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31일 화요일

[Walking] Review, August 2010

2010년 8월은, 내 생애에서 '기록적인' 기간이었다고 할 만하다. 매일 거르지 않고 '운동'을 했다는 점에서. :)

 

내 일생을 따라다니는 '낙인'같은 트라우마가 몇가지 있다면, 그 중에 한가지는 우리 아버지가 내 가슴에 찍어놓은 낙인이다: "의지박약이고 뭣 한가지 끈기있게 하는 것이 없는 아이."

 

물론, 우리 아버지가 내내 나를 쓸모없는 자식으로 경멸하며 지냈다는 것은 아니다. 원래 우리 아버지는 자식이 잘하는 것에 대한 칭찬은 인색했고, 오로지 문제점만 가지고 지적하고 꾸중하고 그런 스타일이었다.  야단을 안치면 그건 칭찬이다.  아버지는 어떤 면에서 나의 저력을 놀라워했을지도 모르고, 만만치 않은 자식임을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말로 표현을 안 했을뿐.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서로 건널수 없는 오해의 골이 깊었을수도 있다.  :) 뭐, 내가 돌아봐도 내가 시작했다가 집어치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고, 그런면에서 나는 의지박약처럼 보였다. 내가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 세상을 전전하면서 거친 직장도 참 여러가지이고 다양하고, 많다. 대학졸업한 해에 내가 입사했다가 퇴사한 기록만도 3월 입사 - 오월 다른 회사에 입사 - 7월 다른 회사에 입사 - 9월 다른 회사에 입사. 돌아보니 3-5-7-9. 2개월마다 직장을 갈아치웠다. 모두 사업 분야가 다른 회사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 한가지는 - 모두 영어 잘하는 직원이 필요했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대체로 나의 고용주들은 '일 잘하게 생겨서 잘 가르쳐놨더니 나가버린다'고 섭섭해 했다. 나로서는 한 두달 재미있게 일을 배우고나면, 나머지가 지루하게 여겨졌다. 그날이 그날같은 일상이 지루해지고, 비전이 안보인다 싶으면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일거리를 찾았다. 일을 배우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지루한 일상은 '지옥'같이 여겨졌다.

 

그래서, 직장을 이리저리 전전하면서 나는 어느정도 우리 아버지의 '낙인'을 수긍했을것이다.

 "의지 박약에 끈기 없는 인간."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회사 이력은 2년. 그 후에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을때, 한 학교에서 3년 일한것이 가장 긴 이력이다.  그러고보면, 아무래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이 가장 내 취향과 적성에 맞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학교에서 3년이상 버틸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이 계약제 시간강사 일이어서 일주일에 정해진 시간만 나가서 일하면 되고, 보수가 좋았으며, 아무도 나를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잡지사 기자나 리포터, 혹은 시간강사등, 내가 독자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남이 내 일에 필요이상 간섭하지 않는 분야에서 나는 싫증을 덜 냈다.  내게 가장 적응하기 힘든 곳은 정시 출퇴근을 해야 하는 회사.  무조건 책상을 지켜야 하는 곳. 그런 곳에서는 숨이 막혀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무튼, 온갖 종류의 직장을 전전하고 짧게는 두달에서 길어봤자 3년을 채우고 마는 내 성질머리를 보건대, 나는 정말 의지박약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그런 사람으로 대충 정리해 두었었다.

 

내가 이런 나에 대한 '정리'를 수정하리라고 마음 먹은 것은,

내가 내 공부를 모두 마쳤을 때 였다.

나는 가방끈이 길다. 제도권에서 가장 최고 학력이라는 관문까지 모두 마쳤다.

내가 내 최종 학위를 받았을때,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의지 박약이 아니야. 의지박약이었다면 그 힘든 공부를 다 마쳤을리가 없어. 그러니까, 나는 의지박약이 절대 아니야. 내게 위기가 닥쳤을때도 나는 물러서지 않았어. 나는 어떻게든 이것을 마쳤다구. 그러니까 앞으로 나를 의지박약이라고 부르지 마."

 

 

   ***    ****    ***

 

지금도 나는 매일 여러가지 계획들을 세우고, 많은 것들을 중도 포기하거나 집어치운다. 계획을 끝까지 수행해 내는 것보다 중도에 그만 두는 것들이 더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런 일로 나를 내가 비난하지는 않는다. 잘 살아내는 것만 해도 장한 일이니까.

 

   ***   ****   ****

 

8월 한달동안, 나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정거리를 걸었다. 매일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걸으러 나갔다.  나의 처음 목표는 일주일에 닷새 이상이면 족하다는 것이었다. 하루에 3마일정도 일주일에 닷새정도 걸을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A+ 점수를 주겠다고 스스로 기준을 정했다.

 

그런데, 걷다보니 기록이 올라갔다. 내가 잘 해내고 있었다. (내 적성에 맞나보다).

그래서 계획을 약간 수정했다.  한달내내 90마일 이상을 걸으면 하루 평균 3마일을 걷는 셈이니 칭찬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걷기에 아주 재미가 붙고 말아서 90마일을 일찌감치 성취해 냈다.

 

그래서 그 다음 목표로, 한달에 120마일을 걸으면, 하루 평균 4마일 걸은거네. 그걸 이뤄보면 어떨까?  이렇게 계획수정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금세 이뤘다.

 

그래서 또다니 내 계획을 수정한다. 이번달에 150마일을 걷는다면 하루 평균 5마일...  그리고, 기특하게도 나는 그 150마일 고지를 훌쩍 뛰어 넘고 말았다.  이쯤되면 내가 내 머리통을 쓰다듬으면서 '기특하도다, 기특하도다' 칭찬을 해 줘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8월 첫날 세웠던 계획보다 훨씬 많이, 그리고 꾸준히 운동을 하러 나갔다. 참, 장한 일이다. 세상에 이런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장하다는중, 자화자찬을 하다니, 유치해 보일지도 모른다. 아, 난 원래 심대하게 유치하다. :)   이런게 내가 사는 낙이다. 작고 사소해보이는, 그러나 내게 도전이 되는 일을 잘 해내는 것. 내가 여태까지 가보지 않은 영역까지 가보는것. 남들에게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이 내게 새로운 것이고, 내게 의미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유쾌해질수 있다.

 

자, 8월이 끝나가고 있다.

내일부터 9월이다.

9월에는 8월만큼 잘 해낼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가을학기도 시작되었고, 찬홍이도 열심히 챙겨줘야 하고, 찬홍이가 대학입학 신청 절차를 잘 밟을수 있도록 돕는것이 내 주요 일과가 될 것이므로. 8월만큼 시간 여유가 있을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하루 3마일을 내 목표로 정하기로 한다. 9월 한달 90마일을 채우면 성공으로 볼 것이다. 그것을 초과하면 나는 또 열열히 나 자신을 칭찬해 댈 것이다.  인생 사는 재미, 뭐 별 것 없다. 하루하루 뭔가 사소한 것에 도전하고 그것을 이루는 것. 그 하루가 만족스러운 것. 주어지는 음식을 기쁘고 고맙게 먹고, 한번이라도 더 웃으면, 인생 복된것이지.

 

 

 

 

 

2010년 8월 30일 월요일

[Walking] Night Walk to Watch Nanny McPhee

2009년 8월 29일 일요일.

 

오전에 조지타운에 다녀와서,

집안 치우고,

빨래하고,

온라인 강의 교재 만들어서 올리고

저녁먹고,

찬홍이를 데리고 조지타운 AMC에서  밤 9시 40분에 시작하는 Nanny McPhee Returns 를 보러 갔다.

여덟시부터 아홉시까지 걸으니 극장 도착. 4마일거리 한시간.

 

영화보고나서,

조지타운 예배당의 종이 열두시를 딩~딩~ 치는것을 들으며 한시간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옛날에 시골 사람들이 걸어서 읍내에 나가서 구경하고 달을 보며 집에 오듯.

반달이 밝았다.

 

돌아오는 길에 사슴도 만나고

여우도 만났다.

8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

 

 

오후 여덟시.

찬홍이는 이 가로등을 '엄마의 등불'이라고 부른다.

엄마의 등불을 올려다보는 찬홍이.

 

 

 

9월에 나니아 연대기 또 나온다. 극장에 그 판촉물이 설치가 되어 있길래~  놀아봤다.

저 배의 키가 진짜 돌아간다. ㅎㅎ.

 

극장안 풍경

 

 

나, 이 영화 정말 좋아한다.

몇해전에 봤던 1편도 좋았는데, 이번 작품이 더 좋은것 같기도 하고,

올해에 내가 극장에서 본 영화 중에서 '최고'로 꼽고 싶다.

참 예쁜 영화이다.

또 가서 봐도 좋을만큼 이 영화가 맘에 들었다.

 

 

극장 앞에서 찬홍이

 

 

 

돌아오는 길에 사슴을 만났다. 풀숲에 숨어서 가만히 내다보고 있다.

 

 

수정덩어리같이 투명하고 환한 반달이 내내 따라왔다.

달 그림자를 따라서 한시간을 걸었다.

 

 

철교의 등불이 밤이 깊어지자 더욱 예쁘게 빛났다.

 

즐거운 밤길이었다.

 

 

2010년 8월 29일 일요일

부엌에 설치된 이동식 세탁기와 건조기

http://www.dfwfurniturestore.com/images/S6300053ken.JPG

(사진 찍기 귀챦아서 웹에서 빌려온 이미지)

 

우리집 부엌 냉장고 옆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나란히 앉아 계시다.

처음에 아파트에 이사온 후에, 우리들은 모두 난감해 했다.

세탁기를 사용하려면 '급수'와 '배수'가 이루어져야만 하는데, 도무지 급수와 배수를 위한 설비가 전혀 없는채로 달랑 세탁기만 앉아계시는거다. 

 

부엌에 급수와 배수가 이루어지는 곳은 단 한군데. 싱크대 수도꼭지와 물빠지는 구멍.

 

뭐냐, 이거. 세탁기를 어떻게 쓰라는거냐? (-.-?)

 

내가 이사한 다음날 보따리 싸갖고 미조리주에 가서 일주일간 살다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일주일간 집안 정리를 하던 P선생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보따리를 싸가지고 한국으로 도망을 가고 말았다.  나 역시 한국에가서 3주일간 개기다 왔는데, 역시 그 3주간, 우리집 두 도령들은 세탁기를 놓아둔채, 아파트 공동 세탁장을 드나들었던 모양이다. (아파트 공동 세탁장은 쿼터 먹는 귀신이다. 돈 억수로 깨진다.)

 

그러면 도대체 '요것이 어떻게 쓰이는 물건인고?'

 

내가 고민고민하다가, 우리집 에어컨을 수리하러 온 관리과 아저씨한테 물으니, 아저씨가 나의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준다.

 

방법은:

 1. 세탁기를 부엌 싱크대 앞으로 옮겨다 놓는다

 2. 세탁기에 부착되어 있는 호스를 싱크대 수도꼭지에 끼워서 고정시킨다.

 3. 전원 플러그를 콘센트에 낀다.

 4. 작동시킨다.

 5. (배수는?) 역시 수도꼭지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싱크대로 배출된다.

 

아 그러니까, 세탁기에서 탯줄처럼 연결된 호스를 통해 급수와 배수가 이루어지는 시스템.

 

따라서, 내가 세탁기를 사용하는 동안에는, 싱크대에서 다른 작업을 할 수 없다. 설겆이도 불가능하고, 커피를 끓이기 위해 물을 받을수도 없다. (화장실로 가서 물 받으면 되는것이지.)

 

(-.-) 오늘, 지난 1주일간 쌓아놨던 세탁물을 모두 해결했다. 세탁기가 '이동식'으로 작은거라서, 한번에 바지 다섯장 정도 빨수 있다.  그래서, 다섯차례에 걸쳐서 세탁기를 돌려야 했다.  건조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전기료 아깝고, 그거 돌리면 실내가 더워질것이고. 그리고 빨래는 햇살과 바람속에서 자연스럽게 말라야, 건강에도 좋다.

 

그러니까, 내가 빨래를 하는 날에는

영차 영차, 천하의 여걸님께서, 세탁기를 옮기셔서, 빨래를 하시고, 그걸 다시 원위치 시키고 하느라 힘을 많이 쓰신다. (-_-a)  빨래를 하는 날은, 내가 돌쇠나 마당쇠가 된 기분이 잠시 들지만, 베란다 햇살 속에서 살랑살랑 말라가는 빨래를 보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내가 살다살다, 세탁기까지 끙끙대고 옮겨가면서 살기는 처음이라, 심심풀이로 기록을 남겨본다. 하하하 (천하장사 아줌마 되시겠다.)

 

 

금요일, 지홍이

 

금요일 아침, 조지타운 가는 길에 찍은 야생 나팔꽃.

난 이 푸른색 꽃을 볼때마다

저 신비한 색깔 속으로 들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황홀하게 아름다운 색이다.

 

 

 

금요일에 학교 안가고,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오후에 쌀을 차에 싣고 지홍이네 기숙사에 갔다.

가는길에 테디베어도 하나 가져다 줬다.

지홍이 친구가 근처에 사는데, 주말이라 집에 갔다가 토요일 오후에 학교로 돌아간다고

지홍이도 집에 왔다가 그 친구 차를 얻어타고 학교에 가면 된다고해서

집에 데리고 왔다. 금요일 밤에 집에서 자고, 토요일에 친구 차 탄다고 일찍 나갔다.

 

 

 

지홍이네 학교로 가는 길은, 버지니아의 농가가 이어지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진다.

조지워싱턴의 마운트 버논 농장과, 토마스 제퍼슨의 농장 사이를 잇는 대 농장지대가 120마일 이어진다고 설명하면 정확할 것 같다. 미국의 초기 대통령들은 '농업'을 통한 부국을 꿈꿨는데, 아름답게 펼쳐진 버지니아의 농장지대를 바탕으로 그러한 꿈이 가능했을거라 추측하게 된다.

 

중간쯤 되는 지점, 도로변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지난번에 오고 갈때, 사람들이 줄지어서 있는것을 보았다. 시골에 사람도 많지 않은데, 평원 한가운데 서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그리고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마침 주변도 목장지대이고).  이 목장에서 나온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이라면 정말 신선하고 고소하겠다 싶어서 지홍이 데리고 오던 길에 들러서 아이스크림도 사먹었다.

 

 

 

 

지홍이가 사 입었다는 학교 표시가 그려진 운동용 점퍼.

(지홍이 부친께서 반드시 사진을 보여달라고 해서 한장 올린다. 하하하)

 

 

가을 기분을 내려고  목을 가리는 스웨터를 입었더니

찬홍이 왈, "엄마 목이 안보여서 '자라'같다"고.

그래서, 일명 '자라 패션'  하하하

정말 자라부인 같기도 하다.

 

 

 

 

[Walking] Sunday, August 29 Walk to Georgetown

매일 매일 해가 짧아지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요즘은 아침 여섯시에도 밖이 컴컴해서, 나가기가 약간 무섭습니다.

여섯시 반쯤 되면 환해집니다.

 

오전 여섯시 오십분인데, 아침 안개가 자욱합니다.

이곳은 전에 기찻길로 사용되던 다리입니다. '아리조나 철교'라고 내가 이름붙인 다리입니다.

워싱턴의 조지타운 하버에서 메릴랜드주까지 이어져있는 11마일 초승달 트레일 (Capital Crescent Trail) 길의 일부입니다. 하버에서 출발하면 3.5 마일 거리쯤에 이 다리가 있습니다.  나는 이 다리 건너 언덕위에다 차를 세워놓고 산책을 시작하므로, 포토맥에 갈때마다 이 다리를 건넙니다.

 

다리위에 가로등이 켜져있는것이 보입니다.

이 가로등을 볼때마다 흐뭇한 기분이 듭니다.

 

처음에 이다리에는 등이 없었습니다. 밤이면 오직 달빛에 의지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대 이태전부터 다리에 등불을 매다는 공사를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공사 시작했다 하면 일년은 그냥 갑니다. 참 느린 사람들 입니다.)

등불을 다 매달고도 불이 들어올 생각을 안해서, 또 한 반년이 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봄부터 등불이 켜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이 등불은 밝은 대낮에만 켜져있다가, 해가 지면 꺼졌습니다.

환할때만 켜지는 등불.

어두워지면 꺼지는 등불.

(...이거 지금 뭐하는건가요?)

그래서, 한심해서 하품을 하면서 지나치다가,

지난 4월인간 5월 어느날, Capital Crescent Trail 관리팀을 웹에서 찾아내가지고, 이메일을 보낸적이 있습니다.  그때, 훤한 대낮에 등불이 켜진 사진을 첨부해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뭔가 잘 못 된 것 같으니 시정되었으면 좋겠다고 정중하게 글을 적었지요.

담당자에게서 곧 답신이 왔습니다. 관계자에게 연락하여 조치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후에, 이사하고, 한국 다녀오느라 포토맥에 통 못 나갔었는데

7월에 포토맥에 갔을때, 아이들과 산책을 하고 밤에 돌아오다가

다리에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이메일로 부탁 한 것을 담당자가 잘 처리해 준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등불을 볼때마다,

마치 내가 등불이라도 켠 것 모양, 기분이 좋아집니다.

 

 

 

 

강변에 아주 아주 큰 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데

줄기가 온통 칡넝쿨과 담쟁이로 덮여있습니다.

이 광경을 보면 무슨 생각이 날까요?

이곳은 '천국의 거울'이라고 내가 이름 붙인 곳입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영화 '반지의제왕'에 나올만한 장면 같은데

거대한 거울이 있어서

그 거울 속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존재 할 것 같지요.

천국의 거울은 올해에도 여전히 잘 있습니다.

 

 

 

 

 

사진 왼쪽에서 아침 햇살이 비쳐들어오고 있습니다.

 

 

 

 

Honeysuckle 입니다.

봄철에 주로 피는 종류도 있고

이 꽃처럼 늦 여름과 가을 사이에 피는 종류도 있습니다.

향기가 이른 봄날의 라일락처럼 향긋하고 진합니다.

찔레꽃처럼 무리지어 피어납니다.

 

 

조지타운에 인테리어 가게가 줄지어 서있는 곳이 있습니다.

이 가게에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예쁜 의자가 많이 선보입니다.

이 세개의 의자가 참 이쁘죠.

내가 들여다보고 서 있으니까,

역시 산책나온 두명의 신사도 내 옆에 나라히 서서 들여다보다가

"They are so cute~" 하면서 방긋 웃습니다.

이럴때 전혀 모르는 사람과도 마주 서서 웃게 됩니다. 공감하니까.

아름다운 8월의 마지막 일요일 아침 입니다.

 

 

[Walking] Georgetown Harbor, August 29, 2010

 

8월의 마지막 일요일입니다.

한국은 아직도 태풍과 찜통더위가 이어진다고 하는데

워싱턴은 이미 가을로 들어선듯

하늘은 높고

아침 저녁 공기가 쌀쌀하며

낮에는 상쾌한 뙤약볕이 쏟아져내립니다.

과일이 익기에 알맞은 날씨입니다.

 

포토맥 강변으로 나갈때는

'오늘도 똑같은 풍경을 보러 나가는가' 혼자 시들해 하지만

포토맥강이 저를 실망시킨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오늘 아침 포토맥은 안개가 자욱했고

스멀거리던 안개는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나무 열매들이 가을빛을 띄기 시작했고

흰꽃은 더욱 창백한 빛으로

파란꽃은 보랏빛이 돌 정도로 푸르게 색을 입어 갑니다.

 

강에 나갔을때

물을 들여다 볼 때가 많습니다.

찰랑거리는 물을 들여다볼때면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받습니다.

오늘

그 파란 하늘과

온유한 강물과

그리고 8월의 마지막 일요일에 선사한 강변의 산들바람을

보내드립니다.

 

 

:)

 

 

 

2010년 8월 25일 수요일

포토맥 강변의 요정

http://www.youtube.com/watch?v=1nUPm9z4qqQ

 

 

오늘 포토맥 걷다가 만난 아주 작은 사슴.

디카로 잠시 동영상을 잡아 봤다.

사슴이 너무 이뻐서...

내 사슴.

 

원래는 너무 피곤해서, 그냥 내쳐 걸어갔다가

그냥 걸어서 돌아오고 있는데

사진 찍을 생각도 안하고 걷고 있었는데

요놈이 내 앞에 나타나더니 도망갈생각도 안하고

그냥 한가롭게 이러고 있는거다.....

그래서 사진을 여러장 찍다가,

(예쁜 사진 많이 건졌다)

디카 동영상 찍기로 잠깐 찍어봤다.

 

이 사슴을 십분 가량 관찰했는데,

심지어 이 사슴이 오줌을 누는것도 보았다.... :)

(그건 프라이버시니까 사진찍으면 실례다.)

 

 

august 25, 2010

 

밥돌이 지팔군

내 손전화를 체크해보니, 어제 오후에 지팔이가 한번 전화를 했었다.

그 때 내가 수업을 하고 있던 관계로 전화는 저 혼자 울리고 있었겠지.

그렇게 무심히 지나쳤는데, 오늘은 다행히 내가 전화를 받았다.

 

지홍: 엄마, 엄마, 나 없이도 잘 지내시죠? 괜챦으시죠?

엄마: 오냐.

 

지홍: 엄마, 엄마 책을 열한권이나 사야 돼요. 그래서 카드로 책을 많이 샀어요 (돈이 많이 나갔다는 얘기).

엄마: 오냐. 돈 걱정 말고 필요한 책은 다 사라.

 

지홍: 엄마 엄마, 밥값이 많이 나가네요...

엄마: 그래? 너 밥 안지어먹고 나가서 사먹니?

지홍: 엄마 엄마 그게 아니구요.  저번에 쌀을 집에 놓고 왔쟎아요. 그래서 여기 마켓에서 미국쌀 조그만 봉지 사다 먹는데, 그게 비싸요.

엄마: 미국쌀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냐. 나가서 음식 사먹는거보다는 훨씬 싸고 좋지.

지홍: 그래도 쌀값 나가는것도 아깝고...

엄마: 걱정마라 이번 주말에 내가 쌀푸대, 네가 놓고 간것 갖다 주마. 그거 한푸대면 한학기 배터지게 먹고 남을거다. 반찬은? 뭐 필요한거 없니?

지홍: 동네에서 야채, 과일 사다 먹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쌀이나 많았으면...

엄마: 나가서 사먹기도 하고 그러렴.

지홍: 아니요. 밥 해먹는게 제일 깨끗해요.

엄마: 그러렴. 사실 집에서 지어먹는 밥이 제일 건강하고 위생적이지. 사먹는것 다 소용없다.

 

엄마: 너 내 미니 카메라 줄까?

지홍: 네

엄마: 너 내꺼 주고, 난 새거 사야쥐~

지홍: ...네.

 

지홍: 엄마엄마, 나 학교 점퍼 하나 사고 싶어요.

엄마: 내가 원래 너한테 학교 표시 되어 있는 점퍼 하나 사준다고 했쟎아. 하나 사입어. 좋은걸루.

지홍: 네 엄마.

 

지난번에 이삿짐 챙길때, 내가 40 파운드 쌀도 한부대 챙겨놨는데, 놈들이 짐 옮길때 그걸 그냥 집에 두고 가버렸다. 그래서 녀석이 학교 근처에서 급한대로 봉지쌀을 사다먹는 모양이다. 미국상점에서 파는 쌀은 비싸고, 맛도 별로 없다. 어서 한국쌀을 한푸대 갖다 안겨줘야 할 것 같다.  녀석이 패스트푸드, 정크푸드 대신에 밥을 지어 먹는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세상 천지 아무리 둘러봐도, 집에서 지어 먹는 밥보다 깨끗한 음식이, 없다.)

 

 

 

 

 

김모씨 부인의 가방

일국의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에서 김모씨의 부인이 들고 있는 가방이 도마위에 올랐다.

가방이 얼마라더라? 이백만원쯤 된다고 한다.

사진속의 가방을 들여다본다.

아! 저 가방, 대학원생인 내 학생도 들고 다니는 것을 봤다.

원래 멋쟁이 학생이라, 그 학생이 들고 다니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가방 예쁘네!" 했더니, 배시시 웃었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루이 뷔통.

 

그런데 김모씨 부인의 가방이 도마위에 오르자

웹으로 관련 기사를 훑던 나도 어딘가가 켕기기 시작했다.

....아이구야...나 이러다가 신세 망치는것 아닐까...진땀이 나기 시작한다.

 

이런 일은 빨리 불고 매를 맞는것이 훗날에 털리는것 (?) 보다 나을것도 같다.

 

'자수'한다. 나도 루이비통 가방이 한개 있다. (죽을죄를 졌습니다요.)

 

내 가방은 *5초 백* 이라고 한다.

내 동생이 나를 놀리면서 한 말이다, "야, 짝은 누나야, 너 교수질 한다더니, 선생 주제에, 너도 5초 백 들었구나" (내동생이, 학교 선생이다. 그래서 우리들끼리는 교수질, 선생질 이런 막말을 농담삼아 한다. 해당 관련 직종을 폄하하고자 사용하는 어휘는 아니다.) 그러니까 내동생의 '진의'는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학자라는 인간이, 남들 다 들고 다닌다는 비싼 가방을 들고 있는 꼬락서니가 참말로 가관이라는 비아냥거림이다.

 

그런데 그 *5초백*은 뭔 뜻이래?

 

내가 갖고 있는 루이비통 가방이 하도 흔해서, 강남의 부자동네에 가서 길거리에 서 있으면 5초에 한명꼴로 그 가방을 갖고 다닌단다. (-.-;;;;) 맞는 말씀이다. 그래서 진짜 부자는 '그따위' 가방은 내다 버린댄다.

 

내가 갖고 있는 가방은 루이비통 여러가지 모델중에서 가장 오래된, 가장 가격이 저렴한 것에 속한다. 한국에서 백만원쯤에 팔리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기왕에 자수 하는 김에, '발뺌'을 좀 해야겠다.

나 그거 내가 내돈주고 산것이 아니고, '선물' 받은거다.

질문: "뭐라구? 선물이라구? 너두 스폰서 받니?"

답변: "제가 스폰서 받을 깜냥이라두 되나요?  스폰서를 받긴 받았지요만. 예, 제 스뽄서는 우리 오빠하구, 우리 언니하구, 우리 엄니하구, 선생질하는 제 동생하구, 우리 P 선생하구, 우리 고모들하구, 그리고 제 아들들입니다요. 그분들이 제 막강한 무한 권력의 스뽄서들입니다요. 이보다 더 무서운 스뽄서들도 있는데요, 제가 말하면 기절 하실걸요...하느님하고 예수님도 제 스뽄서구요, 소크라테스, 칸트 할배도 제 스폰섭니다. 제가 얼마나 막강한 배후가 있는지 놀라셨죠?

 

 

 

내가 공부를 마치고 백수질을 하다가 간신히 모 핵교에 취직을 하여 비자변경 문제로 한국에 갔을때, 우리 언니가 내 꼴을 보고, 혀를 차며, "딱한지고, 얼굴은 왜 그렇게 거지 몰골이며, 행색은 또 그게 뭐냐?" 눈물을 흘리며 추레한 내 꼴을 한탄을 하였던 것이니,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밤새 우리 형부에게 바가지를 긁은 결과적으루다가, 자린고비 우리 형부가 이를 득득 갈면서, "하이고마 문디! 처제가스나가 늙어서두 내 속을 쎄긴다카이" 신세한탄을 한 후에 언니한테 끌려나가서 서울에 있는 무슨 백화점에가서 "기왕에 살거믄 가격대비 싸이즈! 같은 값이면 큰거로 골라라" 노래를 부른후에 구식 모델중에서 제일 큰거로다가 사다가 내게 던져주고 간것이 바로 그 문제의 루이비통 가방이다. (그렇다. 가방을 갖다 던져준 나의 스폰서는 우리 형부다. 세무조사를 하려면 바로 그 작자의 세무조사를 들어가야 할거같다. 캬캬캬)

 

나는 시방 우리 형부가 나한테 사다 안긴 백만원짜리 가방에 대해서도 불노소득 증여세를 자진신고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다.

 

아무튼 우리 형부가 사준 가방이 큼직하고 튼튼하여, 내가 책을 여러권 담아가지고 다니며 잘 쓰고 있다. 그런데, 그런 가방을 들을 경우, 가족에게 화가 미치는 것 같아서, 그 가방을 벽장안에 꽁꽁 숨겨놓고 있어야 할것 같다. 두렵다. 아, 이렇게 비밀을 안고 두려워하느니, '자수하여 광명 찾으세!' 하는것이 나을것도 같고.

 

요즘 고위 공직자 후보들에 대한 청문회 기사를 보면서

혹은, 시간이 좀 지났지만, 승승장구 잘 나가던 젊은 국회의원이 말 실수로 패가망신으로 치닫는 현상을 보면서

자꾸만 나를 돌아보고,

내가 정직하게 잘 살아내고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 없는데, 그래도 자꾸자꾸먼지를 털다보면 세상이 좀더 깨끗해질지도 모른다.

특히 나의 경우, 나는 청소를 잘 못해서, 주변이 정돈이 잘 안되어 있다.

그래서 요즘은 수시로 책상이며 주변 정리를 하고, 쓰레기들을 치워내고 있다.

자꾸만 먼지와 쓰레기가 내 삶에 쌓여가므로.

 

우리 언니와 형부가 정직하게 저축한 돈으로 내게 선물한 명품 가방을 나는 내다버릴수는 없을것이다. 나는 속된 사람이고, 그리고 나도 좋은 옷, 좋은 가방으로 치장하고 살고 싶다. (형편이 안되어서 못 할뿐.) 그래도, 멀리, 크게 보자고 한다면, 기왕에 죽으면 다 놓고 떠나야 하는것을, 쓸데없는 욕심은 싹둑싹둑 잘라서 버리자고 다짐해보게 된다.

 

자수한다. 나 명품백 있다.

자린고비 노랭이 갱상도 문디 우리 형부가 큰맘먹고 사준 가방이다.

나는 이 가방을 평생 간직할 것인즉,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네?

 

 

 

 

 

 

 

2010년 8월 24일 화요일

[song] can't fight this feeling anymore

this song just hit upon my mind when i was jogging this morning. lead me to sing all the while. i like the singer's voice anyway.

2010년 8월 22일 일요일

[영화] Temple Grandin

http://www.imdb.com/title/tt1278469/

 

HBO 영화인데, 아이들이 DVD를 빌려다 줘서 봤다.

Temple Grandin (http://en.wikipedia.org/wiki/Temple_Grandin )이라는 현존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자폐증을 갖고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여 학자가 되기까지의 에피소드들을 담아놓은 영화인데, 현존 하는 인물의 이야기라고 하니 감동이 더 하다.  훌륭한 선생님의 모델도 나오고. Oliver Sacks 가 그의 저서에서 템플 그랜딘의 케이스를 소개한 적도 있다. 

 

Nature is cruel, but we don't have to be.

자연은 잔인하다. 하지만 우리는 잔인할 필요가 없다.

 

아리조나 목축지역에서 고기소 (肉牛)들이 함부로 거칠게 다뤄지고, 잔인하게 죽음을 당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템플은 이렇게 역설한다. Nature is cruel but we don't have to be. We have to resepct individual life!  인간이 소를 잡아 먹는 현실은 거부하기 힘든 현상이다. 그런 면에서 세상은 비정하고 잔인하다.  그런데, 그렇게 잡아 먹고, 잡아 먹히는 비정한 세상이라고 해도, 필요이상으로 잔혹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템플의 생각이다.  기왕에 잡아 먹더라도, 너무 잔혹하게 죽이지는 말자는 것이다. 소들이 겪는 고통을 최소화 하고, 이들이 존중받으며 도살될 방법은 없는가?  잡아 먹을때 먹더라도, 우리의 먹잇감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자폐증의 고통을 겪오 있는 템플은, 고통받는 '동물'의 시각에서 동물들을 관찰한다.

이는, 고통받은 사람만이 가질수 있는 시각일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삶에서 겪는 그 무엇도, 삶의 자원일수 있다. 설령 그 경험이 고통스럽다해도.

 

클레어 데인 (Claire Dane)이 참 곱고 아름다운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역을 맡으면서, 실제 인물과 비슷하게 분장을 한 결과, 그 고운 용모가 가려지고 말았다. 몇해전 Stardust 라는 영화에서 '별'처럼 아름다운 미모를 보였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냥 선머슴아같아 보인다. 심지어 찬홍이는 클레어 데인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만큼 클레어데인이 연기에 몰입하여 잘 해낸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잘 만든, 좋은 영화다.

도둑맞은 기분

지홍이가 안보이는 빈집이 썰렁한것이...

왕땡이도 찬홍이도 나도 온종일 기운이 없는데

요놈은 하루종일 전화 한통 없다.

괘씸한 놈.

 

그런데, 요 기분이 뭐랄까

임신해서 배 불러가지고 숨 헐떡거리고 돌아다니다가

낮잠 자고 깨어나보니

배가 푹 꺼지고

애가 없어진것 같은

그런 황당한 공허.

 

아, 자식이 웬수로다.

괘씸한 놈, 전화 한통이 없다뉘.

에잇, 수박이나 썰어 먹자.

 

 

 

 

2010년 8월 21일 토요일

지홍이 기숙사 입주 : 엄마는 울지 않는다.

 

2010년 8월 21일 토요일 맑음

 

다음주부터 UVA에서 주니어 생활을 시작하는 지홍이가 오늘 기숙사로 이사를 했다.

오전에는 무슨 시험을 치른다고 새벽부터 시험장으로 향했고, 정오쯤에 픽업하여

새로지은 밥과 국과 고기를 온가족이 함께 식탁에 모여서 먹고

어제 챙겨놓은 보따리들을 챙겨서 집을 나선것이 오후 한시반.

중간에 주유소에 들러서 차에 개솔린을 가득 채웠고

Bank of America 에 들러서, 내 비상금 계좌에서 현금을 꺼내서 지홍이가 급히 쓸 용돈을 챙겨주었다.

 

자동차로 두시간 거리.

오후 네시에 길을 헤멜것도 없이 곧바로 지홍이에게 배정된, 법과대학 맞은편의 기숙사동에 도착.

한시간 가까이 짐을 풀어주고, 곧바로 집을 향해 출발했다.

녀석의 방을 정리해주고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지고 싶었으나

곧바로 기숙사 오리엔테이션 행사와 만찬 행사가 있다고 해서, 짐만 대충 옮겨주고 빠이빠이하고 떠났다.

 

녀석은 내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듯 하더니

주먹으로 눈을 가리고 서있다.

제 아빠와 공항에서 헤어질때도 저러고 서서 한참을 울었다고 하더니

또 그러고 서있다.

나는 그냥 차를 끌고 기숙사 구역을 빠져나와 도로를 달리다가, 길가 아웃백 스테이크에 차를 세우고

이른 저녁을 먹었다. 찬홍이는 돼지 갈비구이를, 나는 썰로인 스테이크를 먹었다.

역시 식당을 출발한지 두시간만인 여덟시 반에 집에 무사히 도착.

 

지홍이네 학교는 집에서 왕복 네시간 거리이므로 부담없이 아무때나 다녀올 거리라서 참 좋다...

멀리 떠나보낸것 같지가 않다. (나는 얼마나 복이 많은 엄마인가.)

돌아오는 길에 찬홍이에게, "학교가 가까워서 참 좋구나. 너도 그냥 UVA들어가라"고 부탁을 했다.

찬홍이도 UVA에 들어가 준다면 좋겠다.

 

한국을 떠나온지 만 8년이 넘었고,

미국땅에서 나혼자 애들을 거느리고 살아온 세월은 그중 절반쯤 된다.

만 4년간 나 혼자 애들을 키우고 살았고

지난 3년간은 애들 아버지가 함께 있어줘서 의지가 되었었는데,

이제는 다시, 나를 중심점으로 가족들이 한국에, 샬롯츠빌에 떨어져있다.

내 가족들이 나를 의지하고, 내가 살고 있는 집을 그들의 안식처로 알고 있으므로

나는 내가 중심점처럼 여겨진다. 모두가 세상의 중심이겠으나, 나는 특별히 임무가 무겁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나는 눈물이 나올것 같으면 어금니를 꽉 물고, 그 순간을 모면하는데 익숙해졌다.

정글에서 살아남는 방법의 한가지로, 나는 내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질금거리지 않는 노선을 선택했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나가고 있다.

 

마당에서 울고 서있는 녀석을 놓아둔채 떠나온 내 속타는 심정을, 세상의 엄마들은 모두 알 것이다.

내 눈에는 그 아이가 세살짜리 꼬마처럼 보인다.

내가 안고, 업고, 손을 잡고 걸음마를 시켰던 그 아이가 마당에 그대로 서 있는 것이다.

이제 어른이 되어서 내게 돌아와주기 바란다.

이제는 내가 의지할수 있는 어른이 되어서 나를 찾아주길.

 

아들은 울어도 좋다.

하지만 엄마는 죽을때까지 자식앞에서 울지 않겠다.

 

 

 

집 떠나기 전에 아파트 현관 앞에서 지홍이와 찬홍이

 

 

 

매일 왕눈이가 오줌을 뿌려대는 현관 앞 베고니아 화분 앞에서,  형제.

 

 

 

형의 짐을 모두 차에 날라다 실어놓은 찬홍이

 

 

 

베고니아 화분에 걸터 앉아서

 

 

 

지홍이에게 배정된 기숙사 건물

저기 보이는 지홍이의  삼양라면 박스~ 

 

 

현관에서 내다본 풍경.

나무밑 은색 자동차 ==> 내꺼.

 

 

 

지홍이의 기숙사 건물 이름: 보이드 하우스

 

 

 

 

현관 문 열고 들어가면, 거실에 해당되는 홀이 있고,

방 두개가 나란히 있다.

방 하나를 두명이 사용한다. (방 하나에 침대두개, 책상 두개, 옷장 두개)

그러니까 네명이 거실과 부엌을 공유하여 생활한다.

 

 

부엌시설은 생각보다 넓어 보일정도였고, 냉장고는 우리집 것 만했다. 네명의 학생이 공유하기에 넉넉해보였다.

 

 

 

나는 그냥 침대보 씌워주고, 정리좀 해주고, 나머지 짐은 알아서 하라고 그러고 나왔다.

부엌이 있어서 밥 해먹을수 있으므로, 밥 해먹을 도구 모두 챙겨서 줬다.

(책상위에 라면 한상자, 그 위에 집에서 쓰던 냄비가 보인다).

 

 

 

사실, 기숙사 살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해전에 내 조카가 내가 공부하던 대학으로 유학을 왔을때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필요한 물품을 사서 기숙사 살림을 챙겨준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서, 이번에도 대충대충.

 

 

 

 

헤어지기 전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작별 드라마를 연출한 지홍이와 찬홍이.

만 3년 차이로 태어나 그동안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적이 없었던 형제이다.

이제는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

가족은 떨어져있건 함께 지내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 끈은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 믿음으로 나 역시 하루하루를 버틴다.

우리들은 잘 살아낼 것이다.

 

 

 

 

[산책] Calcium 4%

8월 하순의 토요일 아침.  여름이 간다고 매미가 맴맴.

 

 

 

이것은, 어제 오후에, 우리집 베란다에 널어놓은 타월에 날아와 쉬고 있는 매미님.

나중에 포르르 날아가버렸다.

 

 

 

키브리지 아래 담벽의 낙서 : This wall should be in a museum! 이라고 씌어있다.

 

 

 

목백일홍이 하얗게 피어있는 운하의 돌벽길.

 

 

하버가는 길, Flour Mill 빌딩 측면의 오피스 유리창. 발상이 재미있었다.

 

 

하버, 스타벅스에서 물 한병. 열어서 마셔보니 광천수였는데

 

 

물 마시다 들여다보니, 칼슝이 4%가 들어있단다. (그런데 하루 권장량의 4%라는 내용같다.) 뭐 없는거보다는 낫겠지.  (요즘 칼슘 섭취에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물에 칼슘 들어있다니까 반갑다.)

 

오늘 오후에, 지팔군을 기숙사에 데려다 주고 살림을 차려주고 와야한다.

오전에 시험 치고, 오후에 출발해야 한다.

어제 엔진오일 갈았고, 준비물 다 챙겼고.

이제 시험치러간 지팔이 픽업하고, 차에 기름 채우고, 점심 먹이고, 출발하면 된다.

 

집에서 두시간반 거리이니까, 그리 멀것도 없고,

아주 멀리 보내는 것 보다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어제 나가서 신발이며 옷을 좀 사줬더니, 애가 소풍가는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내 눈에는 지팔이가 아직도 유치원생처럼 철없는 애로 보이는데, 아무튼 이제 혼자 힘으로 밥해먹고 공부하고 살아내야 한다. 잘 해내기를.

 

 

 

2010년 8월 20일 금요일

[산책] Passion Flower, Tyrannosaurus, Farmers Market

아침 일곱시에 포토맥 애비뉴 도착. 조지타운까지 왕복 7마일 90분.

돌아오는 길에 동네 Farmer's Market 이 열렸길래, 빵과 수박을 사가지고 왔다.

즐거운 아침 소풍.

 

 

포토맥 애비뉴에서 철교로 진입하는 입구에 요즘 Stinking Passion Flower 가 무리를 지어 피어있다.

이 꽃은 연보라색이고 공상과학영화 제작할때 '우주선 모형'으로 쓰면 좋겠다 싶은 '매우 수학적인 (?)' 형태를 유지하는 꽃인데,  향기가 매우 특이하다.   (썩은 베이컨 냄새 같은 독한 고기 냄새가 난다).

 

 

 

거미줄은 눈에 보이는것 만큼 사진기에 담기가 힘들다.

오늘은 그래도 잘 찍힌것 같아 기쁘다.

 

 

키브리지 앞 절벽. 저 쪽에 내 그림자.

평소에는 저쪽 절벽위에서 바람을 쐰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지난주에 '요가하는 여자'가 거꾸로 서 있던 곳.

내 평소 자리는 저쪽 절벽이다.

 

저기 가면 생각나는 사람: P국장과 K 선배.

 

걸음이 빠른 나는 산책을 나오면 한달음에 여기에 도착한다.  그리고 여기 앉아 거북이놀이를 하염없이 즐기시는 P선생을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했다. (우리집에 거북이놀이하는 P선생만 있는게 아니다. 달팽이놀이하는 찬홍이도 있다. 나는 가끔 찬홍이에게 묻는다 -- 찬홍이 어떻게하면 너같이 그렇게 천천히 걸을수가 있뉘?)

 

K선배는 걷기 선수였다. 걸음이 빨랐다. 몇번인가 함께 여기까지 걸어와서 앉아서 한참 바람을 쐬었었다. 어느 이른 겨울 아침에는 서로 방향이 엇갈렸는데 (나는 이미 집으로 가고 있던 중인데, 저쪽에서 걸어오셨다) 그래서 다시 이 절벽에 함께 와서 내 가방에서 고구마 찐것을 꺼내서 함께 먹었었다. 그날 내가 가방에서 털모자를 꺼내어 깔고 앉으라고 하니까, 남의 모자를 어떻게 깔고 앉느냐고 무척 미안해하셨다.  모자가 방석이 되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털어서 쓰면 되는 것이지.  오늘 아침 공기가 차고, 상쾌해서 지치는줄 모르고 걸었는데, 날씨가 이렇게 가을같이 상쾌하니 K선배와 가을, 겨울  걸으러 돌아다닌것이 생각났다.

 

 

절벽 아래

 

 

 

 

티라노사우러스

 

매우 금요일 오전 여덟시부터 열두시까지 열리는 동네 Farmers Market (장터).

찬홍이네 학교 옆 공원에서 열린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오는길에 장이 선것이 보이길래 들렀다.

이 아이스크림 가게의 아이스크림은 단맛이 적고 고소하다.

전에 P선생과 와서 3달러짜리 제일 작은 컵을 사가지고 둘이 먹은적이 있다.

오늘도, 저 꼬마아이처럼 서서 아이스크림을 받아서 먹어봤는데, 재미가 없어서 다 못먹고 그만두었다.

 

그래도, 장터에 오면 아이스크림 사서 핥아먹고 싶어진다.

 

찬홍이 줄 빵 한덩어리하고, 나 먹을 수박 한통 사가지고 왔다. 수박이 아주 잘 익었다.

 

 

 

 

 

아침 산책은,

사실 아무하고도 함께 나가고 싶지 않다.

 

아침 산책 시간은, 그야말로 묵상의 시간이다.

나 혼자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신과 대화하고, 자연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고요한 이 아침을 다른 누구와 나누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너무나 소중한 시간.

 

 

2010년 8월 18일 수요일

[책]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by Michael J.Sandel

 

 

있는 책 다 내다버리고, 책 읽기 기록도 안하고.

뭐 이렇게 되니까, 상실감이 크다.

기록이라도 남기면 그나마 위안이 될 것 같다는 생각.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최근에 나온 페이퍼 백.  미리 주문해놔서, 나오자마자 배달되어 왔다. 향긋한 새 책 냄새.

 

 

내 전공 관련 책 이외에는 전분야의 양서를 골고루 읽는다는 것이 내 평소의 독서의 지향점이다.  그래서, 한권 골랐다.(이마뉴엘 칸트 관련 챕터도 보이길래).  아직 다 못읽었으므로, 나중에 리뷰.

 

 

[책] Diary of a wimpy kid by Jeff Kinney

 

 

 

며칠전에, 아이들이 나 보라고 Diary of a Wimpy Kid 라는 영화 DVD를 빌려다 주었다.  그것 말고도 Ghost Writer 라는 이완 맥그리거 나오는 영화도 빌려다 줬는데, Ghost Writer 는 보다가 자고, 보다가 자고, 보다가 자고, 결국 대충 보고 지나갔고, Diary of a Wimpy Kid 는 안졸고 끝까지 다 봤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봤다 (보다가 잤지만...).  그리고 조지 타운에 갔을때 책방에 가서 원작 책을 찾아서 킬킬대며 다 읽은후에, 집에 와서 바로 아마존에 신청을 했다.  무료배송 이틀만에 책이 도착하여, 또 킬킬대며 읽었다.

 

나는 아마존 킨들 주문한 것이 도착하면, 이 책 시리즈 전체를 ebook으로 주문할까 생각중이다. 너무너무 웃기고 재미있고, 영어공부도 되고.

 

이 책의 미덕:

1. 일단 웃긴다. 심심할때 아무데나 봐도 유쾌하다.

2. 일기 형식이다 --> 영어일기 지도용 참고 서적으로 사용해도 좋을것이다. 혹은 영어 일기 샘플로도 좋다.

3. 중학생 수준의 영어 구사자가 사용할만한 어휘, 표현이 생생하여, 외국어(영어) 학습자에게도 유익해보인다.

 

읽고, 또 읽어도 싫증이 안 나므로, 반복 읽기/학습이 자동적으로 될만한 교재로 볼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저런 실용적, 교육적 용도가 아니라도,  책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순수한 '즐거움'이 충분히 가치있다.

 

영화도, 원작의 대사나 상황을 거의 똑같이 옮겨다 놓았다. 에피소드의 디테일에 약간 차이가 나는 것도 있지만, 원작을 참 잘 재현했다.

 

 

[산책] Jogging in the Rain~

 

 

새벽 두시쯤 비 쏟아지는 소리가 나서 잠이 깼다.

비 들이치지 않게 침대머리 창문을 닫고, [아침까지 비가오면 어쩌나...] 약간 고민을 하다 빗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  나는 마치 어릴때 소풍날 아침에 비가 오지 않기를 기다리던 그 심정으로, 아침에 비가 올까봐 걱정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도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짚신장수처럼, 오늘은 공치는 날...

한숨을 쉬고 앉아있다가,

문득,

비가 온다고 나가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어? <--- 누군가가 물었다.

  아니요.  비가 와도 사람들은 각자 할일을 하지요, 네 <---- 나는 누군가에게 대꾸했다.

 

 

 

 

 

나는 잠시 번개가 치고, 벼락을 맞아서 나무가 쓰러지면 어쩌나,

내가 벼락을 맞으면 어쩌나 이런 궁리를 해봤다.

하지만, 내가 돌아보니, 옛날에 시골에서 살때, 우리들은 비가와도 논밭에 나가서 일을 했고

비가 와도 뛰어 놀고 그랬다.

만약에 내가 벼락을 맞아 죽을 운명이라면, 피한다고 해도 결국 죽을것이고...

 

 

 

 

 

그래서, 작년에 싸게 사놓고 좋아하던 빨간 점퍼를 생각해냈다. 그거 방수처리된거지 아마...

하여, 점퍼를 찾아 입고, 우산을 찾아 들고, 집을 나섰다.

비가 오면 내가 평소에 걷던 길이 물이 넘쳐서 차도로 걸어야하기 때문에

오늘은 아예 안전한 길로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운동장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혼자서 가볍게 트랙 네바퀴 (일마일)를 뛰어 돌고, 다시 빗길을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왔다.

그래도 비가 이슬비로 바뀌어서, 집에 올때는 우산도 접고 한가로운 산책을 했다.

 

비가 와서 세상이 촉촉히 젖고

공기에서 비릿한 비 냄새와 초록 수풀의 냄새가 나고

세상은 평화로워보였다.

나는 정원의 꽃들처럼 비를 맞으며 걸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내 육신이 건강하여 비오는날 산책을 나와,

비를 맞으며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