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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2일 월요일

Edward Hopper: Sunday

Sunday  1926. Oil on canvas
29 x 34 in.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2010년 2월 20일 촬영

 

제가, 어제 머리 식히러 훌쩍 필립스 콜렉션에 분명 다녀왔거든요.  그런데 제 카메라를 우리집 작은도령이 멋대로 조작을 해 놓아가지고, 사진들을 모두 망쳤거든요. 제가 밤에 거의 잠을 못 잤습니다. 빨리 다시 가서 사진찍을 마음에 잠이 안왔어요. 왜 잠을 못자고 설쳤냐하면, 오키프 특별전 때문이 아니고, 바로 이 작품 때문이었습니다.  이거 아무때나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거든요. 무슨 말씀인가하면, 각 미술관들의 소장품들이 방대할경우 명작들이 창고에 처박혀 먼지만 쌓이는 수도 있고, 내가 아무리 그 미술관의 소장품을 보고 싶어도 전시가 안되면 볼수가 없는거죠.  필립스 콜렉션이 이 작품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것을 언제 전시장에 내 놓을지, 언제 그림을 바꿔 달을지 저로서는 알수가 없는겁니다.  이 작품이 지난 가을에는 분명 여기 없었어요.  이번에 가보니 사실주의 화가들 작품이 세개의 방에 제법 충실하게 전시가 되어있었더라구요. 그러니깐, 혹시라도 밤사이에 그림이 교체가 되면 안되니까 (그럴리는 없겠지만), 잠이 안오는거죠...

 

 

이 방에는 왼쪽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두점이 나란히 걸려있고요

맞은편에 보이는 대형 초상화는 The Eight 의 Geroge Luks 의 작품

안보이지만 오른쪽 벽에는 벽난로 위에 Rockwell Kent 의 설원 풍경이 걸려있어요

창문이 있는 이쪽 구석에는 Robert Henri 의 인물화가 있고요.

저기 건너방에 다닥다닥 붙은 작품들이 Jacob Lawrence 의 남부흑인 이주 시리즈 30장.

(http://americanart.textcube.com/79)

실내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서 실컷...보는거죠..실컷...

 

 

 

 

 

 

예, 저는 그래요. 뭘 보고 싶으면 당장 가서 봐야, 안심이 되지요. 저는 훗날 같은거 안믿어요. 나중에 뭐 할거라는 것 별로 안믿어요. 지금 당장 하고 싶을때 해야 하죠. 내가 내일 이 세상에 살아있을지 없을지 장담이 안되는데 뭘 미루고 할것이 없지요. 보고싶은건 당장 가서 봐야하는거죠.

 

아...그래가지고...달려가서 눈이 빠지게 보고 또 보고 했다는거죠. 작품들을... (정말 행복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에 둘러싸인 시간이. 내가 꼭 보고싶어서 환장했던 그림들속에서 서성이던 순간들이.)

 

아, 내가 오늘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들을 봤는지...풀어놓고 자랑질을 하는 것으로 염장질을 해야만 하는 것인데.하하하. 빨래도 해야하고 청소도해야하고, 아이구야. 염장질 할 시간이 없네~

 

나는 봤지롱~  에드워드 호퍼의 썬데이를~

 

썬데이에 나오는 저 남자, 내가 한참을 앉아서 들여다보니까, 어떤 생각이 드냐하면

20세기에 뉴욕 변두리에 나타난 쓸쓸한 소크라테스.

길에 앉아서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다떨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며 햇볕을 쬐고 있는 대머리 소크라테스.

 

하하.

 

 

 

느림보

아니. 저 을씨년스런 그림이 이래 화사해 지다니요.

 

 

 

제 친구 느림보님의 코멘트가 인상적입니다.  '을씨년' 스러운 그림이 '화사'하다는 '역설적'인 평을 하셨는데요.  이 한마디에 어쩌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의 전체적인 개성이 들어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Realism/EdwardHopper

 

위의 링크에 제가 에드워드 호퍼 이야기를 적어놓은 페이지들이 연결되어 있는데요. 각 페이지에는 제가 직접 미술관에서 눈으로 보고 찍어온 사진들과,  혹은 그림 설명을 하기 위해서 웹에서 자료를 빌려온 이미지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대개는 눈으로 봤지만 미술관 정책상 사진 촬영이 불가했던 작품들입니다.).

 

그런데요, 아마도 제가 찍은 사진들 - 예컨대 케이프 카드의 아침, 오후, 저녁 등 - 을 보시면 그림이 밝고 화사하다는 것을 발견하실 겁니다.  실제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미술관에서 봤을때, 그의 그림의 색조가 어둡다거나 암울하다는 생각이 별로 안듭니다. 실내가 아닌 실외, 풍경 그림을 보면 오히려 눈이 부실정도로 색조가 환합니다.  '빛'을 그렇게 생생하게 그려내는 화가도 많지 않을겁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햇살을 아주 생생하게 재현해 냅니다.  그래서 빛 자체는 화사하고 눈부시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주는 전체적인 인상은

 *뭐라고 설명하기 곤란하지만 휑하고 쓸쓸하다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막막하다

전체적으로 '을씨년 스럽다'고 할만하지요.

 

사실 정말 쓸쓸한 것은...비가 죽죽 오는 암울한 날의 풍경보다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햇살이 내리쬐는 날 세상에 나 혼자 고립되어 있는듯한 막막함, 이런거죠. 예를 들어서 내가 실연을 당해서 죽고싶거나 살기가 싫을때, 그럴때 비오는 날보다 오히려 햇살 투명하게 맑고 화창한날이 더 견디기 괴로운겁니다. 햇살아래 혼자 우두커니 서있을때 그때 사실은 더 쓸쓸하죠. 더 고립감을 느끼죠. 세상은 유쾌해보이는데 나혼자만 암담한거죠.

 

 

미술책이나 웹에 떠도는 호퍼의 많은 그림들이 대체적으로 을씨년스러운, 암울해보이는 색감을 띄고 있는데요...사실 직접 가서 보면 호퍼의 색감이 암울하지는 않습니다. 눈이 부시게 환해요. 그런데 그 눈부신 빛속에 쓸쓸한 바람이 불어요, 기이하게.  그러니까 그 아저씨가 간단한 아저씨가 아닌거죠 :)

 

우리가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는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습니다. 책이 전하는 이미지는 '허상의 허상'이죠. 미술작품이 허상이라면 그 작품을 담아놓은 책은 허상을 담아놓은 또다른 허상이지요. 제 페이지 역시, 허상을 다시 담아온 허상에 불과합니다. 직접 보는 것이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지요. 책도 마찬가지이지요. '원전'을 읽어야하는 이유가, 가장 가까이 다가갈수 있는 곳까지 가보는 것이지요. 남이 전하는 말 대신에 내가 확인하는 방법이지요.

 

제가 미술 이야기를 하는것은 사실은, 내가 본것을 남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보다는, 내가 본것을 내가 기억하기 위한 장치이지요.  이런 '대화'를 통해서 더 의미있는 기억을 하게도 되고, 깨닫게 되기도 하고요.

 

호퍼는 화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더욱 을씨년스러웠지요... 느림보님이 아주 정확히 꿰뚫어보신겁니다.  제가 호퍼에 대해서 여러페이지로 이야기를 했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저도 생각해내지 못했거든요. :)

 

 

팬서비스 차원에서 (자랑질 혹은 염장질 차원에서 ^^)

 

자, 저 그림속의 사나이...웹에 무수하게 걸리는 조그만 이미지로는 저 '남자'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드실겁니다.  저 사람 그냥 햇살속에 앉아있는것처럼 보이지요?  그런데요 제가 가서 들여다보기 전에는 저도 잘 몰랐던것이 있습니다.

 

 

 

이남자 입에 씨가를 물고 있어요~  그냥 멀리서보면 '씨가'는 안보이죠. 생략되어버리죠.  가서 들여다봐야 보이지요. 저 남자의 뺨에 굵게 새겨진 주름이라던가, 관자놀이. 그리고 그의 귓바퀴에까지 정확히 꽂힌 햇살....  우리들이 미술책을 통해서 보는 이미지들은 많은 부분 생략되고, 변색되고, 뒤틀리고, 그런거죠 (물론 제 페이지의 이미지들도 그런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미술관에 가서 두눈으로 본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는것도, 최소한 이 남자의 얼굴 만큼의 '정직성'이라도 갖추기 위해서이지요.  웹에 떠있는 자료 대충 긁어다가 아는척 이야기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고. 정말 내 눈으로 만진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  그래서, 시간만 나면 '사냥'을 나가고 싶어서 근질근질해지는거죠. 헤헤.

 

 

encounters 2010/02/22 04:00

물리적, 감정적 '온도'의 대비이기도 한 것 같네요. 아저씨 포즈로 봐서 쌀쌀한 날인데, 햇빛은 따스하게 비치고. 그런데도 빈 가게? 주변에 사람도 아무도 없어서 담배 한 대의 온기가 그립고.

 

음, 제가 10년가까이 위키 시스템을 사용해오고, 그리고 기본적으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지향하는 성격이라서...그리고 사실 dialogic process 라는 바흐친적 신비주의를 품고 있는 사람이라서, 어떤 사람의 코멘트에 많은 의미를 두는 편입니다.  제 생각의 실타래를 풀게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냥 흘려버릴수가 없고, 그냥 댓글로 남겨두기에는 의미심장하게 여겨질 경우, 본문으로 텍스트를 옮기는 편이지요.

 

'물리적, 감정적 온도의 차이'라고 정리한 encounters 님의 커멘트도 역시 제가 '한수 배워야 할' 시각으로 보입니다.  차이.

 

이 코멘트를 읽고, 제가 어떤 상상을 했냐면요... '어쩌면, 저 사나이 주변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저 사나이는 혼자 앉아있는것처럼 '에드워드 호퍼'의 눈에 보였을것이다. 저 사나이는 (아니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남녀는, 결국) 호퍼의 자기 투사에 불과할것이다.  호퍼는 어디에 가서 무얼하건 저 사나이처럼 저렇게 혼자 있는듯한 느낌을 견지했을것이다.  그리고, 호퍼의 그림을 이런 식으로 읽는 나 자신은 나를 호퍼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리라.  나에게 '호퍼'적인 것이 존재하기에 그 거울을 통해 호퍼를 읽는 것이리라.'

 

저는 상상속에서, 저 그림의 주변에 이런 저런 사람들을 채워보았는데요, 그렇다 한들 저 그림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저 사나이인한은.

 

그런데, 제가 저 풍경과 비슷한 조지타운 거리를 일요일 아침에 나가보면요...정말 거리가 텅 비었어요.  정말 텅텅 비어있어요. 마치 텅빈 거리를 걷는듯한 기분이 들어요. 그러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이 거리를 채우는데요. 아마도 한적한 도시 변두리의 거리는 여전히 일요일이면 저렇게 '텅 빔'을 연출할겁니다.  미국이란데가 참 쓸쓸하고 휑한 곳이에요. 특히나 일요일 오전... 교회에 가는 차량이나 보일뿐 대개 늦잠을 자거나 집에 처박혀 있거나... 저 사나이는 일요일에도 가게를 열어놓은 작은 그로서리 점포 주인이거나, 뭐 그럴것 같아요.  사람들이 나타날때까지 여유롭게 해바라기나 하면서 씨가나 물고 그냥 한가롭게...

 

(이 사람을 쓸쓸하게 보는것은 우리 자신이죠. 저 사나이는 사실 쓸쓸하지도 않을걸요 헤헤.) 쓸쓸한것은 우리 자신이죠...

 

 

 

 

 

 

 

RedFox

 

 

 

2009년 12월 3일 목요일

Edward Hopper : New York Pavement 뉴욕의 보도 (1924/5)

Edward Hopper (1882-1967)

New York Pavement (1924 or 1925)

뉴욕의 보도

Oil on Canvas

75.6 x 62.9cm (가로 x 세로)

 

 

크라이슬러 미술관에서 '월척'을 낚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1924년이나 1925년 작품으로 추측되므로 그가 42세때, 아직 세상이 '대가'의 출현을 알아보지 못하던 시기의 그림이라 할 만 합니다.  '뉴욕의 보도'라는 제목처럼 뉴욕 시내의 어떤 건물 앞 풍경을  맞은편 건물 2층이나 3층 혹은 옥상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각도로 잡아 놓았습니다.  얼핏 수녀복을 입은듯한 여인이 유모차를  밀며 걸어가는데 이 여인의 머리 두건이 펄럭거리는 것으로 보아 바람이 휙 부는듯 합니다.  도심의 골목길 앞을 지날때 문득 불어오는 골바람일지도 모르지요.

 

여인의 나부끼는 머리두건이나 그의 방향성에서 어떤 움직임이 느껴지지만, 그외의 모든 장치들은 요지부동으로 꼼짝도 않겠다는 태도로 무겁게 버티고 있습니다. 회색돌로 이루어진 건물과 역시 같은 색조의 보도에는 어떤 틈새도 보이지 않습니다.  유모차속의 아이의 얼굴도 보이지 않습니다.  건물의 창 안쪽으로 노란 블라인드가 드리워져 있고, 가운데 창은 커튼도 열려있지만, 커튼 안은 캄캄하기만 할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수녀처럼 보이는 이 사람의 검은 옷과, 유모차의 검정빛, 그리고 건물 입구나 유리창 안의 검정색은  노란 블라인드와 대조를 이루면서 더욱 어둡게 느껴집니다.

 

저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엄마, 아버지, 아이들' 이런 '가족'이 어우러진 풍경을 본 적이 없고, 아이들이나 아기를 본 적도 없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 그림이 '아기'가 등장하는 유일한 그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조차 '아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아기'의 존재를 추측할 뿐. 

 

우리에게 호퍼의 그림이 외롭거나, 쓸쓸하거나, 혹은 을씨년 스러워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의 그림에 '미래'를 상징하는 '아이'가 없어서 그런것은 아닌지...  문득, 유모차를 끌고가는 검은 제복의 유모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어머니와 아기의 관계가 아닌 을씨년 스러운 제복을 입은 (저승사자 같아보이는) 유모의 보호를 받는 이 아기가 행복할것 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그림이 아주 암담해보이지 않는 이유는 아기를 덮고 있는 붉은 천,  유모의 붉은 뺨, 건물 2층 부분에 보이는 붉은 벽돌 일부, 그리고 창문 블라인드의 햇빛같이 고요한 연노란색이 여기저기서 '생기'를 보내기 때문인데요, 이런 미묘한 생기 때문에 우리들은 호퍼의 쓸쓸맞아 미치겠는 그림앞에서 아쉬운듯 아쉬운듯 떠나지 못하고 맴돌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09년 12월 3일 redfox

 

2009년 10월 11일 일요일

에드워드 호퍼의 세상보기

Morning Sun
1952
Oil on canvas
28 1/8 x 40 1/8 inches
Columbus Museum of Art, Ohio

 

 

 

Edward Hopper 의 그림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은?

 

(1) 호퍼의 그림에는 아이가 안보인다. 성인 남자, 여자들이 존재하지만 아동이 보이지 않는다. 단란한 가족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 것 과도 상통한다. 

 

(2) 호퍼의 그림에는 대화가 없다.  인물들이 여럿이 나와도 이들이 소통하는 것 같지가 않다. 각기 떠도는 별 들처럼 두사람이 서로 감정이 교류되거나 일치된 듯한 장면을 찾아보기 힘들다.  호퍼가 그린 인물들에 눈동자가 생략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해진다.  관객들조차 호퍼 그림속의 인물들과 '소통'이 불가능하다.

 

호퍼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로 정리 될 수 있는데 (1)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세상과 같이 속도감 있게 보는 방식 (2)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 장면처럼 클로즈 업 하거나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조망하는 식으로 보는 방식이다. 이 자동차 유리를 통해 보거나 극장의 스크린에 비쳐지는 혹은 영상 카메라에 비쳐지는 것을 보거나, 에드워드 호퍼이 세상보는 방식은 '거리를 유지하는 관찰자' 방식이라는 것이다.

 

대학원의 석사과정이나 박사과정에서는 '연구방법론'을 듣게 된다. 그 연구방법론 시간에 여러가지 방법이 논의 되는데, 크게는 통계처리 중심의 양적 방법론, 그리고 장시간 관찰이나 면담등을 통한 질적 방법론이 논의된다. 실험실의 관찰이 아닌 사회현상, 교육 현장을 관찰할때 크게 두가지 방법이 있다. (1) 관찰자가 관찰 대상과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고, 마치 벽에 붙은 파리 (Fly on the Wall)처럼 관찰하는 것이다.  범죄 영화 보면 수사관들이 피의자를 심문할때 심문실에 커다란 거울이 있고, 그 거울너머에서 수사관들이 관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렇게 아예 자신을 감추고 저쪽에서 일어나는 일만을 관찰하는 방법이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2) 그런하하면 관찰자가 관찰대상과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관찰 방법도 있다. 사회학 연구자가 어떤 현장에서 직접 봉사활동을 하거나,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서로 협력하면서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 하는 수도 있다. 교육현장에서 교사가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어떤 변화를 관찰하는 식으로 연구를 할때, 관찰자는 참여자가 되기도 한다. 이를 참여적 관찰이라고 할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림을 그릴때, 그는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며, 벽에 붙은 파리 같은 입장에서 사물을 관찰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세상을 '관찰자'로서 살폈다.  그는 소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이런 소통단절은 그의 그림속의 등장인물들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발견된다. 그보다 30여년 후에 태어난, 한세대 이후의 역히 외톨이 사실주의 화가라 할 수 있는 앤드루 와이어드 (Andrew Wyeth)는 호퍼와는 정반대의 관찰자였다. 그는 그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그렸다. 그는 활발하게 소통하고, 친구가 된 후에야 대상을 그림에 옮겼다. 앤드루 와이어드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가 그가 잘 알고 지내는 마을 사람들, 혹은 십수년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그림에 옮긴 사람들이다. 소통을 통해 그림의 대상에게 다가갔고, 그래서 앤드루 와이어드의 풍경이나 사람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속삭인다. 반면에 호퍼의 그림은 '접근'을 불허하고, '상상'을 정지시킨다.  앤드루 와이어드는 소통을 통해, 호퍼는 소통정지를 통해 '영원'으로 가려고 시도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자의 눈에 들어오는 풍경

 

이 그림은 1940년작 '주유소'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1940년이면 지금부터 대략 70년전의 그림이다. 1940년이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식민지 시절을 견디고 있었고, 윤동주 시인이 아직 연희전문 (현재 연세대) 학생이던 시간이다. 나는 중학교때, 시간을 거꾸로 되짚어 올라가서 윤동주 시인이 살던 시절로 돌아가서 그의 애인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상상을 한 적도 있었다.  연세대 문과대 왼편 언덕길에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다. (지금 왜 갑자기 윤동주 얘기냐구, 이 천치야...) 지금도 거기 그것이 있을까?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 이것이 70년전의 풍경 같지가 않다.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에서 보통 여행자가  집을 떠나 하이웨이를 타게 되면 누구나, 어디서나 이 그림속의 풍경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주유소의 규모가 크거나 작거나 차이는 있겠으나, 미국의 어느 주에 가도 우리가 만나게 되는 곳. 주유소. 그리고 주유소에 달려있는 가게. 그 가게에서 커피를 사고, 빵이나 과자를 사고, 생필품이 있나 기웃거리기도 하고, 화장실에 가서 급한 용무를 해결하고, 그리고 휙 떠나면 잊혀지는 곳.  어딜 가는 비슷한 하이웨이. 지역에 따라서 가로수의 품종이 달라지긴 하지만, 가장 흔한 것은 멋대라기 없이 키만 큰 소나무들.  그리하여. 지금도 미국의 하이웨이 풍경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길이 있고, 멋대가리 없는 가로수가 있고, 주유소가 있고, 주유소에 딸린 '공중변소'가 있고, 끝없이 이어진 길과 하늘이 있을 뿐이다.

 

 

 

 

Gas (1940)

66.7x`102.2 cm

Museum of Modern Art

 

 

호퍼의 풍경화를 보면 세밀한 묘사가 생략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전 페이지에서 Andrew Wyeth 의 그림들을 살핀적이 있는데,  앤드루 와이어드가 사과 나무를 그릴때 직접 나무의 사과를 세어보고 그릴 정도로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면,  호퍼의 풍경화속의 나무나 숲, 길은 달리는 차창 밖으로 비쳐지는 것처럼 쓸려 지나가는 것 처럼 보인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의 일부같은 숲, 도로.  그 속에 '영원'처럼 혹은 '박제'처럼 서있는, 표정없는 인물들.  소통두절.

 

 

영화관 스크린에 비친듯 한 풍경

 

 

Nighthawks (1942)

84.1 x 152.4 cm (33 1/8 x 60 in.)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Museum

 

 

내가 에드워드 호퍼를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의 그림을 처음 접한 것이 바로 이 Nighthawks 였다. 대학교 1학년, 교양과목으로 '예술의 이해'라는 과목을 수강할때,  교재에 실려있던 이 그림을 신기하게 들여다봤었다.  내 눈에는 이것이 '그림'으로 보인 것이 아니고 미국영화의 한 장면, 혹은 길거리 극장 영화간판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이런 그림도 '예술책'에 포함이 된다는 것이 신기했었다.  (아직 철없던 내게 '명화'란 르노아르나 고흐 뭐 그런 스타일의 유럽 그림들이었다.)  그림 설명으로 '도시인의 고독' '어쩌구' 뭐 이런 식이었는데,  내 눈에는 고독이고 뭐고 딱 영화 간판이구만... (그 후로 학년이 올라가면서 나는 한국미술의 이해, 동양 미술의 이해, 서양 미술사, 서양 미술의 이해등 미술 관련 교양과목들을 하나 하나 이수해 갔는데, 그 과목들을 이수한 주요 이유는, 미술대 교수들이 학점을 잘 줘서... 흐헤헤... 예술대 학생들이 주로 수강하던 과목들이었는데, 예술대 학생들은 너무나 예술 지상주의자들이라서 학점 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나는 학점에 신경을 바짝 쓰는 인문대생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예술지상주의자들 속에서 '학점'에 신경을 쓴 소수가 점수를 잘 받지 않았겠는가.  (^^)

 

내가 이 작품의 '맛'을 제대로 알아본것은 극히 최근 2년 사이의 일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미국에서 약 5년간 사는 동안에도 미국은 낯 선 땅이었다.  공부를 마치고 버지니아로 왔을때, 그래서 미국미술 박물관들을 쏘다니면서 미국미술 작품들을 두루 섭렵한 후에나 나는 왜 '미국이 낯 선 땅'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미국은 나에게만 낯 선 땅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낯 선 땅이다.  미국은 누구에게나 낯설다. 미국인에게도.

 

미국의 하이웨이를 달려보면, 차창밖에 휙휙 지나치는 풍경들은 모두 똑같아 보이면서도 동시에 모두 낯설어 보인다. 왜 모두 낯설어보일까?  그것은 도로의 폭이 넓고, 하이웨이의 폭이 넓고, 주변의 나무들이 모두 크고, 그리고 뭐든 크고 넓고 멀다. 쇼핑몰은 휑하니 크고, 진열품은 한산하다. 쇼핑몰의 주차장도 휑하다.  뭐든 크고 휑하다. 풍경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풍경이 휑하다. 작은 카메라 각도 안에 인물과 풍경이 적절히 조화롭게 들어가지를 못한다.  미국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자꾸만 zoom-in (줌-인)을 한다거나, 인물 표정 위주로 찍거나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풍경이 너무 한산하고 큼직해서 조화롭게 화면 안에 다 담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뉴욕 맨해턴'에 가면 사람 많고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뉴욕이나 시카고, LA 등 극 소수의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들이 휑하고, 썰렁하고, 도시를 제외한 지역은 사람도 많지 않고 한적하다. 맨해턴과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 웬만한 도시에서 한밤에 술한잔 걸치기도 쉽지 않다. 상점들은 저녁이면 문을 닫는다.  맥도널드가 24시간 영업을 하기도 하지만, 이런 심야 업소를 찾기는 쉽지 않다.  어딜가나 휑하고, 썰렁하고, 아스팔트가 깔려있고, 그리고 대개 한산하다.

 

이것은 나만 느끼는 현상은 아니다.  미국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실내 인테리어 전문 케이블도 보이는데, 한때 심심풀이로 집 고치는 프로를 줄 창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실내 인테리어나 혹은 정원 설계 같은, 집 관련 디자이너들이 평을 할때, 가장 자주 던지는 영어가 'detail (세심한 부분처리)'이 살아있다는 말이었다.  디테일.  내가 내린 결론 - 미국 사람들 '디테일'이라고 하면 아주 넘어가는구나. 

 

미국문화가 유럽식에 비해 신생국가이고 건물들이며 생활속의 디자인이 단순하고 소박한 편이다. 공장에서 찍어나오는 트레일러 하우스들도 많고. 대체적으로 상자모양의 멋대가리 없는 건축물들. 휑한 공간.  이런 식이다보니까, 실내나 외벽에 뭔가 오밀조밀한 장식 한가지만 붙여도 '디테일'이 산다고 노래를 부른다.

 

Nighthawks의 그림을 살펴보자.  심야의 식당이나 바처럼 보인다. 창백한 형광등 불 빛 아래, 바텐더의 흰 옷이 춥고 스산해보인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기구는 커피 내리는 기구 같아보인다. 식당용 스툴 (둥근 높은 의자)이 일곱개가 전면에 배치되어 있고, 그중 하나를 양복입은 신사가 차지하고 앉아있다.  저만치 남자, 여자 한쌍이 앉아있다. 거리는 텅 비어있고, 그야말로 쥐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는다.  식당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유리창 너머의 보도가 희게 빛난다.  PHILLIES 라는 단어가 보이고 그 옆에 시가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필리스 시가 광고같기도 하고, 식당 이름 간판같기도 하고.  이 가게의 벽에 흔한 그림한장, 메뉴 설명서 한장 붙어 있지 않다. 꽤나 썰렁하다.

 

썰렁함.  내가 체감하는 미국은 바로 그 '썰렁함'이다. 나는 이 썰렁함을 '낯설음'으로 받아들였었다.  스산함. 새로 열었다는 커다란 식당에 기대에 차서 들어갔는데, 손님도 없고 종업원도 시들하고,  그럴때가 있다.  그럴때 우리는 직감적으로 '아차, 잘 못 들어왔다. 다른데로 갈것을' 이런 느낌이 들때가  가끔 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특히나 이리저리 떠돌며 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는 이런 스산함, 휑함, 썰렁함과 익숙해지게 된다.

 

이 그림을 보면 어떤 음악이 떠오르는가? 나에게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쿨 재즈 트럽펫 연주의 낮고 음산한 음악이 떠오른다.  주인공들은 각자 상념에 잠겨 있고,  저 편에 앉아있는 남녀는 연인사이로 보이지 않는다.  좀 전에 바에서 만난 낯 선 타인들 같아보인다. 이들이 갈 곳은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이 아니고, 인근의 모텔이 될 것 같아 보인다. 이 그림속에는 '드라마' 가 있는 것 같다.  하필 이 그림이 현재 시카고 미술대 미술관에 걸려있는 관계로, 혼자 앉아 있는 양복쟁이 남자는 '시카고 갱단'의 중간 보쓰쯤이 아닐까 상상해보게 된다.  (이 그림의 본래 배경은 맨하탄이었다고 한다). 

 

평생 영화를 즐겨 본 호퍼는 그의 그림에서 영화속에서나 잡힐만한 구도의 그림들을 많이 선보였고, 또한, 영화계에서는 호퍼의 그림을 영화 속에서 다시 연출하는 일도 있었고, 호퍼와 영화는 이렇게 상호 교류하며 발전했다고 한다. 이 그림의 장면은 영화 Sting 에서 차용했다고도 하고, http://americanart.textcube.com/39  페이지에 소개된 대로 House by Railroad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역시 히치코크 감독의 작품에서 응용되었다.

 

 

몰래카메라에 잡힌 사람들

 

밤의 사무실 풍경은 특히나 '성적인' 어떤 '드라마'를 암시하는 작품으로 논의가 되는 작품이다. 여성의 성적 매력은 '가슴'과 '엉덩이'에서 두드러지는데, 그림속의 여성은  몸을 비틀어서 가슴과 엉덩이를 적절히 '관객'에게 드러내고 있다. 이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는 마치 파리의 눈과 같이 작은 몰래카메라가 이쪽 천장이나 벽의 윗쪽에 달라붙어 실내를 내려다보는 형식이다. 아니면 건물의 이쪽 벽에 창문이 있고,  이 창문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맞은편 창에서 내려다 보는 형국일지도 모른다.

 

 

 

 

 

Office at Night
1940
Oil on canvas
22 1/8 x 25 inches
Walker Art Center, Minneapolis, Minnesota

 

 

 

 

현대미술관 소장의 '밤의 창문들'에는 '훔쳐보기' 혹은 '몰래카메라'식으로 들여다보기 기법이 좀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열려진 창으로 커튼이 나부끼는데, 옷을 갈아입으려는지 여성이 짧은 드레스 혹은 속은 차림으로 구부정하게 서있다. 여자의 머리는 보이지도 않아 통통한 뒷태가 더욱 두드러진다.

 

Night Windows

1928.

Museum of Modern Art

Oil on canvas, 29 x 34" (73.7 x 86.4 cm). Gift of John Hay Whitney

 

 

에드워드 호퍼는 이런 식으로 낯선사람,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의 풍경을 많이 그렸다. 물론 Jo와 결혼 한 이후 40년이 넘도록 그가 그림 작업을 하는 동안, 그의 그림에 그려진 '모든' 여성의 모델은 그의 아내 Jo 였다.  젊은 여성이거나 늙은 여성이거나, 뒷태가 예쁜 여성이거나, 창녀이거나, 시들은 여성이거나 '모두'가 그의 아내가 모델이었으므로 호퍼가 정말로 누군가를 '훔쳐봐 가면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속에는 이렇게 '훔쳐보기' 식으로 잡은 전라의 혹은 반라의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여성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남성도, 남자와 여자도 등장한다.

 

나는 이것을 '훔쳐보기'라고 말하지만,  호퍼가 정말로 대상을 '훔쳐봤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대상'을 관찰 했을 것이다. 창문이 보이면 창문을 관찰 했을것이고, 창밖에 풍경이 보이면 풍경을 관찰 했을 것이다.  열려진 창문으로 보이는 옷벗은 여자의 뒷태를 그는 그저 관찰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 그것이 거기에 있고, 내 눈에 보이니까.  이는 마치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의 어린 내가 혼자 유원지 숲속에서 놀다가, 나무 그늘 어둠침침한 곳에서 젊은 남녀가 아랫도리만을 내리고 뭔가 자신들만의 장난을 하는 장면을 그저 심심해서 무심코 관찰하던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나는 훔쳐본것이 아니고 그냥 본 것이다. 하지만,  관찰되는 대상에게는 이것이 '훔쳐보기'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사실 호퍼의 그림에서 '훔쳐보기'적 요소를 찾아내는 것은 관객들의 몫일 것이다. 실은 우리들이 '훔쳐보기' 놀이를 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호퍼의 그림을 통해서.  호퍼는 무심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그림을 던져주고, 우리는 열심히 그림을 훔쳐본다. 훔쳐보는 우리는 영원히 그림속의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다. 그것이 훔쳐보는 이들의 운명이다.

 

 

사물에 대한 그의 애정 표현의 방식

 

호퍼는 어릴때부터 수줍음을 많이 탔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전해지며, 그의 이러한 성품은 늙어 죽을때까지도 변치 않았다. 40년넘게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그의 아내 Jo가 아마도 가장 가까운 친구였을 것이고, 그나마 호퍼가 가장 편안하게 대화 할 수 있는 존재 였을 것이다. 이들은 해로 했지만, 이들 결혼생활의 절반 이상은 싸움과 으르렁거리기 였다고도 한다.  서로 으르렁거리고 상처주면서도 헤어지지는 않았던.  내가 생각하기에 호퍼가 아내 조와 허구헌날 으르렁대면서도 헤어지지 않았던 이유는...그의 일관된 성품 때문일 것이다.  그가 죽을때까지 40년이 넘도록 서민 아파트를 떠나지 않고 살았던 바로 그런 이유로 그는 아내와 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호퍼를 만나서 별도로 인터뷰를 한 적이 없지만,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한번 정하면 그냥 끝까지 가는거다.  뭐 자질구레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좋건 싫건 끝까지 가는거다. 

 

호퍼에게는 자신만의 애정 표현 방식이 있었다.  호퍼가 아내에게는 어떤 식으로 애정 표현을 했을지 잘 모르겠으나, 그가 세상에 애정표현을 하는 방식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드러내지 않고 애정 표현을 한다. 가령 이런식이다.

 

이 그림은 '일요일 이른 아침 (Early Sunday Morning)'이라는 1930년 작품이다. 뉴욕 휘트니 미국 미술관 소장품이다. 2008년 여름에 이 작품을 보고 참 반가웠었다.  이 그림은 호퍼의 다른 작품들에서 자주 보이는  '휑하고' '썰렁한' '고립된' 듯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제목이 '일요일 이른 아침'인데, 나는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포토맥강을 건너 산책하다 보면 조지타운 거리가 나온다. 조지타운대학 인근의 거리인데 초기 미국 역사를 담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라서 나지막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곳에 토요일이나 일요일 이른아침에 산책을 나가면 길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안보인다. 적막감만이 감돈다. 그래도 그 거리를 산책하면서 쓸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게의 쇼윈도우마다 각기 다른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어 조용하고 한가로운 거리를 나 혼자 편안하게 걷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곧 이 적막한 거리가 주말 인파로 넘쳐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림속의 거리가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그가 살던 뉴욕 맨해턴의 어디쯤, 낮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어느 골목 일 것이다. 붉은 벽돌의 이층 건물. 1층에는 상점들이 있고, 2층은 주거지 일 것이다.  일층 상점들 중에서 두군데의 햇볓 가리개가 노란 색이다. 2층에는 열개의 창문이 보이는데, 그중 여섯개의 햇볕가리개가 노란색이다. 햇볕 가리개들의 높이가 제각기 다르다. 검정색 가리개도 있다. 커튼이 쳐진 곳도 있고, 창이 일부 열린 곳도 있다. 열개의 창문은 동일한 창문이면서도 커튼이나 볕가리개가 이 창문들에 각기 다른 개성을 부여한다.  이 창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개성으로 볕가리개를 올리거나 내리거나, 커튼을 치거나, 창을 열거나 했을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디테일'을 대충 무시하고 선 굵게 그림을 그린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무작정 '디테일'을 뭉개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디테일'을  선사할 줄 알았다. 그는 각기 다른 창문의 풍경만으로도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 개성, 삶의 이야기를 표현 할 줄 알았다.

 

 

Early Sunday Morning
1930
Oil on canvas
35 x 60 in.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일요일 이른 아침'이라는 작품으로 나는 에드워드 호퍼의 이야기를 마치기로 한다.  내가 이 작품을 마침표로 소개하는 이유는, 이 작품속에 그의 '개성'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행자의 시선에 무심히 스쳐 지나갈 '어느 거리'의 풍경이 될 것이다.  이 그림에는 사람 하나 등장하지 않지만, 우리는 각기 다른 창문들 속에 사람들이 여러가지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 건물은 그 자체로 '우리 읍내 (Our Town)'가 될 수도 있고, 우리는 그 속의 마을 사람 갑, 을, 병이 되어 갑자기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며 대사를 날리게 될 지도 모른다.  이 풍경은 연극의 무대가 되기도 하고, 영화의 세팅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관객은 상상속에서 무대위의 배우가 된다.  우리는 텅빈 거리를 걸으며 가게의 유리를 기웃거리거나 2층 창문 속에 어떤 이들이 있을까 상상하며 목을 빼고 열려진 커튼 너머를 유심히 살피기도 한다.  우리는 거리를 걷는다. 그러나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관객인 나 만 그 풍경을 보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어쩌면 이 햇살 가득한 텅빈 거리의 아무데나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다리 쉼을 할지도 모르겠다. 

 

풍경속에 아무도 없다.  이 풍경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최초의 어떤 사람

혹은 관객.

 

호퍼의 그림에는 '어린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어린이는 '생장' '변화'의 상징일 것이다.  영원처럼 적막한 호퍼의 풍경은 '어린이'의 무궁한 변화와 성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호퍼 그림속의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영원과 대화한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시간성을 뛰어 넘은 영원의 세계에서 이들은 숨을 쉰다.  그러므로 설령 호퍼의 그림을 보다가 내가 박제가 된다해도 슬퍼할 일은 아닐 것이다.

 

 

 

눈치 채셨는가?  이 페이지의 맨 위의 Morning Sun  창밖으로 벽돌 건물의 꼭대기가 보인다.  Nighthawks 의 이웃 건물이 낯익지 않은가?  혹은 Night Windows 의 차양이 노란색인 것이 눈에 띄지 않는가?  에드워드 호퍼가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사랑하는 방식은 이런 식이다.  말없이, 그러나 늘 화폭 한켠에 담아 두는 것.  영원처럼.   그래서, 호퍼 그림 속의 주인공들  혹은 풍경은 과거의 어떤 시점에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대로 존재하며, 미래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공감을 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을 그렸으므로. 그는 미국에서  미국을 그렸지만, 그의 그림은 미국에만 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대상의 본질에 다가 섰으므로.  사물의 본질에 국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하숙생

 

하숙생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길에

정일란 주지말자 미련일란 주지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없이 흘러서간다

 

이런 노래가 있다. 제목이 '하숙생'이다. 우리 아버지가 인생 제대하기 전에 말년에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헤어질 무렵이면 이 노래를 부르셨다고 한다. 난 이 노래의 제목이 '인생은 나그네' 혹은 '나그네'인 줄로 알았는데 제목은 노래가사에도 없는 '하숙생'이라고 한다. (하하).

 

하숙생이란 말은 '나그네'라는 말과는 느낌이 사뭇다르다. 왜 다른가하면, 나그네는 그냥 줄창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존재같고, 하숙생은 그래도 어딘가 적을 두고 살다가 때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하숙'을 하다가 또 떠나고 그럴것 같다는 말이지.  어딘가에 적을 두긴 하지만 거기가 자기 집은 아니고 그냥 남의집 한귀퉁이 빌려 살다가 때되면 떠나는 존재. 하숙생들이 먹는 음식은 하숙집이 제공하는 하숙집밥, 집 주변 함바집, 기사식당, 혹은 편의점 주먹밥, 컵라면 뭐 이런것이 아니겠는가. 하숙생들은 소지품도 많지 않고, 갖고 있는 옷도 많지 않다. 왜냐하면 이리저리 하숙을 하며 돌아다니기 때문에 늘 일정량의 물건만을 소지 할 뿐이다.  하숙생은 공동 화장실을 쓰고, 공동 수돗가에 모여서 양치질을 할 것같고, 뭐 그것이 홈, 스위트 홈이 될 수는 없는 어중간한 주거공간을 점유할 것이다.

 

자취생하면 뭐랄까 좀더 건설적이고 독립적이며, 하하, 나만의 어떤 공간 점유가 가능해보인다. 그런데 하숙생은 이도저도 아닌 묘한 상황이란 말이지.

 

 

낯가림이 심한 가겟집 아들 에드워드 호퍼

 

에드워드 호퍼는 뉴욕주의 나이액 (Nyack)에서 태어났다. 대서양에 면해있는 이 도시는 당시 요트를 많이 제작하는 곳으로도 알려져있다. 호퍼의 부모는 중산층 집안의 사람들이었고 나이액에서 상점을 운영했다.  그런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던 호퍼의 아버지는 사업수완이 좋지 못했고,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간 것으로 보인다. 호퍼는 성장하면서 아버지 가게일을 돕거나 경리직 일을 거들기도 했다. 당시 호퍼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가게는 '공산품 가게 (Dry Goods Store)'로 알려져 있다. 꽃이나 야채, 생선과 같은 생생한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주로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을 취급하는 가게였다.  오늘날에도 미국의 동네 가게를 살펴보면 크게 두종류로 나눠지는데 신선한 과일, 우유, 야채, 생선등이 취급되는 '그로서리 (grocery)' 가게가 있는가하면,  이런것을 제외한 물건들, 문구류, 생필품, 의약품,  그리고 이런곳에서 식품을 판다면 공장에서 만들어진 과자, 빵, 썩지않는 음료수 이런 것들을 주로 취급한다.

 

오늘날,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의 도시 빈민 생활문제를 사회학자들이 지적할때, 도심에 사는 빈민들이 '신선한 음식'을 사먹을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신선한 식품을 제공하는 '그로서리'에서는 식품 운송 및 보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점점 대형 회사들이 취급하게 되고, 도심의 작은 상점들은 이런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로서리'를 포기하고 '공산품'만을 취급하게 된다.  그런데 도심의 빈민들은 '자동차'도 없다. 이들이 신선한 야채를 사려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쇼핑을 가야 하는데 드문드문 오는 시내버스에 의지해서 장을 보려면 하루 온종일이 걸리고 만다. 결국 도시 빈민들은 집 근처의 공산품 가게에서 제공하는 빵, 과자, 음료수, 그리고 패스트푸드 전문점에 의지하여 생계를 해결하게 되고, 그 결과 이들의 건강이나 생계는 더욱 악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혹은 우리들이 매일 밥상에서 김치나 다른 야채를 먹을수 있다면, 우리는 하늘에 감사해야 한다. 신선한 야채를 먹고 싶어도 사먹을수도 없는 도시 빈민들도 많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경제 대국인 미국에서조차.

 

에드워드 호퍼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상점은 바로 이런 '마른 물건'만 판매하는 공산품 가게였다.  웹에서 'Dry Goods Store' 를 검색해보니 1910년 펜실베니아의 어떤 마을의 Dry Goods Store  사진이 나온다. 잠시 빌려다 소개해본다.

 

 

에드워드 호퍼의 소개 책자들을 보면, 비사교적이고 혼자 그림그리기를 즐겨했던 소년 호퍼는 아버지의 가게일을 돕는 것을 매우 따분해 했다고 한다. 나는 소년 에드워드 호퍼가 아버지의 가게에서 일을 돕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그는 사람도 별로 안오는 상점을 지키고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고, 어쩌다 손님이 와서 뭔가 물으면 마지못해 대꾸를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소년 호퍼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잠시 농토를 남의 손에 맡기고 수원으로 이사를 나와서 한길가에 가게를 열고 상회를 운영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몇해동안 상점을 착실히 운영하여 한살림을 장만한 후에 다시 귀향을 하셨다. (사업에 재능이 있는 분들이었나보다).  나는 상경한 우리 가족들과 떨어져서 수원의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1년을 보냈는데, 그 당시 나는 '원천상회' 집 아이로 통했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몰라도 좋았다. 나는 '원천상회' 아이였으므로.  한길 건너에 우리 상회보다 더 큰 상회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동네 사람들이나 인근의 유원지를 찾는 사람들, 그리고 논 건너 공장에서 일하던 직공들은 우리 상회에 들르기를 좋아했다.  우리 할머니가 사람이 싹싹하고 부지런하고, 나이가 어린 사람이나 많은 사람이나 공평하게 싹싹하게 대했으므로 사람들이 우리 할머니를 좋아 했었던 것 같다.  우리 할아버지는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나 역시, 어미 아비에게 버림받은 새새끼처럼 풀이 죽은 꼬마였으므로,  사람들 얼굴을 바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누군가가 귀엽다며 내 머리를 건드려도 성난 개처럼 으르렁거리며 도망치곤 했었다.  나는 골난 표정으로 동네 골목골목을 쏘다니며 혼자 놀았고,  나는 골목골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고 싹싹하게 인사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림자처럼 혼자 떠돌았지만, 자유롭게 사람들이 사는 풍경을 관찰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제법 어른들도 모르는 비밀스런 풍경을 구경하기도 했었다.  나는 유원지 숲에 데이트를 나온 공작 직공들이 옷을 반쯤 내리고 몸을 부딪치며 아픈듯 흐느끼는 광경을 멀거니 보기도 했고, 풀숲에서 포개져있던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내 눈에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고, 나는 판단력도 없이 이상스럽거나 우스꽝스러운 풍경들을 관찰했다.  

 

가겟방을 지키고 앉아있어야 했던 수줍은 소년 호퍼는 따분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는 길거리를 지나는 많은 사람을, 혹은 가게에서 내다보이는 맞은편 건물이나 가게들의 풍경을 세세하게 관찰 했을 것이다. 진열대에는 평생 썩지 않을 물품들이 말라가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마른 물건들로만 이루어진 공산품 가게가 평생 호퍼의 삶을 지배했을 거란 생각을 한다.

 

 

호퍼 삼락 (三樂)

 

맹자 빼갈먹고 가라사대, 선비에게 세가지 기쁨이 뭔고 하니 (1) 부모형제 건강하시고 (2) 세상에 부끄러운 일 좀 덜하고 (3) 남의자식 잘 가르치고 뭐 대략 이러한 것이다. 내가 가만 보니까, 나는 두가지는 되는데 한가지가 안되어서 제대로 된 선비질을 못하고 있다. 부모형제 건강하시고, 남의자식 열심히 가르치고, 대략 거기까지는 그럭저럭 되는데 하늘을 우러러 땅을 우러러 여러가지고 부끄러운 것이 많아... 나는 죽어도 군자가 못되겠네...

 

 

호퍼는 위의 내가 적은 '하숙생'같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다.  일단 호퍼는, 나이악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후 뉴욕으로 가서 통신과정으로 미술공부를 좀 하다가, 일러스트레이션 (삽화) 공부 도 하고, 미술학교에 정식 입문하여 당시의 대가인 Thomas Eakens, Henri 와 같은 화가 밑에서 공부하는 과정도 거친다.  (펜실베니아 미술관에서 Eatens 작품을 무더기로 사냥하여 왔으므로 언젠가 그의 페이지가 만들어질 것이다).  궁색한 형편이었지만 예술인들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파리에 가서 머물며 그곳의 분위기를 살피기도 한다.  그런데 그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화단의 인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 미술관 구경하고, 뒷골목 구경하고, 혼자 스케치하며 떠돌았다고 한다. 그는 피카소한테도 관심이 없었고,  도통 미술계 인사들과 어울리러 들지를 않았다.  그가 당시 파리를 지배하던 인상파 화풍이나 뒤를 잇는 후기인상파의 작풍을 아주 몰라라 하지는 않았으나 이런 흐름을 자신의 그림세계로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향은 받았을 수 있으나 그것이 호퍼의 그림 세계를 지배할 수는 없었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호퍼는 1920년대와 30년대를 지배하던 사실주의의 양대 사조 (1) 지역주의 Regionalism 과 (2)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Social Realism) 에도 속하지 않았는데,  지역주의는 경멸했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대해서는 다소 공감하나 자신을 그 틀에 가두려 하지 않았다. 그는 우파도 좌파도 아닌 '미술파'의 길을, 아니 미술파도 아닌 그저 '호퍼'의 길을 갔을 따름이다.

 

사십대 후반까지 호퍼는 '팔리지 않는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  그 이전까지는 그럭저럭 '삽화가'로 생계를 해결했고, 삽화의 연장으로 작업한 '에칭'판화 작업으로 판화업계의 대가가 되기는 했으나 그 역시 생계의 연장이었다. 그는 미국이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접어들던 싯점부터 오히려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미술계에 등단하여 난생처음으로 차를 사고, 그리고 매사추세츠주의 아름다운 해변 휴양도시인 Cape Cod 에 스튜디오를 장만하여 그의 '문패'를 다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도 하는데 이는 40대 후반의 일들이었다.  그 때까지 그는 그저 가난뱅이 그림쟁이였을 뿐이다.  Cape Cod의 스튜디오 외에 그들이 주로 생활한 곳은 뉴욕의 자그마한 아파트 서민용 아파트.  이곳은 방한칸, 작은 싱크대가 부착된 미니부엌이 달린 스튜디오였는데  그는 죽을 때 까지 공동 화장실, 공동 샤워시설을 사용했다.  따로 작업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두 부부가 살았으므로,  호퍼가 그림 작업을 할때면 방에 분필로 금을 그어놓고 아내 '조'가 금을 넘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Gas (1940)

Museum of Modern Art, NY

 

 

인생의 초반 50년 가까이를 가난뱅이로 살았고, 그 후에 명성을 얻고 그림이 비싸게 팔려나가 생활이 풍족한 이후에도 가난뱅이의 습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검소하게 살았던 호퍼는 주로 세가지 취미 생활에 돈을 썼다고 한다:

 

(1) 책

(2) 여행

(3) 극장

 

 

호퍼 부부는 옷을 사면 다 떨어질때까지 입었고, 호사스런 가재도구를 사 모으는데 취미가 없었다. 호퍼의 아내는 요리 따위를 즐기지도 않았다. 호퍼의 아내가 가장 즐겨 한 요리는  깡통을 따서 깡통에 담긴 음식을 밥상에 차리는 일.  그것으로 요리 끝. 즐거운 인생.  이들은 아무데서나 살 수 있는, 수십년이 지나도 변치도 않을 깡통음식을 주로 먹었고,  혹은 동네의 싸구려 음식집에서 끼니를 해결 했을 것이며, 이들이 자동차를 끌고 미국의 여기저기를 떠 돌때는 자동차를 세워놓고 아무때나 드나들수 있는 자판기 음식점 (automat), 주유소, 여관의 식당,  길거리 심야 카페등에서 그들의 주린 배를 채우면 되었을 것이다.  심심하면 극장에 가서 사람들 속에 섞여 영화를 봤을 것이고, 집에 오면 각자 상념에 잠겨 자신의 일에 몰두 했을것이다. 

 

 

호퍼의 삼락으로 내가 정리한 책, 여행, 극장 이 세가지 요소는 일관되게 호퍼의 그림 세계에 반영된다.  책읽기, 여행. 극장 구경등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이 모든것은 '관찰자'의 작업이다.  책 읽기는 외부와 내면으로의 여행이고, 여행은 실제 세상에 대한 스치는 관찰이다. 그리고 영화는 우리의 훔쳐보기 욕구를 극대화하여 충족시켜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책읽기, 여행, 영화구경은 비사교적인 사람들이 혼자서 얼마든지 즐길수 있는 놀이이기도 하다. 책읽을때 옆사람하고 종알거릴 필요 없다. 여행할때 혼자 자동차를 끌고 돌아다니다가 주유소에서 개솔린 넣고, 주유소 점방에서 아무거나 사 먹고,  길거리 모텔 아무데서나 하룻밤 자고 다시 떠나는 동안 아무하고도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 영화 볼때 옆사람하고 '회의'하면서 떠들면 주위의 눈총을 받는다. 영화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지만, 우리는 그다지 소통하지 않는다.  호퍼는 아무하고도 소통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관찰하고 이를 내면화하거나 화폭에 담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산품 가겟집 아들이었던 호퍼는 평생 공산품 가게에서 살 수 있는 깡통 음식 혹은 자판기 음식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으며 생활하면서, 가겟방 너머, 가게 유리창 너머의 세상을 내다보듯 자동차 유리 너머, 극장 화면너머의 세상을 관찰하고 훔쳐봤으며, 별로 가진것 없이 수십년간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는 작은 아파트를 주거지 삼아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다, 가볍게 우리 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를 '미국의 풍경을 그린 가장 미국적인 화가'로 꼽지만, 그는 그가 경멸했던 '미국적인 그림을 그리자는 지역주의자'도 아니었고, 사회적인 문제를 화폭에 담은 진보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말하자면 Regionalist 도, Social Realist 도 아닌 Hopperist 였던 것이니,  가장 미국적인 풍경을 그렸다는 호퍼의 그림들이 오늘날 미국 국경을 넘어서서 세상 사람들에게 마술적으로 다가간다.  우리가 오늘날 호퍼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다. 그 속에 '하숙생'과 같이 스치고 지나가는 '나'의 모습 혹은 '우리'의 모습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호퍼가 관찰 한 것은 '미국' 혹은 '미국인'이 아닌, '인간'이었던 것이다.

 

 

 

 

 

 

 

2009년 10월 9일 금요일

정지된 시간속의 여자, Cape Cod Morning (1950)

 

내가 노트북 컴퓨터를 올려놓고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 앞에는 초록 동굴같이 무성한 나무가 들여다보믄 창문이 하나 있고, 창문 옆 벽에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구입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포스터가 붙어있다.  그림의 제목은 '케이프 코드의 아침 (Cape Cod Morning). 1950년 작이다.  아침 햇살이 쨍하고 눈이 부신데, 숲가에 흰칠을 한 목조 주택이 있고, 그 안의 창가에서 한 여자가 상체를 앞으로 내민채 창밖을 내가보고 있다.  집 너머 숲은 아침 햇살을 받은 부분은 밝게 빛나지만 그 빛때문에 아래 그늘은 더욱 어두워 보인다. 여자의 눈동자도 그 숲의 그늘처럼 어둡다. 그림 가까이에 가서 들여다봐도 이여자의 표정을 읽을수가 없다.  여자는 한없이 내다보고 있기는 한데, 이 여자가 왜 여기 이런 자세로 서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무슨 뜻인가하면, 이 그림은 우리에게 어떤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여자가 그냥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다.

 

내가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이 그림 포스터를 발견한 것은 2008년 5월, 이곳을 처음 방문하던 날이었다.  뮤지엄샵에서 이 그림 포스터를 발견했을때,  이유를 알 수 없는채로 이 그림에 끌렸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 그림이 전시장에 걸려있지 않았었다. 나는 이상스럽게 나를 잡아 끄는 이 포스터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안달안달 하듯이 고민을 하다가 그냥 빈 손으로 돌아섰었다. 

 

왜냐하면...나는 이 매력적인 그림이, 무-서-웠-다.

 

왜 무서웠냐하면, 이 그림속의 여자가 '박제'처럼 보였기 때문인데, 그림에 마술적 힘이 있어서 내가 이 그림을 벽에 걸어놓고 보다보면 나도 박제가 될 것만 같아서였다.  내가 박제가 될것만 같아서.

 

올해 봄(2009)에 이곳을 다시 방문했을때,  전시장에 나와 걸려있는 원화를 만나게 되었다.  반가웠다. 원화는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큼직했고, 그림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포스터보다 훨씬 밝아보였다. 환한 아침 햇살속에 그 여자가 여전히 서 있었다.  그 날도 나는 뮤지엄 샵에서 포스터를 발견하고, 살것인가 말것인가 망설이다가 역시 빈손으로 돌아섰다.  나는 아직도 그 여자가 무서웠다.  그여자의 박제같은 풍경이 무서웠다. 쓸쓸함이나 고독감과는 다른, 기묘한 느낌이었다.

 

 

 

 

 

지난 여름, 내가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 갔을때, 나는 내가 늘 그러하듯,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이 잘 있는지 살피러 돌아다니다가 전시장의 이 여자를 다시 만났고,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눴고, 나는 이 여자가 아주 가깝게 여겨졌다. 그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이 그림의포스터를 샀다. 그리고 내 방 책상앞에 붙였다.  그날부터 나는 박제가 되어갔다.  내 시간이 서서히 정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림속의 여자처럼 매일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황혼의 저녁 햇살이 지나가며 동쪽에서 달이 떠서 밤새 내 창가를 기웃거리다가 사라질때까지 창을 내다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는 말 수가 줄어들었고,  잘 웃지 않게 되었으며, 표정이 서서히 지워져갔다.  나는 고요해졌다.

 

 

나는 때로, 저 그림을 떼어내어 박박 찢어서 쓰레기통으로 넣어버리면 내가 이 마법에서 풀려날까? 상상을 해 보지만 그대로 저 여자를 저기에 붙여 놔 두기로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각자 자신이 자신의 별이며 그 별은 주어진 운명을  정해진 그 시간에 받아들여야하며,  나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영원속에 존재하므로.  나는 한걸음 한걸음 영원의 베일속으로 가는 중이므로 새삼스럽게 박제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Cape Cod 와 관련된 일련의 그림들을 그렸다.

Cape Cod  Morning (1950)

Cape Cod Afternoon (1936)

Cape Cod Evening (1939)

 

이 외에도 그의  Cape Cod 그림은 많이 있다. 그런데 케이프 카드의 아침, 오후, 저녁 그림의 제작 년도를 살펴보면, 그는 오후, 저녁, 그리고 아침의 순서대로 그림들을 그려나갔다.  케이프 카드의 아침(1950)이 그가 완성시킨 하루의 최종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호퍼가 의도했으리라고 보지 않지만, 그의 그림들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그가 '아침'을 최종적으로 구현해 냈다는 것이다. 그는 케이프 카드의 오후-저녁-아침을 차례차례 그렸다.

 

교양 차원에서 내가 가끔 들여다보는 기독교 성서의 창세기편을 읽다보면, 내게는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웹에서 NIV 텍스트를 카피해왔다:

 

http://niv.scripturetext.com/genesis/1.htm

1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2Now the earth wasa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3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4God saw that the light was good, and he separated the light from the darkness. 5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re was evening, and there was morning—the first day.

 

3절을 보면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 하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이 보기에 빛이 좋더라, 그래서 그는 어둠으로부터 빛을 따로 떼어 놓았다.  하느님은 빛을 '날,' 이라 부르고 어둠을 '밤'이라 불렀다.  그리고나서 저녁이 오고, 그리고나서 아침이 왔다 - 그것이 첫 날 이었다.

 

정리하자면, 빛과 어둠을 분리하여 낮과 밤이 생겨났는데, 저녁이 오고 아침이 왔을때 그것이 첫 날 이었다고 한다. 나는 창세기의 이 이야기를 읽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혼자 꽤나 깊이 사색을 한 적이 있다.  저녁이 오고 아침이 오는 것은 무슨 원리인가? 우리는 대개 하루의 시작을 아침으로 정하지 않던가? 그런데 창세기는 저녁에서 아침으로 이어지는 것을 첫 날로 삼고, 그 다음날도 그러하고, 그 다음날도 그러하고...  나는 충실한 기독교인들과는 성서 이야기 하기를 저어하는 편인데, 신념에 찬 설교를 듣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점이 궁금하여 신학박사학위를 갖고 있다는 친구들에게 이 문제를 물어보면 이 겸손한 친구들은 나의 '이교도적인 냉소주의'를 잘 아는지라 깊은 설명을 생략하고, 우물거리다 지나가고 만다.

 

그러다가 나 혼자 한가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하루의 시작은 '자정'에서부터이다. 24시가 지나면 새날이 온다. 그러니까 하루의 시작은 밤이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는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그 자신 의식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는 바이블속의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듯  케이프 카드를 그의 화폭안에서 창조해냈는데, 태초에 오후가 있었고,  저녁이 왔고, 그리고 아침이 왔더라. 그 아침은 영원한 박제와 같은 아침이더라...

 

나는 박제된 아침의 시간 속에서 영원히, 창밖을 내다보고 서 있는 여자를 지켜보고 있더라.

 

Cape Cod Afternoon (1936)

Carnegie Museum of Art

 

 

 

 

 

 

Cape Cod Evening (1939)

워싱턴 국립 미술관 소장

 

 

 

Cape Cod Morning (1950)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 소장

 

 

 

 

 

 

2009년 10월 8일 목요일

[Edward Hopper] 에드워드 호퍼의 여러가지 작업들

에즈워드 호퍼는 (July 22, 1882 – May 15, 1967) 19세기말에 태어나 20세기 후반까지 85년을 살다간 미국 화가이다. 내가 가급적이면 작가들의 생몰 연대를 언급하는 이유는, 작가들의 활동과 그들이 살다간 지역사, 세계사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살다 간 동안 한국에서는 한일합방이 일어나고 삼일운동이 일어나고, 광복을 맞고, 그동안 세계사적으로는 세계 1차, 2차 대전이 지나가고, 한국에서는 육이오, 혹은 한국전쟁을 겪고, 419 혁명이 일어나고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우리 아빠 엄마가 결혼을 하고 우리 오빠가 태어나고, 언니가 태어나고...

 

85년을 살다간 이 화가에게 몇차례의 그림 매체의 변화가 있었다. 첫번째로, 그는 밥벌이를 위해 '삽화가'로 활동을 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예 삽화에 중요 도구가 되는 '에칭'기법을 스스로 익혀 '에칭' 활동을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고,  미술학교에서 만나 잠시 알던 여학생 Jo와 40대에 다시 만나게 되어 그로부터 수채화를 권유받아 수채화 활동을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다. (결국 Jo와 결혼하여 해로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 유화작업에 주력하게 된다.

 

마침 내 사진파일에 내가 '사냥'한 (나는 이를 사냥이라 부른다. 어줍지 않은 사진이지만, 내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 것들이므로) 작품들이 있어 이 세가지 매체의 작품들을 소개해본다.

 

(1) 삽화와 에칭판화 시절

(2) 수채화 시절

(3) 유화 시절

 

 

*** ***

 

 

(1) 에칭 판화: 1921년 Night Shadows (밤의 그림자).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2009년 9월 찍은 사진이다.

 

 

 

 

 

(2) 수채화: White River at Sharon (샤론의 흰 강) 1937년 작품으로 그해 9월 버몬트 (Vermont)주의 친구를 방문했을 때 그 곳의 풍경을 담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유화: 그리고, 워싱턴의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국립 미술관, 허시혼 미술관, 코코란 미술관에서 '사냥'한 작품들

 

 

스미소니안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Art) 1층에 2009년에 걸린 호퍼의 작품들. 왼편은 Cape Cod Morning. 오른편은 Ryder's House

 

 

 

 

 

 

 

 

 

국립 미술관에 걸린 Cape Cod Evening.  위에 있는 것은 케이프 코드의 아침.  아래의 작품은 같은 장소의 저녁.

 

 

 

 

코코란 미술관에 걸린 Ground Swell (1939)

 

 

 

 

음...2008년 여름에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관에서 찍은 Night Hawk 가 그의 '상징'처럼 널리 알려진 작품인데, 그 때 사진 상태가 비참하다...제대로 찍지 못했다...

 

Cape Cod Morning 이라는 작품으로 그의 작품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다음회에...)

 

 

[Edward Hopper] Alone alone all alone 쓸쓸하고 쓸쓸하여라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소장, 자화상




Edward Hopper 가 소년 시절에 습작으로 그린 바다 그림을 보면, 바다에 커다란 배가 한척 떠 있는데 그림 구석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Alone, alone, all, all alone,
Alone on a wide wide sea !

홀로, 홀로, 홀로 있다네
이 넓고 넓은 바다에 나 혼자 뿐이라네!

이것을 보고 그 부모님이 기겁을 했다고 하는데, 호퍼는 어릴때 갑자기 키가 훌쩍 커버리는 바람에 주위의 아이들과 동화를 못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혼자 그림이나 끄적이며 소일했다. 그가 어린 시절 그림 구석에 끄적여놓은 이 구절은 Samuel Taylor Coleridge 의 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 (노 수부의 노래) 에 나오는 것이다. 대개 한국 대학의 영어영문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워즈워드와 쿠어리지의 '낭만주의'를 시작으로 영문학에 입문하게 될 것이다. Coleridge 는 워즈워드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의 문을 열어제낀 시인이었다.



어린시절 쿠어리지의 시를 베껴적던 소년 에드워드가 성인이 되어 즐겨읽던 작가들이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헨리 데이비드 써로우 (Henry David Thoreau)였다고 한다.  이들은 미국의 초절주의 (transcendentalism) 철학자, 문인들이었다. 미국의 초절주의는 영국의 낭만주의 (Romanticism)와 칸트 철학을 배경으로 탄생한 철학으로  에머슨의 자기독립 (Self Reliance) 정신으로 꽃을 피우게 되는데, 에머슨의 Man is his own star (인간은 그 스스로 자신의 별이다) 라는 선언에서 보이는 '자아'를 주체로한 삶의 철학은 근대 미국의 정신적 근간이 되기도 한다.  그가 소년시절 쿠어리지의 시에서 성인이 되어 에머슨이나 써로우로 옮겨간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런 현상처럼 보인다. 그는 외톨이 소년이었고, 그러나 그는 혼자서 제발로 서기를 겁내지 않았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은 그것이 아무리 밝게 채색되어 있어도 어쩐지 스산하고 쓸쓸하다. 그런데 그 썰렁한 그림앞에 일단 서면 우리는 쉽게 발을 떼지 못한다.  무언가 음산하고 스산한 바람이 우리 귓가와 뺨을 맴돌면서 우리를 떠나지 못하게 잡는다.

에드워드 호퍼는 어린시절 습작에 써갈긴 싯귀처럼 평생, '외톨이'로 살아간 미국 화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에게는 절친한 친구들도 있었고, 결혼하여 평생 해로한 부인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외톨이'라 부른다. 그는 평생 넓고 넓은 바다를 홀로 떠돌듯 자기만의 그림 세계를 개척해나갔고, 그의 신념을 지키다 여행자처럼 지상에서 사라져버렸으므로.

그런데, 우리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스산함이나 썰렁함, 고립감을 느끼면서도 그의 그림에서 쉽게 발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공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이도 내가 느끼는 쓸쓸함을 느꼈구나. 나도 저이의 쓸쓸함을 느낀다. 우리는 공감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이런 '공감'. 누군가 슬퍼서 울고 있으면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것이 위안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쿠어리지의 고립감에 공감했고, 호퍼의 그림을 읽는 사람들은 호퍼의 고립감에 공감한다. 그 순간 만큼은 'alone, alone, all, all alone 이 '무효'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의 마술적 힘 일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세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2009년 10월 7일 수요일

Mortal, but Immortal

When a little more deliberation in the choice of their pursuit, all men would perhaps become essentially students and observers, for certainly their nature and destiny are interesting to all alike.  In accumulating property for ourselves or our posterity, in founding a family or a state, or acquiring fame even,  we are mortal; but in dealing with truth we are immortal, and need fear no change nor accident.  The oldest Egyptian or Hindoo philosopher raised a corner of the veil from the statue of the divinity; and still the trembling robe remains raised, and I gaze upon as fresh a glory as he did, since it was I in him that was then so bold, and it is he in me that now reviews the vision.  No dust has settled on that robe; no time has elapsed since that divinity was revealed.  The time which we really improve, or which is improvable, is nether past, present, nor future.

 

사람이 추구하는 바를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발견하게 되는 현상이 뭔가하면,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학생' 혹은 '관찰자'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생이나 관찰자의 속성이나 운명은 모두에게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나 후세를 위해 재산을 모은다거나, 가정 혹은 국가를 이룬다거나,  또는 개인적 명성을 얻는것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은 결국 죽고 사라질 운명이다. 하지만 진리를 대하는데 있어 우리는 영속적이며 변화나 사고를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  고대의 이집트 혹은 인도의 철인은 신의 조형물을 덮은 베일의 끝자락 일부를 들어올린바 있으며,  아직도 그 미세하게 흔들리는 베일의 끝자락은 그대로 올려진채 있다.  나는 이 들어올려진 끝자락을 통해 고대의 철학자가 보았던 그 신선하고도 영광스런 자태를 올려다본다. 고대의 철학자 속에는 그 당시 그토록이나 용감했던 나 자신이 들어있었던 것이며, 오늘날 이를 다시 살피는 이는 내 속의 그 철학자 인 것이다.  세월은 흘러갔지만 베일자락위에 먼지 한톨도 내려 앉지 않았다.  신성이 최초로 발견된 이래로 시간은 흘러가지 않았다.  우리가 향상시켜 나가는 시간은, 혹은 우리가 진보시켜 나갈수 있는 시간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것이다.

 

--Henry David Thoreau, Walden (Reading) pp.82

 

 

Edward Hopper 가 즐겨 읽은 사람들은 Ralph Waldo Emerson, Henry David Thoreau 인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삶의 태도와 이들 철학자들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Hopper 의 삶의 태도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된다.  Emerson 이나 Thoreau 에 대한 이해는 미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로 확장 될 수도 있겠다. 이들은  미국이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인 스승이며 친구들이기도 했으므로. 이들의 Self-Reliance 정신과,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 근대화가들의 성향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것으로 보이는데,  내가 어느 선까지 정리를 해야 할지 난감하여 고민을 하고 있다.

 

위로가 되는 것은, 며칠전에 집에 있는 알란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책에서 그의 '호퍼'관련 챕터을 찾아 읽어보았는데,  지금 호퍼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 된 상태에서 알란 드 보통의 글을 다시 살펴보니 그의 그 맛깔스럽고 매력적인던 글이 진부하고 상투적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참 대충 쓴 글이군.  그런데 내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매력적으로 보였군.  이런 생각도 들고,  내가 글을 너무 심각하게 쓰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사기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내 시각으로 풀어내도 될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호퍼의 개성을 정리해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 역시 알란 드 보통은 재주가 뛰어나다.)

 

 

오늘 아침 Thoreau 의 이 글이 내게 고요한 평화를 가져다 준다.  고대 이집트의 철학자속에 내가 있었단 말이지.  써로우가 하늘을 보며 감탄할때 그 속에 내가 있었단 말이지.  지금 내 속에 써로우가 있단 말이지. (재미있는 발상. 위로가 되는 발상.)

 

 

나의 관점은 이러하다:

 

Edward Hopper 는 Robert Hughes 의 설명에 의하면 Solitary Watcher (외토리 관찰자) 였다.  호퍼는 끊임없이 이리저리 떠돌면서도 평생 조그만 아파트를 자신의 거주지로 정해놓고 살 정도로 정적인 인간이기도 했다.  그가 생활이 핀 후에도 (그가 그림을 팔아 떵떵거리고 살정도로 부자가 된 후에도) 공중화장실을 써야하는 아파트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냥 눌러 산것은  그가 이런 일상적 삶의 양태에 대해서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동떨어진 관찰자였고, 그렇게 동떨어진 자세를 견지하며,  사람들 곁으로 다가섰다.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서늘하게 들어섰다. 그는 말없는 관찰자였고,  오직 그림으로서 그의 세계관을 외쳐댔다. 그는 고요했지만, 그의 고요한 그림의 울림은 미국을 흔들었다.

 

헨리 데이비드 써로우 (Henry David Thoreau)는 Edward Hopper 가 즐겨 읽던 작가였다.  써로우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 생활한다거나,  세금 내지 않겠다고 일인 시위를 벌이며 '시민 불복종'을 외치다가, 파출소 유치장 신세를 진다거나, 산속을 떠돌며 자연을 관찰하면서 외토리처럼 살았지만, 그가 남긴 글은 미국의 지식인들의 양식이 되고, 추억이 되고, 울림이 되고, 그리고 세계의 보통사람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검소하게 살다가, 궁핍하게 죽어갔으나, 그의 책은 재벌들의 금장 저택 서재에서부터 가난뱅이 학생의 찌그러진 책상에까지 파고들어 이들의 영혼의 친구가 되었다.

 

써로우나 호퍼나 서로 외토리, 외고집, 은둔자라는 면에서 일치하고, 미국이 자랑하는 '고유의 미국인'이라는 점에서도 서로 통하며, 이들이 '미국'이라는 국경을 넘어 보통사람들 곁으로 다가간것도 닮았다.

 

이들의 삶을 관찰해보면, 외고집쟁이들의 '승리'를 읽게도 되는데,  여러가지 경영관련 처세술 책, 잘 먹고 잘살자 노래부르는, 혁신을 외치는 책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밥을 혼자 먹지 말라' '사람들과 자꾸 어울려라' '사교 골프를 치지 왜 안치냐' 뭐 이따위 대단한 금언들이 무색해진다는 것이다. 혼자 자기 구멍만 파면서 동떨어져 살아도, 난놈은 나는거고, 남이 나를 알아달라고 외쳐대지 않아도, 난놈은 저절로 세상이 알아본다는 것이지. 세상에 아첨하며 살지 않아도, 인생은 굴러간다는 것이지. 하하 (또 이상한 결론.)

 

 

 

2009년 9월 11일 금요일

Edward Hopper & Alfred Hitchcock 호퍼와 히치코크

http://americanart.textcube.com/36  에 이어서  (에드워드 호퍼를 한 챕터 정리 할 생각인데, 다른 일들이 밀려 있어서, 생각나는 대로 단편만 일단 쓰다가, 나중에 종합시킬때 포함 시킬까 한다. 역시 나는 게을러.)

 

http://americanart.textcube.com/36

 

  Edward Hopper (July 22, 1882 – May 15, 1967)     Alfred Hitchcock (13 August 1899 – 29 April 1980)

 

 

 

에드워드 호퍼는 평생 검소하게 (한번 산 옷은 다 떨어질때까지) 산 사람인데, 이 자폐적일 정도로 비사교적이고 조용한 화가가 즐겨가던 곳이 영화관이었다고 한다. 1925년 그는 House by the Railroad (기찻길옆 집)을 발표했는데 1960년 Alfred Hitchcock 가 영화 Psycho (싸이코)를 제작하면서, 그 역사에 길이 남을 싸이코의 음산한 집의 디자인 이미지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빌려온다.

 

 

 

에드워드 호퍼의 House by Railroad 는 그당시 미국이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집앞에 기찻길이 생기고, 숲이 사라지고, 그렇게 살풍경이 된 것을 묘사한 것인데, 그 '살풍경,' '을씨년스러움'이 알프레스 히치코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듯 하다. 1961년에 알프레드 히치코크는 이 세팅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를 했고, 그 소식이 이제 팔순에 가까운 노화가에게 전해졌을때, 노화가는 무척 기쁜 표정이었다고 한다.  그의 평생의 취미가 '영화'감상이었는데, 그 영화속에 자신의 그림이 재연되었으니, 새삼 흐뭇했을 것이다.

 

 

fox

[퀴즈] Edward Hopper 의 두장의 그림

 

퀴즈:  위에서 왼쪽에 있는 그림은 Chicago Art Institute 에 가면 볼 수 있는 Edward Hopper 의 Night Hawks 라는 그림이고,  오른쪽은, 뉴욕 맨해턴에 있는 Whitney American Art Museum 에 가면 볼 수 있는 Early Sunday Morning 이라는 작품이다.  이 두작품의 연관성을 찾아 보시길. (물론 에드워드 호퍼가 그렸다는 것, 미국의 풍경이라는 것, 이런 공통점이 있는데, 그림을 보면 발견되는 또다른 연관성은?)

 

 

2008년 여름,  '일요일 이른 아침'은 7월에 뉴욕에서, '나이트 호크'는 8월에 시카고에서 봤는데...각기 다른 장소에서 이 그림들을 봤을땐 안보이던 것이, 화집으로 들여다보니까,  보인다...

 

에드워드 호퍼 연구 하다가 문득 발견. --f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