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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31일 목요일

Regionalism (5) : Thomas Hart Benton, 불굴의 신화가 꿈틀대는 나라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 박물관 2층 전시실. Thomas Hart Benton (1889-1971)의 벽화가 걸려 있는 곳입니다 (오른쪽 벽).  2009년의 마지막 날, 그리고 2010년을 시작하는 이 시간을 헤라클레스와 아킬로스의 신화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도 좋을 것 같아서 선정해 봤습니다.  길이가 7미터 가까이 되고 그림의 높이는 대략 160 센티 (여성들 보통 키 정도 되겠군요) 되는 그림입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고, 건강하고 힘찬 벽화인데요.

 

이 그림의 제목은 '헤라클레스'와 '애킬로스'입니다. 캔자스 시티의 한 백화점을 장식한 벽화였다고 합니다.

 

 

 

Archelous and Hercules  (1947)

671x159.6 cm (길이 6.7 미터x 높이 1.6 미터)

Tempera and Oil on Canvas mounted on Plywood.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그림의 중심이 되는 것은 커다란 황소의 뿔을 쥐려고 대적하는 사나이. 황소는 정확히 적을 노려보고 있는데 사나이는 등을 보이고 있어 표정을 알 수 없으나, 그의 팔과 등의 근육이 이 남자의 표정을 읽게 해 줍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천하 장사로 알려져 있지요. 아킬로스는 '강'의 신이라고 합니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강의신 아에킬로스가 헤라클레스와 싸우던 장면을 이야기 해 주는데요, 헤라클레스와 씨름하다가 뱀으로 변하기도 하고, 황소로 변하기도 했는데 도무지 헤라클레스를 이기지 못했다고 술회 합니다. 헤라클레스가 '강의 신'과 대적하여 이겼다는 신화는 '자연'과 인간이 대적하여 인간이 자연을 '극복'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해주지요 (참고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영웅입니다.)

 

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가 황소로 변한 강의 신 아킬로스의 한쪽 뿔을 뽑아서 상대를 제압했다고 합니다. 그 뿔은 서양 문화에서 '풍요'의 상징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이 있지만, 쇠뿔 자체는 큰 상징적 의미가 없지요. 그리스 신화에서 소로 둔갑한 강의 신의 뿔을 뽑아냈다는 말은 강이 제공해주는 풍요를 얻어 냈다는 상징을 갖게 됩니다.)

 

   *  참고로, 영문 표현중에 Take the bull by the horns 가 있지요. 쇠 뿔을  단단히 잡아라. 소와 씨름하려면 소와 정면으로 서서 소의 두 뿔을 단단히 잡아야 하죠. 결국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서양에서도 '소'가 그리스 신화때부터 존재하던 짐승이었으므로 소와 관련된 우화나 속담이 많군요. (영어선생 제버릇 개 못줍니다. 꼭 티를 내죠 ^^)

 

그렇다면 이 그림에서 강의신 아킬로스는 황소이고, 이 황소와 대적하는 사람들 (여러사람이 그 황소를 잡기 위해 그림속에 등장하지요)이 헤라클레스가 되겠는데요, 벤튼은 이 그림으로 무엇을 전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미조리주에서 공공건설의 일환으로 미주리강 개발 사업이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평원지대에 가뭄이 들어 흙먼지가 날리면 농작물들이 말라죽고 땅이 불모지가 되는가하면 반대로 홍수의 피해를 겪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군부대가 동원되어 댐도 만들고 수로도 만들고 둑도 쌓는 등의 강 개발이 사회주의사상을 가졌었고, 공공미술 벽화작업이 활발했던 벤튼에게 영감을 주었던것 같습니다.  신화속에서처럼 인간이 강을  길들여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했겠지요. 

 

 

 

 

 

저 옆에 여성 두명과 소년 하나가 앉아있거나 서 있는 흰 구조물이 보이시지요?  뿔이죠. 쇠뿔.  그 쇠뿔에서 과일과 곡식이 흘러 넘치고 있지요. 강을 잘 운영할때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풍요이지요.  그러고보면 여성이 들고 있는 빨간마후라도 뿔 모양이고요, 소년이 들고 있는 나발도 뿔 모양입니다.  (또 여기서 상상력을 발휘해보니, 여성신체의 여성기관중에 '나팔관'이라는 기관도 있지요. 그 나팔관도 뿔 모양이지요...여성의 돌출된 두개의 유방도 두개의 돌출된 뿔처럼 보입니다. 이쯤되면 세상 만물이 뿔처럼 보인다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되지요...하하하....)

 

 

 

 

 

소와 씨름하는 사나이들이 있는가하면,  한쪽에서는 수확을 하는 농민, 멀리 농장에서 '영농기계화'의 상징같은 농기계도 보입니다. 강을 잘 다스렸을때 우리에게 다가올 풍요를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러고보면, 사나이가 황소와 씨름하는 것을 중심으로, 그림의 왼편은 '황소와의 씨름'에, 그림의 오른편은 '다가올 풍요'가 그려진 것 같습니다.

 

 

 

 

자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저와 함께 시선을 이동시키는 겁니다.) 여기 그려진 사과를 보십시오. 사과며 다른 과일의 형태가 어떤가요?  사과가 오목볼록거울에 비쳐진듯 꾸불구불 하지요? 구불구불~~ 처음부터 사나이들의 등근육이며 모든것이 구불텅구불텅 구불구불 휘어졌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심지어 사과마저 어디론가 빨려들어갈듯 휘어져 있습니다.  왜 이 그림속의 대상들은 빨려들어갈듯 휘어져 있는것처럼 보일까요?  왜 벤튼은 대상을 이런식으로 휘어지게 그렸을까요?

 

 

 

 

왜 모든것이 휘어져보이나?

 

벤튼은 살아있는 것들이 에너지가 넘쳐서 움직인다고 믿었던 걸까요? 사나이들의 등근육이나 소의 근육처럼 가시적인 '삶의 근육'뿐 아니라, '생의 에너지'가 갖는 움직임을 정체를 파악했던 것일까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근육'을 부여한 것일까요?  아, 마치 숨은그림 찾기 하듯, 뿔처럼 보이는 당근 무더기가 보이는군요.

 

 

 

소의 눈이 보이십니까? Bull's eye 이지요. Bull's eys 라고 하면, '과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소의눈을 연상시키는 것들이  소 곁에 또 있군요. 나무 둥치의 둥근 나이테도 소의눈을 연상시키고, 남자가 벗어놓은 모자역시 뿔을 닮은 소의 눈처럼 보입니다.

 

그림 전체에 흐르는 휘어짐, 구부러짐은 삶에 흐르는 에너지의 흐름같이 보이기도 하고, 그대로 휘어저 굽이쳐 흐르는 생명의 상징인 강물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씨름이 있습니다.

 

지난 2009년은 제게는 죽음의 강을 건너듯 아주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기쁨도 컸고, 슬픔도 컸으며, 과장된 절망감이나 우울감사이로도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주었습니다. 다가오는 한해동안 제가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줄을 서있고, 그것들을 하나 하나 해결하다보면 한 해가 또 지나갈 것 같습니다.  소와 씨름하듯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소와 씨름할 더 많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생의 에너지가 남아있는 그 날까지 씨름은 계속 될것입니다. 

 

쇠뿔을 거머쥐고 '돌아온 헤라클레스'처럼 환하게 웃는 그런 날이 올테니까요.

 

복된 2010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p.s. 헤라클레스는 소의 뿔을 하나만 뽑았습니다. 두개 다 뽑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얻고 하나는 양보하는 것이지요. 서로 화합하는 방법입니다.  불핀치의 그리스 신화에서 뿔을 뽑힌 강의신 아에킬로스는 헤라클레스를 원망하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힘센 영웅인지 이야기를 합니다.  이들은 서로 반목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참고: http://classiclit.about.com/library/bl-etexts/tbulfinch/bl-tbulfinch-age-23-achelous.htm  불핀치의 신화중 아켈로스와 헤라클레스

 

 

2009년 12월 31일 RedFox

 

 

 

 

 

 

2010년 1월 31일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관에서 촬영

 

 

2009년 9월 21일 월요일

[PSAP3] 이발소에서 In the Barber Shop (1934)

In the Barber Shop (1934)

Ilya Bolotowsky

Born: St. Petersburg, Russia 1907 Died: New York, New York 1981

oil on canvas 23 7/8 x 30 1/8 in. (60.6 x 76.5 cm.)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Transfer from the U.S. Department of Labor 1964.1.79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1st Floor, West Wing

(사진 클릭 두번하면 큰 화면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전편(http://americanart.textcube.com/67)에 이어서, 역시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미국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젬고은 '이발소에서.'  러시아 태생의 이민자였던 화가 일리야 볼로소스키는 뉴욕의 이발소 풍경속에, 이민자들의 나라, 이민자들이 어울려서 만들어가는 국가라는 미국의 정체성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는 실제로 자신의 주변인물들을 섭외하여 뉴욕시의 어느 이발소를 실제 배경으로 작업을 했다.  이발사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이발사가 면도를 해주고 있는 손님은 그리스계 이민자, 그리고 오른쪽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각자 각자 상념에 잠긴 두 남자는 아일랜드계 이민자들.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은 러시아계 이민자.

 

이발소는 아주 작아 보인다. 이발용 의자 두개, 기다리거나 노닥거리는 손님을 위한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개,  그리고 저쪽 구석에는 금전등록기가 보이고, 그 벽위로 보이는 것은 볼록 거울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오른쪽 구석에는 옷과 모자를 걸어놓는 걸개가 보이는데 남성 웃저고리 두장이 각기 걸려있고, 역시 남성 모자 세개가 보인다. 하단 오른편에 비스듬하게 세워진 흰색 물체는 난방기가 아닐까?  그림의 왼쪽 벽면은 유리창으로 보인다. 유리창의 아랫부분은 짧은 부분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데, 이발하는 손님을 살짝 가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가운데 햇살이 밝은 곳에 화분을 놓았다.  오른편 벽면은 거울일까?  나름 생각해보았으나, 거울이라면 맞은편이 투영되어야 하는데 비쳐지는 것이 없는것으로 보아 그냥 '이발소 그림'이라 일컬어질만한 그림이 걸려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시전을 서서히 잡아 끄는 것은 정면 벽.  커다란 거울이 설치된 벽면 속에 작은 거울이 비치고 그 비쳐진 거울 속으로 무수히 반복 반사되는 사물들. 그 끝점이 어디가 될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거울은 끝없이 동일한 이미지를 반사하게 될 테니까, 소실점에 이를때까지. 무한반복되며 멀어지는 거울속의 영상이 이 그림에 입체감을 더 해주면서 일종의 신비감까지 자아낸다.

 

 

 

내가 어릴때, 시골집에 살때, 우리 엄마의 방에는 앉은뱅이 경대가 있었는데, 가운데에 큰 거울이 있고, 양쪽 날개 부분에도 거울이 있었다. 그리고 양쪽 날개 부분에는 경첩이 달려 있어서 문을 열고 닫듯이 각도 조절이 가능했다.  심심할때 엄마 거울 앞에 앉아서 그 양쪽 날개 거울 부분을 조금씩 각도를 달리해 보면 거울속에 내가 아주 많아졌다.  그러니까, 장난감도 없고 별다른 놀거리도 없는 단조로운 나날 속에서, 들판으로 쏘다니거나 개, 닭들과 심심풀이를 하다가 외양간의 소한테 혼이 나가지고 시무룩해져서 엄마의 방으로 오면, 거기 거울속의 한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거울속에 마주보이는 아이와 노닥거리고 놀지만, 심심해지면 거울 날개를 움직여 내 옆모습도 보고, 옆모습 뒤에 무한반복 재생되는 나하고 똑같은 애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무한 반복되는 나의 끝은 어디일까 아무리 아무리 들여다봐도 끝이 안나는거라.  한참동안 그 끝을 찾아 거울속을 들여다보면 때로 무서운 생각도 들었는데, 어쩐지 내가 깊은 우물속에 빠진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많은 아이들 중에서 나는 어디 있는걸까?  이런 의문도 들고 마는 것이다.

 

아마도 화가는 이발소 거울속에 무한히 반복되는 이미지들을 담아 놓은 식으로 최초로 거울과 만났던,  두장의 거울이 만드는 우물과도 같은 깊은 세계의 기억을 표현 한 것은 아닐까?  화가는 사실주의적 그림속에 사실 너머의 세계를 도입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평면속의 무한반복되는 입체의 세계.

 

위의 내가 대충 그린 거울의 삽화속의 아이는 파란 옷을 입고 있는데, 그것은 내 기억속의 내 모습이 온통 '파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파랑'이었다. 그것은 우리 할머니가 내게 남동생을 보게 해 주려고 나를 사내놈처럼 의도적으로 키웠기 때문이다.  결국 할머니의 소망대로 나는 남동생을 보게 되었는데, 남동생을 본 후에도 나는 여전히 파랑이었고, 나는 늘 사내아이처럼 상고머리로 살았다.  나는 가끔 마을의 이발소에 갔었다.  "언년아, 오늘은 점심먹고나서 호수로 놀러가지 말고, 이발소 집으로 가거라. 내가 말 해 뒀으니까, 네가 가면 머리를  깎아 줄거다." 할머니가 점심참에 내게 이르시면 나는 군소리 않고, 찬물에 말은 밥과 김치를 대충 먹고 마당 지나, 이웃집 큰 나무 아래를 지나 골목을 지나 밭을 건너 그 동네에 하나 밖에 없는 이발소로 갔다.  그러면 이발소집 정씨 아저씨가 나를 번쩍 안아 이발소 의자 위에 올려 놓았는데, 내가 코딱지같이 작은 꼬마아이 이므로 (다섯살) 이발소 의자 양쪽 손잡이 위로 빨래판을 척 걸쳐놓고는 그 위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사내아이처럼 반듯하게 잘라 주었다. 그때 나는 온통 남자들 밖에 없는 이발소 집에 나혼자 '버려진 아이'처럼 겁에 질려 앉아있다가, 이발사가 머리를 다 자르고 내 목 언저리의 머리카락들을 탁탁 털어준후에 나를 번쩍 안아 바닥에 내려 놓으면 인사도 안하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쳐서 한달음에 집으로 뛰어오곤 했는데, 왜 내가 꽁지가 빠지게 도망질을 했는가 하면,  내가 가만히 보니까 머리 깎는 아저씨들은 면도도 하고, 면도가 끝나면 뜨거운 물로 머리도 감고 그러는데, 나는 무서운 칼로 면도 당하고, 닭잡아서 털 뽑을때 씀직한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쓰고 머리를 감는 일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거야 말로 로댕의 지옥의 문에 나오는 장면보다 더 생생하고 무시무시한 '생지옥'이었던거다.

 

물론 여섯살이 되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상경 한 후에 나의 이발소 행보도 끝장이 났다. 엄마는 딱 한번 내 사내놈같은 머리를 다듬어 준다며 이발소가 아닌 미장원에 끌고 갔었는데, 그 후로는 엄마가 직접 가위질을 하셨고, 나는 머리가 다 크도록 엄마가 멋대로 대충 잘라주는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할 운명이었던거다. 

 

아, 내 추억속의 정씨 아저씨네 이발소 앞 마당에서는  비가 오는날만 제외하고 언제나 수건이 마르고 있었다. 이발소용 수건은 가정용 타월보다 작고 얇다.  아마도 그래야 빨래하기 쉽고 마르기도 수월할 것이다. 정씨 아저씨네 마당에는 늘 노란 이발소 타월들이 수십장씩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며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위의 이발소 풍경 그림에서 왼편 창가의 노란색 헝겊이 '이발소 타월'이 아닐까 하여 들여다 봤는데 아마도 저 노란 헝겊은 '커텐'인것 같아서 섭섭했다. 타월이 말라야 하는데, 타월이...

 

이발소는 '남성'들에게 어떤 장소일까?  요즘의 문제가 되는 일부 퇴폐 이발소 제외하고 순수한 본래의 이발소, 그 이발소는 남성들에게 어떤 정서를 불러 일으킬까?  이발소에 대한 정서는 연령별로 차이가 날 지도 모른다.  요즘 청소년들은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하고, 많은 젊은 남성들이 '미용실'을 찾는다.  이 그림속의 이발소들이 아직도 여전히 건재 할까?  나는 남자가 아니라서 가늠이 안된다.

 

 

                                          영화 Gran Torino 의 이발소 장면

 

 

 

그런데, 2008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가 주연한  헐리우드 영화 Gran Torino(http://www.imdb.com/title/tt1205489/)를 보면, 보수적이고 강단이 있는 노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이 아시아계 이민자 소년과 친구가 되어 그가 일거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게 되는데, 그때 노인이 한 일이 소년을 마을의 이발소로 데려가서 '사나이들만의 대화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었다. 남자는 이렇게 말하는거야. 남자가 남자를 만났을땐 이런 태도로 이렇게...   노인과 이발소 주인은 '주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하는 아시아계 이민자 소년에게 백인 남성 사회의 문화를 어떤 식으로든 전수 하려고 애를 쓴 것인데,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사실 마음이 짠했다. 사실 그 노인이나 이발소 주인 역시 주류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사라져가는 세대의 마지막 흔적 같은 존재들 이었던거다.  (이 영화 안보셨으면 심심할 때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다 보셔도...)

 

1934년, 미국의 경제 암흑기, 대공황 시절의 뉴욕의 이발소 풍경.  지금 그 낡은 이발소가 아직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거울속에 무한 반복되는 이미지들처럼 이발소는 또 다른 풍경으로 어디선가에서 새로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또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 할 것이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사라진 후에도 무한반복되는 이미지로 어딘가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september 21, 2009 your redfox.

 

 

p.s. 음, 오른쪽 구석의 옷걸이 위에 있는 '모자들'을 보니, 모자업자가 '외국에 갈때 궁색하면 안된다고' 돈 천만원을 주길래, 가족같은 사람이 주는 용돈으로 알고 이를 꿀꺽 먹었다고 하던 어떤 학자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뒷골이 뻣뻣해진다.  나도 누가 잔돈푼, 소액, 돈천만원 용돈으로 안주나?  오백만원씩 두번에 걸쳐서 주면 더 좋고, 딸라로 줘도 고맙고 ... (두리번 두리번).  대한민국 어떤 사람의 죽음 이후에,  한국의 공직자 지망생들은 기억해야 할 사항이 있는데,  이제 '가족같은 친한 사람'이 주는 돈은 한푼이라도 받으면 자살바위로 직행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범을 우리는 두 눈뜨고 보았다. 울어도 소용없고, 거기 바위가 있는것이다. 자살바위 가기 싫으면,  돈 천만원 받아 꿀꺽 하면서 '소액' '용돈'이라고 방송 카메라 앞에서 종알거리는 처지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거다.  루즈벨트의 뉴딜을 백번을 다시 한다고 해도, 국립대 총장이 '모자'업자가 주는 '소액'이라는 '돈 천만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넣는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자살하시라는 말씀이 아니옵고,  우리는 그 바위에서 호랭이 한마리가 뛰어 내리는 것을 두눈 뜨고 목도했는데, 이제 역사는 준엄하게 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니, 호랭이를 생각해야 하는거다.  이제 더이상 얼렁뚱땅, 아무개가 주는 돈 쓱싹은 안된다. 그렇게는 안된다.  우리는 호랭이를 잃었고, 앞으로 호랭이의 잣대로 공직자의 위엄을 기대 할 것이다.  그 엄중함을 아시고, 그냥 논문이나 이리저리 엮으시면서, 모자업자가 주는 모자나 하나 쓰고 그냥 유람이나 허시면서 여생을 복되고 행복하게 지내시면 어떠허실지. 총리 자리가 뭐 대단한 자리라고 그 자리에 오르려고 욕을 보시는지.  모자나 쓰시고...모자업자가 주는 용돈으로 그냥 골푸나 치시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가 저문후에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른다. (해 저물었어유. 늦었지만 날아 올라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