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3일 일요일

Brandywine River Museum 와이어드 뮤지엄

 

 

                    공식 홈 페이지: http://www.brandywinemuseum.org/

                   앤드루 와이어드 관련글: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Andrew%20Wyeth

 

소개

 

미국의 21세기 사실주의 화풍의 대표가 할 만한 앤드루 와이어드(Andrew Wyeth) (July 12, 1917 – January 16, 2009)는 크리스티나의 세상 (Christina’s World)라는 작품으로 한국인들에게 기억 될 것이다. 메인주(Maine)의 이웃집 여인 Christina Olsen 을 그린 그림이다.  앤드루 와이어드가 미국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그의 아버지 N.C.Wyeth (Newell Convers Wyeth: October 22, 1882 – October 19, 1945)는 책의 삽화가로 역시 자기 분야에서 대가로 인정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앤드루 와이어드의 아들 제이미 와이어드 (Jamie Wyeth) 역시 화가로 성장했다. 그러므로 근현대 미국 미술사를 보면 Wyeth 집안에서, 삽화가로 살아간 N.C.Wyeth 에서 앤드루 와이어드를 거쳐 제이미 와이어드에 이르는 3대에 걸친 미술가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 삼대에 걸친 화가집안을 기념하는 미술관이 브랜디와인 리버 미술관 (Brandywine River Museum)인데, 펜실베니아의 채즈 포드(Chadds Ford)지역에 있다.

 

워싱턴 디씨나 북버지니아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120마일 안팎의 거리인데, 델라웨어(Delaware)의 주도인 윌밍턴 (Wilmington)시에서도 인접해 있고, 필라델피아 (Philadelphia)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내가 이곳을 방문한 날은, 2009 9 12. 날이 잔뜩 흐려서 하늘에 회색 구름이 가득하고, 간간히 비가 내리기도 하는 날이었다. 하이웨이를 달리던 도중에 실수로 국도로 접어 들게 되었는데, 마침 델라웨어의 윌밍턴의 변두리를 통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미 이곳에서부터 브랜디와인 리버 (Brandywine River)라는 이름이 여기저기 표지판에 붙어 있었다. 이 일대를 흐르는 자그마한 강이 브랜디와인 강인듯 했다.  강이 브랜디와인처럼 흐른다니, 얼마나 향기로울지.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강의 이름에서부터 느낄수 있었다.

 

하이웨이에서 빠져나와 U.S. Route 1, (미국 1번 국도)를 따라 나즈막한 평야와 숲, 그리고 마을들을 통과하다보면 나타나는 표지판. Brandywine River Museum. 이 박물관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71년이라고 하는데, 현재 규모의 박물관이 개관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최근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이 아닐까 상상 할 뿐이다. 이 박물관 주변에는 앤드루 와이어드가 태어나 성장하고, 미술 공부를 하던 그의 아버지의 집, 그리고 아버지의 스튜디오가 있고, 또한 앤드루 와이어드가 좋아하던 이웃 크뤼너 (Kruener) 농장도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방문 당시 10달러, 생가와 스튜디오를 묶은 투어와 크뤼너 농장 투어가 각각 5달러씩 이었다. 일정상 나는 박물관과 생가, 스튜디오를 둘러보았는데, 나중에라도 다시 방문하여 크뤼너 농장도 살펴보고 싶다.  그런데 사실 이 주변을 살펴 보고 이웃집들, 농가주택들, 풍경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앤드루 와이어드가 사랑하던 풍경에 공감할 만 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전시장

 

박물관 1층에는 기념품 매점, 카페테리아, 전시실이 있고, 2층에는 미국 미술품들을 특별 전시하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미국의 풍경이라는 주제로 미국의 풍경화들이 전시 되어 있었는데, 미국미술 명문가답게 Winslow Homer를 위시한 대가들의 그림도 많이 보였다.  2, 미국의 초상전에서도 역시 Mary Cassatt 의 인물화 습작품을 위시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호레이스 피핀 (Horace Pippin)의 작품은 기도하기’ (Saying Prayers) 외에 두 점의 정물화가 있었고, 마침 삽화가이며 미술가였던 로크웰 켄트 (Rockwell Kent) 기획전도 하고 있어서, 켄트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볼 기회를 가졌다. 3층은 와이어드 집안을 위한 공간이다.  아버지 N.C.Wyeth 갤러리에 이어, 아들 앤드루 갤러리, 그리고 가장 구석에 손자 제미이 와이어드.  물론 나의 관심은 앤드루 와이어드에 있었으므로 앤드루 갤러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의 그림들을 감상했다.  화집에서 보던 그림들이 내 앞에 펼쳐져 있을 때, 보고 싶던 그림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라니.

 

 

 

 

미술관 건물의 특징

 

브랜디와인 리버 뮤지엄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박물관 입구로 들어설 때,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의 농가주택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거나, 혹은 한옥집에서 살아 본 사람이라면, 마치 자기의 집을 혹은 할머니댁에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들을지도 모른다. 박물관 건물의 구조가 전통적인 한옥의 건축양식을 닮았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고향집을 예로 들어보겠다.  우리집은 경기도의 일반적인 농가 주택이었는데, 바깥에 커다란 마당이 있어서 이를 바깥 마당이라고 했고, 사랑채에 대문이 이어져 있었다. 사랑채의 대문을 거쳐서 안마당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박물관도 그런 식이었다. 대문 통과하면 앞마당 있고, 그리고 미술관 본채가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미국식 건축양식이 아니다. 나는 이 미술관의 대문을 통과하여 앞마당을 지나칠 때, 내 고향집에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인테리어 역시 일반적인 미국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차이가 났다.  예를 들어서 필립스 콜렉션(Phillips Collection)의 경우, 미국의 부호가 사용하던 개인 주택을 갤러리로 개조했으므로 미국식 부잣집 내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브랜디와인 리버 뮤지엄의 내부는 한옥을 연상시켰다. 투박하고 굵직한 원목 기둥이 그대로 드러나있고, 전시장 내부 바닥을 마루로 깔았으며, 매끄럽지 않은 울퉁불퉁한 흰 회벽처리를 해 놓았다. 분명 현대적으로 설계된 건물이지만 갤러리들을 돌아 다닐 때의 느낌은 내 집처럼 아늑하고 편안하다는 것이었다.

 

브랜디와인 리버 강, 혹은 집 옆을 흐르는 개울

 

 

 

뮤지엄 건물의 한쪽 벽은 유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유리벽은 잔잔히 흐르는 브랜디와인 강을 내려다보도록 설계가 되었다. 미술관에서 갤러리를 이동할 때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유리벽 바깥의 강과 강 주변 풍경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런데 브랜디와인 강은 강이라고 부르기엔 작아보이는, 개울 보다는 좀 커보이는, 딱 청계천 정도의 규모였는데, 자그마한 강 혹은 개울이 집앞에 흐르는 형상이라, 소박하고 정다워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한강이나 포토맥강처럼 규모가 큰 강을 앞에 두고 있을때와, 헤엄쳐 건널정도의 자그마한 하천, 개울을 보고 있을때의 느낌은 다르다. 큰 강이 압도적이라면 작은 하천은 소박한 평화를 선물한다.  브랜디와인 강은 고향의 앞개울같이 정답게 흐르고 있었다.

 

 

 

앨범

 

갤러리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어서, 열망하던 작품들을 사진에 담아 올수 없어 아쉬웠다. 앤드루 와이어드 갤러리에서 Lovers 그림이 있는 갤러리 풍경을 '한 장' 찍었다. (경비의 눈을 피해서). '사냥꾼'이 사냥을 한듯, 혹은 낚시꾼이 물고기를 잡은 듯 잠시 유쾌.  헬가의 누드 Lovers.

 

 

 

 

 

 

 

와이어드의 생가, 와이어드 집안의 스튜디오 (다음 페이지에)

2009년 9월 12일 토요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Andrew Wyeth 의 고향 마을에 세워진 펜실베니아의 Brandywine River Museum 에 다녀왔다. 뮤지엄 리뷰는 다음에 정리하기로 하고, 오늘은 짤방.  Jamie Wyeth 의 '돼지' 그림에 '이발소' 스타일로 '이발소 그림'에 어울리는 푸쉬킨의 시를 입혀 보았다.

 

 

 

뮤지엄 건물 밖, 브랜디와인 강변에 이 돼지와 동일한 청동 작품이 서 있다.  돼지가 정말 실제 돼지 크기였는데, 들여다볼수록 사랑스러웠다.  돼지는 '재복'의 상징이 아닌가.  "돼지야 돼지야, 내게 행운을 듬뿍 갖다줘 응?"

 

 

 

Brandywine River Museum 리뷰는 다음에...

2009년 9월 11일 금요일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오후에 일찌감치 퇴근하는 길에 메트로를 타고 내셔널몰로 갔다.  National Gallery of Art 에 가서 요즘 내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작가들의 작품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뮤지엄 설명은 생략하고, 오늘 찍은 사진만 올리겠다. 다음에는 뮤지엄에 대한 소개글을 써야겠다.

 

 

 

 

 

Horace Pippin: 이발소 그림과 올드 블객조

 

 

이발소 그림

 

이발소 그림이라는 것이 있다. 이발소 그림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사전적 정의를 알 길은 없지만, 대개는 대충 그려진 상업화 수준의 그림을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보통의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그러하듯 연필로 종이게 뭔가 끄적이거나 그리기를 좋아했고, 이런 심심풀이 그림 그리기 취미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그래서 어릴 적에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하고 물으면 대충 우물거리며, “미술가혹은 소설가라고 대꾸하곤 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공책에 이야기를 쓰고 그리고 직접 삽화를 그리기를 좋아했으므로.  그러나, 이런 내 취미는 그냥 평범한 아이들이 함 직한 평범한 낙서 수준이었고, 나의 미술 보는 안목은 딱 내 수준 그대로였다.

 

나의 이런 유치함과는 달리, 내 주변에는 미술에 안목이 높은 분들도 많이 있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자신이 안목이 높다고 스스로 판단을 하셨던 것 같다.  미술 대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교수들이 아버지의 친구들이었고, 그래서 우리 집에 한국 현대미술가들의 작품들도 여럿 있고 그랬으므로, 아버지의 자부심을 이해 할 만도 하다. 아버지는 좀 시시해 보이는 그림에 대해서는 이발소 그림이라고 명쾌한 판단을 내리셨는데, 하필 나는 매우 반항적인 청소년기를 거치고 있었으므로 아버지의 그 이발소 그림이라는 어휘가 내 귀를 때릴 때마다 불끈불끈 반감이 치솟곤 했다. 그 결과, 나는 아주 맹렬한 이발소 그림의 변호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거의 모든 종류의 그림을 좋아했다. 우리 집 서가에 꽂혀있던 일본제 세계명화집들속의 대단한 화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보기도 좋아했지만, 심지어 싸구려 잡지의 삽화도 좋아했고, 눈에 띄는 삽화나 싸구려 그림도 닥치는 대로 좋아했다. 가끔 시장을 지나다 보면 길거리에 액자를 늘어놓고 판매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길거리의 그림들, 천편일률적인 한국의 풍속화 혹은 정물화, 정체를 알 수 없는 풍경화들을 들여다보는 일도 내게는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별로 문화 예술적인 배경지식이 없는 보통사람들의 집에 가보면, 덩그런 아파트의 거실 벽에, 분명 상업화가가 그렸을, 지금은 잊혀진 시골 풍경, 물동이 이고 가는 한복 입은 여인네, 지게지고 가는 남정네, 개울에서 빨래하는 아낙, 코스모스 뭐 이런 것들이 어우러진 풍경화가 있는데, 글쎄 그 그림을 일년 사시사철 들여다보자면 어딘가 싫증이 날 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다 손님으로 방문하여 이런 그림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그런다. 그리고 나의 이런 취향은 내가 꽤 유명하다는 미국의 대형 미술관들을 취미 삼아 돌아다니며 보고, 책을 들여다보며 연구를 해도, 그다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촌스럽고, 내 안목은 여전히 천박하여, 나는 여전히 이발소 그림이 좋고, 남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칭송을 해도 내가 아니다 싶으면 별로 관심을 표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내 극히 촌스러운 안목에 들어온 이가 Grandma Moses 라고 일컬어지는 http://americanart.textcube.com/16   http://americanart.textcube.com/17    '모세 할머니의 그림이었는데, 이에 필적하는 그림을 나는 어느 날 Smithsonian National American Art Museum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 미술관)에서 조우하게 되었다.

 

Old Black Joe

 

 

 

 

Horace Pippin

Old Black Joe
1943
oil
24 x 30 inch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Museum

이 그림을 들여다보면, 멀리 흰 목화밭이 보이고, 흰 칠을 한 농가주택의 입구에는 드레스를 입은 백인 여성이 서있다. 그리고 전면의 나무 벤치에는 수염과 머리, 눈썹이 목화처럼 흰 흑인 노인이 앉아 있는데, 저 만치에 백인 소녀가 꽃을 따며 놀고 있고, 노인과 소녀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옛날에 한국의 시골에서, 아낙들이 밭에서 일을 할 때, 아기를 나무 밑 그늘에 눕혀 놓거나, 혹은 가만히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앉혀 놓곤 했었다.  어떤 이는 아이를 강아지처럼 허리를 묶어 나무에 묶어 놓기도 했다.  아이가 혼자 밭 근처를 기어 다니다가 밭 아래 물에 빠지거나 논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그림 속의 흑인 노인은 주인집 백인 소녀를 끈으로 묶어 보호를 하고 있는 듯 하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목화 솜같이 희게 피어 오르고 목화 꽃은 하얗게 피었고, 노인의 수염도 목화처럼 희다. 이 그림을 보면서, 아니 이 그림을 읽으면서어떤 이는 흑인 노예의 지팡이 끝에 묶여 있는 백인 소녀, 이 둘의 관계가 역설적이라고 평하기도 하고, 노예 해방 이후의 새로운 관계정립이 아닌가 해석하기도 한다. 해석이야 보는 사람 각자 하는 문제이고, 이 그림을 그린 Horace Pippin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그는 Old Black Joe 라는 포스터 Stephen Foster, 1860 (1826-1864)’의 노래에서 이 그림의 모티브를 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노래 Old Black Joe (올드 블랙 조)를 기억하시는가? 나는 지금도 내가 어릴 적 불렀던 그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다

 

 그리운 날 옛날은 지나가고 들에 놀던 친구 간 곳 없으니, 이 세상에 낙원은 어디 이뇨 블랙 조 널 부르는 소리 슬프다……

 

 노래: Old Black Joe 원문과 해석

 

1

Gone are the days
When my heart was young and gay.
Gone are my friends
From the cotton fields away.
Gone from this place,
To a better land I know.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내 가슴이 젊고 발랄하던 시절은 가고 없어라

저 멀리 목화밭의 내 친구들도 가고 없어라

여기보다 더 좋은 세상으로 가고 말았어라

그리고 이제 나는 그들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 늙은 검둥이 조를 부르는 소리를 듣노라



Chorus:
I'm coming, I'm coming
For my head is bending low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후렴:

그래 나도 가네, 나도 가네

이제 나도 구부정하여 고개도 수그러지네

그들이 이 늙은 검둥이 조를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네

 

2

Why do I weep
When my heart should feel no pain
Why do I sigh
That my friends come not again
Grieving for forms
Now departed long ago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이제 가슴이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데 운들 무엇 하나

친구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숨지은들 무엇 하나

형식적으로 애도하던 것도 오래 전의 일이라네

이제 나는 이 늙은 검둥이 조를 부르는 부드러운 음성을 듣는다네

3.
Where are the hearts
Once so happy and so free
The children so dear
That I held upon my knee
Gone to the shore
Where my soul has longed to go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한때 그토록 행복하고 자유롭던 가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내 무릎 위에 안아주던 사랑스런 아이들도

벌써 내가 가고 싶어하던 피안의 기슭으로 가버렸지

나는 그들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는 소리를 듣네.

 

 

가사를 해석하며 들여다보니, 흑인 가 나이가 들어 먼저 떠난 친구, 아이들을 그리면서 저승에서 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는 내용이다. 한편 쓸쓸하기도 하고 한편 따뜻하기도 하다. 혼자 남은 사람의 쓸쓸함과, 죽음을 관조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노인을 상상하니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Pippin과의 만남

 

내가 2008 5월 어느 날 미술관에서 처음 이 그림을 접한 후, 이곳에 갈 때마다 그림 앞에 서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이리저리 찍어보려고 시도를 하거나, 혹은 그림을 들여다보며,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 그림을 그리고 이 제목을 달은 걸까? 궁금해 하던 그 순간, 어쩌면 내 머릿속에는 아주 오래된, 올드 블랙 조 노래의 멜로디가 흐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그림의 제목을 읽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포스터의 그 슬프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떠올리면서 그림에 빠져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국 미술에 대한 상식이나 교양, 회화에 대한 교양인적 지식,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은 그림에 대한 교양하고는 상관없이 누구나 다가가서 볼 수 있고, 그리고 얼핏 보기에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미술대학에서 혹은 미술학원에서 그림 공부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어쩐지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사람의 그림 같다. 그런데, 그런 그림 한 장이 내 발길을 오래오래 묶어 놓고 있었다. 나는 혼자 종알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발소 그림 같아 보여. 그런데 참 좋아.’ 

 

 

 

당시 나는 Pippin이 누구인지 몰랐다. 막연하게나마 그림의 대체적인 색감이 어둡다는 것과 (흰 구름, 흰 목화밭이 환하게 그려져 있었지만 어딘지 색감이 어둡고 수상쩍었다), 그림의 주인공이 흑인인 것을 감안하여 대강 흑인 작가의 그림 일 것이라는 상상을 했을 뿐이었다.  그 후에 나는 필립스 콜렉션에서 또다시 매우 매력적인 그림을 만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동일한 작가의 그림이었던 거다.

 

 

(다음에 그 그림과 Horace Pippin 을 소개하는 글을 적어 보겠다)

 

september 11, 2009. fox

 

덧글: 뭐 내가 Horace Pippin 의 그림을 '이발소 그림'으로 보는 것도 그리 무리스러운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략 1933년에 그려졌을거라 추정되는 Pippin 의 Buffalo Hunt (들소 사냥)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피핀은 그 그림을 동네 '이발소'집에 주었다 (피핀은 가게에서 물건 사고 돈 내는 대신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대신 지불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발비 대신에 그림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그림은 수년간 그 '이발소'에 걸려있었다.  그런데 그 그림이 '이발소'벽에 수년간 매달려있던 사연이 또 딱한것이,  이발소집 부인이 그 그림을 집에 놓고 보기 싫어했으므로 하는 수 없이, 이발소 벽에~  하하하.

 

피핀이 뉴욕 화단에 소개 되기 전까지, 그는 '이발소 화가'였던거다.

 

                                     문제의 그 이발소 그림

 

http://americanart.textcube.com/45 이어지는 글

Edward Hopper & Alfred Hitchcock 호퍼와 히치코크

http://americanart.textcube.com/36  에 이어서  (에드워드 호퍼를 한 챕터 정리 할 생각인데, 다른 일들이 밀려 있어서, 생각나는 대로 단편만 일단 쓰다가, 나중에 종합시킬때 포함 시킬까 한다. 역시 나는 게을러.)

 

http://americanart.textcube.com/36

 

  Edward Hopper (July 22, 1882 – May 15, 1967)     Alfred Hitchcock (13 August 1899 – 29 April 1980)

 

 

 

에드워드 호퍼는 평생 검소하게 (한번 산 옷은 다 떨어질때까지) 산 사람인데, 이 자폐적일 정도로 비사교적이고 조용한 화가가 즐겨가던 곳이 영화관이었다고 한다. 1925년 그는 House by the Railroad (기찻길옆 집)을 발표했는데 1960년 Alfred Hitchcock 가 영화 Psycho (싸이코)를 제작하면서, 그 역사에 길이 남을 싸이코의 음산한 집의 디자인 이미지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빌려온다.

 

 

 

에드워드 호퍼의 House by Railroad 는 그당시 미국이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집앞에 기찻길이 생기고, 숲이 사라지고, 그렇게 살풍경이 된 것을 묘사한 것인데, 그 '살풍경,' '을씨년스러움'이 알프레스 히치코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듯 하다. 1961년에 알프레드 히치코크는 이 세팅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를 했고, 그 소식이 이제 팔순에 가까운 노화가에게 전해졌을때, 노화가는 무척 기쁜 표정이었다고 한다.  그의 평생의 취미가 '영화'감상이었는데, 그 영화속에 자신의 그림이 재연되었으니, 새삼 흐뭇했을 것이다.

 

 

fox

[퀴즈] Edward Hopper 의 두장의 그림

 

퀴즈:  위에서 왼쪽에 있는 그림은 Chicago Art Institute 에 가면 볼 수 있는 Edward Hopper 의 Night Hawks 라는 그림이고,  오른쪽은, 뉴욕 맨해턴에 있는 Whitney American Art Museum 에 가면 볼 수 있는 Early Sunday Morning 이라는 작품이다.  이 두작품의 연관성을 찾아 보시길. (물론 에드워드 호퍼가 그렸다는 것, 미국의 풍경이라는 것, 이런 공통점이 있는데, 그림을 보면 발견되는 또다른 연관성은?)

 

 

2008년 여름,  '일요일 이른 아침'은 7월에 뉴욕에서, '나이트 호크'는 8월에 시카고에서 봤는데...각기 다른 장소에서 이 그림들을 봤을땐 안보이던 것이, 화집으로 들여다보니까,  보인다...

 

에드워드 호퍼 연구 하다가 문득 발견. --fox.

2009년 9월 10일 목요일

미국 다시보기

미국 미술 전문 블로그를 열어놓고 앉아 있으니, 공연히 마음이 분주해진다. 아 그동안 뭣 했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산발적으로 '구경'하고 돌아다니며 산발적으로 모은 지식을 체계화 해야 한다는 숙제, 과제, 과제에 대한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

 

그 사이의 변화라면, 내가 미니 디지털 카메라를 집어 던지고 제법 묵직한 전문가용 DSLR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아, 카메라가 뭔지도 모르는 나를 위하여 카메라를 조합하여 대신 사다주면서, 이거면 앞으로 10년간 싫증 안느끼고 찍어댈수 있을거다-라고 장담하던 사진 전문가가 있었지만...나는 아직도 내 카메라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알지 못하다), 카메라를 바꿔보니 미술관에서 찍는 사진 상태가 한결 좋아져서 흡족.

 

음, 내 계획은, 미술관에서 작품 사진 찍을때,  '액자'까지 온전히 찍어서, 그 그림이 어떤 액자에 끼워져 있는지까지 전달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누가 찍었는지 알 수 없는, 혹은 나중에 소송들어오면 꼼짝 없이 '잘 못 했어요' 하고 싹싹 빌어야 하는 무단 빌려오기 사진 말고,  내가 찍은 사진으로 내 블로그를 채우겠다는 것인데.  내가 얼마나 잘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매일 연구실에 나와 앉아서, 각종 미술관 행사를 체크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만...아...내가 연구 안한다고 세상이 뒤집어질것도 아니고, 이런 변명을 하면서 나는 매일 미술관 생각만 하고 있다.  내일은 국립 미술관에 가서 사진을 찍어오고 싶고, 앤드루 와이드 뮤지엄에는 토요일에 가 볼 것이고, 일요일엔 코코란이라도 들러서 근황을 살피고 싶다는 엄청난 계획을 세워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