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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3일 토요일

Smithsonian Renwick Gallery : 스미소니안 렌윅 미술관

(사진 클릭하면 커집니다)

 

Smithsonian Renwick Gallery 공식 홈페이지: http://americanart.si.edu/renwick/

 

 

지도에서 왼쪽 윗편 구석쪽에 렌윅 갤러리가 보인다.

 

 

렌윅 갤러리는 Smir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미술관에 속하지만 따로 떨어져있는 갤러리이다.  국립 미국미술관은 차이나타운에 인접한 갤러리 플래이스 지역에 있고, 렌윅 갤러리는 백악관 정문 앞에 있다. 이곳은 특히나 '미국 공예품' 전문 전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전시장은 1층 2층, 두개층인데, 1층에서는 특별기획 전시가 연중무휴로 이루어지고 있고, 2층에서는 미국미술관이 소장하는 소장품 중심의 상설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2층의 대형 중앙홀에서는 미국미술관이 자랑하는 회화 작품이 전시되는 편이다.  상설 전시장의 전시품들은 일년에 몇차례씩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가끔 가보면 새로운 전시작품들과 만나게 된다.

 

오늘날의 렌윅 갤러리는 1972년 1월에 공개되어 현재에 이른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이곳은 코코란 (Corcoran)이 '워싱턴 디씨'에 최초로 열은 미술관으로 기록된다. 윌리엄 윌슨 코코란 (William Wilson Corcoran)은 1858년, 스미소니안 캐슬 (현재의 스미소니안 인포메이션 센터)을 설계한 건축가 렌윅 (Renwick)에게 미술관을 설계해 줄 것을 부탁했고, 1859년과 1861년 사이에 코코란 미술관(Corcoran Museum of Art)이라는 이름으로 건축이 된다. 그런데 마침 남북전쟁 (1861-1865)이 일어나면서 이곳은 전쟁 참모본부 건물로 이용되게 된다.  코코란은 1969년에야 건물을 돌려받고, 1874년에야 본래 목적인 미술관을 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코코란의 수집품이 너무나 방대하여 이 건물이 비좁다고 여긴 그는, 인근에 새로운 스타일의 미술관을 짓고 1897년에 오늘날의 코코란 미술관 (Corcoran Museum of Art)로 소장품들을 모두 이동시킨다.  텅비어버린 본래의 미술관 건물은 그후 정부 건물로 사용되다가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이 건물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살리자는 제안을 하고, 1965년 스미소니안 재단의 리플리 (Ripley) 원장이 당신의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이 건물을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서 접수하여 미국 미술품과 공예품을 소장할수 있도록 주선한다.  그 결과 1972년부터 건물 설계자 Renwick의 이름을 붙인 Renwick Gallery 로 우리 앞에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스미소니안 박물관들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곳은 국적 불문하고 무료 입장이다. 백악관 정문앞에 위치하고 있고, 인근에 (바로 두 블럭 건너에) 코코란 미술관이 있기 때문에, 백악관에 국빈급 손님들이 방문할 경우 대통령 부인은 귀빈 부인들을 렌윅과 코코란으로 안내하여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셔널 몰에서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수학여행'코스로 워싱턴 디씨 내셔널 몰 일대의 '스미소니안 박물관'을 찾는 관광객들의 시선에서 약간 비껴나 있어서 언제 가도 한가한 편이다. 물론 국립미술관이나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의 규모에 비하면 아주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한가롭게 나들이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렇게 2층 홀로 올라가는 중앙 계단이 보인다.  입구 오른편에는 안내 데스크가 있고,  1층 전시실 입구가 양쪽에 있는데, 1층은 늘 특별 기획전시가 열리는 곳이고,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기 때문에 1층 사진은 생략하게 된다. 이 중앙계단을 올라가거나 내려갈때, 그야말로 레드 카펫(Red Carpet)을 밟게 되는데,  기분이 제법 근사해진다. 뭐 나같은 소시민도 무료로 드나들며 고급스런 카펫을 밟아볼 수 있으니. 잠시나마  이런것을 누려보는 것도 나쁜일은 아닐것이다.

(사진 클릭하면 커집니다)

 

 

마침 2층 중앙홀에서 미국 근대미술품 전시를 하고 있었다. (흐뭇). 왼쪽 구석의 그랜드 피아노와 비교하면 중앙의 둥근 소파의 크기나, 벽에 걸린 미술품들의 규모도 어림짐작이 가능해진다.

 

 

이 커다란 홀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증명사진.

 

 

 

미국미술사를 정리하면서 언젠가 정리하게될 여성화가, 그녀의 자화상 앞에서.  (퀴즈 이 여성화가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렌윅 미술관의 '상징'처럼 소개되는 '유령시계 (Ghost Clock).' 이 작품을 왜 '유령시계'라고 부르는 것일까? (퀴즈 2: 이 작품의 특이점을 찾아보세요).

 

 

렌윅 미술관이 자랑하는 또하나의 대표선수: Game Fish

 

 

 

2층 중앙계단 주변 홀의 풍경.  바로 발아래에 1층으로 내려가는 중앙계단이 있다.

 

 

 

미굴관 입구를 나서서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맞은편으로 보이는 백악관 정문과 울타리.

 

 

 

 

 

음...1층에 기념품샵이 있는데, 이곳이 '공예품' 전문 미술관이니까, 특히나 공예 기념품이 개성있는 것들이 있었다.  브로치중에서 오른쪽에 있는 것, 달을 보는 고양이. 그것 '참 예쁘다!' 하고 들여다봤는데 가격을 보니까 백달러 ($100). 음, 역시, 난 눈이 높군. 맘에 들면 일단 100달러는 기본으로 넘어 주시는군. 흐헤헤. 내 맘에 드는 것이 비쌀땐, 그냥 '난 눈이 높군'하고 스스로 칭찬해주면서 패쓰.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을 나 스스로 발견했는데, 이런 기념품샵에서 뭔가 사고 싶은 것이 있을때, 가격이 비쌀때, 그걸 사진을 찍으면, 내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카메라에 담았으니깐.  그래서 대개 '책'종류를 제외하고 기념품을 사는 일이 별로 없다. 특히나 요즘은, 뭐랄까 인생무상을 느끼면서, 살면 살수록, 뭘 사서 쌓아놓는 일이 무겁게 느껴지고, 그냥 이렇게 사진으로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자족하게 되는데... 이것도 건강한 패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욕망할줄 알고, 헛된것을 탐할줄도 알고 그런것이 삶이지. 난 어딘가가 고장이 난거야.  기계고장인거야. 기계고장. 난 너무 큰것을 탐했기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지상에서 불가능한 너무 큰것을 욕심냈던 것이겠지.

 

 

 

 

 

2009년 9월 27일 일요일

뉴욕 현대 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MoMA) 소풍

미술관 소개 페이지를 만들려다가, 그것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스케치만.

 

 

 

 

뉴욕가기

 

버지니아 우리집 근처 알링턴에 Vamoose 라는 버스회사 정거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뉴욕 맨해턴 중심의 펜스테이션까지 직행하는 버스가 선다. 지난해에는 편도 20달러, 왕복 40달러였는데, 올해는 편도 30달러, 왕복 60 달러로 인상되었다.  온가족 네다섯명이 뉴욕 소풍을 간다면 승용차로 가도 무관하겠으나, 한두사람이 뉴욕에 갈때는 승용차로 가나 직행버스로 가나 차비가 차이가 안난다.

 

개인의 예로 들어보면, 승용차로 뉴욕에 다녀올 경우

 1. 왕복 꼬박 9-10 시간 운전을 해야 하고

 2. 개솔린 값이 못 잡아도 50달러는 들고

 3. 톨게이트 비용 왕복 50달러 정도 든다 (지난 겨울에 톨비 계산해봤다.)

 4. 맨해턴에서 어딘가에 차를 주차할 경우 주차비는 계산도 안나온다. 주차 시킬곳 찾기도 어렵고 대략 30달러 잡자

 

이러면 차 끌고 다녀오는 실비만 130달러 잡아야 한다.

 

버스로 다녀올 경우, 직행 버스 왕복 60달러, 시내에서 이동하는 것 써브웨이도 있지만 택시로 이동한대도 끽해야 30달러.  차비 100달러로 홀가분하게 다녀올수 있다. 단, 집에서 버스 정거장까지 가고, 집으로 오는 문제는 가족중에 누군가가 수고를 해줘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경우 그냥 택시로 이동해도 그만이다.  교통비가 비슷하게 든다고 해도, 왕복 9시간 운전을 내가 안하고 버스기사님이 해주시므로 버스에서 그냥 잠이나 자도 되므로 피로가 덜하다. 그래서 나는 뉴욕 갈때 버스 타는 쪽을 선호한다.

 

아침에 사고:

 

아침에 밥 좀 챙기고, 아침 여섯시 반에 예매된 버스 안놓치려고 서두르다가, 카메라 가방이 열린채 가방을 집어 들어가지고, 카메라가 쏟아져 내렸다. 결국 카메라 뚜껑속의 필터가 충격으로 깨졌다. 암담했지만, 그냥 깨진 카메라 들고 돌아다니며 사진 찍었다. 뭐 카메라는 멀쩡하길래.

 

뉴욕 도착:

 

아침 여섯시반에 알링턴에서 출발한 버스는 열한시 반에 맨해턴 중심 펜스테이션에 도착했다. 그냥 택시 잡아타고 현대미술관으로 갔는데 대략 7달러쯤 나오길래 10달러 주고 거스름돈 팁으로 줬다.  현대미술관 앞에 도착한후에, 미술관 앞 도시 공원에 앉아 밥을 먹었다. 일회용 도시락에 밥 담고, 치즈 두장 얹은 것. 빵사먹기 싫고, 그냥 밥이 편해서 이렇게 밥 간단히 먹고 물 마시면 속이 편하다.

 

미술관 구경:

 

대략 열두시부터 오후 네시까지 한가롭게 미술관을 돌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하도 방대해서 하루종일 헐레벌떡 뛰어 돌아다녀도 목이 타지만, 현대미술관은 이보다 작으므로 조금 한가해진다. 게다가 나는 미국미술을 중점적으로 보기로 했으므로, 포인트가 분명했지. (하지만 결국 유럽미술이 발목을 끌긴 했다).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한가로운 관람이었다.  기대하지도 못했던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도 만나서 횡재한 기분. 특히 Ben Shahn 의 Liberation 이라는 작품이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친한 친구 만난듯 반가웠었다.  곧 벤 샨 페이지 열어야지.

 

미술관 기념품:

 

미술관 화집 19달러짜리 한권 사고, 못생긴 괴물 인형을 하나 샀다.

 

 

브로드웨이 토요 벼룩시장:

 

오후 네시반에 브로드웨이의 토요 벼룩시장 열린곳에서 친구를 만났다. 시장구경은 항상 유쾌하다. 아무것도 안 샀지만.

 

이스트 빌리지에서 저녁:

 

뉴욕대가 있는 이스티 빌리지는 대학가 답게 식당이 많고 음식값이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이곳의 유명하다는 일식집에서 우동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근처에 터줏대감들만 알아서 찾아간다는 케이크 전문점에서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며 브레히트와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대하여. 뉴욕의 예술인들에 대하여 친구와 잠시 즐거운 대화. 아 뉴욕에서 3년만 살아보고 싶다.

 

귀가

 

오후 일곱시, 펜스테이션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귀가. 오후 열한시 반 알링턴 도착. 집에 오니 자정.  집에 오자마자 웹 검색하여 내 카메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정보를 찾아냈다. 필터만 새로 사서 끼우면 되는 문제인것 같았다. 불행중 다행. 확김에 80달러짜리 고급 필터 주문해 놓고, 앞으로 카메라를 조심해서 다루겠다고 반성.

 

 

노란 바지 입은 사나이와 나.

 

2009년 9월 13일 일요일

Brandywine River Museum 의 안내인: 안내인의 미덕

http://americanart.textcube.com/44  에서 이어지는 글. 3대로 이어진 와이어드 미술가 가문을 기념하는 Brandywine River Museum에서 Andrew Wyeth 의 손녀딸이 일주일에 6일간, 매일 오후 2시와 3시에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가이디드 투어 (Guided Tour)'를 실시한다. 미술관 안내를 해 주는 것이 그이의 역할이다. 이름은 빅토리아 와이어드 (Victory Wyeth).  관계를 보면, 앤드루 와이어드의 장남의 딸.  직계 손녀.  제이미 와이어드는 앤드루의 차남이다.  그러므로 빅토리아에게 제이미는 삼촌 (작은아버지), 앤드루는 할아버지, N.C.Wyeth 는 증조 할아버지인 셈이다.

 

나도 나름대로 앤드루 와이어드의 직계, 혹은 이 집안 사람들로 부터 직접 안내를 받으면 내가 책에서 발견하지 못한, 오직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전해지는 생생하고 새로운 무엇을 발견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이 사람의 안내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안내를 기다리던 관람객이 많아서 제대로 그림 감상도 안되는 분위기였던데다, 빅토리아 와이어드의 안내 방식이 내 눈에 거슬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내 그림 구경이나 하자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왜 나는 이 사람의 안내 방식이 맘에 안 들었는가? (1) 일단 하이톤으로 귀 따갑게 크게 떠느는 바람에 몇마디 안들었는데 골치가 지끈거렸다.  (2) 밝고, 명랑하고, 활달하고 다 좋은데, 그의 그런 밝고 명랑함이 미술관의 분위기하고 잘 안맞았다. 유치원생한테 떠드는 유치원 선생님 말투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시간 가까이 이 분의 연설에 시달리는 동안, 나는 한가롭게 앤드루 와이어드 갤러리에서 충분히 여유있는 감상을 할 수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저 안내인이 앤드루 와이어드 갤러리에 오면 그때 하는 얘기나 좀 들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그는 한시간 내내, '제이미 와이어드' 갤러리에서 나오지 않고, 그 안에서 떠들어댔다. 나는 제이미 와이어드 갤러리를 한번 휙 봤는데, 내 취향도 아니고, 내 관심거리도 아니고, 그래서 미련없이 그 자리를 뜬 터였다. 그런데 한시간 내내 거기서 떠들고 있었다니...

 

그래도 혹시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했는가 궁금하여, 그자리를 꾹 참고 지켜봤던 관객에게 "그 사람이 무슨 설명 하던가?"하고 물어봤다. 그 관객 왈, "하도 자기 집안 자랑을 해서 듣기 역겨웠지만 그냥 그래도 무슨 새로운 얘기를 하나 싶어서 참고 들었는데, 귀따갑게 집안 자랑만 해서 아주 짜증이 났다. 그런데 나만 그런것 같지가 않고, 거기 모여 있넌 사람들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  하도 자랑이 늘어져서, 다 듣고 난 후에도 내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분이 나빴다는 것만 기억한다."

 

아, 안 듣고 내 시간을 보내길 정말 잘 했다. (처음부터 싫더라구. 그래서 잽싸게 빠져나왔지.)

 

그래서 내가 겪어본 미술관 안내인들, Docent 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 사람들을 기억을 더듬어 살펴 보았다.  그리고 내가 왜 빅토리아의 몇마디만 듣고 그 자리를 도망쳤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한, 미술관의 도슨트 (Docent)들은 안내와 관련된 소정의 교육을 받는다. 이들 중에는 미술대를 졸업한 전문 미술인들도 있어서, 지식도 대단하고, 설령 미술인이 아니더라고 충분히 자료를 연구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관객을 이끈다.  그리고 이들은 대개 설명이 매우 절제되어 있다. 목소리도 차분하고,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할 때에도 과장을 하거나 극적으로 자기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찌보면 무미건조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극히 절제된 설명을 통해서 우리는 작품에 각자의 주관을 가지고 접근하게 된다.

 

내가 미술관을 다니면서 만났던 안내원중에서 맘에 안 들었던 사례는, 별로 없지만,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된 안내인은, 지나치게 자기 개인적인 설명이 많고, 개인의 주관을 많이 이야기하고, 관객한테 자기가 뭘, 어디를, 왜 좋아하는지 자꾸만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안내인에게도 주관이 있고, 개인적인 느낌이나 선호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너무 드러내면, 설명 듣는 관객은 미술품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인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 그림 감상하러 갔다가 엉뚱하게 어떤 사람의 이야기나 듣다가 오는 꼴이 되고 만다.

 

빅토리아의 문제는 미술관에 미술품 보러 온 사람들, 작품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혹은 심도있는 안내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기껏해야 자기네 집안 자랑을 하는 것으로 서비스를 열심히 하는 것에 있었다.  그이는 매우 열정적이었고 활발해 보였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의 삼촌이나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미술가, 미술가의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안내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Brandwine River Museum 에서는 전문 안내인을 따로 고용하는 것이 더 나을것 같다는 것이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미술에 대해서,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는 안내인을 나는 원한다.

 

 

2009년 9월 10일 목요일

미국 다시보기

미국 미술 전문 블로그를 열어놓고 앉아 있으니, 공연히 마음이 분주해진다. 아 그동안 뭣 했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산발적으로 '구경'하고 돌아다니며 산발적으로 모은 지식을 체계화 해야 한다는 숙제, 과제, 과제에 대한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

 

그 사이의 변화라면, 내가 미니 디지털 카메라를 집어 던지고 제법 묵직한 전문가용 DSLR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아, 카메라가 뭔지도 모르는 나를 위하여 카메라를 조합하여 대신 사다주면서, 이거면 앞으로 10년간 싫증 안느끼고 찍어댈수 있을거다-라고 장담하던 사진 전문가가 있었지만...나는 아직도 내 카메라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알지 못하다), 카메라를 바꿔보니 미술관에서 찍는 사진 상태가 한결 좋아져서 흡족.

 

음, 내 계획은, 미술관에서 작품 사진 찍을때,  '액자'까지 온전히 찍어서, 그 그림이 어떤 액자에 끼워져 있는지까지 전달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누가 찍었는지 알 수 없는, 혹은 나중에 소송들어오면 꼼짝 없이 '잘 못 했어요' 하고 싹싹 빌어야 하는 무단 빌려오기 사진 말고,  내가 찍은 사진으로 내 블로그를 채우겠다는 것인데.  내가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매일 연구실에 나와 앉아서, 각종 미술관 행사를 체크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만...아...내가 연구 안한다고 세상이 뒤집어질것도 아니고, 이런 변명을 하면서 나는 매일 미술관 생각만 하고 있다.  내일은 국립 미술관에 가서 사진을 찍어오고 싶고, 앤드루 와이드 뮤지엄에는 토요일에 가 볼 것이고, 일요일엔 코코란이라도 들러서 근황을 살피고 싶다는 엄청난 계획을 세워보기도 한다.

2009년 8월 28일 금요일

Jacob Lawrence 를 취재하러 Phillips Collection 에 갔다가

 

  (왼쪽)  디씨 대사관로 인근의 필립스 콜렉션

                      (가운데)   Elizabeth Murray (1940-2007), The Sun and the Moon

                                                                             (오른쪽)     전시장에서 보이는 실제 작품 크기

 

                    

                        기념품샵에 진열된 만화경 (Kaleidoscope), 그 만화경으로 보이는 세상

 

 

 

Jacob Lawrence 의 Migration Series 를 취재하러 워싱턴 디씨 시내의 필립스 콜렉션 (Phillips Collection)에 나갔다 왔다. 오후에 일찌감치 퇴근하고.  제이콥 로렌스에 대하여 장문의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열었는데, 어쩐지 피곤해서, 내가 대충 써버리고 말까봐,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은 그냥 필립스 콜렉션에 나갔다 온것만 기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