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playmyself.textcube.com/entry/카메라-욕심
페이지에 보시면 우리 사과님의 고민 사항이 보이지요. (내가 페이지 끌어와도 되나 모르겠네요...)
사과씨님은 제가 생각하기에 전문가급 대포만한 렌즈 갖고 공격적으로 사진 찍던 전력이 있으신것 같아요. (저는 사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므로...)
http://playmyself.textcube.com/entry/카메라-욕심
페이지에 보시면 우리 사과님의 고민 사항이 보이지요. (내가 페이지 끌어와도 되나 모르겠네요...)
사과씨님은 제가 생각하기에 전문가급 대포만한 렌즈 갖고 공격적으로 사진 찍던 전력이 있으신것 같아요. (저는 사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므로...)
내가 우리 아부지가 자린고비였다는 흉을 몇번 공개리에 본 바 있다. (아빠 죄송~ ) 뭐 그런데 P선생도 그에 못지 않은 자린고비이다. (인정할건 인정하자).
내가 예전에, 학위 마치고 백수질할때, 마침내 이력서 보낸 곳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 하자고. 교육쪽 고급공무원 자리였다. 그런데, 면접보러 갈 마땅한 옷이 없었다. 봄철이었는데 봄 정장이 없었던 것이다. 뭐라고 걸치고 가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몰에 갔었다. P씨도 옷사준다고 따라 나섰다. 뭐 돌아보니 내 성에 차는 옷이 안보였다. 값에 비해서 흐지부지해보이고, 맘에도 안들고. 그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명품관쪽으로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 우덜은 거기가 '명품관'인지도 몰랐다. 이리저리 돌다가 거기까지 간 것이지.
거기 가니까~
내 눈에 들어오는 옷들이 많더라 (-_-). 그래서 뭘 한가지를 입어봤거등. 흥, 맘에 들었으. 가격표좀 보자, 270 달러. 옳거니...쫌...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취직해야 하니까, 인터뷰 하러 다닐때 입을거니까...그래 사자.. 뭐 이러고 혹시 할인은 안되는지 다시 가격표를 들여다보는데
오잉?
요것이 270 이 아니고 2700 이여?
난 세상에 상의 한장에 2700 달러짜리 옷이 있을수 있다는 상상도 해보질 못했었던 것이니.
그런데 그곳을 둘러보니 2700은 '껌'값이더라. 그보다 더 비싼것들이 수두룩 했다.
그런데 역시 색상 상쾌하고 보기에 좋긴 하더라.
그래서 내가 고르고 골라서 천달러쯤 하는 정장용 상의 (블레이저)를 하나 찾아냈다. 이거 입고 나머지는 집에 있는 것으로 대충 차리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가지고 "이거 하나 사볼까?" 했더니, P 선생왈,
"야, 야, 나중에 취직해서 돈 많이 벌면 그때 사입어. 이걸 아직 취직도 못했으면서 ..."
(오오 백수의 설움) 나는 옷이 없어서 취직을 못했다고, 모든것은 인터뷰용 옷이 없기때문이라고 옷 없는것을 탓하며 그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는 천달러짜리 옷을 사는것은 '바보짓'이라면서 내 등을 떠밀어 그 명품관을 나서게 만들었다. 나중에도 그는 절대 그쪽에 안간다. 하기사, 나 역시, 그 돈 주고 그 옷을 사입고싶지는 않았다. 그 때 집에서 대충 블라우스하고 스커트 입고 가서 면접했는데, 내가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는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영주권자/시민권자가 아니고 외국인이라서 뽑을수가 없다고 했다. 그들로서도 어쩔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옷 안사길 잘했다...)
아무튼, P선생은 나한테는 그나마 후한 편이지만, 자기 자신은 구두 한켤레를 10년도 넘게 신고, 일년에 갈아입는 셔츠가 달랑 몇장 밖에 안되는 사람이다. 내가 끌고 가서 옷을 사주려고해도, 입을거 많다고 안산다고 황소처럼 고집을 부린다. 운동화도, 한쪽발이 아프다면서도 5년넘게 한켤레만 끌고 다닌다. 난 솔직히 좀 '챙피해서' 옷을 챙겨입혀주고 싶은데, 자기는 인생 편하니까 신경쓰지 말랜다. 뭐 그래서, 포기했다.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몇번인가 몰에 나간적이 있다. 이제 떨어져서 사는동안 분명히 내가 돈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사고 독립해서 살아보겠다고 손가락빨고 쩔쩔맬것이 보이니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미리 옷도 사주고 그런다고 나갔다. (나 이제 학생 아니라서 쓸건 쓰고 사는데...하하.)
그러면 P선생이 나를 끌고 가는 곳이 어디냐. 아웃렛 명품관. 어쩐지 '아웃렛'과 '명품관'이 서로 아귀가 안맞지 않는가? 아무튼 우리들은 근처 아웃렛에 가서, 거기서 유명하다는 곳에를 간다. 거기 가면 제법 유명한 제품들이 아무렇게나 전시가 되어있다. 뭐 수년 묵어서 땡처리도 안되는 명품들이겠지... 나는 시들하다. 관심이 없다.
그런데 P선생은 혼자 기웃거리다가 말고, 옷들을 골라낸다.
"이거 입어봐라! 이거 당신한테 딱이다!"
그런데, 그가 골라내는 옷들은 정말 나한테 딱 맞는 것들이다.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나 색감을 그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정확히 골라낸다. 나는 처음에는 '넝마'에서 옷고르는것 같아 시큰둥하게 쳐다보는데, 일단 그걸 내가 걸치면 내 얼굴이 살아난다. 나한테 잘 어울린다는 말이다. 지금 내 옷장에 P선생이 그런식으로 골라준 옷들이 몇가지가 있다. 대개, 여름에 고른 '겨울옷', 아니면, 겨울에 고른 '여름옷'이다.
내가 현재 입고 있는 니트 블레이저는 한여름만 제외하고 나머지 계절에 입을만한 옷이다. 색상은 봉숭아 물들인것같은 화사한 주홍색. (진한 오렌지색). 이거 얼마 줬더라? 50달러도 안줬을거다. 원래 붙어있던 가격표는, 그 열배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뭐 한 10년전에 출시되어 이리저리 안팔려 돌아다니다가 내 손에 들어온 것인지도 모르지. 뭐 제법 유명한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내게 이런 따뜻한 옷이 몇가지가 더 있다. P선생이 계절 바뀌고 추워지면 입으라고 '큰인심'쓰고 50달러 선에서 몇가지 사 준 것이다. 다 유명 브랜드 제품이고 정가는 꽤 비싼것들이다. 나는 그저 땡처리-- 막장-- 떨이-- 최종가에서 사는 것일뿐...
내가 기억하기로 이 옷은 워싱턴 외교가의 대사님 사모님들이 꽤나 좋아하는 브랜드이다. 하하하.
오늘, 날이 쌀쌀해서, 마침내 이 옷을 꺼내 입었다. 나한테 잘 어울린다.
P선생 보시고 흡족해하시라고 한장 올려본다. 나중에 찬홍이한테 풀샷으로 찍어보라고 하던지... (원래 미국여자들도 부러워하는 몸매라서, 옷걸이가 좋으니까 넝마를 걸쳐도 명품이 돼요, 네~ )
아, 나 이러다가 워킹 관련 돌팔이 전문가 반열에 오르는 것 아닐까?
걷기, 달리기 운동과 관련하여, 신발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
일전에 내가 새로운 러닝화를 사면서, 그 운동화를 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간략히 끄적인 적이 있다. 나는 제법 푹신하고 편안한 워킹화를 작년에 장만한 적이 있다. 가격도 50달러가 넘고 (내게는 50달러가 넘어가면 무조건 비싸고 좋은것이다), 여러모로 내 맘에 들었다. 신발을 신었을때의 안락감도 좋았고.
문제는, 이 신발을 신고 5마일 이상을 걸으면 왼발의 네번째 연약한 발가락의 동글동글하고 통통한 살이 이리저리 눌리면서 물집이 잡히고, 더 나아가 굳은살이 박히면서 아프기까지 하는 것이다. 다른 곳은 아무 문제가 없다. 유독 그 부위만 그러하였다. 나는 신발끈을 느슨하게 해본다거나 여러가지 방법으로 문제를 개선해보려 애 썼다. 내 네번째 발가락은 물집 잡히고, 결국 진물이 흐르다가 굳은살이 박혀서 딱딱해지고, 굳은살이 떨어져나가면 쓰리고, 다시 생살이 무렵 물집이 잡히고,...이걸 계속 반복했다. 그 운동화만 신으면 그랬다. 특히 매일 빠짐없이 나가서 걸었던 8월과 9월 사이에 이런 악순환이 정착이 되었는데, 나는 막연히 내 발이 신발에 익숙해지기를 바라고 기다렸다 (나는 가끔 아주 천치같이 굴 적이 있다.)
내가 돌이켜보면, 이 신발을 신기 전에는 아주 날렵한 트래킹화를 신었었는데, 그 신발 진짜 가볍고 편하고 좋았다. 그당시에도 무지막지하게 걸어 돌아다닐때였다. 그 신발은 단 한가지 흠이라면, 다 좋은데, 그 신발의 경우 양쪽발 앞부분 중앙쯤에 굳은살이 박였다. 그런데 물집이 잡히거나 아픈것은 아니고 그냥 그 부분이 조금 딱딱해지는 정도였다. 그 신발은 결국 나중에 여기저기 해져서 운명을 다 하고 말았다.
그리고나서 문제의 워킹화를 장만했던 것인데, 그 워킹화를 신은후에는 발바닥의 굳은살이 박히던 증상이 없어졌다. (아하 신발마다 개성이 다른거구나...) 그대신 왼발 네번째 발가락이 고문을 당한 것이지.
그러니까. 신발마다 디자인이나 구조에 따라서, 내 발의 어떤 부분에 잘 맞지 않아 굳은살이나 물집등 부작용이 따를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장만한 러닝화는, 내 생애 최초로 정품매장에 가서 백달라 가까이 정가 다 주고 산것인데, 신어본 결과, 요즘, 네번째 발가락의 굳은살이 사라지고 있다. 어딘가 아프거나 불편한 것도 느끼지 않는다. 이 신발이 나하고 잘 맞는가보다. 점원과 상의하여 발 사이즈를 재보고, 그가 권하는 사이즈를 선택한 것이 제대로 맞았나보다. 그래서 나는 내 새 신발에 대하여 고마워하고 있다. 발에 생겼던 굳은살이 사라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의 결론이 뭔가하면,
만약에 어떤 운동화를 신고 운동을 하는데, 발의 예상치 못한 부위에 평소에 없던 곳에 물집이 생기거나 굳은살이 습관적으로 박히거나 그러면,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마시라는거다. 분명 그 신발의 구조와 내 발의 구조가 서로 잘 안맞아서 그러한 것이다. 그 신발이 뭐 이상해서 그런것도 아니고, 싸구려라서 그런것도 아니고, 뭐 특히 문제가 있어서 그런것도 아니다. 단지 내 발하고 잘 안맞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신발을 내 발에 맞는 것으로 바꾸면 굳은살이 사라지고 아무런 통증도 안느끼게 될 수도 있다.
신발값 아끼다가 귀한 발 고생시키지 마시고...이럴때는 발도 좀 신경을 써줘야, 그 발이 나를 데리고 천리밖 구경을 시켜줄 것이다.
내 친구 YJ가 비오는 이밤에 뜬금없이 이메일로 날려온 노래, 김정호의 하얀 나비.
아니 뭐여, 왜 이노래를 나헌테 보냈는감? (하하하)
YJ가 쓸쓸한가보다.
난, 잘 놀고 있응께로.
YJ님 쓸쓸하면 놀러오셔. 우리집에 와인 있응께로. :)
세이프웨이 (Safeway) 그로서리에 씨리얼 사러 나갔다가, 진열대를 일없이 기웃거리던 중, 아마씨 (Flax seed) 를 발견하였다. 통씨앗도 보이고, 밀가루처럼 빻아놓은것도 보여서, '뭘 사면 좋으려라' 고민 좀 하다가 통씨앗을 한봉지 사와봤다. 5달러 미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씨앗이 좋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어서, 그냥 사 본 것이다)
집에와서 웹으로 아마씨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보니, 이것이 암을 이기는 좋은 식품으로 이미 한국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던 모양이었다 (나만 몰랐군...)
통씨앗은, 샐러드나 씨리얼에 섞어 먹어도 좋고, 그냥 한줌 입에 넣고 우물우물 껌처럼 씹다가 삼키는 식으로 먹으면 되는 듯 하다.
분말로 된 것은 수제비나 빵 만들때 섞어서 반죽하면 좋을것이다. 혹은...내가 짱구를 굴려봤는데, 나물 무칠때 참깨, 들깨 대용으로 이 아마씨 가루를 듬뿍 뿌려주면 좋을것이다.
아마씨앗의 효용은
* 오메가 쓰리가 생선의 세배만큼 많다고, 어마어마한 오메가 쓰리라고 (-.-)
* 유방암, 전립선 암, 대장암, 뭐 이런 것을 예방하는데 좋다
* 오메가 때문에, 두뇌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 피부에도 좋다고 한다. 아토피에도 좋댄다.
* 입에 넣고 한참 씹다 삼키면 구강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치석 제거도 되고, 구내염도 방지해주고.
* 물론 섬유질도 많고.
뭐 대략 이리저리 다 좋다는 말인것 같다. 다음에 그로서리에 나가면 '분말'로 된 것도 한봉지 사다가 뭐, 요리할때 깨소금 대신에 써본다거나, 수제비 반죽할때 듬뿍 넣어볼까 한다. 된장국 끓일때 넣어도 좋을것 같다. 뭐 이리저리 넣어 먹겠다는 것이지. 생각난김에, 내일 저녁에는 아마씨가루를 넣은 수제비를 만들어 호박 썰어넣고 먹어볼까...
그러면, 아마는 뭔가...
http://www.herbs-hands-healing.co.uk/pictures/gallery/flax.jpg
이런 한해살이 들풀이라고 하는데, '아마'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줄기는 '마'직물의 원료로 사용된다. 꽃도 이쁘고, 줄기는 사람의 옷이 되어주고, 씨앗은 우리의 양식이 되어주니, 참 고마운 식물이다.
아침에 비가 내렸다.
나는 수업이 있는 날에는 옷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학생들이 몇시간씩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데, 내가 후줄근하고 우울한 표정이면 학생들 역시 유쾌할수가 없을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진 옷 중에서 색깔을 잘 골라서 맞춰서 입고, 구두도 신경써서 맞춰서 신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우울한 날씨였기 때문에, 따뜻한 빨간색 얇은 스웨터를 꺼내입고, 스커트를 입고. (수업 없이 연구실에 나가는 날엔, 그냥, 대충 바지입고, 편한 신발 끌고 -- 전혀 다른 인간) 내가 스커트를 입는날은 그것이 순전히 학생들을 위한 팬써비스 차원이라는 것을 내 학생들은 알까?
그런데, 요새 며칠, 인터넷으로 니만 마커스 웹사이트를 들여다보며 빨간 핸드백 하나를 고르고 있었다. 그냥. 빨간 가죽 핸드백 하나가 갖고 싶어서. 꽤 비싸지... 그래서 군침만 흘리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빨간 가방 한개를 장만하고 싶어서, 틈틈이.
***
어제 저녁 모임에서는 간단한 성격 검사를 했는데. 몇가지 분류 양식중에서, 나는 내 평소의 소행머리와 관련해서 나의 성향을 짐작할수 있었다. Intellectual 이 가장 높은 점수가 나올걸 아마도. Sociable 이라던가 Interpersonal 같은 성향은 낮은 점수가 나올걸 아마. 뭐 대략 짐작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사 결과,
역시 내가 예측했던대로 나는 지식을 중시하고 지식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intellectual 성향이 가장 높았다. 그런데, 내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성향도 나왔다. Intellectual 다음으로 가장 높은 점수가 나온 성향이 Serving 이었다. 막후에서 말없이 일하는 성향. 남한테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성향. 오, 내가 이런 면이 있었던걸까? 나는 스스로를 매우 이기적이고 불친절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편인데, 내 성향 점수는 Serving 이 매우 놓다. 어쩌면...나는 봉사정신이 내재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문제를 골똘히 생각해봤다. 나는 나쁜짓을 많이 한 사람이긴 하지만, 어쩌면 나에게는 봉사하려는 성향이 태어날때부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으로는 내가 예측한대로 '직선적인 (Direct)' 성향. 의견을 쉽게 굽히지 않고, 남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밀어붙이는.
그러니까 나는 나를 지식에 기반하고 직선적인 (한마디로 제 머리만 믿고 잘난척하는) 인간쯤으로 분류하고 있었는데, 대략 나의 추측이 들어 맞았지만, 예상외의 Serving 성향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던거다. 뭐 새로운 자아발견이었다.
아, 그런데 내가 참석자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을 먼발치에서 회의 주도자가 관찰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모임이 끝난후, 나한테 발표를 해보라고. 그래서 대략, 내가 날 잘 몰랐는데, 아마도 어쩌면 나는 내가 모르고 있던 나의 성향을 좀더 사회를 위해 보탬이 되도록 키워보고 싶다는 아주 상투적인 얘기를 하고...(과장해서) 천둥같은 만장하신 신사숙녀 여러분의 박수를 받았다. 흠...그렇군...
***
나는 오늘도 수업마치고, 귀가하여 책상앞에 멀거니 앉아있다가, 니만 마커스에 들어가서 빨간가방을 고르고 있었다. 니만 마커스 가방. 싼것이 오륙백달러, 눈에 띄는 것은 천달러 이천달러...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데, 나 세금 환급받은 걸로 이참에 명품 하나 지르고 신문에 나봐? 선생주제에 주제파악 못하고 수천달러짜리 가방 샀다고 대중의 지탄을 한몸에 받으면서 유명인사로 거듭나봐? 뭐 이런 상상까지~ 명품녀 등극?
온갖 아름다운 상상을 하면서 컴퓨터 모니터의 빨간 가방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르..
(내가 집에서 전화 안받는다는것 몰라? 왜 전화야? ---> 무시하고 안받는 나)
다시 10분후 따르르..
(밤새 전화해봐라, 내가 받나...나 전화 안받는 사람인거 아실텐데..--> 역시 무시)
다시 10분후 따르르..
(역시 무시)
30분후 따르르...
(숨이 넘어가나? 왜 저녁내내 전화를 하시나?)
그래서 마침내는 전화를 받았다. (만약에 이글을 읽으시는 독자중에 내 전화번호를 아는 분이 있어서 내게 전화를 걸었을때, 내가 바로 받았다면, 당신은 그날 복권을 사셔도 좋다. 운이 튼 것이다. 하하하. 나는 수업중에도 통화가 불가하고, 내가 책을 보거나, 오피스에서 뭔가 열중해 있거나, 여러가지로 열중해있을때, 그때는 아무리 전화벨이 울려도 받지 않는다. 원래 전화 매너가 낙제점이다. 난 전화에 대한 불치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렇다. 난 전화가 싫다.... 꼭 필요한 사항 외에는 건드리지도 않는다... 내 오피스 전화도 내가 치워버렸다. 방해받기 싫어서... 내가 전화를 안받는다고 내가 그 사람을 거부하는것도 아니다. 단지, 나는 전화가 싫은것이다. 마지못해서 받을뿐이다.)
이리저리 한참 객적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던 그 전화를 건 분이, 우물우물하더니 마침내 다급한 소리로 그러나 발음도 불분명하게 뭔가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부탁 할 것이 있다고. 그래서 말씀하시라고 그랬더니, 여전히 우물우물 자꾸만 우물우물 잘 안들리게 뭐라고 그러시더니, 요지는 급히 돈이 좀 필요하시다는거다. 얼마나 다급하면, 나한테...
그래서 걱정하지 마시라고, 알았으니, 내가 내일 아침에 날 밝는대로 은행에 들러서 그 문제부터 처리를 하겠노라고 대꾸했다.
나는, 성장하면서 남의 부탁이나 요구에 거절하는 방법을 제대로 익혔다. 나는 쌀쌀맞게 거래하고 거절하고 그러는 기술을 익혔다. 그런거 잘 못하면, 사회생활하는거 몇배 힘들어진다. 배우기도 힘들고 실천하기도 힘든데, 지금은 분별하여, 잘 해내고있다. 여성들은 특히 이런 문제를 어려워한다. 나는 여성의 취약점을 잘 알기때문에 이런 약점을 개선하려고 스스로도 무척 노력을 기울였었다. 그런데, 나는 사람이 언제 거절하고 언제 군말없이 응해야 하는지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편이다. 얼마나 암담했으면, 나한테. 그러면 답은 하나밖에 없는거다. 군말 말아야 하는거다.
***
그래서,
결론은 뭐냐하면, 빨간 명품백 하나 장만하려던 것을 깨끗이 포기하고 말았다. 명품백 날라갔다. 하는수 없지.
하늘나라에 있는 잘생긴 우리 오빠한테 한가지만 쭝얼거려보자: 오빠, 나중에 나 빨간 가죽가방 하나만 갖다 줘. 아주 이쁘고 좋은걸루다가. 내 빨간 스웨터에 아주 잘 어울리는 놈으로. 오빠. 알았어?
그림은 더블클릭하면 커집니다
The Mississippi (미시시피강, 1925)
John Stuart Curry (1897-1946)
Tempera on canvas mounted on panel
Saint Louis Art Museum
2010년 6월 4일 RedFox 촬영
http://americanart.textcube.com/241
http://americanart.textcube.com/254
존 스튜어트 커리는 (http://americanart.textcube.com/254) 페이지에 소개된 바 대로 미국의 중서부 (Midwest) 지역을 대표할만한 세명의 '지역주의 화가'중 한 명이었다. 세인트루이스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발견했을때, 나는 그제서야 커리의 '정수'가 될만한 작품 앞에 섰다는 느낌에 눈물이 핑 돌았다. 화집이나 인터넷에 많이 떠도는 이 그림을 나는 진정 내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이 그림에 애착을 갖고, 내 눈으로 보고 싶어서 안달했던 이유는, 이 그림에서 커리의 세계관을 확인 할 수 있을것 같아서였다. 일단, 이 그림에서는 미국의 중서부를 가로지르는 젖줄과도 같은 미시시피강. 그리고 홍수로 강이 넘쳐서 집이 물에 잠긴 상황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런데, 이런 광경을 우리는 어디선가에서 본 적이 있지 아니한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2005년 미국의 '깊은 남부 Deep South' 로 일컬어지는 루이지애나를 강타했을때, 루이지애나 뿐 아니라 인근의 알라바마와 미시시피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그해 여름 나는 플로리다에 있었고, 나는 비교적 안전한 북부 내륙에 있어서 태풍을 창밖으로 태평하게 구경하는 처지였다. 내가 텔레비전을 보거나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때, 남부의 사람들은 길게 행렬을 지어 북으로 피난을 왔고, 심지어 내가 살던 텔러허씨 (Tallahassee) 시의 호텔과 여관도 피난민으로 북적였었다.
당시 루이지애나에서는 바로 위의 그림과 같은 풍경이 실제로 생생하게 연출되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시앤앤의 애송이 앵커였던 앤더스 쿠퍼가 현장에 투입되어 보도를 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어느 의원이 "적십자사에서도 구호품을 보내왔고, 아무개 인사도 구호품을 보내왔고, 아무개 의원이 방문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자 앤더슨 쿠퍼가 벌컥 화를 냈다, [지금 사람이 물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고, 사람의 시체가 물에 떠 돌아다니는데 당신들 정치인들은 지금 누가 방문을 했다는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는거냐? 지금 정신이 있는거냐!] 뭐 이런 요지였었다. 앤더슨 쿠퍼는 바로 그 발언으로 우리들에게 강하게 기억되었고, 그후에 메인 앵커자리로 가게 되었었다. 아, 앤더슨 쿠퍼가 온종일 보여준 남부의 태풍 참상은, 너무 가슴이 아파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었다. 바로, 이 그림과 같은 장면이 온종일, 며칠간, 몇주간 계속 되었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돈없는 흑인들이었고, 이들은 차가 없어서 피난도 가지 못한채 그자리에서 '절망'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었다. 도대체 이 수퍼 강대국 미국에서 1925년에 그려진 그림과 똑같은 풍경이 2005년에도 (80년이 지났다구...)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역시 주연은 흑인들이었다. 흑인은, 다른 말로 소외된, 가난한, 변두리 힘없는 사람들이다. 이쯤되면, 존 스튜어트 커리의 이 한장의 그림이 '예언적'이기까지 하다는 느낌이 들고 마는 것이다.
우리들은 시인(詩人)을 예언가 (prophet)이라고 일컫는다. 시인뿐만이 아니다. 미술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은 seer (바라보는자)이고 그리고 예언가이기도 하다. 성찰하는자이고, 깨닫는자이며, 제시하는 자이기도 하다. 때로 이들은 자신이 예언가인줄도 모르고 예언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미술관을 서성이며 그림이나 작품 앞에서 보내는 시간, 그 시간에 우리는 미술가 혹은 미술품과 만나는 것만이 아니라, 작품 너머의 보편적 질서에 다가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2010년 9월 26일 RedFox
이미지는 더블클릭하면 커집니다.
Cradling Wheat, 1938
Thomas Hart Benton (1889-1975)
Tempera and oil on board 31 1/4 x 39 1/4 inches
Saint Louis Art Museum 에서 2010년 6월 4일 RedFox 촬영
http://americanart.textcube.com/283
http://americanart.textcube.com/241
http://americanart.textcube.com/253
http://americanart.textcube.com/252
상기의 페이지들에서 Thomas Hart Benton 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토마스 하트 벤튼은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군에 속하고, 특히나 지역주의 (Regionalism) 삼총사 (Benton, Wood, Curry)중의 한 사람으로 미국의 중서부를 대표 할 만한 화가로 기억되며, 벤튼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또 한가지는, 흩뿌리기의 화가 Jackson Pollock 의 스승이었다는 점. 이상의 내용이 위에 연결된 페이지에 소개된 바 있다.
바야흐로, 때는, 추석도 지난 구월 하순.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가을걷이로 한창인 시절이다.
그림 설명은 따로 필요 없을듯. 벤튼 특유의 물결치는 듯한 대지와 강물과 언덕과 하늘의 구름, 나무들. 심지어 농부들의 발치의 들꽃들 마저 물결 모양으로 휘어진다. 우리 신체의 근육이 직선형이 아니라 이리저리 엉키고 굽이치듯, 농부들의 옷가지와 몸동작마저 강인하게 비틀려 있다. 벤튼의 이러한 '휘어지는' 화풍은 잭슨 폴락이 사실주의적 그림을 그릴때 잠시 보이는듯 하다 사라지고 미국 미술사에서 '벤튼'이라는 한 획으로 남게 된다.
2010년 9월 26일 RedFox.
돌이켜보면, 옛날에, 우리 엄마가 내 나이쯤이었을때, 엄마는 자꾸만 목이 가렵다고 하셨다.
"아유 목이 가려워. 나는 금 목걸이가 없어서 목이 가려운가봐..."
엄마는 목과 빗장뼈 사이의 움푹 파인 곳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자꾸만 목이 가렵다고 하셨는데, 하필 목이 가려운 이유를 보석 목걸이가 없어서 그렇다는 희안한 논리로 발전 시켰다.
그러면, 유신시대의 근검절약 정신으로 똘똘 뭉쳤던 가장이었던 우리 아버지는, 그따위 보석 목걸이를 탐하는 것은 골빈당들이나 하는 짓이며, 버러지만도 못한 태도라는 식으로 무시하고 지나가곤 했다. 엄마는 중년이 다 지나도록,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킬때까지 변변한 보석 반지나 보석 목걸이가 없었다. 엄마도 다이아몬드 반지를 하나 결국 얻어 가지셨는데, 그것은 우리 사남매를 모두 결혼 시키고 난 후에, "평생 애 썼다"며 아버지가 사 준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우리 엄마에게 제대로 된 변변한 '보석 목걸이'를 생애 최초로 사 드린 사람은 우리 오빠였다. 오빠가 대학생이 되더니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아르바이트 해서 첫 수입이 발생했을때, 그 돈으로 엄마에게 자수정 목걸이를 하다 사다 드렸다. 대학생이 살수 있는 자수정 목걸이가 얼마나 비싼것이었을까마는, 아무튼 그래도 그것이 엄마 생애에서 가장 비싸고 귀한 목걸이였을것이다. 그리고 우리 오빠는 아버지한테 천둥같은 꾸중을 들었던바, "누가 너보고 아르바이트 하랬냐. 사내자식이 꿈이 커야지. 그까짓 몇 푼 번다고 시간을 허비를 하고 다니느냐. 그 시간에 좀더 원대한 꿈을 꿨어야지. 그 까짓 목걸이 산다고 그 아까운 시간에 ...." 아무튼, 우리 아버지가 세계 챔피언급 자린고비였으나, 그러나 '돈' 알기도 우습게 알았던 독특한 위인이었던것을 사실이다. 아버지는 돈을 무척 아끼고 귀하게 생각한 분이었지만, 사람이 돈에 휘둘리거나 몇푼 안되는 것에 정신이 나가서 본질적인것을 잃는 것을 경계하셨다. (아버지가 뭐라거나 말거나, 나는 대학 4년 내내 알바하고 돈 벌러다니고 그랬다. 돈 달래기 치사해서. 하하하.)
2004년 여름, 플로리다에서 석사공부를 마칠 무렵 여름에 나는 목이 몹시 가려워서 피가 나도록 박박 긁어대곤 했다. 목과 빗장뼈가 만나는 중앙의 움푹 파인 부분, 그 부근이 미치게 가려웠다. 내가 보기에 스트레스성 같았다. 나름 힘든 공부를 꾸역꾸역 하느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그런 식으로 돋아나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2년 가까이 내 목이 늘 붉게 긁힌 상처가 지속 되었는데 2006년에 한국에 갔을때, 약사가 보더니 '햇빛 알러지'라면서 연고를 바르라고 했다. 크림 연고를 바르니 가려움증이 완화가 되었다. 햇빛 알러지가 왜 갑자기 발생하는가...결국 햇빛과 스트레스가 결합을 해서 생긴 일이겠지.
플로리다를 떠나 버지니아에서 삼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목의 알러지를 잊고 살았다. 여기는 플로리다가 아니니까... 나는 안도했다. 그런데, 보름쯤 전에, 따가운 햇살아래를 한시간쯤 산책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목이 가렵더니 벌겋게 달아오른다. 오이 맛사지도 해보고, 감자 맛사지도 해보고, 냉 찜질도 해보고, 여러가지 방법을 써 봤으나, 문제의 부위가 습진처럼 번지려고 한다. (한국에서 몇년 전에 사온 햇빛 알러지 약이 약통에 남아 있을턱이 없지...몇 년 안 썼으니, 어디 처박혔는지도 모를일.) 혹시나 싶어서 한국 마켓의 김**알로에 화장품 판매원이 그냥 써보라며 주었던 알로에 크림 샘플을 발라봤는데 소용이 없었다.
고생 할 만큼 하다가, 이틀전에 그로서리 약 진열대에 가서 이 크림을 하나 골랐다. 5달러쯤 하던가. 껍데기를 보니 sun-burn 도 해당이 되길래, 이것좀 바르면 나으려나 싶어서 하나 샀다. 바르고 이틀 지나니 가려움증이 물러나고 그대로 곱게 아무는 성 싶다. 고마운 크림이다.
엄마가 목이 가려웠던 이유는, 아마도 햇빛 알러지와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었을까?
http://www.paradisespringswinery.com/index.html
버지니아에는 크고 작은 포도농장 와이너리 (winery: http://en.wikipedia.org/wiki/Winery , 포도를 재배하여 와인을 제조하는 업소들)가 산재해 있다. 클리프톤이라는 자그마한 마을에 Paradise Spring Winery 가 좋더라는 소개를 받고, 바람을 쐴겸 한번 가 보았다. 집에서 대략 40분 거리. 들러서 잠시 쉬면서 와인 맛을 보고 바람을 쐬는데 한시간쯤. 다시 돌아오는 시간 대략 40분. 넉넉잡고 세시간이면 여유있게 가서 놀다가 올수 있겠다. 그런데 사실 이곳 말고도 집 주위에, 더 가까운 곳에 와이너리들이 흩어져 있으므로 생각날때 아무데나 다녀 와도 시골바람 쐬고, 와인 맛도 보고, 좋겠다는 느낌이다.
일단 내가 다녀온 와이너리 이용법을 소개한다.
한적한 농장처럼 보이는 와이너리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건물에 들어가면, 직원이 나와서 뭘 원하는지 묻는다. 시음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7달러에 일곱가지 와인을 맛보고, 와인잔은 가져갈수 있다고 설명 해 준다. 시음을 원하면 시작하면 되고, 원치 않으면 의사가 없음을 표시하면 된다.
시음전에 종이 한장과 연필을 주는데, 일곱가지 와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적혀 있고, 연필로 메모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차례차례 와이트 와인부터 레드 와인까지 일곱가지 와인을 마셨는데, 내가 방문한 날이 금요일인데 금요일에만 특별히 제공한다는 스파클링 와인 (sparkling wine)도 맛을 보여주었다. 스파클링 와인이
'샴페인'이 아닌가? 물었더니 샴페인은 '샴페인' 지방에서 나오는 것만 그렇게 부를수 있고, 같은 종류의 음료라도 샴페인 지방산이 아니면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부를다고 설명해준다. 샴페인이 스파클링 와인이구나... 한마디로 사이다처럼 톡톡튀는 와인이다.
이렇게 차례대로 먹어보는 것이 와인 시음이다. 나는 여덟가지 와인의 맛을 보면서 종이에다 각각의 맛의 특징을 내 식대로 기록을 해 봤다. 내 입맛에는 Cabernet Franc 라는 레드 와인이 가장 맞았던 것 같다. 맛이 진하지 않고, 텁텁하지 않고, 대체적으로 드라이, 마일드, 마신 후에 혀에 감도는 톡 쏘는 느낌이 맘에 들었다. 뭐, 그렇게 메모해 두었다는 것이지, 개별적으로 마신다면 그놈이 그놈일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는 와인이나 커피의 맛과 향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 죄다 그눔이 그눔이고, 있으면 땡큐다. Dry, mild...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무덤덤하고 부드럽고, 나중에 쏘는 맛이 좋다.)
시음을 마친후에 (혹은 시음을 생략하고) 와인을 한잔씩 주문하여 마실수도 있다. 와인 종류에 따라서 한잔에 5달러에서 9달러까지. 다양하다. Cabernet Sauvignon (카버네 소비뇽)을 한 잔 주문하여 마셨다. 그리고 이걸 한병 따로 사 왔다. 심심할때 마시려고.
이 와이너리에서 특별히 내 맘에드는 와인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뭐랄까...달콤한 어떤 와인을 찾고 있다. 달콤하면서 달지 않은. 뭐랄까, 내 혀 끝에만 달콤하게 느껴지되 매우 드라이한 그런 와인을 찾는다. 이런 맛은 세상 어디엘 가도 없을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와인은? ==> 백년만에 만난 애인이랑 마시는 와인이겠지.
와이너리에 소풍삼아서 간다면, 샌드위치나 과일, 스넥같은 먹을거리를 미리 챙겨도 좋다. 피크닉 백에 먹을것을 모두 준비하여 가서 와인 한잔을 시켜놓고 준비된 실내 테이블이나 야외 피크닉 테이블 아무데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피크닉을 즐겨도 된다. 그러니까, 여기가 와이너리 이니까, 이곳에 와인까지 가져와서 마신다면 실례가 되겠으나 그 외의 소풍음식을 가져오는 것은 실례가 안된다. (홈페이지에도 그렇게 명시되어 있다. 음식을 가져와서 즐기시라고).
이곳 매점에서도 지역 특산품인 치즈나 스넥을 판매하기도 하므로 맨손으로 와도 와인과 가벼운 안주를 사서 즐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워킹을 나갔다가 갔으므로 마침 가방에 사과가 두알 있었는데, 이곳에서 와인과 함께 치즈를 한덩어리 샀고, 치즈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과일이 '사과'라는 것을 기억해내고, 가방에서 사과를 꺼내어 즉석에서 치즈 조각과 사과조각을 섞어서 와인을 즐길수 있었다. 외부 음식을 가져다가 펼쳐놓고 점심을 즐기던 사람들도 있었다.
시골 농장에 있는 와이너라라서 한적하고, 조용하고, 실내에도 나직하고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아서 편안하였다. (신선노름.)
시음중
실내 구석의 기념품. 벽에 걸린 풍경화는 마치 와인 몇잔 마신후 알딸딸한 눈에 비친 풍경같다.
매력적이었다.
와인과 함께 파는 스넥종류. (상그리아도 팔더라...)
실내에서 편안히 와인을 즐길만한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포도밭
창고
내 친구 YJ와 함께 와인 시음을 하고, 와인과 치즈를 한가롭게 먹었던 와이너리 건물.
2010년 9월 24일 금요일 방문.
오늘이 생후 97일. 클레어.
엄마가 수업을 하러 가는 날이면, 클레어는 아빠의 직장에 와서 시간을 보낸다.
클레어의 아빠가 일하는 공간은 일시적으로 '탁아소'가 되고, 나는 가끔 애보는 아줌마가 된다. 고학력 탁아모이다. 컴퓨터 내장 카메라에 잡힌 클레어의 팔 놀림이 제법 생생하다.
클레어는 내가 컴퓨터로 카메라를 꺼내면, 거울을 보듯 들여다본다.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이 바뀔때마다 감지하고 뭐라고 반응 한다.
펄쩍거리기도 한다.
내 책상위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낼모레 백일쟁이 클레어의 장난감으로 변신한다.
내가 가장 발랄해지는 시간이기도 하고.
가끔 이 친구가 와서 내 공간을 아기 냄새로 가득 채워주곤 한다.
클레어, 요놈아 백일 축하한다. 다음에 올때 백설기 한덩어리 가져온나~
"요놈, 요 이쁜놈" (천상병 시인의 말씀)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내가 윤동주 시인을 발견 한 것은 중학교 1학년 어느 가을날의 일이다.
나는 어릴때부터 노래 가사나 시를 혼자서 외우는 것을 좋아했다. 뭔가 좋은 시나 노래를 발견하면 공책에 받아 적고, 다시 예쁜 공책에 정리하고, 외우고 그랬다. 그것이 내 취미 같은거였다. 가을 이맘때였나, 어느날 청소하다가 3학년 교실 복도를 지나치다가 복도에 걸린 시화를 발견했는데, 거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이런 시화가 걸려있었다. 서시. 윤동주. 그 시가 하도 아름다워서 청소하다 말고 공책에 그걸 베껴 적었다.
나중에 동네 책방에서 윤동주 시집을 발견했다. 우선 나는 그 '서시'부터 찾아 보았는데, 역시 맨 앞에 윤동주의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사진속의 윤동주는 참 잘생긴 '오빠'였다. 그 이래로, 내가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이 정해졌다. 윤동주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 곱상하고 착하게 생긴 사람. 섬세해 보이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 안성기 아저씨도 비슷한 분위기로 보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윤동주 시집도 샀고, 증보판 윤동주 평전도 함께 실린 시집도 사고 그랬다. 나는 평생 끌고 다니던 그 책들마저 지난번에 이사할때 그냥 남의 손에 넘기고 말았다. 나의 사랑하는 시인 소설가들이 내 곁에서 사라졌다. 하는수 없지. 인생 그런것이지.
윤동주의 시 중에서 <팔복>. 어릴때는 내가 마태가 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므로, 이 시를 볼때마다 '시가 네모 반듯하게 생겼다'는 생각만 하고 지나치곤 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요즘 나는 주문을 외듯 이 시를 혼자 중얼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길을 걸을때나 운전을 할때나 혼자 이 시를 생각한다.
윤동주 오빠가, 이 시를 적을때, 정말 슬펐나부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추석 차례를 찬홍이를 데리고 지냈다.
며칠전부터 열이 나서 뭘 제대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제 퇴근 무렵에 후다닥 장을 봐다가 아무렇게나 이리저리 놓고는 새벽에 일어나 부시럭부시럭 메를 짓고 토란탕을 끓이고, 고기를 굽고 그랬다.
한편으로는, 나한테 물려진 내 제사, 내가 내식대로 지내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이런 배포도 있고.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내가 내 책임은 다 할것이니~ 하는 배짱도 있고. (하...참말로 조상님들이 애로가 많으시다. 하하하.)
내가 설이나 추석 명절에 차례를 지내고, 제사를 지낼때, 제사 장볼때 빠지지 않는 것은, 캔맥주 아주 비싸고 특별한 것으로 하나. 진열장에서 무조건 비싼 것으로 고른다.
이 맥주는, 나이 마흔에 돌아가신 내 시엄씨 몫이다.
나이 마흔이 돌아가셨으니, 내가 그이를 뵈었을 턱이 없다.
혹시 길에서 모르는 사람으로 지나쳤던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와 남편은 어린 시절에 서로 모르는 채로 몇년간 한동네에서 산 적이 있었으므로, 혹시 모르는채로 서로 스치고 지난적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처음에, 시댁 친척 어르신들이 나를 종년 부리듯이 들볶을때, 스물 몇살 어린 마음에 모든것이 야속하고 원망스럽고 그랬는데 그때 내가 상상한것 ---> 나도 죽어라 죽어라 고생만 하다가 나이 마흔에 암에 걸려 돌아가셨다는 내 시엄씨처럼 이 집 식구들때문에 마흔도 안되어 달달 들볶여 홧병에 걸려서 죽고 말 것이다. 하하하. 아, 나는 생존하기 위해서 전투적으로 살아왔다. 하하.
내가 어느해 마흔을 넘기고 살아 있었을때, 나는 안도 했다. 좋았어. 난 버텨서 살아 남았다구! 헤헤헤. 시엄씨가 나를 안죽게 돌봤나보다. 시엄씨 땡큐!
그래서 차례나 제사때면 나는 시엄씨가 평소에 좋아하셨다던 맥주를 특별한 것으로 사는 것으로 나의 임무를 다 했다는 포만감에 젖고 만다. 어쨌거나, 나는 시엄씨 드리려고 맥주를 샀단 말이지. 내가 아니면 누가 우리 시엄씨 맥주를 사 드리겠냐구.
찬홍이 녀석은 한시까지 숙제하다가 자러 갔으니 내가 새벽부터 깨워서 심부름을 시킬수도 없고, 혼자서 집안 치우고 돌아다니면서 상 차리면서 끓이고 볶으면서 뱅뱅돌면서 차례상을 차렸다. 곁에서 심부름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재미가 없었다. 왕땡이만 발치에서 고기 냄새 맡고 걸리적거릴뿐.
나는 내가 살아 생전에는 여태까지 해 왔던 방식으로, 한국 전통대로 때가 되면 차례를 지내고 제사를 지낼 것이다. 나는 어릴때부터 제사 많은 집 외며느리였던 우리 엄마가 명절때, 제사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컸고, 나 역시 명절때면 추운 부엌에 웅크리고 엄마를 도와야 했으므로 명절의 기억이 유쾌할것이 없다. 지겨운 명절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당하고 사는 것을 봤으면 좀 깨달았어야 했는데, 멍청하게도 제사 많은 집 맏며느리가 되고 말았다. (천치같으니라고). 역시나 지겨운 명절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내가 마흔이나 채울까 하는 불안감까지. 하지만 나는 아무튼 여러가지 크고 작은 인생의 전쟁들을 치르며 생존했고, 현재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명절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 닥치면 하면 되는것이지.. (백전노장의 기개라고나 할까.) 닥치면 한다!
오늘 혼자서 박씨 문중의 조상들의 차례상을 차리다 보니, 문득 박씨 문중의 조상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글쎄 혼령들이 차례상에 오시는지 안오시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나는 naturalist 이고 혼령이 있거나 없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상을 차리면서 생각을 해 보는 것이지. 세상에 나같은 사람이 차리는 이 정성도 없는 차례상에 와 주신다니 말이다.
심수봉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고 노래불렀지만, 사실은, 남자는 항구이고 여자가 배인 것이다. 침팬지무리중에서 암놈은 때가 되면 무리를 이탈해서 다른 곳으로 간다. 제가 살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라서 여자가 시집을 '간다.' 여자가 제 터전을 떠나서 새로운 터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항상 그자리에 있는 것이 남자라는 존재들이다. 나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 암놈 침팬지처럼 박씨 문중에 머물면서 그 문중의 조상들의 차례를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보니 내가 박씨 문중의 은혜를 크게 입었다.
우리 친정아부지가 엄청 잘 나신 분이었다. 우리 집의 황제였고, 시골 문중의 영웅이었다. 참 인물도 잘나고 맨주먹으로 많이 이뤄내신 분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내가 유학가고 싶다고 했을때 돈 대줄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씀하셨다. 나는 원망은 안하지만 가슴에는 그것이 한으로 쌓였다.
가진것이라고는 산동네 오막살이의 오글오글한 가족. 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남편은 나를 인생의 파트너로 영입한 후에 몇년 착실히 고생을 시켰다. 하지만, 그 잘나신 우리 친정아부지도 감히 꿈도 못 꿨던 나의 유학 문제를 남편이 해결해주었다. 나는 훌륭한 부모님과 가족덕분에 잘 살아왔지만, 아무튼 나를 박사로 만들어준것은 남편이다. 그러니 내가 박씨 문중에서 받은 은혜가 크다. 요즘은 길거리에 널리고 깔린게 박사고 유학생이고 그렇다. 그것이 대단히 특별할 것도 없는 시대이다. 하지만 내게는 유학이나 학위가 내 일생의 꿈이었다. 나는 일생의 꿈을 이룬 극소수의 행운아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내 꿈이 기껏 거기까지였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 생전에 차례는 내 손으로 지낼것이다.
차례 지내면서 한국에 전화를 걸어서 지금 뭐 하고 있다고 생중계를 해 주었다.
왕땡이는 고기가 먹고 싶어서 멍멍
차례지내고 찬홍이는 서둘러 학교로 가고
나는 시엄씨 몫의 맥주를 음복하면서...
이제 상 치우고 학교에 간다.
딱 다람쥐만한 미니 푸들. 소민이네 개
하하, 수업 들어가기 직전.
한국에서 소민이와 세홍이가 사진과 함께 이메일을 보내와서, 기분 업(UP).
수업 마치고, 장봐다가 차례상 차릴 준비 해야지...
Dear 큰엄마
안녕하세요, 큰엄마? 저 소민이예요.
큰엄마 비록 지금은 한국에 계시지는 않지만 건강하세요.
그리고 추석인데 미국에서 즐겁고 알찬 추석 보내세요.
큰엄마 미국에서도 항상 즐거우시고 활기차시길 바래요.
큰엄마 건강하시고 사랑해요.
오빠들도 재미있는 추석 보내길 바래요,왕눈이도요.
안녕하세요,저는 세홍이예요.
추석인데 보지못해서 속상해요.
큰엄마 너무 보고 싶어요.
다음추석에는 꼭 한국에오세요.
그리고 건강하시고 형아들도 건강하라고 해요.
큰엄마 많이 많이 사랑하고요 다음에 또 만나요.
또 큰엄마 왕눈이 잘지내고있죠?
다음에 한국오면 우리집개 닉쿤이랑 왕눈이랑 산책시켜요. ^^
형님 안녕하세요??
유난히도 더운여름이 지나고 어김없이 추석이 오네요.. 워싱턴도 이번 여름 매우 더웠지요?? 한국은 올해 비가 많이 와요..
지홍 찬홍이도 모두 잘 있지요?? 하루가 다르게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에 지난 명절들이 생각이 나곤해요 ㅋㅋ
바쁘신 중에도 예리한 육감으로 명절상을 차리실 형님모습을 생각해봐요.. 저희도 여그서 모처럼 가족 모두 모이겠어요..
짐열심히 잔치요리?를 장만중이랍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원하시는일 잘 되시길 기도할께요..
자주 놀러온다 하면서 가정주부가 참 바쁘네염~~
요즘 수영배우는데요 증말 느므느므 재미있어요.. 하구나서 기력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리긴 하지만..ㅋㅋ
글구 세홍이가 부반장이되었어요..ㅎㅎㅎㅎ 용케도 아이들 조용히 시키려고 애쓰나봐요..
그럼 안녕히 계셔요...
2주전에 디시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에 갔을때, 서점에서 발견했던 책. 그 후에 Amazon Kindle 도착한 기념으로, 킨들 1번 으로 구입.
극단적 창조론자들이라면 불쾌감을 느낄수도 있겠으나, 조지아에서 영장류 (ape) 동물들을 연구하며 강의하는 네덜란드계 동물학자 Frans De Waal 가 자신의 평생의 연구를 바탕으로 영장류와 인간과의 관계를 들여다봤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인간의 가장 가까운 사촌인 침팬지와 보노보 중에서 침팬지가 공격적인 사회적 동물이라면 보노보는 평화를 애호하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은 침팬지와 보노보의 공격성과 평화지향성을 모두 겸비한 '존재'라는 것이다.
조지아의 에모리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가 내게 낯설지 않은 이유는, Savage 라는 학자의 조지아대학의 연구팀이 침팬지나 보노보의 '언어 사용 가능성'을 연구한 기록을 관심있게 본 적이 있고, 그가 책에서 논리정연하게 정리하는 생물학계의 쟁점들이 나의 속을 후련하게 해 줬기 때문.
생물학계의 쟁점은, (1)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중심으로 한, '모든 것의 원인을 생존기계의 원리'에서 찾으려는 시각 (2) 이에 반하여, 생명의 사회 문화적 속성에 중점을 둔 시각. 그래서 매트 리들리의 저서 제목중에는 nature via nurture 까지 등장을 하게 되는데. 프란스 드 왈은 이러저러한 이론들의 타당성과 문제점들을 짚으면서 진화생물학이나 사회생물학에서 놓친 논점들까지 열거하면서, 과학적 논리를 흔드는 영장류의 '감성 emotion'의 요소를 이야기 한다. 영장류 사회에서 감성을 바탕으로한 공감 (empathy)가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여러가지 사례들을 들려준다.
저자는 그가 관찰한 보노보나 원숭이 침팬지, 고릴라등의 행동 특성을 인류 사회의 고전, 상식, 시사적인 것들과 연계시키면서 영장류 동물들 (인간 포함)이 갖고 있는 '평화지향'과 '사회성'을 특히 부각시키고 있다. 그가 든 예 중에는 Sandel 의 Justice 앞부분 강의에 소개된 공익과 도덕성에 대한 딜레마의 에피소드도 들어있다. (당신이 여러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한 사람을 희생시켜야 하는 위치에 있을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 ) 생물학자(동물학자)가 아니더라도, 동물학에 지식이 없는 보통 독자라도 재미있게 읽을만한 책 (한국에 번역 출판이 되었을까? 되었겠지...괜챦은 책인데...안 됐으면 내가 번역하고 싶다...)
이태전에 흥미롭게 읽었던 책중에 Your Inner Fish 라는 책이 있었는데 이것이 2008년 출간되었고, Our Inner Ape가 2005년 출간된 것으로 보아, Our Inner Ape라는 책의 타이틀이 Your Inner Fish 라는 타이틀에 영향을 끼친것이 아닐까 추측을 하게 만든다. Your Inner Fish 역시 내게는 아주 흡족한 책이었다. Our Inner Ape가 영장류의 행동을 통하여 인간사회를 들여다볼 기회를 갖게 해 준다면, Your Inner Fish는 우리 생명에 내재한 역사성, 그 영원과도 같이 지루한 시간에 대해서 사색하게 해 준다. 생명과 관련된 책들, 생물학, 동물학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것이 결국은 거울속의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라서 그럴 것이다. 내가 잊어버린 나의 신화와 전설을 생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한걸음 한걸음 찾아 들어가는 일과 흡사하다.
그래서, 다음 책은
P선생이 제레미 리프킨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나도 '겹쳐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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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하면...도깨비 인형, 샀다.
원래 내 가방에 달고 다니는 진짜 원조 도깨비녀석은 따로 있다.
그 도깨비가 너무 좋아서, 몰에 갔다가 '또' 샀다.
이번에는 양면 도깨비. 올리브색과 핑크색.
이 도깨비가...은근한 매력이 있다.
심심할때 만지면 포근포근하고
그리고 들여다 볼 수록 정답다.
이 도깨비는 눈을 감으면 하나가 되고
눈을 뜨면 두개가 된다.
눈을 감으면 눈이 백개라도 뭐 하나와 다를바가 없지...
나는 이 못생긴 도깨비 녀석들이 정말 좋다.
빠삐용 (Papillon = Butterfly)은 1973년,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했던 '탈옥' 영화, 흑백 테레비 시절에 주말의 명화 시간에 침침한 화면으로 봤던 영화인데, '대탈주'의 스티브 맥퀸은 고인이 된지 오래이고, 더스틴 호프만은 아직도 이따금 나타나 우리에게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하도 어릴때, 그리고 하도 오래전에 본 영화라 기억도 희미하지만, 재판정에서 '환상의 재판'을 받을때, 나는 무죄라고 이들이 우길때, 유죄 선고를 내리면서 판사가 했던 말, "인생을 낭비 한 죄" 그러자 주인공들이 고개를 숙이고 만다. 인생을 낭비한 죄.
더스틴 호프만은 나비섬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고, 스티브 맥퀸은 탈주를 시도하여 결국 성공하고 만다.
인생의 기로에서 그냥 안주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유를 찾아 가겠다'는 또 다른 인간의 모습을 대비시켰던 마지막 장면.
영화 타이틀곡에 붙인 가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중고등학교때 팝송책 들여다보면서 좋은 노래는 주로 외웠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아직도 강가를 걷다가 나비가 스치고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안주할까?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들까? 아마도,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외치면서 스티브 맥퀸을 따라 갔겠지. 혼자서도 바다에 뛰어 들 수 있었을까? 글쎄, 결국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갔겠지. 그러고 싶은 것이지.
FREE AS THE WIND
(H. Shaper / J. Goldsmith)
Engelbert Humperdinck
(1)
Yesterday's world is a dream like a river
that runs through my mind
Made of fields and the white pebbled stream
that I knew as a child
Butterfly wings in the sun
taught me all that I needed to see
For they sang sang to my heart
oh look at me look at me
Free as the wind free as the wind
that is the way you should be.
(2)
Love was the dream of my life
And I gave it the best I knew how
So it always brings tears to my eyes
when I think of it now
Gone like the butterfly days
And the boy that I once used to be
But my heart still hears a voice
Telling me look , look and you will see
(3)
There's no regret that I feel
For the bitter sweet taste of it all
If you love there's a chance you may fly
If you fall, well you fall
Rather the butterfly life
To have lived for a day and been free
For my heart still hears a voice
Telling me look and you will see
one
꽃에 한참을 매달려 있던 나비는
훌쩍 날아 올라 저만치 팔랑거리고 사라졌다.
풀벌레들이 뭐라고 저희들끼리 떠들길래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비만 쳐다봤다.
two
Friday, September 17, 2010
자라 한마리가 투명한 9월의 햇살 아래에서
한가롭게 물풀을 씹어먹고 있었다.
느릿 느릿.
주위로 물고기들이 지나갔고
하늘의 구름은 물속으로 내려와서 쉬고 있었다.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자라는 느릿느릿 물풀을 씹어 먹었다.
Friday, September 17, 2010
My kindle by the Potomac
Milkweed Butterfly (Monarch) by the canal road
September 17, 2010 by lem
http://playmyself.textcube.com/entry/Acorn-Squash-오븐-구이 내 친구 사과님이 도토리같이 생긴 도토리호박을 구워 먹는 방법을 블로그에 적어 놓아서, 나도 군침 흘리다가 오늘 구워보았다.
이런! 꼭지 부분이 뾰족해서 바로 놓으면 도토리 같아 보이는데, 내가 거꾸로 놓고 사진을 찍어서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나의 실수).
4등분하여 속의 씨앗을 긁어내고,
고구마와 감자도 한 알씩 반으로 쪼갰다. 함께 굽기 위하여.
고구마와 감자는 탈것 같아서 알루미늄 종이로 감싸줬다.
350도로 예열하였고,
오븐에 내장된 석쇠위에 알루미늄종이를 깔고, 그 위에 호박을 껍데기가 위로 가도록 엎어서 굽기 시작했다.
40분쯤 후에 열어서 보니 아직도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이번에는 껍질이 바닥으로 가도록 뒤집어 놓고 10분정도 더 구웠다. (오븐에서 구워질때 호박 껍질이 반들반들 윤기가 흐른다. 참 신기하다)
그 결과, 제대로 익었다.
내친구 사과님은 마지막에 치즈를 올려서 구워준다고 한다. 그러면, 치즈가 살짝 녹으면서 구워지니까 고소하고 부드러울 것이다.
나는, 사실 치즈를 '칼슘 보충영양제' 정도로 먹는 편이다. 즐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냥 호박만 구웠다. 황설탕을 좀 뿌려서 구워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막상 구워보니 '군 고구마'가 유난히 달콤하듯, 이 호박도 구워지면서 더욱 단맛이 증가되었다. 달고 부드럽다.
오븐 켠 김에 고무마와 감자도 구웠다. 잘 익었다.
맛있는 것을 보면 '술 한잔' 생각이 나므로....와인 한잔.
찬홍이 녀석은 구운 호박따위 쳐다보지도 않는데, 왕눈이가 한조각 얻어 먹어보더니 자꾸만 더 달라고 성화다. 우리 왕눈이하고 나하고는 정말 식성도 잘 통해요~
그래서, 오늘의 구운 호박 프로젝트! 성공!
그리고, 생각해봤는데, 다음에 호박을 구울때는 이것을 좀더 잘게 잘라서 (멜론 잘라 먹듯이) 나란히 줄 세워서 구워야겠다. 그러면 빨리 익을것이다. 그리고 양면이 살짝 그을리면서 더욱 달콤할것 같다. :)
Kindle 3 G가 아주 맘에 들었으므로, 킨들군을 제대로 '보호'해주기로 생각했다. 그래서, 커버도 제대로 된 것으로 고민하여 골랐다. 나는 조명등이 들어있는 커버($59.99) 대신에 34.99 달러짜리. 가죽커버로만 된 것을 골랐다. 20달러 차액이 아까워서라기보다는, 어쩐지 불필요하고 투박해보여서. 폼이 안날것 같아서 (^__^) 커버가 옷인데, 옷에 뭐 주렁거리고 달려있으면 무겁고 맵시가 안나는 법이라. 게다가 조명등 달린 커버에 대한 사용자 리뷰를 들여다보니, 조명등의 에너지원이 킨들의 배터리에서 나오는거라 조명 켜고 독서를 하면 충전된 에너니가 금방금방 줄어들더라고해서. 요즘 어딜가나 조명이 안되는 곳이 없는데, 내가 '램프'까지 끌고 다닐 필요가 없지 싶어서 조명 생략하고 단순한 커버만.
색상은 Hot Pink. 실제 색상은 화면에 나오는것보다 더 환하다. (정말 크레이지 핫 핑크다.) 눈부신 철쭉색.
내 핫핑크를 고른 이유는, 원래 핑크색의 그 따뜻한 색감이 좋기도 하거니와,
내가 아주 산만한 사람이라서, 뭘 잘 잃어버린다. 그런데 색깔 확 튀는 것은 그나마 얼른 찾는다. 내 생활계획을 적어넣는 플래너도 얼마전에 핑크색 커버로 샀는데, 이유는, 그 전에 쓰던 어두운색 플래너를 잃어버렸는데 도무지 되찾지를 못했던 것이다. 난 내 생활 스케줄을 플래너에 적어놓고 틈틈이 확인하는데, 그걸 잃어버려서 아주 난감했었다. 잃어버리지 않기위해서 작고 중요한 것은 핫핑크나 혹은 오렌지색 같은 것으로.
앞태 예쁘고, 눕혀놓아도 예쁘고, 뒷태도 예쁘고, 세워 놓아도 예쁘고, 손에 들고 있어도 예쁘고, 쳐다만 봐도 좋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
크기가 딱, 몰스킨 다이어리만하다.
어제 저녁에, 찬홍이 셔츠를 사러 몰에 갔다가 가방을 한개 샀다. 정가가 68달러인데 메이시 회원 할인 20퍼센트 받았다. 13달러쯤 절약. (절약된 13달러는 한국으로 부치는 우편요금으로 쓰면 되겠다.) 월요일 출근길에 학교앞 우체국에 들러서 부쳐야지. 우리 엄니한테.
나는 이 가방이 없는데, 내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것을 보니까 완전 나이롱인가본데 튼튼하고 가벼워보인다. 가볍고 튼튼한것이 우리 엄니한테 적당해보인다.
우리 엄니한테는 소위 일컬어지는 '유명' 가방이 몇 개 있다.
지난 여름에 한국에 가서 엄마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엄니 옷장에 대한 특별 감사를 했는데, 한가지 양상이 파악되었다. 가만보니 엄마에게는 유명하다는 가방이 몇개 보이고, 고급스러운 옷들이 보이는데, 가방은 언니가 사다 나르고 옷은 오빠가 제공하는 것 같았다. 내 동생과 나는 선생질 하는 주제에 엄니에게 이름있는 선물을 하기는 힘들어보인다. (그저 몸으로 재롱떠는것으로 대신하는 수밖에. 내 동생은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는 효자다. 문제는 나다... 난, 노느라고 바쁜중이다.)
우리 엄니는, 그런데,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 (1) 그게 얼마나 비싼것인지 잘 모르거나 (2) 혹은 그따위 허망한 이름따위에 대해서 초연하거나 뭐 그런 입장이다. 그러니까, 가령 내가 엄마의 가방을 보면서 "엄마, 이거 되게 비싼건데, 엄마 이거 누가 사줬어?" 이러고 물으면 "몰라난 그게 뭔지. 정미가 놓고 갔는데..." 이러고 끝이다. 엄마의 옷장을 뒤져서 엄마 옷을 입어보면서 "엄마, 이거 누가 사줬어?" 하고 물으면 "전에 네 오빠가 와서 사줬는데, 난 그냥 맘에 들어서 골랐는데, 비싸더라. 옷값이 왜 그렇게 비싼거냐?" 그러고 마신다.
그리고는 그 비싼 (내가 감히 사입을 엄두도 못내는) 옷을 옷장에 걸어놓고 당신이 하는 일은,
전철역 앞에, 떨이 속옷, 나이롱 꽃무늬 원피쑤 이런거 파는 단골 가게에 드나들며 고쟁이며 민소매 원피스 뭐 이런것을 사다 쌓아놓고 너도 입어라 너도 입어라, 며느리들 딸들한테 선심을 쓰는거다. 이거 싫다고 한마디 했다가는 노인네가 골이 나가지고 사흘을 심술을 떨것이기 때문에 모두들 찍소리 않고 받아다 입는다. (그런데, 엄마가 골라온 나이롱 싸구려 옷이 처음 보기에는 우스워보여도 일단 입으면 이쁘고 편하고 그렇다... 하하하. 심지어 우리 엄니가 억지로 안겨준 여름 반바지 고쟁이는, 그것이 핫핑크 여자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뻐보인다고 지팔이놈이 몇번 입기까지 하였다. 어차피 잠옷이니까. 펑퍼짐하니까, 편한 모양이다.)
우리 엄니가 갖고 있는 그 루*비통 가방. 물론 우리 형부가 사다 드린 것인데, 갈색 사계절용을 처음에 하나 사다드리더니, 나중에는 여름용 희끄무리한것도 또 하나 안겨드렸다. 그런데 그 여름용 희끄무리 한것. 그것이 사단이었다. 그게 그 대단하다는 유명세와 달리 지퍼가 말썽이었다. (가방살때 지퍼 확인해야지 지퍼 불량이면 곤란하다) 지퍼가 맞물리고, 벌어지고 속을 썩인 모양이다. 엄니가 '이노무 가방 못쓰겄다 갖다 버리던지!' 한마디 하니까, 선물한 사람이 얼마나 무안한가. 그래서 언니가 그걸 그 잘난 루*비통 매장에 직접 갖고 가서 애프터서비스를 받았다고 한다. (가서 지퍼를 고쳐온 모양이다.) 그런데, 아니 그 대단하시다는 루*비통 가방은 애프터서비스가 무색하게도 지퍼가 여전히 말썽이었던거다. 지퍼 끝부분이 벌어지는거다.
에라이...우리 엄니 성격에 뭔가 고장나면 고치거나 내다버리거나 둘중에 하나다.
그런데 그게 비싼 물건이라니까, 게다가 사위가 사준건데 버릴수는 없고
본인 스스로 고치는 수 밖에.
글쎄 그 멋쟁이들이나 들고다닌다는 희끄무리한 루*비통 가방의 지퍼부분을
그냥, 이불꿰맬때 쓰는 튼튼하고 굵은 무명실, 그 무명실로 이리저리 휘감아서 꿰매버린거다. 지퍼가 벌어지지 않게 아주 튼튼하게 감쳐놨다. 와...내가 그거 봤는데 그거 완전 예술이더라. 천하의 루*비통 가방을 무명실로 막 꿰맨 여인! 지못미 루이비통. (ㅠ.ㅠ) 우리는 루이비통의 수난을 애도했고, 엄마의 폭정에 경악했는데, 우리가 경악을 하건 지못미 노래를 부르건 말건, 엄니는 이불 꿰매는 실로 이리저리 꿰맨 그 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돌아다니신다.
아, 그런데 저 나이롱 가방. 가볍고 튼튼해보이는 저 나이롱 가방을 산 이유는. 저것이 엄니에게 꼭 필요해서이다. 지난 여름에 내가 보니 엄니가 딱 저거만한 가방을 갖고 계시는데, 아파트에 장이 섰을때 들어온 가방상인에게서 몇해전에 산것이라고 한다. 그냥 나이롱 가방. 어깨에 매는것. 지갑이나 수첩, 양산 이런 자질구레한것 담기에 적당한. 그런데 그것이 다 닳아서 무늬가 지워지고 끈이 나달나달했다. 엄니는 동네 산책다니고 그럴때, 장보러 다닐때, 그걸 어깨서 사선으로 매고 다니면 편하다고 했다. (노인분들께는 가볍고 편안한 것이 좋다.) 엄니의 해진 가방이 딱해서 내가 그 비슷한 것으로 남대문 시장에서 한개 사다드렸는데, 그걸 사드리고나서도 영 개운치가 않았다. 내 맘에 안들어서.
그런데, 어제 이 가방을 보니, 딱 우리 엄니한테 맞춤이더라. 가볍고, 색깔 화사하고. 동네 치과 가고, 침맞으러 가고, 호수공원 산책하고, 장보러 가고 그럴때 어깨에 사선으로 둘러매고 나가면 가볍고 편안하실 것이다.
(이거라도 사서 보내야, 기분이 좋아서 사위한테 계란후라이라도 하나 더 해주시겄지... 이거 뇌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