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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7일 화요일

평원의 겨울, 새벽 하늘

 

 

지난 주에, 나는 내 학생에게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학생의 행동이 여하하건 간에 학생을 이끄는 선생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선생에게 어떠한 사명이 있는지, 그것을 깨닫게 해 준 이가 내 학생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아마도 두고 두고 그 아름다운 얼굴을 떠올리게 될것이다. 내가 선생 직업을 갖고 있는 한.

 

오늘 나는, 다시한번 선생이란 사람들의 판단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선생이란 사람들은 줄타기 광대와 같아. 공중에서 아슬아슬 균형을 잡아야 한다.  도덕적 균형감, 정의감의 균형감에 대해서 항상 고민해야 한다.  어디까지가 정의이고 어디부터가 불의인지 늘 사색해 봐야 한다. 특히 상황이 복잡해보이고 어딘가 한반향으로 쓸려 간다는 느낌이 들때, 그럴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선생의 정의감이 무너지는 순간, 학생들은 판단의 근거를 잃게 된다.   그런데...가끔 어디까지가 정의이고 어디부터가 불의인지 그것이 분간하기 어렵다는 말이지.  애매한 경계에서 판단을 해야 할때, 그때 그것이 정의에 입각한 것임을 스스로 확신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최선의 선택이었기를 바랄뿐.

 

오늘 수업중에는 휴식 차원에서 샌델의 'Justice'에 소개되었던 예제들, 윤리적 딜레마 상황을 소개하고 학생들에게 토론을 시켜봤다.  무엇이 정의인가, 무엇이 공평한 것이고, 무엇이 타인을 진정 돕는 것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는 각기 다를 수 있다. 그들이 취하는 액션의 방향도 정 반대로 구현 될 수 있다.  어찌 되었건, 이런 고민의 과정을 토론을 통해서라도 거치다보면, 사람들은 좀더 행동이나 언어에 신중해 질지도 모른다.  그런 바램이다. Consciousness raising 효과라도 있지 않을까.  경각심.  우리 판단에 대한 경계. 혹은 철학에 기반한 사고 방법.

 

결국 학생을 잘 이끌기 위해서는, 내가 균형감을 잃지 말아야 하고, 내가 어떤 분별력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원칙이란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원칙이 눈앞에서 바로 설때, 학생들은 원칙이란 것이 존재 한다는 것을 실감할 것이므로.  원칙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가르치지도 않으면서 (심지어 원칙을 보란듯이 망가뜨리면서), 원칙에 무지한 학생의 행동을 비난하거나 경멸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행동으로 가르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지.

 

살면 살수록, 나의 행동이나 언어 행위가, 사소하지 않음을, 위중함을 발견하게 된다. 삶이 무겁다. 가볍게 사는 것이 내 목표인데, 내 삶은 더욱 무거워지고, 나는 더욱 조심스러워지고....그대신,....단단해져가는 느낌도 든다.  나는 아직도 더 자라야 하는 나무일것이다.

 

 

 

 

 

 

2010년 12월 6일 월요일

LET IT SNOW: 소니 디지털 카메라

 

 

 

내가 요새 제정신이 아닌 관계로, 소소한 실수가 많이 발견 되는데, 분명히 내가 챙긴다고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빠뜨린 아주 중요한 아이템들만 해도 * 치약  * 공식행사 정장 차림을 위한 스타킹  * 그리고 나의 분신처럼 갖고 다니던 카메라.  이런 것들을 어딘가에 팽개치고 온 것이다. (글쎄, 가방 안에 카메라 배터리 충전기까지 들어있는 마당에, 카메라를 놓고 오다니--> 이쯤되면 정신줄 놓은 것도 같고.)

 

치약은 학생이 한개 줘서 해결되었고, 오후에 저녁식사 마치고 인근 월마트에 쇼핑가서, 학생들 먹일 와인 몇병 사면서, 소니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 장만했다. 내 생애에 소니 카메라 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작고 가볍고 화면 쌈박하고, 처음 써보는 기기이지만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나중에 찬홍이나 지팔이녀석 줘야지. (난 그냥 구식 사용하면 되니까.)

 

아, 월마트 아동 셔츠 코너에 이 셔츠가 보이길래 $8, 하나 집어다 즐겁게 입고 놀고 있다.   오늘 밤엔 와인 파티를 할 것이고,  끝나면, 수업 자료를 만들다 자야 할것 같다.  학교 문제는 좋은 방향으로 수습이 되어가고 있는듯 하다. 

 

내일 아침엔 아침 하늘 사진을 찍어야지.  쌩하게 추운 공기.

 

 

* 수업 마치고, 저녁 먹기 전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부랴부랴 원고를 썼는데,  전에 내가 써두었던, 내가 무척 아끼는 글을 다듬다 말고, 내가 내 글에 감동해서 줄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나는 내가 쓴 글에도 감명을 받는다. (내 원 참...  드물어....)

 

 * 우리 학장님이 저녁 먹고 나더니, 나한테, '성질 내지 말고 그냥 가만히 계셔...' 하고 조언.  지난번에 내가 한번 성질내고 뒤집어진것을 보고 내가 또 그럴까봐 걱정 되시는 모양. (하하하).  나 꼭지 돌면 막나간다는걸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버렸는데, 누가 또... 성질을 건드리겠냐구...날씨도 춥고만... 어지간하면 나도 그냥 쓱 웃고 지나가고 말지. (다른 사람이 충심으로 조언을 하면 귀담아 듣는것이 몸에 좋다. 신중하게 일하고 돌아가겠다.)

 

 

 

 

평원의 장밋빛 아침

 

평원에서는 달도 크고, 황혼은 더욱 짙고, 아침은 향기로운 장밋빛

 

옛날에 아리조나, 뉴멕시코에 갔을때, 황혼이 붉다못해 자줏빛, 보랏빛이길래 서양화의 색감들이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정말 보랏빛 하늘도 있는거구나 했었다.

 

이 크고 아름다운 세상을 내가 내 두눈으로 보고, 그 속을 걸을수 있으니, 이렇게 살다 죽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해야 할 따름.  (카메라가 없다. 노트북 내장 카메라가 전부. 아 저 아침 노을을 제대로 찍을수가 없다니...)

 

 

 

2010년 11월 21일 일요일

A Dog's Tale by Mark Twain (어느 개 이야기)

http://classiclit.about.com/library/bl-etexts/mtwain/bl-mtwain-dog.htm

 

마크 트웨인이 어느 개를 주인공으로 쓴 단편.  웹에서도 본문을 쉽게 찾아볼수 있고, 킨들북으로도 무료로 제공된다. 킨들로 받아 읽었다.

 

이것 읽고 하도 비참하게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엇었다, 얼마전에.

 

마크 트웨인은 어떤 면에서 굉장히 우울한 사람이었을것이다.  그의 말년이 우울로 흘렀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 (자녀들을 불행하게 잃었기 때문에 그는 말년이 매우 우울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그는 냉소적이고 우울질이었던 것도 같다.  그가 유머를 잘 구사한 이유는, 그가 행복해서가 아니라, 냉소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과학에도 열정적으로 호기심을 보인 작가이긴 한데, 과학계의 인물들과 자주 교류하면서, 그가 열광하던 과학의 이면, 일부 과학자의 생명에 대한 비정함도 놓치지 않았을것이다. 이 이야기는 특히나 동물을 실험용으로 대하는 과학자의 태도에 대한 그의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만 하다.

 

그러고보면, 동물학자 혹은 동물을 실험대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도 크게 두가지로 분류를 할 수 있겠는데,

 1. 동물을 '물체'처럼 실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가진 이들

 2. 동물을 인간과 같은 '생명체'로 보고, 생명에 대한 경외와 애정을 가지고 실험에 임하는 이들.

 

아, 오늘 하이웨이를 오가면서 대략 열마리쯤 덩치 큰 사슴들이 도로변에 죽어 자빠진 것을 보았다. 대개 길 건너다가 죽은 사슴들. 이쪽 숲에서 길 건너 저쪽 숲으로 가려다가, 꽈당 부딪쳤겠지.  도대체 인간이 사슴보다 귀하다고 말할 근거가 무엇인가?  생명 가진 것은 모두 귀하고 가장 귀하고 비교 될수가 없는 것이다.

 

 

My Granny Squares 조각 뜨개 이불

 

 

2005년에서 2007년 사이에, 나는 세장의 손뜨개 담요를 만들었는데,

그때는 공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한장 한장 뜨다가, 막판에 재미가 붙어서 여러가지 모양을 만들어내고 그랬었다.  크기는 1인용 트윈 침대 이불만한것.

 

지금 보이는 것이 1호 작품인데, 당시에 큰놈이 고등학생이었던터라, "우리 지팔이 대학에 들어가면 기숙사로 갈테니 기숙사 보따리에 엄마가 손뜨개질한 이불을 넣어주마" 했었다.  그 후에 재미가 붙어서 2호 작품 (아래)을 짰고,  솜씨가 절정에 이르렀을때, 우리 엄니를 위한 특별판을 하나 만들었었다.  네모칸 안에 사람, 자동차, 새, 뭐 그런걸 짜넣어가지고 이야기가 가득 들어간 이불을 만들어서, 우리 엄니 갖다 드렸다.

 

1호 작품을 지홍이는 집에서 사용했고 기숙사에는 가지고 가지 않았다. 1호 작품은 내가 워싱턴에서 지내는 동안 겨울에 정말 잘 사용하고 있다. 얇은 담요 위에 이거 덮으면 정말 따뜻하다. 며칠전에 청소하다가 지팔이 침대위에 덮어놨던 1호를 소파위에 걸치니 의외로 집안 분위기가 아주 좋아지는거라.  (요새, Anthroplogies 나 뭐 멋쟁이들 패션몰에 가보면 이런 손뜨개질한 것으로 인테리어 장식을 하는 곳이 많다.)  그런데, 내가 작품을 살펴보니 파스텔톤으로 일치시킨 2호 작품보다, 야수파 그림을 연상시키는 1호 작품이 더 근사해보인다.  1번은 그냥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짠거고 2번은 일부러 실의 색깔을 잘 골라서 짠것인데, 우연성에서 빚어진 서툰듯한 작품이 오히려 예술성이 높아 보인다.

 

 

소파등에 걸쳐진 것이 1호

파스텔 계열의, 왕눈이가 덮고 있는것이 2호.

 

 

집에는 다채로운 색상의 저 털실 뭉치가 한바구니 가득있다. 이불 하나 더 짜도 될 분량이다... 요새 털실들이 자꾸만 나를 유혹을 하는데... 아직 손은 못 대고 있다.

 

내가 이 Granny Square 라고 미국 사람들이 부르는 모티브 짜기를 시작한 것은, 다분히 Nanny McPhee 영화의 영향때문이었을것이다.  지난 여름에 Nanny McPhee Returns 라는 후속작도 극장가서 찾아 보았지만, 몇해전의 그 내니 맥피의 '색상의 감동'을 나는 잊을수가 없다.  내니 맥피에 엄마를 잃은 아이들이 나오는데, 그 아이들의 침대가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었다. 모두, 손뜨개한 이불들이었다. 그때, 그것이 너무너무 예뻤던거라...  (나는 지금도 내니 맥피 1편 2편 디비디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색깔이 너무 예뻐서.)

 

나는 모티브 짜기 해서 조끼도 만들어 입고 싶고

모티브 짜기 해서 목도리도 만들고

모티브 짜기 해서 모자도 만들고

모티브 짜기 해서 방석도 만들고

온통 네모 네모 네모를 짜서 이리저리 연결시키면서 놀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시작을 못한다. (그거 시작하면 폐인 될까봐.)

 

이제 결전의 나날들이다.

Thanks Giving 휴가기간동안 찬홍이 어플리케이션 준비 작업을 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전에 입학신청 절차를 모두 마치고 크리스마스때 놀겠다는 야심찬 계획.  오늘도, 학교 카운슬러에게 보낼 자료를 작성해야 하는데, 찬홍이는 온종일 작업하고 있고, 나는 골치가 아파서 머리를 싸매고 앉아있다. 나도 어서 작성해서, 오늘 계획한 것을 모두 마쳐야만 한다...

 

대학원생들은 기말 프로젝트때문에 난리가 났을것이고, 나는 나대로 할일이 태산이다.  살면 살수록 더 큰 파도가 몰려오는것 같아.  그래도 학생때는 손뜨개 이불도 만들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여유도 없으니, 사는게 왜 갈수록 힘들어지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타이레놀이나 먹고, 마저 일을.

 

아, 12월 3일에는 스미소니안에서 인터뷰가 있다. 그것도 잊으면 안된다.

 

 

조각이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이렇게 야금야금 다채롭게 만들어내는 삶이, 좋더라...

 

 

2010년 11월 18일 목요일

악몽과 생리통

 

 

어제는, 아마도 내 생애 처음으로 '생리휴가'라는걸 챙긴거 같다.  그러니까, 회사다닐때 생리휴가라는것이 있어도 그걸 정말로 생리때 써먹은적은 없었다.  그냥 하루 놀자고 써먹은거지. 생리통이 심하지 않았으니까.

 

그때, 우리 부사장들이 죄다 독일인들이었는데, 하루는 나하고 일하던 부사장이, 여직원들 생리휴가 신청양식에 싸인해주다 말고 픽 웃으면서, "한국 여성들은 생리가 오락가락 하나보다, 응?"  --> 생리휴가를 정말 생리때 쓴다면 그것이 규칙적이어야 하는데, 뭐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지. (피차 알면서 뭘 그러시나?) 그 말 한 부사장도 농담이었지 심각하게 문제시 한 것은 아니었다. (생리휴가는 적법한거다. 생리통이 심각한 여성은 정말로 그것이 필요한거다.)

 

 

그러니까, 밤새 잠을 잘 못자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악몽에 시달렸는데, 그 악몽이 너무나 선명하고 구체적이었다. 가령, 우리학교 학장님, 변호사 이런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나고, 나는 괴기영화처럼 살점이 여기저기 퍽퍽 날아간 사람들을 속수무책으로 쳐다만 보고... 아침이 되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는데, 생리가 시작되었고, 아프고 어지럽고 아주 엉망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수업 없는 날이라서 그냥 하루종일 전기담요 켜놓은 침대 신세를 지기로 했다. 하루종일 침대에서 전기담요의 기운에 진땀을 내면서 책보다 자다 책보다를 반복했다.

 

 

내가 모르고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내 가족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의 전쟁을 치러간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 내 어깨가 아주 무거워진다. 어쩐지,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중 누군가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고.  나는 세상의 중심이다. 내가 기운을 차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 돌봐야만 한다. 어느 한 사람도 내 마음에서 놓아버리면 안된다. 모두 행복하게 웃을수 있게. 내가 지켜줘야 한다. 내가 지켜줘야 한다.

 

 

 

 

 

 

 

 

발발이 코트

작년 여름에 나의 막내 동서 소민이 엄마가 애들을 끌고 우리집에 민폐를 끼치러 와서 장장 한달을 우리집에서 깽판을 치다 갔는데 (^^*), 그때, 소민이 엄마 편에 내가 우리 엄니하고 언니를 위한 선물을 사서 보냈다.

 

우리 집 근처에 몇개 널려있는 큼직한 아웃렛 중에서 리스버그 쪽에 있는 아웃렛에 버버리 점이 있어서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시면 주로 그쪽으로 안내를 한다. 거기서 뭔가 사다가 한국의 가족에게 선물하면 좋아한다고 한다. 아마도 한국의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것이 이쪽 아웃렛에서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가보면, 할인매장이라도 값이 싼것이 아니라서 나를 잔뜩 주눅들게 만든다.)

 

아무튼, 우리 막내동서도 그쪽으로 쇼핑을 갔는데, 알뜰한 아낙이라 입 벌어지게 비싼 버버리 제품은 만져도 못보고 아주 저렴하고 실속있는 것들만 골라 갔다. 나도, 내것은 감히 돈 아까워서 못사는데, 그래도 우리 엄니하고 우니 언니것은 이름있는 것을 사고 싶었다 (하도 마님들이라...)

 

그래서, 그 쪄죽게 진땀나는 한 여름에 내가 산것이, 버버리 누비 반코트였다. 그것이 제철이 아니라 할인폭도 제법 컸거니와, 디자인도 애들 말로 별로인데, 내가 보니까 이동네 아주머니들이 이것 한가지씩은 꼭 있더라. 한국에서 온 부인들도 이것 한장을 꼭 사가고, 귀국하는 부인들도 이것을 한장은 꼭 사가고, 뭐 부인들의 필수 아이템인걸까?  그래가지고 내가 큰 맘먹고, 똑같은 디자인으로 싸이즈만 다른 코트 두장을 샀다.  하나는 내 몸에 딱 맞는것으로, 하나는 펑퍼짐하게 큰 것으로.  우리 언니는 나하고 체격이 일치하니까 딱맞는것으로, 엄마는 노인이시고 옷이 편안해야하니까 펑퍼짐한 것으로. (노인 분들은 몸에 끼는 옷은 불편해하신다).

 

그런데,

지난 여름에 내가 한국에 갔을때, 우리 엄니가 그 코트를 꺼내 주셨다. "니나 갖다 입어라~"

 

내가 가만 보니까 코트 여기저기에 유화 물감도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엄니가 쌀쌀한 계절에  이걸 입고 그림을 그리고 그러셨나보다.  옷이 누비라서 가볍고 따뜻하긴 한데, 엄마한테 좀 낀다고 불편하댄다. 안 입을거란다. (원래 우리 엄니는 누비옷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누비 옷을 보면 -- 엄니 말로 "뙤년"들 같다고 한다. '뙤년'이란 뭐냐하면, 옛날에 한국전 난리통에 중공군들이 쳐내려 왔는데, 그때 여자들도 있었나보다. 여자 중공군인가? 아무튼 중국인 여자들도 그때 막 쳐내려왔는데, 그 여자들이 누비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가지고, 난리가 지긋지긋했던 우리 엄니는 누비옷만봐도 신물이 났던 모양이다. 하하하.

 

어쩌면 엄마는 처음부터 저 비싼 바바리 누비 코트가 맘에 안들었을것이다. 내가 보내준거라, 그냥 좀 입는 시늉을 하다가 말았을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난 여름에 다시 회수해가지고 왔다. (저 큰거를 나보고 입으라고?)

 

내가 그냥 그것을 옷장에 걸어놓고 있다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 생각이 나서 학교 근처 한국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에 가지고 갔다.  여기저기 묻어있는 유화물감좀 지워달라하고.  그리고 "이것 품좀 줄여주실래요?"하고 물으니 세탁소 아주머니께서 나보고 한번 입어보란다. 그러더니, "엄마가 주신건데 줄이지 말고 그냥 입으세요. 엄마가 아니면 누가 그런걸 주겠어요." 이러신다.  품이 아주 크지도 않다고. 그냥 입어도 보기가 좋단다.

 

그래서 품 줄이기는 포기하고 세탁만 맡기고 왔다. (이럴줄 알았으면 내몸에 딱맞는 것을 사서 보내는건데...)

 

(*근데, 작년 여름에 그 선물을 사서 보내고, 내가 너무너무 배가 아픈거라...나도 하나 갖고 싶다 이거지. 그래가지고 내가 P씨를 끌고 발바리 매장에 가서 -- 나두 이것 하나만 사조라. 엄마하고 언니도 하나씩 있다. 이동네 부인들 이거 다 하나씩 있다. 나만 없다. 이러고 징징댔는데, 근데, P씨가 절대 안사주는거다.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다 이거다. 그래가지고는 나를 강아지처럼 끌고 다른 매장으로 가더니 비슷한거, 비슷하지만 훨씬 저렴한거 (-_-++) 그거를 골라가지고는 입어보라는거다.  그거 입어보니딱 맞았다...그래서, 내가 지난 겨울 내내 빨간 누비 자켓, 그거 잘 입긴했다..마..는... P선생, 나한테 그러는거 아니다... 그 할인매장에서, 더 할인된 가격에, 그거 하나 사달래는데... 어쨌거나... 엄니가 줬으니까 뭐...)

 

 

2010년 11월 16일 화요일

아주 오랫만에

 

 

 

 

지팔이가 용돈 부쳐달래서, 은행에 들렀다가, 은행옆 미장원을 흘낏 보니 텅텅 비었길래 들어갔더니, 대 환영 모우드.  기다릴것도 없이 곧바로 사사삭 머리 잘랐다.

 

미니 인터뷰:

 

문: 아니 왜 머리를 자르신겁니까?

답: 심심해서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뒷머리가 땋을 정도로 길었는데 문득 그게 귀챦아져서.

문: 이건 뭡니까?

답: 한마디로 70년대 스타일 '바가지 머리'라는 겁니다.

문: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셨습니까?

답: 낸들 압니까.  뒷머리 긴거 그냥 잘라내달라고 했더니 이꼴이 되었습니다.

문: 전에도 이런 스타일을 하신적이 있으신지요?

답: 옛날에 우리 엄니가 자기 멋대로 내 머리 썽둥거리고 자르던 초등시절. 그때는 '그 놈 우락부락하니 잘생겼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 내가 남자인줄 알고.)  역시 지금도 이렇게 자르고 보니 딱 인디언 남자같구나. 아비요~ 아바바바~  말이나 타고 따그닥 따그닥 ~~

문: 장차 어쩌실겁니까?

답: 다음번에는 뉴욕 패션 편집자 스타일의 정통 복고 상고단발에 도전할랍니다. 녜.

 

이상, 미니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한국의 p선생께서, 내가 뭐 머리에 불이라도 질렀을까봐 걱정이 태산이신 모양이신데, 어제 그 상태는, 사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  그 미장원에서 머리만 자르면 자기네 맘대로 막 '드라이질' 해가지고 머리를 바가지 혹은 '요강'처럼 만들어버리는  그 스타일링의 결과.

 

오늘 이 헤어스타일이 본래 내 스타일의 본질에 접근한다고 할수 있지...요...

 

 

뭐 여태까지 10년넘게 유지했던 스타일과 어떤 차이가 있냐하면,  그동안은 내가 숱이 많다는 이유로 그냥 막 '레이어'를 내서 쳐냈는데 (남자 롹 가수들처럼 길게 길게 쳐내는 스타일),  레이어 대신에 머리 숱을 다 유지하면서 *조신하게* 짧은 스타일을 해 볼까 하는 것이지...요... (*조신하게* 요것이 키 포인트!)

 

파마 한것은 아니고, 그냥 머리 감고 신경써서 잘 만져주면 자연스런 컬~이 형성되는데. (나이 먹으니까 빳빳했던 생머리가 자연스럽게 고수머리로 바뀌네....)

 

 

P선생님~  정말로 내 머리의 진상이 궁금하시면 (옆모습이나 뒷모습까지) 나한테 300 달러 송금해주면 내가 옆머리나 뒷머리도 공개해줄게. 나 300달러만 ~  (나 뭐 사고 싶은게 있는데 고것이 300달러야요 ^^*)

 

 

 

 

 

 

2010년 11월 14일 일요일

다용도 목도리

 

 

 

그러니까, 이것은 (내 얼굴을 감싸고 있는 것은) '고리 모양의 목도리'이다.

터틀넥 스웨터의 목 부분만 잘라 낸것 같은 디자인의, 머리에 뒤집어 쓰는 목도리.

작년에 미국과 한국에서 이런 '고리'모양의 목도리가 선풍적이었다. (난 처음에 이것이 아가씨들이 입는 미니스커트 혹은 쫄바지 위에 걸치는 스커트 모양의 옷인줄 알았었다.)

 

그래가지고, 작년에 (아니 올해 초에) 겨울용품 떨이 세일 들어갔을때, 하나 장만했다.

이거 추운날 목에 두르고 있으면 잘때도 벗기 힘들정도로 푸근하다.

물론 목도리로 사용할때는 이걸 그냥 목까지 내리면 되는것이고,

추운 바람 불때는 얼굴까지 가려도 된다.

 

 

나는 요놈을, 내 산책용 배낭에 항상 보관해놓고,

걸으러 나갈때 추우면 뒤집어 쓸 것이고

실컷 걷다가 어느 볕좋은 강변에 앉아서 쉴때는, 벗어서 방석으로~ 쓸 것이다.

그러니까 항상 배낭에 넣어 두어야 한다. 모자와 함께.

 

자, 가방 정리를 하는거다. 걷기 가방에 항상 넣어둘것

  1. 립밤, 미니 핸드크림
  2. 털모자
  3. 장갑
  4. 목도리
  5. 미니 디지탈 카메라
  6. 수첩과 연필

장거리 걷기 나가기 전에 추가로 챙길것 (새로 넣거나 다른 가방에서 옮길것)

  1. 간식 (얼린떡이나 과자)
  2. 물 한병
  3. 킨들
  4. 지갑 (운전면허증, 은행카드)
  5. 손전화

그러니까, 뭐든  이렇게 정리를 해 놓는거다.

 

* 우와, 창가의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말아서, 오후 햇살이 막힘없이 창가에 가득 들어온다. 덕분에 내 방이 아주 환해졌다.  겨울이되면 하늘이 모두 벗겨지고 말아, 햇님과 더 친해질수 있다.

 

 

Burt's Bees: Lip Balm

Burt's Bees Pomegranate Lip Balm Tube, .15-Ounce Tubes (Pack of 4)

 

집에 이것 하나가 있어서 (찬홍이한테 그로서리 가는 길에 사다 달라고 했다 -_-), 요 며칠 이걸 아주 잘 쓰고 있다.  마침내는 이것을 내 삶의 중요 '거점'에 하나씩 비치해놓고 아무때나 손을 뻗어 사용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아마존을 검색해보니, 마침 내가 네개가 더 필요한데, 네개 한 팩을 판매를 하는것이 보이길래, 신청 단추 꾸욱~  (프라임, 무료 배송)

 

우리 일상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들은 이렇게, 사소한 것들이다.

 

 

[Video] Potomac November Morning

 

 

포토맥의 아침안개가 수멀거리고 올라가는 풍경을 담아보고 싶었는데,

내 육안에 보이는 것 만큼은 안잡힌다.

사람의 눈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 고안품인가.

이 안개는, 특히나 포토맥의 강안개에 '환장'을 하시던

우리 '마님'한테 드린다. (인심썼으....)

 

 

 

 

 

내가 우리 '마님'이 보내주신 책을 읽고 며칠 사색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 몇가지.

 

하나.

 

내가 틈만 나면 아름다운 포토맥 강으로 달려나가 산책을 하고 있는데

이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내가 내 손으로 지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나는 그냥 주어진 것을 향유만 하고 있더라.

이미 내게 모든것이 주어진 것이더라.

 

둘,

 

그래서 돌아보니, 내가 이 세상에 와서 내 손으로 지어낸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

내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줬는가? 자문해보니 아닌것 같더라.

내가 남을 위해 봉사했는가? 그것도 아닌것 같더라.

나는 이미 주어진것에 대하여 무슨 보답이라도 했는가?

아니, 나는 오늘도 열심히 쓰레기를 배출시키며 이미 있는것을 망가뜨리고 있다...

 

이거 심각하군...

 

그래서 결론은: 최소한 내게 무상으로 주어진, 이미 완벽하게 다듬어져서 내게 주어진 선물에 대해서 매일 매일 감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감사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지...나 손끝하나 까딱 한게 없는데, 여기 땅이 있고, 여기 물이 있고, 여기 하늘이 있고, 여기 먹을것이 있고. 그러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머리를 땅에 부딪치고 감사해야 계산이 맞는거다.

 

 

 

 

 

 

 

2010년 11월 10일 수요일

산삼보다 신통한

 

 

펼쳐두기..

 

 

 

2010년 11월 8일 월요일

빨래 건조대

여태 바깥 베란다에 세워놨던 빨래 건조대를 거실로 들여놨다.

이거 아마 내년 3월까지 거실에 뻗치고 서 있을 것이다.

실내 공기가 건조한것 같아서, 이제 들여놓고 빨래를 말려야.

 

밤에 자기전에 수건 두어장하고, 속옷, 양말 이런거 빨아 널고 자면 가습기 역할 하고 좋을것이다.

 

이 빨래 건조대는 20년 묵은 것이다. 우리 지팔이 아기때 기저귀 건조대로 산거니까.

사실 세우는 장치가 너무 낡아서 망가져가지고, 내가 철사로 칭칭 묶어서 세워놓았는데

철사로 묶어 놓았기때문에 접을수가 없지만 (접이식인데)

세워놓고 사용하는데는 아무 문제 없다.

 

(그러고보니, 이 아파트에 이사한후, 빨래를 바깥 햇볕 좋은곳에서 말렸고

이제는 거실에 들여놓고 빨래를 말리는고로, 여태 건조기는 한번도 안썼다.

앞으로도 쓸일이 없을것이다. 전기 절약도 되고...)

 

 

 

 

 

아주 사소한 것이 아주 소중하기도 하지

 

 

어제 내가 달인 대추차를 오늘 뜨겁게 덥혀서 보온컵에 담아왔다. 이 보온컵은 한국의 무슨 증권회사에서  고객들에게 살포한 것인데 (컵에 증권회사. 지점, 전화번호가 아주 진하게 찍혀있다), 한국집에서 세월 보내다가 전에 한국 짐 올때 묻어온것이다. 지난 몇년간 사계절 잘 쓰고 있다.  미국의 텀블러는 보온성도 없고, 밀폐성도 없고, 그냥 승용차에서 조금 안전하게 음료를 보관하는 기능만 한다.  이것은 보온성 확실하고 -- 당연히 밀폐성도 높은 보온 컵이다 (사이즈는 미국식 텀블러만하다).

 

특히 장거리 자동차 여행할때, 이 보온컵에 아이스티나 뜨거운 생강차 이런거 담아가면 온종일 놀다가 밤에 열어서 먹어도 그 냉기나 온기가 그대로 유지된것을 확인할수 있다.  대단하신 보온병이다. (중국산이지만 잘 만들었다).

 

그런데, 보온병 얘기하려는게 아니라,

보온병을 감싸고 있는 저 자주색 '코지(cozy)'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거다.

사실 이것은 내가 작년에 크리스마스 세일기간 지나고, 조지타운 반즈앤노블에서 덤핑세일할때 샀던 텀블러컵을 감싸고 있던 것이었다.  난 이 털스웨터같은 컵감싸개가 맘에 들어서 그걸 꽤 싸게 장만했다.  그리고는 어디 갈때나 그걸 차에 싣고, 들고 다녔다. 손으로 잡으면 포근하고, 예쁘고.

 

그런데, P선생은 이걸 굉장히 싫어했다.  귀챦다는거다.  왜 그가 귀챦아했냐하면, P선생이 설겆이를 자주 했는데, 내가 이거 부엌에 내 놓으면 컵에서 감싸개 벗긴후에 컵을 닦고, 그리고나서 다시 컵에 옷을 입혀주는 과정이 아주 번거로웠던거다.  그러니까 그 쓸데없는것을, 귀챦은 것을 왜 꼭 그렇게 감싸고 다니냐는거다.  그래가지고 P선생은 "이놈의것 치워버려!" 이러고 투덜투덜거리곤 했다. 

 

추운 겨울에 내가 아침 일찍 출근할때면, 고구마를 렌지에 굽고, 보온컵에 뜨거운 생강차를 담아서 내 점심으로 싸주곤 했는데, 내가 '고맙다'는 인사도 안하고, "내 컵! 컵데기 어디갔어? 내 컵 껍데기 어디다 갖다 버렸어? 빨리 찾아내!" 이러고 신경질을 부렸기 때문에, 그는 이걸 더 증오했다. ㅎㅎㅎ.

 

나의 이 '껍데기'에 대한 사랑이 정도를 넘어서면서, 컵을 바꿀때도 이 자주색 껍데기를 고수를 했던 것이니....  나는 가끔가다가 우리집에 쌓여있는 털실을 꺼내어 이렇게 예쁜 껍데기를 몇개 더 짤까 생각만하다가 그만둔다.  될수있는대로 일을 벌이지 않고, 있는거 갖고 마르고 닳도록 쓴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

 

오늘같이 쌀쌀한 아침에, 이걸 들으면 얼마나 따뜻한데.

 

 

 

 

새 은행카드

 

 

아침 출근길에, 은행에 들러서 카드 새로 발급 받아왔다. 놀랍게도 '핑크색' 카드였다!  그래가지고, 그 카드를 주는 은행원 앞에서 -- 좋아서 입이 찢어졌다. ;)    아마.... 카드 이쁜거 받았다고 고객이 좋아 죽으면, 그 은행원도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  (잃어버리길 잘했어!  전에 그 카드 생긴거부터 맘에 안들었다니깐!  ...아니 그러면 안되지. 그래도 몇년간 내 삶의 벗이 되어왔던 고마운 카드인데.... 미안미안. 너를 잃어버려서 미안해. 넌 아마 리버벤드 파크 어느 낙엽속에 있겠지. 거기서 매일 파란 하늘을 보라구....)

 

 

 

2010년 11월 7일 일요일

겨울, 나의 '껍데기'

 

겨울이다.

춥다.

결국 올해도 겨울은 오고야 만 것이다.

 

내가 빈둥빈둥 노는것 같지만, 사실 하루하루 괴롭다. 일이 밀려서 그렇다. 당장 겨울학기 언라인코스 두가지를 짜서 보드에 올려 놓아야 하는 일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불기없는 방, 책상에 붙어서 일하다보면 뜨거운 커피가 정말 '고마운' 존재가 되고, 실내에서 손이 시리고 곱아진다.

 

결국 워싱턴 생활중, 내가 가장 '장 시간' 입은 이 겨울 잠바를 꺼내 입고 일하고 있다.

이건, 우리 식구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 사실 '옷'이 아니다.

그냥 나의 부가적인 가죽이며, 껍데기이며, 겨울에만 발생하는 제 2의 피부 같은 것이다.

 

이 옷에는 어떤 마력이 있다.

일단 한번 입기 시작하면, 절대, 절대, 절대, 죽어서 관속에 들어가도, 벗을수 없다.

이 옷은 눈이 녹았다 얼었다 녹았다는 반복하고, 창밖에 개나리가 피고지고, 마침내 벚꽃이 피어날때까지 나의 '가죽' 노릇을 하면서 때에 절어 팔부리가 반질반질해 질 때까지 내 몸에 착 붙어있을 것이다.

 

내가 천하에 왕소금을 켜켜이 쌓아놓고 사는 왕짠순이라서, 난방비라면 벌벌 떤다. 차라리 추위에 벌벌 떨고 말지 난방비로 금쪽같은 내 돈을 훨훨 태울수는 없는일.  추우면 껴입으면 되는거다. 그래도 추운가? 더 껴입는거다. 그래도 추운가? 이불 뒤집어쓰는거다. 그래도 추운가? 나가서 운동하고 오는거다. 돈을 아껴야 한다.  (그돈 아껴서 뭐할려구? ----> 명품가방 살려고~  오오 할렐루야~~~ 하하하 : 너무나 추위에 떨다보면 이런 환각증세가 밀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겨울에 카페트 깔린 실내에서 얼어죽었다는 사람 못봤다.)

 

농담하니까 몸이 따뜻해진다.

다시 일이나 하자

(이럴때는 내 노트북에서 나오는 열기도 참 고맙고 사랑스럽다.)

 

아아, 나는 그래도 괜챦다. 일단 학교에 가면 난방 잘 되는 따뜻한곳에서 온종일 지내니까. :)

 

 

Tree at my window, window tree

2010년 11월 7일 일요일 정오.

내 책상에서 내다보이는 창밖의 나무

 

 

 

 

 

문득, 생각이 났는데

내년 11월에 나는 이 창가에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아파트는 1년 계약을 했고

내년 11월에 나는 이 집에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 있거나

아니면 내년 11월에 나는 한국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창밖에 빛나는 노란, 붉은 단풍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나하고는 마지막으로 서로 손짓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 지난 여름 내내 내 창가에서 나를 위로해줘서 고맙다

내 창가를 황금빛으로 물들여줘서 고맙다.

사진으로라도 찍어 놓고 가끔 추억하마.

 

오늘 날씨, 천국처럼 눈부시다.

 

 

대추차 끓였다

 

 

 

냉동실에, 차례지내거나 제사지내고 보관된 대추가 봉지봉지 있길래, 아침에, 산책 나가기 전에 그 놈들을 씻어가지고, 커다란 솥단지에 담고 물 그득 채워서 화덕에 올렸다.  금새 바글바글 끓길래, 불을 아주 약하게 맞춰놓고 나갔다 왔다. 두시간 반 가까이 혼자 화덕에서 약한 불에 끓고 있던 대추솥.

 

국자로 물을 떠 먹어보니 아주 곱게 고아져서 맑은 물인데도 대추향기와 맛이 진했다. (제대로 됐군.)

 

체바구니로 대추를 걸러내고 (껍질과 씨앗만 남게 된다) 나머지는 걸쭉한 액체가 되어 유리 용기에 담겨졌다.  한컵 담아 먹어보니 뜨끈하고, 달콤하고... 밖에 다녀와서 배고프고 춥고 그런데 온몸이 후끈해진다.

 

유리병에 잘 보관해놓고 며칠 아침 저녁으로 데워 먹으면 되겠다. 진짜 대추차. 꿀이나 설탕을 가미하지 않아도 달고 기름지다.

 

 

 

 

 

카드분실

아침에 Riverbend Park 에 산책 나갈때 운전면허증과 은행카드를 잠바 주머니에 넣고 가뿐하게 나갔는데 (지갑이나 가방, 배낭 이런것 귀챦아서), 다니다가 주머니에서 은행카드가 빠진 모양이다. 호주머니가 작고, 좀 불안불안해서 내가 수시로 주머니속의 카드 두장을 확인했었는데, 약 10분전에도 분명 손안에 카드 두장이 잡혔었는데, 하나가 없어진거다.  그래도 다행이지 은행카드 분실이니... 운전면허증 분실하면 기분나쁜 DMV에 가야하고, 짜증나쟎아... (ㅎㅎㅎ)

 

집에 와서 언라인으로 분실신고 번호 알아내서 전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한시름.

 

그 카드 원래 만기도 되어오고 낡고 그래서 가끔 카드가 안 읽힐때도 있었고, 어차피 새걸로 바꾸고 싶었는데, 뭐, 이참에 새것으로.  (실수해놓고도 좋대요....아이구야 태평족아.)

 

다음부터는 절대 맨주머니에 카드 갖고 다니는 짓은 말아야겠다. 귀챦아도 반드시 지갑에 넣어서 가방에 담아서 갖고 다니고...그게 정 귀챦으면 자동차 안전한 곳에 놓아두고 산책을 하는 방법도 있겠다. (아니 그래도 내 몸에 소지하는게 안전하겠지. 귀챦아도 배낭을.) 좋은거 한가지 배웠다.

 

 

2010년 11월 6일 토요일

SAT-2, 외국어 시험장에 갖고 가야 할 도구들

미국이 초 강대국이고 선진국이지만, 가끔 아주 의외의 현상을 발견 할 때도 있다.

대학 입학을 위한 SAT 시험에서 과목별로 치는 외국어 시험, 그 외국어 시험을 치르는 학생은, 시험장에 갈때 CD 플레이어와 해드폰을 갖고 가야 한다. 

 

외국어시험은 학생에 따라서 각자 상이한 언어를 신청하여 시험을 치는데, 가령 똑같은 시험장에 앉아서 아무개는 독일어 시험을 치고, 또 아무개는 한국어 시험을 치르고, 제각각 자신이 선택한 외국어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그리고 외국어 시험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듣기 평가가 있으니, 듣기 평가 하려면 오디오 시설이 있어야 하는데, 학교에 그런 비슷한 시설도 없고, 랭기지 랩도 없고.  그러니까, 시험 치는 학생들이 각자 시디 플레이어를 갖고 와야한다. 남한테 방해되면 안되니까 헤드폰도.

 

그것도 반드시 시디 플레이어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외국어 듣기 평가가 시디에 담겨져 있으니까.

 

우리집에서는 지홍이가 4년쯤 전에- 탈라하시에 살때 외국어 시험을 친 적이 있었다.  그때 애가 멋모르고 시험장에 갔다가, 시디 플레이어를 지참해야 한다는 말에 혼비백산을 해가지고 부랴부랴 다시 집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시험장이 내가 다니던 주립대에 있어서, 내가 쌩하니 왔다리 갔다리해서 해결할수 있었다.)

 

4년이 흘러 이번엔 찬홍이 차례가 되었고 (지팔이 놈은 외국어 시험을 11학년때 해결했는데, 찬홍이가 12학년 막바지에 하면서 이런 시간의 격차가 생겼다.)  역시 찬홍이도 지팔이놈이 끌고 갔던 그 시디 플레이어를 갖고....시험을 치러 갔다.

 

 

그런데, 지팔이와 찬홍이가 끌고 간 그 시디플레이어가 뭐냐...하면...우리집 왕땡이만한, 왕따시 커다란 붐박스다.  하하하.  우리집에는 휴대용 시디플레이어가 그때나 지금이나 없고, 요즘은 그거 휴대용 사기도 힘들걸. 죄다 MP3 로 음악 듣는 시대니까.  아무튼, 오늘 찬홍이는 그 왕땡이만한 붐박스 (음악전용 라디오, 시디플레이어)를 '안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시험 마치고 나온 찬홍이에게 : "야야, 너처럼 큰거 같고 온 애 또 있었니?" 하고 물어보니, 찬홍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하하. 다들 조그만 휴대용 기기를 갖고 왔다는 것이다.  어떤 애는 포장도 안뜯은 휴대용 시디 플레이어를 갖고 와서 시험장에서 뜯어서 쓰더라고. 하하하.  찬홍이, 완전 돌쇠 같이 보였겠다.  왕따시 커다란 라디오를 끌고 온 '이상한 애.'

 

그런데

그 와중에 찬홍이가 선행을 한 것이 밝혀졌다.  어떤 애가 시험 시작하기 전에 사색이 되었는데, 헤드폰이 말썽이었다고 한다. 시디 플레이어와 헤드폰을 갖고 왔는데, 그 애의 헤드폰은 완전 음향전문가들이 쓰는 어마어마한 헤드폰. 그런데, 그 헤드폰을 시디에 꽂아야 하는데 서로 안맞는거다. 꽂을수가 없는거다. 난리가 난거다.  마침 찬홍이가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사이즈가 다른 기기들을 연결해주는 어댑터가 손에 잡히길래, 그 어댑터를 건네주어 그 왕따시 헤드폰을 갖고와서 찔찔매던 아이도 시험을 무사히 치렀다고.

 

찬홍이는 그러면 왜 그런것을 호주머니에 갖고 다녔을까? 

찬홍이는 음향분야에 흥미가 많아서 호주머니에 음향 관련 여러가지 소품들을 늘 갖고 다닌다고 한다. (이상한 애야...)

 

아무튼,

찬홍이 픽업하러 가보니, 학교 현관에서 기다리다 나오는 찬홍이 등에 학교 가방. 찬홍이 두 팔에 왕눈이만한 라디오.  아주 혼자 봐주기 아까운 장면이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