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를 찬홍이를 데리고 지냈다.
며칠전부터 열이 나서 뭘 제대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제 퇴근 무렵에 후다닥 장을 봐다가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놓고는 새벽에 일어나 부시럭부시럭 메를 짓고 토란탕을 끓이고, 고기를 굽고 그랬다.
한편으로는, 나한테 물려진 내 제사, 내가 내식대로 지내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이런 배포도 있고.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내가 내 책임은 다 할것이니~ 하는 배짱도 있고. (하...참말로 조상님들이 애로가 많으시다. 하하하.)

내가 설이나 추석 명절에 차례를 지내고, 제사를 지낼때, 제사 장볼때 빠지지 않는 것은, 캔맥주 아주 비싸고 특별한 것으로 하나. 진열장에서 무조건 비싼 것으로 고른다.
이 맥주는, 나이 마흔에 돌아가신 내 시엄씨 몫이다.
나이 마흔이 돌아가셨으니, 내가 그이를 뵈었을 턱이 없다.
혹시 길에서 모르는 사람으로 지나쳤던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와 남편은 어린 시절에 서로 모르는 채로 몇년간 한동네에서 산 적이 있었으므로, 혹시 모르는채로 서로 스치고 지난적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처음에, 시댁 친척 어르신들이 나를 종년 부리듯이 들볶을때, 스물 몇살 어린 마음에 모든것이 야속하고 원망스럽고 그랬는데 그때 내가 상상한것 ---> 나도 죽어라 죽어라 고생만 하다가 나이 마흔에 암에 걸려 돌아가셨다는 내 시엄씨처럼 이 집 식구들때문에 마흔도 안되어 달달 들볶여 홧병에 걸려서 죽고 말 것이다. 하하하. 아, 나는 생존하기 위해서 전투적으로 살아왔다. 하하.
내가 어느해 마흔을 넘기고 살아 있었을때, 나는 안도 했다. 좋았어. 난 버텨서 살아 남았다구! 헤헤헤. 시엄씨가 나를 안죽게 돌봤나보다. 시엄씨 땡큐!
그래서 차례나 제사때면 나는 시엄씨가 평소에 좋아하셨다던 맥주를 특별한 것으로 사는 것으로 나의 임무를 다 했다는 포만감에 젖고 만다. 어쨌거나, 나는 시엄씨 드리려고 맥주를 샀단 말이지. 내가 아니면 누가 우리 시엄씨 맥주를 사 드리겠냐구.
찬홍이 녀석은 한시까지 숙제하다가 자러 갔으니 내가 새벽부터 깨워서 심부름을 시킬수도 없고, 혼자서 집안 치우고 돌아다니면서 상 차리면서 끓이고 볶으면서 뱅뱅돌면서 차례상을 차렸다. 곁에서 심부름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재미가 없었다. 왕땡이만 발치에서 고기 냄새 맡고 걸리적거릴뿐.
나는 내가 살아 생전에는 여태까지 해 왔던 방식으로, 한국 전통대로 때가 되면 차례를 지내고 제사를 지낼 것이다. 나는 어릴때부터 제사 많은 집 외며느리였던 우리 엄마가 명절때, 제사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컸고, 나 역시 명절때면 추운 부엌에 웅크리고 엄마를 도와야 했으므로 명절의 기억이 유쾌할것이 없다. 지겨운 명절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당하고 사는 것을 봤으면 좀 깨달았어야 했는데, 멍청하게도 제사 많은 집 맏며느리가 되고 말았다. (천치같으니라고). 역시나 지겨운 명절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내가 마흔이나 채울까 하는 불안감까지. 하지만 나는 아무튼 여러가지 크고 작은 인생의 전쟁들을 치르며 생존했고, 현재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명절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 닥치면 하면 되는것이지.. (백전노장의 기개라고나 할까.) 닥치면 한다!
오늘 혼자서 박씨 문중의 조상들의 차례상을 차리다 보니, 문득 박씨 문중의 조상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글쎄 혼령들이 차례상에 오시는지 안오시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나는 naturalist 이고 혼령이 있거나 없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상을 차리면서 생각을 해 보는 것이지. 세상에 나같은 사람이 차리는 이 정성도 없는 차례상에 와 주신다니 말이다.
심수봉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고 노래불렀지만, 사실은, 남자는 항구이고 여자가 배인 것이다. 침팬지무리중에서 암놈은 때가 되면 무리를 이탈해서 다른 곳으로 간다. 제가 살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라서 여자가 시집을 '간다.' 여자가 제 터전을 떠나서 새로운 터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항상 그자리에 있는 것이 남자라는 존재들이다. 나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 암놈 침팬지처럼 박씨 문중에 머물면서 그 문중의 조상들의 차례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보니 내가 박씨 문중의 은혜를 크게 입었다.
우리 친정아부지가 엄청 잘 나신 분이었다. 우리 집의 황제였고, 시골 문중의 영웅이었다. 참 인물도 잘나고 맨주먹으로 많이 이뤄내신 분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내가 유학가고 싶다고 했을때 돈 대줄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씀하셨다. 나는 원망은 안하지만 가슴에는 그것이 한으로 쌓였다.
가진것이라고는 산동네 오막살이의 오글오글한 가족. 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남편은 나를 인생의 파트너로 영입한 후에 몇년 착실히 고생을 시켰다. 하지만, 그 잘나신 우리 친정아부지도 감히 꿈도 못 꿨던 나의 유학 문제를 남편이 해결해주었다. 나는 훌륭한 부모님과 가족덕분에 잘 살아왔지만, 아무튼 나를 박사로 만들어준것은 남편이다. 그러니 내가 박씨 문중에서 받은 은혜가 크다. 요즘은 길거리에 널리고 깔린게 박사고 유학생이고 그렇다. 그것이 대단히 특별할 것도 없는 시대이다. 하지만 내게는 유학이나 학위가 내 일생의 꿈이었다. 나는 일생의 꿈을 이룬 극소수의 행운아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내 꿈이 기껏 거기까지였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 생전에 차례는 내 손으로 지낼것이다.
차례 지내면서 한국에 전화를 걸어서 지금 뭐 하고 있다고 생중계를 해 주었다.
왕땡이는 고기가 먹고 싶어서 멍멍
차례지내고 찬홍이는 서둘러 학교로 가고
나는 시엄씨 몫의 맥주를 음복하면서...
이제 상 치우고 학교에 간다.




저희 친정에서 제사드리고 차례지낼때 외할아버지 몫으론 꼭 다른 술을 드리곤 했는데... 생전에 좋아하셔서 늘 말씀하셨대요.. 내 젯상엔 꼭 그 술 올리라고..^^
답글삭제찬홍군도 왕눈이도 의젓하네요..
말씀은 경쾌하게 해주시는데 왜 제 마음이 이렇게 먹먹한지...암것도 안해도 누가 뭐라고도 안하고, 누가 뭐라 해도 들은척 안하는 막내며느리 가슴이 왜 이렇게 무직해질까요?
답글삭제@사과씨 - 2010/09/22 23:25
답글삭제저는 지금부터 애들을 세뇌작업을 하는데,
나 죽으면 화장해서 플로리다 바다에 뿌리고,
제사는 꼭 지내야 한다.
제삿상에는 온갖 과일을 잔뜩 늘어놓거라.
딴거 지지고 볶고 할 것 없이 그냥 과일을 종류별로 올려놓고 '엄마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이야기를 나눈후에 먹어도 좋다!
종교가 뭐건, 어떤 이데올로기를 갖고 살건간에, 저는 아이들에게 내 제사를 반드시 챙기라고 강조하는데, 그게 나 먹자는게 아니라, 제사때라도 식구들이 모여서 과일이라도 나눠 먹으라고 그러는거지요뭐. 절 안해도 좋고, 촛불 향불 이런거 안피워도 좋고, 아무튼 그날 모여서 가족간의 유대를 단단히 하라 이거죠...
내 제삿상은 '과일'입니다. 하하.
@이미순 - 2010/09/23 21:45
답글삭제우리 언니가 막내며느리이고 시댁이 부산이라서 서울 살면서 시댁 식구와 부대낄 일도 없고, 원래 제사가 없는 집이라서 어쩌다 명절에 시댁에 가도 제사 차릴 걱정도 없고 온 가족이 모여서 '싸우나' 이런거 즐기고 놀다가 온댑니다.
나는 명절에 친정에 가 본적이 없고, 족히 이박삼일 부엌에서 썩었는데 말이지요. 언니 팔자가 부러웠죠.
그래서 내가 팔자가 왜 이모양인가 한 십년 한탄을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언니에게는 언니의 인생이 있는거고, 내게는 내 인생이 있는거고. 시집살이 석삼년 (삼삼은 구) - 대충 십년 지나니까, 세상에 겁나는 일이 별로 없어요. 세상에서 겪을 모든것을 시집식구들과 부대끼면서 배웠다고 하면, 그것도 공부인 셈이지요.
가령 미국에서 살면서 철딱서니 없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눈앞에서 까불때 -- 저런 인종, 저기만 있는거 아니지. 저런 인간들,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겠지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무슨 일이 닥쳐도, 다 연습게임 한번 해 본것들이더라구요. 억울한일 당해도 처리할줄 알고, 힘들때 대처방법도 알고, 그걸 다 인생의 고난에서 연습게임으로 배운거라고 생각하니까, 뭐 손해 본게 없는거라.
스파이더맨에서 '힘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고 역설했지만, 반대로 책임에는 그만큼의 권능도 따라주는거라, 이제는 가난한집 맏며느리 자리가 억울하지 않아요. 자신의 책임이나 고난만큼 사람이 성장할수 있다는 측면에 눈이 떠졌으니까요.
막내며느리는 막내로서의 기쁨을 누리면 되고, 맏며느리는 맏며느리로서의 책임을 누리면 되는 일이지요. 각자 다른 역할에서 인생에 눈을 뜨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P 씨가 전화질로 '나도 아사히 맥주 한 캔 사먹었다'고 해서, 그제서야 '고것이 아사히 맥주여?' 했다는거죠. 난 비싼 맥주 사면서 그 맥주 이름도 기억을 못해요... 그냥 제일 비싼것 샀다는 것 외엔.
답글삭제그 아사히 맥주가 잘 볶은 커피같이 고소하고 맛있다고 하니...오늘 퇴근길에 아사히 맥주 차가운거 하나 사다가, 먹어볼까 해요.
@RedFox - 2010/09/24 00:19
답글삭제이글 읽고 저도 바람이 불어서 어제 오바마 맥주 한캔 까서 홀짝대면 먹는데 두 모금에 벌써 효과(?)가 나서리..ㅋㅋㅋ 반캔은 넘게 먹었는데 아침에 힘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