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9일 수요일

그녀가 우스개만 떠드는 이유

옛날에 십년도 더 된 일이다.

 

내가 학교에서 영어를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자자해지면서 (착각은 자유), 학교에서 '학생들 어머니들이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어머니를 위한 영어교실도 운영을 해 달라고 했다.  학생들의 '어머니'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내게는 예측하지 못했던 '도전'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들' 혹은 '삽사십대 주부들 집단'을 상대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내게 도전으로 여겨졌던 이유는, 나 역시 그 나이또래의 '아파트 주부'중의 한 사람으로 주부들 집단의 '파괴력'을 어느정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부집단은 어마어마한 파워의 원동력인데, 그 힘이 긍정적으로 작용할때와 부정적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긍정적으로 작용할때 나라를 부흥시킬 원동력인가하면, 부정적으로 작용할때 아파트 주변의 가게를 무너뜨릴 괴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영어 선생인 나 한명을 씹어서 밟아버릴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실수하거나 인간적으로 맘에 안 들 경우.)

 

그래서

 

그 당시에 나는 영어수업 준비외에 별도로 서점에서 '유머책'을 몇권 사다가 달달 외웠었다. 수업 중간에 틈틈이 그 내가 외운 유머를 써먹었다. 내 주부학생들은 오분 단위로 그 유머에 자지러졌고, 우리들은 유쾌한 수업을 진행할수 있었다. 나는 학생들의 '친구'로 거듭날수 있었다.

 

나는 내가 영어선생이 아니라 '개그맨'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적도 가끔 있었지만

그 때문인지, 그 영어교실에는 중간 낙오자나 이탈자가 생기지 않았다.

내가 나의 생존의 방법으로 '본능적으로' 선택한 이 '유머 전법'이 잘 맞아떨어진것 같았다.

(그당시, 초기에 나는 급성 위염까지 앓았었다. 스트레스성 급발작성 위염.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에 의한. 하하하. 나는 살아남았다. 위염도 물러갔다. 우리들의 영어교실은 유쾌했다.)

 

수십년간 공직을 돌면서 '영의정'을 거쳐서 지금은 외교관으로 지내고 있는 모 인사의 부인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온갖  작살 유머로 사람들을 웃긴다. 그가 입을 열면 유머가 튀어나온다. 유머에서 시작해서 유머로 끝난다. 그의 유머가 어찌나 유명한지, 대통령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각종 파티에 그를 초대한다고 한다. 파티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인은 -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웃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가로 결정되는것 같다. 

 

그런데, 어제는 이분이 '내가 왜 사람 모인자리에서 우스개만 떠드는지' 그 사연을 들려준다.

새파란 젊은 시절부터 공무원의 아내로 이리저리 떠돌다보니

생전 나랏님 흉을 볼수도 없고

상관에 대한 흉을 볼수도 없고

어떤 일에 대해서 함부로 의견을 드러낼 수도 없고

그래서 이리저리 조심하다보니

맘놓고 떠들수 있는 것은, 그저 남을 웃겨주는 유머인데

원래 성격이 쾌활하고 남 웃겨주는 일이 즐겁고

그러다보니 평생 공직자의 아내로 살면서 유머만 떠들어대서

덕분에

사람 모인자리에서 남 얘기 하거나 의견을 드러내는 식으로 '말실수'를 한적은 없고

"우스개만 떠들고 나면 몇시간 웃고 나도 남얘기 한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좋더라..."

 

아하, 이분역시 생존방법으로 우스개를 선택하신 것이구나...

 

 

 

이분이 남에 대한 험담을 할 때는 오직, 영의정까지 지낸 자신의 '남편'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이다.

남편이 칠칠치 못해서 구겨진 넥타이를 맨다던가 이런 소소한 흉을 보는것이 그가 '타인'에 대해서 뭔가 비평적인 언사를 보이는 유일한 예라고 할 만하다.

누군가에 대해서 '씹고 싶다'고 생각되면

남을 씹기보다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 자신과 진배없는, 내몸같은 존재에 대해서만 씹는 것이 사회생활에 유리하다. 그 외에 타인에 대한 의견을 함부로 드러내는 사람은 그만큼 자기 자신을 위험에 노출 시키는 것이리라. (나역시 허구헌날 남 흉보고 씹는것을 즐기면서 살아가지만 말이다.)

 

 

내가 수년간 나로서는 생사를 건 듯한 어려운 공부만 하느라고 내 인생이 빡빡해진 감이 없지 않다.

공부 마치고나서 맡게된 자리가 또 어려운 자리라서,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다시 유머집을 들여다보고 달달 외워야 할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위해서, 또 남을 위해서.)

 

 

 

 

 

 

 

2010년 6월 7일 월요일

(우산) Monet, Poppies, near Argenteuil (1873)

 

 

 

 

 

세인트루이스 미술관에 갔을때, 뮤지엄숍에서 내 학생 한명이 엄마한테 선물 한다며 이 우산을 고르는 것을 보았다. 사실 이것은 딱히 이 미술관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미술관에 가면 쉽게 볼수 있는 '중국산'이다.   어쩌면 한국의 우산가게에서는 이것을 오천원쯤에 판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 학생을 따라서 나도 이것을 하나 샀다. 우리 엄마 드리려고.

실제로 이 우산은 칠십대 중반의 우리 엄마가 들기에는 조금 무거울지도 모른다.

가쁜하기보다는 어쩐지 무게감이 느껴진다.

엄마는 이것을 우산대신 양산으로 사용하실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산인지 양산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우리 엄마한테는 이보다 더 좋은 우산이나 양산이 이미 여럿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있는 우리 엄마의 자식들은 엄마에게 좋은것, 귀한것만 사다가 드린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쩌면 시시한 물건이 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래도 나는 이 우산을 샀다.

모네의 양귀비 꽃밭 그림이 좋아서.

그 속에 있는 아줌마가 우리 엄마같고,

그 속에 있는 모자쓴 아이가 나 같아서

(엄마와 내가 이렇게 고운 옷을 입고 이렇게 고운 풍경속에 서본적은 없을지라도

그래도 어쩐지 이 그림을 보면 나는 어린날의 햇살까지 생생하게 떠올리게 된다.)

 

엄마는 이것을 뭣하러 비싼돈 주고 사왔냐고 하실것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이것을 쓰고 노인대학에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실것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Oak Tree Room

메클레인의 부유층들이 산다는 주택가에서 3년간 남편덕분에 잘 지냈다. P국장이 귀임하므로 그 집에서 철수하여 2베드 아파트로 옮겼다. 이삿짐만 옮긴채 이튿날 새벽에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현재의 내 아파트보다 미주리주 본교의 교수용 처소가 더 탁트이고 넓직하고 좋았다. (^_^) 하하하.

 

일주일간 평원지대에서 탁 트인 평야를 내다보며 지내다가 돌아오니

동부의 울창한 수풀도 답답하게 느껴질정도인데

아파트로 들어서니 그 답답함이 더 하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이내 이 공간에 적응 할 것이다.

전에 학생때는 이보다 협소한 아파트에서 내 아이들 둘과, 조카녀석까지 거느리고 살았었다.

그때는 내가 잘 방이 없어서 일년가까이 거실 소파에서 잤었다.

지금은 큰애가 거실을 제방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8월이되면 자신의 학교로 갈 것이고...

 

남편이 내 침실에 내 책상을 놓고 정리를 해 놨다. 여기서 잘 지내라고.

오래된 아파트이긴 하지만, 아치형 창문이 맘에 든다. 구식 알루미늄 창틀을 신식 플라스틱형으로 바꾸는 리모델링 작업이 진행중이니까, 곧 이 창문도 더 예쁘게 마감될 것이다.

오후가 되면서 창문틈으로 나무 그림자가 반짝거리며 숨어들어오는 것을 보면

이 방이 약간 서향인듯 하다...

아파트를 정할때 '방향'을 따져봐야 했는데...

난 사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쓰는 편이 아니다.

모든 사람 사는 집은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아파트는 창문의 어디에서도 사생활이 보장되는 구조이다. 누군가 들여다볼만한 각도가 없다.

그점이 맘에 든다.

 

오크 잎사귀 그림자가 방바닥에, 내 몸에서 어른거린다. 그런것을 보는 일이 즐겁다.

창밖에서 손짓하는 나뭇잎사귀를 내다보는 일도 즐겁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이 아파트에서 최소한 1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살게 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일년후를 예측하기 힘들다.

여기에 있을지

한국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미주리주의 본교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무엇이건 내가 선택하고 판단할 문제이므로 상황에 몰려서 선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가서 지내보니까 본교의 교수용 사택에서 지내도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서부의 평원이 맘에 들었다.

 

이 방에서, 공부 많이 하고, 사색 많이 하고, 내게 주어진 삶을 반짝거리게 하고 싶다. 당분간.

모든 주어지는 것들이 고맙고 귀하고 그렇다.

기쁘다. 살아있다는 것이. 오랫만에 느끼는 기쁨이다.

 

 

 

 

Tree at my window, window tree,
My sash is lowered when night comes on;
But let there never be curtain drawn
Between you and me.
Vague dream-head lifted out of the ground,
And thing next most diffuse to cloud,
Not all your light tongues talking aloud
Could be profound.
But tree, I have seen you taken and tossed,
And if you have seen me when I slept,
You have seen me when I was taken and swept
And all but lost.
That day she put our heads together,
Fate had her imagination about her,
Your head so much concerned with outer,
Mine with inner, weather.

Robert Forst 의 시가 아주 잘 어울리는 창문이다. Tree at my window, window tree....  기쁘다. 내가 기뻐하니 하느님도 기뻐하실 것이다.

 

 

 

 

 

마지막 수업. 귀가

 

세인트루이스 공항 이륙후 일리노이주 상공에서 내려다본 미시시피강

(세인트루이스는 미조리주와 일리노이주 양안에 연결된 중부도시이다.)

 

 

 

 

 

토요일 오전에는 일주일간의 합숙 집중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짐을 꾸려서 세인트 루이스 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 기숙사 휴게실에 모여서 나를 찾았다.  출발 준비가 다 되었음을 내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학생들을 공항으로 전송 나갈 계획이었다.  유치원생들이 아니니 딱히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이튿날이면 워싱턴으로 돌아가야 할 입장이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우리는 휴게실에 편안히 모여 앉아 학교 버스를 운전해줄 분이 오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런데

 

한 학생이 뭔가 불편한 표정으로 아침에 일어나 작은 '불상사'에 대해서 지도교수인 내 앞에서 안색을 굳히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호텔같은 기숙사를 일주일간 무료로 사용한 이 학생들은 사전에 '관리인을 위한 팁'을 약간 후덕하게 남겨두라는 지시를 받았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아침에 기숙사 관리인이 '사용한 침대 시트며 타월등을 세탁해 놓고 떠나라'는 잔소리를 했던 모양이었다.

 

팁만 좀 여유있게 놓아두면 될 줄 알았던 학생들은

사용한 집기를 세탁해 놓고 떠나라는 잔소리에 기분이 불쾌해졌던 모양이다.

그리고 부랴부랴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탁기와 건조기로 세탹을 하느라 갑자기 바빠졌을것이다.

불쾌할 만 하지.

약이 오른 학생들은 팁을 후덕하게 남겨두려던 것을 취소하고 말았다 한다.

(팁도 주고 빨래도 하고 그러면 억울하겠지...)

거기까지는 나도 잠잠히 듣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볼멘 소리로 떠들어대자

다른 학생들도 불편했던 심기를 드러냈고

급기야는 이 점을 떠나기전에 반드시 학교에 지적을 하고 재발 방지의 다짐을 받겠노라는 '과격한' 언사로 이어졌다.  지도교수인 내 면전에서...

 

그래서 나는 그 학생에게 물었다:

"사전에 팁을 넉넉히 남겨두고 떠나라고 학교에서 지시를 했지?

그런데 아침에 관리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쭝얼대며 잔소리를 했지?

그래서 지금 그 관리인이라는 사람이 쭝얼댄것에 기분이 나빠져서

학교에 대해서 불평하고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애초에 알려진 지시사항대로 이행하면 되는 것 아닐까?

당신들이 매우 특별한 귀빈들이라서 학교에서 방침을 정했는데

그 관리인이 사정을 잘 모르고 잔소리를 한 것일수도 있는데

왜 알지도 못하는 관리인의 말에 혹해서 시키는대로 해놓고 이제와서 학교를 탓하는가?"

 

요기까지는 내가 차분하게 차근, 차근 학생들에게 물은 사항이다.

 

하지만,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신들은 워싱턴에서 비행기타고 날아온 학생들을 융숭히 대접해주고 잘 교육시키기 위해서 학교가 얼마나 많은 것을 베풀었는지 전혀 모르는가?

당신들은 학생들이 사용할수 없는 구역을 사용하도록 허락받았고

학장님과 교직원들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이런저런 혜택을 누리게 했으며

학교 셔틀버스를 전용 자가용처럼 맘대로 사용할수 있었고

이세상 어디에 가도 받기 힘든 학생으로서의 대우를 모두 누렸다.

당신들은 이러한 것에 대하여 어느 누구에게라도 감사를 표한적이 있는가?

매일 셔틀버스를 운전해서 시내 안내를 해주던 교수에게 진정으로 감사인사를 드린적이 있는가?

어떤 박사학위자가 미쳤다고 당신들의 개인 기사노릇을 자청하는가?

그 사람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느낀적이라도 있는가?

 

 

당신들이 이런 모든것을 누릴만큼 그렇게 특별히 대단히 훌륭하다고 스스로 믿는가?

당신들에게 베풀어진 아흔아홉가지의 친절함에 대해서는 고마움도 표시할줄 모르고

단 한가지 누군가가 심술궂게 행동했다고 해서

지금 떠나는 마당에 그것을 문제삼아서 지도교수인 내 앞에서

불량한 태도로 학교 탓을 하러 드는가?

당신들은 아흔아홉가지의 일에 대해서 추호라도 감사했는가?

지도교수인 내가

당신들을 존중하고 돌볼때

나로서는 당신들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사항이 없었을거라고 생각하는가?

당신들이 그렇게 대단히 잘난 학생들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일일이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고

그냥 좋은 말로 칭찬하고 격려한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모두 믿는가?

당신들이 완벽한 인간이고 학생이라고 그렇게 믿는가?

 

 

나는

문제는 덮고, 돌봐주고 교육하려고 애써왔다.

당신들 식으로 내가 당신들의 아흔아홉가지 덕을 모른체 하면서 한가지 실수에 대해서 문제시하고 졸업 자격을 취소해버린다면 당신들은 행복할까?  내가 그러기를 원하는가?

그렇게 해줄까?

당신들은 수준이하의 행동거지를 내 앞에서 보여왔다.

내가 끝까지 덮어주고 웃으면서 졸업시켜 내보내려고 했으나

떠나가는 당신들에게 내가 말하건대

나는 교육에 실패했다.

나는 교육자로서 실패한 인생이다.

당신들은 교사로서 자격이 없다.

당신들을 이따위로 교육한 나 자신이 심한 책임을 느낀다.

나의 교육은 실패했다.

앞으로 우리 두번 다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나는 일이 없을것이고

나는 당신들을 내 학생으로 기억하지 않을것이며

당신들도 실패한 교육자인 나를 기억하지 않기를 바란다.

 

 

요기까지가 본론이었다.

 

그리고 학장님이 학교측이 제공하는 본교 방문 기념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는 (하하하)  

학생들을 공항으로 전송하러 나타났을때,

나는 학장님에게 말했다

"저는 공항에 못 나갑니다."

(학장님 표정: @_@  "뭔 일이다냐 시방...띠용 띠용..~~  )

 

 

얼마후 학장님께서 '중재위원'으로 내방의 노크를 하고 학생들을 이끌고 나타나셨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잠자는 마귀할멈의 코털을 건드렸던 것이다)

내 방에 나타난 학생들에게 나는 '디저트' 수업을 날렸다.

 

 

"입에서 나오는 말을 조심하라

입에서 말이 나오려 들을때 그걸 두 손으로 꽉 막으라

그걸 못하면 당신들은 사회생활 제대로 못 할 것이다.

불평거리가 있으면 입을 막고

감사한 것에 대하여 생각하라

자신이 받는 것에 대해서, 그것을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지 아닌지 생각하라.

미안하다

나는 당신들을 꼴도 보기 싫다.

영원히 다시 만날 일이 없기를 바란다.

천하에 버르장머리 없고 은혜도 모르고 무례하게 꽥꽥대는 인간들의 선생인 나 자신이 챙피스럽고  참담하여 다시는 당신들을 보고 싶지 않다."

 

 

 

결국 학생들은 내 축복을 받지 못한채 패잔병들처럼 울면서 학교를 떠나야했다.

그들은 울었다.

우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울면 뭘해? 자각과 반성이 없이 울면 뭐하냐구. 은혜도 모르고 예수를 팔아 십자가에 매달은 중생들. 예수가 아무리 이적을 보여도 그자리에서 잊고 돌아서서 모른채한 것이 중생들이 아닌가. 이런 인간들을 교육시킨다고 세상이 달라져? 예수가 다시 돌아와도 인간의 속성은 바뀌지 않을걸... 울어라, 울어라, 그러나 당신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 살다가 혹시 불평할 일이 있을때, 지금 여기서 마귀할멈처럼 저주를 해대던 내 얼굴을 기억하라... 이 마귀할멈같은 내 얼굴을 기억해내는자, 실수를 줄일수 있을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것 같다...생긴대로 살다 죽으라..."

 

 

나대신 이들을 인솔한 학장님의 전언:

 "학교를 출발하려는데 학생들이 갑자기 총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가겠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바쁜데 그냥 가자했더니 꼭 총장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가겠대

그래서 총장님을 찾으니

총장님이 교직원들과 함께 학교 청소를 하고 계시는거야.

총장님이 청소하다말고 인사하러 온 학생들을 위해서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드려준거야

(하하하, 여기서부터 코메디)

그러니까 학생들이 막 눈물을 펑펑 쏟는거야...

총장님이 축복의 기도를 드려주는데

학생들이 막 통곡을 하니까

곁에 있던 교직원들이 이걸 보고 그만, 숙연해진거지

아 총장님의 기도가 무지무지한 파워가 있나보다 학생들이 갑자기 통곡을 한다 할레루야! 이런 지경이 된거야.

(하하하 갈갈갈 -- 나중에 얘기를 전하면서 갈갈대던 학장님)

 

그래가지고 갑자기 분위기가 매우 숙연해졌다니깐. 총장님도 너무너무 감격한거지, 학생들이 너무나 고마워서 운다고 생각했으니까...

 

 

이것이 그들에게 준 내 '마지막 수업'이었다.

 

 

일요일밤, 나도 일주일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펼쳐두기..

2010년 6월 5일 토요일

St. Louis Art Museum

공식 홈페이지: http://www.slam.org/

 

Saint Louis Art Museum 에 '마침내! 드디어!' 다녀왔다.  여기를 전부터 꼭 와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곳에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Bingham 의 대작들이 걸려 있기 때문에. 빙엄은 미주리주에서 활동한 미시시피 강변의 풍속화가이다.  '지역주의 화가'들에 대한 페이지들을 정리할때 미 중서부 지역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그 중심이라 할 미주리주를 내 발로 가보지 못한 것이 어쩐지 개운치가 않았었다.  이제 그 '부채감'을 털어낸 기분이다.

 

이번 출장의 목적인 '여름 집중 학습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거의 4일간은 학생들이나 나나 '지옥 훈련'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가르치는 나로서는 큰 부담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공부하는 학생들이 거의 나흘 밤낮을 새 가면서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지도하는 나 역시 편안히 퍼 자고 그럴수가 없었다.  밤에 질문을 갖고 오는 학생도 있었고,  심지어 와인 파티도 수업의 연장같았다.  4일째가 되는 목요일에 종합시험을 치러 교실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거의 파김치가 된 꼴 이었는데, 대부분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밤을 꼬박 샌 형상이었다.  그렇게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금요일에는 필드트립을 나갔다.  세인트 루이스의 상징인 커다란 아치 (Gateway Arch)를 방문하여 그 아치의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미시시피 강이 가로질러 흐르는 일리노이주와 미주리주를 조망하고, 그리고 내 계획대로 세인트루이스 미술관에 도착했다.  필드트립이 교수의 삿적인 취향에 의해 결정된 감은 있지만, 학생들이 이 방문을 무척 좋아했다.

 

 

이제 내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질것이다.  나는 이들을 모두 한자리에서 다시 만날일이 없을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인생이 참 덧없고, 흐르는 바람같다. 나는 미국 미술을 지속적으로 들여다 볼 것이고... (미술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거울의 계단. 끝없이 반복되는 나, 나, 나, 나...)

 

 

 

 

 

2010년 6월 4일 방문.

 

 

2010년 6월 1일 화요일

love yourself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 이륙에 즈음하여 승무원이 비상시 안전수칙에 대한 짧막한 안내를 한다.  비행기가 사고로 비상 착륙하거나 물에 떨어질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뭐 그런 내용들이다.  그 중에는 '호흡보조기'에 대한 안내도 있다.  좌석위에 뭘 누르면 호흡보조도구가 나올것인데, 그것을 안면에 잘 부착시켜서 호흡 곤란을 방지하라는 안내이다. (승무원이 앞에서 시연을 해준다.)  그런데 그 안내 내용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비상시에 이 호흡보조기를 부착할시에는, 옆사람을 도와주기 전에 우선 자기 자신부터 안면에 부착을 하라. 그 후에 이웃을 도우라" (대략 이런 설명이다.)

 

비상상황에서는 '나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남부터 돕는' 행동을 하기보다는

우선

자기 자신의 안전부터 지켜놓고, 그 후에 이웃을 돌보라는 말씀이다.

 

 

어제 비폭력대화 (Nonviolent Communication) 워크숍에서도 학생이 네가지 상황을 주면서 어떤 상황이 가장 바람직한지 질문을 던졌다: 


"넌 이기적이고 너밖에 몰라" 라고 누군가가 나를 비난했다. 이때 나의 반응은?

(1) 풀이 죽어서, "그래 다 내탓이야..."

(2) 화를 버럭내며, "너야말로 이기적이야! 병신!"

(3) "네가 그렇게 말해서 나 속상해. 네가 뭣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것인지 모르겠어. 난 열심히 살고 있는데..."

(4) "네가 뭣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너에게 뭔가 실수한게 있니?  내가 어떻게하면 좋을까?"

 

우리 정신건강에 가장 편안한 대응방법은 (3)번에 해당한다고 한다.  내 식으로 풀어서 설명을 하자면,

(1)번은 자기 학대에 가깝고

(2)번은 무조건적인 '회피'에 가깝고

(3)번은 그 말이 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리고,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호하려는 태도로 보이고

(4)번은 자기희생쪽으로 흐를 경향이 있다.

 

상황이 어떠하건, 일단은 '나를 사랑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나를 존중함으로써 상대방도 존중하는 식으로 자기 확장을 하라는 메시지일것이다.  그래야, 이 난해한 세상을 무사히 살아낼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자기희생은 자신에 대한 '학대행위'일 가능성도 있다. 

자아 존중에 기반한 봉사와 희생은 위대하다. 그것을 이루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자기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자기를 이해하고, 보호해주고, 충분히 사랑하여주면

남을 진심으로 돌볼 기운을 얻게 될 것이다. 자기도 보호받아야 할 대상임을 잊으면 안된다.

 

 

 

자전거

간밤에, 와인 덕분에 꿈없는 잠을 푹 자고 새벽에 잠이 깼다.  어제, 교원 사택에 살고 있는 꼬마가  자전거를 빌려주기로 했으므로,  자전거를 가져다가 동네 '드라이브'를 신나게 하고 돌아왔다.  초원지대에 떠오르는 태양은 평온해보인다.  저 태양은 지구상의 만물을 골고루 만져줄것이다.  (나까지 포함하여).

 

돌아오는길에 들꽃을 한웅큼 따왔다. 

지천으로 피어나므로 내가 한웅큼 따다가 내 방을 장식한다고 해서 하느님이 노여워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이곳에는 내가 버지니아에서 보지 못했던 중서부의 새들이 보인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용모를 기억한다.  온몸이 모두 까맣고 부리와 목덜미 안쪽만 예쁜 주황색인 반지르르한 새가 예쁘다. 제비같은 자태의 새도 있다. 오리올도 보인다.

 

오늘은 오전에 Teaching Approaches and Methodology 를 하고

오후에는 Collective Thinking 수업을 진행한다.

 

어제 Nonviolent Communication 수업은 기대했던대로 학생들이 잘 해냈다. 수업 후에도 관련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그 수업이 내가 의도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음을 감지할수 있었다.  오늘도, 잘 되기를.

 

 

아침에 캠퍼스와 인근 지역을 자전거로 돌면서 생각했다. 2년전에 내가 이 학교와 처음 인연을 맺었을때, 나는 이곳에 이런 학교가 있었다는 '존재'자체를 몰랐었다.  2년후, 지금 나는 이 학교의 교수용 숙소에서 생활하며 캠퍼스를 내 집 정원처럼 산책하고, 이곳에서 중부의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본다.  마찬가지로 1년후 혹은 2년후의 내 모습을 나는 상상하기가 힘들다.  혹은 지상에 내가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까지도 배제할수 없다.  옛날  애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봤다. 25년전에 내가 죽고싶게 만들었던 내 첫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지금  그와 조우한다면,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낯설것이다. 그리고, '내가 저사람때문에 죽고 싶었단 말인가?'하면서 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게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  그런 점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았다.

 

내 삶은 급한 물살처럼 다이나믹하게 흘러가는 것 처럼 여겨진다.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주어지는 향기들에 대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