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9일 수요일

그녀가 우스개만 떠드는 이유

옛날에 십년도 더 된 일이다.

 

내가 학교에서 영어를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자자해지면서 (착각은 자유), 학교에서 '학생들 어머니들이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어머니를 위한 영어교실도 운영을 해 달라고 했다.  학생들의 '어머니'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내게는 예측하지 못했던 '도전'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들' 혹은 '삽사십대 주부들 집단'을 상대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내게 도전으로 여겨졌던 이유는, 나 역시 그 나이또래의 '아파트 주부'중의 한 사람으로 주부들 집단의 '파괴력'을 어느정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부집단은 어마어마한 파워의 원동력인데, 그 힘이 긍정적으로 작용할때와 부정적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긍정적으로 작용할때 나라를 부흥시킬 원동력인가하면, 부정적으로 작용할때 아파트 주변의 가게를 무너뜨릴 괴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영어 선생인 나 한명을 씹어서 밟아버릴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실수하거나 인간적으로 맘에 안 들 경우.)

 

그래서

 

그 당시에 나는 영어수업 준비외에 별도로 서점에서 '유머책'을 몇권 사다가 달달 외웠었다. 수업 중간에 틈틈이 그 내가 외운 유머를 써먹었다. 내 주부학생들은 오분 단위로 그 유머에 자지러졌고, 우리들은 유쾌한 수업을 진행할수 있었다. 나는 학생들의 '친구'로 거듭날수 있었다.

 

나는 내가 영어선생이 아니라 '개그맨'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적도 가끔 있었지만

그 때문인지, 그 영어교실에는 중간 낙오자나 이탈자가 생기지 않았다.

내가 나의 생존의 방법으로 '본능적으로' 선택한 이 '유머 전법'이 잘 맞아떨어진것 같았다.

(그당시, 초기에 나는 급성 위염까지 앓았었다. 스트레스성 급발작성 위염.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에 의한. 하하하. 나는 살아남았다. 위염도 물러갔다. 우리들의 영어교실은 유쾌했다.)

 

수십년간 공직을 돌면서 '영의정'을 거쳐서 지금은 외교관으로 지내고 있는 모 인사의 부인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온갖  작살 유머로 사람들을 웃긴다. 그가 입을 열면 유머가 튀어나온다. 유머에서 시작해서 유머로 끝난다. 그의 유머가 어찌나 유명한지, 대통령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각종 파티에 그를 초대한다고 한다. 파티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인은 -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웃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가로 결정되는것 같다. 

 

그런데, 어제는 이분이 '내가 왜 사람 모인자리에서 우스개만 떠드는지' 그 사연을 들려준다.

새파란 젊은 시절부터 공무원의 아내로 이리저리 떠돌다보니

생전 나랏님 흉을 볼수도 없고

상관에 대한 흉을 볼수도 없고

어떤 일에 대해서 함부로 의견을 드러낼 수도 없고

그래서 이리저리 조심하다보니

맘놓고 떠들수 있는 것은, 그저 남을 웃겨주는 유머인데

원래 성격이 쾌활하고 남 웃겨주는 일이 즐겁고

그러다보니 평생 공직자의 아내로 살면서 유머만 떠들어대서

덕분에

사람 모인자리에서 남 얘기 하거나 의견을 드러내는 식으로 '말실수'를 한적은 없고

"우스개만 떠들고 나면 몇시간 웃고 나도 남얘기 한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좋더라..."

 

아하, 이분역시 생존방법으로 우스개를 선택하신 것이구나...

 

 

 

이분이 남에 대한 험담을 할 때는 오직, 영의정까지 지낸 자신의 '남편'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이다.

남편이 칠칠치 못해서 구겨진 넥타이를 맨다던가 이런 소소한 흉을 보는것이 그가 '타인'에 대해서 뭔가 비평적인 언사를 보이는 유일한 예라고 할 만하다.

누군가에 대해서 '씹고 싶다'고 생각되면

남을 씹기보다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 자신과 진배없는, 내몸같은 존재에 대해서만 씹는 것이 사회생활에 유리하다. 그 외에 타인에 대한 의견을 함부로 드러내는 사람은 그만큼 자기 자신을 위험에 노출 시키는 것이리라. (나역시 허구헌날 남 흉보고 씹는것을 즐기면서 살아가지만 말이다.)

 

 

내가 수년간 나로서는 생사를 건 듯한 어려운 공부만 하느라고 내 인생이 빡빡해진 감이 없지 않다.

공부 마치고나서 맡게된 자리가 또 어려운 자리라서,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다시 유머집을 들여다보고 달달 외워야 할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위해서, 또 남을 위해서.)

 

 

 

 

 

 

 

댓글 1개:

  1. RedFox님의 수업, 저도 한번 듣고 싶어요. 영상강의도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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