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2일 토요일

모세 할머니를 완결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이유

Grandma Moses 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 말고 딴짓을 하고 있다.  이유는 명백하다. 내가 내 육안으로 구경한 모세 할머니의 그림은 단 두점 뿐이다. 한점은 뉴욕 MoMA 에서 보았고, 또 한점은 스미소니안 미국미술 박물관에서. 이렇게 딱 두점을 육안으로 확인 했을 뿐이다. 검색을 해 보니 워싱턴의 필립스 콜렉션에 소장품이 있고, 허시혼에도 있다고 하는데, 허시혼의 작품은 현재 전시되어 있지 않다고 나오고, 필립스 콜렉션에서 그것을 봤는지 안 봤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조만간 가서 확인을 해 봐야겠다.

 

내가 미국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결심했을때, 내가 스스로 약속한 것이 있다. 내 눈으로 본 그림에 대해서 주로 서술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생생하게 기억해내고 내 목소리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므로.  다행히 나는 국립 박물관이 즐비한 곳에 살고 있고, 여태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기록한 것도 많고, 궁금하면 언제든지 달려가 다시 살펴볼 만한 위치에 있으므로 내 눈으로 본 것을 바탕으로 쓰려는 것이다.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2009년 7월

                                    제목 미상의 모세 할머니의 그림 작품.

                                    Folk Art Gallery 에 걸려 있었다.

 

 

 

아무리 웹이 발달해서, 얼마든지 세계적인 명화들을 웹으로, 책으로 감상 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책에서 보는 그림과 직접 전시장에서 보는 그림은 '다르다.' 책은 보조 도구이지 직접 도구는 아니다. 전시장들을 돌아보며 미술품들과 대화를 나누며 내가 자각한 것이 그것이었다. 내가 손바닥만한 작은 그림책을 갖고 있다고 해도, 내가 전시장에서 그 그림을 보았다면, 나는 손바닥 안에서 실제 크기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내가 보는 것은 손바닥을 통해서 보는 내 기억속의 그림이다. 그 기억이 없는 상태의 손바닥만한 그림은 내게 큰 의미를 던져주지 못한다.

 

그런고로, 내가 모세 할머니의 화집을 들여다봐도, 실제 현장에서 본 것만큼의 감동을 느낄수는 없다. 그러므로 내 이야기를 전할수 없고, 그러므로 나는 글을 쓰지 못하고 뜸을 들이고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며 한두점이라도 생생하게 더 찾아 본 후에 진정으로 내가 준비가 되었을때, 마저 글을 완결시키겠다. 사실, 완결은 한참 후가 될지도 모른다. 버몬트 주에 있는 박물관에 가 볼때까지 미룰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진정으로 쓰고 싶어질때까지 모세 할머니와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살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서두르는 것은 부지런함이 아니고, 기다리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는 것. 

 

나는 정직하게 미국 미술을 만나고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적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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