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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워싱턴 National Archives 의 벽화

National Archives

 

공식 홈페이지: http://www.archives.gov/

 

워싱턴 디씨에 있는 국립 문서 기록 보관소 (National Archives = Archives of the United State of American)는 이름 그대로 문서 기록을 보관하는 '창고'라고 할수 있습니다. 예전에 '국사'시간에 우리도 배운적이 있지요. 왕실의 기록을 조선땅 여기저기에 보관해 놓았다고 해서 그 장소를 달달 외운 기억이 있는데요, 그래서 외침으로 궁성이 여러차례 불 탔어도 조선왕조실록이니 하는 사료들이 잘 보관되어 전해졌다고 하지요.  워싱턴의 국립 문서 기록 보관소도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보관하는 장소이고,  미국의 각지에 이러한 보관소들이 있다고 합니다.  워싱턴디씨에 있는 보관소에는 특히나 영국의 권리장전, 미국의 독립선언문, 헌법초안, 헌번 개정안등의 원본에 대중들을 위해 전시되어 있어서,  이곳은 미국 전역의 중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워싱턴을 방문할때 반드시 들르는 장소입니다.  저희집 아이들도 중학생때 플로리다에서 워싱턴까지 수학여행을 가서 이곳을 구경한 적이 있지요. (큰놈은 제법 이곳에서 판매하는 독립 선언서 카피본을 기념품으로 한장 사다가 제게 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디 처박혀 있는지도 알수 없지만요.)

 

 

이렇게 일년 내내 많은 미국인들과 여행자들이 찾은 장소라서, 특히나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했던 National Treasure 영화 시리즈 덕분에 이곳을 호기심을 갖고 꼭 보고싶어 하는 청소년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주말이나 휴일에 이곳을 보려면 몇시간씩 뙤약볕 아래서 줄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전에도 몇차례인가 이곳을 지나다가 기웃거려 봤지만 줄이 길어서 번번이 포기했지요 (줄서서 구경하고, 줄서서 식당 들어가고 그러는거 무척 귀챦아 하는 편이거든요. 줄 서라고 하면 그냥 딴거 하고 말죠).  마침 비오는 12월의 일요일.  비는 죽죽 내리는데 누가 이런데까지 마실을 오겠습니까. 날도 춥고.  지나는 길에 들여다보니 뭐 한가로와 보이길래 결국 잠시 들르게 되었습니다.

 

 

 

 

 

 

 

 

 

건물 왼편으로 들어가면 입구가 나오는데요, 입구를 통과하면 공항의 Security Check (물품검사대)과 같은 곳이 나타납니다. 소지품 모두 검사대를 통과해야 합니다. 사람도 검사를 받고요.  아무래도 국립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라서 경비가 엄한 편입니다.  입장료는 무료.  사진도 자유롭게 찍을수 있지만 플래시 사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요즘 카메라들이 좋아서 플래시 없이도 잘 찍히죠)

 

 

 

 

 

 

 

검사대를 통과하여 지층의 '극장'에 가서 이곳을 소개하는 짧은 교육용 영화를 봅니다.  기록의 중요성, 기록의 활용 방법을 알려주는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영화관 시설도 아주 훌륭합니다.  그리고나서  중요 문서 (영국의 권리 대장전, 미국의 독립 선언서, 미국의 헌법초안, 미국의 헌법 개정안 원본들)들이 전시되어있는 로툰다 홀로 이동하여 구경을 합니다. 조명이 침침하여 원문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구경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이 곳이지요)

 

로툰다홀에서 나온후에 교육 전시실이라는, 미국 역사 관련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기념품가게에서 물건 구경하다가 나오면 됩니다.  이것이 단순히 '구경'하기 위해 들르는 절차이고요, 만약에 특정 문서나 기록을 열람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면 해당 사무실로 찾아가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고문서 전시장 (Rotunda Hall)의 벽화

 

전시장의 왼편 벽화는 독립선언문 그림입니다. 벽화 아래에 독립선언문 원본이 전시 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벽화는 '헌법' 그림입니다. 그 아래에 역시 헌법 원문 (Constitution), 그리고 개정안(Bill of Rights)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벽화들을 그린 화가는 Barry Faulkner (베리 포크너 1881-1966) 입니다. 뉴 햄프셔 태생으로 하바드에서 수학하다 이탈리아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미술 수업을 받고 벽화의 본고장 로마에서 실력을 인정받은후 1910년에 귀국합니다. 포크너는 국립 문서 기록 보관소의 벽화를 위임받고 1936년 이 두장의 벽화를 완성합니다.  이 벽화들은 캔바스에 유화로 제작한 것입니다.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한  그림인데, 완성후에 건물의 벽에 벽화로 설치가 된 것이지요.  전에 앤드루 와이어드의 생가를 방문했을때, 스튜디오에 있던 어마어마한 벽화 작품을 발견하고 http://americanart.textcube.com/44,  "저 그림을 어떻게 운반했는가?" 물었더니 캔버스를 둘둘 말아가지고 운송하여 벽에 붙인후에 미술가가 다시 세밀한 보수, 교정 작업을 했다고 가르쳐주더군요.  포크너 역시 캔바스에 유화로 그린 작품을 이리 옮겨다가 벽에 붙인후에 세밀한 완성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 역사상 독립 선언서가 공개된것을 1776년 7월 4일로 정하고 이날을 '독립 기념일'로 기념하는데요, Declaration of Independence 그림에는 독립 선언서 초안을 작성하는데 참가했거나, 최종 서명을 한 인물들이 담겨있습니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이 이 초안의 작성자로 알려져 있지요. 당시 그의 나이가 26세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그림에서 토마스 제퍼슨이 누구인지는 우리도 가늠할수 있겠지요.  그리고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인 벤자민 프랭클린도 보입니다.  저도 거기까지는 알아맞출수 있었는데, 나머지는 설명을 봐야 알겠더라구요.

 

 

 

 

 

 

1776년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후에 1787년에 미국의 헌법이 발표가 되는데 (그러니까 11년이 흘렀군요) 이때 헌법에 동의한주가 동부의 13개주였다고 하지요. 이 그림속에는 헌법에 동의한다고 서명한 사람들과 서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헌법 원문 맨 뒤에 보면 어느주의 대표가 싸인을 했는지 나와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중앙에 흰 옷을 입은 키가 남들보다 커보이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대충 감으로 맞추는거죠 뭐.  미국 역사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

 

 

 

 

 

베리 포크너는 로마에서 미술 수업을 받은 사람이고, 그곳에서 실력을 인정 받은 사람이라서 그의 벽화는 로마의 화풍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벽화속의 풍경은 '사실'과는 부합되지 않고 로마의 풍경속에 미국 역사상의 인물들을 그려 넣은 식이지요.   이 벽화가 1936년대에 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PWAP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Public%20Works%20of%20Arts%20Project ) 및 공공미술이 활기차게 진행된 시기이기도 하고, 미국 지방색이 강한 그림들이 제작되던 시기이기도 한데요, 이 벽화는 이런 흐름과는 달리 로마네스크 양식을 취하고 있지요.  이는, 미국, 특히 워싱턴 디씨 지역의 건축 양식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신생국 미국이 역사속에서 '모델'로 삼았던 것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건축 양식이었습니다.   초기 미국을 건설한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이죠. 하지만 유럽의 모델을 그대로 베껴다 쓰기에는 어딘가 껄끄럽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무엇을 모델로 할것인가? 고대(古代)로 돌아가야죠. 민주주의의 시원지라 할만한 그리스의 건축양식, 대제국이었던 로마의 건축양식을 가져와야죠. 대략 그러한 사연이 있었다 할수 있지요. 

 

제가 이 그림들 관련 자료를 찾다가 아주 재미있는 페이지를 발견했습니다.

http://teachingamericanhistory.org/convention/faulkner/

이 페이지에서 그림속의 인물에 커서를 갖다 대 놓고 클릭하면 해당 인물에 대한 안내가 상세하게 나옵니다.  누가 누구인지 궁금할때 이런 안내가 참 유용하지요.  워싱턴 디씨에 있는 벽화라면...국회도서관의 벽화를 빼놓을수가 없는데, 그곳은 모든 벽이 벽화라서, 아예 책이 별도로 나와있을정도이지요.  아아아, 어마어마한 작업이 될 것 같아서 후일로 마냥 미루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것도 안내해드릴게요.  =-)

 

 

2009년 12월 14일 redfox

 

 

 

 

 

 

 

 

2009년 8월 31일 월요일

Kara Walker: 우스꽝 스러운 흑인 잔혹사

http://americanart.textcube.com/30

Jacob Lawrence (1917-2000) 페이지를 쓰고 나니, 흑인 여성 미술가 Kara Walker (1969-   )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Kara Walker를 만난 것은 워싱턴 디씨에 있는 Corcoran Gallery of Art (코코란 미술관)에서였다. 전시장 벽에 검정 실루엣으로 그려진 사람들. 흑인들 특유의 실루엣이었으므로 단박에 흑인관련 작품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참 독특했다. 새롭고 매력적이라고 해야 하나? 단지 검정 색 도화지를 오려 붙인듯한 전시물들. 벽 전면에 채워진 그림자들. 그 실루엣으로만 이루어진 인물들 속에는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가령 노예 해방 이전에 남부에서 일어났을 법한, 백인 주인이 흑인 여자를 강간하는 장면이라던가, 여성이 남성의 신체를 기쁘게 해주는 장면, 입맞춤 하는 흑인의 손에 들린 예리한 칼. 이런 장면들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서, 가량 스토우의 톰아저씨의 오두막, 혹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 그 밖의 미국 흑인 잔혹사 관련 이야기에 소개되었던 에피소드들이 일제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순전히 검은 도화지를 오려서 붙인 것 같은 이 실루엣 인물들이 그 흑백의 대비속에서 오히려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와 말을 붙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홀린 듯이 작품 구경을 했었다. 2008년 5월의 일이다.

 

 

 

                    워싱턴 디씨, 코코란 갤러리 2층에 전시된 카라 워커의 작품 (2008년 5월)

                               전시장을 지키던 흑인 경비원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

 

 

 

 

사실 이보다 한달 전, 2008년 4월에 워싱턴 디씨의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 박물관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and Portrait Gallery)에서 그의 특별전을 본 적이 있다. 미국의 일반적인 미술관의 경우에 상설 전시관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사진 촬영이 가능하지만 특별전시장에서는 대체로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이점은 미국에서 미술관 나들이를 할 때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꽤 크게 열렸던 그 당시의 카라 워커전을 나는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서 심심풀이로 미술책을 꺼내 볼 때면 나는 이따금 카라 워커의 책을 들여다보곤 한다.

 

카라 워커는 1969년 생이다. 이제 활발하게 작업하는 젊은 미술가라 할 만 하다.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던 카라는 13세에 조지아 주의 아틀란타로 이주하면서 흑백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조지아 주의 아틀란타시는 미국 남부에서 가장 큰 대도시로 알려져 있고, CNN의 본사가 아틀란타에 있어, 남부의 자존심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한다. 또한 아틀란타를 흑인 공화국, 흑인들의 수도라고도 부를 정도로 흑인 인구가 많다. 남북전쟁에서 남군이 패배하기도 했지만, 그 후로도 미국의 남부는 북부에 비해서 경제적인 열세에 있는 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소녀가 아틀란타에 왔을 때 흑과 백의 차이를 감지했음을 보건대. 1970년대 아틀란타에서는 여전히 미세하게 흑인 백인들이 서로 융화되지 못한 채 살았을 것이다. 흑인 인구가 적으면 아무하고나 어울려 살게 되지만, 흑인 인구가 일정 수 이상이 되면 이들이 모여서 사는 것이 가능해지고, 이렇게 특정 집단을 형성하게 되면 흑인들은 흑인 인구가 집중된 학교에 다니고, 흑인 문화권에서 나고, 자라고, 늙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미국의 주류사회,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배계층인 백인사회와 더욱 멀어지

게 된다. 소녀 카라 워커는 이러한 문화권 속에서 자란 듯 하다. 참고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네스에 커다란 코리아 타운이 있고, 뉴욕 맨해턴에도 코리아 타운이 있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워싱턴 지역, 북 버지니아에도 애난데일 Annandale 을 중심으로 한국인 상점이 밀집되어 있는데, 우리는 때로 농담 삼아, 애난데일은 미국인가 아닌가? 이런 농담을 하기도 한다. 한국인이 애난데일 지역에서 산다면, 온종일 영어 한마디 할 것 없이 한국인 상점에서 필요한 것 사고, 한국인 미장원에 들르고, 한국 책방에 가고, 한국 교회에 가면 되고.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면,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의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보다는 미국의 변두리에서 애매한 한국 문화권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특정 집단이 밀집한 곳에 살면서 정서적인 안정감이나 소속감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주류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우울감도 생길 수 있다. 카라 워커는 자기 자신이 흑인 여성으로서 흑인인구가 밀집한 곳에서 성장하면서 이러한 우울감을 일찌감치 맛 본 듯 하다.

 

카라 워커는 아틀란타 예술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로드 아일랜드에서 미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가가 되는 정석의 교육을 받은 셈이다.

 

카라 워커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94년 그녀가 24세 되던 해에 소호 (SoHo)에서 열린 전시회 부터였다. 카라는 검정 도화지로 실루엣을 오려서 벽에 붙이는 식의 벽화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주로 남부 노예들이 백인한테 강간 당하거나, 유사 행위를 하는 장면들이 코믹하고 간결하게 그려졌다. 잔혹한 장면이면서 동시에 코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나는 이점이 궁금한데, 실제로 카라 워커의 대형 벽화 작품들을 직접 볼 때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끔찍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유머러스한. 사람들은 이 특이한 작업을 매력적으로 받아들인 듯 하다. 그 후로 카라 워커는 미국의 유수의 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갖게 된다. 요즘도 미국의 잘 나가는 작가이고 앞으로 그의 미술작업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미지수이다.

 

카라는 검정 도화지를 이용한 실루엣 작품 외에도, 벽화 전시회장에 프로젝터를 설치하여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서서 움직일 때 그의 그림자가 벽에서 살아 움직이는 살아있는 현장 작업을 하기도 한다. 상상해보자, 내가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내 검은 그림자가 전시장의 벽화와 만나서, 그 순간 나도 벽화 속의 주인공이 되거나 벽화의 일부가 된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카라워커의 작품 활동의 주요 소재가 되는 것으로는

l       흑백 인종문제와 권력의 문제, 소외, 차별, 학대

l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수치감

l       환상 속에 어우러진 역사적 사실과 허구

l       이야기

l       유머

라고 할 만하다. 이런 모티브들이 카라의 벽화에 점층적으로, 입체적으로 등장하는데, 평평한 평면 속에서 마술적인 입체감이 느껴지는 것은 그림을 바라보는 나만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주로 노예해방 이전의 상황을 모티브로 작업을 하는 그의 미술에 대한 비판이나 반발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신진 흑인 미술가들 중에는 흑인을 희화화하고, 백인들의 기호에 맞추는 듯한 카라의 작업에 대하여 공개적 비판을 하고 항의를 하거나, 그의 전시회를 보이콧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왜 흑인 화가가 흑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를 하는가, 그것으로 백인들의 환심을 사고 출세를 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런 반발을 사는 것이다. 나로서는 아시안으로서,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보는 입장에서 카라 워커의 작품들을 보고 매력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흑인 입장이 되면 이런 시각도 가능 할 것 같다. 흑인 예술가들의 이런 비판에 대하여, “What you want: negative images of white people, positive images of blacks.” (당신들이 원하는 : 백인은 무조건 나쁘고, 흑인은 무조건 좋다는 ) 이라고 반박했다. 유튜브에 소개된 카라와의 인터뷰에서 카라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욕망과, 동시에 주인공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욕망 형상화 했다는 설명을 적이 있다. 이를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흑인들에게는 백인이 되고 싶다 숨은 욕망과 더불어, 백인이 되지 못하므로 백인을 죽이고 싶다는 다른 욕망이 있을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사망한 마이클 잭슨은 질환 이유로 여러 차례 성형수술을 감행하여 백인처럼 자신을 변모 시킨 있다. 그는 백인이 되고 싶었던 같다. 남아를 선호하는 전통 사회에서 여야 태어난 내가 남자가 되고 싶다 욕망을 간직하고 성장했듯, 동시에 남자 형제들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며 살았듯, 백인이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백인이 되고 싶다. 동시에 백인이 정말 밉다 심리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아닐까? 흑인으로서 흑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보다는 백인이 되고 싶다 욕망을 표출할 , 그것이 비난 받을 행동인가? 카라는 바로 그런 질문을 공격적을 던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너희도 백인 되고 싶쟎아. 주인공 되고 싶잖아. 나한테 신경질이야? 흑인을 우습게 보는 것은 내가 아니고 너희들이쟎아!” – 카라 워커는 이렇게 외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1941년에 흑인 청년 화가 제이콥 로렌스가 60장의 판에 20세기 미국 남부 흑인들이 북으로의 이주 역사를 그려서 미국 흑인들의 삶을 조명했다면,  2000년대의 신진 흑인 화가 카라 워커는 남북전쟁 이전의 남부 흑인들의 삶과 욕망과 잔혹사를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카라 워커는 그의 작품에서 흑인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 흑인 작가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 그의 검정 실루엣 그림 속에서 검정색은 너무나도 선명하고 강렬하며 아름다운 색이 된다. 그의 그림에서 검정은 살아있는, 숨결이 느껴지고, 목소리가 느껴지는, 신음소리와, 노랫소리가 울려 나오는 색깔이 되고 만다. 검정색을 이토록 생동하는, 활발한, 질감과 소리까지 느껴지는 색으로 활용한 화가가 카라 워커 이전에 있었던가? 카라 워커에 이르러 검정색은 완성을 보았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