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내가 윤동주 시인을 발견 한 것은 중학교 1학년 어느 가을날의 일이다.
나는 어릴때부터 노래 가사나 시를 혼자서 외우는 것을 좋아했다. 뭔가 좋은 시나 노래를 발견하면 공책에 받아 적고, 다시 예쁜 공책에 정리하고, 외우고 그랬다. 그것이 내 취미 같은거였다. 가을 이맘때였나, 어느날 청소하다가 3학년 교실 복도를 지나치다가 복도에 걸린 시화를 발견했는데, 거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이런 시화가 걸려있었다. 서시. 윤동주. 그 시가 하도 아름다워서 청소하다 말고 공책에 그걸 베껴 적었다.
나중에 동네 책방에서 윤동주 시집을 발견했다. 우선 나는 그 '서시'부터 찾아 보았는데, 역시 맨 앞에 윤동주의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사진속의 윤동주는 참 잘생긴 '오빠'였다. 그 이래로, 내가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이 정해졌다. 윤동주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 곱상하고 착하게 생긴 사람. 섬세해 보이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 안성기 아저씨도 비슷한 분위기로 보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윤동주 시집도 샀고, 증보판 윤동주 평전도 함께 실린 시집도 사고 그랬다. 나는 평생 끌고 다니던 그 책들마저 지난번에 이사할때 그냥 남의 손에 넘기고 말았다. 나의 사랑하는 시인 소설가들이 내 곁에서 사라졌다. 하는수 없지. 인생 그런것이지.
윤동주의 시 중에서 <팔복>. 어릴때는 내가 마태가 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므로, 이 시를 볼때마다 '시가 네모 반듯하게 생겼다'는 생각만 하고 지나치곤 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요즘 나는 주문을 외듯 이 시를 혼자 중얼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길을 걸을때나 운전을 할때나 혼자 이 시를 생각한다.
윤동주 오빠가, 이 시를 적을때, 정말 슬펐나부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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