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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9일 월요일

Snowflake Bentley : 눈꽃 아저씨 벤틀리

 

http://snowflakebentley.com/WBresources.htm

 

 

날이 더울때는 한겨울에 듣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듣는다던가, 눈이 펑펑 쏟아지는 장면이 가득한 영화를 본다던가 (러브 스토리, 러브레터, 닥터 지바고 등) 이런 겨울 풍경을 연상해도 좋을 것 같다.

 

평생 '눈꽃 (snowflake)'만 들여다 본 사나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Wilson A. Bentley (1865-1931).

http://snowflakebentley.com/index.htm

미국의 최 북단이라 할만한 버몬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평생을 보냈다.

윌슨은 정규 학교 교육을 받는 대신에 교양이 풍부한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교육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연속에서 뛰어 놀며 꽃이나 풀, 새 등을 관찰하기를 좋아하던 윌슨은, 어느날 눈 꽃을 들여다보다가 눈꽃의 모양에 매료되고 만다. 버몬트의 특성상 일년의 절반도 넘도록 겨울과 같은 날씨이니 '눈'이야 말로 그의 삶에서 가장 친근한 관찰 소재가 될 만도 한데, 당시에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 흔해 빠진, 지천에 깔린, 지겨운  눈송이'를 들여다보는 이 소년을 제대로 평가했을 것 같지는 않다.

 

처음에 눈꽃송이를 세밀하게 그려대던 이 소년은,

그러나 자신의 그림에 한계를 느끼고

'사진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자 그의 부모는 당시에는 구하기도 힘들었던 카메라를 막대한 돈을 들여 구입해 준다. 그리고 윌슨은 매일 눈꽃송이 사진을 찍는다.  요즘이야 카메라 기술이 하도 좋아져서, 나같이 사진 이론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성능 좋은 카메라로 다양한 근접 촬영을 하면서 기뻐할수 있지만, 초기의 카메라로 '눈송이'를 찍는 작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윌슨 벤틀리의 눈송이 사진 촬영 작업은 계속된다. 그가 눈꽃송이 사진을 찍어대는 세월동안, 주변에서 그의 '눈 사진'의 가치를 인정해 준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을 찍으려면 초상화 같은 인물 사진을 찍던지, 그까짓 눈 사진을 찍어서 뭘 어쩐다는 말인가? 

 

1885년, 스무살이던 윌슨 벤틀리는 역사상 최초로 눈꽃 입자를 찍어낸다. 그리고 그가 모은 5000장이 넘는 눈꽃 입자는 모두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눈꽃 입자들중에서 동일한 모양을 가진 것은 없다고 한다.

 

남이 뭐라거나 말거나 그는 눈꽃 사진을 찍고 들여다보고 기뻐하면서 평생을 지냈고

마침내 이런 그의 '기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대도시에서 그의 사진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발길이 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눈 사진 책(1931)이 탄생한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그가 갑자기 사진계의 스타가 된다거나, 그의 눈 사진으로 떼부자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눈 사진에 미쳐있는 버몬트 시골의 사나이였고, 노년에 눈 사진집을 한권 내기에 이르렀고,  그리고 눈길을 헤메다가 폐렴에 걸려서 급거 사망하고 말았다.

 

 

 

 

내가 눈꽃 사진 작가 윌리엄 벤틀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겨울 (2009), 크리스마스 즈음에 스미소니언에 갔을 때였다. 스미소니언 캐슬 주변의 공원이 커다란 눈꽃 입자 모양의 장식으로 치장 되어 있었는데, 그 공원에 '평생 눈꽃 입자만 사진기에 담은 사나이'에 대한 안내문이 있었다. 그런데 며칠전 코코란 미술관에 척 클로스 특별전을 보러 갔었는데, 사진 전시관 한 구석에 비치된 책자중에 눈꽃 아저씨 벤틀리에 대한 어린이용 책이 있어서 한가로이 앉아 읽게 되었다. 

 

나는 혼자서 한 우물을 파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쉽게 매료되는 편이다.

'모세 할머니'로 알려진 풍속화가에게 매력을 느낀다거나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American%20Art%20History%20Sketch/Grandma%20Moses)

혹은 평생 '삽화가'로 살아간 Norman Rockwell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Realism/Norman%20Rockwell) 에게 애정을 느끼는 이유는

이들이 전문 교육을 받았던 안받았건, 소박한 삶의 풍경들을 들여다보고 외곬수처럼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자기 식으로 표현해 냈기 때문이다.

내가 외곬수로 한가지만 들이 파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보이는 어떤 '일관성'이 나를 끌기 때문인 것 같다.

 

일관성.

쉽게 변치 않는.

한가지 대상에 집중하는.

 

 

이어지는 노래는 Nat King Cole 의 When I fall in love...

  내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은 영원할겁니다...그렇지 않다면 사랑에 빠지지도 않을거예요...

 

 

 

2010년 1월 31일 일요일

건강한 잠

 

사진 클릭하면 큰 이미지로 보실수 있습니다.

 

 

In Sleep (잠속에서) 1983

콘테 크레용, 색연필, 파스텔

Simon Dinnerstein (1943-   )

2010년 1월 31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건강하고, 행복한 잠처럼 보이지요? ...    아 졸립다.  나도 자야지.  행복한 꿈을 꿔야지...

 

 

 

 

 

 

 

2010년 1월 24일 일요일

맛있은 헌등

 

 

 

 

볼티모어 미술관 ( http://americanart.textcube.com/328 ) 기념품 상점에서 발견한 '맛있는 헌등' 카드.

 

일부러 문법에 안 맞는 표기를 한 것인지, 

디자이너가 잘 모르는채  '번역기'에 나온대로 표기를 한 것인지

 

그 자초지종이야 알 길이 없지만, 그나저나 저런 등을 '헌등'이라고 하나요?  '연등'아닌가?  나도 잘 모르겠넹~

 

 

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Cassatt's Cafe

 

 

 

 

 

 

버지니아 알링턴에 위치한 카페: (홈페이지) http://www.cassattscafe.com/

 

내가 한창 Mary Cassett 의 작품에 올인 해가지고 카셋 관련 정보들 수집할때, 우연히 발견한 카셋 이름을 달은 동네 카페. 이곳은 프렌차이즈 식당이 아닌, 이곳에서 '자생'한 식당겸 카페이다. 아침식사부터 저녁식사까지 제공된다. 평소에 '가 봐야지'하고 생각하다가, 오늘 아침에 불현듯 생각나서 아침을 먹으러 다녀왔다.  막상 가보니 집에서 5분 거리였다. (흠...)

 

 

실내 한 벽면에 이지역 미술가들이 그렸다는 소품들이 '가격표'와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명함이 붙어있거나 간단한 작가 소개가 붙어있기도 하고. 가격은 40달러에서 수백달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는데, 뭐 작은 그림을 오십달러쯤에 사서 선물한대도 좋을것 같다.  나도 그림들을 보면서, '아, 카드그림같이 예쁜 그림 하나 그려서 액자 해놓으면 내것도 저기 걸릴수 있겠다' 뭐 이런 생각도 해보고.

 

 

이 카페는, 워싱턴 포스트에서도 소개하는 알링턴의 명소. 알링턴은 워싱턴 디씨에서 포토맥강을 건너면 바로 연결되는 워싱턴 위성도시.  알링턴 국립묘지가 유명한데, 워싱턴 디씨나 알링턴을 방문하는 여행객을 위한 안내책자에도 '가볼만한 식당'으로 추천이 되기도 한다.  프랜차이즈 일색인 미국에서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오직 '하나뿐인'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 장소를 발견하면 반갑고 기쁘고 그렇다.

 

 

 

카푸치노를 주문했는데, 흰눈이 쌓인듯 거품이 풍성했다. 참 좋았다.

 

프렌치 토스트에 시럽과 천연과일이 나온다고 메뉴에 적혀 있길래, 둘이 1인분을 주문했다. 어차피 아침을 거를때도 많고, 안먹어도 그만인데, 아침 먹으러 간것이니까 둘이 일인분만 먹어도 충분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 테이블에는 두개의 접시에 각각 따로 담긴 프렌치토스트가 놓여졌다.  일인분의 양을 두개의 접시에 공평하게 나눠가지고 온것.  세상에나, 부탁도 안했는데 두 사람을 위해 두접시에 나눠오다니!

 

역시나 동네 토박이로 자리를 지키는 이유를 알겠다. 이렇게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씀으로 손님들을 편안하게 접대하는 곳이구나.

 

 

 

 

 

설탕봉지도 예쁘고

 

 

 

천장에는 파란 하늘이 보이는 천창이 있고

 

 

 

70달러짜리 가격표가 붙어있던 빨간 아마릴리스 꽃 그림이 예뻤다. 나도 저런 그림 그려서 액자에 담아서 걸어놓아야지...

 

 

 

 

모처럼 발견한 아름다운 식당이라서, 그리고 조만간 Mary Cassatt 페이지를 열면, 그때 연결시키기 위해서 카페 소개 글을 적어본다.

 

redfox december 29 2009

 

 

 

 

2009년 12월 19일 토요일

National Botanic Garden, Washington D.C.

국립 식물원 공식 홈페이지: http://www.usbg.gov/

입장료 : 무료

입장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스승을 모시고 국회 의사당 앞에 있는 국립 식물원과 국립 인디언 박물관에 다녀오다.

 

한겨울의 국립 식물원은 '낙원'이었다.  일단 들어갔을때 후끈한 열기와 습기가 우리를 반겼고, 그리고 활짝 핀 열대지방의 꽃들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포인세티아들.  계절은 어김없이 한해의 끝, 크리스마스를 향해 치닿고 있었는데,  나는 어쩐 일인지 삶의 어느 시간대에서 정지해버리고 만 것 같다.  세상은 어김없이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식물원 밖으로 나와 국회 의사당 앞 호수쪽으로 가 보았다.  지난 여름에 왔을때 이곳은 공사를 하느라 물을 빼고, 사막같은 풍경이었는데 호수에 물이 차있고, 그 물이 꽁꽁 얼어있었다.  얼음판 위에 갈매기떼가 모여서 미끄럼을 탔다. 

 

식물원이 하도 따뜻하고 촉촉해서, 여기저기서 꽃향기가 퍼져 나와서, 그래서, 그곳에 가면 마음도 따뜻해지고, 시름도 잊을것 같아. 다음에 혼자서 한가롭게 또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워싱턴 디씨 2009년 12월 13일 비오는 저녁

 

 

 

어제(토)는 윌리엄스버그에 다녀와야 했고 (왕복 6시간),  저녁에는 형식적인 만찬에 가서 대략 세시간동안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방긋방긋 웃는 표정을 연출해야 했고 (그래서 무척 피곤).  오늘 오전에는 공항에 나갔다 와야했고,  그래서 또 피로가 누적되었는데,  그대로 오늘을 보내버리면, 내가 살은것 같지가 않아서, 피곤하지만 디씨 시내에 나갔다 왔지요.

 

 * 국립 문서 기록 보관소 ,National Archive

 *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두군데 대충 둘러보고 부슬부슬 비내리는 거리를 달려, 물이 불어난 포토맥강변을 내다보며 집으로 왔습니다.  National Archive 는 평소에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서 들어갈 엄두는 못내고 있었는데, 오늘은 비오는 12월 오후라 줄 설 필요도 없이 한가롭게 들어가 구경할수 있어서 좋았고요... 국립 미술관에서는 그냥 미국미술 파트만 조금 보다가 나와야 했지요.  오후 다섯시면 문을 닫으니까.  그래도, 나갔다 오길 잘했어요.

 

National Archive 맞은편은 조각공원, 조각공원 옆은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지금 사진 왼편에 보이는 것이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이고, 거기서 더 가면 스미소니안 미국사 박물관이 있고요.  사실은 그쪽, 뿌연 안개 너머에 워싱턴 기념비 (Washington Monument)가 서 있지요. 

 

자연사 박물관 앞을 지나칠때면, 거기 있는 전시물들이 머릿속에 환하게 그려지지요.  자연사박물관, 참 좋아해요.  (미술관이 아니므로 소개할 일은 없겠지만요...)  자연이, 지구의 역사가 가장 근사한 예술작품이니까.

 

 

 

국립 미술관 서쪽 입구에서 바라본 국립 문서 기록 보관소 (National Archive).

 

** 앗참,  제가 오늘 국립 미술관에 가서, 미국 근대미술 코너를 살폈는데요,  지난 몇주동안 애시캔/8인회 작가들에 대한 글을 많이 정리했쟎아요.  오늘 가서 제가 사진을 올리고 소개를 한 작품들을 다시 보니까, 그림들이 아주 생생하게 말을 거는것 같았어요.  그림들이 살아서 다가오는것 같았다구요.  붓터치도 생생하게 느껴지고요.

 

그러니까 프로세스를 정리를 해보면

 

(1) 나는 미술관을 어정거리면서 이작품은 맘에 들고, 이작품은 유명하지만 맘에 안들고, 어쩌고 혼자 생각을 한다

(2) 나는 사진을 찍는다

(3) 나는 집에와서 사진들을 휙 보고 그냥 며칠 지난다

(4) 얼마후 나는 슬슬 미술책들을 보면서 자료를 정리를 한다

(5) 얼마후 나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그림 사이즈도 조정하고, 제목도 다시 정리해놓고

(6) 사진과 자료를 보면서, 글을 쓴다.

(7) 그렇게 몇편의 글을 쓴다

(8) 어느날 시간을 내어 다시 미술관에 가서 내가 공부하고 사색하고 글을 썼던 그 그림들을 다시본다

(9) 갑자기 그림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저벅저벅 걸어서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뭐 대충 이런 흐름이었다는 것이지요.  뭐 이런 작업은 '시간'이 꽤나 드는 것이긴 한데요...그래도 이런식으로 대상에 다가간다는 것이 참, 좋아요.  새로운 경험이라 그런것도 같고.  그냥, 아마도 제가 그림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친구들이 말없이 나를 반겨주는데, 수다스럽지 않으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기 때문일걸요.  그림은 수다스럽지 않아서,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아서, 그래서 좋아요.  내가 다가가면 반갑게 맞아주고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그림 = 조용한 이야기꾼.  그래서 그림이 좋아요. (아마 그래서 좋아하는것 같아요.) 말없이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 늘 한결같은.  늘 한결같은. 

 

존 키이츠 (John Keats)가 탄식하듯 노래하지요 Bright star, would I were steadfast as thou art...  빛나는 별이여, 내가 너처럼 변합없는 존재라면 좋겠네.  사람이 하늘의 별같이 변함없을수가 있을까?  그건 죽어야만 가능한거죠.  죽어야만 가능한것을 산사람이 꿈꾸면 안되는거죠. 그러니까, 죽었지...  한결같은 무엇을 꿈꾸면 안되는거지... 

 

 

 

 

 

2009년 12월 5일 토요일

생각의 지도, 인식의 다양성

 

The Geography of Thought : How Asians and Westerners Think Differently...and Why

 

 

2003년 4월의 나의 독서기록을 보면 '생각의지도'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번역 소개가 되기도 했던 The Geography of Thought 라는 책을 내가 꽤 흥미롭게 읽은 흔적이 남아있다.  이 책이 서양사람들과 아시아권 사람들의 인식의 차이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묘사했다는 혹평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차피 어떤 '이론'을 정리하다보면 다소 '단순하게' 처리되는 내용이 나오는 법이므로 이런저런 상황을 감안해서 좋은 점수를 줬던 기억이 난다. 2003년은 내가 미국에서 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 않던 시기이기도 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 한국과 미국이 이렇게 다르고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이렇게 다르더라'하면서 나름대로 나의 경험과 빗대어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다.  아니, 여전히 나는 하루하루 살면서 그런 비교작업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좌측통행 우측통행

 

가령 자동차는 우측통행, 사람은 좌측통행이라는 식으로 교육받고 자라온 상식적인 한국인이었던 내가, 미국의 대학 복도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쏟아져 내려올때, 좌측으로 얌전히 계단을 올라가는 아시아출신의 나와,  우측으로 우르르 몰려서 계단을 내려오는 미국학생들이 계단의 중앙에서 정면충돌하듯 맞닥뜨렸을때,  상식적인 코리안이었던 나는 '이 미국애들이 왜 좌측통행을 안하나? 정말 버릇없는 놈들이군!' 하면서 탄식을 했을것이고; 저쪽에서는 이 피부 노란 아시안이 왜 우측통행을 안하고 남의 길을 막고 이러는가? 하면서 투덜댔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자동차도 사람도 모두 우측통행 시스템이었던 것이니.

 

 

한국이 서구화되면서 '미국'의 문명이나 제도를 많이 가져다 썼을듯한데, 자동차가 '우측통행'을 하면서 사람은 '좌측통행'을 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잘은 알수 없지만, 내가 상식적인 차원에서 추측하건대,  현대식 자동차 문화가 적극적으로 도입된것이 해방이후이고, 그래서 '미국식' 도로 문화를 채택하게 된 반면, 복도에서의 '좌측통행'은 아마도 일본 식민지시절부터 그렇게 시행했을 것이고, 군사문화에서도 그대로 정착을 하고 있다가 그냥 우리 생활속에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이는 나의 추측일 뿐이다.)  어찌됐건 나는 왼손잡이로 태어나서 오른손잡이 문화에 적응해서 사는 사람이라서, 가끔 방향에 착오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는 '왼손잡이'들이 피치못하게 겪어야하는 설움일수도 있지만, 오른손잡이들의 세상에서는 그들이 멋대로 정한 규율을 따라주는 수밖에.  (그래도 가끔 오바마 대통령이라던가, 우리들의 스타가 테레비에 나올때, 이들이 왼손으로 싸인을 할때, 뭐 그럴때 우리들은 불법 지하단체의 회원들인것처럼 혼자만의 미소를 날리기도 한다. 저기 우리 패거리가 있다구~ )

 

 

가로세로? 세로가로?

 

미국미술 전문(?) 블로그를 만들어놓고 이따금 내가 미술관에서 찍은 작품 사진을 정리하면서 글을 쓰다보면, 그림의 크기를 적게 될 때가 자주 있다.  나는 가능하면 그림의 상세하고도 정확한 정보를 내 블로그에 자료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다보면 미술책을 뒤져서 크기를 확인하고 옮겨적게 되는데 이때 미술품 크기 표기법의 두가지 특징을 만나게 된다.

 

(1) 미국의 미술책에 표기되는 그림 크기는 '인치 (inch)'로 표기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사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센티미터에 익숙하기 때문에 인치표시는 감이 잘 안온다.

 

(2) 친절하고 사려깊은 미술책 편집자는 고맙게도 '인치'와 '센티' 두가지 표기를 해 놓는다. 이런 자료를 보면 참 고맙다. (꾸벅꾸벅. 굽신굽신.)  그런데 내가 들여다보니 이들은 평면, 네모의 크기를 표기할때 '세로 x 가로'의 양식을 따른다.  그러니까 일단 높이(세로)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폭 (가로)가 나온다.  세로-가로로 표기를 하는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네모의 크기를 말할때, 가로-세로라고 저절도 말하게 된다.  한번 해보시길. 당신은 세로가로 라고 말하는가 아니면 가로세로 라고 말하는가?  한국인들은 대개 '가로세로'라고 말 할 것이고, 따라서 크기를 말할때 일단 폭부터 말하고 그다음에 높이를 말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걸 세로-가로로 표시를 할까? 아니면 가로-세로로 표시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한국인인 내 스타일대로 '가로-세로' 표시를 한다. 미술책에 적힌 크기를 다시 내 식으로 순서 바꿔서 정리를 하는것이다.  그러면서 계속 헛갈린다, 내가 이것을 한국인인 나의 표준으로 바꿔서 고쳐 쓰는것이 타당한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는것이다. (한국에서는 미술품 크기 표시할때 어떻게 할까?)

 

그래서 이런 세로가로냐? 가로세로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면...이것이 어쩌면 한국인인 나와 세로가로로 살아가는 미국사람들의 사고에까지 영향을 끼치거나 혹은 우리는 그런식의 다른 인식구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 한국인인 나는 가로-->세로의 사고를 한다. 가로는 수평적 (horizontal) 상태이고, 세로는 수직적 (vertical) 상태이므로 한국인인 나는 수평적인 점에서 출발하여 수직적으로  점진 성장하는 사고를 한다. 이는 우리들의 '좌식'문화와도 연관되어 보인다.

 * 미국인인 아무개는 세로-->가로의 사고를 한다.  어떤 계층 (하이어라키 hierarchy)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이들은 '입식'문화와도 연관되어 보인다.

 

한국인이 수평적 사고, 미국인이 수직적 사고를 한다고? 미국인이 계층적 (hierarchical)사고를 한다고?  오히려 한국이 위계질서가 뚜렷하고 미국인이 수평적인 질서를 유지하는것 아니야? 누군가 이런 반문을 할 수 있겠다 (나 스스로 내게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천만에 말씀이오~'이다.

 

한국인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불교적'인 가락이 있고, 천지 만물은 동등하다는 정서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벌레 한마리와 사람 사이에 큰 차이를 느끼지 않는 문화권이다.  만물이 동등하다는 말씀이다.  나는 그리고 그런 정서를 갖고 성장하고 자랐다. 그래서 나는 나를 수평적 정서의 인간으로 분류한다.

 

미국인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유일신' '기독교' 가락에서 출발하고, 기독교에는 '위계질서'가 분명히 존재한다. 위에 신이 있고, 그 아래 인간이 있고, 인간 아래에 천지 만물이 있다.  상하가 이렇게 뚜렷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수직적 정서를 가진 사람들로 분류한다.  

 

그러므로 나는 가로세로로 사고하고, 미국인들은 세로가로로 사고한다. (단순화 시켜서 보자면 이런 측면도 있을수 있다는 것이다.)

 

 

목수의 집그림

 

신영복 선생님의 서화 에세이집 '처음처럼' 36페이지에 실린 그림

 

 

목수의 집 그림

 

노인 목수가 그리는 집 그림은 충격이었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반대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을 맨 나중에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목수는 목수의 안목으로 그림을 그릴것이고,  서양식 건축을 공부한 사람은 그가 배운대로 그림을 그릴것이고, 집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갖고 싶은 집 그림을 그리게 될것이다. 사람이나 사회, 집단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존재하고, 때로 그 차이는 우주의 폭처럼 크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 차이를 인지하게 될때 우주처럼 광대하던 그 차이의 간격은 '이해'로 메꿔질수도 있고 혹은 끈끈하게 화합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집 창가에 앉아 이방인의 시선으로 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온 생명체라면 지구는 우리에게 낯선 땅이고 우리는 후에 우리의 별로 돌아가 '지구에 갔었는데....' 즐거웠노라고 말하게 되기를...(천상병 시인처럼)

 

 

 

 

 

 

 

 

 

2009년 11월 5일 목요일

디트로이트 벽화, 디에고 리베라 Detroit Industry Murals (1)

http://americanart.textcube.com/94  디트로이트 미술관 페이지에 소개한 바 대로, 디트로이트 미술관에 가면 건물 중심의 작은 광장 (Garden Court, 우리나라 식으로 따지면 안마당에 해당되는 공간)에 멕시코 출신의 사회주의 미술가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1886-1957)가 1932년 4월부터 1933년 3월까지 만 11개월간 작업하여 완성시킨 벽화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 벽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누구인가?

 

2002년에 국내에도 소개된 Frida (프리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멕시코 여성화가 Frida Kahlo (프리다 칼로)의 일대기를 영화로 옮긴 것입니다.  제가 디에고 리베라를 알게 된 것은 이 영화를 통해서였습니다. 프리다의 '남편'으로서 그 사람을 처음 인지 한 것이지요. 이 영화에 보면 프리다 부부가 러시아의 트로츠키를 멕시코에서 숨겨준다거나 프리다와 트로츠키가 사랑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한 여성 화가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속에 당시의 멕시코 사회상이나 러시아 사회주의의 갈등, 미국의 호화판 자본가들이 세계가 화려하게 그려지는 덕분에 볼거리도 풍성하고 아름다웠지요.  이 영화속에서는 프리다가 이미 멕시코에서, 그리고 서방세계에서 대가로 자리잡은 리베라 디에고와 만나서 결혼하고 고통받는 과정을 절절하게 묘사가 됩니다.  자유분방했던 디에고 리베라가 심지어 프리다의 친자매와도 정사장면을 연출하는데, 보기가 딱하죠.

 

 

1886년생인 리베라는 야간 미술학교를 시작으로 정규 미술학교 활동에 이르기까지 차근 차근 미술 과정을 이수해 나가다가 1907년에는 유럽으로 떠나게 됩니다.  파리에서 당대의 거장들인 세잔느, 고갱, 르누아르, 마티스의 스타일들을 배워나간후에 이탈리아로 가게 되는데, 이탈리아에서 그는 자신만의 그림세계를 찾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시스틴 성당등 대형 건물의 프레스코화에서 그는 자신이 추구할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1921년에 그가 멕시코로 돌아왔을때 그는 공공시설이나 기념비를 위한 예술작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는 멕시코 혁명 직후에 멕시코 공산당에 가입하고, 1927년에는 멕시코 공산당 간부 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1922년부터 1930년까지 그는 멕시코의 공공건물에 혁명기념 벽화작업을 하였는데 멕시코 전통 예술과 멕시코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주제의 작품들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발견한 그의 그림들도 대개는 멕시코 역사속의 영웅들이나 민중의 삶을 묘사한 작품들이었습니다.

 

멕시코는 1920년대에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멕시코의 미술가나 작품도 미국에 활발하게 소개가 되기도 했는데, 그 과정속에서 디에고 리베라가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관장인 Valentiner (발렌티너)와 연결되게 됩니다. 발렌티너는 대형 벽화를 많이 제작한 리베라에게 디트로이트 미술관 코트야드 (안마당)의 벽화를 주문하고, 포드자동차의 설립자인 헨리 포드의 아들 Edsel Ford 역시 이 예술작업에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합니다.  그리하여 1932년부터 1933년까지 만 11개월 사이에 리베라의 벽화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디트로이트 벽화 작업 후에 그는  뉴욕의 록펠러 재단의 초대를 받고 맨하탄의 RCA 빌딩 벽화 작업에 들어갑니다. 일설에 의하면 록펠러 재단은 피카소에게 벽화를 의뢰하려 했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피카소를 섭외하는데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디트로이트 벽화 작업을 할 때에도 지역의 종교인, 비평가들 사이에서 그의 작품이 선정적이라거나 신성모독이라거나 수상쩍다는 식의 비난을 받고,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었는데, 대개는 그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발렌티노가 이런 소동을 잠재우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분방한 맑시스트 예술가는 뉴욕에서 더욱 자유분방해졌던 것 같습니다. 감히 뉴욕의 심장부에 '레닌'동지를 찬양하는 벽화 작업을 했던 것이니, 록펠러 가문에서 '제발 그 그림은 빼달라'고 사정사정을 했건만, 콧대높았던 리베라가 레닌을 극구 지키겠노라고 고집을 피웠던 모양입니다.  뭐, 결국 돈많은 록펠러 집안은 그림값을 모두 지불한 후에 벽화를 세상에 공개도 하지 않은채, 벽화 전체를 싸그리 아작을... (ㅠ.ㅠ) 냈다는 슬픈 전설이 아직도 흐르고 있습니다.

 

디에고 리베라의 예술은 멕시코 뿐 만 아니라 그후의 미국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펼쳤던 대중 미술 프로젝트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Public%20Works%20of%20Arts%20Project ) 역시 리베라 예술의 영향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 당시에 미국의 공공건물이나 기관에 많은 벽화들이 제작되었고, 잭슨 폴락이나 벤샨과 같은 작가들도 바로 이런 벽화 제작을 하면서 목에 풀칠을 한 경력이 있지요. 직접 리베라와 함께 작업을 했고요. 그가 남긴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벽화는 오늘날 디트로이트의 상징적인 미술품이 되었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 화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경제 대도시였던 디트로이트의 심장부에 미국의 노동자, 미국의 산업을 상징하는 대서사시와 같은 작품을 남김으로써 '미국미술'을 일궈낸 화가로 기억됩니다.

 

 

Please see http://americanart.textcube.com/150  Detroit Industry Mural (2)

 

2009년 10월 26일 월요일

The Empire of Light II (빛의 제국 2) 르네 마그리뜨

 

Rene Magritte (Belgian, 1898-1967)

1950 (Oil on Canvas)

 

 

2009년 9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찍어옴.

http://americanart.textcube.com/80

 

 

 

2009년 10월 23일 금요일

[Book] The Giving Tree

 

The Giving Tree

 

 

Where the Wild Animals Are 에 관한 글을 몇 편 쓰다보니 Shel Silverstein 의 The Giving Tree (아낌없이 주는 나무) 페이지를 만들고 싶어진다.  쉘 실버스타인 (1930-1999) 역시 Maurice Sendak 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활동하던 작가이며 삽화가이기도 하다.  대개 이 책은 '선물'로 누군가에게 사주기에 알맞은, 누군가로부터 선물받기에 적합한 책이 아닐까?  내가 이 책을 소유해본적은 없지만 내가 성장할때 이 책이 집에 있긴 했었다. 언니나 오빠가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았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갔을때, '제법' 폼을 잡느라고 '영문판'을 찾아서 서점에 서서 보기도 했고.

 

얼마전 ESL 영어수업을 하던중에 무심코 The Giving Tree 책 이야기를 했는데, 중국인 학생 한명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그 책을 모른다는 것이다. 다 알거라고 생각하고 얘기 했는데, 모르는 학생도 있구나.  그래서 도서관에서 이 책과, 디비디를 빌려다 놓았다. 다음 수업중에 함께 책을 읽으며 동영상을 살펴보려고.  유튜브를 검색해보니 쉘 실버스타인이 직접 낭독하고 제작한 동영상이 올라 있었다. (디비디 빌릴 필요도 없었군...)  녹음상태가 썩 좋은 편이 아니지만 저자가 직접 총괄 기획한 동영상이라 그림의 맛이 다르긴 하다. (그래도 ESL 수업에서 듣기 자료로 쓰기에는 적합치 않다.)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목소리 좋은 성우가 아주 잘 읽어낸 자료도 있었다.  그것으로 듣기 수업을 하고, 텍스트를 읽게하고, 직접 학생들이 이야기를 낭독하거나 줄거리 정리를 발표할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Falling Up

 

 

실버스타인의 저서중에 내가 갖고 있는 책은 이 Falling Up 이라는 동시집이다. 가끔 아주 쉬운 동시를 골라서 ESL 수업할때 Chanting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학생들이 금세 시를 외워서 의기양양하게 발표하곤 한다.  언어의 가락과 맛을 잘 살린 시들이 많이 들어있다. (이 역시 선물 받은 책이었다).

 

 

유튜브 자료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 (수업중에 듣기 재료로 쓸만한 것은)

 

 

 

실버스타인이 직접 낭독하고 제작한 작품

 

 

 

몇가지 더 살펴보면, 엽기 버전도 있고...

 

글쓰기와 삽화그리기 모두를 잘 한 작가들을 묶어서 따로 페이지를 만들어볼까 싶기도 하다. :-)  (심심할때...)

 

 

 

Where the wild things are: 작가, Maurice Sendak

http://americanart.textcube.com/131

http://americanart.textcube.com/134

에 이어...

 

작가소개: Maurice Sendak

 

 

 

 

그림동화 Where the Wild Things Are (괴물들이 사는곳)의 이야기와 그림를 만들어낸 사람은 동화작가이면서 삽화가이기도 한 Maurice Bernard Sendak (모리서 버나드 센닥) 입니다. 1928년생이고 2009년 현재 생존하는 작가이므로 올해 81세가 되겠군요.  센닥 자신은 뉴욕의 부르클린 (Brooklyn)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는 폴란드계 유태인입니다. 열두살때 디즈니의 '판타지아'를 보고나서 삽화가 (illustrator)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하지요.  그는 Where the wild things are 라는 출세작을 1963년에 선보였는데, 그 이전까지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주로 다른 사람들이 지은 책의 삽화를 그리면서 습작 기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의 또다른 작품 'In the Night Kitchen (밤에 부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은 1970년에 출판되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년 미키가 하필 나체로 꿈속에서 노니는 장면이 이어지기 때문에 미국의 여러주에서 '금서'지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리노이주, 뉴저지주, 미네소타주, 텍사스주에서 여전히 금서라고 합니다. 도대체 뭘 얼마나 벗었길래 아동 그림책이 선정성이 문제가 되어 금서가 되는걸까요? 

 

 

 

자, 이렇게 '다 벗은' 사내아이가 등장 합니다. 뭐 생식기및 고환이 다 드러납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겠지요, 결국). 이 아이가 이리저리 뛰놀때, 뒷모습이 보일때는 뒤에서 잡히는 고환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어린 남자애 다 벗고 노는것이 왜 문제가 되어서 일부 주에서 금서로 지정을 한 것일까? 이 문제를 잠시 생각해 보았는데, 금서로 지정한 사람들을 비난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너라면 너도 금서로 지정하는데 찬성할래?' 하고 묻는다면, 금서지정에 찬성을 하지는 않을것입니다. 그렇지만 금서지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아이들 백일사진, 돌사진 찍을때, 옛날에 제가 어린 시절에는 남자아이들 다 벗겨놓고 고추 드러내고 찍은 사진 많았습니다. 동네 사진관 앞에 지나가면 꼭 이런 사진 하나가 진열장에 있었습니다. 사내아이들 고추 다 드러내고 노는 것은 예사였고, 여자 목욕탕에 꼬마 아이들이 고추 내밀고 돌아다니기가 예사였습니다.  애 엄마는 자식 데리고 들어와 씻기는 일이지만, 아무튼 남자 고추는 일정 연령까지는 공공장소에서 내 놓기가 예사였습니다.  여자 아이는 안그랬습니다. 백일사진 돌사진에 여자아이 벗겨놓고 찍은거 본적 없죠. 여자아이는 아랫도리 벗고 공공장소에서 노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남자고추는 아무데서나 드러내고 '자랑하듯' 과시하는 지경이고, 여자의 아랫도리는 은폐의 대상이었습니다.  결국 남자는 아무데서나 드러내고, 권력행사하고, 과시하고 이런데 익숙해지고, 여자는 은폐하고 가리고 숨는데 익숙해지지요.  이런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남자아이가 고추 내밀고 노니는 어린이 그림책이 -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충분히 남근중심적인 사회문화를 형성하는데 일조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 고추 드러낸 그림이 문제가 아니라, 하필 남자아이 혼자서만 고추 내밀고 노는것이 '자연스러운' 그런 문화가 문제가 된다고 보는 편입니다.  남자 여자 둘다 벗겨놓고 천국의 아이들처럼 뛰놀게 하던가, 그것이 힘들면 적당히 입혀주던가. (공평하게). 이것이 내가 '금서'로 지정하는데 일부 긍정하는 시각이고, 딱히 금서일 필요까지 없다고 보는 이유는 그림책 자체의 본래 의도가 남근중심에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하하하. 센닥은 최근에 2008년 뉴욕 타임스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이며 동성애 파트너와 50년 이상을 함께 살아왔다는 고백 - 일명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스콜라스틱 DVD에 그의 문제작들의 동영상이 실려 있어서 세밀하게 관찰할수 있었습니다.

 

그의 Where the wild things are 는 1979년에 드라마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오페라나 발레 무대의 배경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도 여러차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Where the wild things are 에 나오는 도깨비들은, 폴란드계 이민자들이었던 그의 친척 아저씨 아줌마들이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이민자들이라 영어가 서툴러서 이상스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그의 이야기책에 응용한 것이라고. (하하하) 제가 이민자 영어 문제에는 유난히 각을 세우고 들여다 보는 편입니다.  전공이 전공이다보니까.  근래에 소개된 영화 Where the Wild Things Are 에 올빼미 두마리가 나옵니다. 올빼미는 그냥 뭐라뭐라 지저귀는 수준이라, 그가 뭐라고 떠드는지 알아들을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올빼미의 친구들은 그 올빼미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알아듣는것 같습니다. '캐롤' 도깨비가, "난 올빼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수가 없어" 하고 투덜대자, 맥스도 고백합니다, "사실은 나도 마찬가지야."  다른 도깨비들을 서로 알아듣는것 같은데...  이 장면에서 나는 소통의 은유를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우리가 '말'을 알아들을때,  그 '말'은 단지 입에서 나오는 '언어적 구조'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고, 그 너머에 뭔가 있다는 것이지요.   (나중에 이 영화 DVD가 나오면, 문제의 이 장면을 학생들에게 틀어주고 이 현상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해보라고 하면 어떨까, 이런 궁리까지 하게 됩니다.)

 

 

 

In the Night Kitchen 에서 작은 요리사들이 미키를 오븐에 구우려고 한 장면은 유태인들이 겪은 홀로코스트 (나찌의 유태인 학살)를 풍자한 장면이었다고도 합니다.  최근에 소개된 영화 Where the Wild Things Are (2009) 는 1973년에도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습니다.


 

센닥은 필라델피아의 Rosenbach Museum and Library (http://www.rosenbach.org/home/home.html) 에 그의 작품 대량을 기증한바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가게 되면 이곳도 들러보고 싶어집니다.  세상은 넓고 가보고 싶은 곳은 많군요.

 

(눈치채신 분들도 있을겁니다. 필라델피아는, 삽화가 illustrator 들에게는 메카 같은 곳인것 같습니다.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이 대개 필라델피아에서 성장하여 뉴욕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보여주기도 했고, '삽화가'들은 대개 그들의 그림을 필라델피아로 보냅니다.  필라델피아가 '출판'의 메카였던 시절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Where the Wild Things Are 괴물들이 사는 곳

Where the Wild Things Are

 

 

http://americanart.textcube.com/131  페이지에서 모리스 센닥의 동명 그림이야기책을 영화화한 Where the Wild Things Are 최근판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영화가 기대이상으로 아름다웠는데, 동네 가게에 나가보니 이 영화의 등장에 힘입어 관련 인형들과, 옛날에 이미 만들어진 Scholastic 출판사의 동화 DVD도 판매가 되고 있었다. (스콜라스틱 출판물은 한국에도 꽤 알려져 있다. 특히 자녀의 영어교육을 신경쓰는 부모들이라면 책을 몇권 사모으거나, 이미 집에 몇권 굴러다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인형 하나 10달러, DVD 5달러.  사 놓고 흐뭇. (내가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서 선생질을 한 이후부터, 담뱃값이나마 월급이라도 받게 된 이후부터 가장 살맛나는 것은 십달러나 오달러정도의 책이나 인형 혹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 정도는 큰 고민 안하고 살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복 된 일이로다.)

 

 

맥스 (Max) 인형.  모자 벗을수도 있다. ㅎㅎㅎ

 

 

 

이 DVD에는 이 외에도 센닥 동화 두편이 더 들어있다.

 

 

 

 

 

 

 

동화작가이면서 동시에 동화 삽화가이기도 한 모리스 센닥의 '미술세계'를 간단히 정리해보고 지나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시장' 자체가 커서 그런지 몰라도 '일러스트레이션 illustration' 이 하나의 분야로 자리를 잡았고, 특히나 책/잡지/동화책 등의 삽화가들이 자신들의 전문적인 분야를 확보한 경우가 많아보인다. 

 

 

2009년 9월 19일 토요일

Roy Richtenstein, 로이 리히텐시타인, Modern Head

 

http://americanart.textcube.com/48 로이 리히텐시타인의 '집'에 이어

 

워싱턴 디씨의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 미술 박물관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Art and Portrait Gallery) 입구에 설치된 로이 리히텐스타인(1923-1997)의 작품, Modern Head (근대적 머리). 1974년에 디자인이 만들어졌고, 이 작품은 1989-1990 년에 제작된 것이다.

 

리히텐스타인은 1960년대 말 부터 이 모던헤드 시리즈를 시작하는데, 산업화가 가속되는 현대 문명 속에서 기계처럼 변화하는 인간을 묘사했다. 1930년대를 풍미했던 아르 데코 (Art Deco) 건축 디자인과도 맥이 통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원래 1996년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World Trade Center)에서 한블럭 떨어진 곳에 세워졌었다.  그런데 2001년에 911 참사가 터졌고, 무역센터 빌딩들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 발생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한복판에 있었던 이 작품은 약간의 표면 상처만 입었을 뿐 멀쩡하게 그 재난을 버티고 서 있었던 것.  모던 헤드.  이는, 인간의 두뇌가 그 모든 재앙 속에서도 꿋꿋함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래서, 911참사 발생 직후, FBI 요원들이 이 지역을 조사하던 시절, 이 작품은 FBI 요원들의 '메모판'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작품 벽에 메모지들을 붙여놓고 정보 정리도 하고 연락도 취하고...  911참사 발생 2개월 후 2001년 11월 9일 모던헤드는 뉴욕에서 벗어나 워싱턴의 스미소니언으로 오게 되었다. 현재는 박물관 울타리 안쪽에 세워져 있으므로 다가가서 메모지를 붙여 놓을 수는 없지만, 멀리서도 이 파란 얼굴을 보면 반갑기도 하다. 재앙을 딛고 일어선채 우리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있는것 같아서.

 

september 18, 2009 rf.

 

 

그런데, 지금 사진을 들여다보니 울타리에 붙어있는 장애인 표시의 파랑색과 모던헤드의 파랑색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루는듯 하다.

 

 

 

2009년 9월 13일 일요일

Roy Lichtenstein: House 1 리히텐시타인의 '집 1'

 

 

미국 미술가들을 차례차례 정리하다보면 훗날 Roy Lichtenstein (로이 리히텐시타인)에 대한 챕터도 정리가 되겠지만, 오늘은 National Galler of Art (워싱턴 국립 미술관)의 조각공원 (Sculptor Garden)에 설치된 그의 작품 한가지를 소개한다.

 

사실, 이 작품은 워싱턴에 2년 넘게 드나들면서 자주 보던 것인데, 며칠 전에야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했던 것을 고백한다.

 

(사진감상)

 

 

 

'집'이라는 이 작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 입체감을 달리한다. 귀여운 집이다. 어떻게 보면 공중에 떠있는것 같기도 하고.  언덕위의 집을 이각도 저 각도에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평지이다. 평지인데 어떻게 언덕위의 집처럼 보이는가?

 

그 비밀은..

 

..

 

..

 

..

 

..

 

 

우리의 착시현상을 이용한 작품이다.  :)

 

 

2009년 8월 31일 월요일

Kara Walker: 우스꽝 스러운 흑인 잔혹사

http://americanart.textcube.com/30

Jacob Lawrence (1917-2000) 페이지를 쓰고 나니, 흑인 여성 미술가 Kara Walker (1969-   )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Kara Walker를 만난 것은 워싱턴 디씨에 있는 Corcoran Gallery of Art (코코란 미술관)에서였다. 전시장 벽에 검정 실루엣으로 그려진 사람들. 흑인들 특유의 실루엣이었으므로 단박에 흑인관련 작품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참 독특했다. 새롭고 매력적이라고 해야 하나? 단지 검정 색 도화지를 오려 붙인듯한 전시물들. 벽 전면에 채워진 그림자들. 그 실루엣으로만 이루어진 인물들 속에는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가령 노예 해방 이전에 남부에서 일어났을 법한, 백인 주인이 흑인 여자를 강간하는 장면이라던가, 여성이 남성의 신체를 기쁘게 해주는 장면, 입맞춤 하는 흑인의 손에 들린 예리한 칼. 이런 장면들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서, 가량 스토우의 톰아저씨의 오두막, 혹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 그 밖의 미국 흑인 잔혹사 관련 이야기에 소개되었던 에피소드들이 일제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순전히 검은 도화지를 오려서 붙인 것 같은 이 실루엣 인물들이 그 흑백의 대비속에서 오히려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와 말을 붙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홀린 듯이 작품 구경을 했었다. 2008년 5월의 일이다.

 

 

 

                    워싱턴 디씨, 코코란 갤러리 2층에 전시된 카라 워커의 작품 (2008년 5월)

                               전시장을 지키던 흑인 경비원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

 

 

 

 

사실 이보다 한달 전, 2008년 4월에 워싱턴 디씨의 스미소니안 미국 미술 박물관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and Portrait Gallery)에서 그의 특별전을 본 적이 있다. 미국의 일반적인 미술관의 경우에 상설 전시관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사진 촬영이 가능하지만 특별전시장에서는 대체로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이점은 미국에서 미술관 나들이를 할 때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꽤 크게 열렸던 그 당시의 카라 워커전을 나는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로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서 심심풀이로 미술책을 꺼내 볼 때면 나는 이따금 카라 워커의 책을 들여다보곤 한다.

 

카라 워커는 1969년 생이다. 이제 활발하게 작업하는 젊은 미술가라 할 만 하다.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던 카라는 13세에 조지아 주의 아틀란타로 이주하면서 흑백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조지아 주의 아틀란타시는 미국 남부에서 가장 큰 대도시로 알려져 있고, CNN의 본사가 아틀란타에 있어, 남부의 자존심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한다. 또한 아틀란타를 흑인 공화국, 흑인들의 수도라고도 부를 정도로 흑인 인구가 많다. 남북전쟁에서 남군이 패배하기도 했지만, 그 후로도 미국의 남부는 북부에 비해서 경제적인 열세에 있는 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소녀가 아틀란타에 왔을 때 흑과 백의 차이를 감지했음을 보건대. 1970년대 아틀란타에서는 여전히 미세하게 흑인 백인들이 서로 융화되지 못한 채 살았을 것이다. 흑인 인구가 적으면 아무하고나 어울려 살게 되지만, 흑인 인구가 일정 수 이상이 되면 이들이 모여서 사는 것이 가능해지고, 이렇게 특정 집단을 형성하게 되면 흑인들은 흑인 인구가 집중된 학교에 다니고, 흑인 문화권에서 나고, 자라고, 늙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미국의 주류사회,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배계층인 백인사회와 더욱 멀어지

게 된다. 소녀 카라 워커는 이러한 문화권 속에서 자란 듯 하다. 참고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네스에 커다란 코리아 타운이 있고, 뉴욕 맨해턴에도 코리아 타운이 있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워싱턴 지역, 북 버지니아에도 애난데일 Annandale 을 중심으로 한국인 상점이 밀집되어 있는데, 우리는 때로 농담 삼아, 애난데일은 미국인가 아닌가? 이런 농담을 하기도 한다. 한국인이 애난데일 지역에서 산다면, 온종일 영어 한마디 할 것 없이 한국인 상점에서 필요한 것 사고, 한국인 미장원에 들르고, 한국 책방에 가고, 한국 교회에 가면 되고.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면,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의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보다는 미국의 변두리에서 애매한 한국 문화권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특정 집단이 밀집한 곳에 살면서 정서적인 안정감이나 소속감을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주류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우울감도 생길 수 있다. 카라 워커는 자기 자신이 흑인 여성으로서 흑인인구가 밀집한 곳에서 성장하면서 이러한 우울감을 일찌감치 맛 본 듯 하다.

 

카라 워커는 아틀란타 예술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로드 아일랜드에서 미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가가 되는 정석의 교육을 받은 셈이다.

 

카라 워커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94년 그녀가 24세 되던 해에 소호 (SoHo)에서 열린 전시회 부터였다. 카라는 검정 도화지로 실루엣을 오려서 벽에 붙이는 식의 벽화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주로 남부 노예들이 백인한테 강간 당하거나, 유사 행위를 하는 장면들이 코믹하고 간결하게 그려졌다. 잔혹한 장면이면서 동시에 코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나는 이점이 궁금한데, 실제로 카라 워커의 대형 벽화 작품들을 직접 볼 때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끔찍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유머러스한. 사람들은 이 특이한 작업을 매력적으로 받아들인 듯 하다. 그 후로 카라 워커는 미국의 유수의 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갖게 된다. 요즘도 미국의 잘 나가는 작가이고 앞으로 그의 미술작업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미지수이다.

 

카라는 검정 도화지를 이용한 실루엣 작품 외에도, 벽화 전시회장에 프로젝터를 설치하여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서서 움직일 때 그의 그림자가 벽에서 살아 움직이는 살아있는 현장 작업을 하기도 한다. 상상해보자, 내가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내 검은 그림자가 전시장의 벽화와 만나서, 그 순간 나도 벽화 속의 주인공이 되거나 벽화의 일부가 된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카라워커의 작품 활동의 주요 소재가 되는 것으로는

l       흑백 인종문제와 권력의 문제, 소외, 차별, 학대

l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수치감

l       환상 속에 어우러진 역사적 사실과 허구

l       이야기

l       유머

라고 할 만하다. 이런 모티브들이 카라의 벽화에 점층적으로, 입체적으로 등장하는데, 평평한 평면 속에서 마술적인 입체감이 느껴지는 것은 그림을 바라보는 나만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주로 노예해방 이전의 상황을 모티브로 작업을 하는 그의 미술에 대한 비판이나 반발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신진 흑인 미술가들 중에는 흑인을 희화화하고, 백인들의 기호에 맞추는 듯한 카라의 작업에 대하여 공개적 비판을 하고 항의를 하거나, 그의 전시회를 보이콧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왜 흑인 화가가 흑인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를 하는가, 그것으로 백인들의 환심을 사고 출세를 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런 반발을 사는 것이다. 나로서는 아시안으로서,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보는 입장에서 카라 워커의 작품들을 보고 매력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흑인 입장이 되면 이런 시각도 가능 할 것 같다. 흑인 예술가들의 이런 비판에 대하여, “What you want: negative images of white people, positive images of blacks.” (당신들이 원하는 : 백인은 무조건 나쁘고, 흑인은 무조건 좋다는 ) 이라고 반박했다. 유튜브에 소개된 카라와의 인터뷰에서 카라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욕망과, 동시에 주인공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욕망 형상화 했다는 설명을 적이 있다. 이를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흑인들에게는 백인이 되고 싶다 숨은 욕망과 더불어, 백인이 되지 못하므로 백인을 죽이고 싶다는 다른 욕망이 있을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사망한 마이클 잭슨은 질환 이유로 여러 차례 성형수술을 감행하여 백인처럼 자신을 변모 시킨 있다. 그는 백인이 되고 싶었던 같다. 남아를 선호하는 전통 사회에서 여야 태어난 내가 남자가 되고 싶다 욕망을 간직하고 성장했듯, 동시에 남자 형제들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며 살았듯, 백인이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백인이 되고 싶다. 동시에 백인이 정말 밉다 심리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아닐까? 흑인으로서 흑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보다는 백인이 되고 싶다 욕망을 표출할 , 그것이 비난 받을 행동인가? 카라는 바로 그런 질문을 공격적을 던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너희도 백인 되고 싶쟎아. 주인공 되고 싶잖아. 나한테 신경질이야? 흑인을 우습게 보는 것은 내가 아니고 너희들이쟎아!” – 카라 워커는 이렇게 외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1941년에 흑인 청년 화가 제이콥 로렌스가 60장의 판에 20세기 미국 남부 흑인들이 북으로의 이주 역사를 그려서 미국 흑인들의 삶을 조명했다면,  2000년대의 신진 흑인 화가 카라 워커는 남북전쟁 이전의 남부 흑인들의 삶과 욕망과 잔혹사를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카라 워커는 그의 작품에서 흑인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 흑인 작가들의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 그의 검정 실루엣 그림 속에서 검정색은 너무나도 선명하고 강렬하며 아름다운 색이 된다. 그의 그림에서 검정은 살아있는, 숨결이 느껴지고, 목소리가 느껴지는, 신음소리와, 노랫소리가 울려 나오는 색깔이 되고 만다. 검정색을 이토록 생동하는, 활발한, 질감과 소리까지 느껴지는 색으로 활용한 화가가 카라 워커 이전에 있었던가? 카라 워커에 이르러 검정색은 완성을 보았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