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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7일 목요일

Social Realism : 사회 사실주의의 범주

 

http://americanart.textcube.com/85

 

 

지금까지 미국의 사실주의 회화를 정리하면서 The Eight (Ashcan School) 과 Regionalism (지역주의 화가 3인)에 대한 정리를 간단히 했습니다.  그 사이에 몇몇 페이지에서 사회(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대한 언급을 산발적으로 하기도 했습니다.

 

 

 

 

사회 사실주의에 대해서 뜸을 들인 이유는, 저 스스로 이것의 범주를 정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사실주의에서 '사회 사실주의'는 사실 어찌보면 애매모호한 개념입니다.  크게 보자면, 사실주의에서 '사회속의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을 모두 사회사실주의에 포함 시킬수도 있고요 (이렇게 되면 미국 미술사에서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활동한 사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대개 포함될수 있습니다) 혹은 극히 '협의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논할수도 있는데, 이 경우 소수의 몇명의 화가들이 대표적으로 떠오를수 있습니다.

 

 

 

 

그래서 협의와 '광의'의 사회 사실주의 사이에서 제가 '갈팡질팡'한 측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술사는 제 전공이 아니고, 보통 사람들처럼 저 혼자 이책 저책 들여다보면서 공부하면서 가닥을 잡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공부해 가는 과정이 아주 재미있어요. 제가 착각하거나 잘 못 알고 있었던 내용을 스스로 바로잡아 가기도 하는데요, 그러면서 스스로 키가 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 할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나름대로 어떤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일단은

 

제가 생각하기에, 그리고 몇가지 미술사책, 미술사 연구자들이 정리한 '협의의 사회 사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하여, 미국의 20세기 초반, 중반을 흘렀던 사회사실주의 회화의 분위기와 소재, 주제등을 살펴본 후에, 이런 분위기를 전하는 다른 '광의의' 사회 사실주의 그림들에 대하여 논의해보겠습니다.

 

예컨대, 협의의 사회 사실주의는  지역주의 (Regionalism)와 정치적 노선을 달리 하는 식으로도 해석이 되는데요, 이경우 Social Realism 은 좌익, Regionalism은 우익 식으로 평가가 됩니다. 매우 협의의 개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Regionalism 을 들여다보면 Benton이나 Curry 는 소비에트 사회주의에 심취했던 화가들이므로 이들을 우익으로 몰아붙이기엔 무리가 있거든요. 이들이 우익의 공공미술 정책을 지지하거나 정부 선전 미술 작업을 한것도 사실이긴 하지만요.  그러니까 들여다보면 양상이 간단치가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앞으로 '이것이 Social Realism 이다' 라고 할 만한 작품과 작가들을 좀 들여다보고요, 그후에 협의와 광의의 사회사실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것으로 '사회사실주의'를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

 

대략 제가 갖고 있는 그림파일들을 보면

 1. http://americanart.textcube.com/285  Reginald Marsh

 2. http://americanart.textcube.com/297 Isabel Bishop

 3. http://americanart.textcube.com/300 Ben Shahn

 3. http://americanart.textcube.com/345 Jacob Lawrence

 

그리고....

 

찾아보죠...

 

2010년 1월 6일 redfox.

 

 

***

 

아아, 페이지 장식 차원에서 벤샨의 '해방' 그림을 해당 페이지에서 카피해다가 붙여 놓았는데요,  이것을 살펴보다가 한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저 그림의 액자 입니다. (그림과 액자를 잘 살펴보시지요.)  제가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자문자답)

 

이 '해방'이라는 그림의 소재, 주제는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해석이 어떠하건 공통분모가 있을것입니다.  도시 빈민 어린이. 망가진 삶에 대한 관찰인데요. 그래도 제목이 '해방'인것을 보면 그림은 미래에 대한 희망, 소망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림의 소재가 저러한데요, 

 

그러므로, 이런 소재의 그림을 '화려한 금박 액자'로 처리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림과 액자가 따로 놀겠지요? 

 

 

저는 가끔 그런 그림들을 봅니다. 서민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 그림의 액자가, 그 삶과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액자로 치장되어 있는 것을요. 그래서 그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생각을 해 보곤 하는데요. 어디서 읽었더라... 서민의 삶을 금박액자로 치장한것도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대개 이런식으로 풀이를 합니다.  그림의 소재가 주제가 어떠하였건,  서민들의 사연이 담긴 그림 - 그 그림을 향유하던 집단은 부유층들이었다는 것이지요. 그 부유층 사람들이 서민들의 고통을 나누기보다는 뭐 그냥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풍경'정도로 그 그림을 파악하고 그것에 금박액자의 옷을 입혀서 그들의 금빛 거실을 장식했다고 하네요.  말하자면, 어떤 가난한 하녀의 그림을 비싼 액자에 담아 화려한 거실에 걸어놓고, 역시 상류층 사람들과 그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해서, 그 그림의 값이 얼마나 비싼지 논의하고 있을때,  가난한 그집의 하녀는 그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다 바치며 바삐 맴맴 돌았겠지요. 아마도.

 

 

 

벤샨의 '해방'의 액자는 그림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해방'에 금테두리 액자를 입힌다면, 그것은 '모욕'이 될겁니다.

 

 

 

 

2009년 10월 13일 화요일

미국 사실주의 계보 정리

 

 

Andrew Wyeth와 Edward Hopper 페이지들을 대략 마무리 짓고 나니,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들의 계보가 대략 머릿속에 정리가 된다. 신생국가 미국의 미술은 유럽의 미술사와는 약간 시기적으로, 성격적으로 차이가 나게 진행되었다.  예컨대 유럽에서 19세기 중반, 후반에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적 색체가 강한, 혹은 사회 비판적인 사실주의 화풍이 휩쓸고나서 '인상파' 화가들이 새로운 작법을 가지고 등장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오히려 인상파 작법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속에서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사실주의적 작법이 공존하게 된다.  사회비판적인 사회 사실주의적 화풍은 오히려 미국의 인상파 화풍이 물러나면서 1930년대에 꽃피게 된다.

 

19세기말, 20세기초부터 진행되던 미국의 사실주의는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경제대공황으로 인한 빈민층 증가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으로 사회성 메시지가 강한 미술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이 사회성이 강한 미술의 일부는 '사회주의 사상'과 무관하다고 할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소련의 공산주의를 지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미국적 토양위에서 자생한 미술사조로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이다.  도시빈민의 문제, 혹은 노동의 문제등 사회 문제를 그림으로 옮긴 화가들의 모임중 '애시캔 (Ashcan)' 학파, 이들과 정체성에 차이가 없는 '8인회 (The Eight)'이 유명하다.   이들을 Social Realist (사회 사실주의자)라고 통칭한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역시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영향권 안에서 '미국의 풍경'을 통해 미국의 '정체성'을 살리자는 취지의 회화운동이 미국의 중서부 화가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들을 지역주의자 (Regionalist)라고 부른다. 위의 사회사실주의적 화가들이 '진보적' 성향의 인물들이었다면,  '미국의 풍경'에 역점을 둔 '지역주의 화가'들은 다소 보수적인 색채를 띄고 있었다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화가로 Grand Wood, Benton 등이 있다.

 

Edward Hopper 는 사회사실주의의 기수라 할 수 있는 Henri (헨라이-로 발음한다)의 제자였고,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혹자는 Edward Hopper 를 애쉬캔 (Ashcan) 학파의 일원으로 분류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에드워드 호퍼 자신이 이런식의 분류를 싫어했다. 호퍼는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상적 그룹에도 속하지 않으며 미술가로서 이런 사상적 색채를 띈다는 것 자체가 유치한 짓이라는 입장을 평생 관철했다.

 

Edward Hopper 보다 한세대 이후에 탄생한 Andrew Wyeth 를 '지역주의자' 무리에 포함시키는 미술사가도 가끔 보인다. 그런데 이또한 무리스러운 노릇이, Wyeth 역시 예술지상주의자인지라 어떤 '이데올로기'와 자신의 그림을 연결짓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때문에, 나는 미국의 사실주의 미술가 계보에서 Edward Hopper 와 Andrew Wyeth 를 '외톨이'들로 분류하는 편이다. 나는 외톨이들을 좋아한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내가 미국미술사를 정리하면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앞부분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선 할 일은, 사회 사실주의자들 중에서 내 맘에 다가오는 (혹은 잘생긴) 화가들을 정리하고, 그리고 지역주의자들을 정리하는 일 일 것이다. (물론 이러다 기분 내키면 식민시절의 풍속화가를 갑자기 소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결: http://americanart.textcube.com/133