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9일 일요일

Apple House 식당

2009년 10월 24일에 섀난도어 국립공원에 단풍구경을 갔을때,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렀던 식당이 있었습니다. Apple House (사과 집). ( http://americanart.textcube.com/141 ).  오늘은 추수감사절 휴가의 마지막날이 되는 일요일. 날씨는 어제에 이어 기가막히게 화창하고 따뜻한 가을날씨. (가을 내내 춥고 비가내리고 을씨년스럽더니 초겨울에 며칠 활짝  환상적인 날씨를 선사하는가 봅니다.)  오늘은 '순전히' 그 Apple House 에서 먹었던 계란 샌드위치 생각이 나서, 섀난도어 국립공원에 가서 바람을 쐰다는 핑계를 대고 집을 나서긴 했으나, 사실 목적지는 분명했죠. 사과집 식당. 어쩌면 계란샌드위치는 구실에 불과하고, 그냥 아무데나 멀리 쏘다니고 싶어서 나갔을 가능성이 더 크긴하지요. 일하기도 싫고, 그냥 차 끌고 몇달 돌아다니며 아무데서나 자고, 배고프면 먹고, 또 떠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려면 일단 돈을 좀 모으고, ...그렇게 떠돌아 다닐 날이 오겠지요...)

 

사과가 무르익고 단풍이 짙어지던 가을에는 식당에 손님이 많더니, 오늘은 점심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한가롭고 햇살만 가득하군요.  겨울에는 아마도 산을 찾는 손님이 많지 않은가 봅니다. (그러면, 나는 겨울내내 줄창 이곳에 오면 되겠군...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워싱턴에서 대략 60마일 거리, 섀난도어 국립공원 입구 쪽의 Apple House식당입니다. I-66 West 를 탈경우 Exit 13번에서 진입이 가능합니다. (하이웨이를 달리다보면 Apple House 진입 안내표지판도 나타납니다.)

 

 

 

Apple House 에는 식당만 있는 것이 아니라 Crocs 판매코너, Bradley Wang 가방코너, 그밖의 지방 특산물 선물 코너가  함께 있어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선물 구경을 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뭐, 특별히 뭘 사지는 않지만...)

 

 

 

 

식당분위기가...어떤 식이냐하면.... 오래된 동네 밥집.  아무때나 편히 들러서 종업원들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하다가 아무거나 주문해서 우물우물 먹으면 되는.  음식은 가격이 소박하고,  너무 장식적이지도 않고 그저 단정하고 먹음직한. 딱 동네 밥집 같은.  저는 딱 이만큼의 밥집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고급스러울것도 없고,  난잡할것도 없고, 그냥 수수하고,  편안한. 햇살이 가득하고 나지막한 홀.

 

사과무늬가 들어간 빨간 체크무늬 (딱 컨트리 풍) 밸런스가 맘에 들어서, 나중에 한국 집에 돌아가면, 내 집 커튼도 이런 분위기로, 내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서 달아놓아야지. 이런 생각도 해보고요.  이렇게 환한 창가에서 책보고 글쓰고 그러면, 좋을것 같죠?  음...사실 지금도 그런 '천국'같은 꿈은 이뤄진것 같은데...나는 왜 괴로운걸까...생각해보면, 그것은 ... 내가 욕심이 지나쳐서 그러한것 같기도 하고요.

 

오늘하루 햇살을 잘 쐬고 와서, 기운이 나길래, 배우며 무우, 민들레잎, 부추, 파 이런거 잔뜩 사다가,  쇠고기 돼지고기를 무쳐서 가족들 배를 불리고, 지금 '김치' 절이고 있군요.  김치 해 담아놓고, 천국같은 일상, 내가 소원했던대로,  공부하는 일로 밥벌이가 되는 이 고마운 일상으로 컴백!을 해야할 시간이군요.  (아니, 내가 왜 그것을 잊고 있었지?  내 소원대로 모든것을 이뤘는데, 왜 그것을 깜빡 잊고 있었지? 응?)

 

 

 

 

 

 

 

 

 

 

 

 

 

 

 

 

 

 

 

 

 

 

 

Chrysler Museum of Art 크라이슬러 미술관, 버지니아

 

크라이슬러 미술관 홈페이지: http://www.chrysler.org/

이 페이지의 사진들은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주 남단의 해안도시 Norfolk시에 크라이슬러 미술관이 있습니다.  1933년 Norfolk 지역의 자연, 미술 박물관 (Norfol Museum of Arts and Sciences) 으로 처음 문을 열었던 이곳은 1971 Walter P. Chrysler Jr. 가 그가 선대로부터 상속받았거나 그 자신이 수집했던 미술품들을 한꺼번에 기증하면서 '크라이슬러 미술관'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Walter P. Chrysler Jr. 는 크라이슬러 자동차를 탄생시킨 Walter P. Chrysler 의 아들입니다. 

 

워싱턴에서 Norfolk까지는 대략 200마일 거리. 자동차로 네시간 거리입니다. (왕복 여덟시간). 아침 여덟시쯤 출발하면 정오쯤에 넉넉히 도착하고, 오후 다섯시까지 한가롭게 미술관과 인근 지역 구경을 하다가 저녁을 먹고 여유있게 운전을 해도 집에 밤 열시나 열한시에 도착하게 되므로 크게 부담스러운 거리는 아닙니다.

 

이곳은 입장료 무료입니다. 특별전시를 할 경우 특별전시장 입장료만을 별도로 부과하기도 하고,  자발적으로 푼돈을 입구의 모금함에 넣을수도 있습니다. 관람객들의 자발적 기여를 유도하기는 하지만, 강제적이지 않으므로 편안하게 드나들수 있습니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코트야드 (안마당) 천장 유리를 통해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천장에 휘늘어진 색깔보자기 설치물은  Sam Gilliam 의 Norjolk Keels (1998)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파란 하늘이 내다보이는 철제 프레임과 알록달록하게 펄럭이듯 늘어진 보자기들 전체를 묶어서 볼때 작가의 의도가 드러납니다.  철제프레임과 파란 하늘과, 펄럭이는듯한 보자기들은 마치 푸른 하늘아래/혹은 파란 바닷물결 위에 둥실둥실  떠있는 노폭(Norfolk)앞바다의 배 같기도 하지요.

 

 

 

이것은 2층 전시실 복도에서 다른 각도로 잡아 본 것입니다.  눈부시게 환한 입구가 보입니다. 그 입구 바깥에 파란 바닷가 펼쳐져 있어서 그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물결 그림자가 미술관 벽에 반사가 되기도 하는데, 실내에 잡히는 바닷물결 그림자를 보는 기쁨도 큽니다.

 

 

 

 

 

크라이슬러 가문이 재벌답게 세계 여러나라의 귀한 미술품들을 골고루 수집하였고, 1층에서는 이집트 특별전도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아시다시피 제가 '미국미술'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므로 아프리카나 아시아 그밖의 고대 문화재등은 건성으로 보고 지나간 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회화나 비슷한 시기의 유럽회화 쪽 전시장에서 보냈습니다.  이곳은 2층의 미국 건국 초기의 작품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벽에 걸려 있는 회화 작품 중에는 얼마전에 소개되었던 Edward Hicks 의 그림도 보입니다. (찾아보시겠습니까?  이미지가 작아서 찾기 힘드시겠지만...)

 

 

 

 

풍경화가 Bierstadt (비어슈타드) 의 대형 풍경화가 왼쪽에 보이는군요.

 

 

미국이 강세를 보이는 현대 미술 전시실입니다. 칼더의 모빌 작품도 보이고, 오른쪽에는 리히텐시타인의 작품도 보이지요.

 

 

 

 

아하,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이곳에 백남준씨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Hamlet Robot (1996) 이라는 작품입니다. 열세개의 모니터에서 각기 다른 이미지들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왕관을 쓰고 있고요. 오른속엔 긴 칼, 왼손엔 해골이 들려있습니다.  (백남준씨 페이지는 따로 열 생각인데, 그때 그의 작품들에 대해서 좀더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1층 구석에 단아한 카페가 있었는데,  저는 간단히 아이스티를 주문해서 마셨습니다. 음료수 가격이 스타벅스 커피 가격보다 저렴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깔끔한 테이블, 정중하고 정다운 써빙, 깨끗한 유리잔 이런 것들이 어우러진 상태에서 스타벅스 커피값보다 싼 음료수라... 이정도면 이 미술관의 카페는 최고점수를 주고 싶어집니다.

 

 

 

 

기념품가게에 예쁘장한 물건들이 많이 보입니다만,  특별히 뭘 사지는 않고 구경만 하게 됩니다.  그래도 예쁜 물건들 구경하면 기분이 좋아지쟎아요.  저는 - 늘 그러하듯, 이곳에서 '미국미술화집'을 한권 샀습니다. 이 미술관이 소장하는 미국미술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깃들여져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거의 폐관 시간이 다 되어 미술관을 나와 바깥 구경을 했습니다. 이곳은 노폭의 'Historic Site (역사 유적지)'입니다. 그래서인지 '유럽'의 마을을 연상시키는 고풍스런 예쁜 집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이 집들중에는 역사 유적지로 보존되고 관람객들에게 공개가 되는 곳도 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직접 방문하지는 못했습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인근의 역사 박물관이나 고가들을 구경하러 다녀도 재미있을것 같습니다.

 

 

 

오후 다섯시의 햇살.   박물관 정문 앞에서는 안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두개의 붉은 지붕 건물이 보입니다. 파란 바닷물이 찰랑거리지요. 이 물이 저녁햇살에 반사되어 미술관 안의 벽에 그림자가 집니다.  저는 이 파란바다보다, 흰 벽에 찰랑거리던 그 '그림자'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무엇에 매혹될때, 우리는 가끔 실체가 아닌 '그림자'에 빠지기도 하는데,  때로는 그것이 '그림자'인줄 알면서도 그것을 사랑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림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지요.  그것은 인간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인간에게 '상상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상상력을 버리고 현명해지기보다는, 어리석은채 상상력을 간직하는 쪽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지요...

 

 

 

 

 

 

이곳에서 감상했던 작품들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것은, 이 것이었습니다.

 

 

Paul Gauguin 폴 고갱의 The Loss of Virginity (처녀성의 상실) (1890-1891).  누워있는 여자의 오른손에는 시든 꽃 한송이가 보이고 (전통적인, 처녀성 상실의 이미지) 왼쪽 가슴에는 여우 한마리를 안고 있습니다.  발끝은 서로 모아져있고, 발치 아래의 바위는 남근 모습과 꽤나 닮아있습니다.  그런데 저 언덕아래의 사람들은 왜 그려 놓은 것일까?  문득 이런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다 알겠는데, 저 언덕아래 사람들은 뭔가? 작가는 왜 그들을 그려 놓은 것일까?  관망자? 혹은 결혼식 하객들인가?  이 그림은 우울해보이지도, 명랑해보이지도, 초현실적으로 보이지도 않고...그냥...눈길을 끌면서 사람의 발걸음을 꽉 움켜쥐는군요.  이 그림에서 한참동안 떠나지 못하고 기웃거리고 기웃거리다, 전시실들을 한바퀴 다 둘러본후에 또 가서 들여다보고...그랬습니다.  우울하지도, 명랑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데 꽤 매혹적인 그림입니다.

 

 

 

 

 

석고 조각작품실에 스케치북과 미술도구가 놓여져 있었다. 아무나 그림 그리고 싶으면 그리라고.

 

 

 

 

 

2009년 11월 28일 밝고 따뜻한 토요일에 방문.

American Art at the Chrysler Museum

American Art at the Chrysler Museum: Selected Painting, Drawing, and Sculpture

 

 

American Art at the Chrysler Museum

: Selected Painting, Drawing, and Sculpture (Hardcover)

Margaret Jarman Hagood (Author)

 

http://americanart.textcube.com/190 미술관샵에서 샀다. 편집이나 색상 모두 마음에 꼭 든다.  작품사진 상태가 선명하고, 작가 설명, 작품 설명을 상세하게 잘 정리해 놓았다.  45달러.

 

 

2009년 11월 27일 금요일

[Film] Soloist (2009)

 

http://www.imdb.com/title/tt0821642/

 

영화를 본 후에 웹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 보았다. 전에 어떤 책에서 (어느 책인지 기억인 안난다) 분명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적이 있다. 그 책 내용은, '사람이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쌍방향적인 것'이라는 것이었다. 누가 누구를 '돕는'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구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영화는, 아름답고, 시사성있는 '좋은'영화에 속한다.  일단, 홈리스 (homeless) 사람들을 전면에 배치시켰고, 집안에 있는 나와,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저들' 사이에 어떤 경계가 존재하는지 고민하게 만들며,  근사한 선행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나의 이기심과 그 나의 이기심의 '수혜자/먹이'가 되는 저 사람의 불안감을 엿보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서 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정말로 내 주위에 있는 어떤 사람들이 '정신병적'으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때,  그래서 내가 그 불쾌감을 떨쳐버리려고 해도 잘 안되게 만들고, 귓가에 모기가 앵앵거리듯 자꾸만 사람의 신경을 피곤하게 만드는 상황일때...그럴때가 가끔 있는데... 이럴때 이런 영화보면, 그냥 화면 꺼버리고 싶어진다.  또다른 정신병자를 봐야 하니까.. (영화볼때 내 심사가 조금 그런 방향이었다. 지겨워...쉬려고 영화 보는건데 왜 영화까지 사람 신경을 긁는가...)  그러니까, 매일 '정신상담'을 해야 한다거나 뭐 정말로 스키쪼프레니아 환자를 대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 보다가 중간에 꺼버릴 가능성 커 보인다... (제이미 팍스가 그만큼 연기를 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정말 영화보다 내가 미치는줄 알았다...짜증나서......

 

이런 류의 영화로 얼핏 떠오르는 것이

 1. Shine  (1996) 

 2. Good Will Hunting (1997)

 

등이었다. 샤인은 주인공이 정신분열 음악가라는 유사성이 있고, 굿 윌 헌팅은 '잊혀진 천재'를 발굴해내지만 그 천재가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다는 유사성이 있고.

 

 

http://www.latimes.com/entertainment/la-me-lopez-skidrow-nathaniel-series,0,290300.special

 

60 Minutes 에 소개된 Mr. Lopez 와 Mr. Ayers 다큐멘터리

 

 

사람들이 신문에 소개된 음악 천재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선물들을 보내는 것을 보니 옛날에, 십일년전에, 내가 한국의 어느 시골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 '가난한 집 아이들은 학교에서 영어듣기 오디오 테이프'를 무상으로 제공해봤자 쓸모가 없다. 카세트 레코드 플레이어가 없는 애들은 영어공부 하고 싶어도 '도구'가 없어서 소용이 없다'는 글을 쓴적이 있다.  당시 어느 일간지에 그 기사가 나간후 몇분이 내게 돈을 부쳐왔다.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중에 카세트 플레이어 없는 아이에게 하나라도 사줬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그분들 제안대로 내게 보내진 돈으로 그것을 마련해서 아이들에게 주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 내게 돈을 보냈던 분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우리들은 개인차원의 작은 '선량함'을 실천할수 있다.  그런데 그런 개인차원의 노력이 사회 시스템에 얼마나 기여를 할지는 알수가 없다.

 

Mr. Ayers 가 줄리어드를 다녔는가 아니었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그는 로페즈의 '먹이'거리가 될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가 결정되는 것이 사람 세상의  냉엄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현상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 점이 조금 맘에 들었다.)  사랑받고, 관심 받고 싶은가? 일단 명문대에 들어가라. 졸업하면 더 좋고, 중퇴라도 그럭저럭. 그래야만 설명 홈리스가 되더라도 관심받고 이쁨받을 기회가 생길테니까... 흐흐흐...

 

 

 

 

2009년 11월 26일 목요일

[Film] Fantastic Mr. Fox (2009) Wes Anderson

 

http://www.imdb.com/name/nm0027572/

 

 

여름부터 극장에서 이 영화 예고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 전역에 어제 개봉되었다. 집나간 내 여우가족을 보러가는 심정으로 아침부터 서둘러 영화를 보고 왔다. (서둘러서 아침에 영화를 보는 이유는 사실... 조조할인 6달러. 오후가 되면 11달러).  영화는, 내가 기대했던것 만큼 만족스러웠다.  역시, 몇해전에 영화로 소개된  '찰리와 초콜렛공장'의 원작자 Roald Dahl 의 동화가 원작이 되었고, 감독 Wes Anderson 이 직접 시나리오로 옮겼다.

 

 

 

 

 

 

Wed Anderson 이 누군가, 찾아보니

  1. Fantastic Mr. Fox (2009)
  2. Hotel Chevalier (2007)
    ... aka Part 1 of 'The Darjeeling Limited' (USA: subtitle)
  3. The Darjeeling Limited (2007)
  4.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 (2004)
  5. The Royal Tenenbaums (2001)

아하, 내가 2001년 이래로 그의 작품들을 모두 봐왔던 터였다.  집나간 내 여우들은 잘 지내고 있는것일까... 영화 제작과정이 간단치가 않았을터인데, 참, 사람의 상상력이란... 놀랍다.

 

 

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Quiz] Thanksgiving Turkey

Freedom from Want

궁핍으로부터의 해방

Norman Rockwell

 

Norman Rockwell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Norman%20Rockwell ) 의  추수감사절 풍경 그림인데요, 제목은 '궁핍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림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미국의 추수감사절의 어떤 '전형'같은 식탁 주변 풍경이라 추수감사절 휴가기간에 생각이 나서 올려봤습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매년 11월 네번째주 '목요일'입니다.  미국에서는 공휴일의 경우 날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몇번째주 무슨 요일 이렇게 정해가지고 반드시 노는 공휴일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날짜를 확정해버리면, 그 날짜가 돌아왔을때 토요일이나 일요일인경우, 노는 공휴일의 의미가 없어지쟎아요. 원래 노는 날이니까. 그러니까 몇번째 월요일, 목요일 뭐 이런 식으로 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놀수 있지요.

 

추수감사절은 매년 11월 넷째주 목요일이고, 관공서나 각급 학교등에서는 수요일부터 휴가에 들어가 수, 목, 금요일 휴가를 갖고 토요일, 일요일은 원래 노는 날이고 그런 식입니다.  일부 대학에서는 아예  추수감사절이 낀 주를 그냥 가을 휴가처럼 일주일 내내 쉬기도 하는데, 이런 학교에서는 그 전 주말이면 학생들이 보따리를 싸가지고 집으로 가지요.  아무튼 크리스마스 직전에 대대적인 '민족대이동'이 일어나는 명절입니다.  사실, 추수감사절 휴가 지나고 어영부영 하다보면 크리스마스 휴가철이 다가오므로, 추수감사절부터 이미 연말분위기로 흥청이게 되는것 같습니다. 세월이 무상하다는 것도 절감하게 되고요.  한국에서는 이맘때가 '김장' 담글때이지요...

 

 

 

추수감사절에 미국인들이 만들어 먹는 음식으로는 대략

 

 1. Turkey 칠면조 양념 통구이 

 2. Corn bread 옥수수빵 (초기 정착민들이 인디언들에게서 전수받아 농사지은 작물이 옥수수였지요)

 3. Pumpkin pie 호박파이 (가을에 흔하니까)

 4. Cranberry sauce 크랜베리 소스나 쥬스

 5. mashed potato 으깬감자

 6. Gravy 고기 육즙 (그레이비)

 7. Fall fruits and vegies 그밖에 가을철 과일과 채소류

 8. Stuffing 이라고 해서, 칠면조 구울때 (우리나라 삼계탕할때처럼) 칠면조 뱃속에 여러가지 재료를 채워넣고 함께 익히는데, 그것을 stuffing (무엇을 채운다는 뜻입니다) 이라고 부릅니다.

 

 

아 그런데, 이번에 학교에서 제게 큼지막한 칠면조 한마리를 안겨주는군요.  (아이구야. 난 어차피 고기 못먹으니까 이거 ...관심도 없는데...주는걸 버릴수도 없고...)  그래서 이놈을 어떻게든 요리를 하게 생겼습니다. 이놈을 통째로 굽는데 대략 7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고요, 그 외에도 신경쓸것이 많군요. 잘 못 요리하면 겉은 타고 속은 안익고 그럴것이 뻔하죠 (어이쿠...)

 

아무튼 책에서 조리법을 찾아서 일단 이놈을 양념물에 몇시간 풍덩 담가두는 프로젝트에 들어갔습니다. 자 이제, 심심하니까, 퀴즈 들어갑니다. 말하자면 Problem Solving (문제해결) 퀴즈 입니다.

 

제 상황이 어떤가 하면, 

 1. 두팔로 안아야 할 정도로 큰 칠면조가 통째로 있습니다.

 2. 이놈을 일단 양념물에 풍덩 담가서 육질을 부드럽게 해줘야 하는데요

 3. 정해진 분량의 양념물을 만들었습니다. (물 5리터가 필요합니다.)

 

그림을 조금 과장해서 그리긴 했는데 문제 상황이 뭔가하면

 1.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작은 들통에 칠면조를 담으면 칠면조가 다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2. 다른 큼직한 '스댕다라이'를 찾아왔는데, 이 '다라이'가 바닥을 넓고 납작한 용기라서 역시 칠면조의 몸통이 다 잠기지도 않거니와,  그 다라이를 다 채우려면 양념물이 엄청 더 필요합니다. 난 양념물을 더 만들 재료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 현재 부엌에 있고, 부엌에는 부엌에서 사용하는 것들이 널려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나는 칠면조를 푹 잠기게 담아둘만한 적당한 용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마련한 양념물에 칠면조를 푹 담가놓는 일에 성공했습니다.

 

퀴즈: 나는 어떻게 했을까요?

힌트: 뭔가 부엌에서 찾아내어 이 문제를 해결했겠지요.

         단, 칠면조를 자르거나 뭐 토막을 내는 짓은 안했습니다. 칠면조는 통째로 물에 잠겨있지요 =)

 

정답은 여러가지일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물론 정답을 맞추신대도 상은 없습니다. 단 저의 이쁨을 받을수 있겠지요. ㅋㅋㅋ~ 

 

 

 

 

 

 

Edward Hicks: Quick Quiz

Edward Hicks 관련 페이지를 두개를 열었습니다.

 

1. http://americanart.textcube.com/184

2. http://americanart.textcube.com/185

 

해당 페이지 관련 간단한 '확인' 퀴즈 입니다. (앞으로 어떤 주제의 글을 한꼭지 마치면 퀴즈 페이지를 하나 만들기로 했습니다 = )  )

 

 

1. Edward Hicks 가 즐겨그린 주제가 두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가)

   나)

 

 

2. Edward Hicks가 속했던 종교집단은 무엇인가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

 

 

3. Edward Hicks 의 그림속에 등장하는 동물 이름 다섯가지를 적어보세요

 

  1. _____________________

  2. _____________________

  3. _____________________

  4. _____________________

  5. _____________________

 

 

 4. Edward Hicks 가 남긴 그림들중 생각나는 작품 제목이 있습니까? 제목이 무엇인가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요?

 

  1. 제목: ______________________

  2. 내용: ______________________

 

 

 

 

수고하셨습니다. 정답은 해당 페이지에서 찾아 보셔요.  =)

 

 

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Edward Hicks: Quaker? 퀘이커?

19세기 미국의 풍속화가 Edward Hicks (http://americanart.textcube.com/184)페이지를 열었는데, Edward Hicks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퀘이커 교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지금 보이는 것은 미국의 식품 매장 어디에 가나 흔히 보이는 '퀘이커'라는 식품 브랜드 입니다.

 

 

 

 

퀘이커에서 만들어내는 것으로는 오트밀, 시리얼, 각종 곡물이 들어간 식사대용 '영양바,'  쿠키 등이 있습니다. 저역시 가끔 뜨거운 물에 타서 먹는 오트밀로 점심을 때우기도 합니다.  퀘이커는 한국의 '삼양라면'처럼 미국의 일반 서민들의 생활 깊이 스며든 식품이라 할 만 합니다. (제가 삼양라면이나 혹은 퀘이커를 광고할 의도는 없습니다. 그냥 비유컨대 그렇다는 것이지요.)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난 Edward Hicks 는 본디 부모님이 '영국국교 (성공회 = Anglican)' 소속이었지만,  성장과정에서 힉스를 친아들처럼 돌봐준 아주머니의 영향으로 퀘이커교도가 됩니다. 그 아주머니가 퀘이커 교도였다고 합니다.

 

퀘이커 교단이 미국 문화사에서 어떤 위치인가 잠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미국에 메이플라워를 타고 처음 온 사람들은 '필그림'들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어떤 교파였습니다. 이들은 당시의 영국국교(Anglican)에 반대하여 종교적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건너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후에 뉴잉글랜드 지역에 '퓨리턴 (puritan = 청교도)'들이 역시 영국국교에 반대하여 종교적 자유를 찾아 들어옵니다.  퓨리턴들인 매사추세츠에서 시작하여 뉴잉글랜드 지역을 장악하게 됩니다.

 

한편 뉴잉글랜드의 남쪽,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는 '영국국교회' 앵글리칸들이 정착을 합니다. 그리고 뉴잉글랜드와 버지니아의 중간쯤에 위치한 펜실베니아에 퀘이커교도들이 정착을 합니다.  펜실베니아에 영국식민지를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이 바로 Edward Hicks 의 풍속화 Peaceable Kingdom (평화의 왕국)에 등장하는 William Penn 입니다. 그는 퀘이커 교도였습니다.  윌리엄 펜은 영국국교에 반대하는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옥스포드 대학에서도 추방을 당한 사람입니다.

 

퀘이커교단에서는 '모든 인간은 신과 직접 대할수 있다'는 사상을 갖고 있으며 교회조직이나 직업적인 성직자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개인의 양심과, 묵상을 통한 신과의 대화를 귀하게 생각합니다. 이들은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옷을 입는 일이나 삶을 꾸미는 일에 대해서도 소박함을 유지하려 하였습니다.  이들이 영국에서 박해를 받다가 신대륙의 펜실베니아 지역에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미 영국에서 종교적 이유로 박해를 받은 경험이 있었던 펜은 그가 개척한 식민지를 '모든 종교적 박해를 받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도록 노력을 합니다.  그리하여 이 지역에 영국인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나라 이민자들이 몰려옵니다.  Edward Hicks 의 그림에 묘사된대로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안들과도 협정을 맺고 서로 평화롭게 협력하고 사업을 해 나갔습니다. 

 

자 미국 초기 역사에서 각기 다른 기도교 교파들이 미국의 어떤 지역을 토대로 성장했는지 간단히 정리해볼까요?

 

 

 1. Pilgrims (필그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 항에 도착하여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생존에 성공했던 사람들 입니다. 이들이 가을 추수후에 하늘에 감사하고, 선량한 이웃이었던 인디언들에게 잔치를 베풀며 함께 기쁨을 나눴던 것이 미국의 Thanks Giving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2. Puritans : 그런데 필그림들은 후에 주도 세력이 되는 Puritan (청교도) 들에게 밀려나거나 흡수되고 맙니다.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3. 한편 버지니아 남단에 King James 식민지가 개척되는데, 이곳에는 영국 국교 (Anglican = Episcopal = 성공회)신도들이 정착합니다. 버지니아에 앵글리칸 교회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일 것입니다.

 

 4. 그리고 뉴잉글랜드와 버지니아 사이의 중부, 펜실베니아에 퀘이커 교도들이 자리를 잡아서 City of Brotherly Love = 필라델피아를 일으키는데, 이곳에는 종단이나 교파에 상관없이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이주민들이 몰려와 자리를 잡게 됩니다.

 

미국사에서 '퀘이커'의 위치를 살펴보면 퀘이커 교도였던 Edward Hicks의 풍속화에 그려지는 미국의 풍경, 노아의 방주 그림등에 대하여 좀더 생생하게 이해할수 있게 되지요.  (아, 그런 배경이 있는 그림이구나, 아하!)  윌리엄 펜이 펜실베니아를 일으킨것은 17세기의 일이지만 19세기의 에드워드 힉스에게는 살아있는 영웅이었을겁니다. (다른 페이지에서, 엉클 톰스 캐빈 이야기를 잠깐 적은 적이 있는데요.  흑인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도망을 칠때, 이들을 보호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퀘이커 교도들이었지요.  그 소설에서 처음 퀘이커교도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제게는 이들이 아주 '착한' 사람들로 각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고문헌:

 

1. 앙드레 모로아. (1991)  미국사. 신용석 옮김. 기린총서. 기린원. 5장 (pp 46-55)

2. 청솔역사교육연구회. 이야기 미국사. 청솔출판사

 

 

 

Edward Hicks 에드워드 힉스가 꿈꾼 평화의 나라

미국에서 일년중 11월의 네번째주 목요일은 우리나라의 추석과 흡사한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Holiday)입니다.  각급 학교나 회사, 공공기관들은 추수감사절 전날인 수요일부터 공식적인 휴일에 들어가서 수, 목, 금요일 공식 휴일을 갖습니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원래 일을 안하는 사회이니까,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5일간 휴가를 갖는 셈입니다. 

 

그 추수감사절이 금주로 다가와서, 이와 관련 그림을 소개할까 합니다.  추수감사절 관련 그림이야 다양한 화가들이 그려냈지만, 저는 펜실베니아 출신의 풍속화가 에드워드 힉스 (Edward Hicks 1780-1849)의 그림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사진을 클릭하여 확장시키면 큰 화면을 보실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제가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찍은 힉스의 Peaceable Kingdom (평화의 왕국) (c.1834)이라는 유화입니다.  제가 이 작품의 제작년도를 c.1834 라고 표기했지요? circa 1834 혹은 그냥 c.1834 라고 적은 것은 '대략, 짐작컨대' 1834 년쯤으로 추정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역사적 사실을 표기할때 영문으로 circa (c.)  표시가 있으면 이는 '대략 추정된다'는 뜻입니다. (참고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들은 누구일까요?  크게 두가지로 나눠 볼 수 있는데 (1) 사람들 집단, 그리고 (2) 동물들이 보이지요. 우선 사람들을 들여다 볼까요?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잘 알수 없지만, 짐작컨대, 서양사람들과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모여서 뭔가 하고 있는것 같지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거래'가 되는것 같습니다. 유럽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상자에서 뭔가 꺼내어 인디언들에게 보여주고 있지요. 선채로 뭔가 설명을 하는 유럽사람이 보입니다.  이들의 거래의 장면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동물들이 모여있는 광경을 볼까요? 사자, 호랑이, 양, 소, 송아지... 육식동물과 초식동물들이 태평하게 어울려 있습니다. 천사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이 동물들과 어울려 있습니다.  한마디로 '천국'에서나 가능한 풍경이겠지요?

 

 

에드워드 힉스가 꿈꾸던 '평화의 왕국'은 이렇게 신생국 아메리카에 정착하러 들어온 사람들과 이 터전에서 이미 살아온 인디언들이 서로 자신들이 가진것을 나누고 공유하는 사회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Thanksgiving Day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초기 미국 정착민들에게 도움을 준 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식사대접을 하고 잔치를 한것에서 비롯됩니다.

 

 

아래의 그림은 제가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찍어온 것입니다. 제목은 Penn's Treaty with the Indians (윌리암 펜과 인디안의 협정) 입니다. 창작년도는 c.1830-1835.  대략 1830년에서 1835년 사이에 그려졌을거라 추정된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을 들여다보세요. 위의 그림속의 사람들과 약간 차이가 나지만 거의 동일한 구도로 비슷하게 그려냈습니다. 단 특별한 차이가 있다면, 가운데 서 있는 남자가 위의 그림에서는 그냥 두 팔을 펼치고 있는데, 아래의 그림에서는 그의 왼손이 펼쳐진 두루마리의 어떤 부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두루마리'가 새로 등장했다는 것 외에는 사람들 풍경이 위아래 비슷해 보이지요? (물론 위 아래의 그림을 나란히 놓고, 그림에서 서로 다른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면서 시간을 보내도 심심풀이가 될것 같습니다.)

 

 

액자에 Penn's Treaty 라고 적혀진 것으로 보아, 두루마리에는 미국정착민들과 인디안들 사이의 협정서가 적혀 있는것 같습니다.

 

 

 

 

 

 

 

 

자 여기서 제가 독자여러분께 한가지 '질문'을 던져 보고 싶습니다.

 

앞서 소개한 '평화의 왕국' (c. 1834) 과 후에 소개한 '윌리엄 펜의 협정' (c. 1830-1835) 두장의 그림은 각기 대략 1834년 추정, 1830-1835년 추정 이렇게 표시가 되어 있는데요. 그림속의 사람들의 모습과 주변 풍경을 보면 어느 그림이 역사적으로 선행되는 그림일까요?   (여우야, 여우야 네가 평화의 왕국 그림을 앞에 소개했고, 윌리엄펜의 협정을 뒤에 보여줬으니까 그 순서가 아니겠니?  --이런 추측을 하실수도 있을겁니다.)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제가 그림을 들여다보듯 저의 독자도 제 시선을 따라 그림을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서 입니다.  (저는 지금 제 애인한테 그림 설명해주는 기분으로 그림을 읽고 있으니까요.)  평화의 왕국 그림 배경은 그냥 '자연'입니다. 강이 흐르고, 숲이 있고,  퀘이커 교도들을 연상케하는 복장을 한 사람들과 미국 원주민들이 모여서 물물교환을 하는듯한 풍경이지요.  윌리엄펜의 협정 그림 배경 풍경에는 '인간 문명'이 포함됩니다.  (아마도 델러웨어 강일것인데) 강에 배들이 떠있고, 건물들도 보입니다.  그리고 어떤 '조약문'이 적혀있을 두루마리가 등장을 합니다. 역사적으로 '후'에 일어난것으로 추측되지요.  그렇지만 위의 두 그림중 어떤 그림을 에드워드 힉스가 먼저 그렸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미술사가들도 잘 알수가 없기에 circa 표시를 했을것인데, 제가 추측하기에는 위의 평화의 왕국을 1834년에 그렸다면, 윌리엄펜의 협정 그림은 그 이후가 될것 같습니다. (추측일 뿐입니다.)

 

에드워드 힉스 (1780-1849)는 펜실베니아의 유복한 영국교 (성공회)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18개월 되던해에 어머니가 사망합니다. 그 이후로는 어머니와 절친했던 친구들의 보호속에 자라났는데 그들이 퀘이커 교도였습니다.  힉스는 마차 장식 그림에 재미를 붙여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마차장식이나 표지판등을 그리는 것으로 돈벌이를 하게 됩니다. 그가 퀘이커 교단에 입문한것은 그가 20대 청년시절 부터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에드워드 힉스는 마차장식그림이나 표지판 그림을 그리는 일에 열중하면서 퀘이켜 교단의 설교자도 하게 됩니다. 그는 신과의 내면적 대화를 강조하는 퀘이커 교단의 교리에 심취했던듯 합니다.

 

에드워드 힉스는 1820년대부터 그가 사망하기까지 대략 30여년간 그의 '평화의 왕국'을 그려냈는데, 현존하는 작품만도 60여점에 이른다고 합니다.  제가 워싱턴의 국립미술관에서 찍어온 작품도 이 60여점 중의 하나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미술사책을 들여다보면, 시기별로 평화의 왕국 그림 내용이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이미지는 제가 웹에서 얻어온 것인데요 (조만간 윌리엄스버그에 가서 작품을 보고 올 생각입니다) 이것은 액자 자체까지 그림작품입니다.  액자에 새겨진 문구까지 힉스가 모두 선택하여 새겼다는 뜻입니다.  (힉스가 마차 장식과 표시판 제작을 했던 경력을 여기서 확인할수 있지요. 그림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까지도 '말'로 새겼습니다.

 

The wolf shall also dwell with the lamb,

and the leopard shall lie down with the kid

and the calf and the young lion and the fatling together

and  a little child shall lead them.

 

늑대가 또한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염소새끼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할것이며

한 아이가 이들을 이끌것이라

 

(이사야 11:6)

 

 

 

 

 

이 그림은 The Peaceable Kingdom of the Branch (c.1825-1830) (95.9x81.9 cm) 으로 그의 평화의 왕국 연작중에서 초기의 작품이라 할수 있습니다.  본래 이 '평화의 왕국' 시리즈는 영국의 Richard Westall 이라는 화가의 동명의 작품이 있었는데, 구약성서를 바탕으로한 Westall 의 그림세계에 크게 감화를 받은 힉스가 자신의 스타일로 그의 신앙심을 그가 그가 가장 잘 할줄아는 '그림'의 세계에 접목을 시켰다고 할수 있지요.  그림의 배경은 실제로 버지니아에 존재하는 '천연 다리 (Natural Bridge)' 입니다.  일치하지요?  저도 이곳을 지나친적이 있는데, 이 풍경이 힉스의 그림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지요.  그른 상상력을 발휘하여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에 옮기거나, 혹은 역사적 사실을 그렸지만, 분명히 상상에 기반한 미술작업을 했지만 그러나 그림의 배경에 그는 그가 관찰하거나 목도했던 풍경들을,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풍경들을 그림의 배경으로 그렸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을 시기별로 보면서 당시 역사의 전환이나 풍경의 전환을 살펴보는 일도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림을 제대로 읽으려면, 관련 역사도 좀 알아야 하고, 그러다보면 그림 들여다보다가, 책들여다보다가, 도끼자루가 썩지요...)

 

 

 

 

http://cache.virtualtourist.com/3060528-NATURAL_BRIDGE_VIRGINIA-Natural_Bridge.jpg

 

 

 

 

다음 그림 역시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사진 찍은 것으로 제목은 Noah's Arc (노아의 방주) 입니다. 1840년 작품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기독교 경전에 실린 일화입니다.  동물들 표정이 참 순하고 착해보이죠?  아이들과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발견한다면, "무슨 동물이 있나 찾아보자"하고 놀이를 해도 좋을것 같습니다. 영어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영어로 동물 이름을 불러봐도 좋겠지요. 혹은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들려줘도 좋을것 같습니다.

 

 

 

 

 

 

 

 

에드워드 힉스는 그의 신앙심 (성서)을 기반으로 한 사람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의 주제

 (1) 평화의 왕국

 (2) 노아의 방주

를 시리즈로 그렸지만, 그가 그린 풍경화도 남아있습니다.  다음은 워싱턴 국립미술관에서 사진찍은 작품입니다.

 

 

 

The Cornell Farm (1848)

oil on canvas

 

 

이 작품은 Edward Hicks (1780-1849)가 68 세쯤에 그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남긴 최후의 몇점에 해당하는 그림이겠지요? 

 

(어디엔가에 기록을 한 적이 있는것 같은데, 저는 어떤 작품을 볼때, 그것이 미술작품이건 혹은 문학작품이건, 어떤 작품을 들여다볼때는 이것이 사회, 문화, 역사적으로 어떤 배경이 있는지, 이 작품을 창작할때 작가는 대략 몇살쯤이었는지 이런 상황을 들여다보는 편입니다. 이 작품의 연도를 들여다보고 그의 생몰년내를 들여다보니, 어쩐지 이 그림이 색다르게 다가오더란 말이지요.)

 

 

이 풍경화 속에는 다양한 무늬의 소와 말이 한데 어우러져있고, 돼지, 양도 있군요. (이들이 비록 가축들이긴 하지만, 여전히 평화의 왕국이나 노아의 방주 시리즈에서 보이는 동물들의 평화가 감지 되지요?),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반듯하게 줄지어 서있는 나무들이나 길, 그리고 집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원시림의 시대가 아닌, 정돈된 인간 문명의 시대가 그의 말기 작품에 담겨져 있습니다.

 

 

에드워드 힉스의 그림들은 '풍속화 (Folk Art)'로 분류됩니다.  무엇이 풍속화이고 무엇이 그냥 '미술'인가?  엄밀한 분류기준이 있어보이지는 않습니다. 에드워드 힉스는 정규 미술 수업을 한 사람이 아니고, 마차장식 '기술자'쯤으로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했고, 이렇게 실용적으로 시작된 그의 그림 이력이 평생 그와 함께 했습니다.  전에 정리했던 Grandma Moses (모세할머니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Grandma%20Moses ) 역시 미술수업을 받은적이 없는 풍속화가로 분류 됩니다.  그러면 이쯤에서 우리는 한가지 의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어떻게 미술 전문 교육을 받지도 않은 사람들이 미술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능가하는 일이 발생하는가? 왜 서툰 그림이 이따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것일까? 왜 서툴고 조악해 보이는, 균형도 안맞고 엉뚱한 그림이 국립 미술관의 전시실을 차지하는 일이 발생하는것일까?  여기서 더 나아가서, 그러면 '교육'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까지도 가능해집니다.

 

 

이 질문에 누군가 전문가가 뭐라고 조언을 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혹은 제가 계속 공부를 해 나가다가 어느날 어떤 실마리에 도달하면, 다시 이 페이지로 돌아와 이야기를 마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드워드 힉스의 그림은 저를 빙긋 웃게 만듭니다.  그의 그림속의 동물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바보 사자처럼, 얼간이 표범처럼, 이빨빠진 늑대처럼 빙긋 웃게 됩니다.

 

즐거운 추수감사절 되시길.

 

 

참고문헌:

 

1. 앙드레 모로아. (1991)  미국사. 신용석 옮김. 기린총서. 기린원. 5장 (pp 46-55)

2. Philadelphia Museum of Art: Handbook of the Collections (2008) Philadelphia Museum of Art

3. Frances K. Pohl  (2008) Framing America: A social history of American art (2nd ed.). Thames & Hudson: New York, NY.

 

 

 

 

2009년 11월 22일 일요일

[Film] The Wrestler (2008)

 

 

미키 루크가 출연한 영화중에서 기억나는 것은 1987년 Alan Parker 의 Angel Heart 뿐이다. 그의 Nine and Half Weeks  라는 영화도 있었는데, 당시 내가 매우 '금욕적'이고 '청순한' 인생을 살던 시절이라, 영화를 보다가 '뭐냐 저거...'이러고 꺼버리고 다시 안 봤다.  그래서 그 9와 1/2 영화는 줄거리를 끝까지 모른다.  Angel Heart  는 Alan Parker 에 미쳐서 봤던 것인데 뭐 그냥 그랬다. (장마다 꼴뚜기는 아니니까).   Heaven's Gate 에 미키 루크도 나오고 크리스토퍼 월큰도 나오는것 같은데 아직 영화를 못구했다.

 

미키 루크를 한 20년만에 보는것 같다. 그때, 참 섹시스타였던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랫만에 보니 '아저씨...많이 망가지셨네...' 한숨이 나올지경이다.  우와, 젊었을때 한창때의 브래드피트보다 미남이었는데 어쩌다 저렇게 망가지셨는가. (브래드 피트도 나중에 망가져주려나?)

 

참, 인생 텁텁한 얘기다.  보고있자니 '암담해'지고 만다.  특히 그 식품매장에서 한 아주머니가 샐러드 용량갖고 많다, 적다, 많다, 적다 하고 사람 뺑뺑이치게 만들때부터 나도 부아가 끓었다. (아 성질나...저거 참아야 하는데, 참아야 하는데, 참아야 하는데...) 결국 잘 참았는데, 정말 이 사람을 폭발시킨이는  Ram을 기억해낸 어떤 사람. (그래, 나의 과거의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 앞에 섰을때, 그 때, 그 순간을 견디기가 더 치욕스러울 것이야...)

 

 

얼마전에 읽었던 How Starbucks Saved My Life 에서 저자이며 주인공인 Michael Gates Gill  은 직수굿이 그의 치욕을 삭히고 커피점 점원으로 살아가는 길을 택했지만; 우리의 레슬링선수 램은,  사자가 평원으로 나가듯, 그의 링으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그의 삶과 직면한다.  그것이 직수굿한 체념이건, 죽을때까지 무한도전이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참 '용감'한 일인 것이지.  우리는 각자의 '링'에서 살다 죽는것이지. 인생 별것 있나.  미키 루크 아저씨는 그의 '청순한 미모'를 포기하고 '퇴역 호랑이' 배역을 근사하게 해 내셨다.  역시 미남은 늙어도 미남이구나~ 

 

***

 

내가 어릴땐, 박치기 김일 선수, 그리고 신사 천기덕 선수가 있었고,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끼가 기억난다.  흑백테레비 시절에 이 '레슬링'을 할때면, 사람들은 길거리 전파사 앞에 모이거나 혹은 테레비가 있는 집 마루/안방을 기웃거렸다.  우리 식구들은 숫기가 없거나 자존심이 세거나 뭐 어떠한 이유에선지 남의집 기웃거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그런짓 못하게 주의를 주셨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었거나).  그대신, 우리집 안방에 테레비가 들어왔을때,  이웃에서 셋방살이를 하던 집 친구들이 얌전히 들어와 테레비를 봤던 기억이 난다.

 

옛날엔 레슬링이 '실제' 상황인줄 알고 정말 흥분하고 그랬었다. 

 

머리가 커서, 그것이 다 각본에 의한 '상업적 쇼'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혹은 다른데 정신이 팔려서 그 레슬링을 보는 재미를 잃었다.

 

언젠가 어느해던가, 그것 역시 까마득한 옛날 일인데, 학교 운동장에서 프로레슬링을 한다고, 그런데 김일 선수가 나온다고 동네가 시끄러웠었다.  나는 '설마 박치기 대장 김일선수가 이런 변두리 동네까지 오겠냐. 순 뻥이다' 이러고 무시했는데, 정말 레슬링 구경 갔다 온 사람들이 '김일 선수'를 봤다고 자랑을 했다.  나는 '김일 선수'는 너무너무 위대해서 (마이클 잭슨따위보다도 위대해서) 아무나 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상상했을 것인데, 그것역시 나의 상상이었을 뿐.

 

내 기억속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는 아직도 여전히 '김일 선수'이다.  십여년전에 영화 '반칙왕' 나왔을때, 꽤 재미있게 봤었다.  천기덕 선수의 아들은 탤런트가 되었는데 가끔 그 '천호진'(?)를 테레비에서 볼때, 레슬링계의 신사였던 천기덕 선수를 떠올리곤 했다. 

 

아아, 레슬링을 테레비로 본 날이면 밤에 잔다고 이불 깔아놓고, 온가족이 '레슬링' 한판.  내동생녀석과 나는 허구헌날 심심하면 요위에서 뒹구르며 레슬링을 연마했다. 그때 우리는 레슬링의 규칙들을 잘 알고 있었다.  하하하.

 

 

*** ***

 

 

 

그 칠십년대 중반, 우리 나라 서민들이 가가호호 흑백테레비의 주인이 되던 시절,  우리들이 저녁밥을 콩나물국에 말아 퍽퍽 퍼먹으며 김일 선수에 열광하던 그 시절, 그 시절에 저녁 어린이 만화시간에 틀어주던 흑백만화 (당시 흑백테레비였으므로 설령 총천연색 만화라 한들 흑백으로 보일수밖에 없었을것이지) 드라마중에 '타이거 마스크'가 있었다.

 

거치른 사각의 정글속에

오늘도 피바람이 몰아쳐온다

사납고 더러운 악당들에게

정의의 펀치를 보여주어라

싸워라 싸워 타이거 타이거 타이거 마스크!

 

크!  이 노래 정말 목이 터지게 불렀다.  지금 회상하니 아무래도 일본 애니메이션 수입해다 보여준것 같은데, 착하고 선량한 젊은이가 일단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링에 올라가면 그는 천하 무적이 되었다.  우리의 타이거 타이거 타이거 마스크!   (아직도 선명하게 가사 외우는 실력~ 하하하. 얼마나 열광 했으면... 그 정신으로 일찌감치 공부에 입문했으면...아이구야..)

 

어린이시간에는 타이거마스크 만화 틀어주지, 저녁 뉴스 끝나면 프로 레쓰링 (발음나는대로 표기) 보여주지, 뭐 신나는 레쓰링 세상이 있었다. 일천구백 칠십년 중반에.  아, 나도 참 세상 오래 살았다. 지금은 21세기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도 나는 부를수 있다 타이거 마스크!

 

 

 

2009년 11월 21일 토요일

타샤 튜더 (Tasha Tudor) 의 삶과 예술

 

Tasha Tudor (1915-2008)은  우리나라에 삼일운동(1919)이 일어나기 4년전인 1915년에 출생하여 지난해인 2008년까지 생존했던 미국의 삽화가이며 미술가입니다.  제가 우리나라의 삼일운동 얘기를 왜 하느냐하면,  타샤가 태어나 성장하던 시절 한국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돌아봄으로써 좀더 구체적으로 이를 기억하기 위해서이지요 (^^)  피상적인 어떤 '시간'을 좀더 구체적인 사항와 연결지어 생각하면 나중에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  삼일운동하면, 저는 33인보다는 유관순 '누나'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요. 생각해보니, 타샤 튜더는 우리 할머니와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할머니가 열 여덟에 시집을 와서 열아홉에 우리 아버지를 낳으셨는데, 우리 아버지의 생년을 헤아려서 우리 할머니의 생년을 거꾸로 헤아리면 대충 우리 할머니와 타샤 튜더의 나이가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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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와 나

 

 

 

타샤 튜더는 동화의 '삽화'를 그리거나 자신이 직접 글과 그림을 그린 삽화가이면서 동화작가이기도 하고, 미술가이기도 했던 여성입니다.  제가 이분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한권의 책 때문이었습니다. 책이 하도 아름다워서 이 책을 산것이 2006년 12월의 일이군요.

 

 

The Private World of Tasha Tudor

 

 

다음은 2006년에 책을 다 읽고 간단히 메모했던 독후감입니다.

타샤 튜더 할머니의 그림 세계를 보면,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꽃 구근을 많이 사기 위하여 그림을 그려서 판다고 말할정도로 매우 현실적이다. 그의 현실성은 그의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직접 자신이 관찰한 내용을 그린다. 모형을 갖다 놓고 그걸 그리는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것들을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런 면에서 신사임당의 그림과도 많이 닮았다. 늘 맨발의 그녀는 육체노동을 마다하고 그림만 그리는 사람도 아니다. 스스로 노동하고, 자투리 시간을 그림을 그려서 그림을 팔아 살림에 보태고 스스로 먹고 사는것이다. 언제부터 화가가 전업화가이고 철학자가 전업철학자였던가. 언제부터 오로지 그림만 그리는 사람을 프로페셔널이라고 일컫고 생활속에서 살면서 그림 그리는 사람을 아마추어라고 부른것일까? 전업=프로페셔널이라는 이 잘못된 신화를 타샤 튜더 할머니는 맨발로 간단히 일축하고 마는지도 모른다. 상업화가이건 순수화가이건 사실 그건 구분의 요소라고 할수 없을지도 모른다. 보는 사람이 보고 '좋다' 이런 말이 나오면 된다는것이지. 좋다. 이 한마디가 얼마나 어려운것인가.

 

그래가지고, 당시에 약간 '헤까닥'해서 공부 하다말고 자투리 천 사다가 이런 놀이고 하고 놀았습니다. 요것이 말하자면 타샤 튜더 스타일의 앞치마인데, 손바느질로 탄생시킨 '어마어마한!' 작품이었지요... 사실 그 후에도 조각보를 만든다거나, 뜨개질로 이불을 세개나 짜내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는데, (하하하), 조각이불 세개중에서 가장 근사하게 만들어진 최종 작품은 한국의 우리 엄니한테 갖다 드렸고, 하나는 제가 현재 사용하고 있지요. 그것도 지금 돌아보면 공부 스트레스때문에 약간 '돌아가지고' 저지른 '난동'이었다고나 할까요.  아아 곱게 미쳤던 것인지도 몰라요. 어쩌면 인생 자체가 그냥 한바탕 꿈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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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치마를 입은 모습입니다. 앞의 털복숭이는 우리 강아지 (아무리 늙어도 영원한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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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할머니는 본업이 삽화가, 미술가이긴 하지만, 그가 우리나라에까지 알려지게 된 것은 아마도 한국에도 번역소개 된 '타샤 튜더의 정원'류의 그의 삶을 모습을 닮은 책들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환경문제가 전지구적인 화제로 대두 되고, 웰빙 바람이 불면서 미국에서 친자연적으로 살아가는 화가의 삶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 분위기가 일본과 한국에도 흘러 들어오면서 타샤 튜더가 일약 유명인사가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위에 소개한 책 외에도, 도서관에서 아래의 책들을 빌려 올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탸샤 튜더 관련 책들이 많이 있지요.

 

 

탸샤 튜더의 어린시절

 

타샤는 매사추세츠주의 보스턴 (Boston)에서 1915년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건축 설계자였고, 어머니는 미술가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좋아했는데, 여주인공 이름인 나타샤를 딸에게 붙여주었는데 결국 '타샤'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튜더라는 성은 어머니의 성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딸을 데리고 친구를 만날때, "여기 튜더의 딸이 왔노라"하고 말하길 좋아했으므로, 타샤는 자신의 이름이 타샤 튜더인줄로 알았다고 하는데요,  공식적으로는 아버지의 성을 갖고 살다가 첫 남편과 결혼한후 남편의 성을 사용했고, 그 남편과 이혼 하면서부터 '튜더'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결정 했다고 합니다.  (타샤 튜더는 두번 결혼하고 두번 이혼했습니다.)

 

'나로'님이 타샤 튜더에게 한국인 며느님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셔서 웹 검색을 해보니 그분이 쓰신 시어머니 타샤 튜더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곳에 나옵니다. (내용이 좋으니까 여러 블로거들이 스크랩을 한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에 http://kr.blog.yahoo.com/jjssslee/15  페이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시어머님은 학교교육을 8학년까지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트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지식과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약간, 타샤 튜더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것 같습니다. 타샤 튜더의 교육 관련 자료를 찾다 보면 그가  Boston Museum School of Fine Arts (http://en.wikipedia.org/wiki/School_of_the_Museum_of_Fine_Arts,_Boston) 에서 수학했다는 내용이 있고, 그 외에도 미술가들로부터 개인 지도를 받았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타샤 튜더가 이 학교의 어떤 과정에서 몇해동안 수학했는지 알 수 없고, 이 학교에서 8학년 과정까지 공부를 했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만, 타샤 튜더가 성장하던 시기 (1915년생 미국 소녀가 성장하던 시기)에 미국 여성들중 정규 대학 교육을 받은 고학력 인구가 얼마나 될지 상상해 본다면 타샤 튜더의 8학년까지의 교육 이력이나 혹은 그의 미술학교 수학 이력이  교육적으로 열악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타샤 튜더의 어머니도 미술가였고,  어머니와 교류하던 절친한 사람들도 미술가였던 점, 그리고 그가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거나 미술가들로부터 개인지도를 받았음을 볼때, 그는 미술가가 될만한 교육을 충분히 받았다고 봐야 마땅할 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소녀였던 우리 할머니는 소학교도 못다닌 농가의 규수였지만, 아무도 우리 할머니를 학교 교육도 못받은 불학무식한 처자로 보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교육제도는 오늘날과 달랐으므로.  똑같은 이유로 타샤 튜더가 설령 8학년까지만 학교를 다녔다해도, 오늘날의 기준으로 그의 교육을 가늠하면 곤란하다는 것이지요.

 

 

타샤 튜더의 부모님은 타샤가 9세가 되던 해에 이혼을 합니다. 타샤는 엄마와 함께 뉴욕의 예술가들의 거리에서 살면서 성장하다가 후에는 커넥티컷주에 있는 엄마 친구의 집에서 지내면서 이따금 엄마를 만나게 됩니다.  아래의 지도는 미국 영토중에 우리가 '뉴잉글랜드'라고 말하는 지역의 지도입니다.  이 뉴잉글랜드 지도를 왜 소개하는가 하면 '미국사'혹은 '미국 문화사'에서 뉴잉글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이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타샤 튜더가 전생애를 이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지냈으며 뉴잉글랜드의 전통 문화를 평생 지키며 살다간 사람이기 때문 입니다.

 

뉴잉글랜드

 

 

Map of New England.

https://americancoloniesdana.wikispaces.com/Economy+-+New+England+Colonies

 

 

우리나라에서 호남, 영남 뭐 이런 식으로 지역을 구분하듯이 미국에서도 땅덩어리를 몇개의 구역으로 나눠서 이름을 붙이는데, 중서부도 있고, 서부도 있고, 여러가지 갈래중에 '뉴잉글랜드'라는 갈래가 있습니다. 

 

 * Connecticut 커넥티컷

 * Rhode Island 로드 아일랜드

 * Massachusetts 매사추세츠

 * New Hampshire 뉴 햄프셔

 * Vermont 버몬드

 * Maine 메인

 

이상의 여섯개 주가 뉴잉글랜드 문화권에 속합니다.  며칠후에 미국에 추수감사절 (Thanks Giving Holidays)이 다가오는데, 이 추수감사절은 이 뉴잉글랜드에 미국 건국초기에 정착했던 사람들이 인디언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식사접대를 한것에서 유래합니다.  뉴잉글랜드는 말하자면 신생국가 '미국'이 태어나 태를 묻은 곳과  같은 곳입니다. 뉴잉글랜드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영국'을 기리는, 영국의 문화가 많이 스며든 곳이기도 하지요. 

 

뉴잉글랜드에서 결혼 생활 그리고 동화책 작업

 

 

 

뉴잉글랜드의 매사추세츠주에서 태어난 타샤는 부모 이혼후에 뉴욕에서 지내다가 커넥티컷주의 농가에서 아름다운 농가 생활에 반하게 됩니다.  타샤는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일찌감치 꿈꾸게 되지요. 1938년 타샤는 Thomas Leighton McCready, Jr. 와 결혼하여 코넥티컷의 '어머니의 농가'에서 살림을 시작합니다 (어머니가 과테말라로 미술 여행을 떠나서 집이 비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남편쪽 조카를 위해서 Pumpkin Moonshine 이라는 그림 동화를 그려서 출판하게 되는데, 이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어 그후로 타샤 튜더는 직접 자신의 그림동화책을 만들어내거나 삽화를 그리는 일로 평생을 보낼수 있게 됩니다.  Pumpkin Moonshine 은, 미국에서 호박속을 파낸후 호박등을 만드는 전통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어린 소녀가 호박밭에 가서 아주 큰 호박을 하나 발견하는데 그 호박이 제 멋대로 띠굴띠굴 굴러다니면서 사고를 치다가 결국 잡혀서 호박등이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호박등은 매년 10월 마지막날인 할로윈데이 (만성절 이브)에 많이 만들지요.  이 작품이 그이의 출세작이었다 할 만 합니다.

 

 

 

 

 

1945년에는 그가 삽화를 그린  Mother Goose (전통 동요 모음집)로 Caldecott 상 (http://en.wikipedia.org/wiki/Caldecott_Honor ) 을 받기도 하고, 그의 동화와 삽화작업은 그에게 각종 상과 훈장을 불러옵니다.

 

 

 

 

 

 

1945년에는 그가 삽화를 그린  Mother Goose (전통 동요 모음집)로 Caldecott 상 (http://en.wikipedia.org/wiki/Caldecott_Honor ) 을 받기도 하고, 그의 동화와 삽화작업은 그에게 각종 상과 훈장을 불러옵니다.

 

 

 

 

 

 

 

 

 

 

 

이들 부부는 뉴햄프셔주로 이사하여 자신들의 집과 농장을 갖게 되는데, 이곳에서 이들의 네명의 아이들이 태어나 자랍니다. 이들 부부는 1961년 이혼합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성을 비롯 자녀들의 성을 모두 '튜더'로 정하게 됩니다.  1971년 타샤는 뉴햄프셔주의 집을 팔고 버몬트주로 이사하는데, 이곳에는 그의 아들 Seth가 이미 와서 정착하여 있었습니다. 아들 Seth는 이웃으로 이사 온 어머니를 위해 직접 '손'으로 농가주택을 지어냅니다. 그것이 타샤 튜더가 2008년 작고하기까지 살게되는, 오늘날 남아 있는 집입니다.

 

 

1971년은 타샤 튜더가 '버몬트'주로 이사한 해 이기도 하지만, 그의 대표작이라 할수 있는 Corgiville Fair 가 출판되어 널리 알려진 해 이기도 합니다. Corgi는 타샤 튜더가 아끼는 개 종류이지요. 영국 여왕이 사랑하는 종류의 개라서 '여왕의 개'라고 알려져 데요.  이 개를 의인화하여 코기마을을 하나 탄생시키고 코기종의 개를 비롯하여 다양한 동물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배경입니다.  이야기도 삽화도 모두 타샤의 창작물인데, 배경을 보면 식민지시절 (미국 초기 시절)의 뉴잉글랜드 마을의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개나 고양이 혹은 작은 들짐승이지만 배경에는 미국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지요.  저는 지난 여름에 이 뉴잉글랜드 지역을 여행 한 적이 있는데, 타샤 튜더 그림책속의 마을 모습과, 내가 눈으로 확인했떤 전통적인 마을의 모습이 여전히 일치했지요.  이 책이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이후로 Cogville 시리즈가 출판되기에 이르릅니다.  (타샤는 그림을 팔아 꽃뿌리를 샀겠지요.)

 

 

 

 

 

 

 

 

고집쟁이 타샤

 

버몬트에서 정원과 농장을 가꾸며, 미국 식민시절의 삶의 스타일 (복장이나 삶의 방식)을 고집하고 살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동화책을 만들어 돈벌이도 하던 타샤 튜더.  그는 그림과 동화 작가라는 전문 영역과,  정원가꾸기와 농장 돌보기라는 또다른 영역을 함께 일궈냈다고 할 만 합니다.  한가지도 이루기 힘든데 두가지를 한 것이지요.  그의 결혼 생활을 보면 1938년에 첫남편과 결혼하여 1961년에 이혼했으니 첫 결혼은 23년간 지속되었고, 후에 또 한번 누군가와 결혼 했는데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이혼했다고 합니다. 이혼 사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짐작하기에 타샤 튜더는 자기 세계가 확고한, 고집스러운 사람이었을 겁니다.  고집스럽게 세상 문명을 등지고 역사의 어느 시기, 그가 '이상화 했던' 어떤 시기의 삶을 고집하고, 그 시기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우리나라의 안동이나, 이와 유사한 '역사적인' 마을에 가면 아직도 조선시대의 양반 복장을 고집하고, 당시의 풍습대로 제사지내고 당시의 풍습을 고집하는 분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분들에게는 자신이 지켜야 할 어떤 이상향이 있을 것입니다. 타샤 튜더 역시 이런 '자신만의 이상향'을 추구하고 고집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옳다 그르다를 논할 이유는 없지만, 아무튼 평범하지는 않은 것이지요.  그렇게 살아간다는 일이 간단하지 않지요. 

 

타샤 튜더 관련 책들 (사진으로 도배가 된 환상적인 책들)을 보면 이분의 삶의 풍경이 천국처럼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가꿔내기 위해서 타샤가 얼마나 열심히, 부지런히 일 했는지 우리는 잘 가늠할수 없습니다. 삶의 한 장면은 아름다울수 있지만, 그 장면 뒤에 숨겨진 노고는 사진에 잘 드러나지 않지요.

 

 

타샤 튜더의 아름다운 삶이 가득한 사진집 속의 어느 미국 할머니 (타샤)를 보고 있으면 그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선땅에서 태어나 조선인, 한국인으로 살다가 타샤보다 몇 해 일찌 저승으로 떠나신 우리 할머니의 삶이 포개집니다.

 

 

 

 

 

특히나 아래에 보이는 풍경속의 타샤는 우리 할머니와 참 닮았습니다.  집도 풍경도, 사람 모습도 우리 할머니의 풍경과는 다르지만, 쌓인 눈과, 겨울 나무와, 좁다란 길을 걷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우리 할머니 같습니다.  튜더의 정원, 튜더의 아름다운 실내장식보다는 저것을 가꾸기 위해 저 노인이 기울였을 노력, 한낮의 현기증, 한겨울의 추위, 가을의 소슬바람, 이런 것들이 이제 제 눈에 들어옵니다.

 

"너 타샤 튜더처럼 살고 싶은가?"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아마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 것입니다. 일단 저는 매우 게으르고, 농사짓는것 힘들다는것 잘 알고...  게으른 주제에 이런 아름다운 삶을 탐하면 안되겠지요. 그대신 평생 내 힘으로 일하고 내 밥벌이 내가 하고, 가능하면 남 도와주면서 사는 인생, 불평안하고, 남 탓 안하는 인생. 그런 인생은 희망하는 편입니다.  그렇게 살다 죽으며 좋을것 같습니다만 ... 아 그것도 요원하군요 저야말로 잘되면 내탓 안되면 모두 남의탓으로 돌려버리고 이불 뒤집어쓰고 신세한탄하기 일쑤이므로. ㅎㅎㅎ.

 

 

 

 

 

 

 

 

 

 

 

미국 미술사 속의 세명의 할머니

 

제가 알거나 기억하는 범위 안에서, 미국 미술계에서 '눈에 띄는' 할머니 셋을 고르라면  저는

 

(1) 모세 할머니 Grandma Moses (1860-1961)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Grandma%20Moses

(2)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 (1887-1986)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Georgia%20O%27Keeffe

(3) 타샤 튜더 Tasha Tudor (1915-2008)

 

이렇게 세명을 꼽고 싶습니다.  (조지아 오키프 페이지도 차근차근 만들겠습니다.) 뭐, 적어도 '할머니' 소리를 들으려면 90가까이 살면서 활동을 해야겠지요.  =)

 

이 세사람중에 (1) 모세 할머니는 가난한 농가의 딸로 태어나 평생 평범한 농가의 안주인으로 남편과 해로하다가, 남편이 사망한 후에 눈이 침침해서 (!) 뭐 심심풀이로 그림 그렸다가 대박! 터진 천재였고요. (2) 조지아 오키프는 엘리트 미술 교육 과정을 거쳐 미술계의 별이 된 화가였고요, (3) 타샤 튜더는 삽화와 동화 분야에서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다가, 막판에 (?) 그의 라이프 스타일로 더욱 유명해진 분입니다. 각자 삶의 이력이나 그림의 분야가 다르지만,  '장수한 미국 미술가'라는 공통점도 있고, 다들 개성있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는 공통점도 있지요.  =) 참 매력적인 할머니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나는 우리 할머니가 가장 힘있고 매력있는 할머니였다고 생각해요. 내 할머니 이니까~  나를 키워준 할머니이니까요. (무조건인거죠)

 

 

 

 

 

 

 

정리 2009년 11월 21일 RedFox

 

 

 

http://www.tashatudorandfamily.com/index.html  : 2008년 작고한 타샤 튜더 할머니의 가족이 운영하는 홈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