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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일 금요일

Key Bridge: 벽화인가 낙서인가?

 

 

새해맞이 강변산책을 나갔다가 오는길, 이곳은 조지타운에서 알링턴을 잇는 '키 브리지 Key Bridge' 아래 이다. 다리 아래를 통과하여 조지타운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래서 사람의 발길이 닿는 다리밑 공간이 길거리 '낙서예술가'들에게 아주 좋은 그림판이 되어준다.

 

 

 

 

 

 

아래의 그림 (낙서)는 얼핏 잭슨 폴락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예술과 낙서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바스키야라는 요절한 미국 현대화가는 길거리 '낙서'로 시작하여 천재적 빛을 깜빡이다가 스러져간 인물이기도 한데, 이렇게 낙서를 하는 '낙서예술가'들중에 또 어디서 천재의 출현을 알리게 될지 우리는 예측 할 수가 없다.

 

 

 

 

조지타운 키브리지 아래, 운하길에서.  2010년 1월 1일 redfox.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워싱턴 National Archives 의 벽화

National Archives

 

공식 홈페이지: http://www.archives.gov/

 

워싱턴 디씨에 있는 국립 문서 기록 보관소 (National Archives = Archives of the United State of American)는 이름 그대로 문서 기록을 보관하는 '창고'라고 할수 있습니다. 예전에 '국사'시간에 우리도 배운적이 있지요. 왕실의 기록을 조선땅 여기저기에 보관해 놓았다고 해서 그 장소를 달달 외운 기억이 있는데요, 그래서 외침으로 궁성이 여러차례 불 탔어도 조선왕조실록이니 하는 사료들이 잘 보관되어 전해졌다고 하지요.  워싱턴의 국립 문서 기록 보관소도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보관하는 장소이고,  미국의 각지에 이러한 보관소들이 있다고 합니다.  워싱턴디씨에 있는 보관소에는 특히나 영국의 권리장전, 미국의 독립선언문, 헌법초안, 헌번 개정안등의 원본에 대중들을 위해 전시되어 있어서,  이곳은 미국 전역의 중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워싱턴을 방문할때 반드시 들르는 장소입니다.  저희집 아이들도 중학생때 플로리다에서 워싱턴까지 수학여행을 가서 이곳을 구경한 적이 있지요. (큰놈은 제법 이곳에서 판매하는 독립 선언서 카피본을 기념품으로 한장 사다가 제게 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디 처박혀 있는지도 알수 없지만요.)

 

 

이렇게 일년 내내 많은 미국인들과 여행자들이 찾은 장소라서, 특히나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했던 National Treasure 영화 시리즈 덕분에 이곳을 호기심을 갖고 꼭 보고싶어 하는 청소년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주말이나 휴일에 이곳을 보려면 몇시간씩 뙤약볕 아래서 줄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전에도 몇차례인가 이곳을 지나다가 기웃거려 봤지만 줄이 길어서 번번이 포기했지요 (줄서서 구경하고, 줄서서 식당 들어가고 그러는거 무척 귀챦아 하는 편이거든요. 줄 서라고 하면 그냥 딴거 하고 말죠).  마침 비오는 12월의 일요일.  비는 죽죽 내리는데 누가 이런데까지 마실을 오겠습니까. 날도 춥고.  지나는 길에 들여다보니 뭐 한가로와 보이길래 결국 잠시 들르게 되었습니다.

 

 

 

 

 

 

 

 

 

건물 왼편으로 들어가면 입구가 나오는데요, 입구를 통과하면 공항의 Security Check (물품검사대)과 같은 곳이 나타납니다. 소지품 모두 검사대를 통과해야 합니다. 사람도 검사를 받고요.  아무래도 국립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라서 경비가 엄한 편입니다.  입장료는 무료.  사진도 자유롭게 찍을수 있지만 플래시 사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요즘 카메라들이 좋아서 플래시 없이도 잘 찍히죠)

 

 

 

 

 

 

 

검사대를 통과하여 지층의 '극장'에 가서 이곳을 소개하는 짧은 교육용 영화를 봅니다.  기록의 중요성, 기록의 활용 방법을 알려주는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영화관 시설도 아주 훌륭합니다.  그리고나서  중요 문서 (영국의 권리 대장전, 미국의 독립 선언서, 미국의 헌법초안, 미국의 헌법 개정안 원본들)들이 전시되어있는 로툰다 홀로 이동하여 구경을 합니다. 조명이 침침하여 원문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구경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이 곳이지요)

 

로툰다홀에서 나온후에 교육 전시실이라는, 미국 역사 관련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기념품가게에서 물건 구경하다가 나오면 됩니다.  이것이 단순히 '구경'하기 위해 들르는 절차이고요, 만약에 특정 문서나 기록을 열람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면 해당 사무실로 찾아가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고문서 전시장 (Rotunda Hall)의 벽화

 

전시장의 왼편 벽화는 독립선언문 그림입니다. 벽화 아래에 독립선언문 원본이 전시 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벽화는 '헌법' 그림입니다. 그 아래에 역시 헌법 원문 (Constitution), 그리고 개정안(Bill of Rights)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벽화들을 그린 화가는 Barry Faulkner (베리 포크너 1881-1966) 입니다. 뉴 햄프셔 태생으로 하바드에서 수학하다 이탈리아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미술 수업을 받고 벽화의 본고장 로마에서 실력을 인정받은후 1910년에 귀국합니다. 포크너는 국립 문서 기록 보관소의 벽화를 위임받고 1936년 이 두장의 벽화를 완성합니다.  이 벽화들은 캔바스에 유화로 제작한 것입니다.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한  그림인데, 완성후에 건물의 벽에 벽화로 설치가 된 것이지요.  전에 앤드루 와이어드의 생가를 방문했을때, 스튜디오에 있던 어마어마한 벽화 작품을 발견하고 http://americanart.textcube.com/44,  "저 그림을 어떻게 운반했는가?" 물었더니 캔버스를 둘둘 말아가지고 운송하여 벽에 붙인후에 미술가가 다시 세밀한 보수, 교정 작업을 했다고 가르쳐주더군요.  포크너 역시 캔바스에 유화로 그린 작품을 이리 옮겨다가 벽에 붙인후에 세밀한 완성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 역사상 독립 선언서가 공개된것을 1776년 7월 4일로 정하고 이날을 '독립 기념일'로 기념하는데요, Declaration of Independence 그림에는 독립 선언서 초안을 작성하는데 참가했거나, 최종 서명을 한 인물들이 담겨있습니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이 이 초안의 작성자로 알려져 있지요. 당시 그의 나이가 26세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그림에서 토마스 제퍼슨이 누구인지는 우리도 가늠할수 있겠지요.  그리고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인 벤자민 프랭클린도 보입니다.  저도 거기까지는 알아맞출수 있었는데, 나머지는 설명을 봐야 알겠더라구요.

 

 

 

 

 

 

1776년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후에 1787년에 미국의 헌법이 발표가 되는데 (그러니까 11년이 흘렀군요) 이때 헌법에 동의한주가 동부의 13개주였다고 하지요. 이 그림속에는 헌법에 동의한다고 서명한 사람들과 서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헌법 원문 맨 뒤에 보면 어느주의 대표가 싸인을 했는지 나와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중앙에 흰 옷을 입은 키가 남들보다 커보이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대충 감으로 맞추는거죠 뭐.  미국 역사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

 

 

 

 

 

베리 포크너는 로마에서 미술 수업을 받은 사람이고, 그곳에서 실력을 인정 받은 사람이라서 그의 벽화는 로마의 화풍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벽화속의 풍경은 '사실'과는 부합되지 않고 로마의 풍경속에 미국 역사상의 인물들을 그려 넣은 식이지요.   이 벽화가 1936년대에 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PWAP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Public%20Works%20of%20Arts%20Project ) 및 공공미술이 활기차게 진행된 시기이기도 하고, 미국 지방색이 강한 그림들이 제작되던 시기이기도 한데요, 이 벽화는 이런 흐름과는 달리 로마네스크 양식을 취하고 있지요.  이는, 미국, 특히 워싱턴 디씨 지역의 건축 양식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신생국 미국이 역사속에서 '모델'로 삼았던 것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건축 양식이었습니다.   초기 미국을 건설한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이죠. 하지만 유럽의 모델을 그대로 베껴다 쓰기에는 어딘가 껄끄럽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무엇을 모델로 할것인가? 고대(古代)로 돌아가야죠. 민주주의의 시원지라 할만한 그리스의 건축양식, 대제국이었던 로마의 건축양식을 가져와야죠. 대략 그러한 사연이 있었다 할수 있지요. 

 

제가 이 그림들 관련 자료를 찾다가 아주 재미있는 페이지를 발견했습니다.

http://teachingamericanhistory.org/convention/faulkner/

이 페이지에서 그림속의 인물에 커서를 갖다 대 놓고 클릭하면 해당 인물에 대한 안내가 상세하게 나옵니다.  누가 누구인지 궁금할때 이런 안내가 참 유용하지요.  워싱턴 디씨에 있는 벽화라면...국회도서관의 벽화를 빼놓을수가 없는데, 그곳은 모든 벽이 벽화라서, 아예 책이 별도로 나와있을정도이지요.  아아아, 어마어마한 작업이 될 것 같아서 후일로 마냥 미루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것도 안내해드릴게요.  =-)

 

 

2009년 12월 14일 redfox

 

 

 

 

 

 

 

 

2009년 11월 5일 목요일

디트로이트 벽화, 디에고 리베라 Detroit Industry Murals (1)

http://americanart.textcube.com/94  디트로이트 미술관 페이지에 소개한 바 대로, 디트로이트 미술관에 가면 건물 중심의 작은 광장 (Garden Court, 우리나라 식으로 따지면 안마당에 해당되는 공간)에 멕시코 출신의 사회주의 미술가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1886-1957)가 1932년 4월부터 1933년 3월까지 만 11개월간 작업하여 완성시킨 벽화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 벽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누구인가?

 

2002년에 국내에도 소개된 Frida (프리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멕시코 여성화가 Frida Kahlo (프리다 칼로)의 일대기를 영화로 옮긴 것입니다.  제가 디에고 리베라를 알게 된 것은 이 영화를 통해서였습니다. 프리다의 '남편'으로서 그 사람을 처음 인지 한 것이지요. 이 영화에 보면 프리다 부부가 러시아의 트로츠키를 멕시코에서 숨겨준다거나 프리다와 트로츠키가 사랑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한 여성 화가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속에 당시의 멕시코 사회상이나 러시아 사회주의의 갈등, 미국의 호화판 자본가들이 세계가 화려하게 그려지는 덕분에 볼거리도 풍성하고 아름다웠지요.  이 영화속에서는 프리다가 이미 멕시코에서, 그리고 서방세계에서 대가로 자리잡은 리베라 디에고와 만나서 결혼하고 고통받는 과정을 절절하게 묘사가 됩니다.  자유분방했던 디에고 리베라가 심지어 프리다의 친자매와도 정사장면을 연출하는데, 보기가 딱하죠.

 

 

1886년생인 리베라는 야간 미술학교를 시작으로 정규 미술학교 활동에 이르기까지 차근 차근 미술 과정을 이수해 나가다가 1907년에는 유럽으로 떠나게 됩니다.  파리에서 당대의 거장들인 세잔느, 고갱, 르누아르, 마티스의 스타일들을 배워나간후에 이탈리아로 가게 되는데, 이탈리아에서 그는 자신만의 그림세계를 찾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시스틴 성당등 대형 건물의 프레스코화에서 그는 자신이 추구할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1921년에 그가 멕시코로 돌아왔을때 그는 공공시설이나 기념비를 위한 예술작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는 멕시코 혁명 직후에 멕시코 공산당에 가입하고, 1927년에는 멕시코 공산당 간부 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1922년부터 1930년까지 그는 멕시코의 공공건물에 혁명기념 벽화작업을 하였는데 멕시코 전통 예술과 멕시코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주제의 작품들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발견한 그의 그림들도 대개는 멕시코 역사속의 영웅들이나 민중의 삶을 묘사한 작품들이었습니다.

 

멕시코는 1920년대에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멕시코의 미술가나 작품도 미국에 활발하게 소개가 되기도 했는데, 그 과정속에서 디에고 리베라가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관장인 Valentiner (발렌티너)와 연결되게 됩니다. 발렌티너는 대형 벽화를 많이 제작한 리베라에게 디트로이트 미술관 코트야드 (안마당)의 벽화를 주문하고, 포드자동차의 설립자인 헨리 포드의 아들 Edsel Ford 역시 이 예술작업에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합니다.  그리하여 1932년부터 1933년까지 만 11개월 사이에 리베라의 벽화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디트로이트 벽화 작업 후에 그는  뉴욕의 록펠러 재단의 초대를 받고 맨하탄의 RCA 빌딩 벽화 작업에 들어갑니다. 일설에 의하면 록펠러 재단은 피카소에게 벽화를 의뢰하려 했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피카소를 섭외하는데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디트로이트 벽화 작업을 할 때에도 지역의 종교인, 비평가들 사이에서 그의 작품이 선정적이라거나 신성모독이라거나 수상쩍다는 식의 비난을 받고,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었는데, 대개는 그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발렌티노가 이런 소동을 잠재우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분방한 맑시스트 예술가는 뉴욕에서 더욱 자유분방해졌던 것 같습니다. 감히 뉴욕의 심장부에 '레닌'동지를 찬양하는 벽화 작업을 했던 것이니, 록펠러 가문에서 '제발 그 그림은 빼달라'고 사정사정을 했건만, 콧대높았던 리베라가 레닌을 극구 지키겠노라고 고집을 피웠던 모양입니다.  뭐, 결국 돈많은 록펠러 집안은 그림값을 모두 지불한 후에 벽화를 세상에 공개도 하지 않은채, 벽화 전체를 싸그리 아작을... (ㅠ.ㅠ) 냈다는 슬픈 전설이 아직도 흐르고 있습니다.

 

디에고 리베라의 예술은 멕시코 뿐 만 아니라 그후의 미국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펼쳤던 대중 미술 프로젝트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Public%20Works%20of%20Arts%20Project ) 역시 리베라 예술의 영향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 당시에 미국의 공공건물이나 기관에 많은 벽화들이 제작되었고, 잭슨 폴락이나 벤샨과 같은 작가들도 바로 이런 벽화 제작을 하면서 목에 풀칠을 한 경력이 있지요. 직접 리베라와 함께 작업을 했고요. 그가 남긴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벽화는 오늘날 디트로이트의 상징적인 미술품이 되었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 화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경제 대도시였던 디트로이트의 심장부에 미국의 노동자, 미국의 산업을 상징하는 대서사시와 같은 작품을 남김으로써 '미국미술'을 일궈낸 화가로 기억됩니다.

 

 

Please see http://americanart.textcube.com/150  Detroit Industry Mural (2)

 

2009년 11월 4일 수요일

Detroit Institute of Art (Detroit Museum of Art)

 

 

 

Detroit Museum of Art (=Detroit Institute of Art = DIA = 디트로이트 미술관)는 미국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 (Detroit)시에 있는 미술관 입니다.  젊은이들에게는 Enimem 의 8 Mile 이라는 노래로 더욱 친근하게 여겨질만한 도시인데, 자동차로 달려 디트로이트 구역으로 들어서니 도로의 표지판에 8 Mild Road, 7 Mild Road 라는 표시가 보였습니다.  에미넴의 노래 8마일은 정말로 디트로이트에 존재하는 거리의 이름이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한때 포드 자동차를 위시한 화학, 제약 산업이 활발하게 성장하던 곳이었는데, 현재는 미국 산업의 몰락과 함께 도시 자체도 몰락의 길을 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최근에 마이클 무어가 발표한 영화 Capitalism, Love Story 라는 작품에도 미시건주의 자동차 산업의 몰락이 주민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디트로이트 미술관 (http://dia.org/) 은 1885년 설립된 이래 세계 여러나라의 명작을 비롯 현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65,000 여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는 작겠지만, 내용면에서는 파리의 루브르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서 볼만한 세계 명작, 혹은 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골고루 다 갖추고 있다고 할 만합니다.)

 

제가 이 미술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멕시코의 작가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의 록펠러 건물 벽화사건이 하도 유명해서, 디트로이트에 가면 리베라의 벽화가 온전하게 보존된 것을 볼 수 있다길래,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 벽화가 보고 싶었거든요.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사실 웬만한 작품들은 이미 큼직큼직한 미술관에서 작가별로 주요 작품들을 본 후라서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았고,  오직 그 벽화 때문에 디트로이트로 차를 돌렸다고 할 수 있지요.

 

 

디트로이트 시내를 달려 미술관에 도착하면 로댕의 생각하는 남자가 생각에 잠긴채 우리를 반깁니다. 미국에 이 생각하는 남자가 15점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제가 직접 만나본 남자는 (1) 워싱턴 국립 미술관 (2) 메릴랜드 볼티모어 미술관 (3) 필라델피아 로댕 미술관 (4) 디트로이트 이렇게 넷입니다.  앞으로도 돌아다니며 이 남자가 잘 있는지 찾아 볼 생각압니다. 

 

 

 

 

 

 

건물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비가 저렴한 편입니다. 온종일 5달러) 주차장 입구로 나오면 이렇게 정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미시간의 가을도 펼쳐져 있군요.

 

 

 

 

 

입구에서 표를 살 수 있습니다. 성인 8달러. 다른 대도시의 미술관 입장료에 비해서 저렴한 편입니다. 별 불만없이 입장표 값을 지불했습니다.

 

 

 

 

 

시대별로, 지역별로 세계 여러나라의 명품들이 골고루 전시가 되어 있었지만, 제 블로그의 독자들께서 이미 아시는대로 제가 '미국미술'쪽에 정신을 팔고 있는지라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건성으로 보게 되는편입니다.  사진도 주로 미국미술, 현대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찍게 되는군요. (물론 제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은 시대를 불문하고 정신 놓고 보기는 합니다만.)  뭐, 와홀이 잘난척하는  초상화 작품이 보이는군요. 

 

 

 

 

예,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작품을 발견한 순간, 잠시 제가 저의 우울을 잊을수 있었습니다.  아주 잠시 환각현상처럼 삶의 고통이나, 좌절감, 실의, 자기 연민이나 자기 혐오까지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브르헬 (Pieter Bruegel the Elder)의 혼인잔치 (The Wedding Dance  1566년 추정)를 만났기 때문에.  한번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이, 갑자기, 예고없이 문득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에.   이 그림에서는 정말 '소리'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웃으며 떠드는 소리, 풍악소리, 바람소리 뭐 이런 소리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와 나를 감싸는 듯한 기분이 드는 그림이었습니다.

 

 

 

 

뉴욕 맨해턴의 현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 MoMA)에 가면 노란 바지를 입은 사나이라는 제목의 이탈리아 작가 작품이 있습니다. Michaelangelo Pistoletto (미켈란젤로 피스톨레또)라는 작가인데, 이 사람은 그의 그림을 거울같은 스텐레스 판에 작업을 합니다.  그림을 보면, 거울같은 그림판에 내 모습도 있으므로 나도 그림의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도 들고, 착시 효과도 있고 그렇습니다.  반가워서 그림속에 내가 들어있는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제가 브르헬의 그림에, 그리고 다른 명품들에 혼이 반쯤 나가긴 했지만, 정신을 수습하고,  본래  이곳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멕시코 출신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의 대형 벽화 였습니다.  마침내, 가서, 내 눈으로 보았다는 것이지요.

 

 

틈틈이, 이 벽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사진은 클릭하시면 커집니다.

 

 

 

 

 

 

 

 

 

 

 

 

제가 서 있는 사진 뒷쪽의 벽화 부분을 자세히 보시면, 왼쪽 상단에, 일하는 공장 노동자들을 '구경'하는 관객들이 보이는데 - 가슴에 큼지막한 십자가를 매달은 '귀부인'들과 신사들과 그 아이들이지요. 미국자본주의의 상징, 돈과 그들만의 신교도적(?) 신앙심이 결합된...  저는 특히 그 부분을 상세히 써보고 싶어집니다.

 

이 사회주의사상이 강하게 스며든 벽화가 '디트로이트'에서 뭉개지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만으로도 저는 디트로이트 시가 좋아집니다. 디트로이트는 이 벽화를 살려놓기를 잘 한 겁니다. 사람들은 이제 이 '벽화'를 보기위해 이곳에 오니까.

 

방문: 2009년 10월 31일

2009년 9월 25일 금요일

잭슨 폴락의 숨은 그림 찾기

Smithsonian Magazine 스미소니안 매거진 10월호에 실린 기사.  Decoding Jackson Pollack (잭슨 폴락 암호 풀기) 라는 제하의 글인데 언라인으로도 읽기가 가능하다. http://www.smithsonianmag.com/arts-culture/Decoding-Jackson-Pollock.html?utm_source=dedicated09252009&utm_medium=email&utm_campaign=JacksonPollock

 

 

헨리 아담스가 쓴 기사의 내용은 현재 아이오와 주립대 (University of Iowa) 미술관 (http://www.uiowa.edu/uima/) 이 소장하는 잭슨 폴락의 벽화에 Jackson Pollack 라는 이름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위의 작품에서 jackson pollack 라는 글자를 찾아 낼수 있으신지?

 

 

 

 

 

 

 

 

 

 

 

 

 

 

 

 

 

 

 

 

 

이에 대한 평도 제각각인데,  대략 'Gold is where you find it' 이 되겠다. :-)  jackson pollack 을 찾아내고 싶으면 어떤식으로든 그것을 찾아 낼 것이고, 다른 글자들을 조합해내려고 한다면 역시 그것을 조합해 낼 것이다. 내 눈에는 온통 나체의 여성들이 뒤 섞여 있는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 그림에서 여러가지를 상상해 낸다는 사실이 내게는 오히려 재미있게 여겨진다.  잭슬 폴락이 대단한 사람이긴 한가보다.

 

 

아 그나저나 페기 구겐하임이 소장하다가 아이오와 주립대에 기증한 이 그림은 대략 1억 4000만 달러 (1달러=1000원으로만 계산해도 대략  천사백억 원 (나 이거 계산 잘 못해서 종이에 동그라미 그려가면서 환산했다) 정도로 가늠이 되고 있다.  2008년 여름에 아이오와에 물난리가 나서 당시 아이오와 주립대의 예술대 건물들이 물에 잠기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당시 이곳의 미술관도 피해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그림을 팔아서 미술관을 살리자는 논의를 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기사 원문 카피

 

 

It was my wife, Marianne Berardi, who first saw the letters.

 

We were looking at a reproduction of Jackson Pollock's breakthrough work, Mural, an 8-by 20-foot canvas bursting with physical energy that, in 1943, was unlike anything seen before.

The critic Clement Greenberg, Pollock's principal champion, said he took one look at the painting and realized that "Jackson was the greatest painter this country has produced." A Museum of Modern Art curator, the late Kirk Varnedoe, said Mural established Jackson Pollock as the world's premier modern painter.

 

I was researching a book about Pollock's lifelong relationship with his mentor, Thomas Hart Benton, the famed regionalist and muralist, when I sat puzzling over a reproduction of Mural after breakfast one morning with Marianne, herself an art historian. She suddenly said she could make out the letters S-O-N in blackish paint in the upper right area of the mural. Then she realized JACKSON ran across the entire top. And finally she saw POLLOCK below that.

 

The characters are unorthodox, even ambiguous, and largely hidden. But, she pointed out, it could hardly be random coincidence to find just those letters in that sequence.

I was flabbergasted. It's not every day that you see something new in one of the 20th century's most important artworks.

 

I'm now convinced that Pollock wrote his name in large letters on the canvas—indeed, arranged the whole painting around his name. As far as I can tell, no one has previously made this assertion. Nor is there evidence that Pollock himself, who was loath to talk about his art and left behind few written records, ever mentioned this coded gesture.

I've shared my theory with several Pollock experts. They've had mixed reactions, from "no way" to "far-fetched" to "maybe."

 

"It's feasible," says Sue Taylor, an art historian at Portland State University, who has studied Pollock's 1942 canvas Stenographic Figure, which includes written symbols. "Pollock would often begin with some sort of figurative device to which he would then respond—and eventually bury under layers of paint. Letters and numbers, moreover, frequently appear in works of the early 1940s."

It may not be possible to answer the question definitively unless scientists use X-ray scanning or some other method to trace which pigments were put down first. At the moment there are no plans to do such an analysis.

 

 

If my theory holds up, it has many implications. Mural, commissioned by the collector Peggy Guggenheim for her New York City apartment, is the stuff of legend. Owned by the University of Iowa since Guggenheim donated it in 1948, the painting is said to be worth $140 million. (A later Jackson Pollock painting, Number 5, 1948, reportedly sold in 2006 for $140 million—the highest price ever paid for a work of art.) Mural is so central to the Pollock mystique that in the 2000 movie Pollock, the artist (played by Ed Harris), having stared perplexedly at a giant empty canvas for months, executes Mural in a single session the night before it's due to be delivered. That (standard) version of events, originally advanced by Pollock's wife, the artist Lee Krasner, reinforces the image of Pollock as an anguished, spontaneous genius. But the art critic Francis V. O'Connor has debunked the story, saying Pollock probably executed Mural during the summer of 1943, not in one night in late December.

Pollock's possibly writing his name in Mural testifies to an overlooked feature of his works: they have a structure, contrary to the popular notion that they could be done by any 5-year-old with a knack for splatters. In my view, Pollock organized the painting around his name according to a compositional system—vertical markings that serve as the loci of rhythmic spirals—borrowed directly from his mentor, Benton.

 

Pollock had studied under Benton for two years and once told a friend that he wanted Mural to be comparable to a Benton work, though he didn't have the technical ability to make a great realistic mural and needed to do something different.

 

I have found no evidence that Pollock wrote his name in such fashion on any other canvas. In a way, that makes sense. To Pollock, I think, Mural announced that he was replacing Benton, a father figure whom he once described as "the foremost American painter today." It was Pollock's way of making a name for himself.

 

Henry Adams is the author of Tom and Jack: The Intertwined Lives of Thomas Hart Benton and Jackson Pollock, to be published in November by Bloomsbury Press.


 

2009년 8월 23일 일요일

Washinton Post : Collective Vision, Let's Spray!

2009년 8월 23일자 워싱턴 포스트지에 실린, 워싱턴 디씨 외곽 (슬럼)지역의 벽화 소식.

 

 

 

기사를 대충 훑어 봤는데, 아무래도 이런 기사는 일단 벽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림부터 보게 된다. 변두리 빈민가를 밝게 채색하여 환경 자체를 밝게 해주고, 사람들이 외면하고 지나치는 음지가 아닌,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양지로 탈바꿈 하겠다는 의도도 좋은데, 그림 그린 사람들도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벽화의 분위기.

 

벽화라는 것이, 벽화 나름의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일단 일기조건을 견뎌야하고, 실외에 있으므로 세밀하고 조잡하게 그리면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고, 뭐 그런 벽화만의 특성.

 

그러니까, 내 눈으로 보기에 이 '형광색'처럼 보이는 진한 원색의 그림들은 한편으로는 눈에도 잘 띄고, 생동하고, 약동하고, 활기 있어 보이기도 하는데, 좀...심하게 말해서 '정신병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나의 시각은 그림에 대해서 보수적이고 구닥다리 관념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음, 내가 보고 싶은 벽화는 뭔가, 서정적이고, 색상도 중간톤으로 안정적이고 (가끔 파격을 쓴다해도),  행복하고 조용한 이야기가 흐르는 것이다. 

 

음, 아직 가 보지 않았으므로 신문에 실린 사진만 가지고 평하는것이 조급한 처사이기는 하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숙제 삼아서라도 한번 가보게 될것 같아서.)

 

신문 기사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