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저녁에, 찬홍이 셔츠를 사러 몰에 갔다가 가방을 한개 샀다. 정가가 68달러인데 메이시 회원 할인 20퍼센트 받았다. 13달러쯤 절약. (절약된 13달러는 한국으로 부치는 우편요금으로 쓰면 되겠다.) 월요일 출근길에 학교앞 우체국에 들러서 부쳐야지. 우리 엄니한테.
나는 이 가방이 없는데, 내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것을 보니까 완전 나이롱인가본데 튼튼하고 가벼워보인다. 가볍고 튼튼한것이 우리 엄니한테 적당해보인다.
우리 엄니한테는 소위 일컬어지는 '유명' 가방이 몇 개 있다.
지난 여름에 한국에 가서 엄마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엄니 옷장에 대한 특별 감사를 했는데, 한가지 양상이 파악되었다. 가만보니 엄마에게는 유명하다는 가방이 몇개 보이고, 고급스러운 옷들이 보이는데, 가방은 언니가 사다 나르고 옷은 오빠가 제공하는 것 같았다. 내 동생과 나는 선생질 하는 주제에 엄니에게 이름있는 선물을 하기는 힘들어보인다. (그저 몸으로 재롱떠는것으로 대신하는 수밖에. 내 동생은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는 효자다. 문제는 나다... 난, 노느라고 바쁜중이다.)
우리 엄니는, 그런데,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 (1) 그게 얼마나 비싼것인지 잘 모르거나 (2) 혹은 그따위 허망한 이름따위에 대해서 초연하거나 뭐 그런 입장이다. 그러니까, 가령 내가 엄마의 가방을 보면서 "엄마, 이거 되게 비싼건데, 엄마 이거 누가 사줬어?" 이러고 물으면 "몰라난 그게 뭔지. 정미가 놓고 갔는데..." 이러고 끝이다. 엄마의 옷장을 뒤져서 엄마 옷을 입어보면서 "엄마, 이거 누가 사줬어?" 하고 물으면 "전에 네 오빠가 와서 사줬는데, 난 그냥 맘에 들어서 골랐는데, 비싸더라. 옷값이 왜 그렇게 비싼거냐?" 그러고 마신다.
그리고는 그 비싼 (내가 감히 사입을 엄두도 못내는) 옷을 옷장에 걸어놓고 당신이 하는 일은,
전철역 앞에, 떨이 속옷, 나이롱 꽃무늬 원피쑤 이런거 파는 단골 가게에 드나들며 고쟁이며 민소매 원피스 뭐 이런것을 사다 쌓아놓고 너도 입어라 너도 입어라, 며느리들 딸들한테 선심을 쓰는거다. 이거 싫다고 한마디 했다가는 노인네가 골이 나가지고 사흘을 심술을 떨것이기 때문에 모두들 찍소리 않고 받아다 입는다. (그런데, 엄마가 골라온 나이롱 싸구려 옷이 처음 보기에는 우스워보여도 일단 입으면 이쁘고 편하고 그렇다... 하하하. 심지어 우리 엄니가 억지로 안겨준 여름 반바지 고쟁이는, 그것이 핫핑크 여자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뻐보인다고 지팔이놈이 몇번 입기까지 하였다. 어차피 잠옷이니까. 펑퍼짐하니까, 편한 모양이다.)
우리 엄니가 갖고 있는 그 루*비통 가방. 물론 우리 형부가 사다 드린 것인데, 갈색 사계절용을 처음에 하나 사다드리더니, 나중에는 여름용 희끄무리한것도 또 하나 안겨드렸다. 그런데 그 여름용 희끄무리 한것. 그것이 사단이었다. 그게 그 대단하다는 유명세와 달리 지퍼가 말썽이었다. (가방살때 지퍼 확인해야지 지퍼 불량이면 곤란하다) 지퍼가 맞물리고, 벌어지고 속을 썩인 모양이다. 엄니가 '이노무 가방 못쓰겄다 갖다 버리던지!' 한마디 하니까, 선물한 사람이 얼마나 무안한가. 그래서 언니가 그걸 그 잘난 루*비통 매장에 직접 갖고 가서 애프터서비스를 받았다고 한다. (가서 지퍼를 고쳐온 모양이다.) 그런데, 아니 그 대단하시다는 루*비통 가방은 애프터서비스가 무색하게도 지퍼가 여전히 말썽이었던거다. 지퍼 끝부분이 벌어지는거다.
에라이...우리 엄니 성격에 뭔가 고장나면 고치거나 내다버리거나 둘중에 하나다.
그런데 그게 비싼 물건이라니까, 게다가 사위가 사준건데 버릴수는 없고
본인 스스로 고치는 수 밖에.
글쎄 그 멋쟁이들이나 들고다닌다는 희끄무리한 루*비통 가방의 지퍼부분을
그냥, 이불꿰맬때 쓰는 튼튼하고 굵은 무명실, 그 무명실로 이리저리 휘감아서 꿰매버린거다. 지퍼가 벌어지지 않게 아주 튼튼하게 감쳐놨다. 와...내가 그거 봤는데 그거 완전 예술이더라. 천하의 루*비통 가방을 무명실로 막 꿰맨 여인! 지못미 루이비통. (ㅠ.ㅠ) 우리는 루이비통의 수난을 애도했고, 엄마의 폭정에 경악했는데, 우리가 경악을 하건 지못미 노래를 부르건 말건, 엄니는 이불 꿰매는 실로 이리저리 꿰맨 그 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돌아다니신다.
아, 그런데 저 나이롱 가방. 가볍고 튼튼해보이는 저 나이롱 가방을 산 이유는. 저것이 엄니에게 꼭 필요해서이다. 지난 여름에 내가 보니 엄니가 딱 저거만한 가방을 갖고 계시는데, 아파트에 장이 섰을때 들어온 가방상인에게서 몇해전에 산것이라고 한다. 그냥 나이롱 가방. 어깨에 매는것. 지갑이나 수첩, 양산 이런 자질구레한것 담기에 적당한. 그런데 그것이 다 닳아서 무늬가 지워지고 끈이 나달나달했다. 엄니는 동네 산책다니고 그럴때, 장보러 다닐때, 그걸 어깨서 사선으로 매고 다니면 편하다고 했다. (노인분들께는 가볍고 편안한 것이 좋다.) 엄니의 해진 가방이 딱해서 내가 그 비슷한 것으로 남대문 시장에서 한개 사다드렸는데, 그걸 사드리고나서도 영 개운치가 않았다. 내 맘에 안들어서.
그런데, 어제 이 가방을 보니, 딱 우리 엄니한테 맞춤이더라. 가볍고, 색깔 화사하고. 동네 치과 가고, 침맞으러 가고, 호수공원 산책하고, 장보러 가고 그럴때 어깨에 사선으로 둘러매고 나가면 가볍고 편안하실 것이다.
(이거라도 사서 보내야, 기분이 좋아서 사위한테 계란후라이라도 하나 더 해주시겄지... 이거 뇌물이다.)
저두 이거 엄마 사드렸는데 좋아하세요.. 무늬가 다른건데요.. 가볍고 많이 들어가고 어깨에 척 가로질러 매고 다니니 손이 자유로와 좋으시대요..울 엄니도 이제 세골 할머니 다 되셔가지구요.. 가방에 별게 다들었있거든요..ㅎㅎ..
답글삭제보내셔. 내가 잘 전달해드리지.
답글삭제@사과씨 - 2010/09/12 23:08
답글삭제사과님하고 저하고 가방 보는 시각이 비슷한것 같죠? 카메라 가방도 그렇고... :)
엄마 가방 하나 사니까, 나도 한개 갖고 싶은거 있죠...까망색으루다가. (검정 가방이 몇개 있어서 참는중.)
@King - 2010/09/13 13:19
답글삭제응. 오늘 아침에 우체국에서 부쳤지
우체국에 갔더니 소포용 포장봉투 예쁜것이 있어서, 아주 예쁜 봉지에 담아서 보내드렸으니까. 좋아하실거야.
잘 해보셔~ (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