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5일 목요일

디트로이트 벽화, 디에고 리베라 Detroit Industry Murals (1)

http://americanart.textcube.com/94  디트로이트 미술관 페이지에 소개한 바 대로, 디트로이트 미술관에 가면 건물 중심의 작은 광장 (Garden Court, 우리나라 식으로 따지면 안마당에 해당되는 공간)에 멕시코 출신의 사회주의 미술가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1886-1957)가 1932년 4월부터 1933년 3월까지 만 11개월간 작업하여 완성시킨 벽화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 벽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누구인가?

 

2002년에 국내에도 소개된 Frida (프리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멕시코 여성화가 Frida Kahlo (프리다 칼로)의 일대기를 영화로 옮긴 것입니다.  제가 디에고 리베라를 알게 된 것은 이 영화를 통해서였습니다. 프리다의 '남편'으로서 그 사람을 처음 인지 한 것이지요. 이 영화에 보면 프리다 부부가 러시아의 트로츠키를 멕시코에서 숨겨준다거나 프리다와 트로츠키가 사랑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한 여성 화가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속에 당시의 멕시코 사회상이나 러시아 사회주의의 갈등, 미국의 호화판 자본가들이 세계가 화려하게 그려지는 덕분에 볼거리도 풍성하고 아름다웠지요.  이 영화속에서는 프리다가 이미 멕시코에서, 그리고 서방세계에서 대가로 자리잡은 리베라 디에고와 만나서 결혼하고 고통받는 과정을 절절하게 묘사가 됩니다.  자유분방했던 디에고 리베라가 심지어 프리다의 친자매와도 정사장면을 연출하는데, 보기가 딱하죠.

 

 

1886년생인 리베라는 야간 미술학교를 시작으로 정규 미술학교 활동에 이르기까지 차근 차근 미술 과정을 이수해 나가다가 1907년에는 유럽으로 떠나게 됩니다.  파리에서 당대의 거장들인 세잔느, 고갱, 르누아르, 마티스의 스타일들을 배워나간후에 이탈리아로 가게 되는데, 이탈리아에서 그는 자신만의 그림세계를 찾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시스틴 성당등 대형 건물의 프레스코화에서 그는 자신이 추구할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1921년에 그가 멕시코로 돌아왔을때 그는 공공시설이나 기념비를 위한 예술작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는 멕시코 혁명 직후에 멕시코 공산당에 가입하고, 1927년에는 멕시코 공산당 간부 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1922년부터 1930년까지 그는 멕시코의 공공건물에 혁명기념 벽화작업을 하였는데 멕시코 전통 예술과 멕시코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주제의 작품들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발견한 그의 그림들도 대개는 멕시코 역사속의 영웅들이나 민중의 삶을 묘사한 작품들이었습니다.

 

멕시코는 1920년대에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멕시코의 미술가나 작품도 미국에 활발하게 소개가 되기도 했는데, 그 과정속에서 디에고 리베라가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관장인 Valentiner (발렌티너)와 연결되게 됩니다. 발렌티너는 대형 벽화를 많이 제작한 리베라에게 디트로이트 미술관 코트야드 (안마당)의 벽화를 주문하고, 포드자동차의 설립자인 헨리 포드의 아들 Edsel Ford 역시 이 예술작업에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합니다.  그리하여 1932년부터 1933년까지 만 11개월 사이에 리베라의 벽화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디트로이트 벽화 작업 후에 그는  뉴욕의 록펠러 재단의 초대를 받고 맨하탄의 RCA 빌딩 벽화 작업에 들어갑니다. 일설에 의하면 록펠러 재단은 피카소에게 벽화를 의뢰하려 했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피카소를 섭외하는데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디트로이트 벽화 작업을 할 때에도 지역의 종교인, 비평가들 사이에서 그의 작품이 선정적이라거나 신성모독이라거나 수상쩍다는 식의 비난을 받고,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었는데, 대개는 그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발렌티노가 이런 소동을 잠재우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분방한 맑시스트 예술가는 뉴욕에서 더욱 자유분방해졌던 것 같습니다. 감히 뉴욕의 심장부에 '레닌'동지를 찬양하는 벽화 작업을 했던 것이니, 록펠러 가문에서 '제발 그 그림은 빼달라'고 사정사정을 했건만, 콧대높았던 리베라가 레닌을 극구 지키겠노라고 고집을 피웠던 모양입니다.  뭐, 결국 돈많은 록펠러 집안은 그림값을 모두 지불한 후에 벽화를 세상에 공개도 하지 않은채, 벽화 전체를 싸그리 아작을... (ㅠ.ㅠ) 냈다는 슬픈 전설이 아직도 흐르고 있습니다.

 

디에고 리베라의 예술은 멕시코 뿐 만 아니라 그후의 미국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펼쳤던 대중 미술 프로젝트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Public%20Works%20of%20Arts%20Project ) 역시 리베라 예술의 영향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 당시에 미국의 공공건물이나 기관에 많은 벽화들이 제작되었고, 잭슨 폴락이나 벤샨과 같은 작가들도 바로 이런 벽화 제작을 하면서 목에 풀칠을 한 경력이 있지요. 직접 리베라와 함께 작업을 했고요. 그가 남긴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벽화는 오늘날 디트로이트의 상징적인 미술품이 되었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 화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경제 대도시였던 디트로이트의 심장부에 미국의 노동자, 미국의 산업을 상징하는 대서사시와 같은 작품을 남김으로써 '미국미술'을 일궈낸 화가로 기억됩니다.

 

 

Please see http://americanart.textcube.com/150  Detroit Industry Mural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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