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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0일 수요일

Museum Day : 박물관 소풍날

National Gallery of Art 국립 미술관

 

말하자면, 오늘은 Museum Day (박물관 소풍날)이라고 할 만 합니다.  아침에 스미소니안 캐슬의 사무실에  인터뷰가 있었거든요.  인터뷰 끝내고, 놀았지요.

 

우선 지난 토요일에 갔었던 National Gallery of Art 에 갔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보고 싶던 것들을 제대로 다 못봤으니까. 전 보고 싶은 것을 못보면 꿈에도 아른거리고,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서...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세상에는 내가 보고싶으나 볼수 없는 것들이 참 많다. 이 세상에는 내가 보고싶으나 볼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내가 가슴에 한이 맺힌 채로 죽을 것이다...  나는 결국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한 스러운 인생 살고 있으니까,  볼 수 있는것들은 가서 보기로 하자.  가서 보기로 하자. 가슴에 자꾸만 한을 쌓지 말자.]  그러니까, 어차피 나간김에 또 간거죠.

 

흠, 국립 미술관이 '홀랑' 뒤집어진 분위기 입니다. 익숙하던 것들이 엉뚱한 곳에 배치되어 있어 영 어색한데다가,  전에 내가 가서 보았던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의 그림 전시장이 싹 없어지고, 지금 공사중. 아이고 아이고. 보고싶은 내 그림들. 아이고. 곧 새단장을 하고 나타나길 바라는 수 밖에요.

 

National Gallery of Art, 2010년 1월 20일 촬영

휘슬러의 작품들이 모여있는 갤러리에서 도슨트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뭐 세계 명화들, 로댕의 작품들, 골고루 실컷 보고, 서관과 동관 사이의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히 점심도 사 먹고요. 음, 책도 샀어요.  무슨 무슨 'ism (이즘)'들에 관한 정보를 총망라해 놓은 책이군요. 하하. 미술 사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인데요. 한가지 실수. 책의 편집자가 영국인이고 영국에서 교육받고 활동하는 사람이라서,  미술사조에 대한 설명의 영국 미술 중심으로 하는겁니다.  예컨대 제가 미국의 social realism 에 관해서 요즘 쓰고 있쟎아요.  혹시나 싶어서 social realism 쪽을 찾아보니, 영국 미술사 쪽에서 설명을 해 놓은겁니다. 아차 싶었죠.  책 구입 영수증 갖고 있으니까, 카페테리아 옆의 책방에서 반납하고 다른 책 고를수도 있었지만,  기왕에 내 손에 들어온거, 제 안목을 넓히는 뜻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난 너무 미국 미술에 몰두해 있는 나머지, 세계 미술사의 흐름에 무감각해질수도 있어. 그러면 미국미술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안돼. 미국미술은 세계 미술의 일부이니까 말이지.) 

 

 

새로 장만한 책

 

 

점심으로 먹은 스트로베리 나폴레온과 커피. 국립미술관 서관과 동관을 잇는 지하 통로에 위치한 카페테리아. 삼각뿔 모양의 유리 천창으로 흘러들어오는 빛과 폭포. (왼편 구석쪽에 책방의 끝자락이 조금 보입니다.)

 

 

 

국립 미술관 동관 (East Building)은 현대미술관입니다.  제가 호레이스 피핀 페이지를 완결하려고 하는데요, 이 장면을 꼭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쟁쟁한 세계의 20세기 초 현대식 미술품으로 가득찬 동관 전시실에 당당하게 걸려있는, 딱 한점이지만 위풍당당한, 딱 한점이라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현저히 작아서 더욱 기품있어보이는 피핀의 작품입니다. 보세요. 국립미술관이 자랑하는 마티스 갤러리 입구쪽에, 그리고 잭슨 폴락, 로스코, 뉴만등이 기다리는 갤러리 초입에 걸려있는 그림입니다.  피핀이 동관 현대미술이 심장부 같은 지점에 오두마니 걸려있는겁니다.

 

관객들은 이 그림이 무엇인지, 왜 이것이 여기 걸려있는지 잘 알지 못하지요. 오직 '피핀'을 아는 사람만 그 의미를 아는거죠.  심지어 매일 이자리를 지키는 미술관 경비 아저씨 (흑인 경비아저씨)도 이걸 잘 몰라요.  오늘 제가 서서 그림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흑인 경비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걸더라구요. 그래서 피핀에 대해서 그에게 설명해줬죠.  "이 사람 마흔이 넘도록 자신이 화가인줄도 몰랐고, 아무도 신경도 안썼다. 이 사람이 화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을때, 쟁쟁하던 당대의 화가들이 - 나도 저렇게 그릴수 있다면! 하면서 한탄을 할 정도였다. 이 작품이 괜히 여기 있는게 아니다..." 

 

 

일층의 프랑스 소품 갤러리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보석같은 작품들을 실컷 구경했습니다. (사진 편집하다가 에러가 자꾸 발생해서, 오늘은 포기.  다음에, 몇가지 보여드리지요. 오늘 왜 자꾸만 에러가 나는지 모르겠어요.)

 

 

 

 

동관 입구로 나와서 슬슬 자연사 박물관 방향으로 가는길이죠. 오른편에 보이는 건물이 국립미술관 서관 (현대 이전 작품들을 주로 전시하는 곳) 건물입니다.  워싱턴 마뉴먼트 오른편으로 둥근 지붕 보이는 곳이 자연사 박물관이지요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국립 미술관 조각공원

 

그런데 국립미술관 서관과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사이에는 '국립 미술관 조각공원'이 있어요.  오늘 사실 그 조각공원에 일부러 들렀는데요. 개념 미술의 창시자로 알려진 So Lewitt 의 조각작품이 거기 있거든요. 사진 찍었죠.  나중에 Sol Lewitt 소개할때, 그때 보여드릴게요.

 

조각공원에 2009년 하반기에 새로운 조각물이 들어왔나봐요. 근래에 새로 발견한 조각이거든요. 이 나무요. 스테인레스 나무에요.  지난 토요일에는 이 나무에 새 한마리가 앉아있는것도 봤거든요. 저새는 조각인가 아닌가? 궁금해서 한참 쳐다보고 있으니까 휙 날아가더라구요. 오늘은 새가 앉아있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제목하고 작가, 나중에 적어 넣을게요.)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 자연사 박물관 입니다.  박물관 입구 오른쪽에는 화석이 된, 바위같은 나무덩어리가 있구요, 왼편에는 줄무늬 철 바위가 있지요. 내 상상력으로는 다다르기 힘든 아주 오랜 세월의 역사를 보여주는 두가지, 천연 조형물들이라고 할만한데요 ...  그런데, 내 속에도 그렇게 아주 아주 아주 오래된 '유전자'가 있겠지요. 그 세월보다 더 오래된 유전자가 있으니까, 내가 여기 있는거쟎아요...

 

여기는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입니다. 

 

 

 

 

 

 

 

스미소니안 캐슬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에서 정면으로 건너다보는 스미소니안 캐슬 (인포메이션 센터) 입니다.  아침에 저곳 2층에서 스미소니안 직원을 만나 인터뷰를 했었지요....

 

 

 

 

Freer Gallery 프리어 갤러리

 

아시아권 예술품을 전시하는 스미소니안 프리어 갤러리에도 들렀습니다. 제가 일전에 이곳에 전시된 듀잉의 작품들을 소개한 적이 있지요.  이곳은 휘슬러의 작품 전시장입니다.  국립 미술관에서도 휘슬러 작품들을 사진기에 담았고, 이곳에서도 휘슬러의 작품들을 빠짐없이 사진기에 담았지요.  조만간 휘슬러 이야기를 쓰게 되겠지요?

 

 

 

스미소니안 메트로 역

 

그리고, 스미소니안 메트로 스테이션에서 메트로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저기 보이는 초록색 둥근 지붕의 건물. 저기가 스미소니안 자연사 박물관 입니다. 음...제가 좋아하는 곳이지요...

 

 

오늘, 미술관에서, 경비 아저씨들이 한가하고 심심하니까,  (하하) 저한테 말걸고, 얘기해주고 그래서  그들만이 알고 있는 별것 아닌 이야기를 듣고 그랬는데요... 가령, 잭슨 폴락의 No 1 (1번) 에 '바퀴벌레' '딱정벌레'가 화석처럼 물감을 뒤집어 쓰고 굳어버린채로 있는것을  경비 아저씨님이 몸소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보여주셨지요. 하하. 원래 담배꽁초도 붙어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안보인다며 "찾으러 들면 이상하게 안보이다가, 아무 생각 없을땐 잘보이더라" 하면서 혼자 한탄.  잭슨 폴락 작품에 바퀴벌레 붙은 화석, 사진 찍어왔거든요.  헤헤. 나중에 정리해서 보여드릴게요.  오늘, 이상하게 자꾸 에러가 나서 사진 정리를 잘 못하겠어요.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모세 할머니를 완결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이유

Grandma Moses 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 말고 딴짓을 하고 있다.  이유는 명백하다. 내가 내 육안으로 구경한 모세 할머니의 그림은 단 두점 뿐이다. 한점은 뉴욕 MoMA 에서 보았고, 또 한점은 스미소니안 미국미술 박물관에서. 이렇게 딱 두점을 육안으로 확인 했을 뿐이다. 검색을 해 보니 워싱턴의 필립스 콜렉션에 소장품이 있고, 허시혼에도 있다고 하는데, 허시혼의 작품은 현재 전시되어 있지 않다고 나오고, 필립스 콜렉션에서 그것을 봤는지 안 봤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조만간 가서 확인을 해 봐야겠다.

 

내가 미국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결심했을때, 내가 스스로 약속한 것이 있다. 내 눈으로 본 그림에 대해서 주로 서술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생생하게 기억해내고 내 목소리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므로.  다행히 나는 국립 박물관이 즐비한 곳에 살고 있고, 여태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기록한 것도 많고, 궁금하면 언제든지 달려가 다시 살펴볼 만한 위치에 있으므로 내 눈으로 본 것을 바탕으로 쓰려는 것이다.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2009년 7월

                                    제목 미상의 모세 할머니의 그림 작품.

                                    Folk Art Gallery 에 걸려 있었다.

 

 

 

아무리 웹이 발달해서, 얼마든지 세계적인 명화들을 웹으로, 책으로 감상 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책에서 보는 그림과 직접 전시장에서 보는 그림은 '다르다.' 책은 보조 도구이지 직접 도구는 아니다. 전시장들을 돌아보며 미술품들과 대화를 나누며 내가 자각한 것이 그것이었다. 내가 손바닥만한 작은 그림책을 갖고 있다고 해도, 내가 전시장에서 그 그림을 보았다면, 나는 손바닥 안에서 실제 크기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내가 보는 것은 손바닥을 통해서 보는 내 기억속의 그림이다. 그 기억이 없는 상태의 손바닥만한 그림은 내게 큰 의미를 던져주지 못한다.

 

그런고로, 내가 모세 할머니의 화집을 들여다봐도, 실제 현장에서 본 것만큼의 감동을 느낄수는 없다. 그러므로 내 이야기를 전할수 없고, 그러므로 나는 글을 쓰지 못하고 뜸을 들이고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며 한두점이라도 생생하게 더 찾아 본 후에 진정으로 내가 준비가 되었을때, 마저 글을 완결시키겠다. 사실, 완결은 한참 후가 될지도 모른다. 버몬트 주에 있는 박물관에 가 볼때까지 미룰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진정으로 쓰고 싶어질때까지 모세 할머니와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살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서두르는 것은 부지런함이 아니고, 기다리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는 것. 

 

나는 정직하게 미국 미술을 만나고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적을 것이다.

 

 

2009년 8월 20일 목요일

Norman Rockwell 4: 노만 로크웰과 나

 

 

 

 

노만이 내게 다가오다

 

내가 어떤 경로로 Norman Rockwell 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인지는 나도 기억할수 없다. 어느날 책방에서 우연히 그의 그림책을 발견했고, 관심이 생겨서 들여다보다가 차츰차츰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Norman Rockwell의 작품을 미국의 주요 미술관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꼭꼭 챙겨서 신경써서 찾아보면 큼직한 미술관에 한 두 점 있을수 있지만, 그나마도 전시되어 있지 않고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서, 미술관 도록에 있다고 해도 실제로 가서 만날수 있을지는 장담할수 없다. 혹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의 작품이 흔치 않은 것은, 딱하게도 그가 미술평단에서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했고, 대접도 받지 못한 결과, 콜렉터들, 호사가들, 갤러리에서 그림을 구매하는 사람들의 손을 덜 탔기 때문일수도 있다.  어느 시절, 도서관에서 미술가들의 일대기와 작품을 소개하는 교육용 비디오들을 산더미처럼 빌려다 놓고 들여다보던 때가 있었는데, 내가 무차별적으로 빌려왔던 비디오중에 노만 로크웰을 소개하는 자료도 있었다. 잘 만들어진 자료였다. 그가 마을의 소녀를 모델로 세워놓고 그림을 그리는 현장이 기록 되기도 했고, 그 소녀가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소녀적의 그 아름다운 미소를 여전히 간직한채 노만 로크웰을 소개하는 장면도 있었다. 노만 로크웰의 그림속에 평범한 소년, 소녀, 마을 사람들이 살아 있었듯, 마을 사람들의 기억속에 노만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에 대하여 회상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꿈을 꾸듯 행복해보였다.

 

그에 대하여 웹에서 자료를 검색해보니 그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그의 이름을 딴 뮤지엄 (Norman Rockwell Museum)이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매사추세츠주에 있다고 했다. 매사추세츠는 내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에서는 멀고 먼 땅이었다. 나는 집 가까이의 워싱턴 디씨,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뉴욕 맨하탄의 미술관들을 둘러볼때마다 혹시나 그의 그림을 구경할수 있을지 기웃거려야 했다. 그의 그림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설령 발견한다 해도, 내가 걸작이라고 생각하던 그림들은 볼수 없었다.

 

콩코드에서 그를 발견하다

 

여름 휴가 기간 동안에 나는 무작정 매사추세츠주의 콩코드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의 학부 전공은 영어영문학이었는데, 나는 그당시에 미국 문학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고, 콩코드는 초기 미국 문학이나 사상계에서는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비록 학위는 문학이 아닌 교육쪽으로 가고 말았지만, 내 심장의 일부는 여전히 문학을 향해 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대학시절 막연히 동경하던 그 콩코드에 가 보고 싶었다. 그곳에는 작은아씨들을 작가인 Louisa May Alcott 의 집이 아직도 서있고, Emerson, Thoreau, Hawthorne 등 굵직한 미국 사상, 문학가들의 집이며 무덤들이 있었다. ‘월든호수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검색을 해보니 Norman Rockwell Museum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작은 아씨들의 세팅이 되었던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 어린시절에 상상하던 그 집에 내가 들어서고 있음을 실감했다. ‘가 사과를 씹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던 다락방까지 모두 둘러보며 내 가슴은 뛰었다.  그런데 그 집의 기념품가게에서 나는 Norman Rockwell 의 그림을 발견하게 되었다. ‘를 그린 그림이라는데, 작가가 Norman이었다. 상세히 읽어보니 Norman Rockwell 이 한때 Louisa May Alcott 의 일대기를 삽화로 그렸다는 것이다.

 

 

 

 

 

Norman Rockwell Museum

 

 

콩코드 여행을 마치고 마침내 Norman Rockwell Museum 에 가던 날 비가 쏟아졌다. 나는 잘 꾸며진 뮤지엄의 정원을 소풍 할 틈도 없이 비를 피해 전시관 안으로 뛰어 들어가야만 했다. 전시관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작품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나는 더욱 신경써서 세심하게 작품들을 들여다봤다. 한 바퀴, 두 바퀴, 보고, 또 보고. 내가 웹에서만 찾아 구경하던 그림들이 전시관 벽에 큼직큼직하게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아 잡지의 표지 그림이 많다고 해서 아주 작은 그림들이 걸려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작들이 걸려 있었다.  Norman Rockwell 은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크기에 신경을 쓰지 않고 그림을 그려서, 아주 큰 것도 있고, 잡지 표지 만 한 작은 그림도 있었다고 하는데, 잡지표지 그림을 그릴 때 그가 지킨 원칙은, 액자에 끼워서 차에 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까지만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림을 필라델피아 (Philadelphia) Saturday Evening Post 사로 운송을 해야 하므로 운송에 부담이 되는 크기는 곤란했던 것이다.

 

노만 로크웰 박물관 건물에서 언덕 너머로 빨간 칠을 한 목조 건물이 보인다. 그곳은 노만 로크웰이 말년에 Stockbridge 에서 머무는 동안 사용했던 작업실. 원래는 시내에 있었던 것인데 박물관을 지으면서 그의 작업실 건물을 이곳으로 옮겨다 놓았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이따금 옛집을 그대로 트럭에 실어서 옮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집을 통째로 들어 올리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쏟아지는 빗속을 달려 그 작업실에 들어가 보았다. 누구든지 입장이 가능하지만 역시 사진 촬영은 금지 되었다.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현재 그림을 그리고 활발한 작업을 하는 미술가이다. 그 작업실에서 Norman 의 물품들, 전시품들을 지키며 자신의 작업도 하고, 사람들이 구경하러 오면 안내도 해주는 것이 그의 임무인 듯 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그 화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는 내가 Norman Rockwell 의 미술 세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알고 있음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듯, “일본과 한국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일본과 한국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가?” 이런 기초적인 것들을 물었다.  나는 간단하게만 대꾸했다. 그는 한국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고, 나의 행동거지에서 한국을 읽을 것이다. 그와의 대화는 미국 미술 분야로 넘어갔는데, 나의 미국 미술에 대한 관점이 그에게는 조금 특별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미국인이 보는 미국 미술과, 한국인이 보는 미국 미술은 뭔가 다른 양상을 띄고 있을 것이다. 그는 내게 미술을 전공했는가 물었고, 나는 그냥 평범한 구경꾼임을 시인했다. 나는 미술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물론 대학 시절에 이런저런 미술사 관련 교양과목들을 이수했고, 살아오면서 교양차원에서 그림구경을 하거나 그림책을 뒤적인 정도이므로 뭘 조리 있게 설명할 식견도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나름대로의 관점과 잣대가 있다. 그 나의 관점이 그에게는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로서도 미술 전문가라는 사람이 내 얘기를 재미있게 들어주므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야기 끝에 나는 문득 Alcott 의 집에서 발견했던 Jo 그림을 떠올렸다. 그 그림을 뮤지엄 기념품 가게에서 사려고 보니 없었던 것이라 내가 낭패스러워 했던 것이다. “콩코드 기념품 가게에서 봤던 것을 정작 여기 와서 찾아보니 없어서 못 구했는데요. 이럴 줄 알았으면 거기서 샀어야 했는데요.”  내가 지나치는 말로 아쉬움을 표하자, 그 미술가가 빙긋 웃었다. “당신이 무슨 그림을 갖고 싶어하는지 알아요. 우리 박물관 자료 보관소에 그 복사본이 있을 거요. 잠깐만.”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여기 아주 특별한 손님이 한 분 와 있는데, Jo 그림, 그 사본을 하나 만들어 놓으세요.”  미술가는 내게 전시장 프론트 데스크에 가면 그 그림이 준비되어 있을 테니 기념으로 갖고 가라고 말했다. 빗줄기가 가늘어졌고, 사람들이 몇 명 들어왔고, 나는 그이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떴다. 전시장에 가니 나를 위한 그림 한 장이 봉투에 담겨서 기다리고 있었다.

 

 

Stockbridge 시내, 로크웰의 거리

 

전시장에서 자동차로 10분쯤 달리면 Stockbridge 시내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Rockwell 이 수년간 작업하여 그린 그림의 실제 거리이다. 비가 쏟아져서 그 마을을 마음껏 산책을 할 수는 없었지만,  한평생 성실하게 그림을 그려온 노 화가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을, 부인을 잃고 슬픔에 잠겨 산책했을 그 길을 눈으로 쓸어 보는 것 만으로도 내게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평생 한 우물만 판 사람, 일평생을 그림만 그린 사람, 남들이 인정해주건 말건 자기만의 화법으로 세상을 그린 사람, 아니 사람을 그린 사람. 그와의 만남은 어떤 식으로든 내 삶에 색깔을 입힐 것이다. 나는 그의 그림 속의 소녀들처럼 용감하게, 웃으면서 하루 하루 살아 나가고 싶다. 인생은 거칠고 힘들다. 내 삶 역시 간단하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 그렇지만 이 삶 속에 웃음도, 기쁨도 있다. Rockwell 인들 인생의 신산함을 몰랐겠는가? 아내와 이별도 하고, 사별도 하고, 수십 년 간 그려온 그림들이 일시에 재가 되는 사태도 겪었던 그가, 인생의 쓴맛을 몰랐을까? 하지만 그의 그림 속의 소년 소녀들은 항상 웃고 있다. 헐벗고 지친 사나이의 곁에는 따뜻한 개 한 마리가 지키고 있기도 하다.  그의 그림은 나 뿐만이 아니라, 인생이 시고 쓰다는 것을 아는 보통 사람들에게 잠시 쉬고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줄 것이다.

 

 

 

 

미술관에서 발견한 Norman Rockwell

 

Homecoming (집으로 돌아오다)

 

이 그림은 2009년 7월 스미소니언 미국 미술 박물관 (Smithsonial American Art Museum) 4층 Luce Center 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 이곳은 미술품 '보관창고' 같은 곳인데 관람객들에게도 개방 된 곳이다. 창고처럼 촘촘히, 조밀하게 작품들이 걸려 있어서 일반 관람객들은 이곳을 그냥 통과해버리고 마는데, 미술관 도록에 분명 있다고 하는데도 전시장에서 찾을수 없을때, 이런 곳에 와보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먼 여행에서 지쳐 돌아온 남자를 개가 따뜻하게 반기고 있다.

 

 

 

1924 Norman Rockwell Born: New York, New York 1894 Died: 1978

oil on canvas 22 3/4 x 18 5/8 in. (57.8 x 47.4 cm.)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Gift of Mr. and Mrs. Bernard M. Hollander 1997.113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4th Floor, Luce Foundation Center

 

 

아래  작품은, Boston 인근의 Salem 이라는 도시. 그곳의 Peabody Essex Museum 에서 발견한 그의 그림이다. Peabody Essex Museum 은 미국 건국 초기에 활발하게 해외 무역을 했던 무역, 해운 재벌들이 일찌감치 건립한 박물관이다. 그래서인지 박물관의 건물 디자인도 배 모양이고, 전시된 그림중에 선박, 항해 관련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이곳에 전시된 Norman Rockwell 의 그림 역시 배 모형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나이를 그리고 있다.

 

 

 

 

 

2007년 7월 11일 뉴욕 맨해턴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etropolitan Museum of Art) 에서 발견한 자그마한 크기의 작품. Four Freedoms 를 기획할 당시 로크웰은 다양한 밑그림을 시도했었다. 그의 Freedom of Speech 작품도 그래서 최종 작품이 탄생하기 전 시도했던 그림들이 남아 있는데, 이 작품은 1943년 그가 완성하고, 완성을 알리는 그의 공식 사인까지 적어 넣은 작품이다.  그러나 완성해 놓고 보니 일어서서 말하는 남자가 주변 사람들에 둘러 싸인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음을 깨달은 로크웰은 결국 한남자가 두드러지게 서 있는 최종 그림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이전 페이지에 그의 Freedom of Speech 그림이 소개 된 바 있다.)  언론의 자유를 표상하는 그림인데, 서 있는 남자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조금 어색해 보인다. 뭔가 역설하는 듯한, 입을 열어 말을 하는 표정이 더 낫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