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5일 목요일

여자의 일생, 남자의 일생 (Das Stufenalte der Frau, des Mannes)

 

F. Leibner
um 1900
41 x 50,5 cm

 

 

 

 

 

독일에서 1900년경에 도식화 한 여자의 일생 계단, 남자의 일생 계단.  뭐, 새삼스럽게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 그림 해석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열개의 계단을 비교해보면, 남자는 두개의 계단에서만  누군가와 함께 있고, 나머지 계단에서는 혼자 서 있는데, 여자는 딱 두개의 계단에서만 혼자 서 있고, 나머지 단계에서는 늘 주변이 북적북적하다.  결국 인생 혼자 왔다가 혼자 간다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이지만,  그리고 뭐 어쩐지 여자가 억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늘 주변에 누군가가 있는 삶이 더 다양하고 즐거운 것이 아닐까?  (요런 생각도 해 보게 된다.)

 

 

그런데, 내가 다른 것은 다 참아 주겠는데,  여자의 일생 그림에서 심지어 에덴동산에서조차  이브가 영감님한테 잔소리 듣고 있을때,  남자의 일생 그림에서 아담은 이브하고 놀고, 주변에는 야생 동물들 뿐이라는 점, 그러니까 아담에게는 잔소리쟁이 영감님이 들러붙지 않았다는 점, 그 점이 짜증이 난다. 영감님은,  남자 여자 잘 있는데 왜 끼어드는가 말이다...

2009년 10월 14일 수요일

Jackson Pollock: dvd

Jackson Pollock (Artists of the 20th Century)

 

잭슨 폴락 디비디가 도서관에 보이길래 빌려다 보았다.  내가 미술관을 다니면서 본 폴락의 작품은 그의 후기 (완성기)의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초기의 그의 습작부터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는 전 과정을 살필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혹은 내가 좋아하는 그의 대작들은 '완성기'에 해당하는 것들인데, 그 이전에 그가 시도했던 과정중의 작품들은, 사실 내 취향이 아니다 (내 취향이 변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는 그러하다).  잭슨 폴락은 피카소의 큐비즘의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으로 미국땅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마스크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을 그의 그림에 등장시키기도 한다.

 

미술관들을 소풍삼아 돌아다니다 보니, 근래에 미술작품에 대한 내 취향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나는 (1) 사실주의화 (2) 색깔위주의 극단적 추상화 앞에서 안도하고  오랜 시간을 머물지만, 큐비즘 계열의 그림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쳐 버린다는 것이다.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모델' 같은 작품을 비롯한, 피카소나 브라크의 입체파 작품들은 내게는 '피곤하다.'  예각으로 면을 분할하여 조각조각 내 놓은듯한 화면을 보면 나는 골치가 아파지고, 그리고 '분노' 같은 것을 느낀다.  그리고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혹은 창녀들)의 그림에 나타나는 아프리카 가면같은 괴이쩍은 얼굴 모양도 내 맘에 안든다. 그림속에 샤머니즘적 무시무시하거나 괴상한 가면같은 얼굴이 등장하거나 흩어져 있으면 나는 외면하고 얼른 지나치는 편이다.  왜 그것이 싫은가 묻는다면 따로 설명 할 길이 없다.  이는 고기를 잘 못먹는 내게 '왜 고기를 못 먹는가?' 하고 묻는 것과 같을 것이다.  "너 왜 소세지를 못먹지?" 하고 물으면 난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냥 안먹는거다.  "너 왜 그 대단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그림이 싫은가?" 물으면 난 할말이 없다. 그것이 미술사적으로 얼마나 획기적인 사건인가는 논리적으로 알고 있고, 설명도 잘 해낼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림이 싫다.  프랑스계 미국 미술가인 브르주아의 작품들도, 설명할 길이 없어 난감하지만 기분나쁘고 싫다.  미술적 가치를 설명하라면 마지 못해 설명을 할 수는 있지만, "너 가질래?" 그러면 나는 "나 주면 내다 팔을래" 하고 대꾸할것이다.

 

그래서 잭스 폴락의 그림 세계를 시기별로 살피면서, 내 맘에 들었던 작품들은 초기의 사실주의적 화풍을 유지하던 작품들, 그리고 말기의 추상화들이다.  나는 폴락이 피카소를 흉내내던 시절에 요절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결국 여러가지 실험을 거쳐서 자기 세계를  찾는데 성공 했으니까.  하지만, 또 한가지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좋아하는 그의 말기의 작품들 속에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그의 '각종 실험적' 요소들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큐비즘적인 요소, 혹은 원시 샤머니즘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 없이 폴락이 정상에 오를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 점을 나는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내가 내 삶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나 역시 실험적인 노력들을 기울여야 하는데, 때로는 설령 그것이 고통이거나, 일탈이거나, 혼돈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지...  터널의 끝에, 빛의 세계가 있을 것이므로.

 

 

꽃과 새끼여우

 

 

영화보러 몰에 갔다가, 근처 할인매장에서 액자를 하나 샀다. 4x6 사이즈의 작은 사진을 넣는 액자. 맘에 들어서 사가지고 와서 (5달러쯤) 언젠가 내가 종이에 대충 그리다 말았던, 책갈피에 있다가 며칠전에 책상위에서 발견된, 내 새끼여우 그림을 꽂아 놓았다.  색을 칠하다 말아서 엉성한데, 나중에 다시 그리게 되더라도 그냥 이놈을 간직하고 싶어서.   새끼여우가 풀밭에 나와 놀다가 노란 꽃에 코를 부비부비 하는 장면이었는데... 그때는, 헤어질 생각을 못하고 대충 그리다가 팽개치고 말았던 것인데, 결국 사라지고 말았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것이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지.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그것이 마지막이 되리라고 미리 상상을 한다고 해서 그 마지막이 유예된다거나 뭐 그런것도 아니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실상은 없다고 하는 것이지...)  어쨌거나, 황금의 시간속에 너를 담아 놓으마.  누가 그랬더라,  기억은 기다림의 다른 말 이라고. 혹은 기다림의 포즈 같은 것이라고.

 

 

2009년 10월 13일 화요일

미국 사실주의 계보 정리

 

 

Andrew Wyeth와 Edward Hopper 페이지들을 대략 마무리 짓고 나니,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들의 계보가 대략 머릿속에 정리가 된다. 신생국가 미국의 미술은 유럽의 미술사와는 약간 시기적으로, 성격적으로 차이가 나게 진행되었다.  예컨대 유럽에서 19세기 중반, 후반에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적 색체가 강한, 혹은 사회 비판적인 사실주의 화풍이 휩쓸고나서 '인상파' 화가들이 새로운 작법을 가지고 등장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오히려 인상파 작법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속에서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사실주의적 작법이 공존하게 된다.  사회비판적인 사회 사실주의적 화풍은 오히려 미국의 인상파 화풍이 물러나면서 1930년대에 꽃피게 된다.

 

19세기말, 20세기초부터 진행되던 미국의 사실주의는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경제대공황으로 인한 빈민층 증가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으로 사회성 메시지가 강한 미술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이 사회성이 강한 미술의 일부는 '사회주의 사상'과 무관하다고 할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소련의 공산주의를 지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미국적 토양위에서 자생한 미술사조로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도시빈민의 문제, 혹은 노동의 문제등 사회 문제를 그림으로 옮긴 화가들의 모임중 '애시캔 (Ashcan)' 학파, 이들과 정체성에 차이가 없는 '8인회 (The Eight)'이 유명하다.   이들을 Social Realist (사회 사실주의자)라고 통칭한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역시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영향권 안에서 '미국의 풍경'을 통해 미국의 '정체성'을 살리자는 취지의 회화운동이 미국의 중서부 화가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들을 지역주의자 (Regionalist)라고 부른다. 위의 사회사실주의적 화가들이 '진보적' 성향의 인물들이었다면,  '미국의 풍경'에 역점을 둔 '지역주의 화가'들은 다소 보수적인 색채를 띄고 있었다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화가로 Grand Wood, Benton 등이 있다.

 

Edward Hopper 는 사회사실주의의 기수라 할 수 있는 Henri (헨라이-로 발음한다)의 제자였고,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혹자는 Edward Hopper 를 애쉬캔 (Ashcan) 학파의 일원으로 분류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에드워드 호퍼 자신이 이런식의 분류를 싫어했다. 호퍼는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상적 그룹에도 속하지 않으며 미술가로서 이런 사상적 색채를 띈다는 것 자체가 유치한 짓이라는 입장을 평생 관철했다.

 

Edward Hopper 보다 한세대 이후에 탄생한 Andrew Wyeth 를 '지역주의자' 무리에 포함시키는 미술사가도 가끔 보인다. 그런데 이또한 무리스러운 노릇이, Wyeth 역시 예술지상주의자인지라 어떤 '이데올로기'와 자신의 그림을 연결짓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때문에, 나는 미국의 사실주의 미술가 계보에서 Edward Hopper 와 Andrew Wyeth 를 '외톨이'들로 분류하는 편이다. 나는 외톨이들을 좋아한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내가 미국미술사를 정리하면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앞부분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선 할 일은, 사회 사실주의자들 중에서 내 맘에 다가오는 (혹은 잘생긴) 화가들을 정리하고, 그리고 지역주의자들을 정리하는 일 일 것이다. (물론 이러다 기분 내키면 식민시절의 풍속화가를 갑자기 소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결: http://americanart.textcube.com/133

 

 

왕눈이

 

느지막하게 아침겸 점심을 먹고,  책가방을  차에 싣고, 차를 출발하려다 생각하니 문간까지 나를 따라와 '잘 다녀와라'하고 말해줄 왕눈이가 안보이는거다.  아침에 시무룩하게 내 침대 발치에 있던 것 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후로 왕눈이를 본 기억이 없었다.   집안 구석구석, 옷장까지 뒤져봤으나 왕눈이는 없었다.

 

뒷문을 통해서 나간 모양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등을 돌리고 하나 하나 사라져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서 멀어져 사라져간다. 세상의 모든 별들이 급속한 속도로 하나하나 꺼져가는 듯한 환각.

 

왕눈이는 동네 어떤 집 마당에 묶여 있었다.  한시간도 넘게 혼자 어슬렁거리고 있길래, 차에 치일까봐 묶어 놨다고.

 

왕눈이는 자박자박 소리를 내면서 내 방으로 뛰어온후에 기쁜 표정으로 내게 덤벼들었다. 사실 세달 가까이 나는 왕눈이를 산책도 시키지 않고, 거의 버려두다시피 했다. 산책도, 목욕도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왕눈이를 돌보는 것은 다른 식구들 차지가 되어 버렸고,  그래도 왕눈이는 내 발치에 와서 내게 붙어서 잠이 들곤 했었다.

 

감기가 다 낳으면, 제일 먼저 할일은, 왕눈이를 동네 지정병원에 가서 종합적으로 체크업을 해주고, 밀린 예방접종도 다 맞춰주고, 그리고, 털을 예쁘게 깍아주는 일이다. 그것부터 해주자.  나는 왕눈이에게 너무 무책임했다.  무책임하면 안된다. 개 한마리라도, 무책임하면 안된다.

 

왕눈이가 돌아와서 다행이다.

왕눈이가 다칠까봐 묶어놓고 주인이 오기를 기다린 착한 이웃이 있어서 다행이다.  (친절함이란 이런 것이구나.)

 

 

Sandy Skoglund: 금붕어의 보복 Revenge of the Goldfish (1981)

미술관에서 발견한 '엽서' 한장.

푸른 방 안 가득 유영하는 빨간 붕어들

 

65 x 83 cm

Revenge of the Goldfish (1981)

Photography by Sandy Skoglund

작가 홈페이지: http://www.sandyskoglund.com/

 

 

미술관 기념품샵에서 이 엽서를 발견 했을때, 무슨 생각이 났을까요...  일본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혹은, 인어공주가 왕자를 납치해다가 심해 인어궁에서 살았다면 이런 광경이었겠다, 뭐 이런 발칙한 상상.

 

작가한테 관심이 생겨서 웹을 뒤져보았다.  워싱턴이나 버지니아 일대의 미술관에서 그이의 사진 작품을 찾아보기는 힘들것 같은데.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미술 석사 했고,  현재는 Rutgers 교수.  뉴욕에서 활동중. 

 

 

Fox Games

Advil

 

애드빌 두알

뜨거운 꿀차

 

그중에서 뜨거운 꿀차가 가장 좋다.

 

몸상태가 안 좋을땐, 방을 깨끗이 치우고,  샤워를 하고, 옷을 깨끗이 다려 입고, 그리고 휘파람을 불면서 일을 나가야 한다. 내 사지 육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감격해 하면서.  나의 여우가 어디선가에서 아직도 살아 돌아다니고 있을 것을 상상하면서.

 

오늘 할일:

1. 방을 청소한다

2.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입고

3. 학교에 가서 수업준비를 착실히 하고

4. 즐거운 수업을 하고

5. 집에 와서 뻗는다.

 

이것만 잘 하도록 하자.  11월이 오면 내 여우가 돌아온다고 말했다.  내 꿈에 나타나서.  여섯시간마다 애드빌 두알.  준비,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