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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8일 월요일

[Film] Bella

 

http://www.imdb.com/title/tt0482463/  (2006)

 

디비디 샵에서 '뭐 볼까' 어정거리고 있을때, 옆에서 나처럼 어정거리고 있던 신사가 나를 돌아보더니 검지 손가락으로 이것을 가리키면서, "This is beautiful..."  그래서, 그냥 낯선 타인이 서슴없이 다가와 소개한 그것을 나도 집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영화가 좋았으면 남한테 대뜸. (타인의 눈썰미를 한번 믿어보자.)

 

영화 자체는 -  내 취향에 어긋나는 캐랙터가 등장해서 '감점'의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그 낯선 사람이 왜 이 영화를 내게 추천했는지 알 만 했다.  좋은 영화였으니까.  그러면 내 취향에 어긋나는 요소들은 뭔가하면

 (1) 남자 주인공이 수염을 기르고 있는데, 보는 내내 아이구 저 수염좀 어떻게 깎아버리지... 답답허네...

 (2) 애 낳고 도망가버리는 무책임의 극치인 여자주인공.  난 이유가 어떠하건 애 낳고 남한테 줘버리고 가버리는 무책임의 극단에 대해서는 --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괘씸해서 용서가 안된다.

 

이러니, 남자 주인공 수염이 걸리적거려, 여자 무책임해서 재수없어... 이런 판국이니 다른 요소들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내가 제대로 집중해서 빠져들기가 어렵지...

 

그럼에도 이 영화, 참 아름다운 영화다.  아름다운 요소들도 번호 매겨서 살펴보면

 (1)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다 용서가 되는, 무조건적으로 감싸주는 남미의 가족애가 따끈따끈하게 그려졌다.

 (2) 색상이 참 밝고, 화려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

 (3) 전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삶의 아름다움, 빛의 아름다움, 순간순간의 삶의 찬미

 (4) 미국의 중심세력이 아닌 '이민자'들의 삶의 스케치가 예술적이다.

 (5) 이민자와 언어의 문제도 나온다 (이건 내 전공 분야이니까, 중대한 요소이다. 수업중에 언급을 할수도 있겠다)

 

 

여기 등장하는 가족은,  '행복한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의 아주 전형적인 모델같은, 힘있고 사랑넘치는 유형이다.  중산층, 서로 사랑하고 감싸주는 따뜻한 구성원들.  아버지는 푸에르토리코, 어머니는 멕시코 출신의 이민자.  미국사회에서 푸에르토리칸, 멕시칸에 대한 인상은 -- 어쩐지 못배우고, 가난하고, 범죄가 연상되는 그런 인구인데, 이 영화에 보여지는 가족은 중산층의 깔끔한 집, 아름다운 정원, 아름다운 실내, 행복한 가족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인상을 확 깬다. (내가 공부할때 내 친구들중에도 푸에르토리칸이 있었고, 이들이 중산층으로 잘 사는 사람들이었건만, 나는 내 친구가 공부를 제대로 안한다는 이유로 무시했었다. 그리고 푸에르토리칸들은 공부를 못한다는 식의 편견을 유지하고 있었다. 편견을 가지면 안된다는 이성과는 달리, 내 감성은 푸에르토리칸 혹은 남미 사람 전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런 식의 '인상을 깨는' 장면이 몇군데서 일어난다.  뉴욕의 어떤 작은 가게에서 가게 주인과 손님이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다.  손님은 "내가 10달러를 냈고, 이 물건이 1.5 달러이니 내게 8.5 달러의 거스름돈을 줘야 하는데 네가 거스름돈을 3.5달러밖에 안줬다.  5달러 더 내라"고 따진다. 주인은 "웃기지마. 너 5달러 지폐 냈쟎아"하고 반박한다. 손님을 10달러 지폐를 줬다고 우기고 주인은 5달러 지폐를 받았다고 우긴다.  손님은 백인이고 주인은 아시아 남자다. 싸우다가 손님이  아시아남자 가게 주인에게 "Go back to Korea! (한국으로 돌아가버려!)" 라고 외친다  그러자 가게주인이 대꾸한다, "I am from China! (난 중국에서 왔다구!). 서로 이렇게 싸우다가 백인 남자가 투덜대며 거스름돈 3.5달러만 받고 나가버린다.

 

다음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주기 위해 금전 등록기를 열었을때, 거기 들어있던 10달러짜리 지폐.  아, 그 백인남자는 10달러를 냈던 것이다. 그는 싸우다가 5달러를 포기하고 가버린 것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인 내가 흐름을 보면서 연상했던것

 (1) 백인과 아시안이 다툰다. 저 백인녀석 이상한 녀석 (아시안 편이 된다)

 (2) 장면이 사납게 흐르자 - 분명 손님이 권총을 꺼내고, 이제 피튀기는 장면 나오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빗나갔다.  백인녀석은 억울한 손님이었고, 오히려 실수는 가게 주인이 한거였다.  권총이나 피튀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 역시 편견의 동물이라.

 

미국인들이 뉴욕에서 아시안을 보면 '한국인'으로 몰아서 생각을 해버리거나, 혹은 몰아서 중국인으로 보거나 이러한 현상이 잘 나와있다.  (저 장면만 따로 떼어서 수업중에 보여주고, 토론을 시켜봐도 재미있겠다.)

 

이민자와 영어의 문제: 이 문제는 푸에르토리칸 아버지가 영어를 안배우고 버티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푸에르토리칸 아버지는 미남이고 성품 좋고, 친절하고 참 좋은 분이다. 나라도 이런분한테 반하고 말거다. 그런데 미국에서 수십년간 살면서도 영어를 안배우고 뻗댄다.  내집에서 내 말 쓰면 되니까, 영어 안한다는 것이다.  영어를 조금 할줄은 알지만,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단어 단위로만 조금 할 뿐이다. 하지만 그는 영어가 안되어도 중산층으로 살 정도로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고 있고, 가족을 행복하게 이끌고 있다.  우리가봐도 너무나 매력적인 사람이다. 이 아버지를 보면 푸에르토리칸은 무식하고 가난하고 뭐 이런 인상이 모두 깨지고 만다. 영어를 못해도 얼마든지 매력적인 아버지이다. 이 문제도 생각을 좀더 해봐야 한다.

 

전체적으로, 내 취향에 어긋나는 요소가 있긴 하지만, 화면의 빛이라던가, 따뜻한 삶의 풍경들, 가족들, 등, 여러가지로 장점이 많은, 아름다운 영화이다.  내게 이 영화를 권한 그 신사의 선택은 훌륭했다. 덕분에 잘 봤다.

 

 

 

 

 

 

2010년 1월 6일 수요일

The Eight / Ashcan School (6): George Luks

펜실베니아 출신의 The Eight 화가 George Luks (1867-1933)는 의사인 아버지와 미술가이며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슬하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가족이 펜실베니아의 광산촌 가까이로 이사한 후에는 부모님이 가난한 광부 가족들을 돕는 일에 헌신을 하였으며 조지 럭스 역시 이런 삶의 영향을 받아 서민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펜실베니아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조지 럭스는  당시의 미술 학도들과 마찬가지로 유럽으로 건너가 런던, 파리를 여행하고,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도 생활을 하였는데, 결국 고향인 펜실베니아로 돌아와 Philadelphia Press 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역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John Sloan, William Glackens, Everett Shinn 등과 교유하게 되고, 이들과 함께 Robert Henri를 만나게 되는데 결국  이 만남이  The Eight 의 모태가 됩니다.

 

 

George Luks 는 당시의 The Eight 멤버들을 위시한 사실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도시 대중의 삶을 그렸습니다.  William Glackens와는 스튜디오를 함께 쓰며 동고동락 했다고 하는데, 그는 술을 좋아하여 취해 쓰러져 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 '술'이 화근이 되어 그를 죽음에 몰아넣게 되는데요. 66세이던 조지 럭스는 술집에서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 끝에 사망했다고 윌리암 글랙슨스의 아들이 회고록에서 밝힙니다. (공식적으로는 새벽에 그림 그리러 나가다가 문앞에서 쓰러져 사망했다고 발표가 되었지만, 사실은  모르는 취객한테 맞아서 사망을 했다는 것이지요.)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는 인정이 많았고 기꺼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으며 빈민가의 사람들과 뒤섞이는 것을 편안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을 찾아보면 광부, 걸인등 가난하거나 소외된 대중들에 대한 묘사가 많습니다.

 

 

 

이 그림은 1915년 당시 뉴욕 맨하탄 북부의 풍경입니다. 판잣집같이 자그마한 집들이 옹기종이 모여있는 것이 보입니다.

Upper Manhanttan (맨하탄 북부)  1915

Oil on Canvas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The Polka Dot Dress (물방울무늬 드레스) 1927

Oil on Canvas  94.0 x 147.4 cm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루스 센터 (Luce Foundation Center)에서 촬영

 

 

이 물방울무늬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그림은  루스센터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그림들 중에서 제가 발견한 것인데요. 꽃 모자를 쓰고, 흰바탕의 파랑 물방울 무늬의 드레스를 입은 이 여인이 중산층 신분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투박한 구두, 장갑, 멋대가리 없는 핸드백,  짙은 입술 연지, 그녀가 앉아있는 딱딱한 나무의자등을 종합해서 보면 이 여성이 서민, 일 다니는 가난한 여성으로 보입니다.  (이런 설명을 하자니,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식인 살인마가 여 수사관을 쓱 일별하고, 그녀가 온갖 싸구려 옷과 구두 향수로 치장했다는 것을 분석해내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꼭 관상쟁이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감식안이 생기지요... )

 

그런데 저 여성의 표정이 참 복잡하고도 심오합니다.  싸구려 옷과 장신구로 치장한 여자가 앉아있는 의자도 푹신한 안락의자가 아닌 딱딱한 나무의자이거니와, 여자가 앉은 자세는 왜 저렇게 엉거주춤한겁니까? 눈치를 보며 엉덩이만 걸친 꼴이라 다리 모양도 세련되게 포개진 것이 아니라 역시 엉거주춤 합니다.  그리고 시선은 살짝 내리 깔았는데요,  그런데 저 표정이 참 애매합니다. 어쩌면 꿈을 꾸는것도 같고, 생각에 잠긴 것도 같은데,  참 보잘것없고 볼품없이 대충 엉거주춤 앉아있는 이 여자의 표정에는 만만치 않은 기운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나, 니네들이 보기에 별볼일 없는 인생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아직 꿈이 있고,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젊음과 기운이 있다구....뭐 이런 표정 같기도 합니다.  살짝 시선을 내리 깔고 앉아있는 저 표정만큼은 '여왕'을 압도할만한 기운이 흐르고 있습니다.

 

 

 

 

 

Woman with Macaws (앵무새와 여인) 1907

Oil on Canvas

2009년 10월 31일 디트로이트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관에서 촬영

 

 

앵무새를 길들이는 여인의 표정이 명랑해보입니다.  앵무새의 붉은 새조가 화면 여기저기에 투영되면서, 한겨울에 보기에 따뜻한 그림이군요.  위의 물방울무늬 드레스의 여자의 표정이나, 이 앵무새 여자의 표정이 태평하고 강인해보입니다.  아마도 조지 럭스의 표정이 이와 비슷했을것 같습니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고,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선량하게 관찰하는 화가의 표정.

 

조지 럭스의 그림을 더 발견하면 업데이트 하기로 하겠습니다.

 

2010년 1월 6일 redfox.

 

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미국사실주의 화가들

 

 

 

 

 

http://americanart.textcube.com/118 미국 사실주의 계보정리 페이지에서 대략  미국 회화에서의 사실주의를  (1) '사회적 사실주의'와 (2) '지역주의적 사실주의'의 두가지 부류로 나눠서 도표를 그려본 바 있습니다.  미국 회화에서 사회적사실주의 (social realism)를 논할때, 반드시 거론되는 사람이나 단체들로는 Henri (헨라이)를 중심으로 한 "Ash Can (쓰레기통)" 화가들, "The Eight (8인회)"등이 반드시 떠오르게 되는데,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Ash Can 이나 The Eight 멤버들이 조금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미국 사실주의 화풍을 논할때 이 두 그룹은 하나의 동일한 그룹으로 간단히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동일한 그룹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비슷한 구성원들이 비슷한 사회적 안목을 가지고 사회성 있는 작품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Ash Can 학파와 The Eight 구성원을 중심으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화풍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겠습니다. Ashcan 혹은 Ash Can 이라고 알려진 이 미술그룹을 우리는 Ashcan School 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Robert Henri (로버트 헨라이)를 중심으로 그와 함께 그림 작업을 하거나, 혹은 그에게서 미술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이 헨라이의 영향으로 '사회성'있는 그림을 그리면서 정체성을 만들어 갔기 때문입니다. Henri 의 동료나 제자중에서 애시캔 학파로 알려진 인물들로는 Henri, Glackens, Hopper, Shinn, Sloan, Luks, Bellows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당시 유럽 인상파화법의 영향을 받은 미국인상파 그림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뉴욕 뒷골목의 가난한 사람들, 소외받은 사람들의 풍경을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그러니까 ash can - 쓰레기통 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이겠지요).

 

The Eight (8인회)는 사실 딱 한번, 1908년 뉴욕의 맥베쓰 갤러리 (Macbeth Gallery)에서 여덟명이 합동 전시회를 한것에서 비롯된 명칭입니다. 이 8인회 전시회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1. William Glackens (1870-1938)  윌리암 글래큰스 : http://americanart.textcube.com/202

 2. Robert Henri (1865-1929) 로버트 헨라이 : http://americanart.textcube.com/197

 3. Goerge Luks (1867-1933) 조지 럭스 : http://americanart.textcube.com/278

 4. Everett Shinn (1876-1953) 이브릿 쉰 : http://americanart.textcube.com/272

 5. John French Sloan (1871-1951) 존 프렌치 슬로언 : http://americanart.textcube.com/201

 6. Arthur B. Davies (1862-1928) 아서 데이비스 http://americanart.textcube.com/279

 7. Ernest Lawson (1873-1939) 어니스트 로슨  http://americanart.textcube.com/281

 8. Maurice Prendergast (1859-1924) 모리스 프렌더개스트 : http://americanart.textcube.com/205

 

The Eight Member가 아닌 Ahscan School 멤버였던

  *. George Bellows (1882-1925) 조지 벨로우즈  http://americanart.textcube.com/198

 

이상입니다. 이들중 다수가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삽화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습니다.  특히 The Masses 라는 사회주의 사상이 강한 잡지의 편집이나 삽화에 관여한 화가들이 여럿 있습니다.  위에 올린 이미지는 John French Sloan 이 1914년 6월호 The Masses 표지화로 그린 작품입니다.  1914년 4월 20일에 미국 콜로라도주의 광산에서 광부들의 파업이 있었습니다. '자선가'로 널리 알려진 록펠러 (Rockefeller) 집안이 운영하던 광산이었습니다. 콜로라도 국방수비대가 이들을 공격하여 어린이 11명이 포함된 20여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이 잡지는 이 사건을 표지로 실은 것입니다.  표지 그림이 생경하고 과격해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은 더욱 처참하고 과격했겠지요.  (미국 구경을 하고 돌아간 내 조카아이들의 상상속의 미국사 속에  이런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록펠러는 하늘이 보낸 천사는 아니었겠지요).

 

물론 미국의 사회-사실주의 작가들이 모두 이런 그림을 그렸다고 상상하시면 안됩니다.  이 표지화 작업을 한 존 슬로언 역시 '예술지상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사회성이 담긴 그림을 그리되, 사회적인 이념이 '예술'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니지요. 그래서 과격한 '사회주의'라는 이념으로부터는 어느정도 거리를 유지한 편입니다. 미국의 대부분의 사회-사실주의 화가들이 이런 식으로 '이데올로기'와는 일정 거리를 유지한 가운데 회화 작업에 몰두했다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들 여덟명의 미술가들중에서 슬로언에 관심이 많지만, 일단 이들의 '대장'격인 Robert Henri 부터 간단히 소개하고 그 뒤를 이을 생각입니다.  헨라이는 작품보다는 그가 이끌었던 애시캔, 8인회 때문에 미국 미술사에 자신의 이름 '석자 (?)'를 박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Henri 는 '헨라이'라고 발음합니다.  Hopper 관련 책에서 읽었는데 그가 자기의 이름을 반드시 '헨라이'로 발음해줄것을 극구 강조했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그러니 그의 희망에 따라서 '헨라이'로 소개합니다.  (제 글의 독자들이 막 - 무척 똑똑해지고 교양이 업그레이드 되는 소리가 들립니다 헤헤헤.  미술 관련 글중에 헨라이 이름을 제대로 표기한 한글 페이지 찾아보기가 힘드실걸요. 헤헤헤)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2층,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걸어놓은 곳이다.

왼쪽 가까이에서부터: Henri, Kent, Luks 의 그림들이 차례대로 보이고

오른쪽 가까이에서부터: Everett Shinn, William Glackens 가 보인다

저 너머에 Benton 의 그림이 있다...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2009년 9월 27일 일요일

뉴욕 현대 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MoMA) 소풍

미술관 소개 페이지를 만들려다가, 그것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스케치만.

 

 

 

 

뉴욕가기

 

버지니아 우리집 근처 알링턴에 Vamoose 라는 버스회사 정거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뉴욕 맨해턴 중심의 펜스테이션까지 직행하는 버스가 선다. 지난해에는 편도 20달러, 왕복 40달러였는데, 올해는 편도 30달러, 왕복 60 달러로 인상되었다.  온가족 네다섯명이 뉴욕 소풍을 간다면 승용차로 가도 무관하겠으나, 한두사람이 뉴욕에 갈때는 승용차로 가나 직행버스로 가나 차비가 차이가 안난다.

 

개인의 예로 들어보면, 승용차로 뉴욕에 다녀올 경우

 1. 왕복 꼬박 9-10 시간 운전을 해야 하고

 2. 개솔린 값이 못 잡아도 50달러는 들고

 3. 톨게이트 비용 왕복 50달러 정도 든다 (지난 겨울에 톨비 계산해봤다.)

 4. 맨해턴에서 어딘가에 차를 주차할 경우 주차비는 계산도 안나온다. 주차 시킬곳 찾기도 어렵고 대략 30달러 잡자

 

이러면 차 끌고 다녀오는 실비만 130달러 잡아야 한다.

 

버스로 다녀올 경우, 직행 버스 왕복 60달러, 시내에서 이동하는 것 써브웨이도 있지만 택시로 이동한대도 끽해야 30달러.  차비 100달러로 홀가분하게 다녀올수 있다. 단, 집에서 버스 정거장까지 가고, 집으로 오는 문제는 가족중에 누군가가 수고를 해줘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경우 그냥 택시로 이동해도 그만이다.  교통비가 비슷하게 든다고 해도, 왕복 9시간 운전을 내가 안하고 버스기사님이 해주시므로 버스에서 그냥 잠이나 자도 되므로 피로가 덜하다. 그래서 나는 뉴욕 갈때 버스 타는 쪽을 선호한다.

 

아침에 사고:

 

아침에 밥 좀 챙기고, 아침 여섯시 반에 예매된 버스 안놓치려고 서두르다가, 카메라 가방이 열린채 가방을 집어 들어가지고, 카메라가 쏟아져 내렸다. 결국 카메라 뚜껑속의 필터가 충격으로 깨졌다. 암담했지만, 그냥 깨진 카메라 들고 돌아다니며 사진 찍었다. 뭐 카메라는 멀쩡하길래.

 

뉴욕 도착:

 

아침 여섯시반에 알링턴에서 출발한 버스는 열한시 반에 맨해턴 중심 펜스테이션에 도착했다. 그냥 택시 잡아타고 현대미술관으로 갔는데 대략 7달러쯤 나오길래 10달러 주고 거스름돈 팁으로 줬다.  현대미술관 앞에 도착한후에, 미술관 앞 도시 공원에 앉아 밥을 먹었다. 일회용 도시락에 밥 담고, 치즈 두장 얹은 것. 빵사먹기 싫고, 그냥 밥이 편해서 이렇게 밥 간단히 먹고 물 마시면 속이 편하다.

 

미술관 구경:

 

대략 열두시부터 오후 네시까지 한가롭게 미술관을 돌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하도 방대해서 하루종일 헐레벌떡 뛰어 돌아다녀도 목이 타지만, 현대미술관은 이보다 작으므로 조금 한가해진다. 게다가 나는 미국미술을 중점적으로 보기로 했으므로, 포인트가 분명했지. (하지만 결국 유럽미술이 발목을 끌긴 했다).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한가로운 관람이었다.  기대하지도 못했던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도 만나서 횡재한 기분. 특히 Ben Shahn 의 Liberation 이라는 작품이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친한 친구 만난듯 반가웠었다.  곧 벤 샨 페이지 열어야지.

 

미술관 기념품:

 

미술관 화집 19달러짜리 한권 사고, 못생긴 괴물 인형을 하나 샀다.

 

 

브로드웨이 토요 벼룩시장:

 

오후 네시반에 브로드웨이의 토요 벼룩시장 열린곳에서 친구를 만났다. 시장구경은 항상 유쾌하다. 아무것도 안 샀지만.

 

이스트 빌리지에서 저녁:

 

뉴욕대가 있는 이스티 빌리지는 대학가 답게 식당이 많고 음식값이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이곳의 유명하다는 일식집에서 우동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근처에 터줏대감들만 알아서 찾아간다는 케이크 전문점에서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며 브레히트와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대하여. 뉴욕의 예술인들에 대하여 친구와 잠시 즐거운 대화. 아 뉴욕에서 3년만 살아보고 싶다.

 

귀가

 

오후 일곱시, 펜스테이션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귀가. 오후 열한시 반 알링턴 도착. 집에 오니 자정.  집에 오자마자 웹 검색하여 내 카메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정보를 찾아냈다. 필터만 새로 사서 끼우면 되는 문제인것 같았다. 불행중 다행. 확김에 80달러짜리 고급 필터 주문해 놓고, 앞으로 카메라를 조심해서 다루겠다고 반성.

 

 

노란 바지 입은 사나이와 나.

 

2009년 9월 21일 월요일

[PSAP3] 이발소에서 In the Barber Shop (1934)

In the Barber Shop (1934)

Ilya Bolotowsky

Born: St. Petersburg, Russia 1907 Died: New York, New York 1981

oil on canvas 23 7/8 x 30 1/8 in. (60.6 x 76.5 cm.)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Transfer from the U.S. Department of Labor 1964.1.79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1st Floor, West Wing

(사진 클릭 두번하면 큰 화면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전편(http://americanart.textcube.com/67)에 이어서, 역시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미국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젬고은 '이발소에서.'  러시아 태생의 이민자였던 화가 일리야 볼로소스키는 뉴욕의 이발소 풍경속에, 이민자들의 나라, 이민자들이 어울려서 만들어가는 국가라는 미국의 정체성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는 실제로 자신의 주변인물들을 섭외하여 뉴욕시의 어느 이발소를 실제 배경으로 작업을 했다.  이발사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이발사가 면도를 해주고 있는 손님은 그리스계 이민자, 그리고 오른쪽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각자 각자 상념에 잠긴 두 남자는 아일랜드계 이민자들.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은 러시아계 이민자.

 

이발소는 아주 작아 보인다. 이발용 의자 두개, 기다리거나 노닥거리는 손님을 위한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개,  그리고 저쪽 구석에는 금전등록기가 보이고, 그 벽위로 보이는 것은 볼록 거울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오른쪽 구석에는 옷과 모자를 걸어놓는 걸개가 보이는데 남성 웃저고리 두장이 각기 걸려있고, 역시 남성 모자 세개가 보인다. 하단 오른편에 비스듬하게 세워진 흰색 물체는 난방기가 아닐까?  그림의 왼쪽 벽면은 유리창으로 보인다. 유리창의 아랫부분은 짧은 부분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데, 이발하는 손님을 살짝 가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가운데 햇살이 밝은 곳에 화분을 놓았다.  오른편 벽면은 거울일까?  나름 생각해보았으나, 거울이라면 맞은편이 투영되어야 하는데 비쳐지는 것이 없는것으로 보아 그냥 '이발소 그림'이라 일컬어질만한 그림이 걸려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시전을 서서히 잡아 끄는 것은 정면 벽.  커다란 거울이 설치된 벽면 속에 작은 거울이 비치고 그 비쳐진 거울 속으로 무수히 반복 반사되는 사물들. 그 끝점이 어디가 될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거울은 끝없이 동일한 이미지를 반사하게 될 테니까, 소실점에 이를때까지. 무한반복되며 멀어지는 거울속의 영상이 이 그림에 입체감을 더 해주면서 일종의 신비감까지 자아낸다.

 

 

 

내가 어릴때, 시골집에 살때, 우리 엄마의 방에는 앉은뱅이 경대가 있었는데, 가운데에 큰 거울이 있고, 양쪽 날개 부분에도 거울이 있었다. 그리고 양쪽 날개 부분에는 경첩이 달려 있어서 문을 열고 닫듯이 각도 조절이 가능했다.  심심할때 엄마 거울 앞에 앉아서 그 양쪽 날개 거울 부분을 조금씩 각도를 달리해 보면 거울속에 내가 아주 많아졌다.  그러니까, 장난감도 없고 별다른 놀거리도 없는 단조로운 나날 속에서, 들판으로 쏘다니거나 개, 닭들과 심심풀이를 하다가 외양간의 소한테 혼이 나가지고 시무룩해져서 엄마의 방으로 오면, 거기 거울속의 한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거울속에 마주보이는 아이와 노닥거리고 놀지만, 심심해지면 거울 날개를 움직여 내 옆모습도 보고, 옆모습 뒤에 무한반복 재생되는 나하고 똑같은 애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무한 반복되는 나의 끝은 어디일까 아무리 아무리 들여다봐도 끝이 안나는거라.  한참동안 그 끝을 찾아 거울속을 들여다보면 때로 무서운 생각도 들었는데, 어쩐지 내가 깊은 우물속에 빠진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많은 아이들 중에서 나는 어디 있는걸까?  이런 의문도 들고 마는 것이다.

 

아마도 화가는 이발소 거울속에 무한히 반복되는 이미지들을 담아 놓은 식으로 최초로 거울과 만났던,  두장의 거울이 만드는 우물과도 같은 깊은 세계의 기억을 표현 한 것은 아닐까?  화가는 사실주의적 그림속에 사실 너머의 세계를 도입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평면속의 무한반복되는 입체의 세계.

 

위의 내가 대충 그린 거울의 삽화속의 아이는 파란 옷을 입고 있는데, 그것은 내 기억속의 내 모습이 온통 '파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파랑'이었다. 그것은 우리 할머니가 내게 남동생을 보게 해 주려고 나를 사내놈처럼 의도적으로 키웠기 때문이다.  결국 할머니의 소망대로 나는 남동생을 보게 되었는데, 남동생을 본 후에도 나는 여전히 파랑이었고, 나는 늘 사내아이처럼 상고머리로 살았다.  나는 가끔 마을의 이발소에 갔었다.  "언년아, 오늘은 점심먹고나서 호수로 놀러가지 말고, 이발소 집으로 가거라. 내가 말 해 뒀으니까, 네가 가면 머리를  깎아 줄거다." 할머니가 점심참에 내게 이르시면 나는 군소리 않고, 찬물에 말은 밥과 김치를 대충 먹고 마당 지나, 이웃집 큰 나무 아래를 지나 골목을 지나 밭을 건너 그 동네에 하나 밖에 없는 이발소로 갔다.  그러면 이발소집 정씨 아저씨가 나를 번쩍 안아 이발소 의자 위에 올려 놓았는데, 내가 코딱지같이 작은 꼬마아이 이므로 (다섯살) 이발소 의자 양쪽 손잡이 위로 빨래판을 척 걸쳐놓고는 그 위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사내아이처럼 반듯하게 잘라 주었다. 그때 나는 온통 남자들 밖에 없는 이발소 집에 나혼자 '버려진 아이'처럼 겁에 질려 앉아있다가, 이발사가 머리를 다 자르고 내 목 언저리의 머리카락들을 탁탁 털어준후에 나를 번쩍 안아 바닥에 내려 놓으면 인사도 안하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쳐서 한달음에 집으로 뛰어오곤 했는데, 왜 내가 꽁지가 빠지게 도망질을 했는가 하면,  내가 가만히 보니까 머리 깎는 아저씨들은 면도도 하고, 면도가 끝나면 뜨거운 물로 머리도 감고 그러는데, 나는 무서운 칼로 면도 당하고, 닭잡아서 털 뽑을때 씀직한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쓰고 머리를 감는 일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거야 말로 로댕의 지옥의 문에 나오는 장면보다 더 생생하고 무시무시한 '생지옥'이었던거다.

 

물론 여섯살이 되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상경 한 후에 나의 이발소 행보도 끝장이 났다. 엄마는 딱 한번 내 사내놈같은 머리를 다듬어 준다며 이발소가 아닌 미장원에 끌고 갔었는데, 그 후로는 엄마가 직접 가위질을 하셨고, 나는 머리가 다 크도록 엄마가 멋대로 대충 잘라주는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할 운명이었던거다. 

 

아, 내 추억속의 정씨 아저씨네 이발소 앞 마당에서는  비가 오는날만 제외하고 언제나 수건이 마르고 있었다. 이발소용 수건은 가정용 타월보다 작고 얇다.  아마도 그래야 빨래하기 쉽고 마르기도 수월할 것이다. 정씨 아저씨네 마당에는 늘 노란 이발소 타월들이 수십장씩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며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위의 이발소 풍경 그림에서 왼편 창가의 노란색 헝겊이 '이발소 타월'이 아닐까 하여 들여다 봤는데 아마도 저 노란 헝겊은 '커텐'인것 같아서 섭섭했다. 타월이 말라야 하는데, 타월이...

 

이발소는 '남성'들에게 어떤 장소일까?  요즘의 문제가 되는 일부 퇴폐 이발소 제외하고 순수한 본래의 이발소, 그 이발소는 남성들에게 어떤 정서를 불러 일으킬까?  이발소에 대한 정서는 연령별로 차이가 날 지도 모른다.  요즘 청소년들은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하고, 많은 젊은 남성들이 '미용실'을 찾는다.  이 그림속의 이발소들이 아직도 여전히 건재 할까?  나는 남자가 아니라서 가늠이 안된다.

 

 

                                          영화 Gran Torino 의 이발소 장면

 

 

 

그런데, 2008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가 주연한  헐리우드 영화 Gran Torino(http://www.imdb.com/title/tt1205489/)를 보면, 보수적이고 강단이 있는 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이 아시아계 이민자 소년과 친구가 되어 그가 일거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게 되는데, 그때 노인이 한 일이 소년을 마을의 이발소로 데려가서 '사나이들만의 대화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이렇게 말하는거야. 남자가 남자를 만났을땐 이런 태도로 이렇게...   노인과 이발소 주인은 '주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하는 아시아계 이민자 소년에게 백인 남성 사회의 문화를 어떤 식으로든 전수 하려고 애를 쓴 것인데,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사실 마음이 짠했다. 사실 그 노인이나 이발소 주인 역시 주류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사라져가는 세대의 마지막 흔적 같은 존재들 이었던거다.  (이 영화 안보셨으면 심심할 때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다 보셔도...)

 

1934년, 미국의 경제 암흑기, 대공황 시절의 뉴욕의 이발소 풍경.  지금 그 낡은 이발소가 아직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거울속에 무한 반복되는 이미지들처럼 이발소는 또 다른 풍경으로 어디선가에서 새로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또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 할 것이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사라진 후에도 무한반복되는 이미지로 어딘가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september 21, 2009 your redfox.

 

 

p.s. 음, 오른쪽 구석의 옷걸이 위에 있는 '모자들'을 보니, 모자업자가 '외국에 갈때 궁색하면 안된다고' 돈 천만원을 주길래, 가족같은 사람이 주는 용돈으로 알고 이를 꿀꺽 먹었다고 하던 어떤 학자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뒷골이 뻣뻣해진다.  나도 누가 잔돈푼, 소액, 돈천만원 용돈으로 안주나?  오백만원씩 두번에 걸쳐서 주면 더 좋고, 딸라로 줘도 고맙고 ... (두리번 두리번).  대한민국 어떤 사람의 죽음 이후에,  한국의 공직자 지망생들은 기억해야 할 사항이 있는데,  이제 '가족같은 친한 사람'이 주는 돈은 한푼이라도 받으면 자살바위로 직행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범을 우리는 두 눈뜨고 보았다. 울어도 소용없고, 거기 바위가 있는것이다. 자살바위 가기 싫으면,  돈 천만원 받아 꿀꺽 하면서 '소액' '용돈'이라고 방송 카메라 앞에서 종알거리는 처지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거다.  루즈벨트의 뉴딜을 백번을 다시 한다고 해도, 국립대 총장이 '모자'업자가 주는 '소액'이라는 '돈 천만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넣는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자살하시라는 말씀이 아니옵고,  우리는 그 바위에서 호랭이 한마리가 뛰어 내리는 것을 두눈 뜨고 목도했는데, 이제 역사는 준엄하게 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니, 호랭이를 생각해야 하는거다.  이제 더이상 얼렁뚱땅, 아무개가 주는 돈 쓱싹은 안된다. 그렇게는 안된다.  우리는 호랭이를 잃었고, 앞으로 호랭이의 잣대로 공직자의 위엄을 기대 할 것이다.  그 엄중함을 아시고, 그냥 논문이나 이리저리 엮으시면서, 모자업자가 주는 모자나 하나 쓰고 그냥 유람이나 허시면서 여생을 복되고 행복하게 지내시면 어떠허실지. 총리 자리가 뭐 대단한 자리라고 그 자리에 오르려고 욕을 보시는지.  모자나 쓰시고...모자업자가 주는 용돈으로 그냥 골푸나 치시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가 저문후에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른다. (해 저물었어유. 늦었지만 날아 올라유.)

 

 

 

 

 

 

 

 

 

 

2009년 9월 11일 금요일

[퀴즈] Edward Hopper 의 두장의 그림

 

퀴즈:  위에서 왼쪽에 있는 그림은 Chicago Art Institute 에 가면 볼 수 있는 Edward Hopper 의 Night Hawks 라는 그림이고,  오른쪽은, 뉴욕 맨해턴에 있는 Whitney American Art Museum 에 가면 볼 수 있는 Early Sunday Morning 이라는 작품이다.  이 두작품의 연관성을 찾아 보시길. (물론 에드워드 호퍼가 그렸다는 것, 미국의 풍경이라는 것, 이런 공통점이 있는데, 그림을 보면 발견되는 또다른 연관성은?)

 

 

2008년 여름,  '일요일 이른 아침'은 7월에 뉴욕에서, '나이트 호크'는 8월에 시카고에서 봤는데...각기 다른 장소에서 이 그림들을 봤을땐 안보이던 것이, 화집으로 들여다보니까,  보인다...

 

에드워드 호퍼 연구 하다가 문득 발견. --f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