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미술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미술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9년 9월 18일 금요일

Philip Guston (필립 거스톤) 특별전

 

                        http://www.nga.gov/press/special/tower/guston09/index.shtm

 

 

워싱턴 디씨의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http://americanart.textcube.com/41   ) 에서 2009년 1월부터 1년간 필립 거스톤 (Philip Guston (1913-1980)의 특별전을 열고 있다.  위치는 동관 (East Building)의 Tower Gallery. 

 

필립 거스톤은 Jackson Pollock, Willem De Kooning 과 더불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 화풍의 기수였으며 후기에는 '신표현주의 (Neo-expressionism)'으로 선화하기도 하였다.  추상표현주의나 신표현주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이어지는 페이지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다뤄보기로 하겠다.

 

 

1913년 캐나다 몬트리올 태생의 필립 거스톤은 가족을 따라 어린 시절 캘리포니아의 로스 엔젤레스로 이주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11세이던 1924년 목을 매 자살을 하고, 어린 필립은 아버지의 자살 현장을 목격한다. 그가 14세 되던 1927년 Los Angeles Manual Arts High School 에 입학하여 Jackson Pollock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가 미술보다 스포츠를 더 많이 지원한다고 항의했다가 퇴학조치를 당하고 만다. 폴락은 그 후에 학교로 복귀했지만, 거스톤은 고등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후에 Otis Art Institute in L.A. 에서 1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미술 공부를 하게 된다. 그가 1년만에 오티스 미술 학교를 집어 치운 이유는 학교에서 석고상을 그리는 식으로 그림 공부를 하도록 지도하는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그는  왜 석고상만 그려야 하는가  반발하여 어느날 밤새도록 실기실에서 석고상을 스케치하여 실기실 바닥을 그의 습작으로 뒤덮어 버린후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이 그가 받은 미술 교육의 전부였다. 그후로 그는 스스로 그의 미술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비록 정규 미술 교육을 제대로 마치지 않았지만,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정규 미술 교육 과정의 지도자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University of Iowa (1941-1945)에서 교수를 했고, 미주리 주에 위치한 Washington University at St. Louis, New York University, Pratt Institute 에서도 후진을 양성했다.

 

본래 그의 부모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유태인이었고 유태인 탄압을 피해 북미 캐나다로, 그후에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유럽에서 유태인에 대한 탄압을 피해 북미로 왔지만, 북미가 유태인들에게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소년시절 거스톤은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나는 Ku Klux Klan (일명 KKK단, 혹은 Klan)의 폭력에 노출되어  심리적으로 위협받고 있었다. 실제로 학교에서 미국태생의 학생들로부터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흔히 KKK단의 주요 공격대상이 '남부 흑인'인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KKK 관련 내용을 좀더 뒤져보거나 미국사 책을 뒤져보면 KKK단이 인종청소를 감행하려 했던 '나찌즘'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백인이 아닌 거의 '모든' 인종들에 대하여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 주요 공격대상이 흑인들이었지만, 그 외에도 아시아계, 유태계, 히스패닉계 역시 이들의 공격 내지는 '화풀이' 대상이었다. 

 

그의 부모가 유태계였으며, 미국에서 KKK의 위협에 시달렸던 흔적이 그의 미술세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여기저기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KKK단 복장을 한 인간의 모습이 여기저기 나타나는가 하면 나찌의 유태인 학살장면을 연상케 하는 무수한 '신발들'이 포개진 그림들. 

 

국립 미술관에 모아진 필립 거스톤의 유화 대작들과, 리토그래프 작품들을 이리저리 감상하면서 얼핏 스치는 생각은, 어딘가 불안하고 우울하다는 것이다. 알수 없는 불안함. 편하지 않음.  그러나 한편 낙관적임.  뭐랄까 불안을 극복한 사람이 보이는 상처투성이의 미소라고 할까?  원래 그림 감상은 감상자의 투사에서 시작하는 것이므로 정작 불안한 것은 그림들이 아니라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와 필립 거스톤과의 첫번째 만남이었다. 후에 공부를 하면서 그의 미술 세계에 대한 리뷰를 적어나가겠다.

 

이어지는 사진들은 전시회에 진열된 '전 작품' 그리고 전시실 구석에 마련된 필립 거스톤 관련 6분짜리 영상자료를 내가 사진으로 찍어본 것 들이다.  (아직 사진기술이 서툴러서 그림이 삐뚤어지고 그랬지만, 내 눈으로 본것을 블로그에 올린다.)

 

 

 

 

 

 

 

 

 

 

 

 

 

 

 

 

 

 

 

 

 

 

 

 

 

 

 

 

동영상 화면 사진

 

2009년 9월 11일 금요일

Horace Pippin: 이발소 그림과 올드 블객조

 

 

이발소 그림

 

이발소 그림이라는 것이 있다. 이발소 그림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사전적 정의를 알 길은 없지만, 대개는 대충 그려진 상업화 수준의 그림을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보통의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그러하듯 연필로 종이게 뭔가 끄적이거나 그리기를 좋아했고, 이런 심심풀이 그림 그리기 취미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그래서 어릴 적에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하고 물으면 대충 우물거리며, “미술가혹은 소설가라고 대꾸하곤 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공책에 이야기를 쓰고 그리고 직접 삽화를 그리기를 좋아했으므로.  그러나, 이런 내 취미는 그냥 평범한 아이들이 함 직한 평범한 낙서 수준이었고, 나의 미술 보는 안목은 딱 내 수준 그대로였다.

 

나의 이런 유치함과는 달리, 내 주변에는 미술에 안목이 높은 분들도 많이 있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자신이 안목이 높다고 스스로 판단을 하셨던 것 같다.  미술 대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교수들이 아버지의 친구들이었고, 그래서 우리 집에 한국 현대미술가들의 작품들도 여럿 있고 그랬으므로, 아버지의 자부심을 이해 할 만도 하다. 아버지는 좀 시시해 보이는 그림에 대해서는 이발소 그림이라고 명쾌한 판단을 내리셨는데, 하필 나는 매우 반항적인 청소년기를 거치고 있었으므로 아버지의 그 이발소 그림이라는 어휘가 내 귀를 때릴 때마다 불끈불끈 반감이 치솟곤 했다. 그 결과, 나는 아주 맹렬한 이발소 그림의 변호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거의 모든 종류의 그림을 좋아했다. 우리 집 서가에 꽂혀있던 일본제 세계명화집들속의 대단한 화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보기도 좋아했지만, 심지어 싸구려 잡지의 삽화도 좋아했고, 눈에 띄는 삽화나 싸구려 그림도 닥치는 대로 좋아했다. 가끔 시장을 지나다 보면 길거리에 액자를 늘어놓고 판매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길거리의 그림들, 천편일률적인 한국의 풍속화 혹은 정물화, 정체를 알 수 없는 풍경화들을 들여다보는 일도 내게는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별로 문화 예술적인 배경지식이 없는 보통사람들의 집에 가보면, 덩그런 아파트의 거실 벽에, 분명 상업화가가 그렸을, 지금은 잊혀진 시골 풍경, 물동이 이고 가는 한복 입은 여인네, 지게지고 가는 남정네, 개울에서 빨래하는 아낙, 코스모스 뭐 이런 것들이 어우러진 풍경화가 있는데, 글쎄 그 그림을 일년 사시사철 들여다보자면 어딘가 싫증이 날 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다 손님으로 방문하여 이런 그림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그런다. 그리고 나의 이런 취향은 내가 꽤 유명하다는 미국의 대형 미술관들을 취미 삼아 돌아다니며 보고, 책을 들여다보며 연구를 해도, 그다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촌스럽고, 내 안목은 여전히 천박하여, 나는 여전히 이발소 그림이 좋고, 남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칭송을 해도 내가 아니다 싶으면 별로 관심을 표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내 극히 촌스러운 안목에 들어온 이가 Grandma Moses 라고 일컬어지는 http://americanart.textcube.com/16   http://americanart.textcube.com/17    '모세 할머니의 그림이었는데, 이에 필적하는 그림을 나는 어느 날 Smithsonian National American Art Museum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 미술관)에서 조우하게 되었다.

 

Old Black Joe

 

 

 

 

Horace Pippin

Old Black Joe
1943
oil
24 x 30 inch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Museum

이 그림을 들여다보면, 멀리 흰 목화밭이 보이고, 흰 칠을 한 농가주택의 입구에는 드레스를 입은 백인 여성이 서있다. 그리고 전면의 나무 벤치에는 수염과 머리, 눈썹이 목화처럼 흰 흑인 노인이 앉아 있는데, 저 만치에 백인 소녀가 꽃을 따며 놀고 있고, 노인과 소녀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옛날에 한국의 시골에서, 아낙들이 밭에서 일을 할 때, 아기를 나무 밑 그늘에 눕혀 놓거나, 혹은 가만히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앉혀 놓곤 했었다.  어떤 이는 아이를 강아지처럼 허리를 묶어 나무에 묶어 놓기도 했다.  아이가 혼자 밭 근처를 기어 다니다가 밭 아래 물에 빠지거나 논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그림 속의 흑인 노인은 주인집 백인 소녀를 끈으로 묶어 보호를 하고 있는 듯 하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목화 솜같이 희게 피어 오르고 목화 꽃은 하얗게 피었고, 노인의 수염도 목화처럼 희다. 이 그림을 보면서, 아니 이 그림을 읽으면서어떤 이는 흑인 노예의 지팡이 끝에 묶여 있는 백인 소녀, 이 둘의 관계가 역설적이라고 평하기도 하고, 노예 해방 이후의 새로운 관계정립이 아닌가 해석하기도 한다. 해석이야 보는 사람 각자 하는 문제이고, 이 그림을 그린 Horace Pippin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그는 Old Black Joe 라는 포스터 Stephen Foster, 1860 (1826-1864)’의 노래에서 이 그림의 모티브를 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노래 Old Black Joe (올드 블랙 조)를 기억하시는가? 나는 지금도 내가 어릴 적 불렀던 그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다

 

 그리운 날 옛날은 지나가고 들에 놀던 친구 간 곳 없으니, 이 세상에 낙원은 어디 이뇨 블랙 조 널 부르는 소리 슬프다……

 

 노래: Old Black Joe 원문과 해석

 

1

Gone are the days
When my heart was young and gay.
Gone are my friends
From the cotton fields away.
Gone from this place,
To a better land I know.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내 가슴이 젊고 발랄하던 시절은 가고 없어라

저 멀리 목화밭의 내 친구들도 가고 없어라

여기보다 더 좋은 세상으로 가고 말았어라

그리고 이제 나는 그들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 늙은 검둥이 조를 부르는 소리를 듣노라



Chorus:
I'm coming, I'm coming
For my head is bending low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후렴:

그래 나도 가네, 나도 가네

이제 나도 구부정하여 고개도 수그러지네

그들이 이 늙은 검둥이 조를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네

 

2

Why do I weep
When my heart should feel no pain
Why do I sigh
That my friends come not again
Grieving for forms
Now departed long ago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이제 가슴이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데 운들 무엇 하나

친구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숨지은들 무엇 하나

형식적으로 애도하던 것도 오래 전의 일이라네

이제 나는 이 늙은 검둥이 조를 부르는 부드러운 음성을 듣는다네

3.
Where are the hearts
Once so happy and so free
The children so dear
That I held upon my knee
Gone to the shore
Where my soul has longed to go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한때 그토록 행복하고 자유롭던 가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내 무릎 위에 안아주던 사랑스런 아이들도

벌써 내가 가고 싶어하던 피안의 기슭으로 가버렸지

나는 그들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는 소리를 듣네.

 

 

가사를 해석하며 들여다보니, 흑인 가 나이가 들어 먼저 떠난 친구, 아이들을 그리면서 저승에서 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는 내용이다. 한편 쓸쓸하기도 하고 한편 따뜻하기도 하다. 혼자 남은 사람의 쓸쓸함과, 죽음을 관조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노인을 상상하니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Pippin과의 만남

 

내가 2008 5월 어느 날 미술관에서 처음 이 그림을 접한 후, 이곳에 갈 때마다 그림 앞에 서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이리저리 찍어보려고 시도를 하거나, 혹은 그림을 들여다보며,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 그림을 그리고 이 제목을 달은 걸까? 궁금해 하던 그 순간, 어쩌면 내 머릿속에는 아주 오래된, 올드 블랙 조 노래의 멜로디가 흐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그림의 제목을 읽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포스터의 그 슬프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떠올리면서 그림에 빠져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국 미술에 대한 상식이나 교양, 회화에 대한 교양인적 지식,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은 그림에 대한 교양하고는 상관없이 누구나 다가가서 볼 수 있고, 그리고 얼핏 보기에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미술대학에서 혹은 미술학원에서 그림 공부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어쩐지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사람의 그림 같다. 그런데, 그런 그림 한 장이 내 발길을 오래오래 묶어 놓고 있었다. 나는 혼자 종알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발소 그림 같아 보여. 그런데 참 좋아.’ 

 

 

 

당시 나는 Pippin이 누구인지 몰랐다. 막연하게나마 그림의 대체적인 색감이 어둡다는 것과 (흰 구름, 흰 목화밭이 환하게 그려져 있었지만 어딘지 색감이 어둡고 수상쩍었다), 그림의 주인공이 흑인인 것을 감안하여 대강 흑인 작가의 그림 일 것이라는 상상을 했을 뿐이었다.  그 후에 나는 필립스 콜렉션에서 또다시 매우 매력적인 그림을 만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동일한 작가의 그림이었던 거다.

 

 

(다음에 그 그림과 Horace Pippin 을 소개하는 글을 적어 보겠다)

 

september 11, 2009. fox

 

덧글: 뭐 내가 Horace Pippin 의 그림을 '이발소 그림'으로 보는 것도 그리 무리스러운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략 1933년에 그려졌을거라 추정되는 Pippin 의 Buffalo Hunt (들소 사냥)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피핀은 그 그림을 동네 '이발소'집에 주었다 (피핀은 가게에서 물건 사고 돈 내는 대신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대신 지불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발비 대신에 그림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그림은 수년간 그 '이발소'에 걸려있었다.  그런데 그 그림이 '이발소'벽에 수년간 매달려있던 사연이 또 딱한것이,  이발소집 부인이 그 그림을 집에 놓고 보기 싫어했으므로 하는 수 없이, 이발소 벽에~  하하하.

 

피핀이 뉴욕 화단에 소개 되기 전까지, 그는 '이발소 화가'였던거다.

 

                                     문제의 그 이발소 그림

 

http://americanart.textcube.com/45 이어지는 글

2009년 9월 7일 월요일

The Phillips Collection 워싱턴 디씨, 필립스 콜렉션

The Phillips Collection 필립스 콜렉션

 

며칠 전에 워싱턴을 방문한 친구에게 어디를 가 보고 싶은가?’ 물었더니 필립스 콜렉션이라고 대답한다. 워싱턴 디씨에는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도 있고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 미술관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도 있고 허시혼 미술관등 국립미술관들이 수두룩 한데 이 친구는 그 큰 미술관들을 젖히고 필립스 콜렉션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필립스 콜렉션이 아마도 암암리에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모양이라고 짐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친구에게 일단 국립 미술관 급의 큼지막한 것들을 보고, 그냥 양념 삼아서, 혹시 구경하다 시간 여유가 되면 필립스 콜렉션에 가보라고 조언 해 주었다. 큼지막한 미술관에 가면 세계적인 명작들이 뜨르르 하게 걸려있어 온 종일 봐도 다 못 볼 지경인데, 개인 소장품을 전시한 필립스 콜렉션에서 귀한 시간을 보내 버리면 어렵게 온 길이 좀 아깝지 않겠는가?

 

 

 

 

필립스 콜렉션은, 워싱턴 디씨에 위치한 개인 소장품 미술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니까 국립 미술관 급에 비하면 아주 작은 미술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필립스 콜렉션의 규모 자체가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은 아니다.

 

 

 

필립스 콜렉션은 미국의 은행, 철강, 유리 산업의 재벌로 알려진 Phillips 집안이 일군 것이다.  Duncan Clinch Phillips (1838 – 1917)씨가 사망했을 때, 그의 아들인 Duncan Phillips (1886–1966)씨가 어머니와 함께 필립스 기념 갤러리 (The Phillips Memorial Gallery)를 열었고, 1921Marjorie Acker 와 결혼한 그는 아내 마 조리와 함께 활발하게 당대의 유럽, 미국의 미술품들을 수집한다. 화가였던 마조리의 작품은 지금도 필립스 콜렉션에 가면 볼 수 있다.

 

 

 

 

 

필립스 콜렉션이 있는 곳은 듀폰 서클 (Dupont Circle) 근방인데, 듀폰 서클을 중심으로 매사추세츠 애비뉴 (Massachusettes Ave.)가 이어져있고, 그 매사추세츠 애비뉴의 양쪽에 각국의 대사관들이 줄지어 서 있어서, 이곳을 대사관거리 (Embassy Row)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 대사관, 한국 영사관, 한국 홍보관 역시 필립스 콜렉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 해 있다. 매사추세츠 애비뉴를 걷다 보면 길가에 간디의 동상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그 곁에 붉은 벽의 필립스 콜렉션이 서 있다.

 

 

필립스 콜렉션은 방대한 유럽, 미국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하다는 화가들의 작품이 최소한 한두 점씩은 모두 걸려있다. 가령 피카소, 마티스, 반 고흐, 르누아르, 세잔, 보나르, 뷔야르, 잭슨 폴락, 엘 그레코, 조지아 오키프…… 일일이 열거하는 것 보다 홈페이지를 소개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http://www.phillipscollection.org/   Jacob Lawrence 의 작품들이 걸려 있는 곳도 이곳이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32

 

 

 

 

필립스 콜렉션의 특기 할 만한 것은 개인 소장품으로 이루어진 미술관이라는 것인데 미술관 역시 필립스 일가가 살던 집을 개조하거나 증축, 확장한 것이다. 그래서 전시공간에 일반 주택의 거실같이 편안한 소파가 놓여있거나 혹은 이들이 살던 당시에 설치 되었을 벽난로가 그대로 보존 되어 있기도 하다. 대중에게 공개되는 갤러리나 역사적 주택에 가보면 대개 집기들을 전시해놓고, “만지지 마시오,” 라는 표시를 붙이거나, 전시된 소파에 앉지 말라는 표시를 해 놓는데 이 곳 필립스 콜렉션에서는 전시장의 고풍스런 소파에 편히 앉아 쉬라고 표시를 해 놓는다.  우리는 잠시, 미국의 어느 재벌 집에 초대 받은 사람처럼 고풍스런 소파에 앉아 미술품을 보면서 쉴 수도 있는 것이니, 이런 점이 정답고 친절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필립스 콜렉션은 칸칸이 방으로 이루어진 다수의 전시장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로스코(Rothko) Room 이라는 곳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필립스 콜렉션의 인상을 말할 때, 그 로스코의 방이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를 한다. 로스코는 2차 대전 때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미술가인데, 그의 작품의 특징은 문짝이나 문짝보다 더 큰 캔버스를 몇 가지 색으로 추상적으로 처리를 하는 것이다. 필립스 일가가 로스코의 작품을 사들여 방 하나에 전시해 놓았을 때, 로스코가 이를 흥미 있게 보았다고 한다. 뉴욕에서 활동하던 로스코가 워싱턴을 방문하여 직접 이 방을 구경 한 후에 방 가운데에 작은 의자를 하나 놓아두면 좋겠다고 제안하여 그의 제안대로 전시장 가운데에 나무 벤치가 하나 놓였다.  조명이 낮아 고요한 느낌을 주는, 사방에 로스코의 대작이 걸려있는 이 방의 가운데 벤치에 앉아 어느 한쪽 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차분해지고 편안해 진다.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서 각기 다른 면을 바라 볼 텐데, 나는 그 네 장의 그림 중에서 짙은 녹색 주조의 작품 (위 사진에서 오른편의 작품)을 볼 때 가장 마음이 고요해진다. 이곳은 어찌 보면, 신전, 성스러운 장소, 명상실 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필립스 콜렉션에서는 정기적으로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워싱턴 인근 빈민가 학교의 어린이들을 초대하여 미술 작업을 하도록 한다거나 혹은 지역 학교와 연대하여 학생들의 공동 작업을 이끌기도 한다. 가끔 필립스 콜렉션에 들를 때, 나는 이곳, 청소년을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전시장을 찾아본다. 그곳에서 어린이들의 시각으로 보이는 세상, 어린이들의 희망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립스 콜렉션은 연중, 상설 전시와 특별 전시가 진행되는데, 상설전시장은 평일에 무료로 개방된다. 주말 (토요일, 일요일)에는 입장료를 내고 입장한다. 평일에 상설전시장과 특별전시장을 함께 둘러보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상설전시관만 볼 계획이라면 입장료 없이 그냥 들어가면 된다. 나는 필립스 콜렉션에 종종 들르는 편이므로 따로 입장표 안 사고 상설전시장을 둘러 볼 때도 있다. 한구석에 기념품 샵이 있어서 기념품이나 미술 관련 책을 구경할 수도 있고, 카페에서 음료나 간단한 음식을 사 먹으며 쉴 수도 있다.

 

필립스 콜렉션은 방대한 소장품의 양에 비해서 전시 공간이 협소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주마다 벽의 전시물이 바뀌기도 한다. 상설 전시관의 전시물들이 갈 때마다 위치를 조금씩 바꾸거나 혹은 새로운 작품들이 나와 있거나 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발견하는 것도 이곳을 찾는 기쁨중의 한가지라고 할 만하다.

 

 

아, 위의 작품은 상설 전시관에 걸린 호레이스 피핀 (Horace Pippin)의 작품이다. 언젠가 미국 미술가 피핀에 관한 글을 쓸때, 이 그림과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할 생각이다.

 

 

워싱턴이 자랑하는 개인 미술관으로 필립스 콜렉션에 쌍벽을 이루는 것이 코코란 미술관 (Corcoran Gallery of Art)이다. 다음에 코코란 미술관을 소개 하겠다.

Joshua Johnson: 대갈장군 아이들

 

Joshua Johnson (artist)
American, born c. 1763, active 1796 - 1824
The Westwood Children, c. 1807
oil on canvas
overall: 104.5 x 117 cm (41 1/8 x 46 1/16 in.)
Gift of Edgar William and Bernice Chrysler Garbisch
1959.11.1

http://www.nga.gov/fcgi-bin/tinfo_f?object=45955

 

 

 

대갈장군 아이들: Joshua Johnson (c. 1763-1832)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그림을 보았는데요, 이상하게 아이들 머리가 커요. 왜 그런가요?” 워싱턴 디씨를 방문하여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의 미국 미술을 둘러본 친구가 물었다. “누구의 그림인가요?” 내가 물으니 Joshua Johnson 이라고 가르쳐준다.

 

Joshua Johnsonhttp://en.wikipedia.org/wiki/Joshua_Johnson 미국 흑인 중 최초로 그림을 그려서밥벌이를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조슈아의 아버지는 백인이었고, 어머니는 다른 사람의 노예였다. 따라서 조슈아는 노예로 태어났다. 후에 조슈아의 아버지가 조슈아를 사들인 후 노예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린 조슈아는 메릴랜드주의 볼티모어 지방에 살고 있던 부자들이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하면 이를 그려주었다. 조슈아는 만 20세가 될 때까지 노예로 살았고, 전문적인 그림 공부를 할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Joshua Johnson 에게는 풍속화가 (folk artist)라는 이름표가 붙는다. 

 

그가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유명한 사람들도 아니고, 그저 1800년대 초반에 볼티모어에서 밥술이나 뜨던 사람들 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새삼스럽게 초상화나 가족화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는 큰 관심거리가 못 된다.  그의 독특한 화풍이 오히려 눈에 띄는데, 내 친구의 질문처럼 왜 아이들의 머리가 기이하게 큰가?” “왜 아이들 얼굴이 어른 얼굴하고 비슷한가?” 이런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슈아 존슨이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하여, 그냥 자기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수준에 머물렀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린 아이의 얼굴을 어떻게 그리면 어린아이처럼 보일지 잘 몰랐을 수도 있다.  대충 우리의 눈 짐작으로 아이들은 몸집을 보면 머리와 몸통의 비례가 어른과는 차이가 있다. 어른에 비해서 어린이는 머리통이 몸집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그러므로 보이는 대로 머리는 크게 몸집은 작게 그린 것이다.  그러면 얼굴은 왜 천사 같은 동안 (童顔)’이 아니고 겉늙은 어른 같은 표정인가? 조슈아 존슨은 어린이의 얼굴의 특징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어른의 얼굴을 아이의 얼굴에 대입 시켰다.

 

미국 건국 초기, 1700년대 후반에서 1800년대 초반에 보이는 미국인들의 초상화를 보면, 작가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나 Joshua Johnson과 같이 전문적인 미술 수업을 받지 않은 작가들의 초상화를 보면, 대개 사람들이 모두 닮은꼴인 것을 볼 수 있다. 일례로, 애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나 의 모양이 다들 비슷하다. 왜냐하면,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릴 줄 아는 코의 모양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여자를 그릴 때나, 남자를 그릴 때나, 애나, 어른이나 그냥 그 코를 갖다 붙여주는 것이다. 아이들의 얼굴도 어른 줄여 놓은 듯겉늙은 표정이 많은데, 어른 얼굴 그리는 솜씨로 아이들 얼굴도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초기의 이런 작품들을 보노라면, “미국 미술 별 것 아니네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 나는 이런 서툰 그림들에 애정이 가는 편인데, 이 별것도 아니고 서툰 그림들은 유럽 화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고, 이런 원시적인 화풍에서 새로운 무엇이 자라날수 있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1700년 말 혹은 1800년 초, 미국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신생국가였다. 미국의 미술도 이제 막 눈을 뜨고 그 첫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던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문화도 역사도 척박한 이 신생의 땅에 애정을 보내기보다는 유럽을 동경하고 유럽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 유럽에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은 미국땅에서 독자적으로 서툰 걸음마를 계속 해 나갔다. 그리고 나는 이런 미술가들에 관심이 많다.

 

 

 Portrait of Adelia Ellender

ca. 1803-1805 Joshua Johnson oil on canvas 26 1/4 x 21 1/8 in. (66.7 x 53.7 cm.)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Gift of Mr. and Mrs. Norman Robbins 1983.95.55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3rd Floor, Luce Foundation Center

 

 

조쥬아 존슨의 그림속의 아이들이 대갈장군인 것은 그의 눈에 아이들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들 얼굴이 겉늙어 보이는 이유는 조슈아가 아이들 얼굴의 특징을 잘 살리지 못하고, 그냥 어른 얼굴 그리는 솜씨로 아이들 얼굴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의 그림의 가치가 일천하다고는 말 할 수 없다. 민화에는 민화만의 멋과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예를 들어서 한국의 민화에 호랑이가 많이 등장하는데 민화의 호랑이와 김홍도의 호랑이 그림을 비교하면 김홍도의 호랑이 그림이 훨씬 사실적이고 힘이 넘치지만, 김홍도와 민화의 호랑이를 동일한 선상에서, 동일한 점수표를 가지고 비교 평가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September 7, 2009

RedFox

 

 

위에 소개했던 소녀의 초상화를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3층 루스센터에서 발견.  그림의 보관소와 같은 이곳에는 가격을 매길수도 없는 걸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분홍 드레스를 입은 소녀와 잔

 

 

 

Little Girl in Pink with Goblet (분홍 드레스를 입은 소녀와 잔) 1805

Oil on Canvas

2009년 10월 31일 디트로이트 미술관 (Detroit Institute of Art Museum) 에서 촬영

 

 

 

그외에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발견한 조슈아 존슨의  초상화 작품들

 

 

 

 

Portrait of Sea Captain John Murphy (선장 존 머피의 초상화) c. 1810

Oil on Canvas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Portrait of Mrs. Barbara Baker Murphy (Wife of Sea Captain) c. 1810

Oil on Canvas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 박물관에서 촬영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발견한 조슈아 존슨의 작품

 

 

Portrait of Edward Aisquith  (에드워드 애스퀴쓰의 초상 ) c. 1810

Oil on Canvas

2009년 9월 19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Smithsonian Q and A: American Art and Artists 책에 따르면 조슈아 존슨의 작품중 현재 남겨진 것은 19점이라고 한다.  열아홉점 남아있는 것중에 내가 본 것들이 조슈아 존슨 페이지들에 담긴 것들이다.

 

2010년 1월 3일 내용 보충. redfox

 

http://americanart.textcube.com/195  : 페이지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