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4일 목요일

기차에 깔려 죽고싶으면

내가 아주 좋아하는 복음주의 미국인 목사님이 한분 있는데, 이름은 Lon Solomon. 굉장히 재미있는 분입니다.  어느날 이분 말씀:

 

 "You know what, if you want to be hit and killed by a rushing train, where should you go?"

 

이분 말씀을 이분의 스타일이나 음성, 여러가지 종합하여 한국식으로 다시 풀면

 "아그들아, 너그들, 달리는 기차에 깔려 디져버리고 자프면 으디로 가야 쓰겄냐?"

 

이를 뺀질한 표준어로 다시 옮기면

 "여러분, 질주하는 기차에 받쳐서 사망하고 싶으면 어디로 가야겠습니까?"

 

요는, 기차에 깔려 죽고 싶으면

 식당

 술집

 극장

 놀이공원

 도서관

이런데로 가면 안된다는겁니다.

 

기차에 깔려죽고 싶으면 기찻길로 가서 기다려야 하는거죠.

 

마찬가지로, 뭔가를 원한다면 그 궁극의 장소로 가라는겁니다.

 

공부 잘하고 싶으면 학교나 도서관으로 가는거죠.  놀이공원으로 가면 비 효율적이죠.

 

그 '기차에 깔려죽는 얘기'는 그 목사님의 아들이 혼기가 되어 천생의 배필을 찾아 헤멜때, 아버지의 입장에서 충고를 해 준거라고 합니다. 천생의 배필을 만나고 싶으면 그런 배필이 올만한 곳에서 찾아라, 뭐 설마 나이트 클럽이나 술집, 마약굴 그런데 가서 기웃거리며 찾으러들지 말아라 뭐 그런 메시지였다고 합니다. (뭐 그런데 가서도 천생의 배필을 못 만날것은 없겠지만 말이죠. 하하하).

 

아침부터 좀 피곤한데,  운전하다가 문득 그 양반 말씀이 생각이 나면서, 나 지금 어디로 가는건가?  나 지금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것이 뭔줄 알아야 어디로 갈지 정하는것 아닌가.  명품을 원하면 명품관으로 가는거고, 아웃렛 제품을 원하면 아웃렛으로 가는거고,  물에 빠지고 싶으면 강으로 가는건데,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문득,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아, 진정 원하는것이 있긴 하죠.  내 문제는, 내가 그것을 원하는것이 반칙이라는 것이지요... ) 아 아무튼, 이분 말씀이 나를 픽 웃게 만들었는데, 어마어마한 화두죠.  무엇을 구하러 어디로 갈것인가.

 

 

2010년 2월 3일 수요일

미술안내인의 덕목 (2)

미술 안내인의 덕목 (http://americanart.textcube.com/309) 페이지에서, 내가 '관객'으로서 미술 안내인에게 기대하는 몇가지 사항을 정리한 적이 있다. 그 후로도 나는 미술관에 갈때마다 프로그램 확인하고, 내 방문시간에 진행되는 도슨트의 안내를 듣곤 했는데 (요즘 블로그에 이야기를 적어야 하므로 미술책이나 미술 안내인들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읽거나 듣고 메모하는 편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열심히 공부중.)  이제 나는 어떤 '전형'을 정리 할 수도 있다.  내가 겪었던 '훌륭하고 인상적이었던 안내인'들과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안내인'들의 행동 양식을 대략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자면 두가지 부류로 나눌수 있겠는데 (1) 준비된 안내인 (2) 관객을 잃는 안내인 으로 제목을 붙일수 있겠다:

 

 

준비된 안내인

 

1. 관객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중간에 관객이 불어난다.

2. 소요시간을 미리 알려주고 그 시간안에 안내를 마친다.

3. 자신이 정한 동선을 정확히 알고 있다. 헤메지 않고 동선을 안내한다.

4. 그는 이미 계획이 서있고, 그 흐름이 일관된 어떤 주제를 따라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5. 손에 참고할 인덱스 카드가 일목요연하게 들려있고, 뭔가 역사 이야기를 할때는 연도를 정확히 말하고, 누눈가의 말을 인용할때는 카드에 적힌 것을 정확히 읽어준다.

6. 종종걸음으로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을 치며 이동하는 중에도 관객과 대화를 주고 받는 식으로 interaction 을 취한다.

7. 그는 스스로 고지한 시간 안에 그의 임무를 완수하고 작별 인사를 날린다.  작별 인사 후에도 남아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과 따로 남아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화를 나눈다.

 

 

관객을 잃는 안내인

 

1. 그의 관객들이 이미 초기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해서 끝마칠 즈음에는 한 두사람만 남게된다 (이경우 한두사람 남는 이유는, 다 빠져나가버려서, 이제 나마저 빠져나가면 너무나 참혹하므로, 미안해서 못빠져나가는거다.)

2. 소요시간을 알려주지 않는다.

3. 뭔가 처음 모였을때부터 중언부언하고 흐릿하다 (이때 감 잡고 그냥 자리를 뜨는 눈치빠른 사람도 있다.)

4. 그에게는 계획이 없다. (그냥 흘러가는대로 안내하는 스타일일것이다.)

5. 4번의 영향으로, 계획없이 흘러가는대로 가는 스타일이므로 뭐 바쁠게 없고, 뭐 원래 미술관 작품들은 다 걸작이므로 특별히 챙겨서 설명하는게 불가능하다는 태도이다. 뭐 다 좋다 이거다.

6. 계획이 없으므로 특별히 전달할것도 계획이 서있지않아서, 관객이 뭔가 좀 체계있는 질문을 던지면 중언부언하며 하나마나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예컨대 "이  기획전의 작품들에 일관하는 어떤 주제같은 것이 있는가? 이 기획전의 의도가 뭔가?" 하고 물으면 "여기 소장품이 오만점이 넘는데, 그냥 다 걸작인거다." 이런 설명을 한다.  이건 동문서답인것이지. 이쯤에는 이미 과반수의 청중이 바람빠져나가듯 사라지고 없다.

7. 기획전 안내를 맡은 사람이 기획전 안내를 전혀 못하고는, 여기 이것 말고도 좋은 작품들이 많으니 구경시켜주겠다고 끌고 아무데로나 이동한다. (이때 역시 사람들이 빠져나간다)

8. (나는 사람이 꽤 차고 야멸찬데, 빠져나갈 시기를 놓치거나, 혹은 상대방이 인간적으로 뭐랄까...좀..버리고 가버릴수가 없는...뭐 그런 느낌이 들때, 도망을 못간다.) 이때쯤 안내원은 이제 두사람 남은 청중을 돌아보며 모두다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다. (도망갔지....)  Oh, they abandoned me...oh...where are they?  그는 탄식한다.  이때 내가 도망간다면 나는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9. 그는 이제 단 두사람 남은 청중에게 뭔가 '특별 서비스'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남아있는 착한 청중(?)에게 좀더 봉사해줘야 한다!  좀더 봉사를!  그래가지고 세월아 가던지 말던지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안내를 해준다고 한다.

 

 

만약에 당신이 미국인하고 '영어 회화' 연습을 하고 싶다면, 그것도 공짜로 연습을 하고 싶다면, (그리고 당신이 워싱턴 근처에 산다면) 이런곳에 가면 된다.  두서없는 미술관의 안내인을 찾아내는거다.  그러면 분명, 성질급하고 인간성 안좋고 까탈스럽고 오만방자한 애들은 건방을 떨면서 이 착한 안내인을 버리고 도망을 갈거다. 하지만 당신은 인격자다. 절대 착한 안내인을 버리지 않는다. 당신은 고결한 인격자이므로 이 안내인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살려줘야 하는거다. 그래가지고  착한 안내인의 미술 안내를 받으며 한시간, 두시간 걍 내리 시간을 보내며 떠듬, 떠듬, 영어 회화 연습을 하는거다. 듣기 연습도 하고. (공짜로.)   이분은 당신이 부탁만 한다면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하루종일 당신을 안내해줄수도 있을것이다. 어차피 이분은 '시간관념'을 초월한 분이므로.

 

 

헤헤헤. 아 사실, 내가 도망을 못 쳐가지고 (의외로 내가 마음이 약하단 말이지...) 꾸역꾸역 견디다가 가까스로 헤어졌는데 (나중에는 나 외에 하나 남은 일행마저 쓱 빠져나간거라...) 아무튼 결국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허둥지둥 내가 정말로 보고 싶었던 작품들을 보러 돌아다니다가, 글쎄, 아이고 또 그 분을 만난거다. 사실 나는 그분이 저만치 보이길래 얼른 싹 지나가고 있었는데, 나를 부르시는거다! 아주 반색을 하면서! (되게 심심하셨군...) (아, 나는 너무 인상이 좋은게 탈이야. 어딜가나 이놈의 인기...)

 

그런데, 사실 미술관을 하도 다니고 안내인들도 하도 많이 겪다보니, 이제는 안내인 얼굴만 딱 봐도, 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 대충 감이 잡힌다. 가끔 '아이고 저 사람 저 세월족이다 (여기서 세월족이란...세월아 네월아 시간관념없이 흐지부지하게 흘러가는 안내인)' 하고 감이 팍 오는데도 내가 도망을 안가고 시간을 죽일때가 있는데, 인정상 그럴때가 있는것이다.

 

관객을 잃는 안내인의 미덕

 

이건 이야기의 흐름에서 조금 벗어나는 것인데, 내가 위에 혼자 킥킥 웃으며 관객을 잃는 안내인 이야기를 하자니, 혼자 킥킥거린게 미안해서 이분들의 미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것으로 어떤 형평성을 유지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저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계획성없이 행동하시는 분들도, 사실은 다 계획대로 행동하시는거다.  이분들은 무계획의 계획을 갖고 있는거다.

 

이분들은 그냥 전체적인 어떤 흐름을 머릿속에 갖고 있되 상세한 계획을 짜지 않는 것이다. 이런분들의 행동의 특징은, 사람들과 미술 이야기를 편안하게 주고 받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어미새가 벌레를 물어다가 새끼새의 주둥이에 넣어주는 '일방적인' 미술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서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자는 것이지.  사실은 이런 분들의 사고방식이 좀더 차원높은 것일수도 있다.  상세하게 계획 세워서 시간 딱딱 맞춰서 동선까지 미리 계획해서 정확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종알종알 떠들어대는 것이 오히려 한차원 낮은 것일지도 모른다. 미술관에서 뭐 그렇게 자로 잰듯이 돌아다니며 일초를 다투며 감상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미술관에 올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대화를 나눌 여유도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일초를 다투며 작품 감상한다는게 그게 어불성설아닌가?  이런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이런 세월아 네월아 안내인들이 훨씬 고차원적인 분들이다.

 

전에 어떤분이 내게 충고를 하신적이 있다.  내가 시간 딱딱 맞추는데 강박증을 보이고, 남들 지각하는것에 대해서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그것도 병'이라고 지적을 하셨다.  남들 지각하고 늦고 그러는거, 시간관념 흐릿한거 그거  사실 '삶의 여유'로 좋게 봐줘도 된다는거다. 늦고 지각하고 그러는 사람은 게을러보이지만 한편으로 너그럽고 후덕한 면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맞는 말씀같은데, 그래도 나는 여전히 시간 약속 안지키고 흐릿한 사람하고는 잘 섞이질 못한다. 

 

 

 

계획: 할것이냐 말것이냐

 

나는 직업상, 교육을 연구하는 사람이라, 어딜가서 누구를 만나건, 어떤 상황에 있건 늘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에 어떤 교사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수업에 들어가면, 그 수업은 어떻게 될까?  하버드대학의 어느 저명한 교수는 (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여성이었는데) 수업계획없이 수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가르치는 사람이 계획을 짜서 들어가면 창의성있는 수업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렇지만 교육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수업계획'없이 수업하는 일을 설계도도 없이 건물을 짓는것과 비슷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수업 계획 없이 교육을 한다는 학자나, 건축설계하듯 수업계획을 짜는 학자나 이들의 공동 목표는 '좋은 교육'이다.  그런데 취하는 노선이 다르다. (표면적으로 달라 보인다). 사실 계획을 짠다는 사람이나, 계획을 안 짠다는 사람이나 계획을 세우는것은 동일하다. 계획이 없다는 사람도 머릿속으로 어떤 일관된 그림을 그린다. 그런 그림도 없이 멀거니 수업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차원이 저급이건 고급이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저들이 내게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저들의 희망사항을 수용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안내인에게는 청중이 필요하고, 청중에게는 안내인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 필요한 존재들이다.  안내인은 효과적으로 안내를 할 책임이 있고, 청중은 예의바르게 안내를 받을 책임도 있지만,  아니다 싶을땐 도망을 가는거다, 남들이 다 빠져나가기 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바람이 새나가듯~~ 

 

 

 

 

 

 

Social Realism (4) : Jacob Lawrence

 

미국의 Social Realism 화가를 이야기 하면서 Jacob Lawrence (http://americanart.textcube.com/search/?search=Jacob+Lawrence) 를 빼놓고 지나갈수는 없지요.  전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정리하고 지나간적이 있지만, Social Realism 얘기를 하자니 역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John Brown Series (1941)

 

http://americanart.textcube.com/176  하퍼스 페리 (Harpers Ferry)는  백인으로서 흑인 노예 해방을 위해 무력 봉기를 했던 존 브라운 (John Brown 1800-1859))이 정부군과 대치하다 잡힌 격전지이기도 하고,  이후의 남북 전쟁에서도 격전지였습니다.  포토맥강과 셰난도어 강이 이곳에서 만나면서 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이지요. http://americanart.textcube.com/176  이 페이지에 하퍼스 페리를 방문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남북전쟁 (Civil War)의 도화선이 될만한 여러가지 정황중에 한가지가 존 브라운 시건이었습니다.  백인이면서 신앙심이 강했던 존 브라운은, 사업에 여러번 실패하면서 우울증을 겪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기독교 신앙심을 바탕으로 흑인 노예 해방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는, 좀 과격했다고 보이는데요,  미국의 고등학교 미국사 과정에서도 존 브라운에 대한 언급을 하는데,  그를 노예 해방의 선구적 영웅으로 스케치하기 보다는 '기인'으로 평가를 하는 편입니다.  정부군과 대치를 했기 때문인지, 정말 기인이었기 때문인지는 알길이 없는데요.

 

존 브라운의 정체성이 어떠하건 흑인들이나 흑인 인권 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서는 그가 흑인 노예 해방에 혁혁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할 만 하지요. (월든, 시민불복종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역시 존 브라운 편에  섰던 지식인이었습니다.)   흑인 미술가 제이콥 로렌스 (1917-2000)에게도 존 브라운은 영웅이었을겁니다.  제이콥 로렌스는 그의 남부 흑인 이민사 (http://americanart.textcube.com/79 ) 시리즈 60편 작업을 하는 것과 병행하여 1941년에 존 브라운의 일대기를 22장의 구아슈화로 담아냅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84 구아슈화에 대한 설명은 링크된 페이지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역시 남부 흑인 이민사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이 스물두장의 그림에도 차례대로 그가 직접 적은 그림 설명 글이 적혀 있습니다. 구아슈화는 그 속성상 장기 보관이 힘든데, 그림 상태가 악화되자 제이콥 로렌스는 이를 판화로 다시 제작해 냅니다. 그래서 그 판화 제작 작업이 1974-1977 년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아래의 몇장의 판화 작품은 그렇게 탄생된 것인데요, 제가  2009년 10월 31일에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본 것 들 입니다.

 

2009년 10월 31일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촬영

 

 

 

John Brown remained a full winter in Canada, drilling Negroes for his coming raid on Harpers Ferry, 1974-77, Screenprint

존 브라운은 겨울 내내 캐나다에 머무르며 하퍼스 페리 습격을 위하여 흑인들을 훈련시켰다.

 

2009년 10월 31일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촬영

 

 

 

 

 

 

 

 

In spite of a price on his head, John Brown in 1859, liberated 12 Negroes from Missiouri plantations, 1974-77, Screenprint

존 브라운의 목에 현상금이 달려 있었지만,

그는 1859년에 미조리주의 농장에 있던 열두명의 흑인들을 해방시켰다.

 

 

 

 

 

 

 

 

July 3, 1859, John Brown stocked an old barn with guns and ammunitions. 

He was ready to strike his first blow at slavery.

1974-77 Screenprint

 

1859년 7월 3일, 존 브라운은 어느 창고를 총과 탄약으로 가득 채웠다.

그는 이제 노예제도에 대하여 첫 일격을 가할 만만의 준비를 갖췄다.

 

위의 작품과 관련,  하퍼스 페리에서 바로 그 총과 탄약을 가득 채웠던 창고를 본 일이 있어서 사진을 찾아봤습니다. 사진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이 존 브라운 기념탑이고요, 사진 왼편 구석, 언덕아래에 서 있는 작은 벽돌 건물, 그곳이 위의 그림에 나오는 무기창고로 쓰인 건물입니다. (당시의 건물은 아니고 당시의 설계대로 다시 지은 것이지요.)

 

 

 

2009년 11월 15일 하퍼스 페리에서 촬영

 

 

 

 

제가 대충 그려본 미국 사실주의 화단에서 Social Realism 화가로 Jacob Lawrence 를 포함시킨 이유를 제글의 독자들은 이해하실수 있을 것입니다.  제이콥 로렌스의 '존 브라운 연작 시리즈 22편'이나 혹은 '남부 흑인 이주사 60편'에서 무엇을 발견 할수 있나요? 한번 생각나는대로 열거해 볼까요?

 1. 사회의 기저를 이루는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관찰하거나 사색했습니다.

 2. 민초들의 삶의 풍경을 화폭에 옮겼습니다.

 3. 노예 해방이나 약자 해방의 주제를 담았습니다.

 4. 사회 정의에 대한 주제가 너무나 분명히 드러나지요.

 5. 메시지나 이슈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대략 이러하지요?  이러한 성향들을 미국의 Social Realism 의 면면으로 이해하면 될듯 합니다. 미국의 Social Realist 라고 해도 화가마다 개성이 다르므로 그림에서 전하는 메시지나 분위기는 제각각일수 있으므로 위에 열거된 것이 '바로 미국의 사회주의 사실주의이다'라고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고요, 이러한 성격들이 Social Realism 의 무수한 단면들에 포함이 된다는 것이지요.

 

참고로, Horace Pippin 역시 흑인 노예해방 전쟁을 하다가 생포되어 재판을 받고 사형당한 존 브라운에 대한 작품을 여러편 그린바 있습니다. 존 브라운의 일대기 혹은 그가 사형장으로 향하던 장면은 꽤나 드라마틱했으므로 여러 화가들이 걸작들을 남겼습니다.  (존 브라운 관련 그림들이나 작품들은, 별도의 페이지를 만드는 것이 나을것 같아서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Chess Players (1954)

 

 

Chess Players  (체스 두는 사람들) 1954

Tempera on Masonite

2010년 1월 23일 볼티모어 미술관에서 촬영

 

 

 

이 작품을 발견했을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Horace Pippin (1888-1946)( http://americanart.textcube.com/314) 의 Domino Players 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제이콥 로렌스 (1917-2000)는 호레이스 피핀과는 20년쯤 나이 차이가 나지만, 이들은 둘 다 흑인이었고, 이들이 미국 화단에 등장한 것은 거의 비슷한 시기였습니다.  피핀은 정규 교육도 못받고 혼자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서 나이를 먹었던 사람이고, 로렌스는 가난했지만 정규 미술 교육을 받았고, 일찌감치 미술계의 총아로 떠올랐지요. 피핀과 로렌스가 직접 교류를 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훗날 제이콥 로렌스가 '나 역시 피핀의 영향을 받았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서로 직접 만나거나 교감을 나눈적은 없다해도, 비슷한시기에 화단에 이름이 알려진 흑인 화가들이므로 그 자체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제가 어디 큰 국제 행사에 갔을때, 그 행사장에서 나와 비슷한 한국인 학자를 보게되면 설령 서로 말 한마디 안나눈다해도 관심을 갖고 보게 되거든요.)

 

로렌스의 체스 두는 사람들 그림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피핀의 도미노 게임하는 사람들 그림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이들이 모두 흑인이다'라는 것에 촛점을 맞춘 나 자신이 사물을 그런 식으로 분류를 했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왜 꼭 흑인들이라는 이유로 관계를 형성시키는거냐구?  (누가 이렇게 물으면 할 말 없어지는거죠....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연결을 지어버리므로.)

 

그런데요, 아무튼, 로렌스가 이 피핀의 작품을 알았건 몰랐건, 로렌스가 피핀한테 관심이 있었건 없었건, 제 눈에 이 두작품은 화풍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것 처럼 보인다는 것이지요. 체스그린 속의 알록달록한 과일같은것, 그것이 도미노 그림속에 무엇과 연결되나요?  (한번 찾아 보세요).  심심할때 그림 이리저리 보면 -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내게 된다니까요... ㅎㅎㅎ.

 

 

 

Domino Player (도미노 게임하는 사람들) 1943

Oil on Composition Board

2009년 9월 워싱턴 필립스 콜렉션에서 촬영

 

 

 

 

 

 

도서관 (1960)

 

 

 

 

Library (도서관) 1960

Tempera on Fiberboard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이 도서관 그림. 정말, 딱, 도서관 풍경이죠?  제가 이 그림을 어디서 본 것 같아요.  기억해낼수 없지만,  어릴때 초등학교나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 어디선가에서 이 그림을 한번 본것 같아요.  (혹시 다른 비슷한 그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로서는 이 그림을 '미술교과서'에서 봤다는 기분이 자꾸만 드는겁니다.  따뜻하고, 그리고 행복한 풍경입니다.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수십년간 어린이들에게 그림 안내를 해 온 Judith 라는 도슨트 할머니가 있는데 그 할머니의 설명으로는 흑인 어린이들이 이 그림을 보고 참 좋아한대요.  아, 그 쥬디스 할머니는 제이콥 로렌스와 그 부인을 (부인도 화가였죠)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본 적도 있다고 자랑을 하시더라구요.  제이콥 로렌스라는 사람이 신사이고 부드럽고 참 좋았대요.

 

 

 

제가 미국의 Social Realism  화가로 벤 샨 (Ben Shahn)을 소개하는 페이지 (http://americanart.textcube.com/300)에서 제일 먼저 소개한 그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Book Shop: Hebrew Books, Holy Day Books (책방) 1953

Tempera on Panel

2009년 10월 31일 디트로이트 미술관 (Ditroit Institute of Art Museum)에서 촬영

 

바로 이 작품이었지요. 책방에서 애를 안고 나오는 유태인 여인. 벤샨 자신이 유태인이었고 유태인 이민자로서 빈민의 세월을 거쳤고요,  제이콥 로렌스 역시 흑인, 싱글 맘의 아이, 도시 극빈층의 아이로 성장을 했는데요. 벤 샨이나 제이콥 로렌스를 별처럼 당당하게 빛나게 해 준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이들은 가난한 가운데서도 '공부'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가난한 사람이 그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뭘까요?  공부하는거죠. 책을 읽고, 글을 읽고, 사리 분별을 할 줄 알고, 사회가 나에게 부당하게 대할때 이에 항거할줄 알아야 하는거죠.  문맹에서 벗어나서 글을 읽을수 있을때, 이런 일들이 좀더 쉬워지지요 (물론 글 많이 읽는다고 모두 행동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옛날에 가진자들이 못가진자를 압제하는 수단으로 '그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말라'고 했었쟎아요.  미국 백인들은 흑인 노예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으며, 마음 착한, 선량한 백인이 흑인노예에게 글을 가르치면 그 백인조차 탄압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식이 무기죠... 지식이 무기죠... 한국인들은 그걸 너무나 잘 알기에, 오늘날과 같은 무서운 대학입시 경쟁이 일어나는건데, 그 과열된 경쟁 체제 속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처지가 매우 딱하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러나 아무튼 우리는 교육의 수레바퀴를 굴려 나가야 하는거죠. 결국 교육이 무기이니까... (그 교육을 어떻게 이상적으로 잘 굴러가게 할것인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하겠지만, 교육에 대한 열의는 참...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진 것인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거죠).

 

제이콥 로렌스의 도서관 그림 속에는,  흑인들도 좀더 '공부'하고 문맹을 벗어나고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제이콥 로렌스의 '도서관' 그림을 본 흑인 어린이들은 기분이 좋아져서, 유명한 흑인 미술가가 그린 그림을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도서관으로 향하게 될 지도 모르지요.

 

대충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미국의 Social Realism 이란 무엇인지, 어떤 그림들이 있는지, 어떤 화가들이 있는지 대략 가닥이 잡히는것 같습니다.  다음 페이지에서 Social Realism 에 대한 간단한 정리를 하기로 하고, 제이콥 로렌스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2010년 2월 3일 RedFox.

 

 

 

 

 

Snow Dance

 

 

 

 

 

 

너는 눈 나무 같아. 네 머리위로 눈쌓인 나뭇가지가 뻗어나온것 같아

 

 

 

 

 

 

눈쌓인 새벽

 

 

 

 

 

 

 

 

 

내가 훗날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를, 내 방. 창문

 

 

 

 

 

 

 

 

미국 백달러 지폐속의 주인공

스미소니안 국립 초상화 박물관 1층에 걸려있는 벤자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 1706-1790) 의 초상화입니다.

 

 

Benjamin Franklin (1706-1790)

화가: Joseph Siffred Duplessis (1725-1802)

Oil on Canvas c. 1785

2010년 1월 31일 스미소니안 초상화 박물관에서 촬영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의 삶 자체가 르네상스맨으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비견될만한, 다채로운 면모를 갖춘 인물이었지요.  제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들어가기 전, 그러니까 일년중 바로 지금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입학할 대학을 확정짓고, 입학을 기다리는 시기.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애매한 시기. 그 해 겨울에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 영문 축약본을 읽었습니다. (아마 시사영어사 판이었겠지요).  그 자서전에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아마도 읽어본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가 정한 덕성의 카테고리들을 하나 하나 구체화하기 위해서, 그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체크 리스트까지 만들어서 하루 하루 점검해가면서 지냈다는 내용이지요.   그때 어린 마음에, 인생 이렇게 살면 정말 성공하겠다 싶어서 나도 본따서 내가 덕성을 키우기 위해서 어떻게 실천할것인가 표를 만들어서 실천도 해보고 그랬었는데요.  아, 그때, 고등학생과 대학생 사이의 애매한 겨울에 그런 시간을 보냈었군요.

 

 

 

돌아보면, 무엇하나 근사하게 해 낸것도 없었고,  특출나게 영특한 학생도 아니었고,  지리지리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그래도 혼자서는 나름대로 인생을 좀 잘 살아보려고 고민을 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천 안하고, 물론) 그랬었던것도 같아요. 

 

 

 

이 벤자민 프랭클린의 초상화는 사실, 그가 외교사절로 프랑스에서 몇년간 지낼때, 프랭클린이 귀부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해요.  뭐 박식하고 유머 넘치고 그리고 아주 이지적인 사람이니까요.  프랭클린이 피뢰침도 개뱔해내고,  프랭클린 난로도 만들어내고 그랬쟎아요. 지금 생각하면 프랭클린 난로가 뭐가 대단할까마는,  벽난로만 있던 시절에,  방 중앙에 혹은 필요한 곳에 난로를 설치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벼락같은 사건이었다고 할 만 하지요.   아무튼, 프랑스 사교계에서 인기가 많던 벤자민 프랭클린이 미국으로 돌아갈 때 쯤 되자, 그를 연모하던 한 귀부인이 그가 떠난후에도 그를 보고 싶다고 이 초상화를 주문했대요.   그러니까 이 초상화는 프랑스에서 그려진 것이지요.

 

 

 

이 초상화의 특징은,  벤자민 프랭클린이 당시 사교계의 복장인 '가발'을 착용하지도 않았고, 의상도 귀족 의상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편안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프랭클린의 매우 실용주의 적인, 그의 진면모에 가까운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고 할 만 하지요.

 

 

 

이 초상화가 1995년부터 미국의 백달러짜리 지폐에 들어가기도 했고요.

 

 

2009년에 개봉했던 영화 Slum Dog Millionaire 에서 '미화 백달러짜리 지폐에 들어있는 인물이 누군가?' 하는 문제가 나올때, 주인공 청년이 떠올리는 친구 - 시력을 빼앗긴 친구가 나오지요.  시력을 빼앗기고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걸인이 된 친구가 백달러짜리 지폐를 손으로만 만지며 벤자민 프랭클린 이라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문득 그 영화가 생각이 나요.  (상관없는 얘기지만.)

 

아,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이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프랑스 사람이쟎아요. 초상화도 프랑스에서 그려진 것이고. 그러니까, 프랑스 사람이 프랑스에서 그린 미국 위인의 초상화가 미국 백달러짜리 지폐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거죠.  이것을 우리나라 상황에서 상상해보면, 우리나라 십만원짜리 지폐에 한국의 어떤 인물 초상화가 들어간다고 치고 (정해졌나요?)  그 초상화의 원화를 그린 사람이 150년전의 중국화가였고, 그 초상화는 중국에서 그려진 것이라고 칩시다.  이거, 한국에서 가능한 일일지요?  그냥 조금 상상을 해보면 - 행정관료들이나 관련 전문가 혹은 학자들이 두루두루 모여서 '아무개'를 선정하고 중국화가가 150년전에 중국에서 그린 아무개의 초상화를 십만원권의 원화로 사용하기로 했다는 설이 나오기가 무섭게(!!) - 여기저기서, 그거 말 되는 소리냐.  한국에 인물이 그렇게도 없냐. 왜 하고 많은 원화중에 뙤놈이 그린걸 쓰는거냐?  선정위원회 놈들이 중국정부로부터 뇌물 받은거 아니냐....당장 자리에서 물러나라, 그래서 관련 웹사이트가 한동안 접속 폭주로 다운이 되고, 몇명 자리에서 물러나고, 중국화가가 그린 원화를 사용하는 문제는 흐지부지 되고...

 

그, 그럴가능성도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뭐, 미국과 프랑스와의 관계와,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가 차이가 있으므로 반응의 차이가 있음도 인정을 해야 할 것이지만,  한국이 미국에 비해서 '동질성'의 사회(homogeneous society) 라서 민족감정이 강하고, 민족 자존심도 강하지요.  그래서 한국의 십만원권에 외국인이 외국에서 그린 그림이 삽입되기는 힘들어보입니다. 

 

 

 

 

 

2010년 2월 1일 월요일

클린턴 대통령의 초상: Chuck Close (2006)

스미소니안 국립초상화 박물관 (Smithsonian National Portrait Gallery) 은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미술관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 SAAM)과 건물을 함께 사용하고 있어서 통로를 따라 이동하면 미국미술관과 초상화박물관의 경계를 알아볼수도 없게 됩니다. 미음자 구조의 통로라서 다니다보면 두군데를 뱅뱅 돌게 되는 식입니다.

 

초상화박물관에 최근에 클린턴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새로 와서 걸렸군요.  아직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Chuck Close 의 2006년 작품입니다.  척 클로스는 모자이크식 인물화로 유명한 미국 현대화가입니다.  (척 클로스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그의 페이지에서 따로 하기로 하고요) 오늘은 그가 만들어낸 미국 42대 대통령 클린턴(1993-2001 재임)의 초상화를 보여드리겠습니다.

 

 

Oil on Canvas, 2006

 

 

 

 

새로운 작품이 들어오면서 위치가 좀 바뀌었군요.  2년전에는 이 자리에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걸려있었는데요. 지금은 이 대형 그림에 밀려서 아버지 부시가 왼편으로 옮겨져서 아들 부시 대통령과 나란히 걸려있군요.  그러니까 위의 사진에서 클린턴 대통령 왼편에 아버지 부시가 있고, 그 왼편에 아들 부시가 있습니다.  사진 오를쪽의 작은 조각은 아버지 부시 조각입니다.  (전에 걸려있던 클린턴 대통령의 초상화가 맘에 안들었었는데 - 전혀, 그 사람 같지가 않았거든요....

 

위사진은 2008년 5월 10일, 같은 장소에서 찍은 것입니다. 현재 클린턴의 자리에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그 왼편에 클린턴이 있지요.  최근까지도 이런 위치였습니다. 클린턴의 왼편에 아들 부시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서  역대 대통령 순서대로 있었는데요.  2008년 5월 당시에는 아들 부시가 재임중이라서 이곳에 초상화가 없었습니다.  아들 부시의 자리에는 '거울'이 하나 걸려있었지요. '미래의 대통령'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서, 그 거울앞에 서면 '나도 미래의 미국 대통령일지 모른다'는 상념이 들기도 했는데요. 부시가 퇴임하면서 그 거울이 사라지고 부시의 초상화가 걸렸지요.  그래서 중앙에 있는 아버지 부시가 비스듬하게 측면의 아들 부시를 쳐다보는듯한 상황이었는데.  이제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중앙에 클린턴이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요.

 

이것도...정치권의 어떤 기류를 보여주는걸까요. (현재 민주당이 집권당이니까,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의 초상화를 부각시키는것은 아닌지...  아, 그냥 추측입니다.  요즘은 결국 모든것이 '힘의 논리'같다는 생각을 하는터라...)

 

 

 

 

 

 

 

 

 

 

 

 

 

척 클로스는 2005년에 New York Magazine 이라는 잡지의 표지로 사용되었던 클린턴의 사진에 줄을 쳐서 눈금을 만든후,  실제 그림을 그릴 캔바스에도 역시 줄을 쳐서 동일한 눈금을 만들어 눈금마다 알록달록한 모듈을 그리는 식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얼핏 보기에 알록달록한 유리 너머로 보이는 사람 같아요, 캔바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렸다는 느낌이 들지 않지요.

 

 

이 작품은, 클린턴이라는 한 인물을 잘 표현해 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클린턴은 외교에도 뛰어났고, 국내 문제에서도 사회복지 정책을 확대하는등 유능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지요.  그런데 정작 이런 '치적'을 능가하는 또다른 그의 '개성'은 그가 일으킨 스캔들에도 있지요.  '부적절한 관계 inappropriate relationship' 이라는 매우 부적절한 표현으로 그의 스캔들을 정리하기도 했던 클린턴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했습니다.  사생활에 문제가 노출되었으면서도 여전히 국민의 신망을 잃지 않았던,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에도, 아직도 여전히 클린턴의 여성편력은 편의점 타블로이드 잡지의 표지를 장식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근거도 없는 소문임을 알면서도 - 이번에는 또 무슨 사고를 쳤나, 호기심에 잡지 표지를 잠시 들여다봅니다.  식품점 계산대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아주 짧고도 지루한 시간에.

 

클린턴은,  한마디로

'알수 없는 인물' 입니다.

 

그는 여전히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애물단지 일 것이고, 그는 여전히 우리들의 미워할수 없는, 어딘가 매력적인 존재이지요. (하하하) 그렇게 알수없는, 다면적인 인물을 표현하는데 있어 척 클로스의 기법보다 더 마땅한 것이 있을까요?

 

척 클로스의 화법과, 빌 클린턴이라는 인물은 하늘이 낸 '완벽한 조화'처럼 보입니다.  이보다 한 사람의 이미지를 더 잘 표현한 초상화를 또 만나기 어려울거라는 생각을 잠시 해 봤습니다.

 

2010년 1월 31일 RedF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