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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7일 일요일

Jacob Lawrence Migration Series: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품 (MoMA)

http://americanart.textcube.com/32  제이콥 로렌스의 미국 남부 흑인 북부 이동 역사 시리즈는 모두 60편인데, 뉴욕의 현대미술관 (MoMA = Museum of Modern Art)과 워싱턴 DC의 필립스 콜렉션 (Phillips Collection) 이 이 시리즈를 가지고 경합을 벌이다가 필립스 콜렉션에서는 홀수 번호 작품들을,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는 짝수 번호 작품들을 각각 30편씩 나눠서 매입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위에 링크된 이전 페이지에 소개 한 바 있다.  워싱턴의 필립스 콜렉션의 작품들은 위의 페이지에 정리가 되어 있다.  2009년 9월 26일 (토) 뉴욕 현대미술관에 갔었는데, 마침 이 시리즈가 전시장에 걸려 있었다. 그래서 나머지 30점의 그림 사진도 소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캡션까지 써 넣어야 하니까 시간 좀 걸리겠지만, 그래도 모두 소개 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30 편의 작품 감상 페이지는 다음 페이지에서 열겠다.  그 후에는 1번에서 60번까지 모든 것을 차례차례 정리하는 페이지도 하나 만들겠다.  (랄라~)

 

 

 * 사진 아랫부분 허옇게 뜬 곳은, 카메라 필터 유리가 깨진 부위.(필터 깨진것 끌고 돌아다니며 촬영 강행군)

 

 

 

 

2009년 9월 7일 월요일

Jacob Lawrence 2: Migration Series, Phillips Collection

http://americanart.textcube.com/30  에서 계속

2009s년 9월 5일 토요일.  Phillips Collection 에 들러서 제이콥 로렌스의 '남부 흑인 이주 역사 시리즈 (Migration Series) 30장과 해당 그림 설명 (caption) 을 사진기에 담아 왔다.  홀수 작품은 Phillips Collection 에서, 짝수 작품은 Museum of Modern Art (MoMA) 에서 소장중이므로 홀수 1번에서 59번까지 작품들이다.

 

 

1. During World War I, there was a great migration north by southern African Americans.

1. 제 1차 세계 대전 기간동안,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북부로 대이동을 했다.

 

한국판: 한국전이 끝나고 1960년대 '조국 근대화'에 발맞춰 한국의 영남, 호남, 기호 지방의 선량한 사람들이 잘 살아보기 위해 서울로 서울로 올라갑니다. 혹자는 서울로, 혹은 그냥 조금 큰 도시로 혹은 그냥 시골 말고 아무데나.

 

 

 

 

 

3. From every southern town migrants left by the hundreds to travel north.

3. 미국 남부의 방방곡곡에서 흑인들이 수백명씩 북쪽을 향해 떠나갔다.

 

지방의 산골, 농촌, 어촌에서 가난뱅이들이 혹은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 혼자서 혹은 온가족이 서울을 향해 떠나갑니다.

 

 

 

 

5. Migrants were advanced passage on the railroads, paid for by the northern industry. Northern industry was to be paid by the migrants out of their future wages.

 

남부 출신 이주자들의 기차요금은 북부의 공단에서 지불해주었다. 물론 이렇게 나간 돈은 이주자들이 장차 받게되는 임금에서 나가는 것이었다.

 

한국: 어떤이는 가산을 팔아 정리를 했고, 어떤이는 집의 쌀독을 털어 차비를 장만했습니다.

 

 

 

 

 

7. The migrant, whose life had been rural and nurtured by the earth, was now moving to urban life dependent on industrial machinery.

시골에서 태어나 대지와 함께 성장하던 남부출신 이주자들은 이제 기계 산업 위주의 도시로 이동하는 것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대지와 함께 성장하던 호남출신 이주자들은 이제 도시로 도시로 이동을 하는 것입니다.

 

 

 

 

 

9. They left because the boll weevil had ravaged the cotton crop.

그들은 목화 바구미가 목화솜을 모두 망치는 바람에 떠나게 되었다.

 

이주의 이유, 한국, 혹자는 그해 농사가 흉작이라 희망을 잃기도 했고

 

 

 

11. Food had doubled in price because of the war.

전쟁 때문에 식량 값은 두배로 뛰었다.

 

한국: 식구들의 생계는 막막했습니다.

 

 

 

13. The crops were left to dry and rot. There was no one to tend them.

농작물은 그대로 방치되어 말라 죽거나 썩어버렸다.  이제 농작물을 지켜줄 이는 아무도 없다.

 

한국: 그들이 버리고 간 논밭에서 작물들이 말라 죽어갔습니다.

 

 

 

15. There were lynching.

남부에서는 흑인에 대한 린치 (개인적인 폭력행사)가 벌어지곤 했다.

한국: 한국전의 상처는 깊어, 여전히 누군가는 '빨갱이'라며 손가락질을 당했습니다.

 

 

 

 

17. Tenant farmers received harsh treatment at the hands of planters.

남부의 소작농 흑인들은 지주로부터 온당치 못한 대우를 받았다.

한국: 남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짓는이는 연명하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19. There had always been discrimination.

항상 차별에 시달렸다.

한국: 다행히 한국땅에서 흑백 차별은 없었습니다.

 

 

 

 

21. Families arrived at the station very early.

이주하려는 가족들은 (차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아침 일찍 기차역에 도착했다.

한국: 밤봇짐을 싼 처녀아이나 총각녀석은 사람의 눈을 피해 신새벽에 기차를 탔습니다.

 

 

 

23. The migrant spread.

이주자들은 이리저리 흩어졌다.

한국: 서울이나 대도시의 기차역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갔습니다. 공장으로, 식모살이하러, 숙식제공의 꿰임에 빠져 술집으로, 버스 안내양으로, 앵벌이로.

 

 

 

 

 

 

25. They left their homes. Soon some communities were left almost empty.

그들은 집을 버리고 떠났다. 어떤 마을들은 거의 텅 빈채 남겨지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 떠나버린 마을은 텅 빈채 남겨졌습니다.

 

 

 

27. Many men stayed behind until they could take their families north with them.

가족들과 함께 북부로 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뒤처지기도 했다.

한국: 노인들과 아이들은 그대로 남아 서울로 간 가족들이 소식을 보내기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29. The labor agent recruited unsuspecting laborers as strike breakers for northern industries.

노동 중개인들은 북부 노동자들이 태업을 할때, 그 빈자리를 메꾸는 일꾼으로 남부 출신 이주자들을 고용했다.

한국: 서울에는 인력이 넘쳐났습니다.

 

 

 

31. The migrants found improved housing when they arrived north.

북부에 온 이주민들은 남부에 살때보다 주거 사정이 낳아지기도 했다.

한국: 무허가 주택으로 산동네를 탄생시킨 이들은 달동네도 건설해냈습니다.

 

 

 

 

33. Letters from relative in the North told of the better life there.

북부의 친척들에게서 (남부에 남아있는 이들에게) 날아온 편지는 남부보다 좋은 북부 생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한국: 시골에 남아있던 처녀 총각들은 서울에서 돈을 엄청 벌었다는 편지를 읽으며

'나도 밤봇짐을 싸리'하고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35. They left the South in great numbers. They arrived in the North in great numbers.

어마어마한 숫자의 흑인들이 남부를 떠났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흑인들이 북부에 도착했다.

한국: 그리하여 너도 나도 서울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37. Many migrants found work in the steel industry.

많은 이주자들이 철강 산업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한국: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39. Railroad platforms were piled high with luggage.

기차역은 보따리로 넘쳐났다.

한국: 기차역은 보따리로 넘쳐났습니다.

 

 

41. The South was desperate to keep its cheap labor. Northern labor agents were jailed or forced to operate in secrecy.

남부는 값 싼 노동력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북부의 인력중개인들이 수감되거나 혹은 비밀리에 일을 해야만 했다.

한국: 농촌에서는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새마을 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43. In a few section of the South leaders of both black and white communities met to discuss ways of making the South a great place to live.

남주의 어떤 지역에서는 흑인과 백인 집단 양쪽 진영이 만나 남부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한국: 새마을운동은 새마을 지도자들을 배출 시켰고, 농촌에도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45. The migrants arrived in Pittsburgh, one of the great industrial center of the North.

이주자들이 도착한 피츠버그는 북부 산업의 주요 거점 도시 중 하나였다.

한국: 인천이나 창원, 포항에 공장들이 세워졌습니다.

 

 

 

 

47. 사진상태가 흐려서 캡션 적음

 

 

 

 

 

 

49. They found discrimination in the North. It was a different kind.

이주자들은 북부에서도 차별을 겪었다. 남부와는 다른 식의 차별이었다.

한국: 서울에 갔다고 모두 서울 사람이 되는것은 아니었지요.

 

 

 

51. African Americans seeking to find better housing attempted to move into new areas. This resulted in the bombing of their new homes.

좀더 나은 환경의 주거지를 원한 흑인들은 새로운 구역으로 이사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들이 새로 이주한 집에 폭발물이 던져지기도 했다.

한국: 산동네나 달동네를 벗어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53. African Americans, long-time residents of northern cities, met the migrants with aloofness and disdain.

북부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던 북부흑인들은 남부에서 올라온 이주자들에게 무관심하거나 혹은 경멸했다.

한국: 서울에서 먼저 자리를 잡은 친척들에게 마냥 기댈수만도 없는 노릇이었지요.

 

 

55. The migrants, having moved suddenly into a crowded and unhealthy environment, soon contracted tuberculosis. The death rate rose.

급작스럽게 인구가 조밀하고 불결한 환경으로 옮겨온 이주자들은 폐결핵에 걸리기도 했다.  사망률이 치솟았다.

한국: 사실 폐결핵을 앓거나 그로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57. The female workers were the last to arrive north.

여성들이 가장 늦게 북부로 옮겨왔다.

한국: 노인들은 고향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지요.

 

 

 

 

59. In the North they had the freedom to vote.

북부에서는 투표의 자유가 있었다.

서울에서는 창경원 소풍을 갈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강다리 구경도 좋았고요.

주말의 극장구경도 즐거웠습니다.

 

 

 

 

 

 

전시장 스케치

 

유리 액자에 담긴 작품을 사진에 담다 보니 조명이 반사되기도 하고, 사진 찍는 내가 반사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에 미국 남부 흑인들이 북부 상공업지대로 대거 이주한 역사를 화판에 옮긴 이 시리즈의 그림 캡션 (설명문)을 하나 하나 옮겨 적고 해석하다보니,  이 미국 흑인의 역사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내가 나고 자라던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과 때를 같이 하여 '근대화,' '시월 유신,' '새마을 운동'의 구호가 높아지면서 종래의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전환해 갔는데,  이때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 하는 인구가 많았다.  내가 시골에서 자라날때, 아침에 일어나면 고모들이나 어른들이 밥상머리에서 곧잘 전하던 이야기가 '아무개가 밤새 쌀을 한말 퍼가지고 보따리 싸서 도망을 갔다'는 것이었다. 시골의 가난한 가족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이주를 했고,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집에서 가사, 농사를 돕던 떠꺼머리 총각, 처녀들도 도시로 도시로 떠났다.  서울에 가서 먼저 자리를 잡은 친구들이 보내온 편지에 현혹되어 무작정 상경을 했다가 술집에 팔려가는 딱한 신세가 되기도 했으며,  식모살이, 버스 안내양, 공장의 직공등으로 취직을 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산업화가 가속되던 시기의 남부 흑인들의 이주의 역사를 보면서, 문득 한국에서 비슷하게 진행되던 산업화의 역사를 떠올리고 말다.

 

RedFox September 6, 2009

2009년 8월 30일 일요일

Jacob Lawrence: 미국 흑인 이주 시리즈 60장

Jacob Lawrence (제이콥 로렌스, 1917 9 7– 2000 6 9). Andrew Wyeth (1917-2009) 와 같은 해에 태어나 동시대를 살다간 흑인 미술가이다. 앤드루 와이어드와 제이콥 로렌스는 출생 환경이 판이하게 다르면서도 어느 부분 닮은 꼴도 있다. 일단 같은 해에 태어났고, 둘 다 정규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서 미술에만 집중하는 시절을 보냈다. 앤드루 와이어드는 학교에 출석하는 대신에 이미 이름 난 화가였던 아버지의 슬하에서 일찌감치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했고, 제이콥 로렌스는 이혼한 홀어머니와 열세살에 뉴욕의 빈민가에 흘러 들어 할렘의 미술 공예 교실에 입학시킨다. 앤드루 와이드가 전문가인 아버지와 그 제자들 틈에 끼어 회화 기법을 익힐 때, 제이콥 로렌스는 엄마가 짜고 있던 카펫에 새겨진 무늬들을 그대로 크레용으로 그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앤드루 와이어드가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사실주의적 기법의 자신의 그림 세계를 구축해 가는 동안 16세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제이콥 로렌스는 세탁소, 인쇄소 등을 전전하며 일을 하고, Charles Alston 이 가르치는 Harlem Art Workshop 에서 수업을 듣는다. 그는 재능을 인정 받아 American Artists School 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앤드루 와이어드는 1949 Christina’s World (크리스티나의 세상)이라는 작품을 뉴욕 현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에 넘긴 후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데, 로렌스는 1941년 그가 60장의 연작을 선보인 흑인 이주 연작 (Migration Series)’으로 스물 네 살의 젊은 나이에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앤드루 와이드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한 미술공부였지만,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린 것은 앤드루 와이드보다 한참 전이다. 그의 연작 12x18인치 사이즈의 판 60장에는 1917년부터 미국 남부지역의 흑인들이 미 북부 쪽으로 이동하는 광경과, 이들이 이주하여 어떤 일을 겪으며 정착해 나갔는가가 에피소드 별로 그려져 있다. 로렌스는 직접 그림 설명도 썼다. 그는 이 연작을 1940년에서 1941년까지 2년간 그렸다고 한다. 이 연작 시리즈는 소개 되자 마자 각계에서 놀라운 시선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1941년에 Fortune 지에서 이 작품들을 특집으로 소개 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맨하튼의 Downtown Gallery 에서 단독 전시회를 열게 되는데, 역사적으로 뉴욕에서 열린 흑인 화가 개인전은 이것이 최초였다고 한다.

 

이 시리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소장하려는 수집가들의 열기도 뜨거웠는데, 워싱턴의 Phillips Collection 과 뉴욕의 현대 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양측에서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절반씩 나눠 갖는 쪽으로 결론을 맺었다.  필립스 콜렉션이 1번부터 시작하는 홀수 번호 그림을 갖고, 현대미술관이 짝수 그림을 소장하게 되었다.

 

 

Norman Rockwell 관련 페이지에서 1960년대의 미국 흑인 인권 운동 관련 그림을 소개한 바 있는데, 그보다 4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1차 대전 직후부터 2차 대전 직전까지 미국 남부의 흑인들 중 많은 수가 일자리를 찾아 북부로 흘러 들어오게 된다. 60장의 연작 속에는 남부 농장의 목화밭도 그려지고, 린치로 살해당하는 흑인들도 그려진다. 북부에 올라와 자리 잡고 살만해지자 흑인들 주거지역을 습격하거나 폭파, 방화의 폭행이 자행되기도 하고, 여전히 흑백분리 차별을 받기도 하며, 심지어 같은 흑인이면서 이미 북부에 자리잡아 살고 있던 흑인 기득권층에게 소외 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런 흑인 수난의 역사야 다 알려진 것이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연작의 제작, 발표 시기를 보면 제이콥 로렌스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는지 가늠하게 된다. 흑인 인권 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이 I Have a Dream 을 외치며 인권운동의 날개를 펼친 것이 1963년 이었다. 1960년대에는 버스 보이콧, 식당에서의 보이콧 등 다양한 흑인 인권 운동이 각지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제이콥 로렌스는 그로부터 2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흑인들의 수난사를 60장의 그림에 담아 낸 것이다. 일찍이 어느 누가 특정 역사를 이런 연작으로 담아 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던가?  여기에서 그의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성을 찾아 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제이콥 로렌스는 1941년 함께 작업하던 미술가와 결혼하여 2000년 사망할 때 까지 해로했다. 1970년에 시애틀에 위치한 워싱턴 대학의 교수로 부임한 그는 시애틀에 정착하여 살았다.

 

2008년에 워싱턴의 필립스 콜렉션에서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하는 짝수 그림까지 모두 가져와서 전체 60장을 전시한적이 있다. 그 당시에 나도 가서 그림 구경을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내게 이 대단한 연작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었고, 단순히 흑인 그림인가보다 하고 지나치고 말았었다. 요즘 미국 미술에 대하여 생각을 하거나 자료를 찾아 보는 일이 많아지면서 제이콥 로렌스의 연작의 중대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며칠 전 필립스 콜렉션이 소장하는 홀수 번호로만 이루어진 작품 전시를 보러 갔다. 2층 구석 쪽의 방 두 개의 벽면에 30장의 그림이 번호 순서대로 전시 되어 있었다.

 

 

* 그림 크기는 가로그림이나 세로그림이나 모두 일정하다. 12x18 인치의 판 60장이 사용되었다.

 

 

 

(1)번 그림:

 

 

(3)번

 

 

(15)번

 

   "There were lynchings "  "린치도 당했습니다."

 

                                     (사진) 1925년 미국 흑인이 나무에 목이 매달린 장면.

                                           http://en.wikipedia.org/wiki/Lynching

 

 

사실 필립스 콜렉션에서 30장의 작품 사진을 다 찍어왔는데, 그 밑의 캡션 (제이콥 로렌스가 직접 썼다는 그림 설명 문구를 사진에 담아오지 않았다. 그림과 함께 캡션도 아주 중요한데...도서관에가서 관련 자료를 찾던가 아니면 다시 필립스 콜렉션에 가서 캡션까지 사진찍어 와서 삼십장의 그림과 그 캡션을 모두 소개하고 싶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32   워싱턴 필립스 콜렉션 소장 홀수 30편

http://americanart.textcube.com/79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품까지 포함한 총 60편 차례대로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