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은 더블클릭하면 커집니다
The Mississippi (미시시피강, 1925)
John Stuart Curry (1897-1946)
Tempera on canvas mounted on panel
Saint Louis Art Museum
2010년 6월 4일 RedFox 촬영
http://americanart.textcube.com/241
http://americanart.textcube.com/254
존 스튜어트 커리는 (http://americanart.textcube.com/254) 페이지에 소개된 바 대로 미국의 중서부 (Midwest) 지역을 대표할만한 세명의 '지역주의 화가'중 한 명이었다. 세인트루이스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발견했을때, 나는 그제서야 커리의 '정수'가 될만한 작품 앞에 섰다는 느낌에 눈물이 핑 돌았다. 화집이나 인터넷에 많이 떠도는 이 그림을 나는 진정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이 그림에 애착을 갖고, 내 눈으로 보고 싶어서 안달했던 이유는, 이 그림에서 커리의 세계관을 확인 할 수 있을것 같아서였다. 일단, 이 그림에서는 미국의 중서부를 가로지르는 젖줄과도 같은 미시시피강. 그리고 홍수로 강이 넘쳐서 집이 물에 잠긴 상황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런데, 이런 광경을 우리는 어디선가에서 본 적이 있지 아니한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2005년 미국의 '깊은 남부 Deep South' 로 일컬어지는 루이지애나를 강타했을때, 루이지애나 뿐 아니라 인근의 알라바마와 미시시피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그해 여름 나는 플로리다에 있었고, 나는 비교적 안전한 북부 내륙에 있어서 태풍을 창밖으로 태평하게 구경하는 처지였다. 내가 텔레비전을 보거나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때, 남부의 사람들은 길게 행렬을 지어 북으로 피난을 왔고, 심지어 내가 살던 텔러허씨 (Tallahassee) 시의 호텔과 여관도 피난민으로 북적였었다.
당시 루이지애나에서는 바로 위의 그림과 같은 풍경이 실제로 생생하게 연출되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시앤앤의 애송이 앵커였던 앤더스 쿠퍼가 현장에 투입되어 보도를 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어느 의원이 "적십자사에서도 구호품을 보내왔고, 아무개 인사도 구호품을 보내왔고, 아무개 의원이 방문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자 앤더슨 쿠퍼가 벌컥 화를 냈다, [지금 사람이 물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고, 사람의 시체가 물에 떠 돌아다니는데 당신들 정치인들은 지금 누가 방문을 했다는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는거냐? 지금 정신이 있는거냐!] 뭐 이런 요지였었다. 앤더슨 쿠퍼는 바로 그 발언으로 우리들에게 강하게 기억되었고, 그후에 메인 앵커자리로 가게 되었었다. 아, 앤더슨 쿠퍼가 온종일 보여준 남부의 태풍 참상은, 너무 가슴이 아파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었다. 바로, 이 그림과 같은 장면이 온종일, 며칠간, 몇주간 계속 되었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돈없는 흑인들이었고, 이들은 차가 없어서 피난도 가지 못한채 그자리에서 '절망'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었다. 도대체 이 수퍼 강대국 미국에서 1925년에 그려진 그림과 똑같은 풍경이 2005년에도 (80년이 지났다구...)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역시 주연은 흑인들이었다. 흑인은, 다른 말로 소외된, 가난한, 변두리 힘없는 사람들이다. 이쯤되면, 존 스튜어트 커리의 이 한장의 그림이 '예언적'이기까지 하다는 느낌이 들고 마는 것이다.
우리들은 시인(詩人)을 예언가 (prophet)이라고 일컫는다. 시인뿐만이 아니다. 미술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은 seer (바라보는자)이고 그리고 예언가이기도 하다. 성찰하는자이고, 깨닫는자이며, 제시하는 자이기도 하다. 때로 이들은 자신이 예언가인줄도 모르고 예언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미술관을 서성이며 그림이나 작품 앞에서 보내는 시간, 그 시간에 우리는 미술가 혹은 미술품과 만나는 것만이 아니라, 작품 너머의 보편적 질서에 다가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2010년 9월 26일 RedFox
전 수해를 몇번 겪어봤드래서 집에 물이 차오르면 심정이 얼마나 막막해지는지.. 조금은 알것 같아요.. 물론 생명의 위협을 당할 정도는 아니었으니 저런 절박함은 아니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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