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American Art History Sketch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American Art History Sketch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0년 10월 20일 수요일

Albert Pinkham Ryder : Jonah

http://americanart.textcube.com/380  에서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 전시된 라이더의 작품들을 소개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Jonah 라는 작품을 다시 올려본다.

 

사진을 한번 클릭 한 수에 다시 클릭하면 확대된 이미지가 보인다. 큰 이미지로 보면 야훼 (하느님)와 요나 (조나)의 표정까지 상세하게 보인다.

 

하느님이나 요나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작가인 라이더의 인간적인 측면을 상상하게 되는데, 어쩌면 닮은꼴처럼 보이는 '하늘의 하느님'과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요나'의 표정이 라이더의 자화상 처럼 보이는 것이다.

 

라이더의 그림을 나는 '엄숙'하다고 바라봤었는데, 오늘 우연히 이 작품속의 '표정'들을 발견하고는 - 어쩌면 라이더는 순진무구한 소년같은 영혼을 유지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런 상상을 하게 되었다.

 

 

 

 

2010년 10월 20일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에서 촬영.

 

 

 

 

 

 

은둔자 라이더 Albert Pinkham Ryder

Flying Dutchman

completed by 1887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36.1x43.8 cm

 

Images introduced here are Albert Pinkham Ryder’s paintings on view at the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on December 29, 2009. For viewers’ better understanding the whole scale of this particular painter’s artworks, I added title tags right next to each piece.

 

Presently, SAAM holds 28 pieces of Ryder, and here is the full list of artworks at the Smithsonian: http://americanart.si.edu/collections/search/artwork/results/?id=4199.

 

Put your cursor on the image and click twice, you will have a better view of these photos.

                                                                                      --RedFox.

 

 

알버트 라이더에 대해서 제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좀, 어이없는 계기 때문인데요. http://americanart.textcube.com/105 제가 에드워드 호퍼에 대해서 시리즈로 정리를 한 바 있는데,  에드워드 호퍼의 한장의 그림이 저를 매우 가렵게 했습니다.  바로 이 그림입니다.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중에서 (1층에 있습니다) 왼편이 Cape Cod Morning,  그리고 오른쪽의 '집' 그림 제목이 Ryder's House 였던겁니다.

 

케이프 카드라는 곳은 미국지도 보면 나옵니다. 바닷가의 유명한 휴양지이지요. 그리고 문제의 Ryder's House 도 이곳에서 호퍼가 그린것이라고 알려져있는데, 그런데 Ryder가 누구길래 그 집을 그렸냐 하는거죠.  궁금한거죠. 가려워 미치는거죠. 미술관의 작품 안내문을 봐도, 이 집의 정체는 안밝혀주고 뭐 그림의 구도나 색채에 대해서만 '잔소리'를 하는겁니다.  내가 궁금한것은, 라이더가 누구이고, 라이더의 집이 왜 중요한가 뭐 이런건데요.

 

 

 

그렇게 가려운 세월을 보내던중, 에드워드 호퍼 관련 서적에서, 간단히 지나치는 언급중에, 이 집이 미국미술가 Ryder의 집이었다는 내용이 있는겁니다. 딱 한줄짜리 내용이었습니다. "미국미술가 Ryder가 이집에 살았어? 그런데, 호퍼는 그 사람 집을 왜 그렸대? 친구였대? 뭐지?"  이렇게 혼자 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중얼 하는거죠. 네, 저는 혼자 중얼거릴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 '라이더'의 집이 미국미술가의 집이었다는 것도 '사실'인지 아닌지 애매하고, 이 집이 작은 오두막인지 커다란 집인지도 애매합니다.  그림에서는 작아보이지만 실제로는 커다란 집이라고도 하고요. '사실'로 확인된 정보를 저는 별로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같은 미술관 2층에서 아예 '라이더'로 '도배'가 된 전시실 하나를 만났습니다.  언뜻 보기에 멀미가 날 것같은 바다 그림, 그리고 어딘가 종교적인 분이기가 팍팍 나는 그림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전시실에 들어섰는데, 이름표를 들여다보니 Ryder 였습니다.  (갸가 갸여?  이 라이더가 그 라이더인감?  거시기가 거시기여? -- 혼자 또 중얼중얼).

 

그런데 또 들여다보니, 오매, 요 사람 라이더(1847-1917)가  에드워드 호퍼 (1882-1967)보다 한세대 앞선 사람이긴 헌데, 딱 '호퍼'급이네~ 이런 기분이 사사삭 드는겁니다. 왜 호퍼를 연상시키는가하면

 

 1. 호퍼(1882-1967)가 바다와 배를 즐겨그렸는데, 그 바다와 배의 구도가 라이더(1847-1917)와 비슷해요

 2. 신비한 쓸쓸함이 묻어나요

 3. 고집스러운 의지, 은둔자의 고집스러움, 혹은 결연함 같은것이 느껴져요.

 4. 딱 loner (외톨이) 풍이에요.

 

이런것은 물론, 제가 받은 인상입니다.  미술비평가들은 Ryder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로 (1) Marsden Hartley (2) Jackson Pollock 이 두사람을 꼽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미술세계에 영향을 준, 혹은 최초의 미국 근대미술가로 '라이더'를 칭송했기 때문입니다 (Hughes, 1997. pp 362-365)).  그러면, 왜 라이더가 미국 현대 미술의 '아버지'급으로 인정을 받았는지, 책에서 읽은 내용을 전하기 전에, 그냥 그림이나 살펴보지요.  그림을 보다보면...뭐가 잡히겠지요.

 

 

 

요나 (Jonah)

 

Jonah ca.185-1895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69.2x87.3cm

 

요나...는,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이지요. 요나가 거대한 물고기에게 삼켜졌다는 일화인데요.  라이더가 '구약'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그림을 그렸군요.

 

 

이 글을 적고나서 8개월이 흘렀습니다.

또 가서 이 작품을 봤습니다.  이번에는 홀에 앉아서 '킨들'을 꺼내어 구약의 Jonah 를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성경 이야기를 잘 몰라요.  그래서 찾아 읽어보니 조나 (요나)가 야훼의 '심부름'을 피해서 도망을 갑니다.  그러니까 야훼가 '요놈 네가 도망가봤자 내 손바닥 안이니라' 이러시는 것이지요.  조나가 배을 타고 도망을 가니까 풍랑이 일게 하고, 커다란 물고기의 뱃속에서 '반성'하게 만든 것이지요.  그 후에도 조나가 뭐라고 투덜대니까 야훼가 야단을 치고 그럽니다.  저는 그 '조나 (요나)' 장을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작품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아주 재미있는 것을 발견 했습니다.  위의 사진을 두번 클릭하면 좀더 큰 이미지로 볼수 있는데요, 가만 보면 그림 윗부분, 구름 중앙 부분에 하얀 산신령 같은 이미지가 보입니다. 아, 야훼 이십니다.  하하하.  야훼의 오른손 (우리가 보기에 왼편)에는 검은 공 같은것이 들려 있습니다.  아무래도 야훼의 손 안에 있는 '지구'가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아랫쪽 가운데에 물에 빠진채 두 손을 들어 올린 조나가 보이고, 그 윗쪽 오른쪽에  큰 물고기가 보입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운명이나 사명을 피할 길이 없을 때는 받아들여야만 하겠지만, 우리는 도망 가고 싶을 때가 더 많을겁니다.  투덜이 조나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매일 거울 속에서 조나와 만나기 때문일겁니다.

 

 

 

 

 

날으는 네덜란드인

Flying Dutchman

completed by 1887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36.1x43.8 cm

 

http://americanart.textcube.com/292  삽화가 하워드 파일 (1853-1911)의 페이지에서 Flying Dutchman 의 전설을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요, 똑같은 전설을 라이더는 이렇게 그려냈군요.  파일의 작품은 1900년에 그려졌고, 이 작품은 그보다 3년전에 탄생했군요.  동일한 소재를 작가들이 어떻게 구현해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군요.

http://americanart.textcube.com/292 해당 페이지

 

 

 

기울어진 배

With Sloping Mast and Dipping Prow, ca.1880-1885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30.4x30.4cm

 

 

 

 

 

 

떠나는 페가수스

 

Pegasus Departing, by 1901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36.1x43.8cm

 

 

페가수스는 신화속의 날개달린 말 입니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죽었을때, 메두사가 흘린 피에서  나타난 말이라는 설도 있고, 바다의신 포세이돈과 메두사 사이의 자식이라는 설도 있는데요. 날개달린 말, 페가수스의 등위에 페르세우스가 타고 있지요. 페르세우스와 페가수스는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원해주기도 하고, 음악의 신들의 샘이 말랐을때 페가수스가 샘을 만들어주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전원

Pastoral Study, 1897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60.9x74.6cm

 

 

연인들의 배

 

The Lover's Boat ca.1881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wood 28.9x30.5cm

 

'연인들의 배'라는군요. 

 

이 그림을 보니까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가 생각났는데요. 이런 시가 있거든요.

 

Meeting at Night
   Robert Browning (1812-1889)

The gray sea and the long black land;
And the yellow half-moon large and low;
And the startled little waves that leap
In fiery ringlets from their sleep,
As I gain the cove with pushing prow,
And quench its speed i' the slushy sand.


Then a mile of warm sea-scented beach;
Three fields to cross till a farm appears;
A tap at the pane, the quick sharp scratch
And blue spurt of a lighted match,
And a voice less loud, through its joys and fears,
Than the two hearts beating each to each!

 

Browning 의 또다른 시, Porphyria's lover 라는 시도 있고요.  옛날에는, 이런 드라마틱한 사랑의 시도 즐겨서 낭송하고 그랬는데요.  미지의 어떤...사랑을 꿈꿀때.  옛날에요.  아직 인생이 뭔지, 사랑하고 헤어지고 그런게 뭔지 잘 알지 못할때. 어릴때는 어떤 '드라마'를 꿈꾸쟎아요.  지금은, '환멸'의 시대를 사는것도 같아요. 인생에는 환상의 시대가 있고, 현실의 시대도 있고, 그리고 환멸의 시기도 있는듯 한데요.  환상의 등불들이 하나, 하나, 하나 꺼져가는 시기.  특히 무엇이 나를 서럽게 한다거나 실망시켜서가 아니라,  무수히 빛나던 것들이 하나 하나 꺼져가는거죠.  그런데, 라이더는 아마도 죽을때까지 삶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간직했던것도 같아요. 이런 그림을 그린것을 보면.  (그러니까, 그가 예술가이겠지요.)  아니 가만있자, 1881년이면 1847년생이니까, 34세.  음, 34세면, 아직 뭐 연인들의 보트라던가 이런 환상을 갖고 있을만도 한 나이가 아닐까... ㅎㅎㅎ. (그래, 아직 인생에 대한 어떤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시기였는지도 모르지.)

 

 

 

 

 

 

달빛

 

Moonlight, 1887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mahogany panel, cradled  40.4 x 45.0 cm

 

휘영청 밝은 보름달에, 배 한척이라. 달빛이 내 뺨에 가득 어리는듯 평화로운 풍경이죠.....

 

 

 

 

울린의 딸

 

Lord Ullin's Daughter, before 1907

Albert Pinkham Ryder, 1847-1917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52.0x46.7cm

 

스코틀랜드에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입니다. 율린의 딸이 마을의 청년과 사랑에 빠졌을때, 율린은 불같이 화를 내며 이들의 사랑을 반대 했습니다. 그 청년은 율린의 집안과는 원수 집안의 사람이었으니까요. (로미오와 줄리엣 얘기 같죠?)

 

율린의 딸은 애인과 도망을 칩니다. 율린의 딸이 애인과 야반도주를 하여 호숫가에 이르렀을때 풍랑이 몰아칩니다. 율린의 딸은 뱃사공에게 호수를 건너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뱃사공은 풍랑이 위험해서 배를 몰고 나가고 싶지 않아 거절합니다. 율린의 딸은 제발 호수를 건너서 도망하게 해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뱃사공은 내키지 않지만, 이 사랑하는 연인들을 위해 노를 저어 나갑니다.

 

율린의 딸이 도망친것을 알게 된 율린은 부하들을 이끌고 딸을 잡으러 달려옵니다. 잡기만 하면 이 '년놈들을' 죽여버려서 가문의 수치를 씻어버리리라 다짐하지요.

 

비운의 연인들을 싣고 풍랑을 헤치며 나아가던 뱃사공은, 그러나 그 자신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배는 풍랑에 뒤집히고 맙니다. 율린이 딸을 잡기 위해 호숫가에 이르렀을때, 풍랑은 잠잠해지고 호숫가에 이제는 시체가 되어버린 율린의 딸이 물결을 따라 밀려옵니다.  한 팔은 사랑하는 남자를 잡고, 한 팔은 구조를 요청하느라 내 뻗친채 뻗뻗한 시체가 된 처녀의 몸이 호숫가에 밀려옵니다.  두 년놈을 잡아 죽이리라 장담하던 율린은 자신을 책망하며, 가슴을 치며 통곡합니다.

 

 

Lord Ullin's Daughter

http://www.rampantscotland.com/poetry/blpoems_ullin.htm

 

 

Thomas Campbell (1777-1844)

 

A Chieftain to the Highlands bound,
Cries, 'Boatman, do not tarry;
And I'll give thee a silver pound
To row us o'er the ferry.'

'Now who be ye would cross Lochgyle,
This dark and stormy water?'
'Oh! I'm the chief of Ulva's isle,
And this Lord Ullin's daughter.

'And fast before her father's men
Three days we've fled together,
For should he find us in the glen,
My blood would stain the heather.

'His horsemen hard behind us ride;
Should they our steps discover,
Then who will cheer my bonny bride
When they have slain her lover?'

Outspoke the hardy Highland wight:
'I'll go, my chief - I'm ready:
It is not for your silver bright,
But for your winsome lady.

'And by my word, the bonny bird
In danger shall not tarry:
So, though the waves are raging white,
I'll row you o'er the ferry.'

By this the storm grew loud apace,
The water-wraith was shrieking;
And in the scowl of heaven each face
Grew dark as they were speaking.

But still, as wilder blew the wind,
And as the night grew drearer,
Adown the glen rode armed men-
Their trampling sounded nearer.

'Oh! Haste thee, haste!' the lady cries,
'Though tempests round us gather;
I'll meet the raging of the skies,
But not an angry father.'

The boat has left a stormy land,
A stormy sea before her-
When oh! Too strong for human hand,
The tempest gathered o'er her.

And still they rowed amidst the roar
Of waters fast prevailing;
Lord Ullin reach'd that fatal shore-
His wrath was chang'd to wailing.

For sore dismay'd, through storm and shade,
His child he did discover;
One lovely hand she stretch'd for aid,
And one was round her lover.

'Come back! Come back!' he cried in grief,
'Across this stormy water;
And I'll forgive your Highland chief,
My daughter!- oh, my daughter!'

'Twas vain: the loud waves lash'd the shore,
Return or aid preventing;
The waters wild went o'er his child,
And he was left lamenting.

 

 

 

 

계속...

 

 

 

 

 

참고문헌:

 

Robert Hughes (2009), American Visions: The Epic History of Art in America (pp. 352-365), New York: Random House.

 

 

 

2010년 5월 2일 일요일

Henry Ossawa Tanner: 갈릴리해의 예수와 제자들 (1910)

Henry Ossawa Tanner (1858-1937)
Christ and His Disciples on the Sea of Galilee (ca. 1910)
Oil on artist's canvas board
2010년 5월 1일 Virginia Museum of Fine Arts (버지니아 미술관)에서 촬영
크기는 대략 가로 20센티 세로 15 센티 정도로 추측됨 (작은 그림이었음)



버지니아 미술관이 대대적인 증축공사를 마치고 재 개관식을 하던날 (2010년 5월 1일) 미술관 방문을 하였다가 발견한 헨리 오사와 태너의 소형 작품. 갈릴리 바다의 예수와 그의 제자들. 성서적인 지식이 일천하므로 간단히 상식선에서 배경 설명을 하자면, 예수가 제자들을 이끌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중, 스승께서 잠시 낮잠을 즐기고 계시는 와중에 풍랑이 몰아치는지라... 어리석은 제자들이 풍랑에 겁이나서 "스승님, 배가 뒤집힐 판국에 잠이 오십니까? (내식으로 대략)" 성화를 하니까, 예수께서 잠에서 깨어나서 짐짓 짜증스러운 태도로 말씀하시다: "어리석은 제자들아, 내가 그동안 보여준 이적들을 보지 못했느냐?  내가 자는데 왜들 법석을 떠느냐.  풍랑이 그렇게 무섭다는 말이냐?"  예수께서 약간 성가신 표정으로 풍랑을 향하여, "시끄럽구나. 어리석은 내 제자들이 무섭댄다. 좀 조용히 해라" 하고 타이르시니 풍랑이 잠잠해지도다~

대략 이러한 일화가 전해지는 바, 그것을 태너가 화폭에 옮겼으리라 짐작된다.

헨리 오사와 태너는 유색인종이 인정을 못받는 미국의 풍토에서 흑인 화가로 성장한 사람인데, 종국에는 미국의 인종 차별에 진절머니가 난다며 유럽으로 건너가 버렸다 (1891년). 이 작품은 파리의 살롱전에서도 전시가 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던 빼어난 작품이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헨리 오사와 태너의 '수태고지'  대형작품이 걸려있는데... 오사와 태너의 미술세계를 종합적으로 정리할때 함께 소개하겠다.

이 작품은 딱히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그 일화를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고해와 같은 삶을 헤쳐나갈때, 풍랑이 몰아치고 배가 위험에 빠질때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자세, 그런 성품을 키우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풍랑을 잠재우고 대양을 건너겠다는 자세로 하루 하루를 살아 나가고 싶은 것이다.








텍스트큐브가 '사실상' 서비스를 중단하겠다는 공지를 해서,
어떻게 할것인가 잠시 고민을 했다.
텍스트큐브를 블로그로 선택한 이유는,
조용하고, 눈에 안띄고, 그냥 조용히 혼자 놀기에 좋아보여서
그리고 구글이 관리한다니 데이타 잃어버릴 걱정을 안해도 될것 같아서.
지난해 5월에 만들어 놓고 있다가 8월부터 사용했으니까, 계정은 1년간 유지한 셈이다.

나는 이 블로그를 갖고 놀면서, 내 인생에서 힘든 오후의 한때를 무사히 건널수 있었다.
많이 아팠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시간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주긴 하지만,
텍큐에서 블로그질하면서 스스로 정신상담을 주거니 받거니 한 것도 도움이 되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족하다.

미국미술 프로젝트를 아직 마치지 못했는데, 텍큐 쓰기가 애매해지고 말았다.
프로젝트를 마무리 할 때까지는 계속 작업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계정을 하나 만들어놓긴 했는데
이삿짐을 옮길지 말지는 좀더 두고 볼 것이다. 서두를 이유가 없으니까.
어디서 무엇을 하건, 그다지 미련을 느끼지 못한다. 아쉬움도 별로 없고.
완전 '유목민' 생활에 익숙해진 것도 같다.  :-)
어차피 나그네 아니던가.
아무튼, 시작한 일은 매듭을 지어놓고...




2010년 4월 3일 토요일

George Segal: 워싱턴, 루즈벨트 기념관의 조각작품 세가지

 

명색이 '미국 미술 블로그'인데, 그동안 미술 얘기가 뜸 했었지요. (-.-)

 

벚꽃놀이 구경 간 김에,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기념관에 설치된 George Segal (1924-2000)의 경제공황기 3부작 조형물을 사진기에 담아 왔습니다.  워싱턴 디씨를 관광할때, 아마도 디씨의 상징물처럼 화보에 소개가 되는 장소들로서는

 * 워싱턴 기념탑

 * 링컨 기념관

 * 호숫가의 흰 건물, 제퍼슨 기념관

 * 백악관

 * 국회의사당

뭐 이런 '하얀' 건물들일겁니다.

그런데,

호숫가의 제퍼슨 기념관, 그 눈에 띄는 하얀 기념관 건물에 가려진, 우중충한 색조의 '공원시설' 같은 장소가 있는데, 그곳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기념관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에 대해서 제가 상세히 아는 것은 아니고, 그에 대해 얼핏 떠오르는 사항들은

 * 미국역사상 유일한 3선 대통령

 * 경제 대공황을 구제하기 위한 뉴딜정책

 * 미국인들 사이에서 '사회주의자'라고 알려진 대통령

이런 사항들입니다.

 

그를 기념하는 기념관이 제퍼슨 대통령 기념관 인근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미국 미술사'책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시대적' 작품이 있습니다. 회화작업도 하고 현대적 개념의 조각 작업도 했던 George Segal 의 3부작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1) The Rural Couple : 시골 부부 : 경제공황때 고통받던 농민들

(2) The Breadline: 빵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 경제공황때 고통받던 도시 빈민들

(3) The Fireside Chats: 노변정담 (난롯가의 대화) : 1933-4 년 사이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30여차례에 걸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라디오 연설을 했던 일화를 이 작품에 실은듯 합니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한 사나이를 주인공으로 했습니다.

 

 

...작가인 George Segal 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들려드리겠습니다. 오늘은 FDR (루즈벨트 대통령 머릿글자만 부르는 약칭) 기념관에 서있는 이 세가지 작품들을 감상해주세요 (미니 카메라로 대충 찍은 사진이라, 사진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요...)

 

 

(1) 시골부부

 

 

 

 

 

(2) 빵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이 작품이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유쾌하고 발랄하게 작품 사이사이에 줄을 서며 깔깔대는 학생들 (고등학생들로 보였습니다.)

 

 

 

 

(3) 난롯가의 대화 : 루즈벨트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에 귀를 기울이는 한 사람.

 

2010년 2월 10일 수요일

불굴의 사나이, 척 클로스(Chuck Close)의 초상

척 클로스 (Chuck Close, 1940년 출생)는 현재 생존하는 작가입니다. 미국의 큼직한 미술관에 가면, 영문을 알수 없는 큼직한 초상화를 만나게 되는데, 그 들중에 척 클로스의 작품이 끼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략 아래와 같은 분위기의 작품들 입니다.

 

 

척 클소스는 미국대륙의 서쪽, 시애틀에서 태어나 워싱턴대학을 다녔고요, 후에 예일대학으로 옮겨 미술을 공부합니다. (예일 하니까, 가짜박사  파동을 일으켰던 신모씨가 그 이름을 팔았던 것이 생각나는군요). 1967년에 뉴욕에 입성한 클로스는 사진을 바탕으로 한 대형 초상화 작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이를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이라고 하는데, 사진을 바탕으로 뭔가 극대화 시키고 이를 회화에 옮기는 시도를 여러명의 현대 미국 미술가들이 했쟎아요. 리히텐스타인(Roy Lichtenstein) 도 그랬고, 로젠퀴스트 (Rosenquist) 도... 이 포토리얼리즘이 1970년대 미국미술에 선풍적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척 클로스의 경우에는 '모눈종이'같은 작업을 했지요. 대충 보자면 - 사진에 모눈종이처럼 줄을 긋고요, 캔바스에도 모눈종이처럼 줄을 그어서 그 모눈들을 일치시키는 식으로 작업을 한거지요. (또 어떤이 (Kline)는 이미지를 프로젝터로 비쳐가지고, 그 비쳐진것을 그리는 식으로 확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클로스의 경우에는 이 '모눈종이' 기법이 그의 시그니처가 되고 말았는데요.

 

 

그런데, 척 클로스는 그의 이 독특한 기법도 눈에 띄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것은 그 사람의 인생 그 자체입니다. (척 클로스에 대해서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제가 미술 전공도 아니고 예술에 대해서 뭘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냥 어떤 사람의 아주 특별한 삶을 들여다보는 쪽이 저한테 더 어울릴지도 모르지요.)

 

 

척클로스의 이력을 보면 1988년의 '사건'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어느날 모 미술 시상식장에 시상자로 참석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나던 그는 그의 신체에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의 나이 48세이군요). 몸이 갑자기 이상해진겁니다. 그는 서둘러 그 미술 시상식장에 도착해서 자기 차례를 앞당겨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그의 임무를 마치자마자, 단상을 간신히 내려와, 병원으로 실려갑니다. 그는 급작스럽게 경추 아래의 신경이 마비되어 꼼짝을 못하는 처지가 됩니다. 얼굴만 살아있고, 목 아래부터는 마비가 된 겁니다.  (재앙이죠). 아, 아마도 나였다면, 활발하게 잘 나가던 예술가가 어느날 이지경이 되었다면, 아마도 나라면, 그냥 콱 죽고 싶었을것 같아요... 그는 재활 훈련을 하여 가까스로 손을 조금 움직일정도로 회복했는데요, 그렇게 움직이게 된 손끝에 붓을 매달고, 고정시켜가지고는 회화 작업을 다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1988년 이후, 제가 허시혼에서 본 1994년 작품이나, 최근에 본 2006년 클린턴 대통령의 초상화의 특징이, 조그마한 모듈 (세로와도 같은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척 클로스는 마비가 된 그의 손으로 그 작은 모듈들을 하나하나 완성시키는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간거요. 어찌보면, 불구가 된 후에 그의 아이디어는 더 미친듯이 자라난것 같기도 합니다.  거의 전신마비의 경지에 이른 화가가 만들어낸 초대형 초상화, 그 초상화속에 감춰진 세포막과도 같은 작은 모듈들. 그 단세포들이 만들어낸 '인물'의 초상.

 

 

허시혼 미술관의 Roy 라는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그 네모네모속에 다채롭게 그려진 것들을 보면서, 저는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으로 현미경속을 들여다보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현미경을 통해 '세포'를 구경한것은 분명 초등학교 5학년 과학시간에서였습니다. 세포중에서 가장 보기가 쉽다는 양파의 속살 껍데기, 그것을 화학약품으로 처리하여 현미경에 대 놓고, 담임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차례차례 줄 서서 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현미경을 어떻게 들여다볼지 몰라서 당황하다가, 서서히 내 눈에 들어온 '세포'의 모양.  아, 세포라는 것이 이런 네모난 방 모양이구나.  이렇게 생긴거구나!  척 클로스의 '모듈'로 이루어진 초상화의 그 무수한 모듈들을 들여다보며 저는 '세포'들을 기억해냈지요.

 

 

 

척 클로스는 극히 제한된 그의 손끝의 작업으로 생명의 본질 혹은 우주의 본질에까지 다가가려 했던 것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작품들을 간단히 보실까요

 

 

 

 

 

 

 

1980년대: '그날' 이전의 작품들

 

 

 

Phil III, 1982, cast paper pulp

Chuck Close 1940-

2009년 12월 29일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링컨 갤러리에서 촬영

작품사진 왼편에 알록달록하게 보이는 형광불빛은

백남준씨의 Electronic Highway (미국지도를 주제로 한 비디오작품)가 액자에 반사된것

사진 오른편의 알록달록하게 반사된 것은 Sean Scully의 작품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링컨 갤러리.

사진 가운데의 흑백액자가 위의 Cluck Close 의 작품 Phil III

가운데 파란 그림은 E.Kelly의 작품, 오른쪽의 대형 그림은 로젠퀴스트.

 

 

이 Phil III 이라는 작품을 저는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과 크라이슬러 미술관 이렇게 두군데서 보았습니다. 동일한 제목의, 동일한 년도에 만들어진 작품들이죠. 척 클로스가 왜 동일한 작품을 이런식으로 제작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다 수작업한 것인데요. 흑색에서 백색에 이르기까지 채도가 다른 펄프 조각을 배열하여 만든 작품으로 보입니다.

 

 

Phil III, 1982, Handmade paper

2009년 11월 29일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촬영

 

 

 

아래 작품은, 워싱턴의 국립 미술관 동관(East Building) 지하층의 전시실 입구 홀에 걸려있는 대형 작품입니다. 제가 적어놓았지만, 높이 260센티 폭 213센티의 초대형 얼굴이지요. 사진을 가지고 작업을 한 것이라는데, 이게 모두 척클로스가 손으로 물감을 찍어서 만든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그의 지문으로 이루어낸 대형 작품이라는것이지요. (사람이...참...별짓을 다해요~)

 

 

 

 

 

 

 

Fanny/Fingerpainting, 1885

oil on canvas

259.1 x 213.4 x 6.3 cm (대략 높이 260 센티, 너비 213 센티)

Chuck Close (1940-)

2010년 1월 16일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촬영

 

 

1990년대- 현재, '그날' 이후의 작품들

 

 

Lucas/Woodcut, 1993

Color woodcut with stencil (pochoir)

2010년 1월 23일 볼티모어 미술관에서촬영. 대여하여 특별전시중이므로 다른 곳으로 옮겨갈것임.

 

이것은 기존의 척 클로스가 제작한 Lucas 의 초상화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원작 초상화가 있습니다) 목판화 작업으로 옮긴 것입니다.

 

 

 

아래의 작품들은, 이제 척 클로스의 전형이 되어버린 세포모양의 모듈로 이루어진 초상화 작품들 입니다.

 

Roy II, 1994 Oil on canvas

259.1 X 213.4 CM

Chuck Close

2009년 9월 19일 Smithsonian Hirshhorn Museum of Art 허시혼미술관에서 촬영

 

 

 

 

 

 

 

William Jeffereson Clinton, 2006 (born 1946 )

oil on canvas

Chuck Close born 1940

http://americanart.textcube.com/348 해당 페이지

 

 

척 클로스는 아직 현역의 작가 입니다. 그의 미술 세계가 어디까지 갈지, 흥미진진하죠.

 

 

2010년 2월 9일 RedFox

 

 

 

Sol LeWitt (5): 개념주의

Serial Project, 1 (ABCD) 1966

Baked enamel on steel units over baked enamel on aluminium

50.8 x 398.9 x 398.9 cm

(대략, 4미터짜리 정사각형 위에 51센티 높이의 도형들)

Sol LeWitt 1928-2007

2009년 9월 29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촬영

 

 

앞서서 Sol LeWitt (1928-2007) 의 페이지들을 열었는데요

 

 * http://americanart.textcube.com/371

 * http://americanart.textcube.com/372

 * http://americanart.textcube.com/373

 * http://americanart.textcube.com/374

 

제가 단순히 그의 작품들을 대충 살피면서 몇가지 열거한 그의 특징들이 있었습니다.

 

1. 삼각형 (혹은 사면체), 사각형(혹은 육면체)들이 어떤식으로든 평면적으로 혹은 입체적으로 교 차한다

 2. 선과 면들이 평면적으로 어루러져서 입체감을 드러내거나, 혹은 입체면이 평면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3. 결국, 선과 선, 삼각형, 사각형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4. 단순하다 (군 말이 필요가 없다)

 5. 경쾌하다.

 6. 작가의 싸인이 없지만, 작가의 개성을 감추지는 못한다. (너무나도 개성이 돋보인다)

 

 

회화나 예술을 따로 전공하지 않는 평범한 관객의 시각에서 이렇게 눈에 보이는대로 열거를 해 본 것인데요, 어쩌면 이런것들이 솔 레윗의 평생의 예술을 대략 정리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솔 레윗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그에 대한 설명으로 두가지가 나옵니다.

 1. 개념예술(conceptualism)이라는 '어휘'를 최초로 도입한 미국의 현대예술가다.

 2. 미니멀리즘 (minimalism) 작가다.

 

맞는것 같죠?  우리가 대충 살펴보면서 대강 짐작했던 사항들을 미술비평가들은 이렇게 두가지로 정리 해 놓는거죠: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 예술가.  예술을 '물리적인 대상'이 아닌 '아이디어' '개념'으로 시도했다는 면에서 개념예술가였던 것이고,  군말이 필요없이 단순한 형태를 추구했다는데서 미니멀리즘을 찾아볼수 있는거죠.

 

위의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Serial Project 관련 문건에 LeWitt 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고 합니다:

 

"The aim of the artist would not be to instruct the viewer but to give him information. Whether the viewer understands this information is incidental to the artist; he cannot foresee the understanding of all his viewers. He would follow his predetermined premise to its conclusion avoiding subjectivity. Chance, taste, or unconsciously remembered forms would play no part in the outcome. The serial artist does not attempt to produce a beautiful or mysterious object but functions merely as a clerk cataloging the results of his premise."

http://www.moma.org/collection/browse_results.php?criteria=O%3AAD%3AE%3A3528&page_number=3&template_id=1&sort_order=1  페이지에서 발췌했습니다.

 

"예술가의 목표는 관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관객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다. 관객이 주어진 정보를 이해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예술가가 통제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는 모든 관객이 자신의 의도를 이해할거라고 예견해서는 안된다. 예술가는 주관성을 배제한채로 그 자신이 정한 전제가 결과에 이르도록 한다.  우연, 취향, 무의식적으로 기억된 형태들은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연작의 예술가는 아름다움이나 신비한 것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세운 전제의 결과들을 카탈로그로 만드는 직공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런데 솔 레윗을 미니멀리스트라고 부르지 않고 개념주의 예술가로 칭하는 이유는, 개념주의가 미니멀리즘보다 한 발 더 앞으로 나간 개념이라서 그럴것입니다.  미니멀리즘이 감정이 분출하는 군더더기들을 배제하고 극단적인 사물의 고유의 형태을 향해 나아갔다고 정리한다면,  개념예술은 이러한 미니멀리 즘적 예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술가의 '아이디어' 자체를 예술이라 보고, 그 아이디어가 시각적인 혹은 물리적인 것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에 개입되지 않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미니멀리스트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제손으로 제작했다면, 개념예술가들은 '아이디어'만 제시할뿐 내 손으로 만드는 행동조차도 배제하러 들었다는 것이지요.  위에 솔 레윗이 적은바와 같이 예술가 자신의 취향이나 우연성, 주관성등을 작품에서 배제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카탈로그'를 만드는 직공에 자신을 비유 한 것입니다.

 

"the idea itself, even if not made visual, is as much a work of art as any finished product." (Pohl, 2008, pp 495)

"비록 시각적으로 구체화되지 않는다 하더도,  아이디어 자체는 완성된 작품과 마찬가지의 작품이다." 이 말은 솔 레윗의 1967년 발언이라고 하는데요,  앞서의 페이지에서 본 것처럼 솔 레윗은 '작품에 대한 지시'만 한장 적어서 보내는 것으로 작품 활동을 했쟎아요 (작곡자의 악보처럼). 이에 대한 그의 설명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작품에 대한 지시사항, 그것이 완성된 작품과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지요.  때로는 그것이 구체적인 결과물을 낳지 못할때도 있지만 말이지요. (악보가 있는한, 그 음악은 언제든지 연주가 가능한거쟎아요.)

 

 

개념주의(Conceptualism)는 네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1. 예술작품은 아이디어나 컨셉(개념)이지 물질적인 대상이 아니다.  예술작품을 형성하는 아이디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작품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 자체를 시각적으로 보지 않아도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다. (뭔 소리다냐? 할수도 있죠.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 RedFox)

 

2. 개념예술에서 예술작품과 언어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집니다. 예술작품을 '아이디어'로 정의하므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지요. '아이디어'는 언어로서 구체화 되는 것이므로.  솔 레윗이 그의 '아이디어'를 종이위에 몇줄의 문장으로 끄적거려주면, 그 지시사항에 따라서 누군가가 예술작업을 하지요 (우리가 그 지시사항대로 작업을 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솔 레윗과  그 작업을 하는 '나'의 해석이 이 예술의 본질을 구성하게 됩니다. 작가와 나와 아이디어의 결과물을 연결해주는 것은 '아이디어를 구체화 한 언어'죠.

 

3. 개념예술은 예술의 상업성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예술은 돈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오죽하면 '플란더스의 개'에서 얘기했듯, 가난뱅이는 그 잘난 예술 작품을 '구경'하기도 어려웠겠습니까.  대우그룹의 총수였던 김우중씨가 세계적인 콜렉터였다고 하는데요, 그분이 나라에 갚아야 하는 빚이 엄청나다는데요, 미술 경매인들이 김우중씨 몰락했다고 하니까, 그 미술품좀 시장에 내 놓으라고 회유를 했다는데, 그래도 그는 꿈쩍도 안 했다고 합니다.  저는 다른 정치적인 논의를 할 생각은 없고요, 이게 무슨 말인가하면, 예술이 '아름다움'이네 '인류 문화'어쩌네 해봤자, 이게 언제부터인가 돈놓고 돈먹기식의 축재수단, 투자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아이오와 주립대가 2007년 홍수로 물에 잠겼을때,  그 대학 미술관 소장품이었던 잭슨 폴락의 작품을 팔아서 미술대를 살리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하쟎아요.  작품 하나 살리면 대학 살림이 피는거죠. 이게 다 뭐란 말입니까? 정말 한장의 그림에 그러한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 합리적인 것일까요?  단지 잭슨 폴락의 싸인이 들어있으면 걸레쪼가리도 비싼값에 팔려나가고, 뭐, 이게 온당한걸까요?   개념예술가들은 바로 이런 현상에 강한 물음표를 제기하는거죠.  작곡자의 '악보'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연주되쟎아요. 그 악보를 누군가 혼자서 독점 할수는 없는거죠.  개념예술가의 '아이디어'역시 누군가가 독점을 할수는 없는거죠.  이들의 아이디어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4.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보다 그 작품의 '아이디어'를 더 중시한 개념예술가들은 예술작품의 소유가 불러오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서도 비판적입니다. 3번과 같은 맥락인데요, 미국에서도 그랬고, 현재 세계여러나라에서, 사람들이 돈 좀 벌면, 작품 사들이죠. 마치 우리가 보통 고급 학력으로 자신의 포장하듯, 가질거 다 갖추고 돈이 너무 많아서 골치 아픈 사람들이 가는 곳이 미술품 시장인데요, 그래서 대개 재벌집 여사님들이 고급 옷으로 치장을 하고 보석도 모을만큼 모은 다음에 서로 누구네집에서 뭐 사들였다더라 경쟁하듯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들을 수집하쟎아요. 제가 미국에서 돌아다니면서 구경한, 재벌들의 후원으로 세워진 박물관의 소장품들이 따지고 보면 다 서로 이렇게 경쟁하고 뭐 그런 결과인데요.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보다는, 누가 누구의 것을 몇점이나 가졌다더라 식의 악세사리로서의 예술품. 혹은 끼리끼리 사이에서 '없으면 지는거다' 라던가 '너는 피카소 없지? 난 피카소가 열점이나 있단다'식의 문화 권력 놀이. 이런 현상에 대해서 이들은 비판적이었습니다.

 

 

솔 레윗(1928-2007)은 러시아 출신의 유태인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고향은 커넥티컷주의 하트포드시. 한국전에도 참전했던 사람입니다. (아, 한국하고도 인연이 있던 분이군요...) 1960년대에 Jasper Johns, Robert Rauchenberg, Frank Stella 등과 어울리며 활동을 했습니다. (쟁쟁한 이름들이지요!)  예술에서 Conceptualism (개념주의)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입니다. 제가 앞서서 소개한 그의 작품들이 대개 그의 개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들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서 찍어와야 할 작품이 있는데, 나중에 업데이트해드리겠습니다.

 

 

개념예술은...제가 잘 모르던 분야였는데, 이것에 대해서 공부하면 할수록, 이것참, 혁명적인 아이디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의 권력화...이것은 사실은 예술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것이쟎아요.  2002년에 사망한 프랑스의 사상가 브르드외가 프랑스 시골출신의 수재가 1960년대에 파리에서 공부하면서 발견 한 것이 언어/문화의 권력화 현상이었거든요. 문화가, 혹은 언어가 '차별'의 수단이 되고, 문화/언어가 사회적 권력의 수단이 되더라는 것을 이 촌뜨기 수재 청년이 직시하고 직감했는데요.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솔 레윗이라는 러시아 유태인계 이민자의 아들도 '미술'이 미술의 본질에서 벗어나 상업주의와 결탁하고, 미술품이 권력의 악세사리가 되는것을 문제시한 것이지요. 각기 다른 대륙에서, 각기 다른 분야에서, 비슷한 연령의 청년들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세상과 부딪쳐 나간것도 같군요.

 

 

사실 저 위에 제가 올려놓은 작품 사진, 저 사진 찍을때, 저는 솔 레윗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요즘 솔 레윗 들여다보다가 문득, "아, 전에 이 사람 이런 작품 어디서 봤는데..." 하다가 찾아보니 나오더라구요. 지금은 저 작품이 왜 저기 놓여있는지, 저것이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인지 대충 알지요.  아이고, 아는만큼 보이는거죠...

 

 

 

 

 

참고자료:

 

http://www.moma.org/collection/browse_results.php?criteria=O%3AAD%3AE%3A3528&page_number=3&template_id=1&sort_order=1

 

Frances K. Pohl (2008), Framing America: A social history of American Art (2nd Ed.). New York, NY: Thames & Hudson

 

Stephen Little (2007). ...isms: Understanding Art.New York, NY: Universe Publishing

 

 

2010년 2월 9일 화요일

Sol LeWitt 의 개념미술 (4) : 세모 네모 동그라미 가위. 끝. 하하

2009년 9월 19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2009년 가을, 햇살 좋던날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갔었지요.  사실 저는 여기서 앤디 와홀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비극의 주인공 재클린이 보이지요.

 

 

 

2009년 9월 19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그런데 재클린의 푸른색의 비극이 보이던 건너편에, 이번에는 불길한 붉은색, 푸른 색조의 뭔가가 보이는겁니다. 다가가서 보니 역시 앤디 와홀의 '전기의자'였습니다. 사형수들이 앉는다는 전기의자 말이지요.  재클린의 비극만큼이나 이 전기의자, 불길하죠...  불길한데, 충격적이죠.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충격'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하지요. (사람, 참 복잡해요...).

 

그렇게 제가 '앤디 와홀'님의 불길하고 충격적인 작품에 눈독을 들이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 이 파란 천장입니다. "뭐냐 이거, 동그라미, 세모, 네모, 가위표 다 있네 이거...천장에다가도 별 짓을 다 했어요..."  뭐 별일이다 싶어서 사진도 찍고, 그렇게 그냥 지나쳤던 것인데요.

 

 

 

 

 

Wall drawing #351, 1981

Chalk and latex paint on plaster

 

On a blue ceiling, eight geometric figures: circle, trapezoid, parallelogram, rectangle, square, triangle, right triangle, x.

 

Sol Lewitt (1928-2007)

2009년 9월 19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벽화 351번으로 알려진 이것은 1981년작 입니다.  물론 이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서 솔 레윗이 직접 미술관에 온것은 아닙니다. 그는 그저 그의 '지시 노트'만 보냈을 뿐입니다.

 

파란색 천장에, 여덟가지의 기하학적 도형: 동그라미, 사다리꼴, 평행사변형,  직사각형, 정사각형, 삼각형, 정삼각형. 가위표.

 

 

솔 레윗의 지시에 따라서,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어느 돔형 천장에 이런 천장화가 완성되었고,  그렇게 천장화가 탄생했습니다. 솔 레윗은 작업을 감독하러 나타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솔 레윗이 이탈리아의 아씨씨(Assissi) 지방에 있을때 창작해 낸 것이라고 하지요.  돔형 천장은 르네상스기의 성당 천장을 연상시키지요.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벽화도 이런 둥근 천장에 그려진 것이지요. 르네상스기의 천장과 21세기의 개념미술이 만나면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천장화와 같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지요.

 

제가

 * http://americanart.textcube.com/371

 * http://americanart.textcube.com/372

 * http://americanart.textcube.com/373

 

이렇게 세개의 페이지를 통해서 솔 레윗의 작품 사진을 올리고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런데, 미술 미평책을 들여다 볼 필요도 없이,  솔 레윗의 작품들을 그냥 시대 무시하고 주루룩 살펴보니 이들이 갖고 있는 어떤 속성이 보입니다.   어느 시기의 어떤 형식의 작품이건 간에 솔 레윗의 작품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면들은:

 1. 삼각형 (혹은 사면체), 사각형(혹은 육면체)들이 어떤식으로든 평면적으로 혹은 입체적으로 교차한다

 2. 선과 면들이 평면적으로 어루러져서 입체감을 드러내거나, 혹은 입체면이 평면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3. 결국, 선과 선, 삼각형, 사각형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4. 단순하다 (군 말이 필요가 없다)

 5. 경쾌하다.

 6. 작가의 싸인이 없지만, 작가의 개성을 감추지는 못한다. (너무나도 개성이 돋보인다)

 

그러니까, 이 솔 레윗의 개념미술 작품의 재미있는 점이 뭔가하면, 작가가 작품에 직접 개입하지도 않고 악보 던져주듯 개념만 던져주는 식으로, 자신의 창작품에서 한발짝 물러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고안해낸, 혹은 개념화한 작품은, 그 사람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전달하면서 작품 자체가 그 사람의 시그니처 (signature)가 되더라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을 놓고, 우리의 소비 행태를 생각해보면요,

 

가령,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 혹은 이제 명품에 눈을 뜬 사람들은 - '나는 명품이오'하는 물건들을 삽니다. 가방에 그 회사의 상징 무늬를 크게 새긴다거나 혹은 무늬가 확실히 눈에 띄는 브랜드의 물건을 사지요. 멀리서만 봐도, 그 무늬만 봐도 이것이 얼마나 비싼(!) 물건인지 알아봐줘야 하는거죠.

 

그런데, 웬만한 명품브랜드들을 섭렵했거나 혹은 돈이 지천으로 깔려서 딱히 돈 많다는것 티 낼 필요도 없는 진짜 선수들...이런 선수들은 '눈에 띄는 브랜드'를 잘 안쓰죠.  오히려 브랜드가 뭔지 도무지 짐작이 안되는 물건들을 두르고 돌아다닙니다. 헤헤헤.

 

개념미술 작품에는 작가의 서명이 없습니다. 하지만, 알만한 '선수'들은 서명도 없는 그 '명품'을 알아보고 잘난척을 하지요.  사실 아무런 표시를 안해도, 어떤 물건의 '개성' 자체를 감추기는 힘들지요. 솔 레윗이 작가 싸인을 안해도 그 작품 자체가 작가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개념미술 작가들은 '작가'가 '작품'에 개입하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작가가 작품으로부터 한발 떨어지는 시도를 했지요만,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작품 자체가 갖는 작가 고유 컨셉의 정체성은 작가에게서 아주 분리될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페이지에서 Sol LeWitt 의 예술, 그리고 개념 미술이 무엇인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2010년 2월 8일 RedFox.

 

 

 

 

 

 

 

 

 

 

 

Sol LeWitt 의 개념미술 (3) : 유쾌한 피라미드

 

 

2010년 1월 20일 National Gallery of Art, Sculpture Garden

 

 

건널목 너머로 보이는 것이 워싱턴 디씨 내셔널 몰에 있는 국립미술관의 야외 조각공원입니다.  제가 사진을 찍는 이쪽은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의 서관(서쪽 건물) 앞이지요.  저만치에 워싱턴 마뉴먼트가 보이지요.  은색 밴이 서있는 뒷쪽으로 보이는 세모모양이 솔 레윗의 '피라미드' 작품이 있는 조각공원 입니다.  이 조각공원의 중앙에 분수대(연못)가 있고요. 봄, 여름, 가을에는 분수가 피어오르지만, 겨울에는 이곳이 스케이트장이 되지요.

 

조각공원을 지나 계속 가면, 자연사 박물관 (Smithsonian Museum of Natural History)이 나오지요.  그 자연사 박물관 입구에는 화석처럼 변한 아주 오래된, 거대한 나무형상이 있고요, 그리고 쇠가 중간중간에 무늬를 이룬 아주 오래된 쇠바위가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자연사 박물관...의...소장품들은...지구가 만들어낸 예술품들이지요.  그리고 그 예술품을 가장 잘 안내할수 있는 사람은, 과학자들이지요. 

 

 

 

 

 

 

 

Four Sided Pyramid (4면의 피라미드)

First Installation 1997, Fabricated 1999

Concrete Blocks and Mortar

458.2 x 1012.2 x 970.9 cm

 

 

자, 여기 솔 레윗의 피라미드 뒷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국립 미술관 서관(West Building)입니다.

 

 

2010년 1월 20일 촬영

 

 

 

그러니까, 저의 극히 개인적인 취향인데, 저는 로댕 이외의 조각가나 조각작품에 대해서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요.  오죽하면 제가 '미국미술' 블로그를 열어놓고서는 평면적인 회화만 들여다보겠습니까.  저는 조각작품에 대해서 그냥 별 관심을 못 느낍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 조각공원을 오가며 들를때에도 그냥 상식차원에서 부르조아의 거미라던가, 리히텐스타인의 작품을 쓱~ 보고 지나치는 정도였고요, 특히나 이런, (혹은,...이따위)  블럭으로 세워놓은 피라미드 따위, 관심도 없었다고 봐야지요.  헤헤헤.

 

 

그런데요, 제가 2010년 1월에 국립미술관 동쪽 빌딩에 있던 솔 레윗의 작품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난 후에, 며칠후에 이 조각공원 앞을 지나치는데, 이 피라미드가 눈에 띄는겁니다.  그리고는, 거의 본능적으로 혼자서 중얼거렸던 것이지요. "저거, 저거..저것은...솔 레윗인가봐..."

 

역시나, 다가가서 확인해보니 솔 레윗의 작품이었던 겁니다.

 

 

저는 사실, 이것을 보고 나 자신이 왜 솔 레윗을 떠올렸던것인지도 스스로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솔 레윗의 어떤 본질을 파악하고 나자, 길거리에 서있던, 내가 무시하고 지나치던 이 피라미드가 문득, 소리를 내는 겁니다.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그래서 저절로 알아지는거죠. 

 

제가 http://americanart.textcube.com/371  페이지에서, 허시혼의 벽화를 통해 솔 레윗의 매력을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적은 적이 있는데요. 사각형 안의 삼각형. 2003년 작품. 사실 이것은 어찌보면 피라미드이지요.  그리고 조각공원의 사면체 피라미드 작품은 1997년 작품인데요. 이 두 작품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두 작품 모두 '피라미드'를 표현한 것인데, 하나는 색깔로, 하나는 입체로 표현한 것이죠. 두가지 모두 사각형과 삼각형의 조화라는 면에서는 상통하죠.  그러니까, 제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허시혼 벽화에 햇살처럼 표현된 피라미드 형상을 기억하던 저는, 솔 레윗에 대해서 좀더 알게 된 후에, 길거리에서 이 피라미드를 보면서, 부지불식간에 이 조각물의 정체를 파악한거겠지요.

 

'부지불식'이라는 표현이 있쟎아요.  이것을 인지심리학적으로 풀이하지면 '암묵적 지식'이지요. 내가 안다고 인지하지도 못하면서 알고 있는 상황.  나는 허시혼의 솔 레윗 벽화와  조각공원의 솔 레윗 피라미드를 의식적으로 연결시키지 못했지만, 암묵적으로 파악을 한거죠.  (사람의 인식 체계는 우리 자신이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신비하기까지 해요.)  그래서 '저것은 솔 레윗인가봐'하고 다가가서 확인해보는 순간, 아, 솔 레윗이었던거죠.

 

 

그런데요,  무조건 '감'으로만 무엇을 파악하는것으로 끝내서는, 지식의 탑을 세울수가 없지요. '감'이 맞아떨어질때, 혹은 막연히 무언가를 느끼거나 안다고 생각할때, 그때 우리는 논리적인 자세로 '공부'를 해야 하지요.  수업중에 저는 종종 "지금 그 개념을 당신의 언어로 설명해보라"고 요구할때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대개 얼버무리며 "알지만 설명을 못하겠다"고 하지요.  "알면 왜 설명을 못하는가? 설명을 못한다면 당신은 정확히 안다고 할수 없다"고 저는 좀 쌀쌀맞게 대응하는 편입니다.  대충, 아는척 하지 말라는 주문인 것이지요.  뭔가 희미하게 파악은 하되,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면, 안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학교에서는 학문을 해야 하므로.   그렇지만, 제가 어떤 사람의 '감'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암묵적인 어떤 인지 과정이 분명 있지요.  그런데 학문에서는 이것을 구체화하고 논리화해야 하는 것이지요.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별 재미 없어보이던 '피라미드'가 갑자기 눈에 들어오고, 어떤 감이 잡힐때, 내가 저절로 무엇을 알게 되었다는 것에 흥분하고 기뻐하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해서 나는 그것을 저절로 알게 되었을까?  파악해보려는 노력도 필요하죠.  음, 그것이 제가 사는 방식인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너처럼 그렇게 앞뒤 논리를 따져보고 그래야 해?  그것이 과학적이기나 한거야?  이런 반론을 제기 하고 싶은 독자도 있으실겁니다.  모든 사람이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습니까...  그냥, 그것이 제가 사는 방식이라는 것이지요. 모두 다 똑같다면 이세상 사는 재미가 없겠지요.)

 

 

 

솔 레윗이 그렇게 제게 다가와 둥지를 틀었습니다.

 

 

2010년 2월 8일 RedFox

 

 

 

 

Sol LeWitt 의 개념미술 (2) : 명.랑.!

(사진에서 왼쪽의 벽)

Wall Drawing #65,

Lines not short, not straight, crossing and touching, drawn at random using four colors, uniformly dispersed with maxim density, covering the entire surface of the wall.

First installation, 1971

 

red, yellow, blue, and balck color pencil

2001.9.25.

 

Drawn by Hidemi Nomura, Kalisma, Kristin Holder, and Kathryn Morales

 

(번역)

 

벽화 65번

선은 짧거나 직선이어서는 안되며, 서로 교차하고 닿아야 한다, 네가지 색깔로 무작위로 그려야 하며, 벽 전체에 걸쳐서 최대한 조밀하게 그러나 균등하게 분포해야 한다.

최초의 설치는 1971년에 있었다.

 

빨강, 노랑, 파랑, 검정 색연필이 사용되었다.

2001년 9월 25일 작업하였다.

 

작업자는 히데미 노무라, 칼리스마, 크리스틴 홀더, 캐스린 모랄레스.

2010년 1월 16일 워싱턴 국립 미술관 동관 (East Building, 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촬영

 

 

 

 

 

워싱턴의 국립 미술관 1층 (혹은 지하층)의 현대미술관에서 발견한 솔 레윗의 작품입니다.  그런데요, 사람들은 이것이 '작품'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그냥 지나갑니다. 제가 함께 갔던 동행에게 물어봤거든요, "솔 레윗의 벽화, 봤어?"   대체로... 몰라요... 몰라도 문제 될 것은 없죠. 어차피 모르고 지나가는거니까요.  사람들이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 찍고 그러거든요. 이 앞에서는 안찍어요.  그냥 '벽'처럼 보이니까요.  그런데 이 벽을 들여다보면 색연필로 이러한 낙서를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솔 레윗의 작품입니다. 그냥 평범한 벽처럼 보입니다. (아는 사람 눈에만 보여요~)  (아니, 사실 벽 구석에 자그마한 이름표가 붙어있으니까 들여다보면 이것이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러니까,  미술가 솔 레윗 (1928-2007)은  위에 제가 대충 번역한 분홍색 '지시사항' 이것만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만을 창조해 낸 것이지요. 그리고, 이 개념을 바탕으로 정말 이 벽화의 작업을 한 사람들은 히데미, 칼리스마, 홀더, 모랄레스 이렇게 네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2001년에 바로 이 벽에 바로 이 미술 작업을 하던 이 네사람이 하루종일 무엇을 했는지 관찰을 했다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냥 미술학도로 보이는 네 사람이 오전에 나타나더니, 하루종일 네자루의 '색연필'을 가지고 이 벽에 이런 '낙서'를 했대요. 그리고 저녁때가 되자 작업을 모두 마치고는 손을 털고 자리를 떠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벽화의 원작자로 알려진 솔 레윗 (1928-2007)은 워싱턴에 나타나지도 않았고요, 솔 레윗의 지시사항과 네가지색 색연필만 가지고 나타난 네명의 사람들이 (아마도 솔 레윗의 문하생이거나, 뭐 미술학도들 이었겠지요) 미술관에 나타나서 온종일 지시사항대로 작업을 하는 것으로 이 벽화는 탄생했고,  미술품의 값은 솔 레윗이 챙겼겠죠 :) 헤헤.

 

이는 마치, 작곡자가 오선지위에 음표로써 음악을 창조해 내면, 연주자가 그 악보를 바탕으로 연주를 하는 식인거죠.  작곡자가 반드시 연주까지 할 필요는 없는거쟎아요.  연주는 연주자가 하는건데, 연주자의 역량에 따라서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도 있는거고, 괴상한 음악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베에토벤의 교향악 악보는 동일하겠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연주하는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나쟎아요.  지휘자에 따라서 교향악단의 역량이나, 그날의 분위기, 청중의 반응, 혹은 개별적인 연주자의 그날의 상황에 따라서 그 음악은 천상의 하모니가 되기도 하고,  들어주기 괴로워서 중간에 모두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불협화음이 될수도 있고요.  솔 레윗의 미술은, 작곡자의 악보와 같았던 것이지요. 연주자의 변수를 인정해주되, 악보는 영원한거죠.  이런식의 회화에 대한 시각은, 이전의 전통적인 회화, 미술에 대한 시각과는 조금 차이가 나죠?

 

예, 그래서 이런 식의 예술을 개념 예술 (Conceptual Art)이라고 하는데, 솔 레윗이 이 '개념 예술'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예술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요,  우리들도 솔 레윗의 '지시사항'에 따라서 네자루의 색연필을 잡고 작업을 하여 우리의 방 벽 일부를 꾸몄다고 한다면, 우리는 솔 레윗의 벽화를 우리식으로 '연주'해 낸것이지요.  별거 아닌거같죠? 사실 별거 아닐수도 있는데요. 그 별 것 아닌 것을 '처음' 생각해 낸 것 자체는 참 별스러운 것이었죠.  그렇죠?  콜롬부스의 달걀이죠.  별것 아닌데, 그 사람이 그걸 생각해낸거죠...

 

 

 

 

 

Objectivity, 1962, oil on canvas

127 x 127 x 24.8 cm

2006년 1월 16일 National Gallery of Art, East Building 에서 촬영

 

 

 

 

 

 

 

Wall Drawing #681 C:

A wall divided vertically into four equal squares separated and borderd by black bands. Within each square, bands in one of four directions, each with color ink washes superimposed. 1993.

(벽은 네개의 정사각형과 검정 선으로 분할된다. 네개의 정사각형 내부는 각기 네가지 방향중의 한가지를 택하여 색깔막대를 채운다. 색깔 잉크들은 겹쳐진다.)

Colored ink washes

image (size of installed drawing): 1127.8 x 304.8 cm (대략 11미터 x 3 미터)

Sol LeWitt 1928-2007

2010년 1월 16일 National Gallery of Art, East Building 에서 촬영

 

즐겁죠?  이런 작품을 보면 '명랑'이란 어휘가 생각나요. 기분이 아주 명랑해져요.  저절로 웃음이 나요.

 

 

'지시사항'을 솔 레윗이 적을때,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이미지가 있었던 것일까요? 그가 머릿속에 떠올린 이미지와, 이 지시사항대로 어떤 다른 사람이  작업을 한 결과는 일치하는 것일까요?  작업을 한 사람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작업을 했을까요?  그리고 이 작품앞에서 희희낙락 유쾌하게 사진을 찍는 내가 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과, 작업자의 의도와,  이 작품의 설계자(솔 레윗)의 의도는 일치할까요?  아닐걸요.  솔 레윗도 예술 작품의 이러한 한계, 이러한 속성을 꿰뚫어본것이겠지요.

 

 

2010년 2월 8일 RedFox

 

 

 

Sol LeWitt 의 빛이 가득한 개념예술 (1)

 

이미지는 클릭하면 커집니다.

 

2009년 9월 24일 스미소니안 허시혼 미술관에서 촬영

 

워싱턴 디씨에는 참 매력적인 장소가, 많지요.  '제국'의 행정수도답게 모든 국립 박물관들을 무료로 개방해 놓고, 아무나 편히 느나들라는 여유를 부리는 덕에, 차비만 있으면 사실 일년 내내 백수질 하면서 쏘다닌대도 싫증이 안날만한 곳이지요.  워싱턴 디씨의 이런 무료입장 가능한 박물관들 중에서, 제가 열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 Hirshhorn 미술관안에서도 바로 이곳이지요.

 

이곳이 들어서면 개념미술 (Conceptual Art)의 창시자로 알려진 Sol Lewitt 의 큼직한 벽화가 그려져있고, 그리고 중앙에 전망좋은 유리벽과, 앉으면 침대처럼 편히 뒤로 젖혀지게 되는 무지무지 푹신하고 편안한 소파가 있지요.  이 소파의 품에 기대어 유리벽 밖을 내다보면 워싱턴에서 가장 아름다워보이는, 내셔널몰의 아름다운 박물관 건물들이 줄지어 보이지요.  자연사박물관도 보이고.  뭐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허시혼을 지나칠때면, 그러다 잠시 그곳에 들를때면, 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윗층으로 이동하여 전시장 한바퀴를 빙 돌다가 이 푹신한 소파에 기대누워서 긴 한숨처럼 다리를 펴고 창밖을 내다보기를 좋아하지요.

 

 

 

 

Wall Drawing #1113: On a wall, a triangle within a rectangle, each with broken bands of color 2003, acrylic

Drawn by Patrick Burns, Stevens Jay Carter, Larry Colbert, Megan Dyer, Joy Hayes, Thomas Ramberg, and  Michelle Talibah

 

Sol LeWitt 1928-2007

2009년 9월 24일 스미소니안 허시혼 미술관에서 촬영

 

 

 

이 그림의 작가가 Sol LeWitt 이라는 사람인데요,  이 사람 이름 Sol 을 말할때마다 '햇님'을 연상하게 됩니다.  오 솔레 미오 - 오 밝은 태양 너 참아름답다!  우리가 고등학교때 '필수적'으로 불렀던 이탈리아 가곡 오 솔레미오에서 그 솔이 햇님이라쟎아요.  그래서 솔~ 하면 눈부신 햇님이 연상이 되는거지요.  하필, 제가 솔 레윗이라는 작가의 존재에 대해서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작품도 바로 이 작품, 햇살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이리저리 반사하는 색채같은 이 눈부신 작품이거든요.  이 작품과 솔 레윗이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려요. 

 

 

작품 제목이 길죠. 벽화 번호 1113. 사각형 안에 삼각형. 각 삼각형은 끊어진 색깔막대로 이루어져 있음. 말하자면 이것이 제목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것이 이 작품의 '개념'이기도 해요.  제목 아래에 Drawn by ... 아무개들이 그렸다는 메시지가 적혀 있지요.  그러니까 이 작품의 개념(제목, 지시사항)을 만들어낸 작가는 솔 레윗이고, 이 개념에 따라서 직접 벽화작업을 한 사람들은 바로 저기에 이름적힌 저 사람들이지요. 작가가 직접 와서 그림을 그리고 칠을 한것이 아니고, 작가는 '개념'만 적어줬고,  그걸 저 사람들이 와서 지시사항대로 구현해 낸 것이지요.  작가는 손하나 까딱 안했다구요.  이 작품에는 솔 레윗의 싸인도 없고, 그의 흔적도 찾아볼수 없어요.  단지 작품이 거기 존재할 뿐이죠.  이것이 말하자면 '개념미술'의 성격입니다.

 

 

 

 

 

Wall Drawing #356BB: Cube within a cube 2003, acrylic on wall surface

Drawin by Patrick Burns, Stevens Jay Carter, Larry Colbert, Megan Dyer, Joy Hayes, Thomas Ramberg, and  Michelle Talibah

 

Sol LeWitt 1928-2007

2009년 9월 24일 스미소니안 허시혼 미술관에서 촬영

 

 

 

 

 

 

 

2009년 9월 24일 스미소니안 허시혼 미술관에서 촬영

 

 

 

 

 

 

2009년 9월 24일 스미소니안 허시혼 미술관에서 촬영

 

 

 

 

 

2009년 9월 24일 스미소니안 허시혼 미술관에서 촬영

 

 

이곳은 제가 워싱턴 디씨에서 좋아하는 장소중에 열 손가락 안에 꼽는 곳입니다. 이 소파에 기대 앉으면, 참 푹신하고 편안하고 좋아요.  게다가 사람도 별로 안오는 곳이라서 하루종일 이대로 있을수도 있어요.  이곳에 누군가와 함께 와 본적은 없습니다. 어쩐 일인지 이곳에 오게 될땐 늘 혼자였습니다.  이곳은 워싱턴을 겉핥기로 하루이틀에 지나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아는 사람만, 한가로운 사람만, 백수만, 심심해 미치겠는 사람만 오는 곳이지요. 이곳에 들어서면 오늘처럼 흐리고 눈이 뿌리는 날에도 햇살이 쨍쨍 내리 쬐는 기분이 들것입니다. 솔 레윗의 그림이 있으니까.

 

 

2010년 2월 8일 RedFox

 

19세기 풍속화가 George Caleb Bingham 의 노스탈지아

Mississippi Boatman 1850, oil on canvas

George Caleb Bingham (조지 케일럽 빙엄) 1811-1879

 

 

 

 

조지 케일럽 빙엄(1811-1879)는 버지니아주의 부농 집안에서 태어나지만 아버지의 투자 실패로 삶의 근거지를 중서부 미조리주로 옮기는데 성년이 되어 유럽을 여행한 것을 제외하고는 미주리주에서 평생을 지내게 됩니다.  빙엄은 뒤셀도르프에서 미술 수업을 한적도 있지만, 이는 그가 성년이 된 후에 후원을 입고 뒤늦게 수업을 들은 셈이고, 미술사가들은 빙엄을 '독학 (self-taught)'하여 입신한 화가로 평가하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어릴때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스스로 그림을 익혔는데, 그의 그림에 대한 평가가 좋아지고 그의 입지가 단단해질 무렵에 그에게 그림 수업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 것이지요.

 

빙엄은 목공예 기술을 익힌적도 있는데 그러면서 회화에 눈을 떴으리라 짐작하게 됩니다. 그보다 한세대 먼저 펜실베니아에서 활동했던 '평화의 왕국'의 화가 Edward HIcks 가 마차 장식이나 표시판 기술자로 일하면서 스스로의 화풍을 익히면서 퀘이커 교도로서 설교를 하러 다니기도 했었는데요, 빙엄 역시 목공예를 하면서 미술 작업을 하는 틈틈이 법률가가 될것인지  목사가 될것인지 고민을 하기도 했고요, 설교를 하러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변호사도 목사도 되지 않았고 초상화 주문을 받아 그려주는 것으로 생계를 해결하게 되었는데요.  정작 그의 예술성이 인정을 받게 된 분야는 그가 미조리주, 미시시피강변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풍속화에서였습니다.

 

 

빙엄이 즐겨 그린 '미시시피강변의 사람들' 소재가 위의 그림에서도 나타나는데요.  미시시피강은 북미에서 가장 긴 강이지요. 미국의 중앙 북단에서 흘러내려 뉴올리안즈까지 이어지는 대동맥과도 같은 강입니다. 저는 뉴올리언즈에서 본 미시시피강 하구의 증기선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쓴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회고록 Life on the Mississippi (1883년 출판)을 대학 시절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 마크 트웨인이 어린시절 증기선을 타고 미시시피강을 오르내리던 기억을 담은 이야기들인데요.  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에서도 뗏목을 타고 흑인노예 짐과 함께 강을 따라 이동하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저에게 미시시피강은 '마크 트웨인'의 책속에 흐르는 강이지요. 그래서 빙엄의 미시시피강 연안의 풍경을 볼때도, 허클베리핀의 모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아이들, 악당들, 우매한 군중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림속의 미시시피 보트맨은 아마도 그가 배로 운반한 물건들을 강변에 부려놓고 짐을 지키고 앉아있는 것 같죠. 그의 등뒤로 강가에 대어놓은 그의 납작한 배가 보입니다.  풀기라고는 없는 그의 옷처럼, 이제 젊음이 지나가버린 이 늙수그레한 사나이는 곰방대를 빨면서 관객을 응시하고 있는데요. 이 사람이 앉아서 쳐다보는 방향은 강의 상류일까요, 하류 일까요? 

 

저는 이 그림속의 시각이 오후 네시쯤의 황혼이 다가오는 시각이라고 봅니다. 분위기상.  그런데 햇살이 이 사람의 오른쪽에서 비치지요. 해가 서쪽에 있고, 오른쪽이라면, 이 사람은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지요. 미시시피강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니까, 이 사람은 상류에서 내려와서 짐을 내리고 남쪽을 향해 한가롭게 앉아있다고 봐야겠지요.   내일쯤, 이 사람은 그의 자그마한 배에 새로운 짐을 싣고 북쪽으로 올가가겠지요. 이 사람의 그림에서 저는 왜 황혼을 읽는 것일까요?  빛의 분위기가 어쩐지 황혼을 닮았지요. 이울어져가는 태양의 기운 잃은 노란색, 그 노란 색조가 화면 전체를 압도하지요.  곰방대를 물고 있는 사나이의 표정도 기우는 해처럼 무심하죠. '노스탈지아 nostalgia'의 색은 무슨 색일까요?  빙엄의 그림을 보면 노스탈지아의 색은 '노란색'인것 같습니다.

 

이 그림은 1850년에 그려졌는데요, 1850년 당시만해도 미시시피 강에 뗏목이나 자그마한 배들이 여전히 운행을 하긴 했지만, 강의 운송수단의 대세는 증기선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노를 저어 운송하는 수단은 이제 사양의 길로 접어들었거나, 혹은 찾아보기가 드물어졌다고 하지요.  빙엄은 말하자면, 사라져가는 혹은 사라진, 풍경을 담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사라지고 이울어져가는 풍경을 담았던 빙엄은 미국 미술사에 '오래' 남게 된 것이지요.

 

빙엄은 풍속화, 초상화, 그리고 몇점의 역사화들을 남겼는데, 기록에 따르면 빙엄의 작품은 '모두' 미국에 있다고 합니다. 해외의 소장자가 없다고 해요.  해외에 안 알려진 화가라는 얘기죠.  워싱턴에서도 그의 작품의 수가 극히 미미하거니와 전시장에서 찾아보기도 힘듭니다.  그의 활동 기반이 미조리주였기 때문에 미조리주에 그의 작품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그의 걸작이 있다는데요, 가서 보고 와야지요.

 

 

 

 

아래의 그림은 버지니아 남단 해변도시에 있는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발견한 빙엄의 역사화입니다.  델러웨어강을 건너는 조지워싱턴을 그린것입니다. 뒤셀도르프에서 함께 수학하기도 했던 미국화가 Emmanuel Leutze 가 1851년에 그렸던 동명의 작품과 매우 흡사한 구도인데요,

 

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1856-1871

oil on canvas, 146 x 93 cm

George Caleb Bingham 1811-1879

2009년 11월 29일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촬영

http://americanart.textcube.com/190

 

 

Emmanuel Leutze, Washington Corssing the Delaware 1851

 

 

이 그림의 제작년대가 1856-1871까지 표시가 되어있지요. 작품을 완성하는데 무려 15년이 걸렸다고요. 그 사연인즉, 빙엄이 이 그림의 초안을 잡아놓고 미조리주에서 이 그림을 사주기를 희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주문을 받아서 돈을 받고 이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대요.  그래서 완성을 하지 않고 주문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다가 세월을 보낸 모양입니다. 결국 그는 주문도 받지 못하고 그림을 완성했다고 하는데요, 그가 죽을때까지 이 그림이 팔리지 않았대요. 나중에 빙엄의 유가족이 이 그림을 경매에 내놨을때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그런 사연이 있는 그림입니다.

 

 

 

 

 

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가 걸린 전시장 풍경,

(오른쪽 하단에 걸려있는 작품), 크라이슬러 미술관

http://americanart.textcube.com/190

바로위에 에드워드 힉스 http://americanart.textcube.com/193 의 조지 워싱턴 그림이 보입니다.

 

 

말씀 드렸다시피, 빙엄의 작품은  미국 바깥에는 한점도 없다고 합니다. 오직 '미국'에서만 만날수 있는 작가이지요.  미시시피 강변의 노란 노스탈지아의 풍속화가.  미국 미술관을 순례하시다가 노란 색조의 강풍경이나 배를 탄 사람들이 노를 젓거나 배위에서 춤을 추거나 하는 풍경이 보이시면 누가 그렸는지 화가 이름을 한번 살펴 보십시오.  그가 빙엄일지 모르니까요.

 

2010년 2월 9일 RedF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