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Book] Endless Forms Most Beautiful

Endless Forms Most Beautiful: The New Science of Evo Devo

Endless Forms Most Beautiful: The New Science of Evo Devo

Sean B. Carroll

 

 

 

일년전인가, 이 책을 들여다보다가 다른 책에 정신이 팔려서 그냥 잊고 말았었다.  밤에 잠이 깨면 그 다음부터는 잠을 잘 못자는데, 그래서, 단테의 신곡을 아침까지 읽었다.  프란체스카 장을 읽으면 한편 달콤하고 한편 슬프다.  단테가 자신을 여섯번째 시성으로 꼽은 것을 보고 혼자 하하 웃기도 했었는데... 그러다가 문득 아무 이유없이 이 책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들이 생생하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참 잘 씌어진 책이란 말이지.

 

나는 거의 반년가까이 '미술'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미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남이 그려놓은 작품들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런데, 그러다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이 책에서 어쩌면 동일한 '대상'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내는 것을 발견한다.  화가들은 '사물'을 색과 형태로 파악을 하여 이를 화폭에 옮겨 담으려 애쓴다.  자연과학자들은 '사물'을 과학적인 시각으로 관찰하고 설명하려 한다. 이들의 행동 방식은 다르지만,  사물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는 동일한 가치를 띈다고 할만하다.

 

단테의 신곡도 집어 들었으니 마저 읽어야 하고, Evo Devo도 마저 읽고 싶고.  잘 씌어진 책을 발견하여 잠시 '나를 잊고' 책에 몰입할때, 그 때 나는 살아있다는 고통에서 잠시 벗어난다. 나에게도 기쁜 날이 올 것이다.  내 집에 손님이 찾아오듯 내 마음에도 기쁜 손님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건...나에게도 기쁜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이러한 것이다:

 

The first shots in the Evo Devo revolution revealed that despite their great differences in appearance and physiology, all complex animals - flies and flycatchers, dinosaurs and trilobites, butterflies and zebras and humans - share a common "tool kit' of "master" genes that govern the formation and patterning of their bodies and body parts.

 

진화발생학 (evo devo)의 첫 일성은, 외관상으로나 기질상으로나 많은 차이를 보이는  생물들이, 가령 파리와 파리잡이, 공룡과 삼엽충, 나비와 얼룩말과 인간등 이러한 동물들이 이들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몸을 구성하는 양상과 패턴을 총괄하는  대표 유전자의 도구상자를 공유 한다는 것이었다. (대충 번역)

 

무슨 말씀인가하면, 생명체들은 생김새나 특성이 제각기 다르다고 할지라도 이들의 생명을 이루는 최소 단위의 '무엇'은 보편성을 띈다는 것이다 (나의 해석). 그 '무엇'을 원문에서는 tool kit of master genes 라고 명시했다.  그러니까, 파리와 나는 동질적인 무엇이다.  구더기와 나도 동질적인 무엇이다. 지금은 죽고 없는 나폴레옹과 여기 살아있는 나 역시 동질적인 무엇이다. 우리는 공유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 동질적인 그 무엇이 어떤 양상으로 조합되거나 발전되는가에 따라서 그것이 파리로 성장하기도 하고,  아인슈타인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 이것은 인문쟁이가 자연과학을 오독하는 전형적인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나 환상적인 이론이란 말인가... )

 

 

 

 

 

 

 

 

 

 

 

 

스승과 조지타운 산책

내게는 '또다른 어머니'같은 분이 한분 계시는데,  내가 석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을때 내게 박사과정에 입문하라고 코치 해주신 분이다.  이분은 기꺼이 나의 지도교수가 되어 주셨다.  컨벤션에 나가서 발표를 해보라고 권유하여 첫 발표를 하게 된 것도 이분 덕분이었고, 여러모로 내 길잡이를 해 주셨다.  이분은 내가 학위를 마치기 전에 정년퇴직을 하셨기 때문에 최종적인 지도교수는 되어주지 못했는데, 그것을 두고두고 '분해' 하셨다.  다 키워놓은 제자를 다른 교수한테 넘겨야 했으니까...

 

물론 나는 인정머리 없고 잔정이 없는 무뚝뚝하고 실무적인 사람이므로,  학교를 떠난후 별로 연락을 취한바 없다.  내 힘으로 취직을 했고, 내 힘으로 먹고 살고 있다.  교수에게 추천서 부탁을 한 바 없고 그냥 내 힘으로 문제해결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분은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를 잊은것은 아니다. 단지 살가운 인사를 생략했을뿐.) 

 

그는 워싱턴에 올 기회가 생기자 일단 달포전부터 "난 네집에 머무를거야"하고 선전포고부터 하셨다. 그래야 내가 얼굴을 보여줄테니까...  내가 꼭꼭 숨어서 내 취미생활에 몰두해있을것을 그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리라.

 

은사께서는 내가 차려주는 한국식 저녁밥상이나, 내가 대충 만들어주는 프렌치토스트나, 내가 대충 끓여 내주는 잔치국수나 이런 것들을 군소리 없이 잘 받아 잡수신다. 마치 딸네집에 온 어머니처럼 잘도 맛있다고 잡수신다.

 

은사를 모시고 가까운 조지타운에 나갔는데, 역시 몇해전보다 거동이 느려지셨다. 노인이시지. 정신은 청춘이지만 신체는 세월만큼 낡아진다. 

 

 

 

 

 

 

 

 

 

나로서도 조지 타운은 대략 다섯달만에 산책을 나온것 같다. 다섯달. 다섯달 사이에 나의 우주는 전혀 다른 궤도로 진입한 것 같았지... 나는 다른 별에 서있는것처럼 세상이 낯설어진것이지.  하지만 나의 은사는 여전하시고...  나에게도 기쁜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redfox  december 17 2009

2009년 12월 16일 수요일

Origins / Leaky & Lewin

Origins Reconsidered: In Search of What Makes Us Human

 

 

 

방구석에서 발견되어서 그냥 우연히 책을 열었다가, 의외로 흥미진진해서 후다닥 읽었다.  전에도 읽은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내가 대학원 공부 하기 전이었고, 대학원 공부 하면서 언어의 진화 발달 관련 (인류 문화사의 발달) 공부도 해오던 터라서 이 책이 그때보다 읽기가 쉬웠고 재미있었다. 그러길래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본다거나 읽고 버리거나 그러면 안되는 것 같다. 자리차지를 하고 있어도, 10년간 손을 안댄대도 버릴수만은 없을 것이다. 언제 내게 다시 다가올지 알수 없으므로. (우연히 눈에 띄도록 어딘가에 보관해야 하는 것이다.)

 

가끔,  특정 종교에 몰입한 학생의 비과학적 태도가 나를 좌절시킬때가 있다.  가령, 자신이 창조설을 목숨처럼 믿기 때문에 진화론 관련 논의는 읽어서도 안되고 말해서도 안되고, 언어의 진화에 관한 자료도 사탄을 보듯 멀리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종류의 사람들.  인정하지 않으면 읽어서도 안되는 것일까? 인정하지 않으면 입에 담아서도 안되는 것일까?  세계의 교양인들이 설령 '창조설'을 인정하지 않아도 교양차원에서 바이블을 읽고 논의를 하거나 그 상징체계에 대해서 사색을 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만큼의 관용성도 없이 학문이 가능하기나 한걸까?   우리가 빨갱이책을 읽으면 모두 빨갱이인가?  우리가 부르조아 책을 읽으면 모두 부르조아인가?  가끔 확고한 신념체계를 구축한 사람과 대화할때 나는 아주 간단히 피곤해지고 만다.

 

그건 그렇고, 진화론 관련 책들은 어떤 면에서 '인기 드라마' 혹은 '눈을 뗄수 없게 만드는 탐정소설'처럼 아주아주 재미있다. 특히 고인류학책, 인류학 관련 저서들은 그것이 바로 '나'의 역사처럼 보이기에 더욱 흥미롭다.  인간의 공격성에 관한 글을 읽을때, 나는 나의 공격성을 생각해보고,  인간의 뇌의 크기와 기능에 대한 글을 읽을때 나는 내 대갈통을 만져보며, 여기는 언어, 여기는 공간감각, 아 나의 뇌가 고맙기도 하여라 노래를 부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에 가서 전생의 나의 해골들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이번학기에는 국립동물원 인간지능 연구소에 필드트립을 가서 '나'하고 '침팬지'하고 한끗 차이임을 역설하는 교육 자료 리뷰를 하라는 숙제를 내 줘 볼까?  (우선 그곳이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지 내가 먼저 방문을 해봐야 할 것이다.)

 

 

 

 

 

 

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미국 철학 삼인조 / 듀란트 철학 이야기

머리맡에 누가 갖다 놨는지 '윌 듀란트'의 '철학 이야기' 책이 있길래, 잠결에 좀 들여다봤는데, 그냥 '스피노자' 챕터를 읽고나서,  '미국 철학'에 대해서 듀란트가 뭐라고 썼는지 궁금하여 대충 들여다봤다.

 

듀란트는 미국 철학 삼인조를

 * 산타야나

 * 윌리엄 제임스

 * 존 듀이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산타야나, 유럽으로 돌아가버린 사람

윌리엄 제임스, 미국을 선택했지만 유럽 철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

존 듀이, 중서부 출신의 미국 철학자

 

아하, 이런 정리를 보고, 듀란트가 미국 철학을 읽는 방법과, 내가 미국 미술을 들여다보는 시각이 일치하는구나! (내가 독학으로 길을 가고 있지만, 내 시각이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구나) 안도감.

 

근대 미국 미술가중에 유명한 사람이 둘이 있다. 내가 별 매력을 못느껴서 소개를 미루는 대가들

 1. 휘슬러

 2. 싸전트

 

내가 이 사람들에게 매력을 못 느끼는 이유는, 이들은 그림이 매력이 있지만, '미국미술'측면에서 살펴볼때,  "이 사람들이 미국 화가이긴 한거야?" 라는 의문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미국인으로 태어났지만 유럽에서 주로 활동을 하여 유럽에 널리 알려진 화가들이다. 미국은 이들을 '미국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미국화가'라고 우기고 싶겠지만, 내 시각으로 볼때, 이 사람들은 미국인으로 태어난것외에 미국하고 상관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요즘 미술사책을 읽다보니, 휘슬러와 싸전트를 대별하는 요소가 나타났다. 휘슬러는 영국으로 귀화한 사람이고, 싸전트는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미국인으로 살다 죽었다는 것이다.  (T S Eliot 역시 영국으로 귀화해버린 미국 출신의 작가이다).   그래서, 나는 싸전트에 대해서 좀더 호의적이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미국미술 연구중이므로 자연히 미국중심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하하).  아무튼, 사람은 자기 근본을 부인하면 인상이 안좋아진다. (이건 또 무슨 구태의연한 민죽/국가주의란 말인가...)

 

제 부모를 부인하고, 자신의 근본을 부인하고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취하는 것도 삶의 한가지 양상이긴 한데, 어쩐지 그래서는 안될것 같다는 것은 나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아, 아, 그래서 미국철학의 삼인조에 대한 이야기로 미국의  Regionalism 운동을 펼쳐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메모)

2009년 12월 15일 redfox.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Eastman Johnson, The Early Scholar

 

 

Eastman Johnson

The Early Scholar (이른 아침 학교에 온 어린이)  c. 1865

2009년 12월 13일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촬영

 

 

 

날씨가 쌀쌀하죠.  이런 날은 어릴때, 기온이 영하 5도 아래로 내려가길 '고대하며' 동동 걸음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학교로 향하던 내 모습이, 그 풍경이 떠오릅니다.  아침에 나올때, 뭐 수업도 없고, 방학이니까, 편안한 옷에 '털신'까지 신었지요.  그 털신을 신고 앉아 생각해보니, 내가 어릴때 나는 한번도 '방한화'개념의 어떤 두꺼운 신발을 신어본 기억이 없어요.  털신이라니...내가 출세한거죠. 털이 보글보글한 폭신한 장화를 신고 앉아있으니.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땐, 영하 5도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는날 난로를 피워줬지요. 고등학교에 가니까 영하 3도 이하로 조정되더군요.  그러니까 어릴땐 날씨가 영하 4도가 되면 난로 안때주고 영하 5도가 되면 난로를 쌔주니까, 영하 5도가 영하 4도보다 따뜻한거죠.

 

그리고,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난로 관리는 반에서 제일 키 큰 친구들이 전담해서 했어요.  그러니까 조개탄 창고에가서 조개탄을 배급 받아 오는 일이나,  수업 마치고 난로 청소한후에 나머지 재를 들통에 담아서 내다 버리는 일이나, 이런 난로관련 업무는 반에서 제일 키 큰 서너명이 '큰 언니들'처럼 맡아서 했던거죠.  담임 선생님이 늘, 당연하다는 듯이 제일 꺽다리 애들을 지명하여 일을 지시했고, 그 꺽다리들도 마땅히 자신들이 해야할 일이라는 듯 믿음직하게 그 일을 했지요. 그 꺽다리들은 딱 큰언니 같았는데, 여자 중고등학교에서 그런 일을 하는 꺽다리들은 '오빠' 기능도 일부 담당했지요.  그냥 그 키 큰 애들을 무조건 따르는 애들도 있었으니까. 저는 또래 집단에서 큰 키에 속했지만, 제일 큰 꺽다리는 아니었으므로 주로 그런 꺽다리들하고 등등하게 어울리되 이런 어마어마한 일은 안하는. 어중간한 꺽다리과였죠.

 

 

 

한 꺽다리 친구가 생각나는군요.  그 꺽다리는 정말 '오빠'처럼 체격이 크고 늘씬하고, 성격도 무지 좋고, 공부는 그냥저냥 하는데, 뭐 인물 좋고 성격좋고, 선생님들이 허드레 일을 시키면 빙글빙글 웃으면서 척척 해내고, 우리들이 모두 그 꺽다리 '오빠'를 좋아했죠.  그런데 이 친구가 나를 예뻐했어요. 자기가 다니는 예배당에 행사 있다고 가자고 하기도 하고 (그러면 그냥 소풍가는 맛에 따라가고),  방과후에 학교앞 튀김가게에 함께 가지고 하면 따라가고, 미술 시간에 10년후의 나의 집을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그애가 그린 집은, '10년후에 이아무개하고 나하고 함께 살 집.'  그 이아무개가 물론 소생이죠.  그 애는 왜 십년후에 나하고 함께 살 생각을 했을까?  나의 십년후는 달랐는데... 아무튼 그래서 그 친구가 그린 집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내 방 창문앞에는 사과나무를 심어줘. 그리고 꽃도 많이 심어줘" 뭐 이런 제안을 하면서 시시덕거렸죠.

 

 

요즘 이런 얘기를 하면 죄다 '동성애 코드'로 해석하는 분위기쟎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동성애'가 뭔지도 몰랐어요 우리는.  그당시에도 '호모'라는 말이 가끔 돌아다녔지만, 그냥 동성끼리 서로 좋아하는게 '호모'인줄 알았죠.  우리 머리속에는 도대체 '섹스'라는 개념이 탑재가 안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누가 누구하고 같이 살고 싶대' 뭐 이런 말도, 누가 누구를 꽤나 좋아한다는 말과 동의어였죠.  그 외에 다른 뉘앙스를 잘 몰랐지요.

 

그런데 어떻게 되었냐하면, 그 친구가 나를 너무 이뻐하고, 나를 강아지처럼 데리고 돌아다니러 들고, 아무튼 내게 너무 잘해줬기 때문에 처음에는 언니/오빠처럼 좋아서 따라다니다가 나중에는 귀챦아서 멀어진것 같아요.  언니/오빠는 언니/오빠의 영역을 벗어나면 안되는건데... 사람의 관계란 그렇죠. 어떤 영역이 있어요. 그 영역안에서만 머물러야 하는데 그 선을 깨버리면 그 관계가 일그러지지요.  그런데, 그 영역이란것이 사람마다 선이 다르니까 오해나 문제가 생기고 비극이 일어나기도 하고.  돌아보면, 누군가가 내가 정한 금을 넣어 왔다는 이유로 내가 회피한 경우가 종종 있고; 어쩌면 나 역시 금을 넘어갔다는 이유로 회피의 대상이 되었겠지요.

 

아, 난로담당 친구 얘기를 하다가 엉뚱한데로 얘기가 흘러가버렸는데...

 

 

Eastman Johnson 은 제가 언젠가 따로 페이지를 낼 화가인데요. 오늘은 어제 국립미술관에서 발견한 이 사랑스러운 그림 소개만 할게요.  The Early Scholar. 대략, 이른 아침에 학교에 도착한 생도라는 뜻인것 같죠.  뒤에 벤치들이 보여요. 초기의 교실 풍경같죠. 그리고 난로가 하나 있는데 이 꼬마친구가 불을 피우고 있는것 같아요. 아니면 선생님이 미리 피워놓은 난롯불을 쬐고 있거나. 난롯가에 커다란 장작 쪼가리 하나가 누워있는것도 보이고.

 

이렇게 일상의 어떤 풍경을 그리는 것을 장르 페인팅 (genre painting) 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냥 '풍속화'라고 해석하는 편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는거죠. Eastman Johnson 은 그런 풍속화가지요.

 

날씨가 추워서, 뭐 따뜻한 그림을 하나 올리고 싶어서 끄적끄적...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워싱턴 National Archives 의 벽화

National Archives

 

공식 홈페이지: http://www.archives.gov/

 

워싱턴 디씨에 있는 국립 문서 기록 보관소 (National Archives = Archives of the United State of American)는 이름 그대로 문서 기록을 보관하는 '창고'라고 할수 있습니다. 예전에 '국사'시간에 우리도 배운적이 있지요. 왕실의 기록을 조선땅 여기저기에 보관해 놓았다고 해서 그 장소를 달달 외운 기억이 있는데요, 그래서 외침으로 궁성이 여러차례 불 탔어도 조선왕조실록이니 하는 사료들이 잘 보관되어 전해졌다고 하지요.  워싱턴의 국립 문서 기록 보관소도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보관하는 장소이고,  미국의 각지에 이러한 보관소들이 있다고 합니다.  워싱턴디씨에 있는 보관소에는 특히나 영국의 권리장전, 미국의 독립선언문, 헌법초안, 헌번 개정안등의 원본에 대중들을 위해 전시되어 있어서,  이곳은 미국 전역의 중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워싱턴을 방문할때 반드시 들르는 장소입니다.  저희집 아이들도 중학생때 플로리다에서 워싱턴까지 수학여행을 가서 이곳을 구경한 적이 있지요. (큰놈은 제법 이곳에서 판매하는 독립 선언서 카피본을 기념품으로 한장 사다가 제게 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디 처박혀 있는지도 알수 없지만요.)

 

 

이렇게 일년 내내 많은 미국인들과 여행자들이 찾은 장소라서, 특히나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했던 National Treasure 영화 시리즈 덕분에 이곳을 호기심을 갖고 꼭 보고싶어 하는 청소년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주말이나 휴일에 이곳을 보려면 몇시간씩 뙤약볕 아래서 줄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전에도 몇차례인가 이곳을 지나다가 기웃거려 봤지만 줄이 길어서 번번이 포기했지요 (줄서서 구경하고, 줄서서 식당 들어가고 그러는거 무척 귀챦아 하는 편이거든요. 줄 서라고 하면 그냥 딴거 하고 말죠).  마침 비오는 12월의 일요일.  비는 죽죽 내리는데 누가 이런데까지 마실을 오겠습니까. 날도 춥고.  지나는 길에 들여다보니 뭐 한가로와 보이길래 결국 잠시 들르게 되었습니다.

 

 

 

 

 

 

 

 

 

건물 왼편으로 들어가면 입구가 나오는데요, 입구를 통과하면 공항의 Security Check (물품검사대)과 같은 곳이 나타납니다. 소지품 모두 검사대를 통과해야 합니다. 사람도 검사를 받고요.  아무래도 국립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라서 경비가 엄한 편입니다.  입장료는 무료.  사진도 자유롭게 찍을수 있지만 플래시 사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요즘 카메라들이 좋아서 플래시 없이도 잘 찍히죠)

 

 

 

 

 

 

 

검사대를 통과하여 지층의 '극장'에 가서 이곳을 소개하는 짧은 교육용 영화를 봅니다.  기록의 중요성, 기록의 활용 방법을 알려주는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영화관 시설도 아주 훌륭합니다.  그리고나서  중요 문서 (영국의 권리 대장전, 미국의 독립 선언서, 미국의 헌법초안, 미국의 헌법 개정안 원본들)들이 전시되어있는 로툰다 홀로 이동하여 구경을 합니다. 조명이 침침하여 원문을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구경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이 곳이지요)

 

로툰다홀에서 나온후에 교육 전시실이라는, 미국 역사 관련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기념품가게에서 물건 구경하다가 나오면 됩니다.  이것이 단순히 '구경'하기 위해 들르는 절차이고요, 만약에 특정 문서나 기록을 열람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면 해당 사무실로 찾아가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고문서 전시장 (Rotunda Hall)의 벽화

 

전시장의 왼편 벽화는 독립선언문 그림입니다. 벽화 아래에 독립선언문 원본이 전시 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벽화는 '헌법' 그림입니다. 그 아래에 역시 헌법 원문 (Constitution), 그리고 개정안(Bill of Rights)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벽화들을 그린 화가는 Barry Faulkner (베리 포크너 1881-1966) 입니다. 뉴 햄프셔 태생으로 하바드에서 수학하다 이탈리아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미술 수업을 받고 벽화의 본고장 로마에서 실력을 인정받은후 1910년에 귀국합니다. 포크너는 국립 문서 기록 보관소의 벽화를 위임받고 1936년 이 두장의 벽화를 완성합니다.  이 벽화들은 캔바스에 유화로 제작한 것입니다.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한  그림인데, 완성후에 건물의 벽에 벽화로 설치가 된 것이지요.  전에 앤드루 와이어드의 생가를 방문했을때, 스튜디오에 있던 어마어마한 벽화 작품을 발견하고 http://americanart.textcube.com/44,  "저 그림을 어떻게 운반했는가?" 물었더니 캔버스를 둘둘 말아가지고 운송하여 벽에 붙인후에 미술가가 다시 세밀한 보수, 교정 작업을 했다고 가르쳐주더군요.  포크너 역시 캔바스에 유화로 그린 작품을 이리 옮겨다가 벽에 붙인후에 세밀한 완성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 역사상 독립 선언서가 공개된것을 1776년 7월 4일로 정하고 이날을 '독립 기념일'로 기념하는데요, Declaration of Independence 그림에는 독립 선언서 초안을 작성하는데 참가했거나, 최종 서명을 한 인물들이 담겨있습니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이 이 초안의 작성자로 알려져 있지요. 당시 그의 나이가 26세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그림에서 토마스 제퍼슨이 누구인지는 우리도 가늠할수 있겠지요.  그리고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인 벤자민 프랭클린도 보입니다.  저도 거기까지는 알아맞출수 있었는데, 나머지는 설명을 봐야 알겠더라구요.

 

 

 

 

 

 

1776년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후에 1787년에 미국의 헌법이 발표가 되는데 (그러니까 11년이 흘렀군요) 이때 헌법에 동의한주가 동부의 13개주였다고 하지요. 이 그림속에는 헌법에 동의한다고 서명한 사람들과 서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헌법 원문 맨 뒤에 보면 어느주의 대표가 싸인을 했는지 나와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중앙에 흰 옷을 입은 키가 남들보다 커보이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대충 감으로 맞추는거죠 뭐.  미국 역사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

 

 

 

 

 

베리 포크너는 로마에서 미술 수업을 받은 사람이고, 그곳에서 실력을 인정 받은 사람이라서 그의 벽화는 로마의 화풍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벽화속의 풍경은 '사실'과는 부합되지 않고 로마의 풍경속에 미국 역사상의 인물들을 그려 넣은 식이지요.   이 벽화가 1936년대에 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PWAP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Public%20Works%20of%20Arts%20Project ) 및 공공미술이 활기차게 진행된 시기이기도 하고, 미국 지방색이 강한 그림들이 제작되던 시기이기도 한데요, 이 벽화는 이런 흐름과는 달리 로마네스크 양식을 취하고 있지요.  이는, 미국, 특히 워싱턴 디씨 지역의 건축 양식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신생국 미국이 역사속에서 '모델'로 삼았던 것이 고대 그리스 로마의 건축 양식이었습니다.   초기 미국을 건설한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이죠. 하지만 유럽의 모델을 그대로 베껴다 쓰기에는 어딘가 껄끄럽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무엇을 모델로 할것인가? 고대(古代)로 돌아가야죠. 민주주의의 시원지라 할만한 그리스의 건축양식, 대제국이었던 로마의 건축양식을 가져와야죠. 대략 그러한 사연이 있었다 할수 있지요. 

 

제가 이 그림들 관련 자료를 찾다가 아주 재미있는 페이지를 발견했습니다.

http://teachingamericanhistory.org/convention/faulkner/

이 페이지에서 그림속의 인물에 커서를 갖다 대 놓고 클릭하면 해당 인물에 대한 안내가 상세하게 나옵니다.  누가 누구인지 궁금할때 이런 안내가 참 유용하지요.  워싱턴 디씨에 있는 벽화라면...국회도서관의 벽화를 빼놓을수가 없는데, 그곳은 모든 벽이 벽화라서, 아예 책이 별도로 나와있을정도이지요.  아아아, 어마어마한 작업이 될 것 같아서 후일로 마냥 미루고 있습니다.  나중에 그것도 안내해드릴게요.  =-)

 

 

2009년 12월 14일 redfox

 

 

 

 

 

 

 

 

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워싱턴 디씨 2009년 12월 13일 비오는 저녁

 

 

 

어제(토)는 윌리엄스버그에 다녀와야 했고 (왕복 6시간),  저녁에는 형식적인 만찬에 가서 대략 세시간동안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방긋방긋 웃는 표정을 연출해야 했고 (그래서 무척 피곤).  오늘 오전에는 공항에 나갔다 와야했고,  그래서 또 피로가 누적되었는데,  그대로 오늘을 보내버리면, 내가 살은것 같지가 않아서, 피곤하지만 디씨 시내에 나갔다 왔지요.

 

 * 국립 문서 기록 보관소 ,National Archive

 *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두군데 대충 둘러보고 부슬부슬 비내리는 거리를 달려, 물이 불어난 포토맥강변을 내다보며 집으로 왔습니다.  National Archive 는 평소에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서 들어갈 엄두는 못내고 있었는데, 오늘은 비오는 12월 오후라 줄 설 필요도 없이 한가롭게 들어가 구경할수 있어서 좋았고요... 국립 미술관에서는 그냥 미국미술 파트만 조금 보다가 나와야 했지요.  오후 다섯시면 문을 닫으니까.  그래도, 나갔다 오길 잘했어요.

 

National Archive 맞은편은 조각공원, 조각공원 옆은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지금 사진 왼편에 보이는 것이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이고, 거기서 더 가면 스미소니안 미국사 박물관이 있고요.  사실은 그쪽, 뿌연 안개 너머에 워싱턴 기념비 (Washington Monument)가 서 있지요. 

 

자연사 박물관 앞을 지나칠때면, 거기 있는 전시물들이 머릿속에 환하게 그려지지요.  자연사박물관, 참 좋아해요.  (미술관이 아니므로 소개할 일은 없겠지만요...)  자연이, 지구의 역사가 가장 근사한 예술작품이니까.

 

 

 

국립 미술관 서쪽 입구에서 바라본 국립 문서 기록 보관소 (National Archive).

 

** 앗참,  제가 오늘 국립 미술관에 가서, 미국 근대미술 코너를 살폈는데요,  지난 몇주동안 애시캔/8인회 작가들에 대한 글을 많이 정리했쟎아요.  오늘 가서 제가 사진을 올리고 소개를 한 작품들을 다시 보니까, 그림들이 아주 생생하게 말을 거는것 같았어요.  그림들이 살아서 다가오는것 같았다구요.  붓터치도 생생하게 느껴지고요.

 

그러니까 프로세스를 정리를 해보면

 

(1) 나는 미술관을 어정거리면서 이작품은 맘에 들고, 이작품은 유명하지만 맘에 안들고, 어쩌고 혼자 생각을 한다

(2) 나는 사진을 찍는다

(3) 나는 집에와서 사진들을 휙 보고 그냥 며칠 지난다

(4) 얼마후 나는 슬슬 미술책들을 보면서 자료를 정리를 한다

(5) 얼마후 나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그림 사이즈도 조정하고, 제목도 다시 정리해놓고

(6) 사진과 자료를 보면서, 글을 쓴다.

(7) 그렇게 몇편의 글을 쓴다

(8) 어느날 시간을 내어 다시 미술관에 가서 내가 공부하고 사색하고 글을 썼던 그 그림들을 다시본다

(9) 갑자기 그림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저벅저벅 걸어서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뭐 대충 이런 흐름이었다는 것이지요.  뭐 이런 작업은 '시간'이 꽤나 드는 것이긴 한데요...그래도 이런식으로 대상에 다가간다는 것이 참, 좋아요.  새로운 경험이라 그런것도 같고.  그냥, 아마도 제가 그림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친구들이 말없이 나를 반겨주는데, 수다스럽지 않으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기 때문일걸요.  그림은 수다스럽지 않아서,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아서, 그래서 좋아요.  내가 다가가면 반갑게 맞아주고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그림 = 조용한 이야기꾼.  그래서 그림이 좋아요. (아마 그래서 좋아하는것 같아요.) 말없이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 늘 한결같은.  늘 한결같은. 

 

존 키이츠 (John Keats)가 탄식하듯 노래하지요 Bright star, would I were steadfast as thou art...  빛나는 별이여, 내가 너처럼 변합없는 존재라면 좋겠네.  사람이 하늘의 별같이 변함없을수가 있을까?  그건 죽어야만 가능한거죠.  죽어야만 가능한것을 산사람이 꿈꾸면 안되는거죠. 그러니까, 죽었지...  한결같은 무엇을 꿈꾸면 안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