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8일 목요일

Etching 에칭 판화

 

이 작품은 Edward Hopper 의 Night Shadows 라는 에칭 판화 작품이다.  한 때 Edward Hopper 는 이 판화 기법에 심취하여 직접 기구까지 들여놓고 열성적으로 에칭 작품을 만들어 냈었다.

 

미술책을 들여다보면 '에칭' 작품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어찌보면 '펜화' 처럼 날카로운 펜끝으로 그린것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곤 한다.  에칭은 흔히 금속판화라고도 하는데,  구리나 주석과 같은 금속 판을 가지고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검색해보니 에칭 작업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동영상들이 많이 눈에 띄어서 그 개념을 이해하기에 편리하다.

 

대략 공정을 정리해보면:

 

 1. 일단 무엇을 그릴것인가 정해야 한다. 밑그림을 미리 그린다면 더욱 편리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판화'이므로 판을 종이에 찍었을때 '거울 이미지' 즉 방향이 반대가 되므로 이를 미리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야 한다.

 

 2. 금속판 (예컨대 구리판)의 표면에 미세하게 항산화 표면처리를 한다. 촛농이나 밀랍과 같은 물질로 얇게 덮어주는 것이다.

 

 3. 표면처리가 된 금속판 위에 여러가지 굵기의 바늘, 펜촉과 같은 도구로 그림을 그려나간다. 바늘로 그림을 그리니까 얇게 표면처리된 표면이 바늘자국대로 긁힐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밑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그러면 금속판은 항산화 물질로 덮인 상태에서 바늘이나 펜촉과 같이 예리한 도구로 밑그림을 그린 선만 긁히게 된다.

 

 4. 그림 그리기가 완성되면 그 판을 염산과 같은 산성 물질 용액에 담가 놓는다.  그러면, 항산화 처리된 표면은 부식되지 않을 것이고 밑그림 처리 하느라 긁어낸 부분만 부식되게 될 것이다. 

 

 5. 일정 시간이 지나 판을 꺼내서 말린후에 항산화 표면처리 한것을 제거한다.  금속판에는 밑그림 그린 부분이 부식되어 골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6. 부식되어 파인 선에 잉크를 골고루 스며들게 하고 표면을 말끔하게 닦아낸다. 그러면 스며든 잉크는 남게되고 표면의 잉크는 씻겨져 나갈 것이다.

 

 7. 이 금속판위에 판화지를 덮고 판화용 롤러 (압착기)를 통과시켜 판화 작품을 완성시킨다.

 

 8. 작품이 완성되면 작가는 자신의 서명과 함께, 판화작품을 동일한 것을 몇편을 찍었는지, 이것이 그중의 몇번째 작품인지 고유번호를 적어야 한다. (판화 작품을 이런식으로 서명하고 고유번호를 남긴후에 원화/원판은 파기하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한다.)

 

 

 

 

 

Mariann Johansen-Ellis How an Etching is made and printed

마리안 조안슨엘리스가 설명하는 에칭 기법

 

[Edward Hopper] 에드워드 호퍼의 여러가지 작업들

에즈워드 호퍼는 (July 22, 1882 – May 15, 1967) 19세기말에 태어나 20세기 후반까지 85년을 살다간 미국 화가이다. 내가 가급적이면 작가들의 생몰 연대를 언급하는 이유는, 작가들의 활동과 그들이 살다간 지역사, 세계사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살다 간 동안 한국에서는 한일합방이 일어나고 삼일운동이 일어나고, 광복을 맞고, 그동안 세계사적으로는 세계 1차, 2차 대전이 지나가고, 한국에서는 육이오, 혹은 한국전쟁을 겪고, 419 혁명이 일어나고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우리 아빠 엄마가 결혼을 하고 우리 오빠가 태어나고, 언니가 태어나고...

 

85년을 살다간 이 화가에게 몇차례의 그림 매체의 변화가 있었다. 첫번째로, 그는 밥벌이를 위해 '삽화가'로 활동을 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예 삽화에 중요 도구가 되는 '에칭'기법을 스스로 익혀 '에칭' 활동을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고,  미술학교에서 만나 잠시 알던 여학생 Jo와 40대에 다시 만나게 되어 그로부터 수채화를 권유받아 수채화 활동을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다. (결국 Jo와 결혼하여 해로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 유화작업에 주력하게 된다.

 

마침 내 사진파일에 내가 '사냥'한 (나는 이를 사냥이라 부른다. 어줍지 않은 사진이지만, 내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 것들이므로) 작품들이 있어 이 세가지 매체의 작품들을 소개해본다.

 

(1) 삽화와 에칭판화 시절

(2) 수채화 시절

(3) 유화 시절

 

 

*** ***

 

 

(1) 에칭 판화: 1921년 Night Shadows (밤의 그림자).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2009년 9월 찍은 사진이다.

 

 

 

 

 

(2) 수채화: White River at Sharon (샤론의 흰 강) 1937년 작품으로 그해 9월 버몬트 (Vermont)주의 친구를 방문했을 때 그 곳의 풍경을 담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유화: 그리고, 워싱턴의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 국립 미술관, 허시혼 미술관, 코코란 미술관에서 '사냥'한 작품들

 

 

스미소니안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Art) 1층에 2009년에 걸린 호퍼의 작품들. 왼편은 Cape Cod Morning. 오른편은 Ryder's House

 

 

 

 

 

 

 

 

 

국립 미술관에 걸린 Cape Cod Evening.  위에 있는 것은 케이프 코드의 아침.  아래의 작품은 같은 장소의 저녁.

 

 

 

 

코코란 미술관에 걸린 Ground Swell (1939)

 

 

 

 

음...2008년 여름에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관에서 찍은 Night Hawk 가 그의 '상징'처럼 널리 알려진 작품인데, 그 때 사진 상태가 비참하다...제대로 찍지 못했다...

 

Cape Cod Morning 이라는 작품으로 그의 작품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다음회에...)

 

 

[Edward Hopper] Alone alone all alone 쓸쓸하고 쓸쓸하여라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소장, 자화상




Edward Hopper 가 소년 시절에 습작으로 그린 바다 그림을 보면, 바다에 커다란 배가 한척 떠 있는데 그림 구석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Alone, alone, all, all alone,
Alone on a wide wide sea !

홀로, 홀로, 홀로 있다네
이 넓고 넓은 바다에 나 혼자 뿐이라네!

이것을 보고 그 부모님이 기겁을 했다고 하는데, 호퍼는 어릴때 갑자기 키가 훌쩍 커버리는 바람에 주위의 아이들과 동화를 못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혼자 그림이나 끄적이며 소일했다. 그가 어린 시절 그림 구석에 끄적여놓은 이 구절은 Samuel Taylor Coleridge 의 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 (노 수부의 노래) 에 나오는 것이다. 대개 한국 대학의 영어영문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이라면  워즈워드와 쿠어리지의 '낭만주의'를 시작으로 영문학에 입문하게 될 것이다. Coleridge 는 워즈워드와 함께 영국 낭만주의의 문을 열어제낀 시인이었다.



어린시절 쿠어리지의 시를 베껴적던 소년 에드워드가 성인이 되어 즐겨읽던 작가들이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헨리 데이비드 써로우 (Henry David Thoreau)였다고 한다.  이들은 미국의 초절주의 (transcendentalism) 철학자, 문인들이었다. 미국의 초절주의는 영국의 낭만주의 (Romanticism)와 칸트 철학을 배경으로 탄생한 철학으로  에머슨의 자기독립 (Self Reliance) 정신으로 꽃을 피우게 되는데, 에머슨의 Man is his own star (인간은 그 스스로 자신의 별이다) 라는 선언에서 보이는 '자아'를 주체로한 삶의 철학은 근대 미국의 정신적 근간이 되기도 한다.  그가 소년시절 쿠어리지의 시에서 성인이 되어 에머슨이나 써로우로 옮겨간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런 현상처럼 보인다. 그는 외톨이 소년이었고, 그러나 그는 혼자서 제발로 서기를 겁내지 않았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은 그것이 아무리 밝게 채색되어 있어도 어쩐지 스산하고 쓸쓸하다. 그런데 그 썰렁한 그림앞에 일단 서면 우리는 쉽게 발을 떼지 못한다.  무언가 음산하고 스산한 바람이 우리 귓가와 뺨을 맴돌면서 우리를 떠나지 못하게 잡는다.

에드워드 호퍼는 어린시절 습작에 써갈긴 싯귀처럼 평생, '외톨이'로 살아간 미국 화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에게는 절친한 친구들도 있었고, 결혼하여 평생 해로한 부인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외톨이'라 부른다. 그는 평생 넓고 넓은 바다를 홀로 떠돌듯 자기만의 그림 세계를 개척해나갔고, 그의 신념을 지키다 여행자처럼 지상에서 사라져버렸으므로.

그런데, 우리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스산함이나 썰렁함, 고립감을 느끼면서도 그의 그림에서 쉽게 발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공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이도 내가 느끼는 쓸쓸함을 느꼈구나. 나도 저이의 쓸쓸함을 느낀다. 우리는 공감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이런 '공감'. 누군가 슬퍼서 울고 있으면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것이 위안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쿠어리지의 고립감에 공감했고, 호퍼의 그림을 읽는 사람들은 호퍼의 고립감에 공감한다. 그 순간 만큼은 'alone, alone, all, all alone 이 '무효'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의 마술적 힘 일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세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2009년 10월 7일 수요일

제비꽃

앤드루 와이어드를 대충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진 파일들을 정리하다 보니 내가 아직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크리스티나 올슨을 그린 크리스티나의 세상그림에 대한 이야기로 앤드루 와이어드의 페이지를 처음 열었을 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제비꽃이 떠올랐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나의 제비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

 

지난 9월에 뉴욕 현대미술관에 갔을 때, 벤 샨의 그림 옆에 나란히, 당당하게 걸려있던 크리스티나의 세상그림을 다시 카메라에 잡았다.

 

(사진 클릭하면 커집니다.)

 

 

이것은 앤드루 와이어드를 세상에 널리 알라게 된 1949년 작품이다. 와이어드에게 크리스티아 올슨이라는 사람과 그의 집을 소개한 이는 나중에 결혼하게 되는 베씨 (Betsy)였다. 크리스티나는 소아마비로 인해서 다리의 힘을 잃어갔지만, 오빠와 함께 사는 집안 일을 돌보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그는 불구의 다리를 이끌고 온 집안을 윤택하게 가꾸며 살았다. 크리스티나는 남이 도와주는 것도 원하지 않았고, 휠체어에 의지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사진의 크기를 줄이기 전에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크리스티나의 드러난 오른팔이 중간의 관절이 튀어나와 보일 정도로 앙상하고, 거뭇하고 푸르스름한 멍 자국도 보인다. 두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팔로 몸을 이동해야 하므로 관절이나 주변의 피부에 굳은살이 생겨 단단해졌을 것이다. 그것이 멍 자국처럼 채색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손도 앙상한 팔에 비해서 큼직하고 손가락들이 굵직하게 발달해 있다. 손으로 전 우주를 지탱하고 온갖 일을 다 해야 하는 상황이 손을 기형적으로 크게 발달 시켰을지도 모른다. (사진 오른쪽 구석의 둥근 무늬는, 필터가 깨져서 반사된 것이다.)

 

관객이 이 그림 속의 상황을 어떤 식으로 재구성하게 될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길 일이지만, 앤드루 와이어드 자신은 그림 속의 크리스티나가 들판에서 열매를 따는 중이었다는 설명을 한다. 내가 중학생 시절 발견한 소설책 표지의 크리스티나는 들판에 버려진 여인처럼 다가왔지만, 앤드루가 설명하는 크리스티나는 고난 속에서도 삶을 경건하게 살아가는 강한 여인 인 듯 하다.

 

 

Andrew Wyeth (artist)
American, 1917-2009
Wind from the Sea, 1947
tempera on hardboard
overall: 47 x 70 cm (18 1/2 x 27 9/16 in.) framed: 66.4 x 89.5 x 7 cm (26 1/8 x 35 1/4 x 2 3/4 in.)
Gift of Charles H. Morgan
2009.13.1

 

  

 

   이 그림은 와이어드가 크리스티나의 방 창문을 그린 그림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 워싱턴의 국립 미술관 소장품이다. 1947년 크리스티나의 창문이 그려졌고, 그 후크리스티나가 그려진 모양이다.  만약에 내 곁에 함께 그림을 보는, 내가 편하게 말해도 되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소근소근 속삭일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있잖아, 이 그림 앞에 서면, 바람이 분다. 따뜻하고 고요한 바닷바람이 산들산들 들어와서 레이스 커튼을 살짝 흔들지.  그러면 레이스에 새겨진 새가 날아오르고, 꽃잎들도 이리저리 떠돈다.  이 그림 앞에 서면 흐린 날 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냄새 섞인 따뜻한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흔들고, 그리고 갈매기 울음 소리가 들려. 너도 갈매기 소리가 들리니?”  대개 혼자 그림을 보러 돌아다닐 때, 나는 혼자 누군가에게 종알거린다. 내 종알거리는 소리가 어디로 가는지 나도 모르겠다. “있잖아, 언젠가 너도 와서 봐봐.”

 

 

제비꽃

 

내게는 제비꽃으로 기억되는 한 사람이 있다.  나는 그이를 딱 한번 본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내가 성장하면서 몇 차례인가 스쳤을 것인데, 내가 원래 수줍음이 많고, 반사회적이었던 나 자신이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성장한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내가 그를 보고, 그가 나에게 미소를 던졌대도 내가 기억을 못 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람들이 그이에 대하여 평한 것을 대체적으로 정리해보면, 그는 보름달처럼 인물이 환하고 고우며, 두 뺨은 복숭아처럼 발그레하고, 손재주는 얼마나 좋은지 뜨개질로 다섯이나 되는 오라비들의 겨울 스웨터를 짜 입히고, 자투리 헝겊을 모아 아름다운 조각보나 조각이불을 만들어내며, 반찬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그 모친이 부엌일을 그에게 모두 전담시켰으며, 온종일 집안일을 하면서도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고, 언제나 물에 씻은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는 집안의 보배인데, 딱 한가지, 열두 가지 재주와 미모를 타고난 이 사람에게 딱 한가지 모자라는 것이 있으니, 그만 날 때부터 앉은뱅이라 두 다리를 못쓴다는 것이었다. 분명 나도 어릴 때 이 댁 생일잔치에 가서 맛있는 밥도 먹은 적이 있으니 이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몇 차례 스쳤으련만, 나는 아무것도 그이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앉은뱅이를 한번도 목도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앉은뱅이가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소아마비나 혹은 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많이 보아왔지만, 앉은뱅이라니. 앉은뱅이가 무엇일까?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앉은뱅이란, 제비꽃 노래 속에만 존재했다.

 

보랏빛 고운빛 우리집 문패꽃

피고지고 또 피어 앉은뱅이 랍니다.

 

이른 봄날, 추운 봄바람을 무릅쓰고 피어나는 아주 작은 제비꽃을 사람들은 앉은뱅이꽂이라고도 불렀나 보다.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제비꽃으로 통했지만, 내 고모들이 서너 살짜리 조카 애를 데리고 앉아 무용까지 곁들여서 가르쳐준 노래 가사는 이 제비꽃이 앉은뱅이 꽃이라고 일러준다.  내가 서너 살 때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우리 고모들은, 나를 세워놓고 선생님 놀이를 한다고 여러 가지를 가르쳐줬는데, 그렇게 배운 것이 이 노래와 무용이었다. 피고지고 또 피어 앉은뱅이랍니다 라고 할 때는 두 손을 반짝반짝 하여 피고지는 것을 표현하다가 막판에는 바닥에 주저앉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어린 마음에 노래와 율동이 재미있어서 참 열심히 그것을 익혔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 앉은뱅이란 보라색 제비꽃이다. 그래서 내가 다 자라도록 사람들이 앉은뱅이얘기를 하면 나는 그 사람이 제비꽃에 둘러싸여 앉아있는 풍경을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내가 대학생이 된 후에 어느 가을날, 시골집에 가니 생전 처음 보는 여인이 마당 멍석에 앉아 콩을 까고 있다가 다가서는 나를 발견하고는 달처럼 환하게 웃는 것이 아닌가, 이 처음 보는 여인이 내 집 마당을 제 집 마당처럼 차지하고 앉아 내 이름까지 부르면서 알은체를 한다, “네가 온다더니 정말 오는구나. 너 정말 이제 어른이 다 되었네! 너 밥 먹었니? 배고프지?”  이 낯선 사람은 자기가 마치 평생 나를 알아온 것 같은 태도로 내 집 마당에서 나를 맞이했다. 나는 이세상에서 이렇게 얼굴이 환하고, 얼굴이 복숭아같이 발그레한 여인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고 검은 눈망울하며 환하게 웃는 그 붉은 입술이라니! 

 

나는 여전히 전혀 사교성 없는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내 집 대문을 향해 걸어가고 마는데, 그이가 너 배고프지!” 하면서 밥을 차려주겠다는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나부지런히 역시 대문으로 향했는데, 그제서야 나는 내가 평생 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앉은뱅이를 눈앞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이 달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바로 그 앉은뱅이였다. 그이는 두 팔을 다리처럼 세우고 그림자처럼 가느다란 하체를 바닥에 질질 끌면서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느릿느릿 바깥마당을 가로질러, 대문간을 지나 부엌으로 갔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 풍경을 바라보는 수 밖에.

 

그렇게 나는 나의 제비꽃을 만났다.  가을 걷이가 분주하게 되자 농사를 짓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이 부족했고, 그래서 먼 일가붙이인 제비꽃이 일손을 거들 겸 우리 집에 와 있었던 모양이었다. ‘제비꽃저녁상을 다 차릴 즈음에 할아버지 할머니도 하루 일을 마치고 늬엿늬엿 넘어가는 해님과 함께 집안으로 소를 끌고 오셨고, 그렇게 우리들은 별 말도 없이 제비꽃이 차려주는 밥을 달게 먹었다. 제비꽃이 차린 밥상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그 해 가을에 나는 한 일주일쯤 시골집에 머물렀고, 제비꽃과 한 방에서 자고 일어났다. ‘제비꽃은 우리 고모들과 비슷한 또래로, 먼 친척 아줌마 뻘이었다. 그 때 서른이 넘은 나이였고, 내 고모들은 이미 아이 엄마들이 되어 있었지만, 제비꽃은 전설처럼 환하고 예쁜 처녀였고, 나이를 분간하기 힘든 신비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제비꽃과 말을 섞어갔지만 그렇다고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도 아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일을 거들러 시골에 내려간 것이었으므로 주로 가을걷이를 도우러 밭으로 나가 살았고, ‘제비꽃은 집안일을 챙기느라 집과 마당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제비꽃은 내가 서울 집으로 향하던 그날, 마당 가에 앉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었다. 참 희고 환한 얼굴, 까만 머리, 그리고 뺨이 발그레한 아가씨.

 

 

그것이 제비꽃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몇 해 후에 나의 제비꽃이 집안에서 혼자 농약을 먹고 명을 끊었다는 소식을 인편에 들었다. 그의 마지막을 보러 간 고모들이 전했다, “죽어서 드러누워 있는데 어쩌면 인물이 그렇게 곱던지. 얼굴이 달덩이처럼 환하고, 살아있을 때처럼 뺨도 붉그레 하고 곱더라. 참 착한 아이였는데……생전 찡그린 얼굴을 못 봤는데……죽어서도 참 곱더라……”

 

나는 그 사람을 제비꽃이라고 부른다. 내게는 먼 일가붙이 친척이고, 우리 고모들 또래의 아줌마뻘이지만, 그이는 하도 달처럼 곱고 아름다워서 다른 이름은 그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내게 영원한 제비꽃이다.  나는 이세상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또다시 본 적이 없다. 들판에 앉아있는 크리스티나의 뒷모습을 볼 때, 사람들은 어떤 상상을 할까? 나는 크리스티나가 문득 고개를 돌려 관객을 쳐다볼 때, 어떤 얼굴이 나를 보게 될지 알 수 있다.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면, 거기 나의 제비꽃이 웃고 있을 것이다.  농약 먹고 죽을 때 얼마나 속이 아팠을까……하지만, 사는 것이 농약보다 더 아파서 죽었을 터이지. 나의 제비꽃. 피고지고 또 피어 앉은뱅이가 되었지만, 해마다 봄눈을 뚫고 피어나는 꽃.

 

 

 

 

Mortal, but Immortal

When a little more deliberation in the choice of their pursuit, all men would perhaps become essentially students and observers, for certainly their nature and destiny are interesting to all alike.  In accumulating property for ourselves or our posterity, in founding a family or a state, or acquiring fame even,  we are mortal; but in dealing with truth we are immortal, and need fear no change nor accident.  The oldest Egyptian or Hindoo philosopher raised a corner of the veil from the statue of the divinity; and still the trembling robe remains raised, and I gaze upon as fresh a glory as he did, since it was I in him that was then so bold, and it is he in me that now reviews the vision.  No dust has settled on that robe; no time has elapsed since that divinity was revealed.  The time which we really improve, or which is improvable, is nether past, present, nor future.

 

사람이 추구하는 바를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발견하게 되는 현상이 뭔가하면,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학생' 혹은 '관찰자'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생이나 관찰자의 속성이나 운명은 모두에게 흥미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나 후세를 위해 재산을 모은다거나, 가정 혹은 국가를 이룬다거나,  또는 개인적 명성을 얻는것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은 결국 죽고 사라질 운명이다. 하지만 진리를 대하는데 있어 우리는 영속적이며 변화나 사고를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  고대의 이집트 혹은 인도의 철인은 신의 조형물을 덮은 베일의 끝자락 일부를 들어올린바 있으며,  아직도 그 미세하게 흔들리는 베일의 끝자락은 그대로 올려진채 있다.  나는 이 들어올려진 끝자락을 통해 고대의 철학자가 보았던 그 신선하고도 영광스런 자태를 올려다본다. 고대의 철학자 속에는 그 당시 그토록이나 용감했던 나 자신이 들어있었던 것이며, 오늘날 이를 다시 살피는 이는 내 속의 그 철학자 인 것이다.  세월은 흘러갔지만 베일자락위에 먼지 한톨도 내려 앉지 않았다.  신성이 최초로 발견된 이래로 시간은 흘러가지 않았다.  우리가 향상시켜 나가는 시간은, 혹은 우리가 진보시켜 나갈수 있는 시간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것이다.

 

--Henry David Thoreau, Walden (Reading) pp.82

 

 

Edward Hopper 가 즐겨 읽은 사람들은 Ralph Waldo Emerson, Henry David Thoreau 인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삶의 태도와 이들 철학자들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Hopper 의 삶의 태도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된다.  Emerson 이나 Thoreau 에 대한 이해는 미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로 확장 될 수도 있겠다. 이들은  미국이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인 스승이며 친구들이기도 했으므로. 이들의 Self-Reliance 정신과,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 근대화가들의 성향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것으로 보이는데,  내가 어느 선까지 정리를 해야 할지 난감하여 고민을 하고 있다.

 

위로가 되는 것은, 며칠전에 집에 있는 알란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책에서 그의 '호퍼'관련 챕터을 찾아 읽어보았는데,  지금 호퍼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 된 상태에서 알란 드 보통의 글을 다시 살펴보니 그의 그 맛깔스럽고 매력적인던 글이 진부하고 상투적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참 대충 쓴 글이군.  그런데 내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매력적으로 보였군.  이런 생각도 들고,  내가 글을 너무 심각하게 쓰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사기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내 시각으로 풀어내도 될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호퍼의 개성을 정리해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 역시 알란 드 보통은 재주가 뛰어나다.)

 

 

오늘 아침 Thoreau 의 이 글이 내게 고요한 평화를 가져다 준다.  고대 이집트의 철학자속에 내가 있었단 말이지.  써로우가 하늘을 보며 감탄할때 그 속에 내가 있었단 말이지.  지금 내 속에 써로우가 있단 말이지. (재미있는 발상. 위로가 되는 발상.)

 

 

나의 관점은 이러하다:

 

Edward Hopper 는 Robert Hughes 의 설명에 의하면 Solitary Watcher (외토리 관찰자) 였다.  호퍼는 끊임없이 이리저리 떠돌면서도 평생 조그만 아파트를 자신의 거주지로 정해놓고 살 정도로 정적인 인간이기도 했다.  그가 생활이 핀 후에도 (그가 그림을 팔아 떵떵거리고 살정도로 부자가 된 후에도) 공중화장실을 써야하는 아파트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냥 눌러 산것은  그가 이런 일상적 삶의 양태에 대해서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동떨어진 관찰자였고, 그렇게 동떨어진 자세를 견지하며,  사람들 곁으로 다가섰다.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서늘하게 들어섰다. 그는 말없는 관찰자였고,  오직 그림으로서 그의 세계관을 외쳐댔다. 그는 고요했지만, 그의 고요한 그림의 울림은 미국을 흔들었다.

 

헨리 데이비드 써로우 (Henry David Thoreau)는 Edward Hopper 가 즐겨 읽던 작가였다.  써로우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 생활한다거나,  세금 내지 않겠다고 일인 시위를 벌이며 '시민 불복종'을 외치다가, 파출소 유치장 신세를 진다거나, 산속을 떠돌며 자연을 관찰하면서 외토리처럼 살았지만, 그가 남긴 글은 미국의 지식인들의 양식이 되고, 추억이 되고, 울림이 되고, 그리고 세계의 보통사람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검소하게 살다가, 궁핍하게 죽어갔으나, 그의 책은 재벌들의 금장 저택 서재에서부터 가난뱅이 학생의 찌그러진 책상에까지 파고들어 이들의 영혼의 친구가 되었다.

 

써로우나 호퍼나 서로 외토리, 외고집, 은둔자라는 면에서 일치하고, 미국이 자랑하는 '고유의 미국인'이라는 점에서도 서로 통하며, 이들이 '미국'이라는 국경을 넘어 보통사람들 곁으로 다가간것도 닮았다.

 

이들의 삶을 관찰해보면, 외고집쟁이들의 '승리'를 읽게도 되는데,  여러가지 경영관련 처세술 책, 잘 먹고 잘살자 노래부르는, 혁신을 외치는 책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밥을 혼자 먹지 말라' '사람들과 자꾸 어울려라' '사교 골프를 치지 왜 안치냐' 뭐 이따위 대단한 금언들이 무색해진다는 것이다. 혼자 자기 구멍만 파면서 동떨어져 살아도, 난놈은 나는거고, 남이 나를 알아달라고 외쳐대지 않아도, 난놈은 저절로 세상이 알아본다는 것이지. 세상에 아첨하며 살지 않아도, 인생은 굴러간다는 것이지. 하하 (또 이상한 결론.)

 

 

 

2009년 10월 6일 화요일

시지푸스 사나이

옛날에 시지푸스라는 총각이 있었다.  이 총각의 취미생활은 바위를 언덕위로 굴려대는 것이었다.

 

내 학생중에 시지푸스 총각이 있다. 이 총각의 취미는 자동차를 언덕위에 세워놓고,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서 뒤로 굴러내려가는 차 뒤에서 차를 밀어대는 것이다...

 

 

 

메릴랜드의 볼티모어에서 한시간도 넘게 운전하여 학교에 오는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이 오늘은 지각을 했다.  지각안하는 학생이 지각을 하면 특별한 일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왜 늦었는가 물으니 그가 겪은 '자동차사고'의 경위를 설명해준다.

 

차를 언덕에 세워놓고 타이어 교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어를 중립에 놓고서  작업을 하다가 보니 차가 스르르 밀려 내려오더라는 것이다. 마침 차 뒷편에서 작업하던 그는 차가 스르르 밀려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차가 내려오지 못하도록 차 뒷꽁무니를 있는 힘을 다해서 밀어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시지푸스같은 괴력을 발휘해도 차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 언덕아래로 밀려내려갔기 때문에 이러다가 '깔려 죽겠다'고 상황 파악을 한 시지푸스 총각은 그만 차를 포기하고 '다이하드' 장면처럼 옆으로 잽싸게 몸을 날렸고, 차는 그대로 언덕아래로 굴러내려가 이웃집 사업가의 벤츠님을 쾅! 들이 받는 것으로 유종의 미를 장식.

 

그가 영어가 서툰고로, 내가 칠판에다가 '요런 상황이었는가?' 하고 그림을 그려가면서 물어보니,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고 하면서 영화장면처럼 근사하게 빠져나오는 광경을 연출.  아, 아, 이 수작을 지켜보면서 다른 학생들이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시지푸스도 나도 깔깔대고 웃고 말았는데, 사실 이게 웃을 일이 아니었던 것이지.  사람이 차에 깔려 죽을뻔했는데, 웃고 말다니...   하지만...시지푸스역시 절대절명의 순간에 대해서 이렇게 키득대며 이야기 하는 것으로 그가 받았을 정신적인 상처를 어느정도 치료할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상처받는것은 이야기를 하는것이 좋다.  자꾸 이야기를 해서 그 상황을 객관화하다보면 상처도 희미해진다.  우리들은 모두 깔깔대고 웃고나서, '네가 무사히 학교에 와서 정말 다행이다'로 마무리.

 

아, 피곤한 하루. 하지만, 내 학생들이 무사히 교실에 모여서 다행.  안죽고 학교에 와줘서 고마운것이지.  아, 그는 사태수습 하느라고 늦었던 것인데, 대략 벤츠님 파손에 대한 수리비가 삼천달러 정도 나왔다고.  삼천달러. 오 유어 갓! 

 

 

Smile, Charlie Chaplin

 

 

Smile though your heart is breaking, even though it's breaking...

 

 

 

 

마이클 잭슨이 노래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그의 한결같은 웃은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의 내면이, 내가 관심도 없었던 그의 내면이 내게 비쳐진다. 찰리 채플린, 마이클 잭슨,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초상화 작업을 한  앤디 와홀.  이들은 당대의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당대의 탁월한 무엇도 아니지만, 잠시 이들에게 기대어 웃고자 노력중.  적어도 사람들을 향해 찡그리면 안된다. 밝게 웃어야 한다. 그것이 프로페셔널이다.  밝게 웃을수 없다면, 교단을 떠나 무덤으로 직행을 하는 편이...무덤으로 갈 생각이 아니라면, 마이클잭슨처럼 밝게, 웃어야 한다. 챨리 채플린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웃어야.  여태까지 잘 해 왔으니까, 여태까지처럼. 웃어야.  마이클잭슨처럼.  가면처럼. 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