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4일 토요일

그리워서, 꽃물

 

 

 

며칠전, 저녁에 가만히 앉아있는데 코피가 쏟아진 적이 있다.

그냥 뭔가 흘러나와서 콧물인줄 알고 쓱 문질렀는데, 코피가 손에 그렁하게 묻어났다.

그리고나서도 그 선연한 붉은 빛이 조금 더 흐르다 저절로 멈췄다.

나는 코피가 평생에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안 나는 사람이라

그 코피를 신기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당장 그 다음날, 퇴근길에 찬홍이하고 '외갓집'이라는 '무제한 돌판구이 고기' 집에 가서 차돌백이만 몇판을 구워먹었다. 기운이 없다 싶을땐, 스테이크를 썰어주시던가, 불갈비를 때리던가.  뭐 그러는 식이다.

지금은 어지럽지도 않고, 좋다.

 

그런데 그 외갓집이라는 고깃집 마당에 철늦은 봉숭아가 몇그루 있길래, 내가 잎사귀며 꽃잎을 좀 따왔다.  며칠 냉장고에 넣어서 시들게 내버려두다가, 어젯밤에 (백반이 없어서) 소금을 넣고 봉숭아를 칼 끝으로 쿵쿵 짓 찧었다. 그리고 열손가락에 봉숭아를 칭칭 묶고 잤다.  내 평생에 열손가락에 봉숭아 들이기는 처음이다.

 

아침 기온이 쌀쌀하다.

옛날에 이맘때 시골집에 가면 봉숭아 분꽃 이런 여름 꽃들이 기운을 잃고 높아져가는 하늘 아래서 쓸쓸하게 서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할머니가 보고싶다. 아버지가 보고싶다. 그래서 열손가락에 할아버지의 봉숭아 꽃물을 들이고 앉아있다. 손에 아직도 봉숭아 꽃 냄새가 남아있다. 이 꽃물이 다 지워지기 전에 첫눈이 올것이라고 상상해본다.

 

 

댓글 3개:

  1. 카르카시 기타교본...



    추억속으로 이끄는 끄나풀인가...? !

    ***

    봉숭아 물들이기를 아는 세대가 우리세대가 마지막인가 했더니...

    10여년 아래까지 이어진다니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님은 자신이 속한 세대보다는 윗세대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레드폭스님이 피터팬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는데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미소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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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미소영 - 2010/09/05 06:11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시골에서 상경을 하긴 했으나, 해마다 방학이면 전통적인 집성촌 (씨족부락)에서 일가친척들이 오글오글한 속에서 성장했고, 동네 어르신들중에는 까마득히 어린 저한테 말도 놓지 못하고 '애기씨'라고 부르는가하면, 어른께도 '조카님'하고 부르기도 하는 상황속에서 성장한 결과, 나이 위아래 열다섯살 정도 까지는 공감대가 이뤄지는 편입니다. 가르치는 일이 직업이다보니 자식 세대 학생들과도 소통이 되는 편이고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람들하고 '친구'가 되고 공감을 하는 일이 편안합니다. 저보다 열살쯤 많은 '큰언니' 같은 분들이 특히 저하고 대화하는것을 좋아하십니다. 귀엽게 생긴게 말은 애늙은이같은 소리만 골라서 한다고, 귀엽대요, 언니들이. 하하하.





    소설책을 통해서 익힌 것이지만, 팔도 사투리도 장난삼아 엮을수 있고, 시골과 도시에서 비슷한 만큼의 시간을 보냈으므로 도시나 시골 사람과도 대화가 통하고요. 그래서 사람들하고 대화가 편안합니다. (단 성격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고요. ^^ ) 딱 장돌뱅이 기질인데, 장거리에서 해바라기 하면서 사람들과 두런거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래서 소크라테스 아저씨가 저의 우상입니다. 닿기 힘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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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ㅎㅎㅎ

    미소영이 지어준 아내 닉네임이 ...

    .

    .

    .

    .

    '크산테페' 입니다. ㅋㅋㅋ

    [미소영 셀폰 번호 1 =911 2= 크산테페]

    [아내 셀폰 번호 1=역시 911 2= 앙마]

    생각같아서는 1번으로 하고프나 그건 폰컴파니 reserve라나 뭐라해서무리...ㅠㅠ



    뱀발 : 아마도 '크산테페'에게는 '소크라테스' 아자씨(^*^)가 '앙마'였으리라고 생각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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