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0일 목요일

Norman Rockwell 2: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2009년 8월, Norman Rockwell Museum 기념품샵에서 구입한 그림 사진.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각자 처한 위치나 상황에 따라서 대답은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볼까요? 미국의 경제 불황과 맞물려서 한국의 경제도 어렵고, 그래서 취업 희망자가 많은 반면 안심하고 일할만한 자리가 넉넉하지 않습니다. 국토는 좁고 자원은 많지 않고 인구는 많은 나라에서는 생존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결국 학력 경쟁에 불이 붙고 오로지 일류대학에 들어가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큽니다. 입시경쟁이 치열하죠. 입시문제를 아무리 머리 좋은 사람을 데려다 물어봐도 해법이 잘 안 나오는 이유가 교육이 총체적인 사회문제와 항상 맞물려 들어가서 그런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채택하건 경쟁자체를 해소할 수는 없으므로 마찬가지이죠. 김대중 선생께서 남북통일의 염원을 이뤄보려고 통치기간 동안 노력을 많이 하셨는데, 아직 남북 통일은 요원해 보입니다.  이것도 우리가 해결 해 야할 숙제 중 한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거하신 김대중 대통령은 전라도 출신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전라도 사람에 대한 차별이 막심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한 쪽을 차별하면 그 차별 당하는 사람들만 괴로울까요?  아닐걸요,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이고 하나의 몸이나 마찬가지라서, 몸의 일부가 차별당하고 썩어갈때 다른 부위가 무사 할까요?  위암이면 위만 잘라내면 되나요? 심장이 멈추면 다른 장기가 안전할까요? 뇌가 멈춰도 다른 장기 멀쩡하면 되는건가요? 그건 아니지요. 김대중 선생은 그 '빨갱이' 혹은 '개똥쇠'라고 불리우곤 하던 호남이 배출한 걸출한 민주 인사셨는데요. 남북통일 뿐 아니라, 동서화합을 위해서도 노력하신 분이지요. 우리 역사에 그가 있어 우리는 행복했을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미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이 있을까요? 초기 건국에서부터 되짚어 보자면 (1) 신대륙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절실한 문제가 있었을 것이고,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2) 본래 이곳의 토박이로 살아왔던 아메리칸 인디언들과 관계 정립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미국에서 거의 잊혀져 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3) 남북전쟁으로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긴 했으나 제도가 바뀐다고 그 사회의 문화나 정서가 일거에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흑백문제는 여전히 이들에게 해결해야 할 숙제였습니다. 2009 1월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한 오바마가 희망의 상징인 이유는, 미국 사회가 인종문제나 차별의 문제 상황을 좀더 희망적인 방향으로 개선시킬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신호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은 희망이지 완성은 아닌 것입니다.

 

미국의 흑인 문제, 혹은 흑인 차별의 역사에 대해서 흑인도 아닌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이것이 단지 인종의 문제가 아니고 대결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대결의 문제란, 결국 힘의 문제인데, 힘이 있는 세력과 힘이 없는 세력이 어떻게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입니다. 힘이 균형을 유지할 때 그 사회는 사람이 골고루 편히 살만한 곳, 힘이 균형을 잃을 때 사람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입니다. 흑백의 문제는 차별의 표상입니다. 그 차별은 천 가지 얼굴을 가진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발견됩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동성간의 결혼을 허용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영화 Brokeback Mountain (브록백 마운틴)에서 두 젊은이들의 애절한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원작이 된 단편소설도 읽어보았는데요, 실제로 전통적인 미국사회에서 동성애자 남자가 발견될 경우 돌로 때려 죽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미국이나 한국에서 여성들이 법적으로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여성들이 이만큼의 지위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명예살인을 구실로 살해당하고, 노예처럼 팔려가고, 할례를 당하면서도 그것이 잔혹한 것인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미국의 흑인 차별 문제가 여전히 주목 받을 가치가 있는 이유는 그 드러난 문제가 다른 많은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암암리에 차별을 당하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다른 사람을 차별대우 하고 있을 수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흑백문제는 여성문제, 동성애 문제, 빈곤의 문제, 폭력의 문제, 기아의 문제 등 그 모든 문제들과 맥을 같이 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보입니다.

 

 

 

 

흑인 소녀 루비 브리지가  학교에 입학하던 날

 

이 그림의 제목은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우리 모두가 안고 살아가는 문제). 이 그림은 Norman Rockwell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Look 이라는 잡지의 1964년 간행 표지였다고 전해집니다만, 원화는 제법 큼직합니다. 그림의 실제 크기는 잡지표지 크기가 아니고 36 x 58 인치 입니다 (미국의 인치 표시를 센티로 환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림 속에는 네 명의 건장한 남자가 보입니다만, 이들의 머리부분은 없습니다. 흑인소녀만이 온전하게 전신이 보입니다. 소녀는 흰 드레스, 흰 양말, 흰 운동화를 착용했으며 머리의 리본도 흰 색입니다. 오로지 피부가 검은 것이 문제 같습니다. 손에는 누런 바탕의 책 한, 그리고 별이 그려진 책 (둘 중에 하나는 공책이겠지요), 노란색 자, 빨강, 파랑 연필 한 자루씩이 들려있습니다. 남자들은 가슴에 경찰관 표시를 달았고, 왼팔에 경관 완장도 찼습니다. 배경은 보도와 벽면 입니다. 벽면으로 던져진 토마토와 바닥의 토마토 파편이 총알자국처럼, 혹은 피가 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중앙의 윗부분에 NIGGER (깜둥이)라는 낙서가 보입니다. 그림 왼쪽 구석 쪽에 K, K, K 라고 씌어진 것도 보입니다. 머리가 보이지 않는 이 네 명의 경관들은 발까지 정확히 맞추어 걷고 있습니다. 소녀도 이 경관들과 발을 맞추고 있는 것일까요? 궁금해져서 그림을 들여다봅니다. 소녀의 오른손이 남자들처럼 앞으로 나와있는 것을 보면, 이 소녀의 왼발도 남자들과 맞춰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걸을 때 오른 팔이 나가면 왼발이 나간다는 것을 아시지요? 물론 발을 맞추겠다고 생각하고 긴장하면 오른팔과 오른발이 함께 나가는 일도 발생하는데, 그러면 여간 민망스럽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그림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흑인 노예들은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노예 해방이 그들에게 동등한 권리을 부여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흑인들은 여전히 푸대접을 받으며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를 지켜나갔습니다. 이 그림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대략 1세기가 지난 미국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그림 속의 소녀의 이름은 Ruby Bridges (1954 - ) 입니다. 1960년 미국의 남부 (미국에서는 이곳을 남부 중에서도 아주 깊은 남부라는 의미로 Deep South 라고 부릅니다) 루이지아나 (Louisiana)의 뉴올리안즈 (New Orleans)에서 살던 이 소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 소녀는 흑인학교에 입학하는 대신에, 여태까지 백인들만 다니던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당시 뉴올리안즈 교육국에서 실험적으로 이 소녀를 백인학교에 입학을 시켰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소녀의 부모들은 한참을 망설였다고 합니다. 내 딸이 무사히 백인 학교에 갈수 있을까?  주변의 백인들의 저항도 만만치가 않았다고 합니다. 등교 첫날, 이 소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실제로 네 명의 경관들이 소녀의 등굣길을 에워싸 보호를 했다고 합니다. 소녀가 백인 학교에 나타나자 백인들은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 버렸고, 교사들도 흑인을 가르칠 수 없다고 교실을 나가버렸습니다. 오직 보스턴 출신의 한 선생님만이 백인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간 텅 빈 교실에 혼자 오두마니 앉아있는 소녀를 향해 수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용기 있는 교사였지요. 그런데 그림 속의 소녀를 보십시오. 어깨를 곧게 펴고, 씩씩하게 걷고 있습니다. 당당해 보이지요? 헐렁한 양복을 입은 머리 없는 사나이들의 발걸음보다 이 소녀의 검은 두 다리가 더 씩씩해 보입니다.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입술은 꼭 다물고 있습니다.  소녀는 소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상황속을 그러나 한걸음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 한걸음 한걸음이 하루, 하루 쌓여 갔고, 한해 두 해 쌓여갔고, 그리고 그로부터 48년이 지난 2008, 미국은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탄생시키기에 이릅니다.

 

Norman Rockwell, Pictures for the American People pp. 112-113 사진:

실제로 그는 이 한장의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여러가지 밑그림을 그려보고, 세밀한 소품들을 연구해보는 과정을 거쳤다.

 

이웃집에 새로 이사온 친구

 

다음의 그림은 New Kids in the Neighborhood (1967) ‘이웃집에 새로 이사온 아이들입니다.

 

박물관 전시실에서 위의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작품으로부터 정면에 걸려있는데 크기도 조금 더 큽니다. 분위기는 밝고 따스해 보입니다. 그림 설명을 보면 시카고의 어느 주거지역이 배경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 속에는 여섯 명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사를 하는 풍경입니다. 트럭에서 짐을 옮기는 남자의 옆모습이 살짝 나와있고, 길거리에 소파와 집기들이 서있습니다. 새로 이사온 듯한 흑인 소년소녀가 왼쪽에 서있고, 오른쪽에는 세 명의 소년소녀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서 있습니다. 양쪽 진영이 뭔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 같습니다. 오른쪽 진영에는 검정 개 한 마리가 앉아있고, 왼쪽진영의 흑인 소녀는 털이 흰 고양이를 안고 있지요. 그런데 그림 속의 소년들 손에 모두 야구 글로브가 들려있습니다. 아하! 이제 이 그림 속의 아이들은 조 금후에 그림 밖으로 나와서 동네 야구장으로 놀러 갈 것 같습니다. 오른쪽 진영의 소년들은 야구를 함께 할 수 있는 새 친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오른쪽의 소녀는 털이 흰 고양이를 만져보려 다가갈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의 메시지도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 서로 사이 좋게 살자는 것이지요.  그러면 왜 이런 메시지의 그림을 작가는 그려야 했을까요?  역설적이게도 백인 구역에 흑인이 이사 오는 것이 그 당시 여전히 간단치가 않았으므로 이런 메시지 있는 그림이 필요했겠지요.

 

시카고의 어느 언어학자가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도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열심히 활동하는 학자입니다. 흑인입니다. 그가 시카고의 전화번호부를 뒤져 전세 아파트를 찾아보기로 합니다. 그는 잘 교육받은 언어학자이고 흑인 액센트와 백인 액센트를 유창하게 구사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여기 저기 전화를 걸어 빈방이 있는가? 내가 세 들어 살고 싶은데 계약조건이 뭔가? 이런 아주 평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의 실험 결과 그가 흑인 액센트를 사용하면 저쪽에서는 두말 않고 끊어버리거나 미안하지만 이미 방은 나갔다는 답을 듣습니다. 그가 백인 액센트를 사용하면 집주인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진행됩니다. 이런 현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흑인은 안되고 백인만.

 

이것이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비슷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일어납니다. 한국의 대도시 거리에서, 한국인들은 영어로 질문을 하며 다가오는 백인 관광객에게 무척 친절합니다. 한국인들은 흑인이나, 혹은 인디언이나, 그 밖의 동남아시아권 사람들에게 똑같이 친절할까요? 어느 해 교육방송에서 비슷한 실험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한국의 교육방송에서 그것을 봤다는 것이지요) 서울 시내에서 백인이 길을 묻자 사람들이 다가와 도와주려고 애를 씁니다.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동남아시아인의 용모를 한 사람이 길을 묻자 본체 만 체 합니다. 막판에는 이 사람이 한국말로 길을 물어도 사람들은 무시하고 지나쳐버립니다. 이것이 거울 속의 나의 모습일 것입니다. 누구를 비난 할 것도 없이, 거울 속에 보이는 나 자신부터 비난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림 속의 소년 소녀들은 지금쯤 동네 야구장에서 서로 즐겁게 소리를 지르며 야구 놀이를 하고 있겠지요. Norman Rockwell 의 그림 속 소년 소녀들은 세상이야 어떻게 흘러가건 용감하게, 진지하게, 장난스럽게, 평화롭게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다음 회에 Rockwell 사람들이야기를 조금 더 한 후에 그의 그림세계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림:

Norman Perceval Rockwell (1894-1978)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1963, Look, January 1964

Story Illustration

Oil on Canvas 36 x 58 inches

Collection of the Norman Rockwell Museum,

Stockbridge Massachusetts

 

관련 자료:

 

http://www.loc.gov/exhibits/brown/brown-aftermath.html

August 20, 2009

forgetmetomorrow.gmail.com

微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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