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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3일 수요일

Social Realism (4) : Jacob Lawrence

 

미국의 Social Realism 화가를 이야기 하면서 Jacob Lawrence (http://americanart.textcube.com/search/?search=Jacob+Lawrence) 를 빼놓고 지나갈수는 없지요.  전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정리하고 지나간적이 있지만, Social Realism 얘기를 하자니 역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John Brown Series (1941)

 

http://americanart.textcube.com/176  하퍼스 페리 (Harpers Ferry)는  백인으로서 흑인 노예 해방을 위해 무력 봉기를 했던 존 브라운 (John Brown 1800-1859))이 정부군과 대치하다 잡힌 격전지이기도 하고,  이후의 남북 전쟁에서도 격전지였습니다.  포토맥강과 셰난도어 강이 이곳에서 만나면서 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이지요. http://americanart.textcube.com/176  이 페이지에 하퍼스 페리를 방문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남북전쟁 (Civil War)의 도화선이 될만한 여러가지 정황중에 한가지가 존 브라운 시건이었습니다.  백인이면서 신앙심이 강했던 존 브라운은, 사업에 여러번 실패하면서 우울증을 겪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기독교 신앙심을 바탕으로 흑인 노예 해방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는, 좀 과격했다고 보이는데요,  미국의 고등학교 미국사 과정에서도 존 브라운에 대한 언급을 하는데,  그를 노예 해방의 선구적 영웅으로 스케치하기 보다는 '기인'으로 평가를 하는 편입니다.  정부군과 대치를 했기 때문인지, 정말 기인이었기 때문인지는 알길이 없는데요.

 

존 브라운의 정체성이 어떠하건 흑인들이나 흑인 인권 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서는 그가 흑인 노예 해방에 혁혁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할 만 하지요. (월든, 시민불복종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역시 존 브라운 편에  섰던 지식인이었습니다.)   흑인 미술가 제이콥 로렌스 (1917-2000)에게도 존 브라운은 영웅이었을겁니다.  제이콥 로렌스는 그의 남부 흑인 이민사 (http://americanart.textcube.com/79 ) 시리즈 60편 작업을 하는 것과 병행하여 1941년에 존 브라운의 일대기를 22장의 구아슈화로 담아냅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84 구아슈화에 대한 설명은 링크된 페이지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역시 남부 흑인 이민사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이 스물두장의 그림에도 차례대로 그가 직접 적은 그림 설명 글이 적혀 있습니다. 구아슈화는 그 속성상 장기 보관이 힘든데, 그림 상태가 악화되자 제이콥 로렌스는 이를 판화로 다시 제작해 냅니다. 그래서 그 판화 제작 작업이 1974-1977 년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아래의 몇장의 판화 작품은 그렇게 탄생된 것인데요, 제가  2009년 10월 31일에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본 것 들 입니다.

 

2009년 10월 31일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촬영

 

 

 

John Brown remained a full winter in Canada, drilling Negroes for his coming raid on Harpers Ferry, 1974-77, Screenprint

존 브라운은 겨울 내내 캐나다에 머무르며 하퍼스 페리 습격을 위하여 흑인들을 훈련시켰다.

 

2009년 10월 31일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촬영

 

 

 

 

 

 

 

 

In spite of a price on his head, John Brown in 1859, liberated 12 Negroes from Missiouri plantations, 1974-77, Screenprint

존 브라운의 목에 현상금이 달려 있었지만,

그는 1859년에 미조리주의 농장에 있던 열두명의 흑인들을 해방시켰다.

 

 

 

 

 

 

 

 

July 3, 1859, John Brown stocked an old barn with guns and ammunitions. 

He was ready to strike his first blow at slavery.

1974-77 Screenprint

 

1859년 7월 3일, 존 브라운은 어느 창고를 총과 탄약으로 가득 채웠다.

그는 이제 노예제도에 대하여 첫 일격을 가할 만만의 준비를 갖췄다.

 

위의 작품과 관련,  하퍼스 페리에서 바로 그 총과 탄약을 가득 채웠던 창고를 본 일이 있어서 사진을 찾아봤습니다. 사진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이 존 브라운 기념탑이고요, 사진 왼편 구석, 언덕아래에 서 있는 작은 벽돌 건물, 그곳이 위의 그림에 나오는 무기창고로 쓰인 건물입니다. (당시의 건물은 아니고 당시의 설계대로 다시 지은 것이지요.)

 

 

 

2009년 11월 15일 하퍼스 페리에서 촬영

 

 

 

 

제가 대충 그려본 미국 사실주의 화단에서 Social Realism 화가로 Jacob Lawrence 를 포함시킨 이유를 제글의 독자들은 이해하실수 있을 것입니다.  제이콥 로렌스의 '존 브라운 연작 시리즈 22편'이나 혹은 '남부 흑인 이주사 60편'에서 무엇을 발견 할수 있나요? 한번 생각나는대로 열거해 볼까요?

 1. 사회의 기저를 이루는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관찰하거나 사색했습니다.

 2. 민초들의 삶의 풍경을 화폭에 옮겼습니다.

 3. 노예 해방이나 약자 해방의 주제를 담았습니다.

 4. 사회 정의에 대한 주제가 너무나 분명히 드러나지요.

 5. 메시지나 이슈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대략 이러하지요?  이러한 성향들을 미국의 Social Realism 의 면면으로 이해하면 될듯 합니다. 미국의 Social Realist 라고 해도 화가마다 개성이 다르므로 그림에서 전하는 메시지나 분위기는 제각각일수 있으므로 위에 열거된 것이 '바로 미국의 사회주의 사실주의이다'라고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고요, 이러한 성격들이 Social Realism 의 무수한 단면들에 포함이 된다는 것이지요.

 

참고로, Horace Pippin 역시 흑인 노예해방 전쟁을 하다가 생포되어 재판을 받고 사형당한 존 브라운에 대한 작품을 여러편 그린바 있습니다. 존 브라운의 일대기 혹은 그가 사형장으로 향하던 장면은 꽤나 드라마틱했으므로 여러 화가들이 걸작들을 남겼습니다.  (존 브라운 관련 그림들이나 작품들은, 별도의 페이지를 만드는 것이 나을것 같아서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Chess Players (1954)

 

 

Chess Players  (체스 두는 사람들) 1954

Tempera on Masonite

2010년 1월 23일 볼티모어 미술관에서 촬영

 

 

 

이 작품을 발견했을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Horace Pippin (1888-1946)( http://americanart.textcube.com/314) 의 Domino Players 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제이콥 로렌스 (1917-2000)는 호레이스 피핀과는 20년쯤 나이 차이가 나지만, 이들은 둘 다 흑인이었고, 이들이 미국 화단에 등장한 것은 거의 비슷한 시기였습니다.  피핀은 정규 교육도 못받고 혼자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서 나이를 먹었던 사람이고, 로렌스는 가난했지만 정규 미술 교육을 받았고, 일찌감치 미술계의 총아로 떠올랐지요. 피핀과 로렌스가 직접 교류를 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훗날 제이콥 로렌스가 '나 역시 피핀의 영향을 받았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서로 직접 만나거나 교감을 나눈적은 없다해도, 비슷한시기에 화단에 이름이 알려진 흑인 화가들이므로 그 자체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제가 어디 큰 국제 행사에 갔을때, 그 행사장에서 나와 비슷한 한국인 학자를 보게되면 설령 서로 말 한마디 안나눈다해도 관심을 갖고 보게 되거든요.)

 

로렌스의 체스 두는 사람들 그림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피핀의 도미노 게임하는 사람들 그림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이들이 모두 흑인이다'라는 것에 촛점을 맞춘 나 자신이 사물을 그런 식으로 분류를 했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왜 꼭 흑인들이라는 이유로 관계를 형성시키는거냐구?  (누가 이렇게 물으면 할 말 없어지는거죠....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연결을 지어버리므로.)

 

그런데요, 아무튼, 로렌스가 이 피핀의 작품을 알았건 몰랐건, 로렌스가 피핀한테 관심이 있었건 없었건, 제 눈에 이 두작품은 화풍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것 처럼 보인다는 것이지요. 체스그린 속의 알록달록한 과일같은것, 그것이 도미노 그림속에 무엇과 연결되나요?  (한번 찾아 보세요).  심심할때 그림 이리저리 보면 -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내게 된다니까요... ㅎㅎㅎ.

 

 

 

Domino Player (도미노 게임하는 사람들) 1943

Oil on Composition Board

2009년 9월 워싱턴 필립스 콜렉션에서 촬영

 

 

 

 

 

 

도서관 (1960)

 

 

 

 

Library (도서관) 1960

Tempera on Fiberboard

2009년 12월 29일 스미소니안 국립 미국미술관에서 촬영

 

 

 

 

 

이 도서관 그림. 정말, 딱, 도서관 풍경이죠?  제가 이 그림을 어디서 본 것 같아요.  기억해낼수 없지만,  어릴때 초등학교나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 어디선가에서 이 그림을 한번 본것 같아요.  (혹시 다른 비슷한 그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로서는 이 그림을 '미술교과서'에서 봤다는 기분이 자꾸만 드는겁니다.  따뜻하고, 그리고 행복한 풍경입니다.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서 수십년간 어린이들에게 그림 안내를 해 온 Judith 라는 도슨트 할머니가 있는데 그 할머니의 설명으로는 흑인 어린이들이 이 그림을 보고 참 좋아한대요.  아, 그 쥬디스 할머니는 제이콥 로렌스와 그 부인을 (부인도 화가였죠)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본 적도 있다고 자랑을 하시더라구요.  제이콥 로렌스라는 사람이 신사이고 부드럽고 참 좋았대요.

 

 

 

제가 미국의 Social Realism  화가로 벤 샨 (Ben Shahn)을 소개하는 페이지 (http://americanart.textcube.com/300)에서 제일 먼저 소개한 그림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Book Shop: Hebrew Books, Holy Day Books (책방) 1953

Tempera on Panel

2009년 10월 31일 디트로이트 미술관 (Ditroit Institute of Art Museum)에서 촬영

 

바로 이 작품이었지요. 책방에서 애를 안고 나오는 유태인 여인. 벤샨 자신이 유태인이었고 유태인 이민자로서 빈민의 세월을 거쳤고요,  제이콥 로렌스 역시 흑인, 싱글 맘의 아이, 도시 극빈층의 아이로 성장을 했는데요. 벤 샨이나 제이콥 로렌스를 별처럼 당당하게 빛나게 해 준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이들은 가난한 가운데서도 '공부'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가난한 사람이 그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뭘까요?  공부하는거죠. 책을 읽고, 글을 읽고, 사리 분별을 할 줄 알고, 사회가 나에게 부당하게 대할때 이에 항거할줄 알아야 하는거죠.  문맹에서 벗어나서 글을 읽을수 있을때, 이런 일들이 좀더 쉬워지지요 (물론 글 많이 읽는다고 모두 행동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옛날에 가진자들이 못가진자를 압제하는 수단으로 '그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말라'고 했었쟎아요.  미국 백인들은 흑인 노예들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으며, 마음 착한, 선량한 백인이 흑인노예에게 글을 가르치면 그 백인조차 탄압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식이 무기죠... 지식이 무기죠... 한국인들은 그걸 너무나 잘 알기에, 오늘날과 같은 무서운 대학입시 경쟁이 일어나는건데, 그 과열된 경쟁 체제 속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처지가 매우 딱하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러나 아무튼 우리는 교육의 수레바퀴를 굴려 나가야 하는거죠. 결국 교육이 무기이니까... (그 교육을 어떻게 이상적으로 잘 굴러가게 할것인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하겠지만, 교육에 대한 열의는 참...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진 것인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라는거죠).

 

제이콥 로렌스의 도서관 그림 속에는,  흑인들도 좀더 '공부'하고 문맹을 벗어나고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제이콥 로렌스의 '도서관' 그림을 본 흑인 어린이들은 기분이 좋아져서, 유명한 흑인 미술가가 그린 그림을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도서관으로 향하게 될 지도 모르지요.

 

대충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미국의 Social Realism 이란 무엇인지, 어떤 그림들이 있는지, 어떤 화가들이 있는지 대략 가닥이 잡히는것 같습니다.  다음 페이지에서 Social Realism 에 대한 간단한 정리를 하기로 하고, 제이콥 로렌스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2010년 2월 3일 RedFox.

 

 

 

 

 

2009년 10월 23일 금요일

미국사실주의화가들: The Eight, Corcoran 전시 (2009)

http://americanart.textcube.com/133  이전페이지,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에 대한 글에 이어, 해당 페이지에서 잠깐 소개한 The Eight (8인회)의 작품 성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페이지를 하나 만들어봅니다. 2009년 10월 4일 (한국, 추석날)에 워싱턴 Corcoran Gallery of Art http://americanart.textcube.com/97  에 갔을때 마침 The Eight 화가들 작품이 한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어서 작품 사진들을 카메라에 담아 올수 있었지요.  분명 The Eight 을 타이틀로 한 전시이긴 했으나 8인회 멤버중에서 여섯명의 작품이 있었고, 그리고 역시 이들의 후배격인 다른 두명의 화가가 추가 되었습니다. 모두 8인의 그림이 소개가 되긴 했으나 그 중 두명은 8인회 소속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들이 20세기 초반에 Social Realist 사회 사실주의로서 활동할 당시의 그림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추가된 두명의 그림이 오히려 더욱 효과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코코란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나열하면서 간단히 스케치 하겠습니다.

 

일단, 기획전 안내판입니다. The Eight (8인회)와 The 14th Street School (14번가파)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8인회 회원중 코코란이 소장하여 전시한 작품은 Luks 와 Shinn 을 제외한 여섯명의 그림들입니다.

 

 1. William Glackens (1870-1938)  윌리암 글래큰스

 2. Robert Henri (1865-1929) 로버트 헨라이 http://americanart.textcube.com/197

 3. Goerge Luks (1867-1933) 조지 럭스 (x) http://americanart.textcube.com/278

 4. Everett Shinn (1876-1953) 이브릿 쉰 (x) http://americanart.textcube.com/272

 5. John French Sloan (1871-1951) 존 프렌치 슬로언 http://americanart.textcube.com/201

 6. Arthur B. Davies (1862-1928) 아서 데이비스 http://americanart.textcube.com/279

 7. Ernest Lawson (1873-1939) 어니스트 로슨 http://americanart.textcube.com/281

 8. Maurice Prendergast (1859-1924) 모리스 프렌더개스트  http://americanart.textcube.com/205

 

14번가파의 작가들중

 1. Reginald Marsh (1898-1954)  레기날드 마시

 2. Raphael Soyer (1899-1987) 라파엘 소여

의 작품이 전시가 되었습니다.

 

(사진은 클릭하시면 커집니다)

 

전시장 풍경입니다.

 

 

 

안내판입니다.

 

 

 

위에 명시된 순서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1. William Glackens (1870-1938)  윌리암 글래큰스

 

 

 

 

2. Robert Henri (1865-1929) 로버트 헨라이  http://americanart.textcube.com/197

 

 

3. Goerge Luks (1867-1933) 조지 럭스  (x)  http://americanart.textcube.com/278

4. Everett Shinn (1876-1953) 이브릿 쉰  (x) http://americanart.textcube.com/272

 

 

5. John French Sloan (1871-1951) 존 프렌치 슬로언 http://americanart.textcube.com/201

 

 

6. Arthur B. Davies (1862-1928) 아서 데이비스 http://americanart.textcube.com/279

 

 

 

7. Ernest Lawson (1873-1939) 어니스트 로슨

 

 

 

 

8. Maurice Prendergast (1859-1924) 모리스 프렌더개스트 http://americanart.textcube.com/205

 

 

 

14번가화파

 

1. Reginald Marsh (1898-1954)  레기날드 마시

 

 

 

 

2. Raphael Soyer (1899-1987) 라파엘 소여

 

 

 

 

제가 일찌감치 퇴근을 해야 하는 이유로 '제목'과 같은 세부 사항은 추후에 추가하여 페이지를 완성시키겠습니다만,  얼핏 보기에 '무엇이 사회적 사실주의'라는거냐?  이 그림에서 도시, 빈민, 혹은 사회주의적 비판적 시선을 가진 그림이 몇점이나 되느냐?  이런것을 소위 사회적 사실주의 그림이라고 하는거냐?  이런 의문이 들수도 있을겁니다.  보따리 싸가지고 오피스를 나가기 전에,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기획전 자체가 '사회적 사실주의'에 촛점을 맞춘것이기보다는 코코란이 소장하고 있는 The Eight 의 화가들, 14번가화가들의 '작품'을 내 건 것입니다. 그 작가들이 그린 그림중에 코코란은 이런 그림들을 갖고 있다는 뜻이지요.   레기날드 마시가 특히 뉴욕 뒷골목 빈민가 풍경을 암울한 색조로 잘 표현해 냈지요.  헨라이가 그린 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의 초상도 '초상화'로서 크게 주목할 것은 없지만, 그가 '사라져가는 힘없는 사람'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도 들여다 볼 만한 대목입니다.  소여가 그린 터미널의 모습은, 지구 어디에서도 발견될 만한 대중들의 삶의 모습이지요.  이 그림 앞에 서면, "왜 터미널은 어딜가나 다 비슷한 풍경일까?"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딱딱한 의자, 어딘가 불편하고 낯선 대합실...외딴 시외버스 터미널이건, 기차역이건, 유명한 국제선 공항이건...

 

앞 페이지에서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사회 사실주의 작가군에 이름이 올랐다고 해도, 그 작가들의 그림이 모두 사회 사실주의적 그림은 아닙니다. 그들의 삶의 일정시간에 사회성 강한 그림을 그린 시절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사회사실주의 화가군에 포함되는 '화가들'의 실제 그림을 잠깐 소개한 것으로 정리하고,  다음 페이지부터 주요 작가별로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페이지의 세부 정보도 나중에 채우기로 하겠습니다...즐거운 주말....)

 

 

 

 

 

 

 

2009년 9월 27일 일요일

Ben Shahn, Liberation (1945) 벤 샨의 '해방'

(그림 클릭하면 커집니다)

 

이 작품은, 미국의 사회적 사실주의 화가 (Social Realist) 로 알려진 벤 샨 (Ben Shahn)의 '해방 (Liberation)' 이라는 구아시 화 이다.  뉴욕 맨하탄의 '현대 미술과 (Museum of Modern Art)' 소장품으로 마침 운좋게 관람이 가능했다.  미술관에 제공한, 작품 옆의 작은 '이름표'에 나온 정보에 의하면, 이 '해방'이라는 작품은 1945년에 그려진 것이다. 그러면, 이 작품을 읽는/보는 우리는 1945년이라는 해와, '해방'이라는 제목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된다.  1945년은 어떤 해인가?  한국인들에게는 그야말로 '광복의 해'가 된다. 1945년이 단지 한국인들에게만 광복의 해는 아니었다. 2차 대전이 1945년에 끝났을때, 지구상의 여기저기에서 식민지로 신음하던 약소국가들이 '조선'처럼 광복을 맞이하기도 했고, 그리고 전쟁이 끝났다는 상황 자체가 전쟁의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세계는 '전쟁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일단 해방을 맞이 한 것이다.

 

그림을 살펴보자. 전쟁의 폐허를 여실히 드러내는 폭격당한 건물이 있고, 그리고 광장에 '뺑뺑이' 기둥이 하나 서있다. 그 뺑뺑이에 아이들 셋이 매달려 있다. 아이들이 뺑뺑이를 타고 있는 배경은 황량하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쌓여있고, 바람이 쌩쌩 불고 있는 듯한 붓의 터치가 느껴진다. 아이들은 창백해 보인다. 명랑하게 웃고 있는 표정도 아니다.

 

이 그림은 우울한가?

절망적인가?

희망적인가?

어떠한가?

 

작가가 어떤 의도로 그림을 그렸건, 해석은 보는 사람의 자유이다.  우리도 작가의 의도로부터 '해방'될 권리는 있으니까.

 

요즘도 뺑뺑이가 있을까?  내가 어릴때, 당시에는 동네에 놀이터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 그네나 미끄럼과 같은 '놀이시설'은 오직 학교 운동장에나 가야 구경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파트마다, 골목마다 놀이터 시설이 설치되어 있지만, 내가 어릴때는 시골에서는 아무데서나 놀면 되었고, 도시에서는 골목에서 놀았다. 학교에 가면 알량하게 서 있는 미끄럼, 그네에는 늘 아이들이 매달려 있어서 그네를 한번 타보기도 쉽지 않았다. 때로, 그네는 수리를 구실로 그냥 묶어 놓기도 했었다. 그리고 뺑뺑이가 있었다.  기둥에 최고리 줄이 몇가닥 매달려 있고, 그 쇠고리 줄을 잡고서 한 방향으로 내쳐 달리다가 발을 공중에 띄우면 원심력에 의해서 몸이 바깥으로, 허공으로 쌩 떳다. 그 상태에서 우리는 하늘을 날았다.  아! 신나는 뺑뺑이였다!  지금도 학교 운동장에 그 뺑뺑이가 있을까?

 

화집에서 이 그림을 처음 발견 했을때, 나는 '뺑뺑이'를 떠올리며 웃고 있었다.  우리들은 전국민이 모두 가난했고, 그래서 가난이 낯설지  않았다. 나는 무수한 가난뱅이 아이들중의 하나였을 뿐.  우리들은 가난한 놀이 시설에도 기죽지 않았다. 우리는 뺑뺑이를 타면서 하늘을 나는 듯한 기쁨을 맛봤다. 

 

그림속의 아이들이 절망적인가?

우울한가?

 

아, 나는 이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리고 이런 풍경에서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내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대개 우등생 표시가 붙었지만, 건강상황에는 항상 '영양실조, 빈혈' 이라는 표시가 따라다녔고, '영양실조로 보이니 건강을 신경써주십사' 하는 선생님의 친절한 통신문이 덧붙기도 했었다.  나는 영양실조로 얼굴이 누렇게 뜨고, 아파보이는 빈민가의 아이였으나, 나는 무럭무럭 자랐고, 새나라의 아이답게 꿈을 꾸며 살지 않았던가?

 

나는 이 그림을 보면 행복하다. 폐허가 된, 다 쓰러져가는 건물에 보이는 알록달록한 무늬는, 아마도 드러나는 벽지이리라. 각기 다른 벽지를 붙이고, 각기 다른 꿈을 갖고 살던 사람들이 이곳을 지키다 사라졌고,  그러나 다시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타날 것이다.  알록달록한 벽은, 어찌보면, 내가 처음 본 서울의 골목골목의 풍경 같기도 하다. 볕이 놓은 날이면, 무허가 골목의 담벼락이나 빨래줄에 내 걸리던 알록달록한 나이롱 이불들.  그 나이롱 이불들은 햇살 아래서 뽀송뽀송 말라갔고, 그날밤 그 집 식구들은 신선한 햇살 냄새가 나는 나이롱 이불을 깔고 덮고 잠이 들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가난은 우리를 파괴하지 못했다. 전쟁도 인간을 파괴하지는 못한다. 폭력은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수는 있으나 인간을 파괴하지는 못한다.

 

redf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