비의 말이 참 맘에 들었다.  사실은 나도 어릴때 태양이 지구를 집어삼키고 나는 태양에 타죽을까봐 끙끙 앓았던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누군가 '저렇게 작은 태양이 어떻게 우리를 ...' 하고 설명해줬다면 참 좋았을텐데.

 

 

어린이들은 어린이의 입장에서, 어른들 역시 어른의 입장에서 - 결국 우리 모두 외롭고 쓸쓸한 개별적인 인간들이므로 각자 개별적인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볼 만 하겠다.  기대했던 대로 아름다운 영화였다.  만족스럽다. (음악도).

 

 

 

인형 갖고싶다...

 

 

이어지는 페이지: http://americanart.textcube.com/134  ;  http://americanart.textcube.com/135

[Song] You belong to me, Carla Bruni

 

 


 

 

 


 

2009년 10월 17일 토요일

[Book] How Starbucks Saved My Life

How Starbucks Saved My Life: A Son of Privilege Learns to Live Like Everyone Else

 

 

사람이 사는데 별로 의욕이 없고, 공부도 하기 싫을때, 전공책도 보기 싫을때, 그럴때가 있는데, 사람마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제각각일 것이다.  전에 나는 답답하면 몇시간씩 산책을 다녔다. 현재 나는 상태가 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산책을 나가는 대신에 주로 잠을 자거나, 평소에 안읽던 '진부해 보이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죽인다.'  요즘 나는 시간을 '살아나가는 것'이 아니고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견디기 위해서 그냥 뭔가 하는데, 몸을 움직이기 싫으니까 '눈운동'만 열심히 하는 상황. 책보다 잠이 오면 자고, 잠이 깨면 다시 책을 보고. 

 

찬홍이가 책을 사다달라길래 서점에 가서 The Crucible 이라는, 아서 밀러의 드라마를, 내가 대학교때 읽었던 책을 찾아 들고 그냥 책방에 온김에 어정거리다가 이 책이 눈에 띄어서 집어 들었다.  이거 스타벅스에 가면 매장에 보이던 책인데. 그래서 스타벅스 홍보용 책인가보다고 늘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내가 왜 이 책을 집어든 것일까?  쉽게 읽힐것 같아서, 머리 식히기 좋아보여서, 혹은 스타벅스의 성공 비결이 뭔가 궁금해서...

 

막상 읽어보니 내 예상과 다른 엉뚱한 책이었는데...

 

온종일 읽는 내내, 내 삶과 연결지어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볼수 있었다. 우선, '바닥'으로 수직하강한 한 사나이가 생존하기 위한 노력이 생생하게 전달되었고, 그리고 곁두리로, 스타벅스의 지침도 내게는 의미있었다.  내가 요즘 내 우울감때문에 학교에서 좀 침울하게 행동했고, 내 학생들에게 충분한 교육환경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가령 '내 학생이 나로부터 -  학생으로서 받아야 할 애정이나 존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부족했던 것 같고.  내가 좀 신경을 쓰고 내가 능동적으로 나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개인적인 실패는 개인의 문제이고, 그것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쳐서는 안되는 것이니까.  내가 나 자신을 컨트롤을 잘 해야 하는 것이지.

 

스타벅스의 장점들이 많이 열거되어, 결국 스타벅스 홍보에도 한 몫 했겠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볼 생각은 없다.  이 책에 그려진 스타벅스 매장의 아름다운 면을 나는 내 직장에 도입해야 하고, 내 가정에 도입하면 좋을 것이다. 내 삶은...이 책의 저자처럼, 나의 상실감이나 실패감 같은 것 역시 내가 치유하는 수 밖에.

 

이제, 나도 '앞으로' 나아가야 (move on) 하는것 아닌가.

 

 

 

[Book] 실패의 향연, 최후의 금기어를 논하다

 

 

 

내가 이 책을 집어들은 것은, 내 '실패'를 들여다보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실패'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씨리즈로 실패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실패의 몇가지 유형을 알게 되었고, 내가 현재 당면한 나의 '실패'만을 확대시켜 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도 안다, 내가 이 실패감, 혹은 패배감, 혹은 상실감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이것도 별것 아니란 것까지도, 논리적으로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물이 얕아도 빠져죽을수 있는거고, 논리적으로 아무리 명쾌하게 설명을 할 수 있다해도 감정은 별개의 문제인거다.  이 책에서는 내가 왜 좌절감을 벗어나지 못하는지도 나름 설명을 해준다.  그래서 약간 위로 받았다.

 

사실 나는 차근차근 잘 해나가고 있으며, 내게 닥친 극히 사적인 재앙에도 불구하고 제법 침착하게 내가 계획한 일들을 진행시키고 있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나의 '실패'때문에 내가 얼음처럼 고요해져서 내 일들을 차분하게, 냉정하게 진행시키는 면도 있고.  하지만 나는 현재 전체적으로 '난파선'같은 기분이고,  늘 기침을 한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감기약을 습관적으로 먹고 있고,  늘 기침을 한다.  난 내가 소리내어 우는대신에 기침을 해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 나는 잘 견뎌낼 것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  표면적으로 나는 연봉협상도 잘 해냈고, 내 일들은 순조롭게 진행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나는 그림자처럼 지상을 떠돈다는 기분이다.  나는 일을 잘 해나가고 있는데...모두 안녕한데...나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문학교수가 그가 알고 있는 문화사를 이리저리 엮어서 '실패'를 노래한 책.  읽을만한 책이다. '성공신화'에도 넌더리가 나니까. 

 

아, 어제 본 영화 Bright Star, John Keats 를 그린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올라온 자막, "키츠는 25세로 죽을때까지 자신의 삶을 Failure (실패작)이라고 믿었다."   아, 키이츠도 자신의 삶을 실패작이라고 생각하고 죽었다는데,  난 뭐 내 삶을 실패작이라고 보지는 않는단 말이지. 단지 어떤 부분이 심하게 망가졌다고 인지하는 것이지.  망가진것을 바로잡을수도 없고, 망가진 것을 그대로 봐야 하는 일이, 폐허앞에 서있는것처럼 아득하다.  세월이 지나면 대개 잊혀질것이지.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할것이다. 다음번엔 좀 세련되게...

 

 

[Book] Letters to Sam

Letters to Sam: A Grandfather's Lessons on Love, Loss, and the Gifts of Life

 

집의 책꽂이에 꽂혀 있길래 심심풀이로 집어들었다가, 설득력이 있어서 끝까지 본 책.  목소리는 잔잔하나 울림은 깊다.  이 책이 호소력이 있는 이유는, 저자가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어내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페이소스를 주므로 힘이 있는 것이지.  내가 느끼는 고통에도 페이소스란 것이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은 위로를 받았다.  그가 제안한대로, 때로 사람은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며 흘러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Book] Seedfolks

Seedfolks (Joanna Colter Books)

 

 

4년전에 간단히 읽었던 책인데, 인상적이었다. 석사과정 중이었는데, 머리 식히려고 읽었었다.  그때 생각했었다. 내가 나중에 학사과정이나 석사과정을 가르치게 된다면,  이런 가벼운 책을 읽기 숙제로 내주고 싶다고 (그때 나는 전공책과 아티클에 치여서 정신이 없었지. 그것이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이기는 한데.)   나는, 전공서적이 아닌 일반 서적에서 전공관계된 과제를 부여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편이다. 일반적인 현상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고 설명하고 해법을 찾을수 있도록.  이제 다시 여유를 갖고 찬찬히 살피니 더욱 의미있는 책임을 알겠더라.

 

리뷰과제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중에서 ESL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을 선별하여 진단하고 교육모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책읽기는 쉽지만 스스로 모형을 짜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에 기반한 숙제는 나름 유쾌하지 않을까?

 

무엇이 '미국인'을 구성하는가? 미국인이란 무엇인가?  어울려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요소는 무엇인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살필수 있는 아주 좋은 성인 동화책이라고 할만하다.

 

 

2009년 10월 16일 금요일

[Movie] Bright Star

 

http://www.imdb.com/title/tt0810784/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John Keats 의 최후를 그린 영화, 그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Bright Star 를 보았다. 키츠는 낭만주의 영시인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한 단계 진보한 시인으로 평가되는데, 시에 '감각'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도 그러하고 To Autumn 에서도 그러하고. 영화 보면서 To Autumn 의 감각이 어디서 살아날까 눈여겨 봤었는데, Jane Campion 감독은 키츠의 '애인'의 풍만한 육체를 통해 이를 구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전에 번역해 본 것이 아직 남아있어서 옮겨본다.  비도 오고, 오랫만에 낭만주의 시대의 '왕자'였던 키츠도 영화로 보고, 감기 때문에 만사가 귀챦고, 해서 영화보고 식당에 갔다가 따끈한 정종 한도꾸리 혼자 때리고, 아 감기약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실, 좀더 고운 꽃미남이 키츠 역할을 해주길 바랬지만, 딱히 생각나는 배우는 없었으므로 그럭저럭 패쓰. )

 

 

 

Bright star! would I were steadfast as thou art


 

Bright star! would I were steadfast as thou art—
Not in lone splendour hung aloft the night,
And watching, with eternal lids apart,
Like Nature’s patient sleepless Eremite,
The moving waters at their priest-like task

Of pure ablution round earth’s human shores,
Or gazing on the new soft fallen mask
Of snow upon the mountains and the moors—
No—yet still steadfast, still unchangeable,
Pillow’d upon my fair love’s ripening breast,

To feel for ever its soft fall and swell,
Awake for ever in a sweet unrest,
Still, still to hear her tender-taken breath,
And so live ever—or else swoon to death.


 

John Keats (1795–1821)


빛나는 별이여 내가 너처럼 변함없는 존재라면 좋으리
홀로 빛나면서 밤하늘에 높이 걸려
잠못이루는 자연계의 은둔자 되어
속세의 인간세계 기슭을 정결히 씻어주는

출렁이는 저 바다물결처럼
사제다운 근면함을 가지고
영원히 뜬눈으로 지켜보고자 함이 아니고

또한 쓸쓸한 벌판에 사뿐히 내린
백설의 새 단장을 지켜보고자 하는 것도 아니리
아니, 그래서가 아니고,

보다 더 한결같이, 보다 더 변함없이
내 아름다운 님의 무르익은 젖가슴에 묻히어

영원히 느끼리 그 부드러운 오르내림을
감미로운 설레임 속에 영원히 잠깨어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내 님의 고운 숨결 들으며
영원토록 살리니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숨을 거두고 말리라

2009년 10월 15일 목요일

Man Ray : dvd

Man Ray (Artists of the 20th Century)

 

 

뒤샹의 초상화를 만 레이가 작업한 것이 있어서, 그를 알게 되었는데, 뉴욕 현대미술관에 가니 그의 작품들이 몇 점 눈에 띄어서 그에게 약간 관심이 생겼다. 다다이스트 (dadaist) 작가로 분류되는 예술가. 미국 태생이지만 주로 파리에서 활동했고 그곳에서 인정 받았으며 2차 대전중에 난리를 피해서 LA로 옮겨가 작업을 했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하자 다시 파리로 가서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사망.

 

일단, 그가 남긴 '회화'들은, 분위기가 대체적으로 맘에 든다. 피카소와 같은 큐비즘 계열의 회화들을 남기기도 했으나 그의 회화들은 예각이 두드러지지 않으므로 내가 보기에도 편안한다.  회화 이외의 여러가지 작업들은, 글쎄...분명 예술작업 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예술품을 보는 시선이 무척 고루한 편이라, 튀는 영감은 느껴지지만 낯설고 멀게 느껴진다.

 

가령,

 

갖고 싶은 작품인가 아닌가?  나는 미술관에서 작품들 볼때 이런 질문을 내게 던지곤 한다.  보니까 특이하다. 영감이 느껴진다. 멋있다. 이렇게 느낄수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이거 주면 가질래?" 하고 자문해본다.  이런 자문에 대해서 나 스스로 도리도리질을 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할때가 종종 있다.  좋지만 갖고 싶지는 않은 작품들도 분명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꿈에 볼까 무서운 끔찍스렁 작품들도 있다.  나는 '멋있고 예술적이지만 갖고 싶은 생각은 없는' 작품들을 '미술관 전용' 작품들이라고 부르는 편이다.  만 레이는 주로 '미술관 전용' 혹은 '콜렉터의 창고'에 들어갈만한 작품들을 많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평범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에는 실패 했다는 뜻일것이다.  하지만, 원래 앞서가는 사람은 고독한 법이므로, 내가 알아주지 않는다해서 그의 예술성에 상처를 입는 일은 없을 것이다.  (회화는, 좋았어요 만 레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