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짓단을 조정하느라 바느질을 하고 앉아 있다보니, 언제나 실을 길게 길게 잡는 내 모습이 다시 보인다.
어릴때, 할머니 슬하에서 바느질을 배울때, 게으름뱅이인 내가 바늘귀에 실 꿰는게 귀챦아서 실을 길게 길게 잡아서 끊으면, 할머니가 게으름보 손녀딸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리셨다.
"바늘귀에 실을 길게 잡으면 멀리 멀리 시집을 간다더라..."
나는 할머니 품에서, 엄마 품에서 멀리 멀리 떠나와
남의 나라에서 8년을 보냈다. 앞으로 얼마를 더 이역에서 헤메야 할지는 나도 알 수 없다.
할머니 말씀처럼 나는 멀리 멀리 떠나와 있다.
나는 멀리 멀리 떠나와 있다.
지난주에 책 분양 파티를 하던중, 아주 오래된 동화책 한권을 발견하여, 그것을 다시 내 책상위에 가져다 놓았다. (이것 만큼은, 내가, 죽을때까지, 간직하고 싶다.)
그것은 계몽사판 소년 소녀 세계 문학전집.
나같은 386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주황색 하드커버.
그 문학전집의 5번.
영국 동화집.
우리들이 성장한 후에 이 계몽사 동화집은 어린 아이가 있던 친척집으로 옮겨져 갔는데, 딱 한권 이 '영국동화집'만이 우연히 내 책상에 남겨져 있었고, 나는 영문과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영국에 가보지 못했다.)
이 오래된 책의 표지를 열어보니 유려한 필체의, 우리 아버지의 서명이 들어있다. 어느해 '성탄절' 기념으로 이 책을 아이들을 위해서 마련한 30대 초반의 가난한 가장. 내가 아버지를 30대 초반으로 규정하는 근거는, 아버지가 남긴 '어느해'에 대한 단서 때문이다. 나는 그 해를 나의 나이와 비교해본다. 내가 네살때다. 그리고 나는 그 해 겨울을 기억한다. 그 해 겨울에, 나는 글을 읽을줄 몰랐다. 그래서 이 신기한 책을 들여다보며 '그림'을 찾아 읽었었다. 그 해 겨울에, 나는 우리 부모님 품에 있지 않았다. 고모들과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내고 있었다... 아마도 겨울 방학을 맞이해 서울집에서 시골집에 내려온 오빠의 보따리에서 이 동화책 몇권이 나왔을것이다. 그래서 글을 읽을줄 모르던 네살짜리 나는 책 속의 그림들을 열심히 들여다 봤을 것이다.
나는 그 해 겨울의 쓸쓸한 눈 내리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 시골집을 지키고 있던 이는 둘째고모와 그의 애인이었다. (그 애인이 나중에 고모부가 되었다). 이들은 내게 사과 껍질을 바깥마당 두엄더미에 내다 버리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그래서 나는 화롯가에서 이 책속의 그림들을 구경하다 말고, 두엄더미에 사과 껍데기를 버리러 나갔다. 눈이 부슬 부슬 내렸다. 나는 사과 껍데기를 버리려다 말고, 사과 껍질을 질근 질근 씹었다. 달콤했다. 나는 바깥마당 두엄더미 근처에 쭈그리고 앉아 부슬부슬 내리는 눈 속에서 사과껍질을 질근 질근 오랫동안 씹었다.
그해 겨울, 나는 네살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섯살때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집에 올라왔다.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들이 사는 집으로.
그러고보면, 나는 내 성장의 2년 혹은 2년보다 더 긴 동안 내 부모 품에서 벗어나 있었던 셈이다. 여태까지 나는 내 유년의 1년간 내 부모에게서 벗어나 있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책에 기록된 년도와 내 삶을 비교해서 생각해보니 2년 이상을 나는 내 부모나 형제로부터 벗어나 지냈던 것이다. 내 유년의 삶 6년중에서 2년 혹은 그 이상...
아하, 그래서, 이제서야 나의 이방인같은 행동 패턴을 내가 이해하게 된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서울 집에 올라온 후에, 나는 가끔 자다가 '이상행동'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자다말고 벌떡일어나 집에 가겠다면서 옷몇가지를 안고 막무가내로 나가다가 붙들려 다시 잠이 들었다고 한다. 나는 가끔, 보자기에 옷을 싸가지고 집을 나서는 꿈을 꾸기도 했다. 반복되는 꿈. 꿈속에서도 나는 집에 간다며 보따리를 쌌다. 내 엄마 아빠와 형제들이 살고 있는 '그 집'이 분명, 내 집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거기 소속한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있었다.
삶에서 2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남자가 군대에 다녀 올 시간쯤이려나. 하지만 유년의 최초의 6년에서 2년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닐것이다. 길고 지리한 기다림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도 잘 알수가 없다. 가끔 엄마가 보고싶다며 울어댄 기억은 있지만, 뭐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서 편안하게 살았던 것도 같고. (나는 지금도 할아버지가 보고싶다... 이미 돌아가시고 없는데도, 할아버지의 체온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바늘에 실을 꿸 때 아주 아주 길게 길게 꿴다.
원래 나는 태어날때부터 아주 멀리 멀리 떠나가도록 운명지어진 것일지도 모르고, 이미 유년기때 그 준비과정을 거친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반가울수가요. Good bye하시고 멀리 가시는 줄만 알았습니다. 소리소문 없이요. ^^ '영국 동화집'이 어떤 책일까 참 궁금하네요. 그 안에 무슨 얘기가 있나요?
답글삭제@emptyroom - 2010/05/23 14:20
답글삭제안녕하세요. 반겨주시니 저도 기쁩니다. :-)
ㅜㅜ..다른데 가신줄 알았어요..(옆에 있었으면 반가워서 한번 안아드렸을지도..ㅋㅋ)
답글삭제저두요...
어려서 할머니가 바늘에 실좀 끼워라 하시면 주야장장..길게 해드려서 할머니가 늘 그말씀 하셨어요.. 얼마나 멀리 시집을 갈라하냐고.. 그러다 결혼하고 미국에 오는데도 할머니가 그말씀 하시더라구요.. "어릴때 실 길게 꿸때부타 알아봤다 .."....ㅎㅎ.. 난 그냥 어린 마음에 한참 쓰시라고 그리 해드렸던 건데.. 안그러면 눈이 어두우신 할머니가 자꾸 하라 하실테니까요..
@사과씨 - 2010/05/24 05:19
답글삭제직장에서, 집에서 (밖이나 안이나 온통) 일이 많았어요. 학교에서는 작은 문제가 있어서, 인생 최초로 성스러운 직장에서 성질을 한번 단단히 보여주고 문제 대충 정리했고 퇴근할때 장봐다가 상차리고 뭐 그러느라 분주했고. 앞으로도 정신없는 나날들이 당분간 이어질것 같아요. (오늘 저녁에도 손님 치러야...)
사람 가르치는게 직업인데, 사람이 싫어지면, 이걸 그만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매우 헛갈리게 되거든요.. 한 보름, 선생질을 계속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답을 못찾아서 주저않고 있어요. 사람을 섬겨야 사람을 가르칠수 있는데, 섬기기가 싫어졌다는거죠. (이럴땐 담배나 팍팍 피고싶다는 환상이 생기죠.)
아아, 그래도 기다려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참 좋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