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6일 수요일

The Eight / Ashcan School (6): George Luks

펜실베니아 출신의 The Eight 화가 George Luks (1867-1933)는 의사인 아버지와 미술가이며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슬하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가족이 펜실베니아의 광산촌 가까이로 이사한 후에는 부모님이 가난한 광부 가족들을 돕는 일에 헌신을 하였으며 조지 럭스 역시 이런 삶의 영향을 받아 서민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펜실베니아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조지 럭스는  당시의 미술 학도들과 마찬가지로 유럽으로 건너가 런던, 파리를 여행하고,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도 생활을 하였는데, 결국 고향인 펜실베니아로 돌아와 Philadelphia Press 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역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John Sloan, William Glackens, Everett Shinn 등과 교유하게 되고, 이들과 함께 Robert Henri를 만나게 되는데 결국  이 만남이  The Eight 의 모태가 됩니다.

 

 

George Luks 는 당시의 The Eight 멤버들을 위시한 사실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도시 대중의 삶을 그렸습니다.  William Glackens와는 스튜디오를 함께 쓰며 동고동락 했다고 하는데, 그는 술을 좋아하여 취해 쓰러져 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 '술'이 화근이 되어 그를 죽음에 몰아넣게 되는데요. 66세이던 조지 럭스는 술집에서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 끝에 사망했다고 윌리암 글랙슨스의 아들이 회고록에서 밝힙니다. (공식적으로는 새벽에 그림 그리러 나가다가 문앞에서 쓰러져 사망했다고 발표가 되었지만, 사실은  모르는 취객한테 맞아서 사망을 했다는 것이지요.)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는 인정이 많았고 기꺼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으며 빈민가의 사람들과 뒤섞이는 것을 편안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들을 찾아보면 광부, 걸인등 가난하거나 소외된 대중들에 대한 묘사가 많습니다.

 

 

 

이 그림은 1915년 당시 뉴욕 맨하탄 북부의 풍경입니다. 판잣집같이 자그마한 집들이 옹기종이 모여있는 것이 보입니다.

Upper Manhanttan (맨하탄 북부)  1915

Oil on Canvas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The Polka Dot Dress (물방울무늬 드레스) 1927

Oil on Canvas  94.0 x 147.4 cm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루스 센터 (Luce Foundation Center)에서 촬영

 

 

이 물방울무늬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그림은  루스센터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그림들 중에서 제가 발견한 것인데요. 꽃 모자를 쓰고, 흰바탕의 파랑 물방울 무늬의 드레스를 입은 이 여인이 중산층 신분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투박한 구두, 장갑, 멋대가리 없는 핸드백,  짙은 입술 연지, 그녀가 앉아있는 딱딱한 나무의자등을 종합해서 보면 이 여성이 서민, 일 다니는 가난한 여성으로 보입니다.  (이런 설명을 하자니,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식인 살인마가 여 수사관을 쓱 일별하고, 그녀가 온갖 싸구려 옷과 구두 향수로 치장했다는 것을 분석해내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꼭 관상쟁이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감식안이 생기지요... )

 

그런데 저 여성의 표정이 참 복잡하고도 심오합니다.  싸구려 옷과 장신구로 치장한 여자가 앉아있는 의자도 푹신한 안락의자가 아닌 딱딱한 나무의자이거니와, 여자가 앉은 자세는 왜 저렇게 엉거주춤한겁니까? 눈치를 보며 엉덩이만 걸친 꼴이라 다리 모양도 세련되게 포개진 것이 아니라 역시 엉거주춤 합니다.  그리고 시선은 살짝 내리 깔았는데요,  그런데 저 표정이 참 애매합니다. 어쩌면 꿈을 꾸는것도 같고, 생각에 잠긴 것도 같은데,  참 보잘것없고 볼품없이 대충 엉거주춤 앉아있는 이 여자의 표정에는 만만치 않은 기운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나, 니네들이 보기에 별볼일 없는 인생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아직 꿈이 있고,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젊음과 기운이 있다구....뭐 이런 표정 같기도 합니다.  살짝 시선을 내리 깔고 앉아있는 저 표정만큼은 '여왕'을 압도할만한 기운이 흐르고 있습니다.

 

 

 

 

 

Woman with Macaws (앵무새와 여인) 1907

Oil on Canvas

2009년 10월 31일 디트로이트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관에서 촬영

 

 

앵무새를 길들이는 여인의 표정이 명랑해보입니다.  앵무새의 붉은 새조가 화면 여기저기에 투영되면서, 한겨울에 보기에 따뜻한 그림이군요.  위의 물방울무늬 드레스의 여자의 표정이나, 이 앵무새 여자의 표정이 태평하고 강인해보입니다.  아마도 조지 럭스의 표정이 이와 비슷했을것 같습니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고,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선량하게 관찰하는 화가의 표정.

 

조지 럭스의 그림을 더 발견하면 업데이트 하기로 하겠습니다.

 

2010년 1월 6일 redfox.

 

The Eight / Ashcan School (5): Everett Shinn

 

The White Ballet (흰 발레) 1904

Oil on Canvas

Everett Shinn (1876-1953)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들 (The Eight 혹은 Ashcan School)중 한 사람인 Everett Shinn (이브릿 신: 1876-1953) 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제가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 갈때마다 지나치면서 눈길을 제대로 줘 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 얼핏 보니까 '드가' 그림 같더라구요.  '드가 그림인가?' 생각하고 가서 들여다보면 엉뚱한 이름이 걸려 있는 겁니다.  그러면 '드가 흉내낸 그림이군...' 이러고 그냥 지나치고 마는거죠.  뭐 발레 그림을 드가만 그렸을까마는, 저의 짧은 지식으로는 발레 그림은 죄다 프랑스의 화가 드가 (Degas) 작품 같은거죠.  발레를 다른 사람이 그리면 드가를 모방한것 같다는 소리나 듣는거죠.  이래서, 뭔가 먼저 잡아서 시작한 사람이 이기는겁니다. 헤헤. (그런것 같죠?)  뭔가 소재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한가지를 파들어가면, 그것이 곧 자기 자신이 되는거죠.  우리가 드가와 발레를 떼어놀수 없게 되는거죠.

 

아무튼 이 그림은 드가의 그림이 아니고 Everett Shinn 의 그림입니다.

 

만약에 제가 '미국미술을 공부하겠다'고 작정하고 차근차근 미국의 화가들을 찾아보는  취미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이 그림은 영원히 저의 무시를 당하고 지나갔을겁니다. (가짜 드가그림이라는 딱지를 안고).

 

 

 

 

Everett Shinn (1876-1953) 은 The Eight 화가들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고 하지요. 그리고 뭐 젊은나이에 잦은 이혼으로 '유명'해진 면도 있는것 같습니다. 프랑스를 여행하며 당시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고요.  제 안목으로는 '드가'의 소재를 빌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신문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한 경력도 있습니다. (당시의 사실주의 화가들 대부분이 신문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생계를 해결하였으므로 짐작 할 만한 일입니다.)

 

워싱턴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2층 복도 전시장에 걸린 그림을 순서대로 보면

1. 왼쪽벽 - Henri,  맞은편 (오른쪽벽) - Everett Shinn

2. 왼쪽벽 - Rockwell Kent,  맞은편 (오른쪽) - Glackens

3. 왼쪽벽 - George Luks ....

 

이런 순서로 걸려 있는데요.  이곳에 The Eight 을 위시한 당시의 사실주의 화가들 작품이 차례대로 전시되었다고 할만하지요.   미술관에 전시물을 설치할때, 전시 기획자는 나름대로 어떤 '논리'를 가지고 그림을 설치했을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렇게 모아놓은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Everett Shinn 의 작품을 제가 자주 보지 못해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하려고 합니다.  Everett Shinn 에 대하여 기억할 만한 사항은

 1. The Eight 의 최연소 멤버였다는 점

 2. 따라서 다른 The Eight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뉴욕, 도시의 대중의 삶, 역동적인 장면을 잡아내어 그렸다는 것

 3. 유럽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이정도가 될것 같습니다.

 

다음에 그의 다른 작품을 '사냥'하면 페이지를 업데이트 하기로 하겠습니다.

 

2010년 1월 6일 RedFox

 

 

 

Backstage Scean (무대 뒤) 1900

Watercolor and Charcoal on Paper mounted on the Board (종이위에 수채와 목탄화)

2010년 1월 9일 델라웨어 미술관에서 촬영

 

 

1900년 작품이니까 Everett Shinn (1876-1953)이 스물네살 청년시절에 그린 그림입니다.  위에 소개한  발레 그림은 1904년 작품이고요.  두 작품 모두 그가 20대때 그린 것이군요.  두가지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극장' 풍경이라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이브릿 신이 무대예술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극장 인테리어 작업도 했고,  나중에는 영화 감독도 했다고 합니다. 극장예술을 비롯, 예술의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화가였군요.

 

2010년 1월 18일 업데이트

 

나, 그리고 가상의 존재 나

 

 

새학기 입학 상담을 하러 온 학생을 면담 할 때의 일이다.  내 수업은 주로 토론, 발표, 프로젝트 만들어내기, 아티클 써오기등, 가시적으로 뭔가 자꾸 말하고 만들어내야 살아 남을수 있도록 진행하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입 꼭다물고 책만 파는 사람은 내 수업을 견디기 힘들것이다. 책은 혼자 보는것이고 - 수업에서는 공부 해 온것을 발표하고 심화시켜야 하는거니까.

 

한국에서 번듯한 대학원까지 마치고, 이곳에서도 인근 대학에서 수업을 듣던 학생이 내 수업을 듣겠다고 찾아 왔는데, 이 인재를 앞에 앉혀놓고, 이런 저런 수업을 잘 따라올것 같은가 물으니, 이 영특하고 진지해보이는 학생이 아주 유창한 영어로, "I am not good at speaking English." 딱 이런다. (영어도 잘 해요...)  I am not good at speaking English.  발음도 좋고 억양도 나무랄데가 없고, 잘 하는데, 이건 겸양인걸까? 겸양도 아닌것 같다. 그 사람은 자신없는 표정을 짓고 앉아있었다. 이런 말 하는 똑똑한 한국인을 한두사람 본것도 아니고, 한숨이 나오다 말고 한가지 생각을 해 냈다.

 

나는 내 오피스 책상에 마주앉아있는 이 학생에게 텅빈 그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지금 당신 옆에 누군가 앉아있다고 상상하라. 

거기 앉아있는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이방에는 당신이 두사람 있다.

이제부터 당신은 옆에 앉아있는 또다른 당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거다.

 

 

 

당신은 옆자리에 앉아있는 또다른 당신에 대해서

He is not good at speaking English 라고 단언할수 있는가?

당신이 옆에 앉은 사람에 대하여 그렇게 평가하고 단언할 자격이 있는가?

 

당신은 진지하고 예절바른 사람이므로 옆에 앉은 낯모르는 어떤 사람에 대하여 그런식으로 함부로 말하지 않을것이다. 당신은 남에 대하여 함부로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하지는 않을것이다.

 

그런데 왜 자기자신을 그렇게 깎아내리는가?

그렇게 자신을 깎아내릴때, 옆에 앉은 또다른 자신이 상처받을거란 생각은 안해봤는가?

남에게 무례하면 안되듯이, 자기 자신에게도 무례하면 안되는거다."

 

그 학생은 봄학기부터 내 수업을 들을것이다...

 

그런데 그 학생을 내보내고 난 후에, 내 방에 누군가가 또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지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한 여자가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니?" 내가 다가가서 물으니 그 여자가 사나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너."

 

 

 

 

 

 

절인 배추 : 젖은 나비

 

소금기에 절은 배추를 맑은 물에 담가서 두어번 헹궈 바구니에 담는다. 물기를 빼낸다. 절은 배추를 씻을때, 내 눈에 들어오는 배추조각들이 마치 비맞은 나비같아 보인다. 그럴때면 나는 혼자 노래하듯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를 중얼거린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나래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바다를 푸른 무우밭인줄 알고 내려가 봤던 나비는 일렁이는 물거품에 날개가 젖어 얼마나 놀랐을까. 무우밭에 무우장다리꽃이 넘실대는줄 알고 내려갔다가, 그것이 꽃이 아니고 짠 물거품인것을 발견했을때 나비는 얼마나 낙담했을까.  하필 이 시를 쓴 시인이나, 이 시를 읽으면서 나비에 공감하는 인간, 모두 물에 젖은 나비처럼 놀라고, 상처받고 지친 영혼들이 아니었을까.

 

'어린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이 구절때문에 하필 나는 김치를 담그기 위해 배추를 절일 때 마다. 배추의 그 노리끼리하고 연두빛 나는, 절어서 휘어지는 살결을 보며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를 떠올리는 것일게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나비가 지쳐서 돌아온 곳은 어디인가?  나비는 어디로 돌아왔을까?  결국 나비는 돌아온건가? 바다를 건너지 못한건가? 바다를 건너갔다가 돌아온건가?  김치를 버무리는 동안 내내, 내 나비들이 바다에 빠져 파닥거리는 광경을 상상한다.

 

옛날에 내가 미국에 처음 오던해에, 한국마켓 이사장이 진열장에 있는 김치를 가리키며, "학생들은 귀챦다고 통배추김치를 안사가요. 그래서 막김치만 팔아요."  그 곳에는 유학생 인구 외에 딱히 한국인이 없었고,  한국 식당도 없었고, 오로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존재하던 한국마켓이었는데 사람좋은 이사장이 '신입' 고객을 상대로 이런저런 사는 풍경 얘기를 해주었다.  학생들은 썰어먹기 귀챦아서 오히려 통배추김치를 싫어한다고.  '아무리 귀챦아도, 배추김치 썰기도 귀챦은가?  통배추김치가 김치인것이지, 막김치가 그게 김치 축에나 끼는가?'  내가 아무리 살림에 뜻이 없고 대충 살았대도, 어릴때부터 먹고 자란것이 통배추김치이다보니, 통배추김치가 아닌, 막 썰어 버무린 김치는 - 김치 축에도 못끼던 것이었다.  그랬었는데.

 

나는 이제 더이상 통배추김치를 담지 않는다.

썰어먹기 귀챦아서.

(통배추김치를 통에서 꺼내어, 도마에 올려놓고 썰어서 접시에 담은 후에, 그 도마 다시 씻고, 칼 씻고, 김칫국물 흐른것 닦고... 그런 과정들이 번거롭고 귀챦다.)

 

 

막김치는 뚝딱 만들기도 쉽고,

만들어서 통에 담기도 쉽고

통에서 필요한 만큼만 덜어서 꺼내 먹기도 쉽고.

 

배추 네통과 무우 두개를 썰어서 부추 파 마늘 생강을 섞어 김치를 담았다.  계절학기 수업이라 아침부터 여섯시간을 한꺼번에 몰아서 수업을 한지라, 수업 마칠즈음에는 '파김치'가 되고 말았는데, 집에 김치가 다 떨어졌다는 것이 기억이 나서 장을 봐다가 배추를 절이고, 밥을 지어 식구들을 먹이고, 그리고 쓰러져 잤다. 자고 나니 배추가 다 절어있길래, 젖은 나비같은 배춧잎들을 건져서 김치를 버무려 담았다.

 

학생들이 통배추김치보다 막김치를 좋아한다고 설명해주던 한국마켓 이사장이 생각나.  언제부턴가 나는 막김치를 '유학생 김치'라 부른다. 자취생 김치. 유학생 김치. 막나가는 김치. 바다를 건너던 나비들이 쓰러져 쉬는 김치.

 

나의 나비는 지금 저 푸른 바다위를 잘 날고 있을까?

나비야, 내 혼아. 지치지말고 바다를 잘 건너라.

 

 

 

 

 

2010년 1월 4일 월요일

작업노트

미국미술을 취미로 공부하면서, 기분 내키는대로 시대와 상관없이 이 작가에서 저 작가로 흘러다녔는데요...이제 슬슬 체계를 세워서 하고 싶어집니다. 

 

사진 찍는 기술도 좀 늘은것 같고

미국 미술의 큰 흐름도 이제 머릿속에 자리가 잡혀가고

시대별로, 큰 흐름별로 묶어서 정리를 하고 지나가야 좋겠다는 '압박'을 슬슬 받게 되는군요.

 

그래서, 일단 사실주의 계보중에서

(1) The Eight / Ashcan School 의 나머지 작가들도 마저 정리하고

(2) Regionalism 삼인방은 정리 했고 (야호)

(3) Social realism 계열 대표적인 작가를 마저 정리하고

 

그리고나서, 19세기로 가서  토마스 콜을 건드렸으니 허드슨강 미술가들 대표적인 작가들을 선정해서 묶어서 정리하고

 

그 다음에 미국 인상파로 흘러가볼까 합니다....

 

현대미술을 기다리고 계신 독자라면, 쟤는 왜 옛날 얘기만 하는가? 하실텐데...  현대미술 일단 건드리면...핵폭탄처럼 어마어마한 작업이 기다리므로...  차차 하죠...

 

(물론...이러다가 기분내키면 갑자기 앤디 워홀로 뛸수도 있는거죠. 뭐. ^^ )

 

 

[song] I Will Survive~

 

 

 

용기가 필요할때, 온종일 틀어놓고 싶은 노래. 올해 한해 내내 나는 이 노래를 진종일 들으며 행진해야 할것 같아.  그러다보면 세월이 가겠지.  그리고 ... 내가 변하겠지... 내가 변한다해도, 나는 비슷한 꿈을 꾸다 깨겠지. 꿈에서 깨면 울고, 또 앞으로 걸어나가겠지.  그렇게 세월이 가겠지.

 

 

First I was afraid
I was petrified
Kept thinking I could never live
without you by my side
But I spent so many nights
thinking how you did me wrong
I grew strong
I learned how to carry on
and so you're back
from outer space
I just walked in to find you here
with that sad look upon your face
I should have changed my stupid lock
I should have made you leave your key
If I had known for just one second
you'd be back to bother me

Go on now go walk out the door
just turn around now
'cause you're not welcome anymore
weren't you the one who tried to hurt me with goodbye
you think I'd crumble
you think I'd lay down and die
Oh no, not I
I will survive
as long as i know how to love
I know I will stay alive
I've got all my life to live
I've got all my love to give
and I'll survive
I will survive

It took all the strength I had
not to fall apart
kept trying hard to mend
the pieces of my broken heart
and I spent oh so many nights
just feeling sorry for myself
I used to cry
Now I hold my head up high
and you see me
somebody new
I'm not that chained up little person
still in love with you
and so you felt like dropping in
and just expect me to be free
now I'm saving all my loving
for someone who's loving me

 

 

 

 

 

 

 

 

 

 

2010년 1월 3일 일요일

미술책속의 그림: 온전한 그림인가?

 

 

Smithsonian Q & A: American Art and Artists: The Ultimate Question & Answer Book

 

지난 2009년 12월 29일에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책방에서 이 책을 샀다는 글을 적은적이 있습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250 )  심심할때 짬짬이 들여다보고 있지요.

 

오늘은 토마스 콜에 대한 페이지를 정리하면서 이 책을 참고삼아 보았는데요, 이 책에 실린 토마스 콜의 그림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그림은 제가 토마스 콜의 그림을 소개할때 이야기를 조롱조롱 들려드렸지요. 해골바가지가.... 메멘토 모리가...종알종알....

 

위의 책 (38 페이지)에 소개된 그림은 제목도, 제작년대도 아래의 작품과  일치하는 동일한 그림입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267 참고) 위의 작품과 아래의 작품은 동일해 보입니다.

 

하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지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책의 그림과, 제가 액자까지 찍어온 그림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예, 아마 찾으셨을겁니다.  해골바가지의 위치를 보시면 그 차이를 알수 있지요.  위의 책속의 사진에는 해골바가지가 그림의 맨 바닥에 있고, 제가 찍은 원화에는 해골바가지가 조금 윗쪽에 있습니다.  아마도 책속의 그림 사진은 사진 편집 과정에서 아랫부분 일부를 잘라낸것처럼 보입니다.  그림의 아랫부분이 잘려나갔다는 뜻인데요.   물론 이 그림에서 아래부분 약간 잘라낸다고 뭐 주제가 바뀌고 그런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토마스 콜은 해골바가지를 그림의 바닥에 그려넣지 않았습니다....  아무렇게나 잘라낸 그림은 이미 원화를 훼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원화를 사진기로 찍고 다듬으면서 원화의 저역시 원화의 색감을 멋대로 훼손시켰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제가 아무리 육안으로 본 것의 기억을 고집하려 해도 재생에는 한계가 있지요). 재생의 한계를 인정한다 해도 원화의 구도마저 훼손시킨다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스미소니안이 자체 이름까지 걸고 만들어낸 책에서 스미소니안 소장 작품에 멋대로 칼질을 하여 원화를 편집을 했다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이거 정말 프로페셔널 정신을 가지고 만들고 감수한것인지.... 앞서의 페이지에서 (http://americanart.textcube.com/269 ) 미술책의 오류 가능성과, 인간의 오류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제가 미술관 산책하면서 '액자'까지 통째로 작품 사진을 찍는다거나, 혹은 미술관 풍경을 스케치하거나, 작품 사진 앞에 사람들이 서있는 광경을 집어 넣는 이유는,  그림의 실제 모습, 그 그림의 실제 크기, 혹은 그 그림이 전시된 전시장의 생생한 풍경을 통해 제 미술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께 한발짝이라도 다가가는 생생한 미술을 선물하기 위해서인데요.

 

미술책 편집하시는 분들, 이런 세밀한 것에도 신경을 쓰셔야 할텐데요. ...

 

책--믿으면 편하죠. 하지만 믿으면 안되죠.

 

책은 (전에도 이야기한바 있지만) '지도'같은 것입니다. 지도속에는 실체가 없습니다. 지도를 가지고 가늠하고, 찾아가는 것이지요. :)

 

 

2010년 1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