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의 나의 독서기록을 보면 '생각의지도'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번역 소개가 되기도 했던 The Geography of Thought 라는 책을 내가 꽤 흥미롭게 읽은 흔적이 남아있다. 이 책이 서양사람들과 아시아권 사람들의 인식의 차이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묘사했다는 혹평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차피 어떤 '이론'을 정리하다보면 다소 '단순하게' 처리되는 내용이 나오는 법이므로 이런저런 상황을 감안해서 좋은 점수를 줬던 기억이 난다. 2003년은 내가 미국에서 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 않던 시기이기도 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 한국과 미국이 이렇게 다르고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이렇게 다르더라'하면서 나름대로 나의 경험과 빗대어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다. 아니, 여전히 나는 하루하루 살면서 그런 비교작업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좌측통행 우측통행
가령 자동차는 우측통행, 사람은 좌측통행이라는 식으로 교육받고 자라온 상식적인 한국인이었던 내가, 미국의 대학 복도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쏟아져 내려올때, 좌측으로 얌전히 계단을 올라가는 아시아출신의 나와, 우측으로 우르르 몰려서 계단을 내려오는 미국학생들이 계단의 중앙에서 정면충돌하듯 맞닥뜨렸을때, 상식적인 코리안이었던 나는 '이 미국애들이 왜 좌측통행을 안하나? 정말 버릇없는 놈들이군!' 하면서 탄식을 했을것이고; 저쪽에서는 이 피부 노란 아시안이 왜 우측통행을 안하고 남의 길을 막고 이러는가? 하면서 투덜댔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자동차도 사람도 모두 우측통행 시스템이었던 것이니.
한국이 서구화되면서 '미국'의 문명이나 제도를 많이 가져다 썼을듯한데, 자동차가 '우측통행'을 하면서 사람은 '좌측통행'을 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잘은 알수 없지만, 내가 상식적인 차원에서 추측하건대, 현대식 자동차 문화가 적극적으로 도입된것이 해방이후이고, 그래서 '미국식' 도로 문화를 채택하게 된 반면, 복도에서의 '좌측통행'은 아마도 일본 식민지시절부터 그렇게 시행했을 것이고, 군사문화에서도 그대로 정착을 하고 있다가 그냥 우리 생활속에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이는 나의 추측일 뿐이다.) 어찌됐건 나는 왼손잡이로 태어나서 오른손잡이 문화에 적응해서 사는 사람이라서, 가끔 방향에 착오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는 '왼손잡이'들이 피치못하게 겪어야하는 설움일수도 있지만, 오른손잡이들의 세상에서는 그들이 멋대로 정한 규율을 따라주는 수밖에. (그래도 가끔 오바마 대통령이라던가, 우리들의 스타가 테레비에 나올때, 이들이 왼손으로 싸인을 할때, 뭐 그럴때 우리들은 불법 지하단체의 회원들인것처럼 혼자만의 미소를 날리기도 한다. 저기 우리 패거리가 있다구~ )
가로세로? 세로가로?
미국미술 전문(?) 블로그를 만들어놓고 이따금 내가 미술관에서 찍은 작품 사진을 정리하면서 글을 쓰다보면, 그림의 크기를 적게 될 때가 자주 있다. 나는 가능하면 그림의 상세하고도 정확한 정보를 내 블로그에 자료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다보면 미술책을 뒤져서 크기를 확인하고 옮겨적게 되는데 이때 미술품 크기 표기법의 두가지 특징을 만나게 된다.
(1) 미국의 미술책에 표기되는 그림 크기는 '인치 (inch)'로 표기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사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센티미터에 익숙하기 때문에 인치표시는 감이 잘 안온다.
(2) 친절하고 사려깊은 미술책 편집자는 고맙게도 '인치'와 '센티' 두가지 표기를 해 놓는다. 이런 자료를 보면 참 고맙다. (꾸벅꾸벅. 굽신굽신.) 그런데 내가 들여다보니 이들은 평면, 네모의 크기를 표기할때 '세로 x 가로'의 양식을 따른다. 그러니까 일단 높이(세로)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폭 (가로)가 나온다. 세로-가로로 표기를 하는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네모의 크기를 말할때, 가로-세로라고 저절도 말하게 된다. 한번 해보시길. 당신은 세로가로 라고 말하는가 아니면 가로세로 라고 말하는가? 한국인들은 대개 '가로세로'라고 말 할 것이고, 따라서 크기를 말할때 일단 폭부터 말하고 그다음에 높이를 말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걸 세로-가로로 표시를 할까? 아니면 가로-세로로 표시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한국인인 내 스타일대로 '가로-세로' 표시를 한다. 미술책에 적힌 크기를 다시 내 식으로 순서 바꿔서 정리를 하는것이다. 그러면서 계속 헛갈린다, 내가 이것을 한국인인 나의 표준으로 바꿔서 고쳐 쓰는것이 타당한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는것이다. (한국에서는 미술품 크기 표시할때 어떻게 할까?)
그래서 이런 세로가로냐? 가로세로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면...이것이 어쩌면 한국인인 나와 세로가로로 살아가는 미국사람들의 사고에까지 영향을 끼치거나 혹은 우리는 그런식의 다른 인식구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 한국인인 나는 가로-->세로의 사고를 한다. 가로는 수평적 (horizontal) 상태이고, 세로는 수직적 (vertical) 상태이므로 한국인인 나는 수평적인 점에서 출발하여 수직적으로 점진 성장하는 사고를 한다. 이는 우리들의 '좌식'문화와도 연관되어 보인다.
* 미국인인 아무개는 세로-->가로의 사고를 한다. 어떤 계층 (하이어라키 hierarchy)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이들은 '입식'문화와도 연관되어 보인다.
한국인이 수평적 사고, 미국인이 수직적 사고를 한다고? 미국인이 계층적 (hierarchical)사고를 한다고? 오히려 한국이 위계질서가 뚜렷하고 미국인이 수평적인 질서를 유지하는것 아니야? 누군가 이런 반문을 할 수 있겠다 (나 스스로 내게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천만에 말씀이오~'이다.
한국인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불교적'인 가락이 있고, 천지 만물은 동등하다는 정서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벌레 한마리와 사람 사이에 큰 차이를 느끼지 않는 문화권이다. 만물이 동등하다는 말씀이다. 나는 그리고 그런 정서를 갖고 성장하고 자랐다. 그래서 나는 나를 수평적 정서의 인간으로 분류한다.
미국인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유일신' '기독교' 가락에서 출발하고, 기독교에는 '위계질서'가 분명히 존재한다. 위에 신이 있고, 그 아래 인간이 있고, 인간 아래에 천지 만물이 있다. 상하가 이렇게 뚜렷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수직적 정서를 가진 사람들로 분류한다.
그러므로 나는 가로세로로 사고하고, 미국인들은 세로가로로 사고한다. (단순화 시켜서 보자면 이런 측면도 있을수 있다는 것이다.)
목수의 집그림
신영복 선생님의 서화 에세이집 '처음처럼' 36페이지에 실린 그림

목수의 집 그림
노인 목수가 그리는 집 그림은 충격이었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반대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을 맨 나중에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목수는 목수의 안목으로 그림을 그릴것이고, 서양식 건축을 공부한 사람은 그가 배운대로 그림을 그릴것이고, 집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갖고 싶은 집 그림을 그리게 될것이다. 사람이나 사회, 집단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존재하고, 때로 그 차이는 우주의 폭처럼 크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 차이를 인지하게 될때 우주처럼 광대하던 그 차이의 간격은 '이해'로 메꿔질수도 있고 혹은 끈끈하게 화합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집 창가에 앉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온 생명체라면 지구는 우리에게 낯선 땅이고 우리는 후에 우리의 별로 돌아가 '지구에 갔었는데....' 즐거웠노라고 말하게 되기를...(천상병 시인처럼)
나도 모르게 갖는 생각의 고착화가 무서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은 주어진 생활 반경 속의 환경이라는 것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텐데... ^^
답글삭제어줍잖은 글이지만, 쓰신 글과 연관성이 있다 싶어 트랙백으로 글 하나를 남겨 봅니다.
지금 고이 주무실 시간이네요... ^^ 좋은 꿈꾸시길... (_ _)
trackback from: 생각의 같고, 다름의 미학적 접근?
답글삭제생각의 같고, 다름의 미학적 접근? 학문 중 미학이란 분야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영역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생각만으로 지금껏 겉도는 느낌입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한마디로 관심은 있으면서도 그 관심이란 측면에서 과연 내가 생각하는 미학의 관점과 나의 생각이 일치하는가? 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