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3일 수요일

엄마

 

 

 

엄마는 회갑을 맞이하던 16년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가 수술을 받고 오랜 회복기를 거치셨다.

..

5년전에 대장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극복한 엄마는

1년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엄마가 두가지의 암 수술을 받고 극복하는 동안, 나는 엄마곁을 지킨적이 없었다.

엄마를 일으킨이들은 내 오빠, 언니, 동생 가족이었다.

 

엄마의 목에는 갑상선 암 수술을 받은 수술자국이 그려져있다.

그걸 보면 목이 멘다.

엄마는 허리가 많이 꼬부라졌고, 그리고 매일 한바퀴씩 돌았던 호수공원에도 잘 나가시지 못한다.

 

내가 연꽃 사진 찍으러 간다는 말에 '나도 호수에 가본지가 오래된다'며 따라 나서셨다.

올해에는 장미꽃축제에도 가보지 못했다고 하신다.

엄마는 호수공원 입구에서 사신다. 집나서면 바로 호수공원인데도 장미가 피고 지도록 못가보셨다고 한다.

그냥 삶이 분주해서,

늘 뭔가 할일이 생겨서.

기운이 없어서.

허리가 아파서.

.

.

나하고 왕눈이하고 호수공원 반바퀴를 도는동안 엄마의 굽은 허리가 펴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엄마는 산책을 했어야 했다.

 

 

 

 

 

나는 거의 하루, 하루 걸러씩 치과에 가서 한시간 혹은 두시간씩 입을 (아가리를) 벌리고 치료를 받는다.

마취주사에 취해 신경치료를 받고 얼굴이 얼얼한채로 (아무런 감각도 없는 얼굴을 꼬집어가며) 집에 돌아오기도 하고,  이러다 턱뼈가 빠지는 것은 아닐까 슬그머니 걱정이 들기도 한다.  치과 공사는 내 예상대로 '총체적' 보수공사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오래된 보철물들을 모두 뜯어내고, 새로 본을 떠서 끼운다거나,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된 충치 치료를 한다거나.  치과에서는 내 출국 일정에 맞춰서 서둘러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치과 서비스 최고. 우리나라 좋은나라다.)

 

치료를 하면서 치과의사나 간호사들은 틈틈이 "힘드시죠" "아프시죠" 하고 나를 위로하는데

사실 나는 편안한 느낌이다.

어릴때 치과 치료 받을때는 꽤나 아프고 불편하고 힘들게 여겨졌는데

이제는 별 통증없이 치료를 받고 있다. 치과 기술이 정말 많이 좋아진듯하다. 편안하다.

 

  ***

 

운좋게도 아주 세밀한 건강 검진을 '무료'로 받게 되었다. 원래 몇년에 한번, 내가 무료로 검진을 받을수 있는 기간인데, 마침 그때 내가 국내에 있으므로 무료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 이른 아침에 광화문에 나가서 내 생애 최초의 건강진단을 받았다.  가령 담당 의사들이 "위 검사 받으신적 있으셔요?" 뭐 이런 질문을 할때마다, 나는 "처음입니다..." 이런 대답을 종알종알 해야 했다.  심지어는 "8년간 병원에 가본적이 없어요..." 라고 말하며 나는 킥 웃고 말았다 (원시소년 돌치~  자연의 아이 돌치~ )

 

자궁경부암 검사는 받을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생리중이라고, 생리 끝나고 일주일 후에 오란다. 그때쯤 비행기를 타고 떠나가고 있겠지~  그래서 나는 속으로 '야호!' 외치며 웃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곳이 그 무시무시한 산부인과 의자이다. (난 검사 안받을거다 야호~)

 

유방암 검사라는 것도 처음 해봤다. (뭐든 내겐 처음이니까.)  웃음이 나왔다.

 

내 시력은 좌우 1.2.

청력 정상

폐는 최상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고 검사자가 가르쳐주었다.

(음주 측정하듯 뭔가에 입을 대고 훅 불어보라고 했는데, 내가 그걸 아주 잘 한 모양이다.)

 

내 '쓸개'에는 3-4 밀리미터 정도 되는 사마귀 같은것이 있다. (하하하) "쓸개가 뭔가요?" 하고 물었더니 "담낭" 이라고 가르쳐준다. 담낭이 뭔지는 묻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마귀 같은것은 크게 신경쓸것 없다고 의사가 가르쳐주었다.  사람들중에 그런 것을 몸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고, 제거 할 것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안심했다.

 

혈압 정상

신장이나 심장도 튼튼하고, 기타 장기도 건강해보이고. 대략. Clean Bill of Health 일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몇가지 검사는 일주일후에나 결과가 나오므로 좋은 소식이 오기를...

 

 ***

 

치과 치료에 집중하느라, 피부과에는 갈 시간이나 여유가 없어보인다.

기미제거는, 나중에 귀국하면 하던가, 말던가...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치과치료는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으므로 중요하다.

내 구강건강이 8년동안 방치된것에 대해서

나는 내 치아들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하고 고생시키고 있었구나...

공사비가 이백만원 가까이 나가는데, 물론 비싸긴 하지만, 미국 치과 치료비를 생각하면 비싸다는 생각도 지워지고 만다.  몇해전에 큰아이의 어금니 하나를 크라운을 씌우는데 1,500달러 가까이 들었었다. 어금니 크라운 하나 씌우는데 3개월쯤 지나갔다.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하품이 나올지경이다.  그에 비하면 10년 가까이 방치되어 엉망이 된 내  치아건강을 모두 복구하는데 200만원이면 오히려 고마운 지경이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찍소리 안하고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다.

 

  ***

 

내일은 엄마하고 소풍을 간다.

엄마가 친구분들과 어디론가 소풍을 가시는데, 나보고도 가자고 하신다. '벤또'를 싸가지고 가자고 하신다.

그래서 저녁에 치과에 다녀오는 길에 김밥, 유부초밥 재료를 사가지고 왔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 김밥, 유부초밥을 만들고, 과일을 예쁘게 잘라 담고, 고구마 찐 것도 담고

그렇게 소풍 도시락을 챙겨가지고 엄마를 모시고 소풍을 갈 것이다.

엄마는 고단하다고 먼저 잠이 드시고

나는 엄마가 꺼내준 찬합세트를 정리하고

찬합 케이스, 주머니를 비누로 깨끗이 빨아서 널어놓았다.

옛날에 내가 소풍갈때 우리 엄마가 김밥을 싸주셨으니

이제는 내가 우리 엄니 소풍 도시락을 챙겨드릴 차례이다.

 

엄마는 '계란'도 삶아서 싸라고 하신다. 계란도 삶을 것이다.

뭐든 엄마가 하자는대로 ...

이제는 늙은 엄마가 내 딸이 되고, 내가 엄마가 되어 엄마의 도시락을 내가 쌀 차례이다.

 

 ***

 

앞으로 보름정도 남았다.

나는 치과치료와 내가 꼭 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 (수업, 특강)외에는 엄마와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엄마가 하자는 것 위주로.  엄마와 P선생이 좋은 파트너가 되어 지낼수 있도록.  늙으신 나의 엄마는 내가 없는 빈자리를 지키며 사위를 돌봐야 한다. 하하하.

 

 ***

 

엄마는 소풍갈때 예쁜 옷을 입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엄마는 곱고 잘생긴 딸을 앞장세워 다니며 폼을 잡고 싶은신거다.

엄마는 나를 앞장세워 다니며 자랑을 하실것이다.

나는 기꺼이 엄마의 자랑이 되어드릴것이다.

그것 외에 나는 다른 효도의 방법을 모르고, 그리고 내 천성이 게을러서 별다른 효도는 불가능해보인다.

그냥 내가 행복하게 웃는것, 그것이 엄마에게 가장 큰 효도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난 행복하게 웃을것이다.

그러면 하느님도 기뻐하실 것이다.

 

 

댓글 4개:

  1. 보름 후면 저두 한국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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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엄마 얘기에 아~~하고 좀 길게 숨을 쉬고 눈물이 조금 나고 그랬어요..

    그거 효도 맞는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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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emptyroom - 2010/06/24 12:12
    아, 저는 도통 시간이 안나서 선물 쇼핑을 못하고 왔는데, 그래서 조금 아쉽네요. 아웃렛에서 폴로 셔츠라도 사다가 돌렸어야 했는데... 한국에 오니까 오이, 풋고추, 조선상추, 토마토를 싼값에 실컷 먹을수 있어서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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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사과씨 - 2010/06/25 10:34
    제가 일단 마음이 들볶이지 않고, (철도 들고) 그러니까 저 스스로도 여유가 생긴것처럼 보여요. (아, 이것이 나이 드는 것의 아름다움인걸까...) 엄마는 그냥 '함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뻐하시는 것 같아서, 참 효도하기 쉽죠. 함께 시간을 보내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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