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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1일 금요일

Horace Pippin: 이발소 그림과 올드 블객조

 

 

이발소 그림

 

이발소 그림이라는 것이 있다. 이발소 그림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사전적 정의를 알 길은 없지만, 대개는 대충 그려진 상업화 수준의 그림을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보통의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그러하듯 연필로 종이게 뭔가 끄적이거나 그리기를 좋아했고, 이런 심심풀이 그림 그리기 취미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그래서 어릴 적에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하고 물으면 대충 우물거리며, “미술가혹은 소설가라고 대꾸하곤 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공책에 이야기를 쓰고 그리고 직접 삽화를 그리기를 좋아했으므로.  그러나, 이런 내 취미는 그냥 평범한 아이들이 함 직한 평범한 낙서 수준이었고, 나의 미술 보는 안목은 딱 내 수준 그대로였다.

 

나의 이런 유치함과는 달리, 내 주변에는 미술에 안목이 높은 분들도 많이 있었는데, 우리 아버지는 자신이 안목이 높다고 스스로 판단을 하셨던 것 같다.  미술 대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교수들이 아버지의 친구들이었고, 그래서 우리 집에 한국 현대미술가들의 작품들도 여럿 있고 그랬으므로, 아버지의 자부심을 이해 할 만도 하다. 아버지는 좀 시시해 보이는 그림에 대해서는 이발소 그림이라고 명쾌한 판단을 내리셨는데, 하필 나는 매우 반항적인 청소년기를 거치고 있었으므로 아버지의 그 이발소 그림이라는 어휘가 내 귀를 때릴 때마다 불끈불끈 반감이 치솟곤 했다. 그 결과, 나는 아주 맹렬한 이발소 그림의 변호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거의 모든 종류의 그림을 좋아했다. 우리 집 서가에 꽂혀있던 일본제 세계명화집들속의 대단한 화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보기도 좋아했지만, 심지어 싸구려 잡지의 삽화도 좋아했고, 눈에 띄는 삽화나 싸구려 그림도 닥치는 대로 좋아했다. 가끔 시장을 지나다 보면 길거리에 액자를 늘어놓고 판매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길거리의 그림들, 천편일률적인 한국의 풍속화 혹은 정물화, 정체를 알 수 없는 풍경화들을 들여다보는 일도 내게는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별로 문화 예술적인 배경지식이 없는 보통사람들의 집에 가보면, 덩그런 아파트의 거실 벽에, 분명 상업화가가 그렸을, 지금은 잊혀진 시골 풍경, 물동이 이고 가는 한복 입은 여인네, 지게지고 가는 남정네, 개울에서 빨래하는 아낙, 코스모스 뭐 이런 것들이 어우러진 풍경화가 있는데, 글쎄 그 그림을 일년 사시사철 들여다보자면 어딘가 싫증이 날 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다 손님으로 방문하여 이런 그림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그런다. 그리고 나의 이런 취향은 내가 꽤 유명하다는 미국의 대형 미술관들을 취미 삼아 돌아다니며 보고, 책을 들여다보며 연구를 해도, 그다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촌스럽고, 내 안목은 여전히 천박하여, 나는 여전히 이발소 그림이 좋고, 남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칭송을 해도 내가 아니다 싶으면 별로 관심을 표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내 극히 촌스러운 안목에 들어온 이가 Grandma Moses 라고 일컬어지는 http://americanart.textcube.com/16   http://americanart.textcube.com/17    '모세 할머니의 그림이었는데, 이에 필적하는 그림을 나는 어느 날 Smithsonian National American Art Museum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 미술관)에서 조우하게 되었다.

 

Old Black Joe

 

 

 

 

Horace Pippin

Old Black Joe
1943
oil
24 x 30 inch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Museum

이 그림을 들여다보면, 멀리 흰 목화밭이 보이고, 흰 칠을 한 농가주택의 입구에는 드레스를 입은 백인 여성이 서있다. 그리고 전면의 나무 벤치에는 수염과 머리, 눈썹이 목화처럼 흰 흑인 노인이 앉아 있는데, 저 만치에 백인 소녀가 꽃을 따며 놀고 있고, 노인과 소녀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옛날에 한국의 시골에서, 아낙들이 밭에서 일을 할 때, 아기를 나무 밑 그늘에 눕혀 놓거나, 혹은 가만히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앉혀 놓곤 했었다.  어떤 이는 아이를 강아지처럼 허리를 묶어 나무에 묶어 놓기도 했다.  아이가 혼자 밭 근처를 기어 다니다가 밭 아래 물에 빠지거나 논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그림 속의 흑인 노인은 주인집 백인 소녀를 끈으로 묶어 보호를 하고 있는 듯 하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목화 솜같이 희게 피어 오르고 목화 꽃은 하얗게 피었고, 노인의 수염도 목화처럼 희다. 이 그림을 보면서, 아니 이 그림을 읽으면서어떤 이는 흑인 노예의 지팡이 끝에 묶여 있는 백인 소녀, 이 둘의 관계가 역설적이라고 평하기도 하고, 노예 해방 이후의 새로운 관계정립이 아닌가 해석하기도 한다. 해석이야 보는 사람 각자 하는 문제이고, 이 그림을 그린 Horace Pippin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그는 Old Black Joe 라는 포스터 Stephen Foster, 1860 (1826-1864)’의 노래에서 이 그림의 모티브를 찾은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노래 Old Black Joe (올드 블랙 조)를 기억하시는가? 나는 지금도 내가 어릴 적 불렀던 그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다

 

 그리운 날 옛날은 지나가고 들에 놀던 친구 간 곳 없으니, 이 세상에 낙원은 어디 이뇨 블랙 조 널 부르는 소리 슬프다……

 

 노래: Old Black Joe 원문과 해석

 

1

Gone are the days
When my heart was young and gay.
Gone are my friends
From the cotton fields away.
Gone from this place,
To a better land I know.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내 가슴이 젊고 발랄하던 시절은 가고 없어라

저 멀리 목화밭의 내 친구들도 가고 없어라

여기보다 더 좋은 세상으로 가고 말았어라

그리고 이제 나는 그들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이 늙은 검둥이 조를 부르는 소리를 듣노라



Chorus:
I'm coming, I'm coming
For my head is bending low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후렴:

그래 나도 가네, 나도 가네

이제 나도 구부정하여 고개도 수그러지네

그들이 이 늙은 검둥이 조를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네

 

2

Why do I weep
When my heart should feel no pain
Why do I sigh
That my friends come not again
Grieving for forms
Now departed long ago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이제 가슴이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데 운들 무엇 하나

친구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숨지은들 무엇 하나

형식적으로 애도하던 것도 오래 전의 일이라네

이제 나는 이 늙은 검둥이 조를 부르는 부드러운 음성을 듣는다네

3.
Where are the hearts
Once so happy and so free
The children so dear
That I held upon my knee
Gone to the shore
Where my soul has longed to go
I hear their gentle voices calling:
Old Black Joe.

한때 그토록 행복하고 자유롭던 가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내 무릎 위에 안아주던 사랑스런 아이들도

벌써 내가 가고 싶어하던 피안의 기슭으로 가버렸지

나는 그들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르는 소리를 듣네.

 

 

가사를 해석하며 들여다보니, 흑인 가 나이가 들어 먼저 떠난 친구, 아이들을 그리면서 저승에서 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는 내용이다. 한편 쓸쓸하기도 하고 한편 따뜻하기도 하다. 혼자 남은 사람의 쓸쓸함과, 죽음을 관조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노인을 상상하니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Pippin과의 만남

 

내가 2008 5월 어느 날 미술관에서 처음 이 그림을 접한 후, 이곳에 갈 때마다 그림 앞에 서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이리저리 찍어보려고 시도를 하거나, 혹은 그림을 들여다보며,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 그림을 그리고 이 제목을 달은 걸까? 궁금해 하던 그 순간, 어쩌면 내 머릿속에는 아주 오래된, 올드 블랙 조 노래의 멜로디가 흐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그림의 제목을 읽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포스터의 그 슬프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떠올리면서 그림에 빠져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국 미술에 대한 상식이나 교양, 회화에 대한 교양인적 지식,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이 그림은 그림에 대한 교양하고는 상관없이 누구나 다가가서 볼 수 있고, 그리고 얼핏 보기에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미술대학에서 혹은 미술학원에서 그림 공부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어쩐지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사람의 그림 같다. 그런데, 그런 그림 한 장이 내 발길을 오래오래 묶어 놓고 있었다. 나는 혼자 종알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발소 그림 같아 보여. 그런데 참 좋아.’ 

 

 

 

당시 나는 Pippin이 누구인지 몰랐다. 막연하게나마 그림의 대체적인 색감이 어둡다는 것과 (흰 구름, 흰 목화밭이 환하게 그려져 있었지만 어딘지 색감이 어둡고 수상쩍었다), 그림의 주인공이 흑인인 것을 감안하여 대강 흑인 작가의 그림 일 것이라는 상상을 했을 뿐이었다.  그 후에 나는 필립스 콜렉션에서 또다시 매우 매력적인 그림을 만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동일한 작가의 그림이었던 거다.

 

 

(다음에 그 그림과 Horace Pippin 을 소개하는 글을 적어 보겠다)

 

september 11, 2009. fox

 

덧글: 뭐 내가 Horace Pippin 의 그림을 '이발소 그림'으로 보는 것도 그리 무리스러운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략 1933년에 그려졌을거라 추정되는 Pippin 의 Buffalo Hunt (들소 사냥)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피핀은 그 그림을 동네 '이발소'집에 주었다 (피핀은 가게에서 물건 사고 돈 내는 대신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대신 지불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발비 대신에 그림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그림은 수년간 그 '이발소'에 걸려있었다.  그런데 그 그림이 '이발소'벽에 수년간 매달려있던 사연이 또 딱한것이,  이발소집 부인이 그 그림을 집에 놓고 보기 싫어했으므로 하는 수 없이, 이발소 벽에~  하하하.

 

피핀이 뉴욕 화단에 소개 되기 전까지, 그는 '이발소 화가'였던거다.

 

                                     문제의 그 이발소 그림

 

http://americanart.textcube.com/45 이어지는 글

2009년 9월 7일 월요일

Joshua Johnson: 대갈장군 아이들

 

Joshua Johnson (artist)
American, born c. 1763, active 1796 - 1824
The Westwood Children, c. 1807
oil on canvas
overall: 104.5 x 117 cm (41 1/8 x 46 1/16 in.)
Gift of Edgar William and Bernice Chrysler Garbisch
1959.11.1

http://www.nga.gov/fcgi-bin/tinfo_f?object=45955

 

 

 

대갈장군 아이들: Joshua Johnson (c. 1763-1832)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그림을 보았는데요, 이상하게 아이들 머리가 커요. 왜 그런가요?” 워싱턴 디씨를 방문하여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의 미국 미술을 둘러본 친구가 물었다. “누구의 그림인가요?” 내가 물으니 Joshua Johnson 이라고 가르쳐준다.

 

Joshua Johnsonhttp://en.wikipedia.org/wiki/Joshua_Johnson 미국 흑인 중 최초로 그림을 그려서밥벌이를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조슈아의 아버지는 백인이었고, 어머니는 다른 사람의 노예였다. 따라서 조슈아는 노예로 태어났다. 후에 조슈아의 아버지가 조슈아를 사들인 후 노예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린 조슈아는 메릴랜드주의 볼티모어 지방에 살고 있던 부자들이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하면 이를 그려주었다. 조슈아는 만 20세가 될 때까지 노예로 살았고, 전문적인 그림 공부를 할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Joshua Johnson 에게는 풍속화가 (folk artist)라는 이름표가 붙는다. 

 

그가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유명한 사람들도 아니고, 그저 1800년대 초반에 볼티모어에서 밥술이나 뜨던 사람들 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새삼스럽게 초상화나 가족화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는 큰 관심거리가 못 된다.  그의 독특한 화풍이 오히려 눈에 띄는데, 내 친구의 질문처럼 왜 아이들의 머리가 기이하게 큰가?” “왜 아이들 얼굴이 어른 얼굴하고 비슷한가?” 이런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슈아 존슨이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하여, 그냥 자기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수준에 머물렀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린 아이의 얼굴을 어떻게 그리면 어린아이처럼 보일지 잘 몰랐을 수도 있다.  대충 우리의 눈 짐작으로 아이들은 몸집을 보면 머리와 몸통의 비례가 어른과는 차이가 있다. 어른에 비해서 어린이는 머리통이 몸집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그러므로 보이는 대로 머리는 크게 몸집은 작게 그린 것이다.  그러면 얼굴은 왜 천사 같은 동안 (童顔)’이 아니고 겉늙은 어른 같은 표정인가? 조슈아 존슨은 어린이의 얼굴의 특징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어른의 얼굴을 아이의 얼굴에 대입 시켰다.

 

미국 건국 초기, 1700년대 후반에서 1800년대 초반에 보이는 미국인들의 초상화를 보면, 작가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나 Joshua Johnson과 같이 전문적인 미술 수업을 받지 않은 작가들의 초상화를 보면, 대개 사람들이 모두 닮은꼴인 것을 볼 수 있다. 일례로, 애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나 의 모양이 다들 비슷하다. 왜냐하면,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릴 줄 아는 코의 모양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여자를 그릴 때나, 남자를 그릴 때나, 애나, 어른이나 그냥 그 코를 갖다 붙여주는 것이다. 아이들의 얼굴도 어른 줄여 놓은 듯겉늙은 표정이 많은데, 어른 얼굴 그리는 솜씨로 아이들 얼굴도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초기의 이런 작품들을 보노라면, “미국 미술 별 것 아니네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 나는 이런 서툰 그림들에 애정이 가는 편인데, 이 별것도 아니고 서툰 그림들은 유럽 화단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고, 이런 원시적인 화풍에서 새로운 무엇이 자라날수 있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1700년 말 혹은 1800년 초, 미국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신생국가였다. 미국의 미술도 이제 막 눈을 뜨고 그 첫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던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문화도 역사도 척박한 이 신생의 땅에 애정을 보내기보다는 유럽을 동경하고 유럽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 유럽에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은 미국땅에서 독자적으로 서툰 걸음마를 계속 해 나갔다. 그리고 나는 이런 미술가들에 관심이 많다.

 

 

 Portrait of Adelia Ellender

ca. 1803-1805 Joshua Johnson oil on canvas 26 1/4 x 21 1/8 in. (66.7 x 53.7 cm.)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Gift of Mr. and Mrs. Norman Robbins 1983.95.55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3rd Floor, Luce Foundation Center

 

 

조쥬아 존슨의 그림속의 아이들이 대갈장군인 것은 그의 눈에 아이들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들 얼굴이 겉늙어 보이는 이유는 조슈아가 아이들 얼굴의 특징을 잘 살리지 못하고, 그냥 어른 얼굴 그리는 솜씨로 아이들 얼굴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의 그림의 가치가 일천하다고는 말 할 수 없다. 민화에는 민화만의 멋과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예를 들어서 한국의 민화에 호랑이가 많이 등장하는데 민화의 호랑이와 김홍도의 호랑이 그림을 비교하면 김홍도의 호랑이 그림이 훨씬 사실적이고 힘이 넘치지만, 김홍도와 민화의 호랑이를 동일한 선상에서, 동일한 점수표를 가지고 비교 평가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September 7, 2009

RedFox

 

 

위에 소개했던 소녀의 초상화를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3층 루스센터에서 발견.  그림의 보관소와 같은 이곳에는 가격을 매길수도 없는 걸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분홍 드레스를 입은 소녀와 잔

 

 

 

Little Girl in Pink with Goblet (분홍 드레스를 입은 소녀와 잔) 1805

Oil on Canvas

2009년 10월 31일 디트로이트 미술관 (Detroit Institute of Art Museum) 에서 촬영

 

 

 

그외에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발견한 조슈아 존슨의  초상화 작품들

 

 

 

 

Portrait of Sea Captain John Murphy (선장 존 머피의 초상화) c. 1810

Oil on Canvas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Portrait of Mrs. Barbara Baker Murphy (Wife of Sea Captain) c. 1810

Oil on Canvas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 박물관에서 촬영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발견한 조슈아 존슨의 작품

 

 

Portrait of Edward Aisquith  (에드워드 애스퀴쓰의 초상 ) c. 1810

Oil on Canvas

2009년 9월 19일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촬영

 

Smithsonian Q and A: American Art and Artists 책에 따르면 조슈아 존슨의 작품중 현재 남겨진 것은 19점이라고 한다.  열아홉점 남아있는 것중에 내가 본 것들이 조슈아 존슨 페이지들에 담긴 것들이다.

 

2010년 1월 3일 내용 보충. redfox

 

http://americanart.textcube.com/195  : 페이지 연결.

 

 

2009년 8월 31일 월요일

Kara Walker: 우스꽝 스러운 흑인 잔혹사

http://americanart.textcube.com/30

Jacob Lawrence (1917-2000) 페이지를 쓰고 나니, 흑인 여성 미술가 Kara Walker (1969-   )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Kara Walker를 만난 것은 워싱턴 디씨에 있는 Corcoran Gallery of Art (코코란 미술관)에서였다. 전시장 벽에 검정 실루엣으로 그려진 사람들. 흑인들 특유의 실루엣이었으므로 단박에 흑인관련 작품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참 독특했다. 새롭고 매력적이라고 해야 하나? 단지 검정 색 도화지를 오려 붙인듯한 전시물들. 벽 전면에 채워진 그림자들. 그 실루엣으로만 이루어진 인물들 속에는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가령 노예 해방 이전에 남부에서 일어났을 법한, 백인 주인이 흑인 여자를 강간하는 장면이라던가, 여성이 남성의 신체를 기쁘게 해주는 장면, 입맞춤 하는 흑인의 손에 들린 예리한 칼. 이런 장면들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서, 가량 스토우의 톰아저씨의 오두막, 혹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 그 밖의 미국 흑인 잔혹사 관련 이야기에 소개되었던 에피소드들이 일제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순전히 검은 도화지를 오려서 붙인 것 같은 이 실루엣 인물들이 그 흑백의 대비속에서 오히려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와 말을 붙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홀린 듯이 작품 구경을 했었다. 2008년 5월의 일이다.

 

 

 

                    워싱턴 디씨, 코코란 갤러리 2층에 전시된 카라 워커의 작품 (2008년 5월)

                               전시장을 지키던 흑인 경비원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

 

 

 

 

사실 이보다 한달 전, 2008년 4월에 워싱턴 디씨의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 박물관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and Portrait Gallery)에서 그의 특별전을 본 적이 있다. 미국의 일반적인 미술관의 경우에 상설 전시관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사진 촬영이 가능하지만 특별전시장에서는 대체로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이점은 미국에서 미술관 나들이를 할 때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꽤 크게 열렸던 그 당시의 카라 워커전을 나는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서 심심풀이로 미술책을 꺼내 볼 때면 나는 이따금 카라 워커의 책을 들여다보곤 한다.

 

카라 워커는 1969년 생이다. 이제 활발하게 작업하는 젊은 미술가라 할 만 하다.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던 카라는 13세에 조지아 주의 아틀란타로 이주하면서 흑백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조지아 주의 아틀란타시는 미국 남부에서 가장 큰 대도시로 알려져 있고, CNN의 본사가 아틀란타에 있어, 남부의 자존심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한다. 또한 아틀란타를 흑인 공화국, 흑인들의 수도라고도 부를 정도로 흑인 인구가 많다. 남북전쟁에서 남군이 패배하기도 했지만, 그 후로도 미국의 남부는 북부에 비해서 경제적인 열세에 있는 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소녀가 아틀란타에 왔을 때 흑과 백의 차이를 감지했음을 보건대. 1970년대 아틀란타에서는 여전히 미세하게 흑인 백인들이 서로 융화되지 못한 채 살았을 것이다. 흑인 인구가 적으면 아무하고나 어울려 살게 되지만, 흑인 인구가 일정 수 이상이 되면 이들이 모여서 사는 것이 가능해지고, 이렇게 특정 집단을 형성하게 되면 흑인들은 흑인 인구가 집중된 학교에 다니고, 흑인 문화권에서 나고, 자라고, 늙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미국의 주류사회,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배계층인 백인사회와 더욱 멀어지

게 된다. 소녀 카라 워커는 이러한 문화권 속에서 자란 듯 하다. 참고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네스에 커다란 코리아 타운이 있고, 뉴욕 맨해턴에도 코리아 타운이 있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워싱턴 지역, 북 버지니아에도 애난데일 Annandale 을 중심으로 한국인 상점이 밀집되어 있는데, 우리는 때로 농담 삼아, 애난데일은 미국인가 아닌가? 이런 농담을 하기도 한다. 한국인이 애난데일 지역에서 산다면, 온종일 영어 한마디 할 것 없이 한국인 상점에서 필요한 것 사고, 한국인 미장원에 들르고, 한국 책방에 가고, 한국 교회에 가면 되고.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면,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의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보다는 미국의 변두리에서 애매한 한국 문화권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특정 집단이 밀집한 곳에 살면서 정서적인 안정감이나 소속감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주류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우울감도 생길 수 있다. 카라 워커는 자기 자신이 흑인 여성으로서 흑인인구가 밀집한 곳에서 성장하면서 이러한 우울감을 일찌감치 맛 본 듯 하다.

 

카라 워커는 아틀란타 예술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로드 아일랜드에서 미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가가 되는 정석의 교육을 받은 셈이다.

 

카라 워커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94년 그녀가 24세 되던 해에 소호 (SoHo)에서 열린 전시회 부터였다. 카라는 검정 도화지로 실루엣을 오려서 벽에 붙이는 식의 벽화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주로 남부 노예들이 백인한테 강간 당하거나, 유사 행위를 하는 장면들이 코믹하고 간결하게 그려졌다. 잔혹한 장면이면서 동시에 코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나는 이점이 궁금한데, 실제로 카라 워커의 대형 벽화 작품들을 직접 볼 때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끔찍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유머러스한. 사람들은 이 특이한 작업을 매력적으로 받아들인 듯 하다. 그 후로 카라 워커는 미국의 유수의 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갖게 된다. 요즘도 미국의 잘 나가는 작가이고 앞으로 그의 미술작업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미지수이다.

 

카라는 검정 도화지를 이용한 실루엣 작품 외에도, 벽화 전시회장에 프로젝터를 설치하여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서서 움직일 때 그의 그림자가 벽에서 살아 움직이는 살아있는 현장 작업을 하기도 한다. 상상해보자, 내가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내 검은 그림자가 전시장의 벽화와 만나서, 그 순간 나도 벽화 속의 주인공이 되거나 벽화의 일부가 된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카라워커의 작품 활동의 주요 소재가 되는 것으로는

l       흑백 인종문제와 권력의 문제, 소외, 차별, 학대

l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수치감

l       환상 속에 어우러진 역사적 사실과 허구

l       이야기

l       유머

라고 할 만하다. 이런 모티브들이 카라의 벽화에 점층적으로, 입체적으로 등장하는데, 평평한 평면 속에서 마술적인 입체감이 느껴지는 것은 그림을 바라보는 나만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주로 노예해방 이전의 상황을 모티브로 작업을 하는 그의 미술에 대한 비판이나 반발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신진 흑인 미술가들 중에는 흑인을 희화화하고, 백인들의 기호에 맞추는 듯한 카라의 작업에 대하여 공개적 비판을 하고 항의를 하거나, 그의 전시회를 보이콧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왜 흑인 화가가 흑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를 하는가, 그것으로 백인들의 환심을 사고 출세를 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런 반발을 사는 것이다. 나로서는 아시안으로서,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보는 입장에서 카라 워커의 작품들을 보고 매력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흑인 입장이 되면 이런 시각도 가능 할 것 같다. 흑인 예술가들의 이런 비판에 대하여, “What you want: negative images of white people, positive images of blacks.” (당신들이 원하는 : 백인은 무조건 나쁘고, 흑인은 무조건 좋다는 ) 이라고 반박했다. 유튜브에 소개된 카라와의 인터뷰에서 카라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욕망과, 동시에 주인공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욕망 형상화 했다는 설명을 적이 있다. 이를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흑인들에게는 백인이 되고 싶다 숨은 욕망과 더불어, 백인이 되지 못하므로 백인을 죽이고 싶다는 다른 욕망이 있을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사망한 마이클 잭슨은 질환 이유로 여러 차례 성형수술을 감행하여 백인처럼 자신을 변모 시킨 있다. 그는 백인이 되고 싶었던 같다. 남아를 선호하는 전통 사회에서 여야 태어난 내가 남자가 되고 싶다 욕망을 간직하고 성장했듯, 동시에 남자 형제들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며 살았듯, 백인이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백인이 되고 싶다. 동시에 백인이 정말 밉다 심리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아닐까? 흑인으로서 흑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보다는 백인이 되고 싶다 욕망을 표출할 , 그것이 비난 받을 행동인가? 카라는 바로 그런 질문을 공격적을 던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너희도 백인 되고 싶쟎아. 주인공 되고 싶잖아. 나한테 신경질이야? 흑인을 우습게 보는 것은 내가 아니고 너희들이쟎아!” – 카라 워커는 이렇게 외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1941년에 흑인 청년 화가 제이콥 로렌스가 60장의 판에 20세기 미국 남부 흑인들이 북으로의 이주 역사를 그려서 미국 흑인들의 삶을 조명했다면,  2000년대의 신진 흑인 화가 카라 워커는 남북전쟁 이전의 남부 흑인들의 삶과 욕망과 잔혹사를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카라 워커는 그의 작품에서 흑인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 흑인 작가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 그의 검정 실루엣 그림 속에서 검정색은 너무나도 선명하고 강렬하며 아름다운 색이 된다. 그의 그림에서 검정은 살아있는, 숨결이 느껴지고, 목소리가 느껴지는, 신음소리와, 노랫소리가 울려 나오는 색깔이 되고 만다. 검정색을 이토록 생동하는, 활발한, 질감과 소리까지 느껴지는 색으로 활용한 화가가 카라 워커 이전에 있었던가? 카라 워커에 이르러 검정색은 완성을 보았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