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7일 목요일

이갸기 미국사

 

 

http://www.yes24.com/24/goods/18360

청솔역사교육연구회 | 청솔출판사

 

우리집 창고에서 발견한, 커버도 찢어지고 없는 '이야기 미국사'.  이틀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어느 시대에 어떤 그림이 집중적으로 소개가 되는지, 왜 그 시기에 그런 미술이 각광을 받게 되는지, 왜 어느지역에서 발표된 그림이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런 문제들을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다.

 

가령 미국미술사 책을 읽다보면, 시대상황에 대한 스케치가 휙휙 지나가는데, 또 그것을 내가 구체적으로 잘 아는 것도 아니다.  사실 확인을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다보면 미국사책을 뒤지거나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거나 해야 한다. 두가지를 병행하는 일이 어느때는 꽤 성가시다. 특히 나처럼 성격이 급하고, 한가지를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이것 저것 차분하게 챙기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다.  결국, 그래서 내가 이 책이 눈에 띄었을때, 냉큼 읽기 시작한 것이리라.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해 '대략 간단하게' 스케치 한 미국사라고 할수 있다. 활자가 커서 시력에 부담도 안주고, 그리고 내용이 쉬운 말로 정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큰 그림을 파악하기에 편리하다.  물론 구체적이고 세밀한 역사는 소개가 안된다. 그런데, 그 구체적이고 세밀한 역사 부분은 오히려 내가 더 잘 인지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가지를 잡식성으로 읽거나 배웠으니까.  그 여러가지 내가 세밀하게 아는 내용들을 이 간단하게 정리된 역사의 어느 페이지에 삽입시키면 되는것이다. 그러면 나는 큰그림과 세밀화 모두를 머리속에 간직할 수 있게 된다.

 

성인이 교양수준에서 미국 역사를 대충 살피기 위해서 읽기에, 이 책은 안성맞춤이다.  나는 이 책을 다른 미국미술사 책 옆에 놓아두고 필요할때마다 페이지를 열어 내 기억을 환기시킬 생각이다.

 

물론 미국사를 이해하기 위해 이것 한권 가지고는 곤란하다. 그러나 '시작점'으로서 아주 좋은 책이다.  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쌓아갈때, 내가 취하는 방법은, 아주 읽기 쉽게 정리된 간단한 책에서 출발하여, 그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좀더 상세한 것을 찾아 보고, 그리고 머릿속에 구체적인 '지도'가 그려지면, 제법 권위있는 안내서로 들어가서 여기저기 필요한 부분을 찾아 보는 것이다. 미국사 출발 안내서로 이 책을 추천 할 만하다. (주로 역대 대통령에 대한 서술을 하는 식으로 미국사의 흐름을 서술하고 있다).

 

september 17, 2009

 

2009년 9월 16일 수요일

미국의 경제 대공황 풍경: 브레히트 임시 야간 숙소









미국 미술의 이해를 위해서는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는 안목도 필요하다.  요즘 미국사책을 읽고 있는데, 책 읽다 말고 문득,  브레히트의 시가 떠올랐다. 음, 30년대 빈민들의 참상을 그린 그림들을 스케치할때,  브레히트의 이 시를 인용하면 의미있을 것 같다.

 
임시 야간 숙소


        베르톨트 브레히트


 

듣건대, 뉴욕
26번가와 브로드웨이의 교차로 한 귀퉁이에
겨울철이면 저녁마다 한 남자가 서서
모여드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행인들로부터 동냥을 받아 임시야간숙소를 마련해 준다고 한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야간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책을 읽는 친구여, 이 책을 내려 놓지 마라.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야간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1931년 作)

2009년 9월 13일 일요일

Roy Lichtenstein: House 1 리히텐시타인의 '집 1'

 

 

미국 미술가들을 차례차례 정리하다보면 훗날 Roy Lichtenstein (로이 리히텐시타인)에 대한 챕터도 정리가 되겠지만, 오늘은 National Galler of Art (워싱턴 국립 미술관)의 조각공원 (Sculptor Garden)에 설치된 그의 작품 한가지를 소개한다.

 

사실, 이 작품은 워싱턴에 2년 넘게 드나들면서 자주 보던 것인데, 며칠 전에야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했던 것을 고백한다.

 

(사진감상)

 

 

 

'집'이라는 이 작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 입체감을 달리한다. 귀여운 집이다. 어떻게 보면 공중에 떠있는것 같기도 하고.  언덕위의 집을 이각도 저 각도에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평지이다. 평지인데 어떻게 언덕위의 집처럼 보이는가?

 

그 비밀은..

 

..

 

..

 

..

 

..

 

 

우리의 착시현상을 이용한 작품이다.  :)

 

 

Brandywine River Museum 의 안내인: 안내인의 미덕

http://americanart.textcube.com/44  에서 이어지는 글. 3대로 이어진 와이어드 미술가 가문을 기념하는 Brandywine River Museum에서 Andrew Wyeth 의 손녀딸이 일주일에 6일간, 매일 오후 2시와 3시에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가이디드 투어 (Guided Tour)'를 실시한다. 미술관 안내를 해 주는 것이 그이의 역할이다. 이름은 빅토리아 와이어드 (Victory Wyeth).  관계를 보면, 앤드루 와이어드의 장남의 딸.  직계 손녀.  제이미 와이어드는 앤드루의 차남이다.  그러므로 빅토리아에게 제이미는 삼촌 (작은아버지), 앤드루는 할아버지, N.C.Wyeth 는 증조 할아버지인 셈이다.

 

나도 나름대로 앤드루 와이어드의 직계, 혹은 이 집안 사람들로 부터 직접 안내를 받으면 내가 책에서 발견하지 못한, 오직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전해지는 생생하고 새로운 무엇을 발견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이 사람의 안내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안내를 기다리던 관람객이 많아서 제대로 그림 감상도 안되는 분위기였던데다, 빅토리아 와이어드의 안내 방식이 내 눈에 거슬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내 그림 구경이나 하자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왜 나는 이 사람의 안내 방식이 맘에 안 들었는가? (1) 일단 하이톤으로 귀 따갑게 크게 떠느는 바람에 몇마디 안들었는데 골치가 지끈거렸다.  (2) 밝고, 명랑하고, 활달하고 다 좋은데, 그의 그런 밝고 명랑함이 미술관의 분위기하고 잘 안맞았다. 유치원생한테 떠드는 유치원 선생님 말투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시간 가까이 이 분의 연설에 시달리는 동안, 나는 한가롭게 앤드루 와이어드 갤러리에서 충분히 여유있는 감상을 할 수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저 안내인이 앤드루 와이어드 갤러리에 오면 그때 하는 얘기나 좀 들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그는 한시간 내내, '제이미 와이어드' 갤러리에서 나오지 않고, 그 안에서 떠들어댔다. 나는 제이미 와이어드 갤러리를 한번 휙 봤는데, 내 취향도 아니고, 내 관심거리도 아니고, 그래서 미련없이 그 자리를 뜬 터였다. 그런데 한시간 내내 거기서 떠들고 있었다니...

 

그래도 혹시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했는가 궁금하여, 그자리를 꾹 참고 지켜봤던 관객에게 "그 사람이 무슨 설명 하던가?"하고 물어봤다. 그 관객 왈, "하도 자기 집안 자랑을 해서 듣기 역겨웠지만 그냥 그래도 무슨 새로운 얘기를 하나 싶어서 참고 들었는데, 귀따갑게 집안 자랑만 해서 아주 짜증이 났다. 그런데 나만 그런것 같지가 않고, 거기 모여 있넌 사람들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  하도 자랑이 늘어져서, 다 듣고 난 후에도 내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분이 나빴다는 것만 기억한다."

 

아, 안 듣고 내 시간을 보내길 정말 잘 했다. (처음부터 싫더라구. 그래서 잽싸게 빠져나왔지.)

 

그래서 내가 겪어본 미술관 안내인들, Docent 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 사람들을 기억을 더듬어 살펴 보았다.  그리고 내가 왜 빅토리아의 몇마디만 듣고 그 자리를 도망쳤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한, 미술관의 도슨트 (Docent)들은 안내와 관련된 소정의 교육을 받는다. 이들 중에는 미술대를 졸업한 전문 미술인들도 있어서, 지식도 대단하고, 설령 미술인이 아니더라고 충분히 자료를 연구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관객을 이끈다.  그리고 이들은 대개 설명이 매우 절제되어 있다. 목소리도 차분하고,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할 때에도 과장을 하거나 극적으로 자기 기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찌보면 무미건조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극히 절제된 설명을 통해서 우리는 작품에 각자의 주관을 가지고 접근하게 된다.

 

내가 미술관을 다니면서 만났던 안내원중에서 맘에 안 들었던 사례는, 별로 없지만,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된 안내인은, 지나치게 자기 개인적인 설명이 많고, 개인의 주관을 많이 이야기하고, 관객한테 자기가 뭘, 어디를, 왜 좋아하는지 자꾸만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안내인에게도 주관이 있고, 개인적인 느낌이나 선호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너무 드러내면, 설명 듣는 관객은 미술품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인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 그림 감상하러 갔다가 엉뚱하게 어떤 사람의 이야기나 듣다가 오는 꼴이 되고 만다.

 

빅토리아의 문제는 미술관에 미술품 보러 온 사람들, 작품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혹은 심도있는 안내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기껏해야 자기네 집안 자랑을 하는 것으로 서비스를 열심히 하는 것에 있었다.  그이는 매우 열정적이었고 활발해 보였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의 삼촌이나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미술가, 미술가의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안내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Brandwine River Museum 에서는 전문 안내인을 따로 고용하는 것이 더 나을것 같다는 것이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미술에 대해서,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는 안내인을 나는 원한다.

 

 

Horace Pippin: 기도하기 (Saying Prayers)

Brandywine River Museum http://americanart.textcube.com/43  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기념품 매장에서 작은 액자에 담긴 이 그림의 사진을 한장 기념으로 샀다. 제목은 Saying Prayers (기도하기). 실제 크기도 16X21 1/8 크기의 자그마한 작품으로 1943년 작품이다.

 

 

 

그림을 보면, 전형적인 미국식 작은 집, 중앙에 화덕이 있고, 화덕 왼편의 선반에는 물동이와 프라이팬, 베이킹팬이 놓여져 있다. 화덕에는 초록색 주전자도 보인다. 오른편 선반에는 탁상시계와 램프가 놓여져있다. 화덕 앞 중앙에 어머니인듯한 여인이 있고, 두 아이가 무릎꿇고 앉아 그녀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얼핏 보기에 소년과 소녀인듯 하다. 가운데 떨어진 인형은 소녀가 침대에 들어갈때 안고 갈 것이다. 어머니가 앉아 있는 의자는 미국에서 가장 흔한 식탁용 나무 의자. (지금 내 방에도 이런 모양의 의자가 있다).  왼편 구석에는 검정 박쥐우산도 하나 세워져 있다.  오른쪽의 검정색으로 보이는 것은 커튼이 드리워진 창일 것이다. 탁상시계의 시각은 대략 오후 여덟시로 보인다.  밤 여덟시가 이 남매의 취침시각인 것일까? 아이들은 잠옷같은 흰 옷을 입고 어머니 품에 기대어 기도를 하고 있다.  엄마의 양 손이 두아이의 등과 뒷통수에 가 있다. 정돈된 집안, 잠옷으로 갈아 입은 아이들, 저녁의 기도와 엄마의 보살핌.  흑과 백, 밝음과 어둠이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흰 빛이 어머니와 등불을 중심으로 아이들에게 이어진다.

 

Wyeth 를 기념하는 박물관에 가서, 나는 Wyeth 집안 관련 기념품이나 그림 대신에, 이 작은 12달러짜리 그림 사진을 사고 말다. 호레이스가 자꾸만 나를 부른다.

 

 

Horace Pippin 의 집: 펜실베니아 웨스트 체스터

 

주소: 327 W. Gay Street, West Chester PA 19380

http://americanart.textcube.com/40 에서 이어지는 글

 

 

호레이스 피핀 (Horace Pippin: February 22, 1888 – July 6, 1946)은 펜실베니아의 West Chester 에서 태어났고, 결혼하여 아내의 집이었던 327번지 집에 정착한 후 평생,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호레이스 피핀이 남긴 작품들을 보면, 1차대전 당시 경험했던 전쟁 관련 그림들, 추억이나 상상 속의 장면들, 역사적 장면들, 실제 사람이나 실제 장면들을 그렸는데, 그가 살던 집, 친구들, 그가 평생 골목골목 돌아다니던 웨스트 체스터의 풍경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한 미술가가, 거의 평생 살면서 그림을 그렸던 곳이라면, 찾아가 그가 거닐었던 거리들을 둘러보는 것도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침 앤드루 와이어드의 고향인 Brandywine River Museum 부근에서 지척인 거리이길래 (대략 10마일 거리이다) 채즈포드를 방문한 길에 웨스트 체스터도 들러보았다. 날이 흐리고 가끔 비가 와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회색 조를 띈 하루였는데, 오히려 이런 회색조의 어두움이 호레이스 피핀의 색감과 맞아 떨어지는 듯 했다.

 

 

집 근처 예배당 앞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데 마침 빈 주차공간이 있어서 그곳에 차를 세우고 산책하듯 천천히 거리 구경을 하면서 327번지를 찾아 갔다. 이곳은 주로 흑인, 이민자, 백인들이 뒤엉켜 사는 서민주택 지역이었는데, 분위기가 빈민가처럼 험악하지는 않았다. 안심하고 걸어 다닐만한 분위기였다. (미국에서는 빈민가를 다닐 때는 분위기가 어쩐지 삭막하고, 어둡고, 그래서 공연히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이곳은 평화로워 보였다.)

 

 

집 주변을 구경하고, 그대로 걸어서 이곳의 중심가라고 할만한 Market Street 로 걸어가 피핀의 그림에도 나오는 법원 건물 사진도 찍어보고, 미국에서 아브라함 링컨의 전기를 최초로 출판했다는 출판사 건물도 발견하고, 중심 상권이라고 할만한 곳에서 간단히 저녁 요기를 하기도 하였다.

 

 

 

 

 

 

풍경과 그림

 

 

 

 

2009년 9월 12일 토요일 저녁 방문

 

다음 페이지에서 호레이스 피핀의 작품들과 그의 그림 세계를 소개하겠다.

앤드루 와이어드의 고향집과 스튜디오

예술과 환상의 집

 

 

                               앤드루 와이어드가 태어나 자란 집: 집 앞 마당에서 보이는 풍경

 

 

앤드루 와이어드의 아버지 N.C.Wyeth ( http://en.wikipedia.org/wiki/N_c_wyeth ) 1907년 펜실베니아의 채즈포드 (Chadds Ford) 에 정착하여 살다가, 집 뒤에 스튜디오도 장만하게 되는데, 그의 다섯 명의 아이들 중 1917년에 막내 앤드루가 이 집에서 태어나게 된다. 앤드루는 몸이 약하여 초등학교에 다닌 기간이 짧다고 전해지는데, 다른 형제들이나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는 동안, 그는 그의 집 주변 마을이나 농장들을 쏘다니며 소일했다고 한다. 그는 수풀이나 나무들이 그의 친구들이었다고 술회 한 바 있다.

 

와이어드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면, 매우 가부장적이었던 N.C.Wyeth 가 다섯이나 되는 자녀들을 끔찍이 아끼고, 여름의 미국 독립 기념일, 가을의 할로윈데이, 추수감사절, 겨울의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에게 무궁한 기쁨과 환상을 심어주려 노력한 일화들이 많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독립기념일이 되면 여기저기서 불꽃놀이를 하는 풍습이 있는데, 소년 시절의 앤드루 와이어드는 신나는 불꽃놀이를 즐기던 꼬마였다. 할로윈데이에는 가족들이 모두 동화 속 주인공이나 마녀 복장을 하고 놀았으며,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키가 육척이 넘었던, 거구였던 아버지 N.C.Wyeth가 직접 산타클로스로 변장을 하고 지붕 위를 돌아다니다가 현관문을 열고 나타나 선물을 놓고 사라지곤 했는데, 앤드루는 산타클로스가 나타나 돌아다니는 상황이 얼마나 무섭고’ ‘기쁜일이었는지, 얼마나 오싹하게 겁나고 신나는 일이었는지를 훗날 술회 한 바 있다. 와이어드는 자녀들에게 음악, 예술의 아름다움,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동화 속 환상의 세계를 선물하고자 애 썼고, 그 결과 다섯 명의 자녀들은 예술가로, 발명가로 출중하게 자라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3대에 걸친 예술가 집안을 탄생 시키게 된 것이리라.

 

 

 

Brandywine River Museum 에서 언덕위로 1마일 올라가면 N.C.Wyeth House 라고 알려진 집이 나타나고, 그 집 언덕 위에 그의 스튜디오가 있다. 집이나 스튜디오 내부는 사진 촬영이 안되고, 안내인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며 투어를 할 수 있다. 뮤지엄에서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북쪽으로 난 창

 

 

                                아버지 N.C.Wyeth 의 스튜디오: 유적지 표지판

 

집과 스튜디오를 안내 해 준 이는 70대의 단정한 신사였다. N.C.와이어드의 스튜디오는 단순한 개인 스튜디오라기보다는 가족 스튜디오라고 할만도 하고, 그 자체가 미술학교라고도 할 수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앤드루 와이어드 역시 15세 때부터 이 스튜디오에서 그림 연습을 했다고 하는데, 그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앤드루는 아버지에게서 미술 수업을 받았다기보다는 아버지의 문하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미술 작업을 했다고도 한다. N.C.Wyeth 의 문하생 중에는 그의 딸과 결혼을 하여 사위가 된 사람도 있었다.

 

 

            스튜디오 입구 사과나무들: 밖에서 창문을 찍은 사진: 바깥의 사람이 거울처럼 비침

                    

 

흰 목재 건물의 스튜디오는 한 쪽 벽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안내인의 설명으로는 그 큰 유리창 벽은 북향이라고 한다. 북향으로 창을 낸 이유는, 채광을 위해서 자연 광선이 필요하긴 하지만, 창을 남으로 낼 경우에 시간의 변화에 따라 광선이 변화하므로 안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기가 힘들고, 가장 안정적인 채광은 북향일 때 가능하다고 한다.

 

평생을 삽화가 (illustrator)로 살아간, 혹은 삽화가로 알려진 N.C.Wyeth 정물화도 많이 그렸는데, 삽화가들에게 정물화는 스트레스 해소용 작업이었다고 한다.  소설이나 이야기의 삽화를 그리는 사람들의 고충은, 항상 어떤 이야기의 장면, 그 장면이 전체 이야기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그림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한지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장면을 선택하고, 사실과 상상력 사이에서 적합한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면을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이런 삽화를 그리는 틈틈이 정물화 (Still Life)’를 그리는 동안에는 어떤 맥락을 신경 쓸 것도 없이 눈앞에 설치된 정물만 들여다보고 그것만 그리면 되므로 정신적인 휴식을 취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즐기는 그림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삽화가에게는 삽화가로서의 고통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삽화가들의 또 다른 고통은, 그것이 순수예술로서 자리를 못 잡고, 상업화라는 굴레를 쓰게 되므로 예술가로서 어떤 열패감 같은 것에 시달릴 수도 있고, 생업 때문에 마지못해서 하는 경우도 있다. Norman Rockwell 역시 평생 삽화가로서 사는데 대한 고통을 겪었고, Edward Hopper 역시 생업을 위해 삽화가로서의 삶을 수십 년간 견뎌야 했었다. Sloan 도 그러하였고. (미국의 사실주의적 화가들 중에서 삽화가로 생업을 유지했던 작가들이 많이 있다.)

 

 스튜디오 안쪽 대형 벽화그림과 작업용 이동식 계단: 스튜디오 전경: 스튜디오 입구쪽 홀  

 

 

마침 스튜디오의 벽에는 N.C.Wyeth 가 작업을 했다는 대형 벽화 작품이 있었는데, 안내인이 설명을 마치고 나서 뭐 질문 없는가?’하길래, 내가 물었다, “저 대형 작품을 여기서 그린 후에 어떻게 옮기는가? 내가 아무리 살펴도 저 대형 작품이 나갈 수 있는 출입문이나 틈새가 보이지 않는데.” (나는 늘 매우 실질적인 문제에 주의를 빼앗기곤 한다. 예술가의 스튜디오에서 그의 예술혼을 찾기 보다는, 그림을 어떻게 옮기는가 하는 것이 더 걱정이 되는 것이다.) 안내인의 설명으로는, 벽화이긴 하지만 벽에 그린 것이 아니고 벽 크기의 대형 캔버스에 작업을 한 것이므로, 이런 경우에는 캔버스를 틀에서 분리하여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둘둘 말아서 옮겨다가 벽에 설치를 하고, 운송도중에 그림에 흠집이 생기면 (틀에서 분리하여 둘둘 말았으니 어딘가 상채기가 나겠지), 나중에 화가가 가서 다시 손을 본다고 한다.

 

스튜디오 앞 마당에서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니 바로 앞의 밤나무에서는 밤송이가 제법 탐스럽고, 스튜디오 옆에는 돌배나무에 돌배가 빼곡했으며, 사과 나무가 줄지어 서있기도 했다. 역시 아름다운 광경이었는데, 어쩐지 이런 풍경들이 예를 들어서 밤나무, 돌배나무, 사과나무가 있는 이런 풍경이 마치 내 고향집 마당, 내가 어릴 때 쏘다니던 내 고향의 풍경처럼 비쳐지면서, 문득, 여기가 내 고향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낯선 남의 나라, 이국인의 스튜디오 마당에 서서, 여기가 내 고향 같다는 느낌이 들다니.  , 이제는 아파트 단지로 뒤덮여서 찾아 가봐도 찾을 수 없는 내 고향이 아니던가? 오히려 이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나는 내 고향의 향기를 발견해 내기도 한다.  앤드루 와이어드의 풍경화, 혹은 그 풍경 속에 담긴 사람들이 이국인들이면서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그의 그림 안에 보편적인 그리움,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음이라.

 

 앤드루 와이어드의 땅

 

앤드루 와이어드는 이곳에서 나고 자랐고, 평생 이곳에서 작업을 했다고 할 수 있다. Maine 주에서 살면서 Christina’s World 를 그리기도 했지만, 메인주와 펜실베니아의 Chadds Ford의 집을 오가며 살았고 역시 채즈포드에서 죽었다. 앤드루 와이어드의 채즈포드 집이나 스튜디오가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매우 삿적인 공간이므로 공개가 안 된 듯 하다. 그러나 그의 집이 Brnadywine River Trail 을 따라 걷다보면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헬가시리즈 때문에 모델 헬가와의 관계가 스캔들처럼 되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낼 무렵, 그가 헬가를 그리며 활동하던 이곳 채즈포드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인근주민들이 이를 불쾌히 여겨 앤드루 와이어드와 헬가에게 다른 곳으로 나가라는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확인 할 길이 없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브랜디와인 강변의 그의 집 사진:

 

                          http://www.geocities.com/brandywinetrail/sites.html

 

 

 

 

안내인에게 혹시 앤드루 와이어드가 N.C.Wyeth 의 스튜디오에서 헬가를 그린적은 없는가 물으니, 그는 여기서 두어장 그렸을지도 모른다. 헬가 그림은 이 근방 여러군데서 그려진 것이고, 크뤼너 농장에서 그렸고…” 하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는데, 어쩌면 안내인 역시 앤드루 와이어드와 헬가의 스캔들을 N.C.Wyeth 스튜디오와 연결시키는 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거나, 그냥 말하기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앤드루 와이어드는 사망하기 전 까지도 가끔 이 스튜디오에 들러 안내인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이제 새삼스럽게 앤드루 와이어드의 채즈포드 집이나 그의 개인 스튜디오를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삿적인 공간은 보호되어야 하고, 나는 그가 사랑했던 땅을 밟아보고, 강과, 수풀과, 나무들과, 나지막한 언덕들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그림세계를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