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is Crick: Discoverer of the genetic code by Matt Ridley
나는 내 삶을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아온것 같다.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어릴때 화가가 되고 싶었고 이야기를 쓰는 사람 (소설가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 시절에)이 되고 싶었다. 나의 꿈은 그러니까, 동화책을 만드는 거였다. 이야기를 쓰고, 그 이야기의 그림도 직접 그려서 동화책을 만들어내는 것. 나중에 그것이 미술가, 소설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미술에 크게 재능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나는 미술가도 소설가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 한편으로 조그만 문학상을 받은적도 있고, 아직도 소설가의 꿈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후에 나의 꿈은, '가르치는 사람,' 그중에서도 '교수'였다. 왜 '교수'가 좋아보였는가하면, 내가 알고 있는 인척중에 '교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뭐 잘난척도 좀 하고, 생활이 자유로워 보이고, 뭔가 진지해보이고 그랬다. 그것이 '자유직'처럼 여겨졌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온종일 회사에 붙어서 살아야하는 '회사인간'이 되고 말았는데, 그것이 아무리 보수가 좋고 편안한 직장이라고해도 나로서는 암담한 일상이었다. 미치겠는거라. 온종일 책상에 붙박이로 있어야 하니까. 하필 나는 사람들이 선망하는 외국계 회사 비서질을 하고 있었는데 출퇴근 시간 칼 같고, 근무 조건 선진국 수준이고 여러모로 좋은 여건이었지만, 내가 그 보수좋고 편안한 회사 책상 앞에서 매일 생각한 것이 뭔가하면 -- 나는 이대로 이렇게 일주일에 닷새동안 매일 이렇게 여기서 시간을 또박또박 죽이며 살다 죽을것인가? 이런 고민이었다. 나는 닭장안에 갖힌 닭이었다. (이것은 내가 나에 대해서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지 모든 회사인간을 닭장안의 닭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내근직이 잘 안맞았다). 나는 통유리로 된 창밖을 내다보며 '내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이런 생각을 꼴똘히 했었다. 오죽하면 '농대에 들어가서 농사혁신 기술을 습득하여 시골집에 가서 과학 영농을 해볼까 이런 망상까지... 회사 내근직 사원으로 살다 죽느니 밭에서 흙을 파는 것이 내 성격에 더 잘 맞았으니까.
어느날 내가 내 보스에게 이런 고민을 얘기했더니, 독일인 보쓰가 심각하게 듣고는 "그러면 너는 마케팅 쪽 일을 해볼래? 광고 마케팅 쪽 담당자가 하나 필요한데 너 그거 해볼래?" 하고 진지한 해법을 제시해주었다. '오케이! 그래 그거! 나가서 돌아다니며 뭔가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일을 할수 있는거! 그거! 그거다!' 나는 신이나서 그 제안을 접수했는데, 다른 곳에서 암초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인 인사부장이 '비서직'으로 들어온 사람을 '마케팅 부서'에 배치하면 형평에 어긋난다며 제동을 걸었다. 한국인 정서에 어긋난다나 뭐라나. 독일이 보스는 '한국인 정서에 어긋난다'는 그 해괴한 논리에 그만 깜빡 넘어가서 그의 제안을 취소했다. 한국인 인사부장놈( or 님)이 내 앞길을 가로 막은 셈이다. (물론 나는 이를 갈았지...)
그 후에 나는 결혼하고 입덧이 심해서 '미련없이' 그 비서질을 집어치우고 정말 '자유' 인생이 되었다. 한동안 집에서 칩거해야 했으니까.
나는 잡지 편집도 했고, 번역도 했고, 프리랜서로 여기저기 글을 팔아 살기도 했다. 프리랜서직은 자유롭긴 한데 돈은 크게 안되더라. 영어 강사질은 돈이 잘 들어와서 좋았다. 할만했다. 그런데 폼은 별로 안났다. 하하하. 그래서 내가 생각해보니 현실적으로 '교수질'이 폼도 나고 자유도 어느정도 보장되고, 뭐 공부가 직업인것 같은데 공부라면 재미도 있으니까 겸사겸사 좋을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교수가 되었다. 그것도 교육관련 전공이라 늘 '사람'을 어떻게 돕고 보호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는 편이라 스스로 인성개발도 되는 측면이 있다. 나 원래 성격 개차반에 제멋대로이지만, '교육'을 생각할때만큼은 진지한 편이다. 교수가 되고보니 고민거리도 많고, 앉으나 서나 공부 생각을 하게 되고, 사실 휴일도 없는 편이다. 어딜가나 '공부'가 따라다니므로. 그래도 내 '정신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직업이라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나는 돈은 먹고 살 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돈대신 정신의 자유를 중요시 하는 편이다. 몸과 정신의 자유, 그것이 확보되어야 숨쉬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내가 뜻한대로 비슷하게 살고 있다. 앞으로 '학자'로서 대성할수 있을지 자신할수 없지만, 나는 즐거운 인생을 살 것이다. 소설가의 꿈을 접은것도 아니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낼것이다.
그런데, 내가 내 삶을 다시 시작할수 있다면, (혹은 다음 생이 있다면) 나는 '자연과학' 공부를 해서 연구자가 되고 싶다. 나는 생물학자가 되거나 뭐 자연현상을 들여다보는 자연과학자가 되고 싶다. 이번생에 인문학을 공부했으니 다음생에는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자연과학자가 되고 싶다. 뭐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서, 다음 생을 준비하는 뜻으로, 내가 책방에서 책을 고를땐 두세권에 한권정도는 자연과학 책을 고른다. 그리고 그 책들을 정독한다. 나는 자연과학을 '전공'하거나 대학수준의 과정을 들어본적이 없기 때문에 교양수준의 자연과학 책들을 읽어왔는데, 스승없이 하는 공부이므로 조심스럽게 정독을 하는 편이다. 스승이나 안내자 없이 공부할때, 크게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방법은 '검증된' 혹은 '널리 알려진' 입문서에서 시작하여 가지치기를 해 나가는 것이다. 여태까지 잘 가지치기를 해 온 것같다.
오늘 고른 책은 이 책이었다. (이세상에는 배워야 할 것들이 널려있고, 세상사는 재미중에서 중독성이 강한것은, '새로운것을 알아가기' 일 것이다.) 새로운 사람과 연애를 시작한듯,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해 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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