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는 죽죽 내리고, 소주 반병 때리고 영화 검색하다가 '보이길래' (저 불법 다운로드 안해요 살려주세요) 봤는데, '열혈남아'가 아주 비싼 소주맛을 버려버리는군요. 이 영화에 '백만송이 장미'를 넣은 사람 누군지 -- 내 참.."썩을놈" 되겠습니다. (호남 사투리는 정서상, 때로는 반어적으로 애정을 표시하기에 적합하지요.)
열혈남아도 백만송이 장미도 '초면'인데...나 역시 낯선 별에서 온 사람처럼 이 오래된 영화가, 이 오래된 노래가 신기하고 낯선데. 그 참 영화 좋다... 그 참...노래도 좋다...그 참 설경구 괜챦은 배우인데, 그 참 벌교라는 지역이 조정래의 태백산맥 '소설'에서보다 이 영화에서 더 근사하게 그려진것 같군요.
(근데 요즘 통 미술 얘기를 못쓰네...한숨...)

그러니까 이 노래의 핵심은, 인생은 '숙제'와 같은 것이고, 우리는 모두 별나라에서 잘못을 저질러 이 세상에 던져진 왕자 공주들일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이 세상을 잘 살아내면 다시 별나라 왕자 공주로 돌아갈수도 있다는, 나름, 환상적이고도 희망적인. (가사가 불경이나 성서를 총 집약한 내용처럼 보이기도 하고.)
답글삭제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어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며칠전 영어수업중에 '결혼생각이 없다는 보이프렌드와 헤어질것인가 말것인가' 고민하는 어떤 미국여성의 상담편지를 학생들이 다 함께 읽으면서 '내가 카운슬러라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것인가?' 이런 주제로 토론을 했었다. 의견은 대략 (1) '결혼 생각도 없이 즐기기만 하는 놈은 나쁜놈이니 당장 갈라서라는 의견과, (2) 남자친구한테 좀더 시간을 주면서 그의 판단을 기다려보면 어떤가 하는 신중론으로 갈렸다. 열명의 학생들이 딱 반반으로 의견이 갈렸다.
답글삭제학생 한명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은 (1)번 (2)번중 어떤 노선을 택할것인가? 내 대답은, "난 평생 살면서 남자한테 이별을 통보해본적이 없다. 주로 내가 뻥뻥 차였다." 따라서 내 답은 (2)번, 그의 판단을 기다린다.
늘 시무룩한 편인, 나하고 별로 말도 안하는 심각쟁이 남학생이 의아한듯 나를 쳐다보더니, "혹시 남자친구가 군대에 들어가면서 헤어지게 된것 아닌가?" 물었다. 아니, 난 군대에 들어가는, 혹은 군대에 들어간 남자와 사귀어 본 적이 없고...아 그냥 단순하게 말해서 그냥 '차였다'는 것이지. 하하하. 내가 주로 차이고 다녔다니 이상한가? 하지만 사실인걸... 난 한번도 남자한테 헤어지자고 말해본적이 없다. 차이고나서 원망을 해 본적도 없다. 내가 모자라서 그렇게 되었다고 판단했을뿐.
차이다 보면 맷집이 생길것도 같지만, 이건 간단치가 않아서 차인다는 것은 늘 새로운 경험이 된다. (그래도 상대를 원망하면 안된다는 것이 내 원칙이다. 내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그에게 다가가 그가 어딘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나는 더 괴로울테니까 말이다. 사랑했으면 잘 살길 바래야 하는거지.)
이 영화에 관한 아주 좋은 글이 있습니다.
답글삭제http://www.neoimages.co.kr/news/view/720
한 번 읽어 보세요. :)
@느림보 - 2009/11/21 00:24
답글삭제아침에 하이웨이를 달려 출근하면서 내 인생에 스쳐지나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닮은꼴들을 떠올렸는데요. 내 인생에는 정말 '이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살벌하게 칼질까지 하는 것은 못보았지만요). 건달들이 영화속의 등장인물들이 아니라, 이웃집 아무개, 중간보쓰도 이웃집 아무개, 꼬봉들도 동네 아무개, 그이들에게 되게 욕설을 던지면서도 뜨거운 밥을 먹여주던 '우리 할머니.' 자식처럼 아끼며 '똥개'녀석을 키우다가 여름 되면 얄짤없이 잡아서 자식들 몸보신을 시키던 내 할머니. 마을도, 마을 사람도, 모두 내 삶에 존재했던 것이지요. 자식이 농약을 먹고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그런 사람들이 마을에 한 둘 있기 마련이었고, 그래서 '그 풍경속의 나'는 무엇이었을까? 그 문제를 생각해봤었지요.
제가 영문학을 대학 전공까지만 하고 더 깊이 들어가지 않은 이유가, '평론'의 공허함 때문이었는데요, 창작하지 않고 ... 평론하는 삶의 공허함. 평론도 창작이지만 어쩐지 부차적인 창작같다는 그 애매함이 싫어서 집어친것인데, 여전히 그걸 집어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나하곤 안맞는 일이니까)
이 영화는 뭐라고 평하는것을 뛰어넘는 '아주 좋은 영화'였는데요. 아주 맛있고, 생생하게 다가오는 영화였단 말이지요. 연결해주신 평, 잘 봤습니다. '애정'이 느껴지는 평이지요. 예술은 일단 '즐기는'것이 최고 =)
아니 그런데, 감독이 누구길래 이렇게 잘 만들었나...
@느림보 - 2009/11/21 00:24
답글삭제가령, 저는 이창동의 '밀양'을 보고, 아 저이가 왜 '신파조'인가? (의아해 했었지요) 뭐 국제영화제에서 큰 상 받고 그럴때도 '냉소적'이었습니다. (내 시각에는 별것도 아닌 영화였거든요. 결말은 허무개그처럼 실망스러웠고요.)
이 열혈남아는 그에 비하면 독보적으로 근사해보이는데요 (결국 내 취향의 문제일지도...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