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홍이네 학교에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다녀오는데,
길 중간쯤에 숲으로 가는 오솔길이 있다. 이 오솔길에 들어서면 요술같은 일이 벌어진다.
시야가 확 트이면서, 비밀의 화원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비밀의 화원'은 아니다.
시에서 관리하는 공원인데 (르윈스빌 파크) 공원 부지의 일부를 개인 농장으로 분양을 해주었다. 한국의 주말농장, 혹은 아파트 근처의 공지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텃밭을 떠올리면 된다. 사람들이 대략 가로세로 10미터쯤 되는 땅을 임대하여 각자 마음껏 농사를 짓거나 꽃을 가꾸는 것이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50구역 정도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곳을 지난주에 우연히 발견했는데 (오솔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여 기웃거리며 갔다가 발견했다) 오늘은 산책 나가면서 일부러 내 미니카메라를 가지고 나섰다. 사진을 찍어 오려고.
사진을 찍다가 밭에서 일하는 부부를 만나서 이 밭을 어떻게 신청하는지 얼마를 내는지 뭐 그런 것들을 물어보았다. 내또래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상세하게 내가 묻는 것을 가르쳐주었고, 남편되시는 아저씨는 사람좋게 웃고 서 있다가 불쑥, "We need help... Would you work with us?" 하고 제안을 한다. 자신들이 일할때 도와주면 밭에서 나오는 야채를 나눠주겠다고. 하하하. 기꺼이, 내가 원하는 바 였다. 나 혼자 농사지을 엄두는 안나고, 그냥 아무때나 나와서 일을 거들어주는 일은 즐겁게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게다가 답례로 야채라도 얻는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고..
아마도 그 부부도, 그냥 밭을 누군가와 함께 일구는 그 재미 자체를 나와 함께 나누고 싶은 모양이었다. 부부는 프랑스계 미국인들. 내 액센트에서 프랑스 사람들의 액센트가 들린다고 내게 프랑스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프랑스 액센트가 아니라 '외국인 액센트'이겠지. 어딘가 원어민이 아니므로 공유하는 외국인들의 액센트.
아무튼 그 인품좋은 부부로부터 '농사 짓는 조력자'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아서 기분이 좋다.
내일부터는 저녁 산책 나갈때, 아예 작업용 장갑을 끼고, 그리 가던지.
하느님이 내게 노동 할 땅과, 친구까지 주시다.
이 아름다운 가을에.

각자 자신의 텃밭에 울타리를 두르고 출입문을 만들거나 문패를 달기도

울라리 없이 개방해놓고 의자를 갖다 놓은 곳도

일본식 문과 울타리를 해 놓은 곳도. (어쩐지 주인이 일본계가 아닐까.)
뉴욕에 살때 근처에 이런게 있었어요. 빽빽한 그 집들 사이에 그런 공간이 있는게 좀 신기하기도 했는데.. 몇몇 한국노인분들이 야채를 키웠어요.. 한국 야채들.. 근데 원래 그 밭에 나는 걸로 영리를 취할수 없게 되어있는데 그분들이 장사를 해서 믄제가 되어가지고 철수 당하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근데 여긴 참 이쁘네요..
답글삭제이제 농사까지 지으시는 건가요..^^..
저야 깻잎 화분 달랑 두개 키우면서도 배우는게 많아요.. 마음을 줘야 깻잎도 잘 자라더라구요..
@사과씨 - 2010/09/10 10:02
답글삭제저는, 원래 게을러서 농사 못 지어요. 농사를 지으려면 근면하고 부지런해야.
13년전에 저 혼자 아파트 근처 밭한뙈기 얻어서 농사지어본 적 있는데, 밭갈고 씨뿌리고 그것들 자라서 꽃피고 열매맺고, 거기까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나가서 농사짓는 재미에 살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한바퀴 돌고 나니까 태만해지면서, 나중에는 가을 서리 내릴때 한번 나가서 서리꽃 핀것 보고 돌아온 정도 였어요. 작물은 '야생식물'로 변하고, 잡초 우거지고, 치커리 쌈 해먹으려고 키운것은 야생으로 둔갑하여 치커리꽃이 활짝 활짝...
그래서 지금도 야생 치커리 꽃을 보면 특히 반갑죠. (지난달 걷기 페이지에 걸려있던 파란 꽃.)
그래서 알았어요. 내가 씨뿌리고 경작하다가, 막판에 도망가는 인종이라는 것을. 농부는 끝까지 땅을 지키고, 겨울에도 땅을 돌봐야 하거든요.
저는 그냥 저녁에 마실 가듯 나가서 장갑끼고 잡초 뽑고 땅 고르기 하고 그러는거나 돕다가 올까 해요. 그냥, 후덕한 친구 만나는 기분으로 나가고 싶어요. 기분 내킬때만. 뭐 밭에서 나오는 경작물 얻어 가질 생각도 별로 없고... 그냥 땅냄새 맡는것 자체가 복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