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내 은사의 심술사나운 고양이

 

 

내 은사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셨다.  그러나 그가 혼자 지내는 것을 본 적은 없다. 그는 젊은시절에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피스코 (평화봉사단) 활동을 했으며, 귀국후에 학위를 받고 교수로 살아오면서도 아프리카 출신의 젊은이들을 집에서 거둬왔다. 그의 집에서 여러명의 아프리카 출신 박사들이 배출되어 본국으로 돌아갔다.  대학 근처에 있던 그의 집에는 넓직한 뒷마당이 있었고, 그는 고양이들을 키웠다.  그러니까 이런식이었다, "뒷마당에서 고양이 소리가 나서 가보니 어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놓았더라. 그래서 어미와 새끼 한마리는 내가 키우기로 하고 다른 새끼들은 이웃집에 입양을 보냈지... 그 놈들  수의사한테 가서 체크 받느라고 몇백달러나 날아갔네..."  (미국에선 개나 고양이 한마리 전체적인 검진하고 기본 예방 접종 시키면 족히 300달러가 깨진다.)

 

내가 대학원생이던 시절, 은사댁을 편안하게 드나들었는데, 그집의 몇마리 고양이들중에 아주 무시무시한 고양이 한마리가 있었다.  나이가 많은지 털도 뭐랄까 빳빳하고, 바늘같고, 눈빛도 사납고 무시무시했으며,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싫어했다.  내가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므로 개나 고양이도 역시 사람을 알아보고 가까이 다가오고 그러는 편인데, 이 고양이는 정말 사나웠다.  나도 가까이 다가갈수 없었다.

 

어제는 은사께서 몇년만에 나를 보시고는 컴퓨터를 열어서 "그동안의 밀린 사진들을 모두 보여주마" 하시면서 내가 떠나온 학교, 도시, 사람들, 풍경들을 보여주시는데, 그 수없이 많은 사진 파일들중에서 그 사나운 고양이를 발견했다.  모처럼 보니 그 사나운 고양이를 사진으로 본것만으로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 "이 고양이 무척 사나웠는데, 잘 있나요?"

교수: "작년에 죽었어."

나: "몇살이었나요?"

교수: "작년에 죽을때 열다섯살이었지."

나: "무척 사나웠는데... 늘 골이 난 표정이었는데, 죽었다니 딱하군요."

교수: (빙글빙글 웃으며) "오래 살았지 뭐..."

나: "그 고양이는 자기 주인 한테만 친절했나봐요. 그 고양이는 우리들(학생들)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교수: (빙글빙글 웃으며) "그 녀석은 나한테도 사납게 굴었어. 모두에게 사나웠지..."

나: "주인한테도 사나웠단 말인가요?"

교수: "나도 잘 건드리지 못했어. 늘 사나웠지."

나: (기가 막혀서 웃음을 터뜨리며) "주인한테도 사납게 굴었다구요?  그런데도 그놈을 정성껏 키우셨어요?"

교수: " 그 고양이는 주인이건 손님이건 무조건 사람을 싫어했어. 나한테도 죽을때까지 사납게 굴었지... 하지만, 사납게 군다고 고양이를 내쫒을수는 없지.  사납건 상냥하건 내 고양이니까 내가 책임을 져야지..."

나: 그런데 걘 왜 그렇게 골이 나 있었을까요?

교수: 몰라...하하하.

 

그런데, 은사께서 그 배은망덕하고 사납고 쌀쌀맞은 못생긴 고양이를 내치지 않고 15년을 키운 그 심성으로 '나'를 돌보는 것은 아닐까?  (사납건 상냥하건 내 고양이이니까 내가 책임을 져야지) 이 정신으로 나를 대하는 것은 아닐까? 

 

하여튼, 그 골난 고양이가 천수를 다하고 작년에 세상을 하직했다 하니 조금 쓸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고양이 죽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둘이 킬킬거린것을 그 고양이가 안다면 정말 기분 나쁘겠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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