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4일 토요일

[Film] 나무없는 산 Treeless Mountain

 

http://www.imdb.com/title/tt1143155/

 

 

첫인상이,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한국판인가? 싶을 정도로...흡사한 분위기.  화면 각도 역시, 얼핏 '일본 영화 같다'는 느낌.  한국영화와는 분위기가 어딘가 다른.  아름답지만 낯선.  한국인 아이들이 나오지만 어딘가 이국적인.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해보자. 가난뱅이 여자가 아이를 '한신 초등학교'라는 사립학교에 보낸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이다.  (단, 사립학교 유니폼을 입고 달음질치는 아이의 모습은 굉장히 '일본적'이다. 일본 영화 같아 보였던 이유가 이 첫 장면 때문이었을 것이다.)  메뚜기를 잡아 구워서 동네 아이들에게 판다는 상황 역시 비현실적이다. 감독이 성장하던 30-40여년전의 상황이라면 모를까. (감독은 어린시절의 에피소드를 21세기의 영화속에 담으려고 한건가?)  때로는 늘 클로즈업 되는 아이들 표정이나 인물처리 때문에 눈이 피곤하다는 느낌도 든다. 답답함. 화면의 답답함. 일본 영화에 많이 나오는 그 답답하고 협소함.  이것도 마이너스 대목.  이런 몇가지 문제점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힘있고 매력적인 '국제적'인 작품이다. 나는 이 영화를 '국제적'이라 푼다.  한국적 정서에 일치한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2002년에 개봉되었던 '집으로 가는길' 이라는 영화는, 너무 눈부시게 아름다워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기까지 했지만,  충분히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길'은 한국인이 아니면 담아내기 힘든 구도와 정서로 화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나무없는 산'은 상황과 등장인물들이 모두 한국인이지만, 정서는 '보편적'인 그 무엇이다. 이야기 줄거리만 보자면 등장인물이 일본인이고 배경이 일본이라고 해도, 혹은 중국이라고 해도, 터키나 요르단이라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내게 '한국영화'라기보다는 그냥 국제적인 어떤 영화에 더 가깝게 여겨진다. 

 

 

디비디를 본 다음에 부록을 살펴보니 감독 인터뷰 내용이 나온다. 역시, 예상했던대로 그는 영어가 모국어와 같이 편안한, 한국어는 오히려 제대로 구사하기 힘든 (주인공으로 발탁된 소녀가 -- 왜 감독님은 말을 여섯살짜리 아이가 하듯 하는가? 하고 감독에게 물어봤다는 에피소드를 소개 하더라. 한국어가 그렇게 서툴다는 뜻이다.)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그에게 한국은 태어난 곳이고 고향이고, 정서적인 지향점일수 있지만, 그의 시각은 이미 한국에서 벗어나 있다. 그는 친근하면서도 낯선 타인이다.  그래서 영화가 그런 미묘한, 특이하고 낯선 분위기를 유지했을것이다. (미국의 한국 식당에서 밥 사먹는 느낌. 분명 한국 음식을 먹고 있지만, 어딘가 가짜같은. 정말 한국 맛이 안나는).    뭐 이런 '잡종적 정체성 (hybrid identity)이 이 영화의 장점이나 질을 저하시킨다고 할 수는 없다.  잡종도 하나의 정체성이고, 그것도 개성이고.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말미에, 외할머니에게 돼지저금통을 내미는 꼬마들에게서 '우주적 환원'을 읽었다.  엄마가 돌아와 받았어야 할 저금통을, 외할머니에게 전달하며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보는 나도 안도한다. 다행이다. 돼지저금통을 받아줄 존재가 이 세상에 아직 남아 있어서.

 

 

"이 돼지 저금통이 꽉 차면 엄마가 온댔어"하고 꼬마가 말할때, 번개처럼 퍼뜩, 여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그래...그랬다...내가 취학전에 일년간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서 사는 동안, 나는 수중에 들어오는 동전들을 집에 있던 빨간 돼지 저금통에 모으는 재미로 살았었다.  나는 열심히 동전을 모았다.  내가 그 돼지를 어떻게 채웠는지, 그 후에 그 돼지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지만 (그래서 여러편의 글에 그 돼지 일화를 썼지만)  여태까지 나는 그 돼지가 어떻게 내 수중에 들어왔는지 생각을 못해보고 있었다.  그냥 태초부터 그 돼지가 거기 있었을거라고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안개가 걷히듯 그 장면을 떠올렸다.  우리 엄마도 나를 할아버지한테 맡기고 갈때 그 뻘건 돼지녀셕을 내게 맡긴 것이다. 이 돼지를 다 채우면 데릴러 오겠다고.  (제길슨...하하하.)

 

물론 나는 영화속의 소녀들처럼 비참한 상황은 아니었다. 내가 성장 할 당시에는 대가족이 핵가족화 되면서,  가족이 서울과 시골로 분리되는 일이 어디서나 일어났고, 자식을 넷이나 거느린 젊은 우리 아버지가 서울로 분가해 가면서 넷중에 셋째를 그저 부모님께 일년간 맡긴것에 지나지 않았다. (부모님이 적적해 하실까봐 하나를 떨구고 간 측면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들의 입장이 어떠하건 간에 남겨진 나는 버려졌다는 느낌을 아주 떨칠수는 없을 것이고, 그 일년간의 삶은 내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행사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꽤나 독립적이고, 가족들에 대해서 찰떡같은 친밀감을 행사하지 않는 편이고, 데면데면하고 그렇다.  난 한번 버려진 기억을 갖고 있고, 그래서 이세상은 언제든지 나를 팽개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늘 인지하며, 아무도 믿지 않은 편이다.  한 아이의 머릿속에 일어나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  (원래 내 성격이 그러할지도 모른다.)  아, 우리 엄마도 시골집에 나를 버리고 떠나가면서 그 뻘건 돼지 저금통을 주면서, 그걸 채우면 온다고 했었지. 하하하.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 느끼게 되는 그 실존적 감각, '던져진 존재'감을 나는 다섯살때 절감했다고 할 만하다.

 

아름다운 영화이다.  

 

 

 

댓글 4개:

  1. 시각과 지식의 폭이 깊고 넓으세요...

    그렇다고 멀게 느껴지거나 거부감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글의 무게감이랄까... 그동안 접했던 평론의 글 보다도 세련되고 간결하며,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계십니다. 세상과 문화에 대한 견해 또한 제가 배울 것이 너무 많은 분... 제게 가까이 계셨다면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얼마나 좋은지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사회가 나빠지고 있다는 것과 반비례하게 제가 다가오는 인터넷이라고 하는 상화작용은 적지 않은 것을 부여하기에...

    RedFox님을 알게 되어 너무 너무 좋아요. ^^

    고맙습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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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별 - 2009/11/15 23:35
    과찬이신것 같습니다. 제가...본디...깡패거든요. 가까이 둬서는 안되는 종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지네요. 고맙습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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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RedFox - 2009/11/16 10:12
    지금은 주무시는 시간이시겠죠? ^^

    에구구 근데 저 깡패는 무서운데... -.-;

    그럼 더 다행입니다. 지구 반대편에 계시니.. 마음만 가까우면 되죠 뭐~ ^^

    멋진 한주 되시길...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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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rackback from: 2012 보았습니다.
    요즘 1999년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2012년 멸망설이 떠돌고 있는 가운데 그 분위기를 편승해서 만든 영화가 등장했네요 이름하여 2012!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마야달력에서 말한 2012년에 지구가 멸망 한다는 것을 주제로 한것입니다. 요즘 이 영화가 가장 인기이고 다들 재미있게 보는데 저는 그냥 그럭저럭이였네요 뭐랄까.. 도망칠때나 위기에서 벗어날때 장면이 전형적인 아메리카 스타일이라고 할까나요? -_ -a; 하지만 요즘 영화가 이거말고는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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