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3일 금요일

Kara Walker: 신화와 동화의 만남

 

 

http://americanart.textcube.com/31 페이지에서 Kara Walker 를 소개 한 바 있습니다.  마침 2009년 11월 7일에 피츠버그의 카네기 미술관 (http://americanart.textcube.com/159) 에 갔을때, 자그마한 방에 카라 워커의 작품 시리즈가 전시되고 있길래 너무 기뻐서 '동동' 뛰면서 작품 감상을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카라 워커는 대개 '특별전시'가 되기 때문에 작품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거든요.  다행히 이곳은 '영구소장품' 전시관이어서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수 있었습니다.

 

전체 13점인 이 시리즈의 제목은 Emancipation Approximation (해방의 근사치) 입니다. 1999-2000 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13점을 차례차례 보여드리겠습니다. 번호는 제가 임의로 붙인 것입니다.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이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서 저는 두가지 '이야기'를 생각해 냈습니다.  한가지는 '레다와 백조 (Leda and Swan) 이라는 신화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백조 왕자'라는 동화 입니다.

 

레다와 백조 이야기는 제우스의 신화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W.B.Yeats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라는 영국 시인은 Leda and Swan 이라는 시를 쓰기도 했고요. 구글 이미지에 Leda and Swan 을 검색하시면 같은 주제의 명화들을 많이 보실수 있을겁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바람둥이 제우스가 '레다'라는 아리따운 인간에게 반해버립니다.  그런데 질투의 화신 헤라 여사께서 항상 감시를 하는지라 어떻게 해 볼도리가 없는거라. 그래서 제우스가 뭐 어떨땐 암소로 변장을 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레다에게 다가갈때 '백조'로 변장을 하고 다가갔던 것이지요.  그래가지고 레다라는 아리따운 인간 여자와 흰 백조의 정사 장면을 연출하게 됩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자급자족하시길 당부드립니다 =) )

 

또다른 이야기는 한스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백조왕자' 입니다. 공주가 저주를 받아 백조가 되어버린 오빠들을 구하기 위해서 말없이 뜨개질을 한다는 얘기 있쟎아요. 마지막에 옷을 다 뜨지 못한채 오빠에게 날려줘서 막내 오빠는 그만 사람으로 변신하다가 팔이 없어서 백조 날개를 단 사람이 되고 말지요. 그 이야기 다 기억하시지요?

 

이 13편의 그림은 이 두가지 이야기를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흑백문제로 엮어 나간것 같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건 간에 그림을 해석하는 저 자신이 그렇게 해석을 했다고도 할수 있고요.

 

 

 

아래 (1) 편의  실루엣 그림속에 백조가 보이고, 공중에서 이 백조가 여성을 겁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머리카락이나 몸메들 보아하니 '흑인' 여성이 백조에게 당하고 있는 형상입니다.

 

 

 

(1)

 

 

 

흑인 남자와 그 아이로 보이는 두 사람이 울면서 떠나가지요?  이 흑인 가족의 아내 혹은 딸이 백조에게 겁탈을 당한 상황으로 풀이가 됩니다.

 

 

(2)

 

 

 

옷차림을 보아하니 '백인'을 연상시키는 사냥꾼이 이미 포획한 '백조'를 들고 서서 허공의 겁탈 장면을 보고 서 있습니다. 이 사냥꾼은 허공의 백조를 향해 총을 겨눌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정의로운 생각을 가진 백인이라 해도,  백조가 (백인이) 흑인을 욕보일때 적극적으로 백인에게 총을 겨누지는 않는다고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팔이 안으로 굽으니까요...

 

 

 

 

(3)

 

 

반대편 벽의 그림과, 사진 찍는 제 그림자가 복잡하게 반사되긴 했지만,  아래의 그림에서 흑인 가족이 보따리를 싸가지고 떠나가는 장면이 보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상단에 보면 자그마한 날개가 달린 여자가 날아가는 모습이 일부 보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백인이 겁탈한 여자가 낳은 자식(혹은 새끼)는 날개달린 백조이면서 동시에 흑인인 것이지요. 그러니 흑인의 몸뚱아리를 한채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데,  역시 이 혼혈 백조흑인은 '흑인'으로 분류 됩니다. 절대 백조가 될수는 없는 것이지요

 

 

 

(4)

 

 

그 이후부터는 혼돈의 세월입니다. 흑인과 백인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혼혈 사이에 금이 그어집니다.  혼혈에게 '백인'의 기득권은 절대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탄식하지 않습니까?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분명 아비의 새끼인데 아비의 영광을 물려받지 못하지요. )   백조의 몸에 흑인의 머리를 가진 혼혈들이 있는가하면, 흑인의 몸에 백조의 날개를 가진 혼혈들도 있고요. 이들은 죽어도 죽어도 죽어도 백조가 되지 못합니다. 5번부터 13번까지는 그 혼돈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5)

 

 

 

(6) + (7)

 

 

(8) + (9)

 

 

 

(10) + (11)

 

 

 

(12) + (13)

 

 

흑인 여자와 백조 사이에 완전한 섞임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카라 워커는 Emancipation Approximation (해방의 근사치)라는 제목을 붙인것 같습니다.  흑과 백처럼 이 세상에는 절대 섞일수 없는 개념들이 존재 할 것입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안되는 것들.  그러면 희망이 없는가? 희망 있습니다.  흑과 백이 동등한 가치와 존엄성을 갖고 있다고 인정하게 되면, 혹은 흑과 백이 동등하다는 문화가 지배적이 되면 이런 문제는 이미 문제가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이것이 단순히 흑과 백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흑백은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권력구조의 문제,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문제, 힘있는자와 힘 없는자의 문제 이런 사회 제반의 문제들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카라 워커는 레다와 백조라는 서양의 신화를 빌려다가 그의 주제를 형상화 합니다. 그리고 백조에게 겁탈당한 레다가 새끼를 낳았을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흑백의 문제에 빗대어 보여줍니다.  제법 무겁고 암울한 주제이지만, 그의 화면은 흑백의 만화처럼 가볍고 발랄한 감 마저 줍니다. 그것이 카라 워커의 매력이면서 그가 갖는 힘이기도 합니다.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 스케치하면 사람들은 슬며시 피해가지요.  그는 무거운 주제를 만화화면처럼 가볍게 처리할줄 아는 노련한 화가입니다.

 

(저는 무거운 것을 가볍게 쓸줄 모르는 서툰 글쟁이인 셈입니다.)

 

 

댓글 6개:

  1. 겁탈하는 백조... 저 실루엣 그림 말고... 분명히 봤는데..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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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로 - 2009/11/15 10:59
    http://images.google.com/images?source=ig&hl=en&rlz=&q=leda%20and%20swan&um=1&ie=UTF-8&sa=N&tab=wi



    재미있는 그림 소재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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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유리에 비춘 한 쪽 눈을 질끈 감고 노려보며 셔터를 누르는 표정이 좋습니다. 하나의 감각을 포기할 때 얻어지는, 그러니까 그냥 디카, 멀찍이 바라보며 마치 구경하듯 셔터를 누르는 것과 일안 리플렉스 카메라의 파인더에 눈을 붙이고 (접안) 하고서 셔터를 누르는 감각은 각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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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느림보 - 2009/11/17 21:11
    자세히 보셨구나~ =)



    예, 저도 큰 카메라 갖고 다닌 후부터는 책가방에 자료보관용으로 갖고 다니는 미니디카를 잘 안쓰게 되네요.



    많은 것을 보기위해 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모든 감각을 포기하고 한가지에 집중할때 오히려 큰 세상이 열리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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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RedFox - 2009/11/17 23:25
    그냥 '똑딱이'를 들고 찍을 때는 묘하게 멀찍하니 무표정해져요. SRL 카메라로 찍을 때는 눈은 찡긋, 입은 나도 모르게 벌어지거나 질끈 입을 앙다물게 되죠. 마치 세계와 직접 접촉하는 감각같은게 느껴져요.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의 쾌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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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trackback from: Kara Walker: 우스꽝 스러운 흑인 잔혹사
    http://americanart.textcube.com/30 Jacob Lawrence (1917-2000) 페이지를 쓰고 나니, 흑인 여성 미술가 Kara Walker (1969- )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Kara Walker를 만난 것은 워싱턴 디씨에 있는 Corcoran Gallery of Art (코코란 미술관)에서였다. 전시장 벽에 검정 실루엣으로 그려진 사람들. 흑인들 특유의 실루엣이었으므로 단박에 흑인관련 작품임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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