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2일 토요일

Andrew Wyeth: 아주 오래 전 부터

 

 

제니의 슬픔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한 달 용돈이 1,500원 이던 시절, 책방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문고판이 삼중당 문고였다. 한 권에 150원이었다. 그 책은 내가 대학 시절에는 600원쯤에 팔린 것 같고, 그 후에 책방에서 자취를 감췄을 것이다. 저렴한 가격에 청소년들에게 세계 문학을 선사하던 삼중당 문고는 내 어린 시절을 풍요롭게 해 주는데 단단히 한 몫 했으리라.

 

그 문고판 중에 제니의 슬픔이라는 책이 있었다. 상권, 하권 이렇게 두 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층민 처녀 제니가 부잣집 도련님과 사랑에 빠지지만, 늘 그렇듯 번듯하게 애인 행세는 못하고 숨겨진 여자로 살아 간다는 통속적이고도 슬픈 이야기이다. 중학생이 성인들의 세계를 알면 얼마나 알 수 있겠는가?  어린 마음에 제니가 참 불쌍하고 착하기도 하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때 그 책의 커버에는 어떤 여자가 들판에 내동댕이 쳐 진듯 주저 앉아 있고, 멀리 집이 보이는데 그 상황이 소설 속의 제니의 상황과 흡사 했다. 내동댕이 쳐 진 여자. 그렇지만 자신을 버린 그 집을 한없이 쳐다보고 있는 여자. 아 인생 정말 슬프다……

 

훗날 대학에 들어가서 미국문학을 배우다가 이 작품이 드라이저 (Theodor Dreiser)의 제니 게하르트 (Gennie Gerhardt)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드라이저의 American Tragedy 는 옛날에 젊은이의 양지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을 했다. 가난뱅이 청년이 운 좋게도 재벌 집 상속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청년에게는 자기 형편에 맞는 소박한 애인이 하나 있었다. 청년은 걸림돌이 되는 그 애인과 소풍을 갔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애인을 그냥 죽게 내버려둔다. 애인도 죽었겠다, 이제 재벌 상속녀와의 창창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결국 증인이 나타나고 청년의 인생은 그것으로 끝장. 그러니까, 제니도 그렇고 젊은이의 양지의 클라이드(Clyde)도 그렇고 막장 인생이 아무리 몸부림 쳐 봤자 막장인생으로 끝나는 것이지. 드라이저는 이렇듯 암담하고, 희망 없는 삶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천재적이었다. 미국의 자연주의 소설을 언급할 때 반드시 이름이라도 한번 옹알거리고 지나가야 하는 사람이다. 대학생이 되어 어릴 때 읽었던 소설책을 꺼내 보면서, 나는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과는 무관하게 살면서 나의 이런 미국 문학에 대한 기억들도 희미해져 갔다. 그런데 2008 7, 뉴욕의 현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일명 MoMA 모마)에 갔을 때, 전시장과 전시장을 잇는 통로에서 나는 제니을 다시 만났다. 나의 제니가 거기 앉아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발견한 순간, 바로 삼중당 문고의 제니의 슬픔을 떠올렸던 것인데, 다가가 그림 제목을 보니 Christina’s World 라고 한다. 크리스티나의 세상.  그렇다면 이 그림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나였군.

 

 

 

(그림)

제목: Christina's World

작가: Andrew Wyeth (American, 1917-2009)

년도: 1948. Tempera on gessoed panel,

크기: 32 1/4 x 47 3/4" (81.9 x 121.3 cm).

작품 구입 년도: Purchase 1949

 

The woman crawling through the tawny grass was the artist's neighbor in Maine, who, crippled by polio, "was limited physically but by no means spiritually." Wyeth further explained, "The challenge to me was to do justice to her extraordinary conquest of a life which most people would consider hopeless." He recorded the arid landscape, rural house, and shacks with great detail, painting minute blades of grass, individual strands of hair, and nuances of light and shadow. In this style of painting, known as magic realism, everyday scenes are imbued with poetic mystery.

 

박물관의 그림 설명에 의하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작가가 메인 주(Maine)에 살던 시절, 이웃에 살던 여인이었는데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 작가인 와이드는 하지만 신체적으로 불구였지만, 정신이 불구였던 것은 아니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사람들이 대개 절망적이라고 생각하는 인생을 크리스티나가 놀랄 만큼 성공적으로 극복해가는 것을 화폭에 담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와이드는 삭막한 풍경과 시골 집, 창고를 아주 세심하게 묘사했으며, 풀잎 하나하나까지, 머리카락 하나하나 까지도 세심하게 그려냈다. 빛과 그림자의 뉘앙스도 세밀하게 담았다. 마술적 사실주의 (Magic Realism)라고도 알려진 이런 화풍은 일상의 풍경들에 시적(詩的) 신비감을 불어 넣는다.

 

아 이렇게 내가 제니로 기억하는 사람을 나는 뉴욕 한 복판에서 다시 만났다. 그이가 크리스티나이건 제니이건, 이 사람의 풍경을 보는 사람들은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작가인 와이드는 이웃집 처녀 크리스티나가 불구의 몸이 되어서도 강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려고 애를 썼다지만, 이 그림 앞에 서면 우리 모두 내동댕이 쳐 진, 설령 두 다리가 멀쩡해도 힘이 빠져 더 이상 서있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누구든 인생을 살면서 그런 때가 있지 않을까? 서있을 기운도 없이 지쳐 쓰러질 때, 육신이 멀쩡해도 마음이 기운을 잃고 쓰러질 때, 우리도 이런 자세로 먼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가? 이 그림을 모마 에서 처음 사들였을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마치 요술처럼, 이 그림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늘어나고, 어딜 가면 이 사람의 작품들을 더 볼 수 있는가 질문이 빗발쳤다고 한다. 왜 사람들이 이 그림 앞에 모여 들었을까?  이 그림은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다가가고 위로를 준 것일까?

 

 

 

이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덕위의 집의 방향이 조금 이상하다.  대체적으로 우리가 초등학교때무터 그림을 그릴때, 집을 그리면 집의 문을 앞에, 정면에 그린다. 대개 무엇이나 그 정면을 화면에 담는다. 그래야 균형감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언덕위의 집은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향하고 있다. 여자가 여기 주저 앉아서 쳐다보는 그 집은 정면이 아니고, 이 여자를 외면한 채 저쪽을 향하고 있는 측면이다. 그리고,  농가 주변의 풀은 짧게 깎여있다.  여자가 앉아 있는 곳은 풀을 깎지도 않은 곳이다. 집의 경계 바깥에 이 여자가 있다는 뜻이다.  경계 바깥의 여자.  울타리 밖의 여자... 그러니까, 그 집의 입장에서 보면 이 여자는 저 변두리에 있어서 이 집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 만약에 언덕위의 집이 '집'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었다고 가장하면, 이 사람은 외면하고 서 있고, 여자가 외면하고 서있는 사람의 시선 밖에서 이를 응시하고 있는 형상이다.  비극적이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나를 외면하는 사람을 내가 잊지 못하고 갈망하는 모양새다.  한숨이 다 나오네... 그렇지만, 외면당해도, 무시 당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저기까지 가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는 크리스티나가 언덕위에 돌아 앉아있는 집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빌어야 할까?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그림 앞에서 떠나지를 못하는가?

 

 

 

 

음향과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

 

대학시절에 미국 문학 수업 중에 강독한 소설로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의 음향과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 라는 작품이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이기도 한 포크너는 특히 미국 남부의 정서를 의식의 흐름 (Streams of Consciousness) 기법으로 풀어나간 소설가인데, 이 음향과 분노가 그 의식의 흐름 기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수작이다. 벤자민은 독특한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정신박약아이다. 그 벤자민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때, 그것은 보통의 지능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보는 세상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벤자민의 두서 없고 부조리한 독백을 통해 독자들은 미국 남부의 어느 집안 사람들이 비극적으로 망가져 가는 과정을 읽게 된다. 이 소설을 강독하던 그 당시, 우리들은 영어 공부도 힘든데게다가 알아 먹기 힘든 남의 의식의 흐름까지 해석을 해야 하는 판국이라서 아주 난감해 했었다.  논리적으로 씌어진 글을 해독하기도 어려운 판국에 비논리까지 무슨 수로 따라 잡는다는 말인가?  하하하. 당시 영문과 학생들의 비애는 그런 식이었다. 영어도 안 되는데, 영어도……  요즘 국내의 후배들 얘기를 들어보니, 영문과 학생들 대부분은 이미 외국에서 살다 오거나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굴려대는 통에, 그냥 대충 공부해서 영문과 간신히 들어간 사람은 설 자리도 없다고.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 할 수 없으나, 영어 공부 하려 문학 공부 하랴, 우리들의 고생은 막심했다, 이웃 국문과 친구들에 비해서.

 

그 당시에 우리들이 해적판으로 사서 공부하던 한신 문화사 The Sound and the Fury 이 표지 그림이 이것이었다. 바람 부는 언덕 위에 아무렇게나 서있는 십자가, 혹은 그냥 나무 막대. 참 황량하고, 춥고, 쓸쓸하고. 딱 소설에 맞는 그림이었다.  누군가가 표지 그림을 잘도 그렸다. 되지도 않는 외국어 실력으로 되지도 않는 문학을 한다고 머리 싸매고 사전을 찾아서 가갸거겨 하는 내 심정을 그대로 묘사하는 그림이로다. 

 

그런데, 나는 이 음향과 분노를 워싱턴 디씨의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 박물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발견했다. 뭐냐 이거? 왜 책 표지 그림이 저기 걸려있는가?  다가가서 그림 설명을 읽어 보니 와이드의 그림이었다.

 

 

(그림)

 

제목: Dodges Ridge  (1947)

작가: Andrew Wyeth

Born: Chadds Ford, Pennsylvania 1917 Died: 2009

소재: egg tempera on fiberboard

크기: 41 1/8 x 48 1/8 in. (104.5 x 122.3 cm.)

소장: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Gift of S.C. Johnson & Son, Inc. 1969.47.75

위치: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2nd Floor, North Wing

 

내가 그저 한신문화사가 불법 복제 판매한 (그 당시에 대학생들에게 종각의 한신문화사는 지식의 메카였다) ‘The Sound and the Fury’의 표지그림으로만 기억하던 것을 미국의 국립 미술 박물관에서 발견하고 대경실색했었다. 그리고, 제니의 슬픔이나 음향과 분노 책의 표지를 장식한 그림을 그린 사람이 모두 Andrew Wyeth 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꿰어 맞출 수 있었다. 앤드루 와이드라는 작가는 그제서야 내게 찾아 들었다. 이 그림들을 그린 사람이 Andre Wyeth 라는 작가구나.

 

 

Andrew Wyeth

 

 

 

내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이, 그것이 싸구려 책의 표지였건, 혹은 일년 내내 책상 앞에 걸려 있었던 달력이었건 그 것들이 사실 족보를 따져보면 저런 식으로 세계적인 박물관에 걸려있는 원화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을 텐데.  어린 시절 나는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오직 나의 한정된 세상에서만 이해하고 지나가곤 했었다. 아무도 그것의 실체나 의미를 가르쳐준 이가 없었고, 정보도 한정이 되어 있었다. 미국 미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로 작정 한 후에, 미국 미술사책이나 미술 관련 책들을 읽어 나가고 있는데, 문득 Andre Wyeth 에 대해서 궁금해진다. 웹을 검색해보니, 가까이에 그의 뮤지엄과 스튜디오가 있다고 한다. Brandywine River Museum http://www.brandywinemuseum.org/ 브랜디와인이 강물처럼 흐르는 마을에 세워진 뮤지엄인가보다.  펜실베니아에 위치하고 있는데 검색해보니 집에서 두 시간 정도 운전해서 갈 만한 거리이다. Andrew Wyeth2009 1월에 타계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그를 발견했더라면 생존하는 그를 만나 싸인 이라도 받을 수 있었으련만. 언젠가 그의 그림을 보러 달려 갈 궁리를 해 본다. 스미소니안과 국립 미술관에 있는 그의 그림들은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고 앤드루 와이드의 그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나가겠다.

 

 

 

                                   2008년 7월 뉴욕 MoMA 방문시 발견한 Christina's World

 

                                   2009년 7월 워싱턴 스미소니언 미국 미술관의 와이드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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