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1일 월요일

Kara Walker: 우스꽝 스러운 흑인 잔혹사

http://americanart.textcube.com/30

Jacob Lawrence (1917-2000) 페이지를 쓰고 나니, 흑인 여성 미술가 Kara Walker (1969-   )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Kara Walker를 만난 것은 워싱턴 디씨에 있는 Corcoran Gallery of Art (코코란 미술관)에서였다. 전시장 벽에 검정 실루엣으로 그려진 사람들. 흑인들 특유의 실루엣이었으므로 단박에 흑인관련 작품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참 독특했다. 새롭고 매력적이라고 해야 하나? 단지 검정 색 도화지를 오려 붙인듯한 전시물들. 벽 전면에 채워진 그림자들. 그 실루엣으로만 이루어진 인물들 속에는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가령 노예 해방 이전에 남부에서 일어났을 법한, 백인 주인이 흑인 여자를 강간하는 장면이라던가, 여성이 남성의 신체를 기쁘게 해주는 장면, 입맞춤 하는 흑인의 손에 들린 예리한 칼. 이런 장면들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서, 가량 스토우의 톰아저씨의 오두막, 혹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 그 밖의 미국 흑인 잔혹사 관련 이야기에 소개되었던 에피소드들이 일제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순전히 검은 도화지를 오려서 붙인 것 같은 이 실루엣 인물들이 그 흑백의 대비속에서 오히려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와 말을 붙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홀린 듯이 작품 구경을 했었다. 2008년 5월의 일이다.

 

 

 

                    워싱턴 디씨, 코코란 갤러리 2층에 전시된 카라 워커의 작품 (2008년 5월)

                               전시장을 지키던 흑인 경비원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

 

 

 

 

사실 이보다 한달 전, 2008년 4월에 워싱턴 디씨의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 박물관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and Portrait Gallery)에서 그의 특별전을 본 적이 있다. 미국의 일반적인 미술관의 경우에 상설 전시관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사진 촬영이 가능하지만 특별전시장에서는 대체로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이점은 미국에서 미술관 나들이를 할 때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꽤 크게 열렸던 그 당시의 카라 워커전을 나는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서 심심풀이로 미술책을 꺼내 볼 때면 나는 이따금 카라 워커의 책을 들여다보곤 한다.

 

카라 워커는 1969년 생이다. 이제 활발하게 작업하는 젊은 미술가라 할 만 하다.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던 카라는 13세에 조지아 주의 아틀란타로 이주하면서 흑백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조지아 주의 아틀란타시는 미국 남부에서 가장 큰 대도시로 알려져 있고, CNN의 본사가 아틀란타에 있어, 남부의 자존심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한다. 또한 아틀란타를 흑인 공화국, 흑인들의 수도라고도 부를 정도로 흑인 인구가 많다. 남북전쟁에서 남군이 패배하기도 했지만, 그 후로도 미국의 남부는 북부에 비해서 경제적인 열세에 있는 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소녀가 아틀란타에 왔을 때 흑과 백의 차이를 감지했음을 보건대. 1970년대 아틀란타에서는 여전히 미세하게 흑인 백인들이 서로 융화되지 못한 채 살았을 것이다. 흑인 인구가 적으면 아무하고나 어울려 살게 되지만, 흑인 인구가 일정 수 이상이 되면 이들이 모여서 사는 것이 가능해지고, 이렇게 특정 집단을 형성하게 되면 흑인들은 흑인 인구가 집중된 학교에 다니고, 흑인 문화권에서 나고, 자라고, 늙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미국의 주류사회,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배계층인 백인사회와 더욱 멀어지

게 된다. 소녀 카라 워커는 이러한 문화권 속에서 자란 듯 하다. 참고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네스에 커다란 코리아 타운이 있고, 뉴욕 맨해턴에도 코리아 타운이 있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워싱턴 지역, 북 버지니아에도 애난데일 Annandale 을 중심으로 한국인 상점이 밀집되어 있는데, 우리는 때로 농담 삼아, 애난데일은 미국인가 아닌가? 이런 농담을 하기도 한다. 한국인이 애난데일 지역에서 산다면, 온종일 영어 한마디 할 것 없이 한국인 상점에서 필요한 것 사고, 한국인 미장원에 들르고, 한국 책방에 가고, 한국 교회에 가면 되고.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면,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의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보다는 미국의 변두리에서 애매한 한국 문화권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특정 집단이 밀집한 곳에 살면서 정서적인 안정감이나 소속감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주류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우울감도 생길 수 있다. 카라 워커는 자기 자신이 흑인 여성으로서 흑인인구가 밀집한 곳에서 성장하면서 이러한 우울감을 일찌감치 맛 본 듯 하다.

 

카라 워커는 아틀란타 예술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로드 아일랜드에서 미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가가 되는 정석의 교육을 받은 셈이다.

 

카라 워커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94년 그녀가 24세 되던 해에 소호 (SoHo)에서 열린 전시회 부터였다. 카라는 검정 도화지로 실루엣을 오려서 벽에 붙이는 식의 벽화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주로 남부 노예들이 백인한테 강간 당하거나, 유사 행위를 하는 장면들이 코믹하고 간결하게 그려졌다. 잔혹한 장면이면서 동시에 코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나는 이점이 궁금한데, 실제로 카라 워커의 대형 벽화 작품들을 직접 볼 때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끔찍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유머러스한. 사람들은 이 특이한 작업을 매력적으로 받아들인 듯 하다. 그 후로 카라 워커는 미국의 유수의 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갖게 된다. 요즘도 미국의 잘 나가는 작가이고 앞으로 그의 미술작업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미지수이다.

 

카라는 검정 도화지를 이용한 실루엣 작품 외에도, 벽화 전시회장에 프로젝터를 설치하여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서서 움직일 때 그의 그림자가 벽에서 살아 움직이는 살아있는 현장 작업을 하기도 한다. 상상해보자, 내가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내 검은 그림자가 전시장의 벽화와 만나서, 그 순간 나도 벽화 속의 주인공이 되거나 벽화의 일부가 된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카라워커의 작품 활동의 주요 소재가 되는 것으로는

l       흑백 인종문제와 권력의 문제, 소외, 차별, 학대

l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수치감

l       환상 속에 어우러진 역사적 사실과 허구

l       이야기

l       유머

라고 할 만하다. 이런 모티브들이 카라의 벽화에 점층적으로, 입체적으로 등장하는데, 평평한 평면 속에서 마술적인 입체감이 느껴지는 것은 그림을 바라보는 나만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주로 노예해방 이전의 상황을 모티브로 작업을 하는 그의 미술에 대한 비판이나 반발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신진 흑인 미술가들 중에는 흑인을 희화화하고, 백인들의 기호에 맞추는 듯한 카라의 작업에 대하여 공개적 비판을 하고 항의를 하거나, 그의 전시회를 보이콧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왜 흑인 화가가 흑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를 하는가, 그것으로 백인들의 환심을 사고 출세를 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런 반발을 사는 것이다. 나로서는 아시안으로서,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보는 입장에서 카라 워커의 작품들을 보고 매력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흑인 입장이 되면 이런 시각도 가능 할 것 같다. 흑인 예술가들의 이런 비판에 대하여, “What you want: negative images of white people, positive images of blacks.” (당신들이 원하는 : 백인은 무조건 나쁘고, 흑인은 무조건 좋다는 ) 이라고 반박했다. 유튜브에 소개된 카라와의 인터뷰에서 카라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욕망과, 동시에 주인공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욕망 형상화 했다는 설명을 적이 있다. 이를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흑인들에게는 백인이 되고 싶다 숨은 욕망과 더불어, 백인이 되지 못하므로 백인을 죽이고 싶다는 다른 욕망이 있을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사망한 마이클 잭슨은 질환 이유로 여러 차례 성형수술을 감행하여 백인처럼 자신을 변모 시킨 있다. 그는 백인이 되고 싶었던 같다. 남아를 선호하는 전통 사회에서 여야 태어난 내가 남자가 되고 싶다 욕망을 간직하고 성장했듯, 동시에 남자 형제들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며 살았듯, 백인이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백인이 되고 싶다. 동시에 백인이 정말 밉다 심리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아닐까? 흑인으로서 흑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보다는 백인이 되고 싶다 욕망을 표출할 , 그것이 비난 받을 행동인가? 카라는 바로 그런 질문을 공격적을 던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너희도 백인 되고 싶쟎아. 주인공 되고 싶잖아. 나한테 신경질이야? 흑인을 우습게 보는 것은 내가 아니고 너희들이쟎아!” – 카라 워커는 이렇게 외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1941년에 흑인 청년 화가 제이콥 로렌스가 60장의 판에 20세기 미국 남부 흑인들이 북으로의 이주 역사를 그려서 미국 흑인들의 삶을 조명했다면,  2000년대의 신진 흑인 화가 카라 워커는 남북전쟁 이전의 남부 흑인들의 삶과 욕망과 잔혹사를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카라 워커는 그의 작품에서 흑인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 흑인 작가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 그의 검정 실루엣 그림 속에서 검정색은 너무나도 선명하고 강렬하며 아름다운 색이 된다. 그의 그림에서 검정은 살아있는, 숨결이 느껴지고, 목소리가 느껴지는, 신음소리와, 노랫소리가 울려 나오는 색깔이 되고 만다. 검정색을 이토록 생동하는, 활발한, 질감과 소리까지 느껴지는 색으로 활용한 화가가 카라 워커 이전에 있었던가? 카라 워커에 이르러 검정색은 완성을 보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2009년 8월 30일 일요일

Jacob Lawrence: 미국 흑인 이주 시리즈 60장

Jacob Lawrence (제이콥 로렌스, 1917 9 7– 2000 6 9). Andrew Wyeth (1917-2009) 와 같은 해에 태어나 동시대를 살다간 흑인 미술가이다. 앤드루 와이어드와 제이콥 로렌스는 출생 환경이 판이하게 다르면서도 어느 부분 닮은 꼴도 있다. 일단 같은 해에 태어났고, 둘 다 정규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서 미술에만 집중하는 시절을 보냈다. 앤드루 와이어드는 학교에 출석하는 대신에 이미 이름 난 화가였던 아버지의 슬하에서 일찌감치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했고, 제이콥 로렌스는 이혼한 홀어머니와 열세살에 뉴욕의 빈민가에 흘러 들어 할렘의 미술 공예 교실에 입학시킨다. 앤드루 와이드가 전문가인 아버지와 그 제자들 틈에 끼어 회화 기법을 익힐 때, 제이콥 로렌스는 엄마가 짜고 있던 카펫에 새겨진 무늬들을 그대로 크레용으로 그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앤드루 와이어드가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사실주의적 기법의 자신의 그림 세계를 구축해 가는 동안 16세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제이콥 로렌스는 세탁소, 인쇄소 등을 전전하며 일을 하고, Charles Alston 이 가르치는 Harlem Art Workshop 에서 수업을 듣는다. 그는 재능을 인정 받아 American Artists School 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앤드루 와이어드는 1949 Christina’s World (크리스티나의 세상)이라는 작품을 뉴욕 현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에 넘긴 후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데, 로렌스는 1941년 그가 60장의 연작을 선보인 흑인 이주 연작 (Migration Series)’으로 스물 네 살의 젊은 나이에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앤드루 와이드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한 미술공부였지만,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린 것은 앤드루 와이드보다 한참 전이다. 그의 연작 12x18인치 사이즈의 판 60장에는 1917년부터 미국 남부지역의 흑인들이 미 북부 쪽으로 이동하는 광경과, 이들이 이주하여 어떤 일을 겪으며 정착해 나갔는가가 에피소드 별로 그려져 있다. 로렌스는 직접 그림 설명도 썼다. 그는 이 연작을 1940년에서 1941년까지 2년간 그렸다고 한다. 이 연작 시리즈는 소개 되자 마자 각계에서 놀라운 시선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1941년에 Fortune 지에서 이 작품들을 특집으로 소개 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맨하튼의 Downtown Gallery 에서 단독 전시회를 열게 되는데, 역사적으로 뉴욕에서 열린 흑인 화가 개인전은 이것이 최초였다고 한다.

 

이 시리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소장하려는 수집가들의 열기도 뜨거웠는데, 워싱턴의 Phillips Collection 과 뉴욕의 현대 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양측에서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절반씩 나눠 갖는 쪽으로 결론을 맺었다.  필립스 콜렉션이 1번부터 시작하는 홀수 번호 그림을 갖고, 현대미술관이 짝수 그림을 소장하게 되었다.

 

 

Norman Rockwell 관련 페이지에서 1960년대의 미국 흑인 인권 운동 관련 그림을 소개한 바 있는데, 그보다 4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1차 대전 직후부터 2차 대전 직전까지 미국 남부의 흑인들 중 많은 수가 일자리를 찾아 북부로 흘러 들어오게 된다. 60장의 연작 속에는 남부 농장의 목화밭도 그려지고, 린치로 살해당하는 흑인들도 그려진다. 북부에 올라와 자리 잡고 살만해지자 흑인들 주거지역을 습격하거나 폭파, 방화의 폭행이 자행되기도 하고, 여전히 흑백분리 차별을 받기도 하며, 심지어 같은 흑인이면서 이미 북부에 자리잡아 살고 있던 흑인 기득권층에게 소외 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런 흑인 수난의 역사야 다 알려진 것이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연작의 제작, 발표 시기를 보면 제이콥 로렌스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는지 가늠하게 된다. 흑인 인권 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이 I Have a Dream 을 외치며 인권운동의 날개를 펼친 것이 1963년 이었다. 1960년대에는 버스 보이콧, 식당에서의 보이콧 등 다양한 흑인 인권 운동이 각지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제이콥 로렌스는 그로부터 2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흑인들의 수난사를 60장의 그림에 담아 낸 것이다. 일찍이 어느 누가 특정 역사를 이런 연작으로 담아 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던가?  여기에서 그의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성을 찾아 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제이콥 로렌스는 1941년 함께 작업하던 미술가와 결혼하여 2000년 사망할 때 까지 해로했다. 1970년에 시애틀에 위치한 워싱턴 대학의 교수로 부임한 그는 시애틀에 정착하여 살았다.

 

2008년에 워싱턴의 필립스 콜렉션에서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하는 짝수 그림까지 모두 가져와서 전체 60장을 전시한적이 있다. 그 당시에 나도 가서 그림 구경을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내게 이 대단한 연작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었고, 단순히 흑인 그림인가보다 하고 지나치고 말았었다. 요즘 미국 미술에 대하여 생각을 하거나 자료를 찾아 보는 일이 많아지면서 제이콥 로렌스의 연작의 중대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며칠 전 필립스 콜렉션이 소장하는 홀수 번호로만 이루어진 작품 전시를 보러 갔다. 2층 구석 쪽의 방 두 개의 벽면에 30장의 그림이 번호 순서대로 전시 되어 있었다.

 

 

* 그림 크기는 가로그림이나 세로그림이나 모두 일정하다. 12x18 인치의 판 60장이 사용되었다.

 

 

 

(1)번 그림:

 

 

(3)번

 

 

(15)번

 

   "There were lynchings "  "린치도 당했습니다."

 

                                     (사진) 1925년 미국 흑인이 나무에 목이 매달린 장면.

                                           http://en.wikipedia.org/wiki/Lynching

 

 

사실 필립스 콜렉션에서 30장의 작품 사진을 다 찍어왔는데, 그 밑의 캡션 (제이콥 로렌스가 직접 썼다는 그림 설명 문구를 사진에 담아오지 않았다. 그림과 함께 캡션도 아주 중요한데...도서관에가서 관련 자료를 찾던가 아니면 다시 필립스 콜렉션에 가서 캡션까지 사진찍어 와서 삼십장의 그림과 그 캡션을 모두 소개하고 싶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32   워싱턴 필립스 콜렉션 소장 홀수 30편

http://americanart.textcube.com/79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품까지 포함한 총 60편 차례대로 정리.

 

 

 

2009년 8월 28일 금요일

Jacob Lawrence 를 취재하러 Phillips Collection 에 갔다가

 

  (왼쪽)  디씨 대사관로 인근의 필립스 콜렉션

                      (가운데)   Elizabeth Murray (1940-2007), The Sun and the Moon

                                                                             (오른쪽)     전시장에서 보이는 실제 작품 크기

 

                    

                        기념품샵에 진열된 만화경 (Kaleidoscope), 그 만화경으로 보이는 세상

 

 

 

Jacob Lawrence 의 Migration Series 를 취재하러 워싱턴 디씨 시내의 필립스 콜렉션 (Phillips Collection)에 나갔다 왔다. 오후에 일찌감치 퇴근하고.  제이콥 로렌스에 대하여 장문의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열었는데, 어쩐지 피곤해서, 내가 대충 써버리고 말까봐,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은 그냥 필립스 콜렉션에 나갔다 온것만 기록하고 만다.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Andrew Wyeth 신화가 된 여인 - 헬가

 

 

 

 

내게 앤드루 와이드 (1917-2009) Christina’s World (크리스티나의 세상), 아니 정확하게는 제니의 슬픔이라는 소설책의 표지그림으로 다가온 것은 극히 개인사적인 것이고, 이 화가가 일약 화제가 된 것은 아마도 그의 헬가 (Helga) 그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앤드루 와이드는 1986년 그의 지인 Leonard E.B.Andrews 에게 그가 15년간 그려 모아온 헬가라는 여인의 그림을 보여주는데, 액자까지 만들어진 완성작, 습작, 밑그림, 스케치 등을 모두 합하면 240여 점의 작품이 된다.  앤드루스씨의 회고를 읽어보면 그가 펜실베니아의 화가의 스튜디오에 초대받아 약 두 시간 동안 그림들을 둘러보고 나서 이것은 국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앤드루스씨는 이 모든 작품들을 한꺼번에 사들인다. 왜냐하면, 앤드루 와이드가 헬가 관련 그림들을 따로 따로 팔려나가는 것 보다는 한꺼번에 모여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역시 앤드루스씨도 이에 동의한다.

 

헬가 그림 작업은 1971, 당시 32세였던 이웃집 여인 헬가를 앤드루 와이드 (당시 55)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일설에는 헬가가 앤드루 와이드의 지인의 친구라고도 소개가 되는가 하면, 앤드루 와이드에 대해 악평을 하는 비평가들은 헬가가 앤드루 와이드의 처제네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였다고도 전한다.  어찌되었건, Helga Testorf (헬가 테스토프)라는 이 여인은 당시 프러시아 출신의 이민자로, 앤드루 와이드의 스튜디오가 있던 펜실베니아 농촌의 어느 농가에서 살아가며 남의 집 일을 돕기도 하던 평범한 삽십대 여인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누구네 집에서 어떤 계기로 조우했건, 장년으로 접어드는 화가의 눈에 헬가는 놀라움처럼 다가왔던 것 같다. 와이드는 헬가를 만난 것은 놀라운 행운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평범한 이웃집 여인, 이민자 아낙네 헬가는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모델 일을 시작하고, 그녀의 모델 생활은 15년간 이어진다.  내가 생각해보니 15년 사이에 32세의 여인은 47세의 중년으로 서서히 변화해 갔을 것이고, 55세의 장년 화가는 70세의 노화가가 되어 갔을 것이다.  헬가 그림 속의 여인은 주로 금발의 긴 머리칼을 가랑머리로 땋고 있고, 얼굴에 화장기가 없는 채로 수수하고 힘찬 동구권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206, Tempera,  18 1/8 x 26 7/8 inches 1980

                              (1980년이면 헬가가 41세때 그려진 것인데...)

 

 

헬가의 그림 시리즈 중에서 세인들의 눈길을 끌고 화제가 됐던 작품들은 아무래도, 그이의 누드 들일 것이다. 헬가 시리즈가 공개 되었을 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유는, 화가 앤드루 와이드가 헬가를 모델로 15년간이나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의 매니저 역할을 하던 충실한 조력자, 그의 부인(Betsy, 베씨)조차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헬가 시리즈는 워싱턴에 있는 미국의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단독 전시가 되고 이어서 각 지방에서 앞다투어 전시회를 열게 되는데, 어느 기자가 부인 베씨에게 헬가 그림들에서 발견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짓궂게 날렸던 모양이다. 그때 부인은 새촘하게 한마디하고 돌아섰다고 전해진다, “Love.”  부인의 한마디 ‘Love’는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어느 노화가와 모델의 15년간의 비밀스런 사랑과 예술 작업그리고 이를 시인할 수 밖에 없는 아내 베씨의 참담함 혹은 배신감, 혹은뭐 대충 이런 그림이 나오지 않는가?  사람들은 스캔들을 좋아한다. 그것이 어떤 식이건 우리들은 (당신과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스캔들에 목말라 있다. 결국, 평범한 시골 아낙, 이민자 아낙은 노화가의 스튜디오에서 출발하여 타임지 (Time)’의 표지를 장식하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는데, 화제의 헬가 시리즈를 1986 8 18일 타임 지에서 특집으로 실은 것이다.

 

 

어떤 기자는 이 헬가 소동사기 (hoax)’였다고 평하기도 한다. 헬가 그림은 앤드루 와이드가 앤드루스씨에게 공개하기 전에도 일부 몇 작품이 이전에 다른 전시회에 드문드문 소개가 된 적이 있었다고도 하고, ‘사랑타령은 이들이 날조해 낸 이야기인데, 언론사에서 낚싯밥을 물고 헬가 시리즈를 널리 홍보한 덕분에 헬가 그림을 한꺼번에 사들인 앤드루쓰씨가 돈방석에 올라 앉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미국을 한 바퀴 돌면서 선풍적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헬가 시리즈는 얼마 후 일본인 콜렉터에게 한꺼번에 팔려나갔다고 하는데, 앤드루쓰씨는 이로 인해 또다시 돈벼락을 맞았다는 후문이다. 헬가 시리즈는 현재 일본인이 소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9, Drybrush, 19 5/8 x 25 3/8 inches 1979

 

 

 

헬가의 그림들을 한 권의 화집으로 묶어 놓은 것이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는데, 일견 그림들을 넘겨보면 우선 아 참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계속 들여다보면, 따뜻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행복해진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여러 가지 느낌이 드는데, 우선 헬가가 모델로서건 혹은 숨은 연인으로서건 앤드루 와이드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이 보이므로, 그것이 부럽기도 하고, 누가 나를 이렇게 아름답게 봐줄까? 그런 쓸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름다움은 기본적으로는 보는 사람(beholder)의 몫이 아닌가? (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  늙어가는 길목의 화가 와이드는 헬가에게서 궁극의 아름다움을 발견 했을 텐데, 사실 그 궁극의 아름다움이란 헬가에게만 속한 것은 아닐 것이다. 헬가도, 나도, 이웃집 여인도 갖고 있는 아름다움, 그것을 화가는 헬가의 자태에서 찾아 읽고 그리고 그림으로 옮겼을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쓸쓸하면서도 행복한 그림 읽기가 되는 것이다. 이 시리즈 속에서 헬가는 길을 걷거나, 서있거나, 앉아있기도 하지만, 혹은 헬가의 딸이 잠시 모델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헬가는 누워있다. 누워서 자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환상처럼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햇살이 가득한 그림도 있다. 헬가가 눈을 감고 자는 듯한 스케치가 여기저기 많이 등장한다.  잠이든 헬가는 행복해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워있는 헬가는 얼핏 십대 소녀 같기도 하고, 이십 대 처녀 같기도 하고, 혹은 나이를 알 수 없는 어떤 여자로 보이기도 한다. 헬가 속에 그녀의 소녀시절과, 처녀 시절과, 중년이 모두 들어있다. 그리고 모두 아름답다. 바로 이 점이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중년의 여인을 묘사하면서, 그녀의 눈가의 주름까지도 선명하게 묘사하면서 와이드는 중년의 여성이 갖고 있는 신비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쯤서 나는 조금 안타까워진다. 앤드루 와이드는 이 시리즈를 1985년에 끝장을 낼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 그렸어야만 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헬가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그는 어떤 헬가를 그렸을까? 그것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헬가 시리즈는, 미국에서나, 혹은 한국에서나 화가가 15년간 감추고 그린 그림의 주인공이라는 면에서 크게 부각되고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앤드루 와이드의 그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화집들을 쌓아놓고 들여다보면, 이 헬가 스캔들은 어떤 면에서 스캔들이나 드라마를 원래 좋아하는 우리들을 위해 마련한 간식 같은 것으로 보인다. 사기(hoax)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대서특필할 무엇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헬가 시리즈를 그리던 시기뿐 이 아니라 그 이전, 그 이후에도 앤드루 와이드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웃 사람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으며, 마을 여인들을 모델로 한 누드들도 다양하게 그렸다. 그의 1948년작 Spring Evening 에서 그는 Evelyn 이라는 이웃집 흑인 여자가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을 그렸는데, 당시에 이웃집 여자 사라(Sarah)가 밖에서 외쳤다고 한다, “이블린, 앤디 선생 앞에서 딴짓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Evelyn, are you behaving yourself with Mr. Andy?” 이블린이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 속에서 악마가 몇 차례 일어났지만, 내가 바로 쓰러뜨렸어! The devil rose up in me a couple of times, but I slapped him right down again.”  앤드루 와이드의 전 생애와 그림을 살펴보면, 15년간 그려온 헬가가 특별한 모델이기는 했지만, 헬가만이 그의 모델을 했던 것은 아니고, 앤드루 와이드의 그림 속의 여인들은 모두 헬가처럼 소박하면서도 생명력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물론 여성뿐 아니라 그가 그린 이웃사람들, 대개 흑인들, 평범한 서민들의 모습 속에 앤드루의 애정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헬가 시리즈가 스캔들의 소재가 되었고, 바로 그 의도적인 스캔들 덕분에 헬가 원화와 판권을 소유했던 사람이 돈벼락을 맞았고, 헬가 시리즈는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었다는 평도 있긴 하지만, 헬가 시리즈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전문 평단에 맡기기로 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신비로운 헬가의 그림 외에 습작화, 밑그림, 혹은 거친 스케치까지 포함된 전체 240여 점을 그림책을 살핀 내 입장에서 헬가 시리즈는 경이이다. 15년간 한 여자를 세밀하게, 사랑을 가지고 그려나간 화가가 새삼스럽게 보이고, 그리고 그림 속의 헬가가 아름다워서 기쁘다. 헬가의 아름다움은, 내가, 당신이, 우리가 공유하는 아름다움이기도 하므로. 보잘것없는 이민자 여자, 남의 집 일을 도와주거나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나이를 먹어간 여자 헬가는 앤드루 와이드의 그림 속에서 신화가 되었다. 그 신화 속에 당신의, 나의 초상이 스며있을지도 모른다.

 

 

         Drybrush and Watercolor 23 x 28 inches (이 그림은 전체의 일부이다.)   1977

 

 

추신:

 1.  1986년에 240점쯤 되는 헬가 시리즈 (완성화, 습작, 스케치 포함)를 팔아치운 화가는 그 후에도 이따금 헬가를 모델로 한 그림을 선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2. 헬가는 스캔들과 상관없이 그후에도 계속해서 앤드루 와이드 집안 사람들의 친구로 살아갔다고 한다.

 3. 헬가 연작을 일본의 재벌이 사 들인고로,  미국의 미술관에서는 그 흔적을 찾기 힘들지만, 앤드루 와이드 뮤지엄에 가면 그 이전이나 이후에 와이드가 그린 헬가 그림이 있을지도 모르므로, 그것이 보이면 '사냥'을 하여  기록을 하겠다.

 

 

 

앤드루 와이드 참고 자료:

 

1. Andrew Wyeth Close Friends, Introduction by Betsy James Wyeth, Mississippi Museum of Art, Jackson, in Association with University of Washington Press, Seattle and London (2001)

2. Andrew Wyeth, The Helga Pictures, John Wilmerding, Deputy Director, Gallery of Art, Washington, Harry N. Abrams, Inc., Publishers, New York (1987)

3. Andrew Wyeth Memory & Magic, Anne Classen Knutson, Introduced by John Wilmerding, High Museum of Art, Atlanta. Philadelphia Museum of Art, in association with Rizzoli, New York (2006)

 

 

다음회에, 기운이 난다면 펜실베니아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와 미술관을 취재해와서 적어보겠다.  그리고 그의 미술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  (헬가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이를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우리들의 헬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