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6일 토요일

스타벅스 카라멜 마키아또의 문제

 

 

새벽에 남편과 큰아이를 뉴욕행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고 와서, 이른 아침에 작은 아이를 또다른 행사장에 보내주고 돌아오는길 (작은 아이의 일정 때문에 올해 가족 휴가는 무산되고, 나는 집에서 그냥 소일하면서 보내고 있다).  천지에 쌓인 눈이 녹지도 않았는데 비가 여름비처럼 내리고, 빗물과 눈녹은 물이 강물처럼 도로를 덮는다. 자욱한 안개. 

 

그래서 자욱한 안개와

눈덮인 숲길과

토요일 이른 아침의 도로의 정적

 

그런것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단지 이런 풍경이 나의 '과거'의 한장면처럼 달콤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니,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읽다 나갔기 때문일거야)  그래서,  이런 시간에는 이른 아침 문을 여는 스타벅스에 들러서 뜨거운 커피를 한잔 사는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아주 특별한 날,  스타벅스에 가면 나는 갈등한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벅스 커피는 '아메리카노' 그란데 싸이즈.  언제나 어디서나 가장 깔끔한 맛.

그런데,

이렇게 비가 오고 안개가 끼고 천지에 눈과 비가 섞이는 이른 아침

나는 뭔가 '달아 미치겠는' 커피를 먹어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카라멜 마키아또'를 주문하는 그 순간에도 알고 있다.

그 카라멜 맛을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

나는 가장 작은 싸이즈를 주문하여 몇모금 먹다가 쓰레기통으로 직행시켜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꼭 '카라멜 마키아또' 그란데를 주문하고

그리고 그것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가볍게 후회를 한다. 먹지도 않을것을 왜 '톨'도 아니고 '그란데'로 주문한거니? 응?

 

 

결국,

카라멜 마키아또 그란데를 받아들은 나는

받자마다 뚜껑을 열고

허겁지겁

표면을 장식하는 '카라멜'을 긁어내서 쓰레기통으로 버리고 (나무로 만든 커피 젓개를 사용한다)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카라멜 맛에 약간 좌절하다가

그래도 많은 양의 카라멜을 제거했음을 자축하면서

커피가 식기전에 집에 도착하기 위해 비가 쏟아지는 주차장으로 달려간다.

 

이것은 스타벅스 카라멜 마키아또의 문제가 아니라,

멀쩡히 '싫어하면서도' 그것을 주문하고마는 '나'의 문제이다.

내게는 '삶이 주는 황당하도록 달콤한 어떤 유혹'이 필요한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미각하고는 상관없는 사항일것이다.

내 미각은 쓴것에 익숙해져 있어, 달콤함을 거부하지만

내 정신상태는 뭔가 달콤한것을 갈구하고 있는 것일게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 엉뚱하게도 카라멜 마키아또 그란데를 주문해놓고는

받자마자 카라멜을 긁어 버리는 무례를 범하고

그리고는 씁쓸한 아메리카노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들척지근한 커피를 앞에 두고

'삶에는 왜 똑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는걸까' 탄식을 하고 만다.

 

 

다음에는 절대, 절대, 절대, 달콤한 커피를 주문하지 않겠어... 네가 원하는 것은 아메리카노쟎아.  미식가들이 '걸레빤 물'같다고 악평하는 그 아메리카노를 너는 제일 좋아하쟎아.  하지만,  나는 또다시 미치게 달콤한 무엇과 내가 좋아하는 쓴 커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댓글 1개:

  1. 한 때 보이차를 열심히 마시다가..

    결국은 커피에 다시 굴복하고 있지요.

    술 마신 다음날은 정말 달달한 마끼아또에 끌리지요..

    절반도 못 마시지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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