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나는 캐나다거위 (Canadian Geese)가 알을 품고, 새끼를 치고, 그 새끼를 어른이 될때까지 돌보는 과정을 관찰하며 일기에 기록을 남겼었다. 올해는, 어쩐지 그 거위떼가 그자리에 돌아오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이따금 강변에서 새끼들을 이끌고 다니는 캐나다거위 부부를 발견한다.
여섯마리 거위병아리.
올해는, 나도 너희들을 관찰할 기력이 없을것 같아.
작년에는 여우도 캐나다거위도 내 곁에서 새끼를 낳아 키우더니
어쩐 일인지, 이제 다시 내곁에 돌아오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면 쓸쓸해진다.
하지만, 만사에 때가 있으니
사랑할때와 이별할때가 있으며
날때와 죽을때가 있다
그러려니 할 밖에.

레지오날 브리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가 '선녀탕'이라고 부르는 계곡에서
잠시 쉬며 놀았다.
날이 여름처럼 후텁지근해서
강변에서는 아이들이 옛날, 나 자랄때처럼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서양 아이들이 강변에서 노는 장면이, 한국의 아이들하고 똑같아서, 그걸 쳐다보면서 웃었다... 다를게 무어가 있다고...)

나는, 물가에 가면 물에 뛰어드는 사람이고
P국장은 물가에 가면 물 튈까봐 저만치서 고양이처럼 앉아있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바닷가에 가면 나는 옷을 입은채로 뛰어 들어가 놀다가, 젖은 옷 입은채로 집으로 오는 사람이고
P국장은 모래사장에 앉아서 '바다가 참 좋구나' 하고 쳐다보는.
나는 행동과 생각을 동시에 하는 편이고
P국장은 생각한 후에 행동하는.
나는 성질이 급해서 산길에서나 평지에서나 걸음이 빠르고 저만치 앞서가고
P국장은 성질이 느긋하고 사색적이라 늘 나보다 한참 뒤쳐져서 오는.
그래서,
물을 보고 내가 뛰어들면
그는 '철딱서니 없는 애'를 돌보듯 멀찌감치서 사진이나 찍어주며
내가 즐기는 물장난을 대리체험으로 즐긴다.
오늘, 내가 선녀가 된 기분이 들 정도로 물놀이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눈가에 쏟아지는 피로감이 싹 사라졌다.
나만 그런줄 알았는데 P국장도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하루종일 일을 했는데, 그래서 피곤해서 산책도 안간다고 하다가 마지못해 따라 나섰는데, 물가에 앉아 쉬노라니 머리가 개운해지고 피곤함이 사라졌다고. (그래서, 운동을 해야 덜 힘든거라구~ )
바위틈을 흘러흘러 내려온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몸을 닦으니, 피부가 보들보들한것이, 수돗물로 세수했을때와는 사뭇 다르다. 계곡물이 오염되었다고해도, 바위틈을 통과하면서 정화된 자연수이니까, 소독처리한 수돗물보다는 피부에 더 좋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터키런에 갈때, 아예 타월을 하나 갖고 가서 세수하고 발 닦고 그럴까보다.
봄날은 간다
봄날이 가거나 말거나
나는 내게 주어진 황금같은 시간들을 깊이 깊이 음미할것이다.
***
큰놈이 입학신청을 한 학교에서 허가서가 날아왔다. 녀석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니 나도 가슴을 누르던 바위를 내려 놓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감사한 일이다. 몇군데 더 보낸것이 있는데 좋은 회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저희집은 딱 반대입니다..
답글삭제저는 바닷가 가면 딱 발바닥만 적시고 모래밭에 의자놓고 앉아서 물구경에 파도소리만 듣고 오느는 사람이요.. 남편은 부기보드 들고 물에 뛰어들어 아이랑 같이 놀구요..저는 그런거 사진이나 찍고... 물속에 서계신거 보니 제가 다 시원해지네요..
@사과씨 - 2010/05/03 11:02
답글삭제아마 성격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골고루 있으니까, 싫증내지 않고 수십년간 파트너로 살 수 있을거예요. 둘다 똑같이 첨벙거리거나, 둘다 똑같이 고요하면 재미가 없겠지요.
나도 게으른 사람인데, 더 게으른 사람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내가 '극성'으로 보인대니까요. (극성스럽고 유난맞은 여자) 하하하.
한 해라도 야생 거위를 관찰하셨다고 하니 정말 부럽네요. 게다가 돌아온 부부까지 있다고 하시니..
답글삭제(그때 사진들이 혹시 있으신가요? 궁금하네요. 지금 블로그에는 안 올라와 있는 듯한데..)
신이 아니었을까 제가 종종 의심하곤 하는 콘라드 로렌츠가 쓴 책 가운데, '야생 거위와의 일 년'이라는 아름다운 책이 있어요. 로렌츠는 거위가 태어나서 처음 본 대상을 평생동안 엄마로 생각한다는 걸 밝힌 (애착의 가소성과 비가소성을 모두 보인 거죠) 노벨상 수상 동물행동학자인데, 이 애착을 활용해서 거위가 자라고 가족을 이루고 질투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에세이처럼 기록한 책이 이 책입니다. 함께 연구하던 시빌레 칼라스라는 사람이 찍은 거위들의 '생활 사진'도 정말 이웃집 친구를 찍은 것처럼 가깝고 아름답습니다. 독일어 원제는 'Das Jahr der Graugans'라고 하는데, 영어 번역본이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곳에서 구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되신다면 한국어 번역본이라도 구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ncounters - 2010/05/03 20:21
답글삭제콘라드 팬이셨군요. 옛날에 과학 관련책 한창 읽을때
* 개가 인간으로 보인다 (Man meets dog)
* 솔로몬 왕의 반지 (King Solomon's Ring)
* 공격성에 관하여 (On Agression)
이 책들을 읽었습니다. (9년전이군요...)
말씀해주신 책은 아마존에서 검색해보니 The Year of the Greylag Goose 같군요. Used Book 으로 주문했습니다. 반가와서요. :-) 로렌츠는 과학자이기전에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머러스하게 글을 잘 쓰지요. 과학자들중에서 이런 스토리텔러들도 나와줘야 저같은 사람도 기웃거리면서 구경을 할수 있겠지요.
(캐나다 기러기 관련 기록은 - 지금은 돌아보면 제가 아파서, 안돌아봅니다. 웹페이지가 어딘가에 있지만, 과거를 자꾸만 반추하는 일을 안하기로 했습니다. 앞만 보며 살려고요.)
그래도 책은 봐야죠 ~ 하하하.
아, 그런데, 누군가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주제와 관련된 '책'을 소개하면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 감동이 돼요. 특히 나도 그쪽 분야에 약간이라도 사전 지식이 있거나 혹은 관심이 있을때. 우연히 관심 방향이 일치할때. 혹은 내가 '전혀' 모르는/어려운 내용이라도, 누군가가 '책 좋더라' 하고 권하면... 그때,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다는 느낌을 갖게 되지요. 아마도 일달머리없는 서생들의 공통된 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